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2화 (12/124)

< 어휴 한 번을 안 져줘 아주 >

GO엔터테인먼트, 특히나 1팀은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다.

이유는 하나.

유정아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그토록 저주를 퍼부었던 김유민과 김별이 이름을 알리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씨발!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윤실장에게 호통치는 이팀장의 목소리가 귀청을 두드렸다.

최이사에 이어, 본부장에게도 호출당하고 와서 그런지.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화풀이에 열을 올렸다.

‘그래봤자 바뀌는 것도 없을 텐데.’

구석에 있던 이유진은 입술에 힘을 주며 웃음을 참았다.

김별의 곡은 이미 흐름을 타버린 상태.

아예 안 알려졌다면 모를까, 한 번 알려지기 시작하니 퍼지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기만 했다.

그만큼 곡이 좋고, 가수가 좋아서 그렇다.

‘선배도 진짜 대단하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화제를 만들어버리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역시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회사가 이런 분위기가 된 데에는, 김별의 음악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고, 김별의 실력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이지 않은가.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 있던 김유민과 김별이다.

그런 이들이 유정아의 힘으로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으니 더욱더 열이 뻗칠 수밖에.

“유진 씨.”

나지막이 목소리를 낮추며 유진을 부르는 박실장.

이팀장이 아직도 윤실장에게 화를 쏟아내고 있었기에, 유진은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물었다.

“네?”

“잠시만 이쪽으로.”

박실장이 슬쩍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이유진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복도를 걷는 박실장은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이제 곧 애들 데리러 갈 시간이죠?”

“아, 네.”

“표정이 너무 불편해 보여서요. 이왕 자리 빠져나올 겸, 같이 나가면 좋을 것 같아서 부른 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크흠. 근데 오늘 퇴근하고는 뭐 해요?”

박실장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불편해 보여서 빠져나오게 해줬다면서,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유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관심을 주는 건 고맙지만, 관심을 원하지는 않는다.

특히 회사에서라면 더욱더.

‘···선배 있을 때가 좋았는데.’

선배는 항상 붙어 있는 사수이면서도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틈만 나면 재수없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수작을 부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선배가 이럴 땐 웃지 말라고 했었지?’

선배가 했던 조언에 따라, 유진은 웃음기 없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퇴근하고 집 가서 쉬려고요. 요새 너무 피곤해서요.”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레모네이드의 매니저로서, 바빠도 너무 바빴으니까.

어차피 이제 곧 나가봐야 했지만, 지금 회사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하. 그러지 말고 오늘 가볍게 맥주 한잔 할래요? 속에 묵혀 놓은 얘기 시원하게 털어놓으면 한결 편해질 거예요.”

“아뇨. 괜찮아요, 실장님. 저 내일 일찍 애들 픽업해야 하잖아요. 퇴근하면 좀 자둬야 할 것 같아요.”

레모네이드의 음방 활동이 길어지고 있었다.

음방 1위를 하고 있는 막강한 후보들이 내려갔을 때 빈집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데뷔곡 1위’라는 달콤한 타이틀은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테니까.

“아···.”

박실장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유진은 직감했다.

이제 뒤에서 싸가지없다 뭐다 신나게 욕을 하고 다니겠지.

그런데 이 또한 그다지 상관없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대충대충 설렁설렁 넘어가면 사람들이 좋게 볼 줄 알아? 아니야. 오히려 만만하게 봐. 웃고 싶지 않을 땐 억지로 웃지 마. 사람들이 싸가지없게 볼까 봐 걱정하지도 말고. 그렇게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일만 잘하면 돼. 나 봐. 일 잘하니까 아무 문제없잖아.’

이런 조언은 선배처럼 능력이 독보적으로 뛰어난 사람에게만 통하는 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꼭 틀린 조언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으니까.

‘여지 주면서 어장 관리한다는 소리 들을 바에야 잠깐 욕 먹고 마는 게 낫지.’

뚜벅뚜벅 성난 걸음을 옮기는 박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진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지금 바로 사무실에 들어가기는 꺼려졌다.

애들 데리러 나간다고 보고하려면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긴 하는데.

꽥꽥 소리 치는 이팀장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리고 있다.

결국 그냥 복도에 서 있기로 한 유진은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괜히 꺼내봤다.

“나 매니저로 써달라고 할까? 선배라면 비전도 좋을 텐데.”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유진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주머니에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일이나 해야지.

선배는 자신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유진은 무거운 걸음으로 터벅터벅 사무실을 향했다.

이제 김별 때문에 한껏 예민해져서 짜증을 잔뜩 부릴 레모네이드를 만나러 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안 봐도 뻔하지.

이팀장 못지않게 그녀들도 김별의 음원이 공개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니까.

물론, 이렇게 화제가 될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축 처진 어깨. 생기 없는 눈. 무거운 다리. 푹푹 내쉬어지는 한숨.

유진이 막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였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슬쩍 꺼내어본 유진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바로 뒷걸음질을 친 유진은 주위 눈치를 살피며 전화를 받았다.

“선배?”

-일은 잘하고 있어?

“···염장질하려고 전화했어요?”

유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걱정 없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염장은 무슨. 너, 우리 회사에서 일할래? 거기 때려치고.

비상계단을 찾던 유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건조했던 얼굴이 서서히 화사해졌다.

“음. 이런 얘기를 이렇게 전화로만 할 생각은 아니죠?”

-그럼?

“퇴근하고 한잔 하면서 얘기해야죠. 곱창에 소주 어때요? 저 좀 늦게 끝나는데 괜찮아요?”

-그래. 알았어. 퇴근할 때 연락해. 기다릴 테니까.

유진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네, 선배.”

***

“선배!”

얼굴은 물론 비율도 좋은데 글래머러스하기까지 한 이유진.

먹자거리 한복판에서 해맑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에게 쏠려 있던 주위의 시선, 특히 남자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너무 따갑다. 얼굴이 뚫릴 것 같아.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빨리 들어가자.”

“보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예요? 선배 지금 저 스카우트하려고 나온 거예요. 저한테 잘보여야죠.”

“알아, 맛있는 거 빨리 사주려고 그러는 거야.”

“음. 그런 거면 오케이!”

그녀는 가볍게 걸으며 곱창집으로 날 이끌었다.

우리가 몇 번인가 갔었던 곳.

나름 단골이라면 단골이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곱창과 술을 주문했다.

“선배, 이번에 작전 대박이던데요? 오늘 이팀장 완전 난리났어요.”

“그래? 어땠는데?”

“유정아 씨한테 전화하더니 얼마 통화하지도 못하고 전화 끊겼나 봐요. 엄청 화내고 있는데, 최이사한테 불려가더니, 바로 본부장한테 불려가고, 진짜 엄청 열받은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와서 화풀이했다니까요?”

그녀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짙어졌고,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레모네이드 애들이요. 어제까지만 해도 엄청 기대된다면서 비아냥거리더니, 아까 보니까 똥 씹은 얼굴 된 거 있죠. 그거 보면서 얼마나 고소하던지. 걔들 다 진짜 싸가지없어요. 이수진한테 물들었는지, 아니면 이수진 있다고 본성 나오는 건지, 점점 더 저를 막 하인 대하듯이 한다니까요?”

반가운 소식들이다.

절로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

GO엔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듣다 보니 곱창이 나왔고 술이 나왔다.

유진은 내 잔과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선배는요? 어떻게 지냈어요? 한 번 쫙 풀어봐요.”

난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풀어놓았다.

중간중간 “오!”, “진짜요? 대박!”, “하하! 선배는 진짜 운도 좋네요?”하며 리액션을 해주니 말하는 재미도 있었다.

어느덧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고, 우리는 이야기 보따리를 바쁘게 풀어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유쾌하게 얘기하고 있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

시간을 보니 문득 3시간이나 지나가 있었다.

“유진아, 근데 너 내일 아침 출근이라고 하지 않았어?”

“음···. 괜찮아요. 좀 더 마셔도 돼요.”

눈이 살짝 흔들린다.

자리를 끝낼 때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놀려고 만난 건 아니지.

이러다간 평범하게 얘기만 하다가 헤어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오늘 만난 목적에 대해 말을 꺼내기로 했다.

이 말을 이제서야 꺼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얘기가 너무 재밌었던 탓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 우리 회사 올래? 이제 별이도 스케줄 많이 할 거라서 나 말고도 매니저가 필요해.”

유진은 테이블에 기대고 있는 팔을 내리고 등을 의자에 기댔다.

그리고 옅게 웃는 얼굴로 거만하게 팔짱을 껴보였다.

“음. 글쎄요? 어떻게 할까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장난스러운 태도로 보아, 알 수 있었다.

우리 회사로 오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음을.

“왜 웃기만 해요? 좀 더 설득 안 해요?”

“오기 싫으면 말든가.”

“와···. 진짜 선배 가끔··· 아니 솔직히 말해서 자주 재수없는 거 알아요?”

난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고, 그녀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술잔을 들어올렸다.

“가요! 가! 어휴. 한 번을 안 져줘, 아주. 선배, 내가 가주는 거예요. 이거 잊으면 진짜 안 돼요? 알죠? 저한테 잘해야 돼요.”

나 또한 잔을 들어 그녀의 잔에 부딪혔다.

우리는 술을 시원하게 원샷하곤, 마주보며 씩 웃었다.

***

이유진은 우리 회사에 곧바로 합류하지는 못했다.

그만둔다고 해도 나처럼 바로 나오지는 못해서.

인수인계 문제도 있겠지만 이유진이 맡고 있는 레모네이드가 한창 활동기라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도 조만간이지.’

과일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서 나왔다.

별이가 있을 연습실로 걸음을 옮기는 중.

나는 습관적으로 음원 사이트에 들어갔다.

별이의 데뷔곡, ‘So Happy’의 순위는 89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89위에 오른 것은 분명 어마어마한 성과였으나.

유정아가 커버한 것 치고는 그리 대단한 성적은 아니었다.

‘원곡을 듣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렇지.’

유정아가 너무 잘 불렀던 탓도 있으리라.

굳이 원곡을 찾아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지.

그러나 원곡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무조건 원곡을 들어보라고 댓글을 달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잠깐 화제가 된 곡은 반짝하다가 쭈욱 내려가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곡은 89위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반면, 89위에서 쉽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인지도 탓.

대중들은 얼굴도 모르는 가수의 노래를 듣기를 꺼려 한다.

그래서 방송이 중요하고 인지도가 중요한 거지.

그래도 지금 상황은 엄밀히 말해, 매우매우 좋은 편이었다.

우리 노래가 대중들의 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매우 커다란 무기로 작용할 테니.

그런데, 유정아가 노래 부르는 영상의 조회수는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오르는 중이었다.

누가 키웠는지 참 인기도 많아.

새삼 그녀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 도보로 5분도 걸리지 않는 연습실.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듣기 좋은 목소리가 먼저 나를 반겼다.

구태성 선생님의 최고 히트곡, ‘그대에게’.

난 과일이 든 봉지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그녀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김석희의 아메리카노’ 출연 소식을 전했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꺅!’ 기쁨의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어서 ‘그대에게’ 커버 무대도 하기로 했다고 말하니.

눈동자에는 기쁨이 싹 사라지고, 대신 당황과 걱정만이 가득해졌었다.

‘제, 제가 선생님 노래를 한다고요? 그것도 방송에서요? 저 한 번도 연습한 적 없는데···.’

그런데 막상 연습하는 걸 들어보니 어떤가.

단지 중장년층을 노리겠다는 이유만으로 그 노래를 제안한 게 아니다.

내가 미쳤다고 덮어놓고 아무 노래나 커버하자고 했겠나.

물론 그런 사람들이 널린 게 이 바닥이긴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어울릴 것까지 예상하고 제안한 거였다.

“후우.”

노래가 끝났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나와 눈을 마주치곤 몸을 돌렸다.

집중하며 열창했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어때요?”

한 발자국 거리까지 다가와서 물어보는 김별.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게, 마치 속내를 꿰뚫어보겠다는 의도처럼 보였다.

그런데 굳이 하얀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아쉬운 부분도 없고, 너답게 너무 잘 불렀어.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겠는데?”

흔들림 없는 눈으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꽉 다물려 있던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요?”

“응.”

나는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는 비닐봉지에 있는 딸기를 꺼냈다.

요즘 딸기가 금값이더라.

그래도 별이에게 줄 생각을 하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거 먹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한 개를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입을 움직인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이 좋은지 눈매가 미소를 그렸다.

별이는 꼭 음식 먹는 방송에 출연시켜야지.

짤방과 함께 팬들도 무더기로 생길 거다, 분명.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

“사장님도 드세요.”

“먹고 있어.”

녹화까지 이틀 전.

우리는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 어휴 한 번을 안 져줘 아주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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