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4화 (14/124)

< 나도 돈 좋아해 >

녹화도 끝났으니,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아주 단순했다.

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우리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건 그때부터가 될 것이다.

녹화할 때의 분위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더욱 기대가 됐다.

어쩌면, 지금까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게 무색하게도 커다란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구서연이 내게 연락했다.

김별에게 맞춘 신곡을 만들었다고.

피드백을 부탁하러 우리집으로 온다고 했다.

‘반응이 괜찮으니 의욕이 나나 보네.’

지금도 원곡이 본격적으로 터지지 않았을 뿐이지, 유정아 덕에 노출은 된 상태였다.

그러니 반응도 많이 볼 수 있었겠지.

그 곡을 만든 작곡가로서는 힘이 날 수밖에 없으리라.

전화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벨이 울렸다. 도착했나 보다.

전에 한 번 와봤다고, 이제 집에 오는 것도 스스럼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너희 집으로 간다니까.”

“에이. 제가 부탁하는 건데 어떻게 그래요. 괜찮아요.”

생글생글한 미소를 띠우며 손을 휘젓는다.

사실 선생님 집에 있는 작업실이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구경가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그렇다고 억지로 간다고 할 수도 없고.

다음에 기회되면 꼭 가봐야지.

“너 근데 앞머리는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네?”

“왜 다 가리고 있어. 답답하게.”

“···왜 갑자기 시비예요.”

매끈한 미간을 좁힌다.

그런데 화내는 모습이 웃는 것보다 더 귀여워 보이는 건 왜일까.

어쩌면 내 눈이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시비라니 무슨 소리야. 전에 말했잖아. 너 제대로 꾸미면 꽤 귀여울 것 같다니까?”

“아, 그 말이었어요?”

다시 웃는다.

“지금도 보다 보니 동그란 얼굴이 귀엽긴 한데, 제대로 꾸미면 더 귀여울 것 같다는 거지.”

“에이. 그만하세요.”

말로는 그만하라는데, 어째 더 해달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도 그만하라니까 그만해야지.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웃는 얼굴로 힐끔거리던 그녀가 날 빤히 쳐다봤다.

“왜?”

“···아니에요.”

우리는 곡을 듣기에 앞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녹화할 때 어땠는지, 지금 인터넷 반응이 어떻고 방송이 되면 어떻게 할 건지 등등.

그녀는 듣는 내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경청했는데.

희망적인 얘기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얼굴에 번진 미소도 더욱 짙어졌다.

이걸로 데뷔했기에 애정이 가고 관심이 가는 게 당연하지.

“근데 곡은 갑자기 어떻게 만든 거야?”

“아직 제대로 활동도 안 끝났긴 했는데, 삘 받아서 만들어봤어요. 그리고 이제서야 첫 곡 썼는데 게을리할 수는 없잖아요. 미리미리 부지런하게 만들어 놔야죠.”

“좋은 마음가짐이야. 보이는 거랑 다르네.”

“···네?”

이건 한 번 억지로 도발해봤다.

역시 웃는 것보다 이런 모습이 더 귀엽다.

신기하네, 참.

“농담이야. 이제 곡 한 번 들어보자.”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자기 계정의 클라우드에서 음악을 다운받으며 말했다.

“이번 곡은 EDM느낌 살리면서 만들어봤어요.”

“EDM?”

“네. 그렇다고 막 거창한 건 아니고요. EDM팝으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신디사이저가 메인이고요.”

대충 감은 잡힌다.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

‘들어보면 알겠지.’

결국 중요한 건 이런 세부 장르가 아니다.

좋은 곡인지, 별이에게 어울리는지.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지.

“틀게요?”

“그래.”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공을 들인 티가 확 나는 음악.

악기들이 다양해졌고, 소리도 열심히 디자인했는지 신선하고 예쁘다.

확실히 좋은 곡이다. 역시나 감각이 있는지, 별이에게도 잘 어울릴 것 같고.

그런데.

어째 음악보다 목소리에 더 귀가 기울여진다.

이런 경험은 전에도 몇 번인가 있었다.

다른 가수에게 주기 위해 곡을 만든 가수가 직접 가이드한 곡.

일반적인 가이드를 듣는 것과 달리, 음악보다 가이드에 더 집중이 된다.

빈틈이 보이지 않아 그냥 자기 노래 같다.

노래가 끝났을 때, 그녀는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피며 느릿느릿 말했다.

“···별로예요? 다음엔 더 잘 만들어서 들려드릴게요.”

난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떨쳐냈다.

“아냐. 충분히 잘 만들었어. 우선-”

너무 좋은 곡이지만 그래도 조금 더 퀄리티를 높일 방법이 보였다.

피드백을 시작하자 그녀는 눈을 빛냈다.

반발심이나 의심 따위는 손톱만큼도 엿보이지 않는다.

여태까지 이런 창작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무척이나 순종적이다.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억지로 떨쳐냈던 상념이 무럭무럭 자라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대체 왜 가수를 안 하는 거지?’

아버지가 구태성이면서.

선생님이라면 딸의 재능을 몰라봤을 리가 없을 텐데.

‘귀엽고 착하고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작곡도 잘하는데.’

난 말을 멈추고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요?”

“으음.”

난 말없이 다시 곡을 틀었다.

그리고 이번엔 눈을 감고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여봤다.

처음 들었을 때도 목소리에 더 집중되긴 했지만, 이번엔 다른 시각으로 들어봤다.

곡이 끝나고 나서야 난 눈을 떴다.

영문을 모르고 눈동자만 끔뻑거리고 있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 노래 한 번 불러볼래?”

“네? 왜, 왜요?”

“그냥. 노래 잘하는 것 같아서.”

“어? 네?”

되묻는 목소리가 흔들리고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그런데 표정 속에 기대감이 슬그머니 피어나고 있었다.

“연습실로 가자.”

“···네.”

그녀는 고분고분 내 말에 따랐다.

관심이 있긴 한가 보다.

집에서 나와 걸음을 옮기는데,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뚝딱뚝딱 어색하게 움직인다.

뿐만 아니다. 입으로 후! 후! 바람을 크게 불기도 하고, 어깨를 돌리거나 목을 빙글 돌리며 긴장을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연습실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목 풀고 말해.”

“네!”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데, 표정이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모습만 봐서는 가수가 되고 싶은 의욕이 충만한 것 같은데.

의문이 점점 깊어진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뒤돌아서서 목을 풀기 시작했다.

목을 푸는 것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제대로 알고 있다.

아버지를 보고 어깨 너머로 배운 건지, 아니면 아버지께 제대로 배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 풀었어요.”

“그럼 아무거나 불러봐. 방금 네가 만든 노래도 좋고, ‘So Happy’도 좋고.”

“그럼 ‘So Happy’로 할게요.”

손을 탈탈 털고, 다리를 한 쪽씩 접었다 펴고.

힘을 빼기 위해 어깨를 들썩거리고, 목을 좌우로 꺾고.

별걸 다 하면서도, 노래는 부를 생각을 않는다.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난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간다.

심지어 식은땀이 흐르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 거였구나.’

모든 실타래가 풀렸다.

무대 공포증.

생각보다 흔하고, 생각보다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 저··· 자, 잠시만요. 제가 노래방에서는 잘 부르는데···.”

호소하듯이 말한다.

그녀의 말이 뭔 지 난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때는 멀쩡하게 잘만 부르는데, 무대 같은 게 마련되기만 하면 겁을 집어먹는 거다.

이런 경우를 난 몇 번이나 목격했었다.

본인이 가장 답답하겠지.

난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끝까지 그녀는 입을 떼지 못했다.

단 한마디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푹 숙인 고개.

흐느끼는 울음소리.

들썩이는 어깨.

연습실 바닥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타이밍이 좋다.

바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이유진이 드디어 회사를 나오고 우리 곁으로 왔다.

“선배, 나 이제 선배가 책임져야 돼요. 저도 얼마 안 있으면 실장 달 수 있었던 거 알죠?”

“알아. 네가 개국공신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나중에 회사 크면 이사나 해먹든가.”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연습실 문을 열었다.

연습실 중앙에 별이가 반듯하게 서서 나와 이유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인사해. 오늘부터 일하게 될 매니저야.”

“안녕하세요. 김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얼떨떨한 기색은 없다.

내가 이미 말해뒀으니까.

“음악도 잘 듣고 있고 뮤직 비디오도 잘 봤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이유진이에요.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싱긋 웃는 이유진.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이기에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마 같이 붙어 있다 보면 금세 정이 들 거다.

레모네이드라는 개똥밭에서 구르다가 왔으니 더욱이.

나는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그럼 새 식구 왔으니까 밥이나 먹을까?”

자고로 친해지는 데는 술 다음에 밥 만한 게 없었다.

우리는 어디 밖으로 나가는 대신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별이는 이곳이 익숙하고, 유진이는 이곳에 익숙해져야 했으니.

“선배가 잘해줘요?”

“네. 엄청 잘해주세요. 그리고 말 편히 하셔도 돼요.”

“그럴까? 고마워. 어머, 진짜 얼굴도 예쁜데 말도 너무 이쁘게 한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빠르다.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그래도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설마 배달이 오기도 전부터 눈빛이 살살 녹아내릴 줄이야.

별것도 안 했는데 돌아오는 호감도가 너무 높다 보니, 별이도 당황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걔네랑 일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나?’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이사 조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피는 못 속이다고 하지 않나.

볶음짜장, 깐풍기, 볶음밥, 탕수육까지.

배달은 얼마 안 있어 도착했고, 우리는 바닥에 음식을 깔았다.

저 조그마한 원형 테이블에서 먹기엔 음식이 너무 많아서.

조만간 큰 테이블 하나 새로 사야겠다.

사람도 더 들어왔으니, 이곳도 사람 냄새 좀 나게 해야지.

“평소에 다이어트는 해? 운동 같은 건?”

“다이어트는 안 해요. 운동도 따로 안 하고 있어요.”

“그럼 몸매도 타고난 거네. 피부 관리는?”

“···열심히 씻고, 스킨케어 제품도 써요.”

“그런 건 관리했다고 하는 게 아니야. 넌 그냥 예쁘게 태어난 거구나?”

칭찬세례에 당황하기도 잠시.

음식이 입속으로 들어갈수록, 별이의 얼굴은 무표정이 됐고, 눈은 음식에 고정되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모습조차 유진은 귀엽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어느 정도였던 거야?’

레모네이드는 대체 어떤 그룹인 걸까?

난 헛웃음을 터뜨리며 이유진에게 말했다.

“그만하고 너도 좀 먹어.”

“걱정 마요. 제가 먹을 거 놓치는 거 봤어요?”

“아니. 어떻게든 챙겼지. 아주 감탄이 나올 정도였어. 특히 스튜디오 계단에 숨어서 먹었을 때는 정말···. 어떻게 빵을 숨겼는데도 걸을 때 소리가 안 나냐?”

“그게 다 요령이라고요. 살려면 뭘 못 해요?”

우리가 옛날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별이가 처음으로 유진에게 질문했다.

“언니는 언제부터 매니저 하셨어요?”

유진은 별이의 관심이 기꺼운지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를 풀었다.

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을 뿐이었는데, 유진의 입은 도통 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 별이의 입도 쉬지는 않았다. 계속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거든.

‘춤 췄었던 건 말 안 하네?’

유진이 이것저것 다양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딱 한 가지 얘기만 귀신 같이 빼고 있었다.

안무가를 꿈꿨다가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에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고 매니저 일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술을 자주 마신 만큼, 서로 안 한 얘기가 거의 없었다.

내가 작곡가를 꿈꿨던 것도 얘기했었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 공통점 때문에 더욱 빠르게 친해진 걸지도 모른다.

이유는 달랐지만 우리 둘 다 꿈을 포기하고 미련 때문에 이 바닥에 들어온 건 같았으니까.

‘얘는 재능이 있었으려나?’

우리가 대화도 많이 나누고 술도 많이 마셨지만, 직접 춤을 추는 걸 본 적은 없다.

자기 말로는 천재였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어.’

말로는 나도 한스 짐머가 될 수 있다.

“아 참! 선배, 그 작곡가 분도 여기 자주 오신다면서요? 그분은 언제 또 오신대요?”

“음···. 글쎄?”

난 볼을 긁적이며 마지막으로 봤던 서연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렇게 펑펑 울면서 뛰쳐나갔으니, 민망해서라도 당분간 안 오지 않을까?

한동안 발길이 뜸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선 그 무대 공포증을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

지금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건 좀 더 고민해 봐야지.’

쉽지는 않을 테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까지 기회가 온 것일 수도 있다.

공포증이 없었다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어디서든 진작에 데뷔했겠지.

“언제 올 지 모르겠어. 근데 얼굴은 잘 안 비쳐도 곡은 쓰는 대로 보내줄 거야.”

“···선배, 사장되더니 돈밖에 안 보이나 보네요.”

“무슨 소리야. 난 원래 돈밖에 안 보였어.”

장난에 장난으로 답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음식에 박혀 있던 별이의 시선이 문득 내게로 향했고.

그녀의 눈꼬리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아니잖아요.”

“···나도 돈 좋아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진짠데.

< 나도 돈 좋아해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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