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4화 (4/124)

< 아버지···. 뭐라고··· 하셨어요? >

회사를 설립하고 연습실을 구하기까지,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갔다.

회사의 이름은 ‘WE엔터테인먼트’로 정했다.

가족 같은 회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사실 그렇게까지 이름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GO엔터도 있는 마당에 이름 이니셜을 따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연습실은 우리 아파트에서 도보로 5분도 되지 않는 곳에서 구할 수 있었다.

아파트 바로 옆이 원룸촌인데, 원룸촌에 없는 게 없더라고.

성당과 교회를 합하면 무려 6개나 되고. 내가 못 본 걸 합치면 그것보다 더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중에 연습실로 사용했던 곳이 있는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인테리어도 그렇게 크게 손볼 곳이 없었다.

이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명확했다.

바로 곡을 구하는 것.

회사 설립은 둘째 치더라도, 어쩌면 연습실을 구하는 것보다 곡을 구하는 게 먼저일 수도 있었다.

김별은 이미 데뷔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칠 만한 역량이 있었으니까.

또, GO엔터에서 우리가 곡을 구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차피 수작에 넘어갈 작곡가라면 서둘러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소문이 돌기 전에 선수를 친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쪽에서 마음먹고 훼방을 놓으려 하면, 우리가 그 곡으로 무사히 데뷔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서 곡을 구하는 걸 후순위로 미룬 거다.

너무 서두르는 것도 그리 좋지만은 않아서.

“깔끔하네.”

비어 있는 연습실 가운데에 서서 빙 둘러봤다.

아직 없는 게 많고 휑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런 건 사용하다 보면 하나씩 채워지겠지.

언제나 바쁘게 울리던 내 핸드폰은 요새 죽은 듯이 잠잠했다.

기자들이나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그 충성심 높던 연예인들에게 연락 한 통이 없더라고.

회사를 나온 뒤 일어난 변화 중 하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

조금 씁쓸하기는 했으나 그리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연예인들 중 모두가 연락이 없던 건 아니었다.

딱 한 명.

[도움 필요하면 얘기해.]

짧은 톡 하나만 달랑 보낸 여배우, 유정아.

그녀는 내게 충성심을 내비쳤던 다른 연예인들과 달랐다.

연기력이 완성됐으나 작품을 잘못 만나서 몇 년간 뜨지 못했었다.

결국 내가 맡아서 그녀를 내가 띄워주긴 했으나, 그녀는 내게 충성심을 내비추기는커녕 담담하기만 했다.

언젠가는 자신이 뜰 거라고 확신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런 면모 때문인지, 모두가 외면한 내게 도움을 주겠다는 게 약간 의아했다.

‘그래도 언젠간 쓸 데가 있겠지.’

내게 좋으면 좋지, 손해 보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이름값은 이 바닥에서 가치가 상당히 높거든.

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돌렸다. 연습실을 나가서 주차한 차에 탔다.

별이한테도 연습실을 구경시켜줘야지. 이제 자기가 쓸 곳인데.

연습실을 보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굴 보는 게 며칠 만이지?”

그녀를 데리러 갈 생각에, 그 예쁜 얼굴이 문득 눈앞에 떠올랐다.

곡에 대한 생각으로 조금 초조했던 마음이 절로 든든해졌다.

그래. 급하게 갈 필요도, 지레 걱정할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 회사엔 많은 게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회사엔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게 있었다.

***

오전 11시.

김별을 데리고 연습실로 들어왔다.

혼자서 봤을 땐 썩 괜찮아 보였는데, 얘랑 같이 보니 영 없어 보인다.

GO엔터의 연습실에 비해 손색이 많아서 그렇다.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다. GO엔터에 비해 사정이 여의치 않은 건 당연했다.

나중엔 나아지겠지. 아무리 그래도 GO엔터보다 더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어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마음에 들어요.”

그래도 다행이다. 예의상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얼굴 가득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연습실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손가락으로 소파를 쿡 찔러보기도 한다.

귀여워서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얘 마음에 들면 됐지.’

지금 저 귀여운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걸 보면 후에 생길 팬들의 입가에도 함박미소가 지어지겠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걸 일일이 찍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24시간 내내 귀여울 텐데 그걸 다 어떻게 찍으라고.’

그녀는 연습실 구경을 마치고 내 앞에 섰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는지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혼자 연습할 수 있지? 나도 가끔 봐주긴 할 건데, 계속 같이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당분간 곡 구하러 다닐 거거든.”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나는 곡을 구하고, 이제부터는 솔로에 맞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마 그녀도 어려움이 많을 거다. 그동안은 그룹의 일원이 되기 위해 연습했었으니까.

이젠 목소리가 튀어도 괜찮았으며, 음악 속에서 얼마든지 날뛰어도 상관없었다.

어쩌면 이런 훈련 방향으로 인해, 그녀의 보컬이 더욱더 성장할지도 모르지.

“네, 혼자 연습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가끔 봐주시기만 한다면.”

그녀는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내가 방향을 잡아주는 대로 잘 따라올 수 있을지 미지수였으니까.

정 안 될 것 같으면 트레이너라도 구해야지. 별수 있나.

“아직 밥 안 먹었지?”

“네.”

지금 당장 연습을 시키진 않을 거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일단 밥부터 먹여야지.

이럴 땐 역시 중국집이 국룰이다.

***

짜장면과 짬뽕, 거기에 탕수육과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까지.

특별한 날이니만큼 넘치도록 시켰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넘치는 건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별은 오물오물 천천히 탕수육을 씹었다. 한껏 집중한 표정.

군만두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짬뽕은 흔적만 남았으며, 탕수육은 반 이상이 비워지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었을 때는 엄청 조금 먹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특별히 배가 고팠나?

그녀는 끝내 탕수육 몇 개만 남기고 젓가락을 놨다.

그렇게 먹었으면서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면 아직 배가 다 안 찬 걸지도 모른다.

먹은 흔적을 치우고 소화가 될 때까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에게 연습할 방향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제 솔로로 활동할 거니까 거기서 배웠던 건 반쯤 잊어버려도 돼. 솔로면 어느 정도 튀는 게 오히려 좋거든.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힐 거야. 습관이 남아 있을 테니까.”

내 말을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겠다는 듯이 경청했다.

“그러니까 노래할 때 평소보다 좀 더 오버하는 식으로 해봐. 감정을 더 넣어도 되고 기교를 더 섞어도 되고. 스스로 생각할 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불러보는 거야. 엇나가는 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앞으로 서서히 잡아가면 되니까.”

“네, 알겠어요.”

고개를 갸웃거리지도 않고 되묻지도 않는다.

충분히 의문을 표할 만도 한데.

그녀는 그저 또렷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바로 불러볼까요?”

“그래. 목은 풀고.”

천천히 목을 푼 그녀가 준비가 끝났다는 듯이 날 바라봤다.

“아무 노래나 부르면 돼요?”

“응. 부르고 싶은 거 불러. 대신 내가 한 말은 잊지 말고.”

“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곧이어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귀에 익은 가사가 들려왔다.

아델의 ‘When We Were Young’.

연습생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노래다.

보컬의 강약 조절과 음의 높낮이, 감정표현, 성량, 호흡을 모두 볼 수 있으니 실력 파악에 이만큼 좋은 노래가 또 없긴 하지.

그녀가 예전에 불렀던 것 또한 녹화했던 영상을 통해 본 적이 있다.

“Everybody here is watching you.”

그러나 여느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단지 잘 부른다, 못 부른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말을 그대로 노래에 적용해보려는 노력이 크게 엿보이고 있었다.

거리낌이 없다. 그룹으로 데뷔하기를 바라는 연습생이었다면 지적을 당해도 벌써 당했을 만한 것들인데.

연습생들 중에서 독보적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걸 그녀 자신이 나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감 넘치게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를 냄에 있어 움츠러드는 모습도, 망설이는 모습도 없었다.

내가 시켜서, 나를 믿고 충실히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녀의 노래는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입술을 움직인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떠, 내 눈을 쳐다봤다.

내가 마치 관객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내게 호소했다.

목소리의 짙은 호소력과 함께 그녀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나는 깊게 녹아들었다.

“It was just like a movie. It was just like a song.”

가사에도 나오듯, 영화와도 같았고 또 노래와도 같았다.

옛스러운 영화 연출을 보면, 캐릭터는 그대로 있되 장소만 달라지는 연출이 있다.

내가 지금 그런 느낌이다.

이곳은 연습실이 아닌 공연장. 어두컴컴하고 고요하다.

무대의 정중앙에 선 그녀의 위로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가 꽂히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노래를 이어갈수록 서서히 편안해져갔다.

행동반경을 제한하던 울타리가 사라져서 이리저리 거칠게 날뛰었던 것도 잠시.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으나, 곧 자유를 만끽하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과감하게 부르는데 부드럽게 들리기도 했고.

힘을 빼면서 부르는데 단단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내 얼굴을 보고는 더욱 짙어졌다.

내가 씨익, 커다란 미소를 짓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좋았어. 너무 잘했어.”

알아서 잘해주니,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었다.

이래서 선생님들이 잘하는 학생에게는 별로 말을 안 하나 보다.

***

그녀가 연습하는 걸 잠시 지켜보다가 나왔다.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나도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어차피 안 되겠지만··· 그래도 찔러보긴 해야겠지?”

차에 타서 핸드폰의 전호번호부를 뒤적였다.

GO엔터 실장으로서 쌓았던 작곡가 인맥은 한둘이 아니다.

우리 회사 전속이 아니더라도 외부의 작곡가들을 만나게 될 때는 많다.

난 그중에서 1지망 작곡가에게 먼저 연락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너무 예상한 대로라서 실소가 나왔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내 전화를 피하는 건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음. 여성 솔로? 에이, 나 여성 솔로 안 하잖아.

-아···. 글쎄요? 확답은 못 드릴 것 같아요. 일정이 밀려서.

-음. 잘 모르겠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하나같이 다 떨떠름한 목소리를 냈다.

이쯤 되니 화도 나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참 치졸하네.”

어쩜 이렇게 유치한 짓거리들을 잘도 하고 다니는지.

“이제··· 연락할 곳이 없나?”

대형 기획사의 입김이 통하지 않는 곳도 많다.

그들이 직접 압박할 수 없거나, 아예 압박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

이를 테면, 업계의 대선배와 같은 경우나 힙합 쪽 프로듀서들이 그렇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우리에게 곡을 줄 이유가 없다.

기성 가수들도 쉽게 곡을 못 받는 사람들인데 우리한테 주겠냐고.

“음···.”

난 잠시 그들의 연락처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헛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털었다.

내 처지를 생각 안 했네. 안 될 거라 지레 짐작하고 포기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

“해보는 데까진 해봐야지.”

정말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 모르잖아.

적어도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보다는 해보는 게 낫다.

연락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역시라고 해야 할까.

그들 또한 난색을 표하며 거절의 뜻을 밝혔다.

GO엔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별이가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쌩신인이라서.

그래서 그런지,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쉽기는 많이 아쉬웠고.

“하아. 이번이 마지막이네. 이번엔 됐으면 좋겠는데.”

90년대를 호령했던 가수, 구태성.

그에게 최신 사운드의 아이돌 음악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다.

아무리 왕년에 잘나갔다 하더라도 포크송만 하는 옛날 가수한테 어떻게 그런 걸 바래.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에 통화하는 거였다.

만약 그에게 포크송을 구할 수만 있다면, 최신 사운드를 덧입혀 데뷔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했다.

뭐가 됐든 일단 이름을 알리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포크송은 그를 따라갈 자가 없기도 하고.

별이는 다른 아이돌 그룹의 메인 보컬과는 다르다.

보컬리스트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결코 꿀리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다.

그러니 우리에겐 이 방법이 베스트는 아닐지언정, 썩 나쁜 선택지 또한 아니라는 거다.

-여보세요?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전화로 말했던 것을 한 번 더 되풀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들었던 대답과는 다른 대답을 받을 수 있었다.

-으음···. 마침 여성 솔로곡이 하나 있어요. 보내볼 테니까 한 번 들어보고 다시 연락 줄래요?

어쩐지 뜨뜻미지근한 목소리였다.

괜히 불안하게.

***

전화를 끊은 구태성은 잔뜩 성이 나 있는 딸의 방에 노크하고 들어갔다.

“서연아. 네가 만든 곡-”

구태성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

구서연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며 아빠의 말허리를 잘랐다.

“별로라고? 알아.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안 좋다는 티 내는데 그걸 왜 몰라. 아빠, 근데 진짜 이게 트렌드라니까? 아빠가 맨날 말하는, 트렌드를 따라할 생각하지 말고 트렌드를 만들 생각을 하라는 말은 누가 못 해. 아빠는 트렌드 따라서 만들지도 못하잖아. 그리고 이건 팝 가수가 부를 만한-”

시끄럽게도 조잘거린다.

그녀가 이렇게 끓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서연은 여느 때와 같이 곡을 만들었다며 들려줬다.

구태성은 음악이 끝났을 때도 팔짱 낀 채 침음을 흘리기만 했고.

그건 그 자체로 부정적인 대답이 됐다.

구태성은 딸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의 말을 뚝 끊고 들어갔다.

“어쩌면 가수가 정식으로 부를지도 모르겠다.”

“···어?”

구서연은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버지···. 뭐라고··· 하셨어요?”

< 아버지···. 뭐라고··· 하셨어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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