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잠은 다 잤네 >
별이의 예정 데뷔곡, ‘So Happy’는 밝고 산뜻하고 톡톡 튀는 팝사운드의 댄스곡이다.
댄스는 예정에 없었지만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
듣고 있으면 리듬감이 느껴지며 절로 어깨가 들썩거린다.
그런데, 지금 내 귀로 들리는 그녀의 노래는 그렇지 않았다.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부르는 유정아.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 내 가슴에 와닿았다.
리듬감도 잘 살리고 있고, 음정도 틀리지 않았는데, 어째 새로운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걸 찍었어야 했는데···.’
아쉬웠다. 곡의 특징을 잘 살렸느냐 물으면 그건 물음표였으나, 팬들이 좋아할 것 같냐 물으면 대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이 너무 잘 보여서,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난 조용히 집중하며 그녀의 노래를 감상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그녀는 지그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어땠어?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 너무 엉망이지? 그런데 사실 배우가 이 정도면 잘하긴 한 거지.”
눈에는 불안함과 기대감이 듬뿍 묻어 있는데, 입밖으로 꺼내는 목소리는 시니컬하기 그지없다.
만약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해도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 같은데.
그렇게까지 불안해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솔직히 이렇게까진 기대 안 했는데, 너 노래 잘한다. 엄청.”
“···거짓말하지 말라니까?”
별이에 비하면 보컬에 대한 스킬과 기본기는 모자랄 것이다.
구서연에 비하면 음색이 엄청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건 단지 그녀들이 갖고 있는 무기의 레벨이 너무 높은 것뿐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야. 사람이 말하면 좀 믿어. 리듬감, 발성, 호흡, 음정, 발음, 다 부족한 게 없어. 기본기도 그 정도면 탄탄한 거야. 음색도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을 건드릴 줄 아는 게 네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야.”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이야? 뜬구름 잡는 얘기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봐.”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진 눈에는 기대감만이 물씬 피어오르고 있었다.
감정을 건드릴 줄 안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난 그녀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간단한 표현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진짜 가수 같았다고. 노래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
그녀는 말없이 시선을 돌리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많이 기뻐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내 칭찬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아지길 원했고.
나는 흔쾌히 피드백을 해줬다.
배우로서 목을 단련한 덕분일까, 그녀는 연습을 길게 끌면서도 목이 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서로 만족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어때? 예쁘지? 이게 지금 신상으로 나온 거야. 아주 따끈따끈하다고.”
상체를 왼쪽으로 틀고 오른쪽으로 틀며 새로 산 블라우스를 자랑한다.
나비와 물방울이 큼직큼직하게 프린팅되어 있는데,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집에서 찍는 거라 내츄럴한 스타일이 나을 거라고 말해도 들어먹지를 않겠지.
또한, 신이 난 듯 의욕적이기도 해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오빠, 화면 예쁘게 나와? 한 번 봐봐. 에이! 이 각도 별로잖아! 잘 좀 찍어봐.”
하도 까다로운 탓에 준비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화면에 찍히는 모습을 보니, 예쁘게 나오기는 했다.
그리고, 노래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이 정도면 정말 화제가 되는 건 문제도 아니겠다.
노력한 보람이 있네.
“오빠, 이거 발매되자마자 바로 올려야 된다고 했지?”
“어. 그래야 사람들이 더 궁금해하지. 발매되자마자 커버곡 올라가면 사람들이 여러가지로 추측할 거 아냐. 궁금증이 관심이 되고, 관심이 화제가 되고, 화제가 인기가 되는 거지.”
물론 음악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사실 이 정도는 전략도 아니지. 기본이다, 기본.
“하여간 꼼수는 잘 부린다니까.”
“꼼수가 아니라 기본기라고.”
“그렇다 치고···.”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오빠는 요즘 어때? 어떻게 보면 엄청 큰 도전 아냐? 회사 나갈 때 안 불안했어?”
도전, 그리고 불안하지는 않았냐는 물음.
이런 질문을 왜 하는지 얼핏 알 것도 같아서, 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불안하기도 했는데, 기대감이 더 컸어. 나한텐 별이가 있었잖아. 얘라면 잘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거든. 그래서 요즘도 너무 좋아. 홍보 방법도 생겼겠다, 사람들 반응이 어떨지 기대돼.”
“···멋있네, 그 용기. 나도 내고 싶어지게.”
“네가 무슨 용기가 필요한 일이 있다고?”
“그냥.”
모르는 척 물었는데.
그녀는 미묘한 미소를 띠며 말을 흐렸다.
쓴웃음인지 뭔지, 그녀의 옆에 붙어 있던 나조차도 잘 구별이 안 된다.
“아 참! 그리고 나 계약 얼마 안 남은 거 알아?”
“어? 알지. 왜? 우리 회사 오게?”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내 눈이 너무 노골적으로 반짝였나 보다.
“그냥 까먹었나 해서 물어봤어.”
이거 잘하면 기대를 해봐도 될 것 같다.
아닌가?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가?
왜 계약 얘기를 꺼내서는.
괜히 사람 설레게.
‘아무튼 행복한 상상이긴 하네.’
***
이팀장은 레모네이드의 데뷔날보다 오늘이 더욱 기다려졌다.
김유민이 데리고 나간 김별의 싱글 앨범 발매일.
“이야. 눈을 씻고 찾아봐도 뜨는 게 없네, 참. 하하!”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별에 대해 검색을 해봐도 나오는 게 얼마 없다.
있다고 해봐야 기사 몇 개.
달랑 이걸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들 사이에 묻혀 티도 안 날 정도다.
구태성의 SNS에도 홍보를 하고 있었지만, 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아무리 90년대를 호령했다고 해도, 그 또한 지금의 대중들에게 있어 추억의 가수일 뿐.
그의 SNS는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이때 쓰이는 말인가?”
큭큭,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발매가 고작 2분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무소식이라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만큼 입안이 고소했다.
“팀장님, 전 김실장 잘난 척할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그렇게 오만한 애들은 현실파악을 잘 못하잖아요. 꼭 머리가 깨져봐야 그제서야 현실이 보이지.”
“크으! 역시 말 잘해. 주제 파악을 못하면 이렇게 대가리 깨지는 거야. 지금쯤 엄청 똥줄 타고 있겠지?”
뒷담화를 하니 2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음원사이트에 들어가본 이팀장은 별안간 박수를 쳤다.
메인에 보이는 ‘최신 앨범’란에도 앨범이 올라가 있지 않아서.
매일매일 쏟아지는 앨범마다 이곳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니, 무명 가수는 여기에 앨범을 띄우지 못한다.
“이거지, 이거야. 이때 소주 한잔 하면 딱일 것 같은데. 안주가 필요 없잖아? 흐흐.”
그때였다.
“어···? 티, 팀장님!”
“음? 왜?”
당황한 실장의 목소리.
불길한 예감에, 미소가 뚝 그쳤다.
“알림 울려서 봤는데··· 정아 SNS에···.”
“정아? 유정아? 정아 이름이 갑자기 왜 나와? SNS에 뭘 올렸는데!”
이팀장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실장 앞으로 헐레벌떡 다가가, 그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낚아챘다.
핸드폰을 보는 이팀장의 표정이 짧은 순간 시시각각 바뀌었다.
이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파이팅! #SoHappy #김별]
그녀가 올린 게시물은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유정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것도 지금 막 발매된 노래를.
낯설고도 신선한 모습이었지만 문제는 곡이었다.
“이게 무슨···!”
이팀장은 다급하게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끊기고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이팀장은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억누르며 물었다.
마음 같아선 버럭버럭 소리치고 싶은데, 상대가 유정아라서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정아야. SNS에 올린 거, 이거 뭐야?”
-뭐긴요. 커버곡이죠.
천하태평한 목소리에 이마가 지끈거렸다.
다시 묻는 이팀장의 입꼬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커버곡을 대체 왜 올렸냐고.”
-요새는 배우도 다양한 컨텐츠로 소통하는 시대잖아요. 노래도 괜찮게 한 것 같은데, 안 들어보셨어요?
당연히 안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게시물의 내용을 보고 바로 전화를 한 거니까.
“노래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럼요?
“···.”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화딱지가 났다.
이팀장은 고구마 100개나 먹은 듯한 답답함에 가슴을 퍽퍽 때렸다.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끊을게요.
“자, 잠깐만! 여보세요? 정아야? 정··· 이런 씹!”
씩씩, 거친 숨을 내뱉는 이팀장의 모습에.
사무실은 칼날 위를 걷는 듯 살벌한 분위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
전화를 끊은 유정아는 거실 소파에 엎드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쯧! 하여간 이놈의 회사는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어.”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SNS에 노래 부르는 걸 올렸을 뿐인데 들어볼 생각도 안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담당 연예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김유민이 처음이자 마지막.
그 말고는 죄다 연예인을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 자리를 위한, 제 위상을 위한, 그리고 제 성공과 커리어를 위한 도구.
유정아는 작게 한숨을 내뱉는 걸 끝으로, 회사에 대한 생각을 날려보냈다.
지금 가장 보고 싶고 신경 쓰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헐!!!!! 미쳤다!!!!!! 노래 왜 이렇게 잘 불러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농담 안 하고 너무 잘 부르는데? 와···.
-유정아는 진짜 못하는 게 뭐냐ㅋㅋ 연습생 출신이 맞긴 하네.
-앨범 내주세요 제발요ㅠㅠㅠㅠ 제발 앨범 내줘요~
-앨범 낼 때까지 존버한다. 근데 이 노래는 뭐임? 엄청 좋네.
턱 밑에 두툼한 쿠션을 끼운 채, 소파에 엎드려 있는 유정아.
흐뭇한 얼굴로 반응을 살피는 그녀의 다리는 위아래로 살랑살랑 기분 좋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잠은 다 잤네.”
얼마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았다.
***
웹소설 작가 김정민은 카페에 앉아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글이 너무 안 나왔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라도 자주 보던 커뮤니티를 구경하기로 했다.
“음?”
커뮤니티에 유정아의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유정아의 작품을 재밌게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이 갈 법한 제목의 게시글.
[유정아 SNS에서 노래 부름.(개잘부름 주의)(영상)]
그는 딱히 유정아의 팬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었는데.
유정아의 작품들을 재밌게 봤었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귀에 낀 이어폰에는 전설적인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Coming Back To Life’가 한 곡 반복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에 엄격한 그였기에, 웬만해선 검증되지 않은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듣고 있던 노래를 끊지 않았을 테지만.
‘유정아는 못 참지.’
팬은 아니나, 좋아하는 배우.
그녀가 부른 노래는 어떨지 궁금했다.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영상을 틀었고.
이내, 그녀가 부르는 음악에 흠뻑 빠져들었다.
방금 전까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노래 개좋네.”
배우 같지 않게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이렇게 잘 불렀으면 진작에 좀 올리지.
그녀가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오히려 서운한 마음마저 들려고 한다.
게시물에는 이런저런 내용이 많이 적혀 있었다.
쌩신인 가수의 노래.
그리고 발매되자마자 올라온 커버곡 영상.
심지어 같은 회사도 아닌 신생 회사.
이러한 사실들이 호기심을 더욱 부추겼다.
유정아가 잘 부르기도 했지만 그냥 노래 자체가 좋기도 했기에.
원곡을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김별···. 썸네일은··· 미쳤네.”
뮤직 비디오의 썸네일.
처음 보는데도 머리에 콱 박힐 만큼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린 채, 날카로운 눈매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썸네일만으로 ‘작은 호기심’이 ‘흥미로운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는 곧장 영상을 틀어봤다.
“···어?”
까만 화면이 나오고 있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것.
머리가 뜨겁고 심장박동은 빠르게 뛰었다.
꿀꺽, 침을 삼킨 그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손가락은 리플레이를 향해 저절로 움직였다.
향후 그의 ‘최애’가 될 김별을 처음 마주한 순간은.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듯이 휙, 하고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비단 그 혼자만이 겪고 있는 게 아니었다.
< 오늘 잠은 다 잤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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