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배? >
김별의 집과 가까운 우리집.
나와 김별, 그리고 구서연은 어쩌다 보니 이곳에 모여 있었다.
정말 어쩌다 보니.
그녀들과 함께 데뷔곡에 대한 반응을 보려고 했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더라고.
가까운 우리집을 놔두고 연습실에서 셋이 핸드폰을 하고 있는 것도 좀 웃기고.
그래서 얼떨결에 우리집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어! 사장님 작곡하셨었어요?”
구서연은 내가 예전에 쓰던 장비들을 발견하곤 반색하며 물었다.
이는 김별 역시도 몰랐던 사실이었기에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매니저 일 시작하기 전에 잠깐. 근데 난 재능이 없어서 바로 때려쳤어.”
“와. 뭔가 의외다. 사장님은 이런 거 안 할 줄 알았는데.”
서연의 말에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묘한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슨 뜻이야?”
“아니, 그렇잖아요. 사장님 외모만 보면 완전 냉철하고 계산적이고 막 엄격한 일만 할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의외인 면이 많네요? 역시 이래서 음악을 잘 보시는 거였구나.”
어리고 순수해서 그런지, 실례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딱히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아서, 타격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잘 못 잡겠다.
“으음.”
내가 침음만 삼키고 있는데,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풉.”
김별에게로 시선을 홱, 돌렸다.
그녀는 언제 웃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
긴장감이 떨어진다.
곡이 발매되기 전까지 집안에 무거운 침묵만 흐를 줄 알았는데.
그녀들과 같이 모여 있으니, 밝은 에너지가 주체하지 못하고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음원 발매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
그러나 30분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반응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엔 유정아에게 화제의 포커싱이 맞춰질 테니까.
우리의 곡에 대한 진짜 반응을 보려면, 적어도 발매 후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는 지나야 할 터.
물론 이 또한 최소한으로 잡은 거였다.
진짜 유의미한 반응이 나오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겠지.
“얘들아. 우리 지금부터 딱 한 시간 뒤에 인터넷 켤 거니까 그때까진 미리 보는 거 금지야. 알겠지?”
난 그 이유 역시 덧붙여 설명했다.
유정아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반응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
처음엔 의아해하던 애들도 내 설명이 이어지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아, 떨려···. 진짜 유정아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아! 맞다! 근데 우리 킹갓 유정아 배우님이 우리 노래 부르는 것만이라도 보면 안 돼요?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보고 싶은데.”
서연의 말에 김별 또한 반짝이는 눈으로 조곤조곤 덧붙였다.
“커버곡은 바로 봐도 되지 않아요? 사람들 반응만 나중에 보면 되잖아요.”
뭐,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내 눈엔 선하게 보였다.
원래 하나를 보면 다음 것도 더 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너무 감질맛이 나서 아예 안 보는 것만 못하지.
발매 시간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20분, 10분, 그리고 5분.
시간이 지날수록 애들의 목소리 톤은 조금씩 낮아졌고.
말의 빈도 또한 조금씩 적어졌다.
역시 이 순간만큼은 떨리고 긴장될 수밖에 없지.
아무리 평소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더라도.
구서연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지, 계속해서 물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고.
김별은 불그스름한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그런데 떨리는 건 나 역시 비슷했다.
회사에 다녔을 때와 지금 느껴지는 심정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환경이 변했고, 주변 사람이 변했고, 내게 걸린 것이 변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렇게 마침내 오후 6시.
미리 알람을 맞춰놨었는지, 구서연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흡!”
움찔 몸을 떤 서연이 허겁지겁 알람을 껐고.
공기는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팽팽해졌다.
“사장님, 이제 올라왔죠?”
떨리는 별이의 목소리.
“그래. 음원이랑 뮤비, 그리고 정아 SNS까지 다 올라왔어.”
굳이 인터넷을 살펴보지 않아도, 내게 연락이 오고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유형중 감독님, 정아, 그리고 이유진과 구태성 선생님까지.
“그럼 이제 유정아 배우님 커버곡 봐도 되는 거죠?”
서연이가 손가락으로 컴퓨터를 가리키며 날 재촉했다.
우리는 컴퓨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세 쌍의 뜨거운 눈동자가 모니터를 뚫어버릴 듯 쳐다보고 있다.
난 익숙한 손길로 유정아의 SNS에 들어갔다.
내가 직접 찍은 영상이 가장 최근 게시물에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서연이 앉아 있는 왼쪽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데.
별이가 앉아 있는 오른쪽에서는 과연 숨을 쉬기는 하는 건지 걱정이 될 만큼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숨막혀 죽기 전에 영상을 냉큼 틀어버렸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반주와 노랫소리.
비록 별이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녀의 노래 역시 귀를 즐겁게 했다.
음악이 좋은 덕분이기도 하겠지.
“와···. 역시 킹갓 유정아 배우님! 심지어 노래도 잘하시네?”
“···연습생이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진짜 잘하시네요.”
모니터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녀들의 얼굴에서 희열이 엿보였다.
겨우 이것 가지고 그렇게도 기쁠까.
역시 신인은 신인인가 보다. 풋풋하네.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
난 그녀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인터넷을 꺼버렸다.
“으악!”
“아···!”
두 쌍의 시선이 얼굴에 화살처럼 꽂혔다.
왼쪽에 있는 구서연을 슬쩍 보니, 눈동자가 희번득거리고 있었고.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는데, 칠흑처럼 깊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당장 인터넷을 안 틀면 죽을 것 같은 느낌에, 난 아까 했던 약속을 깨버리기로 했다.
그래, 30분 뒤에 보나 지금 바로 보나, 그렇게 큰 차이가 나겠나.
인터넷을 틀자, 그녀들의 눈이 황급히 모니터로 돌아갔다.
난 다시 유정아의 SNS에 들어가 댓글들을 살펴봤다.
죄다 호평일색.
그러나 역시 내 예상대로 모든 댓글이 유정아와, 그녀의 노래 실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음악에 대한 칭찬은 가뭄에 콩 나듯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그것만으로도 기쁜 모양이다.
“어! 이거 봐요! ‘노래 엄청 좋다. 이 노래 뭐임?’ 이거! 우리 노래 진짜 좋대요! 어! 이것도! 이것도! 영어로··· 뮤직··· 어···. 암튼 우리 우리 노래 칭찬하는 걸 거예요.”
요란하게 호들갑을 떠는 구서연.
김별은 묵묵히 댓글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댓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듯 뜯어본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난 비로소 유튜브를 틀어 우리 뮤직 비디오를 찾아봤다.
조회수는 1000이 채 되지 않은 숫자가 찍혀 있었다.
댓글은 76개.
‘역시 이럴 줄 알았지.’
성급한 마음이 그녀들에게 전염되었나 보다.
난 댓글을 보려던 게 아니고, 원래 뮤비를 보려고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뮤직 비디오를 전체화면으로 틀었다.
“별이 진짜 예쁘다. 와아. 진짜 너무 예쁜데?”
“아니야···.”
“와! 이 장면도 엄청 예뻐!”
“아니라니까···.”
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소녀 같은 대화를 듣고 있자니, 웃음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서.
뮤직 비디오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지.
그녀들은 내가 리플레이를 할 때마다 잠자코 뮤비를 봤다.
하긴, 그녀들에겐 댓글만큼이나 뮤비를 보는 것 또한 신기할 것이다.
그렇게 4번쯤 반복해서 본 뒤.
난 비로소 전체화면을 끄고 새로고침을 눌러봤다.
그리고.
내 입에서 의문 섞인 탄성이 튀어나왔다.
“어!?”
조회수 5만 7천.
이마저도 쌩신인 치고 매우 가파르게 상승한 숫자였지만.
내가 놀란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다.
댓글 수.
무려 7100개라는, 조회수 대비 믿을 수 없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
기자들의 행동은 빨랐다.
음원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기사가 우후죽순 올라갔다.
[배우 유정아, “파이팅!” SNS로 처음 선보인 커버곡의 정체는?]
[정체불명의 신인가수 김별, 유정아 팬들에 힘입어 일부 음원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 등극!]
[네티즌,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노래 너무 좋다!” 차세대 여성 솔로 스타로 한 자리 예약하나?]
방송 관계자들이 이를 못 볼 리 만무.
특히나 음악 방송의 제작진이라면, 인터넷을 보지 않아도 이런 소식은 알아서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김석희의 아메리카노’의 작가 역시 마찬가지.
“유정아가 커버곡을 올렸다고?”
흥미가 생겼다.
더군다나 완전 쌩신인의 가수의 커버곡을, 음원발매시간에 딱 맞춰서 올렸으니.
호기심이 안 갈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기획사도 아닌데 이럴 수가 있나?
“그나저나 어느 정도 노래에 자신 있으니까 올린 거겠지? 그런데··· 유정아가 우리 프로그램에 나올 리는··· 없겠고.”
작가는 이미 많은 유튜브 채널에 편집되어 올라온 영상을 틀어보기로 했다.
유정아의 귀엽고 러블리한 얼굴이 썸네일에 박혀 있다.
“’낭만은 여기에’ 진짜 재밌게 봤었는데.”
오히려 가수가 아니기에 좀 더 흥미가 생긴다.
그저 가수의 곡을 듣는 거였으면 일반적인 업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건 그냥 일이지.
“···이거 뭐야?”
작가 또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유정아의 노래 실력에 놀라고.
원곡을 찾아본 뒤엔 김별에 대해 또 한 번 놀라는 일련의 과정.
다만, 음악방송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과정이 더 남아 있었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김석희와 피디, 작가들이 있는 단톡방에 이 뮤직 비디오를 공유하는 일.
기사의 링크와 더불어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가뜩이나 곡도 좋고, 보컬도 좋고, 가수의 비주얼도 좋은데, 화제까지 얻고 있으니 탐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일반적인 음악방송들의 경우, 미리 GO엔터에서 손을 쓴 상태였으나.
이곳은 그들이 손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음악방송들과는 가진 파워가 달랐으니까.
일반적인 음방을 진행했던 PD가 이 프로그램의 CP가 되고, 그 CP는 예능국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책임프로듀서 역시, 음방PD와 이 프로그램의 PD를 거치고 지금의 CP 자리에 오른 것.
예능국에서 갖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애착은 독보적이었다.
게다가 진행자 김석희 역시 90년대부터 이어져 온 레전드 뮤지션이자, 한 기획사의 수장.
세션을 맡고 있는 밴드는 이 바닥에서 내로라하는 초일류의 세션들이다.
아무리 GO엔터가 대형 기획사라지만.
김별과 김유민을 훼방 놓기 위해 회사의 사활을 걸 리는 없었다.
그렇게 작가가 단톡방에 글을 남긴 지 5분여가 지났을 때.
가장 먼저 답을 한 것은 다름아닌, 진행자 김석희였다.
[이분 섭외하자. 되도록이면 빨리.]
***
‘김석희의 아메리카노’에서 섭외가 들어온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 분명했으나.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충분히 예상했지.’
그만큼 준비가 철저했다.
음악도, 가수도, 뮤비도, 그리고 홍보도.
‘그러니 그쪽에서 섭외 전화를 안 해고 배겨?’
별이가 아예 쌩신인이라서 음악방송을 뚫어보려 했을 때, 그쪽은 시도조차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섭외를 했으니.
우리도 추가적으로 가벼운 제안 정도는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작가님.”
-네.
“혹시 커버곡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그들이 우리에게 제안한 것은 데뷔곡 무대 하나.
난 작가가 대답하기 전에 황급히 덧붙였다.
“사실 이 곡을 만든 신인 작곡가 분께서 구태성 선생님의 따님 분이거든요.”
한 번 화제가 됐다고 하여, 손에 쥐고 있는 다른 카드를 아낄 필요는 없다.
부정적인 건 빼고, 화제가 될 수 가능성이 있는 건 죄다 끌어모아야 할 때였으니까.
-어머! 진짜요? 그 구태성 선생님이요? ‘그대에게’ 부르신?
“네. 그 곡을 커버하고 싶어서요. 별이가 ‘So Happy’ 연습할 때 선생님께서 보컬을 봐주시기도 했거든요.”
유정아의 이름으로 10대, 20대, 30대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선생님과 관련된 화제라면 이제 그 이상 또한 노릴 수 있게 될 터.
이는 미미한 반응을 보였던 선생님의 SNS와는 화제의 크기부터 다를 것이다.
별이는 선생님과 아무 관련 없는 가수가 아니니까.
선생님의 최고 히트곡, ‘그대에게’.
대한민국에 사는 중장년층이라면 이 노래를 모를 리 없다.
그 말인즉슨 그들에게 어필하기에 최고의 노래라는 말과 다름없었고.
우리는 이번 무대를 기회로 삼아, 남녀노소의 머릿속에 김별이라는 가수를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이 또한 선생님의 명성을 이용하는 거였지만.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일이라 걱정이 없었다.
‘고작 이런 걸로 서연이가 찍힌다면, 우리한테 곡을 줬을 때부터 찍혔을 거야.’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어떻게든 아티스트에게 화제를 끌어 모아 성공시키는 것.
이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이었다.
마냥 쫄아서 눈치 살피기 급급한 건, 나랑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했다간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내가 그런 성격이었다면 회사를 나오는 일도 없었겠지.
-음. 괜찮네요. 그런데 지금 당장 확답은 드릴 수 없어요. 회의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괜찮을까요?
“네. 물론이죠, 작가님.”
씨익,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다.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방송 일 하는 사람 치고, 긍정적인 화제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
‘이건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고···.’
이제부터 차차 스케줄이 많이 잡힐 테니.
슬슬 나와 함께 일할 로드 매니저를 구해야 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명.
난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선배?
나를 잘 따르던 후배, 이유진.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 선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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