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3화 (13/124)

< 인터뷰를 꽤 길게 해야겠는데? >

GO엔터에 있었을 때.

음악방송은 예사였고, 관객을 꽉꽉 채운 잠실 콘서트, 일본의 돔 공연장, 그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스케줄들을 해왔었다.

그런데 단연코, 지금처럼 떨린 적은 없었다.

김별과 내가 탄 차 안에는 정적이 내려 앉았다.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자주 나서, 내 목에서 나는 건지 별이 목에서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별이의 손에는 ‘그대에게’를 연습할 때 쓰던 노트가 들려 있었다.

노트 안에는 가사와 함께, 강조할 부분, 여리게 부를 부분, 숨쉬듯이 부를 부분 등등.

내 피드백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별이의 눈은 손에 든 공책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미 연습은 완벽한데도 만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젠 노트를 앞쪽으로 넘겨, ‘So Happy’까지 본다.

딸을 수능장까지 데려다주는 아빠가 된 느낌이다.

“도착했어.”

“네!?”

“샵에 도착했다고.”

“아··· 네.”

화들짝 놀랐던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한 긴장은 좋지만, 이 정도면 방송에서 큰일 날 것 같은데.

풀어줄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샵에 있다 보면 다 풀리겠지···?’

나는 그녀와 함께 나란히 샵으로 들어갔다.

샵 안을 둘러보는데, 선배들이 몇몇 눈에 띈다.

그래도 GO엔터의 아티스트는 한 명도 없었는데, 그건 내가 일부러 피한 거다.

어디 샵을 쓰는지 다 아니까.

“안녕하세요! 신인가수 김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들은 그녀의 인사를 대충대충 받아주었다.

안 받아주는 일도 비일비재한 마당이라, 대충 받아주는 건 화가 날 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망할. 누가 보면 정말 아빠인 줄 알겠네.

나는 그녀가 잘 보이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기다렸다.

언제나 이 시간은 고역이다.

이번에 역시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사장님, 다 끝났어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잠깐 졸았었나 보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남아 있던 졸음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

“···.”

그녀의 입술은 웃음을 참듯 힘이 들어갔다.

“···.”

“아. 끝났···구나.”

나도 모르게 벌어져 있던 입을 서둘러 닫으며 말했다.

잠깐 넋을 놔버렸다. 그런데 민망하지도 않다.

잠에서 깬 직후에 곧바로 그런 얼굴을 봐버리면, 누구나 그러한 반응을 보일 테니까.

난 당당하다.

“가자.”

“네.”

우리는 샵에서 빠져나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차에 타서 벨트를 매며, 흘끗 그녀의 표정을 살폈는데.

어째서인지 긴장감은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잔잔한 미소만이 맺혀 있을 뿐이었다.

***

“기가 막히네.”

‘김석희의 아메리카노’의 진행자이자, 한 기획사의 수장, 그리고 레전드 뮤지션 반열에 오른 김석희.

그는 이미 수십 번이나 들었던 음악을 재차 틀었다.

“이게 신인이라고?”

그가 듣고 있는 음악은 김별의 ‘So Happy’.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작곡가와 가수가 모두 신인이란다.

게다가 작곡가는 구태성의 친딸.

덕분에 구태성의 히트곡, ‘그대에게’를 김별의 커버곡으로 들을 수 있게 됐다.

“제발 잘했으면 좋겠네.”

요즘은 오토튠도 너무 잘되어 있어, 이렇게 녹음된 음악으로 들었을 때 쉬이 구별이 가질 않는다.

귀로만 판단하자면, 오토튠이 거의 안 들어간 것 같은데 혹시 또 모른다.

기대에 배신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아무리 예민한 귀를 갖고 있어도 긴가민가하다.

과연 이대로 부를 수 있을지 없을지.

김석희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며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리허설은 안 들어야겠네.”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최선의 최선.

가수가 100%로 끌어올린 실력을 보고 싶었으니까.

“쯧. 하여간··· 이 바닥은 언제 바뀔는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이렇게 설렘을 주는 가수가 나타났는데.

GO엔터는 그런 가수에게 훼방이나 놓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지.

쉽게 바뀌지 않는 이 바닥.

거인의 훼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방법이 몇 개 없다.

운이 받쳐주든지, 아니면 또다른 거인의 뒷배를 얻든지, 그도 아니면.

“실력으로 악착같이 뜨는 수밖에.”

그때 한 가지 그림이 김석희의 머리에 스치며 픽,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만약.

이 두 개의 무대를 통해, 기대대로의 실력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재밌겠네.”

가수가 뜨고 싶은 생각이 없더라도, 대중들은 그녀를 어거지로 끌어올려버릴 것이다.

***

가뜩이나 완벽했는데, 거기에 더해 의상까지 갖춰 입었다.

보통의 음방 무대 의상으로 맞춘 것이 아닌, 조금은 더 대중적인 착장.

나는 누구보다 더 빛나고 있는 그녀를 눈에 담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웅성이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리허설이 모두 끝나고 이제 방청객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이제 곧 있으면 녹화가 시작될 터.

밖은 시끄러운데 여기 대기실 안은 한없이 고요하다.

이미 살펴봤던 인터뷰 질문지를 다시 살펴보는 그녀.

그녀가 고개를 든 건, 스태프가 들어와서 나올 시간이라고 알렸을 때였다.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복도를 걸었다.

관객들과 대화하는 김석희의 목소리가 조금씩 크게 귀에 들어온다.

방청객들의 웃음 소리도 더 커진다.

“사장님.”

“응?”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는 내가 아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입을 달싹거리던 그녀가 겨우 말을 꺼냈다.

“저 잘할 거예요. 그래서··· 저 끝까지 믿어준 사장님이 후회하는 일 없게 만들 거예요. 역시 내가 맞았다고,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요.”

갑자기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괜히 멋쩍어, 나도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마워요, 사장님. 저 예쁘게 봐주시고, 잘해주시고, 아껴주셔서요.”

한 발자국 앞서 걸음을 옮기던 조연출이 방긋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쑥스럽다. 난 별거 안 했는데, 과한 공치사를 받는 것 같아서.

“너랑 서연이가 다 했지. 내가 더 고맙게 생각해.”

어깨를 으쓱이며 애써 가볍게 말했을 때, 우리는 걸음을 멈춰야 했다.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닿는 곳에 무대가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별이와 나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를 소개하는 김석희의 멘트와 조연출의 말이 동시에 들려왔다.

이제 무대 위로 올라갈 시간이다.

별이는 크게 심호흡을 하곤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따스하고 온화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다녀올게요.”

“그래, 잘하고 와.”

방청객들의 박수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몇 발자국을 움직여, 드디어 별이가 무대에 닿았다.

그리고.

우리의 음악, ‘So Happy’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아빠, 쟤 노래가 요즘 핫하대요.”

“그래봤자지.”

방청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아들.

박수를 치며 가수를 맞이했지만, 사실 둘은 김별에 대해 심드렁하기만 했다.

아들 역시도 유정아의 영상이 화제가 돼서 원곡의 주인이 김별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원곡을 들어보지도 뮤비를 보지도 않았다.

유정아 덕분에 운이 좋아 이름을 알린 가수.

그의 머릿속에 김별이란 가수는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예쁘긴 하네요.”

“곱긴 하네.”

방청석에 앉아 있는 다른 방청객들 또한 비슷한 분위기였다.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기에 대체로 차가운 반응.

하지만.

그 예쁘고 고운 가수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대고 목소리를 낸 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일변했다.

“어···?”

귀에 꽂히는 소리가 너무 부드럽다.

행복하다는 듯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노래하는 김별.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분명히 이렇게 얼음처럼 굳어서 감상할 노래가 아닌데.

어깨가 들썩여질 정도로 신나는 음악일 텐데.

이 가수를 처음 접했기 때문일까.

심장은 쿵쾅거리고 있지만 몸을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머리가 너무 바쁜 모양이다.

실시간으로 그녀에게 빠지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 노래를 듣고도 팬이 되지 않을 거냐며 난폭하게 외치는 것 같다.

대체로 그가 좋아하는 음악은 재즈와 힙합.

보통 그가 아티스트의 열렬한 팬이 되는 과정은 이렇게 강렬하지 않았다.

음악을 듣고 가슴이 울리면 그 다음 머리로 판단하고.

몇 번 감탄을 거듭하게 되면 미소가 나오며 가수의 다른 곡을 찾아 들어본다.

이 또한 빠른 과정이긴 하나, 지금처럼 강제로 빨려들어가듯 팬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뭐야, 이거···.”

특별히 내지르는 고음도 없다.

허나, 듣는 입장에서 아쉽지도 않았다.

저런 목소리로 이런 멜로디를 노래하는데 어떻게 아쉬울 수가 있겠는가.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가 끝이 나 있었다.

순식간에 흘러간 시간.

전율이 흘러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와!”

“우와. 진짜 대박이다.”

“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노래 개잘하는데?”

“아까도 예뻐 보였는데 노래 듣고 보니까 이젠 그림처럼 보인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들.

저들도 자신과 그리 다른 것 같지가 않아서, 그의 입에서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아버지는 어땠어요?”

“나도 좋게 들었어. 노래 잘하네.”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띠고 계신 걸로 보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자신만큼 그렇게 푹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또 다른 곡 부르는 거냐?”

“아뇨. 인터뷰하고 가거나 아니면 인터뷰하고 한 곡 더 부를-“

말이 뚝 끊겼다.

곧바로 새로운 음악이 나오고 있어서.

“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대에게! 그대에게잖아!”

아버지 세대의 노래인가 보다.

아버지는 이 반주가 그리도 반가운지 손가락으로 무대를 가리키기까지 했다.

‘작전 잘 짰네.’

웅성거리는 소리는 금세 잦아들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터.

단 한 번의 무대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인상을 강렬하게 박아 넣은 덕이다.

반주의 볼륨은 이전보다 확실히 작아졌다.

소리를 내는 악기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드럼뿐.

반주는 잔잔하고 느리게 시작됐지만.

보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허!”

아버지의 입에서 감탄사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버지를 흘끔 바라본 그는 다시 김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전 곡에선 그녀의 목소리가 밝고 명랑하고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뜨겁고 거친 감성을 자극했다. 가슴이 일렁이고 있다.

이토록 다른 감성을 다루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목소리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그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시간이 흘러 노래가 모두 끝났을 때.

아버지는 보는 사람이 다 얼얼하게 느껴질 만큼, 박수를 강하고 빠르게 쳤다.

“쟤 이름이 뭐라고?”

“김별이요.”

“김별. 김별···.”

잊지 않겠다는 듯 아버지는 김별이라는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

노래가 끝나고 비로소 시작된 인터뷰.

방청객들은 이미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기에,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들은 죄다 초롱초롱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주시죠.”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So Happy’로 데뷔하게 된 신인가수 김별입니다!”

노래를 불렀을 땐 슈퍼스타, 혹은 베테랑 가수처럼 분위기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었는데.

지금은 영락없는 신인가수였다.

시선에 따라서는 신입사원 혹은 이등병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는데 전혀 카리스마가 없어서.

“···음?”

김석희와 방청객들이 예상치 못한 그녀의 모습에 의아해하자.

김별은 그보다 수십 배는 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제, 제가 실수한 게··· 있···.”

“하하! 아니에요. 어떤 캐릭터인지 알 것 같네요. 여러분들도 딱 알겠죠? 노래할 땐 완전히 베테랑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아기 같죠? 큭큭. 진짜 무대체질인가 보다.”

“아··· 감사합니다.”

“모든 방송 통틀어서 이게 아예 첫 출연 아니에요? 근데 떨지도 않고 노래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부르시더라고요. 다들 못 보셨을 거예요. 뒤에 있는 우리 밴드 분들이 아주 그냥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어요! 제가 잘 아는 분들이거든요? 이분들이 절대 이렇게 웃는 분들이 아니에요!”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김별은 대뜸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방청객들에게, 김석희에게, 그리고 뒤를 돌아 세션들 한 명 한 명에게.

이런 모습이 퍽 귀엽게 보였는지 방청석에선 다시 한번 잔잔한 웃음 소리가 흘렀다.

“어? 이젠 김별 씨도 웃으시네요? 사람들이 귀엽게 봐주는 것 같아서 좋으신 거예요?”

“네. 너무 좋아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는 김별.

“···인터뷰를 꽤 길게 해야겠는데? 여러분들도 그게 좋겠죠?”

“네에!”

“네!”

김석희나, 방청객들이나, 스탭들이나, 세션들이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게 방송으로 나가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지게 될 거라는 것을.

< 인터뷰를 꽤 길게 해야겠는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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