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2화 (2/124)

< 유얼웰컴이다 이 자식아 >

회의가 모두 끝났다.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묵묵하게 앉아있는 내 곁을 지나치며 코웃음을 친다.

양심을 판 사람들은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바치는 듯했다.

자신들은 나쁜 게 아니라 현명한 거라고, 그리고 너는 위선을 떠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충동적이었다.

최이사의 제안을 거절했던 건 둘째 치고, 방금 전에는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나선 거니까.

회의실 밖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게 마치,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떨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팀장님은 나가지 않고 한쪽에 남아 있었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개운한 얼굴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뒤에, 시원하게 쏟아낼 말을 골똘히 골라내고 있는 것 같다.

참 즐거워 보이네.

그런데, 아무래도 그 기회는 잠시 뒤로 미뤄야 할 듯했다.

“대표님께서 부르십니다.”

나는 뜨뜻미지근해진 이팀장의 얼굴을 쓱 바라보곤 몸을 일으켰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대표님이 보자 하시는데 가야지. 별수 있나.

난 대표실에 들어갈 때까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대표님을 독대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의 그림이었다. 본부장이랑 이사까지 와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뒀었거든.

그러나 난 당황하기보단 오히려 허리와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게 앉았다.

박수한 대표.

그는 연예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이번 일과는 별개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는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에선 진득한 아쉬움이 엿보였다.

“김유민 실장.”

“네, 대표님.”

“그만둘 생각인가?”

나도 모르게 눈을 끔뻑거렸다.

그만두라는 건가? 아니면 내 의중을 묻는 건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군.”

뜸을 들인 게 대답이 됐나 보다.

그런데, 어째 대표님의 눈빛에서 아쉬움이 옅어지지 않았다.

마치, 조만간 그만둘 사람이라고 확신이라도 하듯이.

“김실장이 우리 회사에 오래 다녔으면 좋겠어. 난 매니저들이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보거든. 그런데 엔터 시스템이 체계화될수록 그런 사람들이 눈에 잘 띄지가 않아. 힘들다고 죽는 소리만 하지. 최근에 본 사람들 중에는 자네만큼 괜찮은 사람이 없었어.”

“감사합니다.”

“내가 김실장 응원하고 의지하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부른 거야.”

그는 내게 위로를 건네려고 부른 모양이다.

원래였으면 복잡한 마음이 들어야 할 텐데, 이상하다.

마음이 잠잠하기만 하다.

이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대표님은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럼 가서 일 봐.”

“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이곤 대표실을 나섰다.

그리고 우리 팀 사무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이번엔 권본부장님이 직접 내게 다가왔다.

“잠깐 나 좀 보지.”

내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걸 보고 반색했던 이팀장님의 얼굴이 시들해졌다.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 양반, 오늘따라 왜 이렇게 웃기지?

나와 권본부장님이 함께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따라와 붙었다.

많은 시선들이 새삼스럽진 않았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뭔가 긴장감이 들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건 본부장실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험악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나를 찌를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권본부장.

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그는 이런 내가 마뜩치 않은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실장.”

“예, 본부장님.”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회사가 우스워?”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조금도 우습지 않습니다.”

진심이었다. 대형 기획사가 우스울 리가 있나.

내가 이 회사를 다니며 더욱더 피부로 느꼈던 거다.

이 바닥에서 ‘대형 기획사’란 치트키와 같다.

그러니, 김별을 빼고 이수진을 넣는 짓을 해도 다들 유야무야 넘어갔던 거지.

물론 내가 직접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린 보이그룹처럼, 간혹 실패하는 사례가 나오긴 하는데.

그건 예외적인 경우였다.

“김실장답지 않게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냐고. 자기 원래부터 그렇게 뜨거운 사람이었어?”

내가 전혀 위축되지 않는 것 같자 방법을 바꾼 모양이다.

본부장님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눈도 기름기를 머금었다.

참 능청스럽고 뻔뻔한 사람이다.

아마 나를 여기 불러서 한 소리 하고 있는 것도, 윗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함일 터.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었기에 사실 내게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으리라.

다만, 내가 여기서 나갈 때 분노하거나, 자책하거나, 주눅 든 모습을 보이길 바라고 있을 거다.

그에게 아쉽게 된 점은, 나는 그 뜻에 맞춰줄 용의가 없다는 거다.

얼마간 그렇게 지지고 볶았을까.

내가 본부장실을 나가려 문고리를 잡았을 때, 다급하게 튀어나온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김실장, 잠깐만.”

“예?”

“혹시 무리한 부탁이 아니면, 나갈 때 최대한 화난 척 좀 해줄 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엄청 뭐라고 한 건 사실이잖아. 어떻게 안 돼?”

대답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매우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다른 직원들도 기대한 모습이 있었나 보다.

내 얼굴에 꽂힌 시선들이 이내 못마땅하게 바뀌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이 대부분 바뀌어버렸다.

원래 이렇게 한심하고 역겨운 사람들이었나 싶다.

나는 우리 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핸드폰을 꺼내어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본부장실에 있을 때 쉴 새 없이 울려댔는데, 모두 내가 맡은 연예인들에게 온 연락들이었다.

얘네도 혹시 저 직원들처럼 얼굴을 바꾸려나?

혹시 모를 일이다.

“야 인마! 빨리 안 들어와!?”

아직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친히 나를 마중 나온 목소리.

내가 오기를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이팀장이었다.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는데, 안색이 밝다.

“푸훕.”

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회의실에서 미친 짓을 하고, 대표님, 그리고 본부장과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저 사람을 보게 되니.

영 하찮게 느껴진 탓이다.

가뜩이나 시선이 쏠려 있던 상황에서 웃음을 흘렸기 때문일까.

주변의 소리가 뚝 멎었고.

이팀장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슬슬 체감이 되고 있다.

대표님이 왜 나를 금방 그만둘 사람처럼 바라봤는지.

‘이제 여기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네.’

유감스럽지는 않다. 조금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그런 일만 없었어도 환경이 이렇게 바뀌진 않았을 텐데.

‘그런데··· 이제 뭐 하지?’

콧김을 뿜어내며 뒤뚱뒤뚱 다가오는 이팀장.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내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멈추고 말았다.

“김실장, 왜 그러고 서 있어? 이제 퇴근할 시간 아니야?”

최이사.

그가 여상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던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마치, 아는 얼굴을 우연히 마주쳐 의례적으로 말하듯이.

그리고 그게 내 속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위로를 건네던 대표도, 지지고 볶던 본부장도, 이때다 싶어 화를 내던 이팀장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저 태연자약한 최이사의 모습이 몹시도 눈에 거슬렸다.

내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최이사.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마찬가지로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집안에 축하할 일이 생겨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이사님.”

그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복도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에 사로잡혔고, 아무도 쉽사리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그 가운데, 나는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서로가 참 자랑스럽겠어요. 부럽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집안인 것 같아서.”

그의 몸이 내게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본 누군가가 헉, 하고 숨 삼키는 소리를 냈다.

그럴 만했다.

눈동자는 아슬아슬하게 번들거리고 있었고.

악 다물어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턱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분위기를 풍겨대던 그는.

이내 기계적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김실장.”

이래서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닌가 보다.

최이사가 저렇게 눈이 돌아간 건 또 처음 보네.

하지만 나는 이에 아랑곳않고.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별 말씀을요.”

유얼웰컴이다, 이 자식아.

***

‘김별 연습생은 메인 보컬로서 굉장히 좋은 원석입니다. 지금까지 갈고 닦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더 크게 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엄청 잘했어요. 아주 즐겁게 봤습니다.’

김별은 마법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데뷔조에 확정된 게 아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긴 했지만, 그래도 요 며칠간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연습실에서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해도 눈앞에 팬들이 응원봉을 흔드는 게 보이는 것 같았고.

음악의 중간중간 환호하기 바쁜 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 데뷔가 코앞이다.

그것도 메인 보컬.

그간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인정받는다는 게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그 뒤에 따를 데뷔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인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쁘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렇게 기뻐하는 자신을 비웃듯이, 꿈은 단 한 순간에 바닥으로 처박혀버렸다.

“별아, 아쉽게 됐어. 그래도 넌 재능이 있으니까 다음엔 꼭 데뷔할 수 있을 거야.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 알았지?”

사실 뒤에 붙은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쉽게 됐다는 말이 머릿속에 커다랗게 박힌 탓이다.

데뷔조 탈락.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면서 내심 확신하고 있었는데.

김별의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제 뜻과 달리 눈앞은 그렁그렁 맺힌 눈물 때문에 흐릿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이수진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분명히 후보에도 거론되지 않았던 이가 갑자기 최종 데뷔조에 들었는데.

놀라는 기색이 없다. 미리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유롭게 결과를 만끽하고 있다.

‘아.’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구나.

김별은 뒤늦게 깨달았다.

충격적인 결과 때문에 눈치 채는 게 느렸는데, 다른 이들의 머리는 더 빠르게 굴러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서로 듣기 좋은 말을 해주었던 멤버들이 어느새 이수진의 주위에 몰려가 있었다.

예비 데뷔조조차 들지 못했던 연습생들은 김별을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소하다는 듯 희미한 웃음을 짓기도 했고, 아예 대놓고 키득거리기도 했다.

아무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김별은 그렇게 홀로 외딴섬처럼 서 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김별은 연습실을 뛰쳐나가며 달라붙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당장 숨고 싶었다. 하지만 화장실이나 눈앞의 비상계단은 숨기에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온 게 아닌 척, 다른 연습생들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으니까.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한 곳을 발견하고 그쪽을 향해 뛰어갔다.

신인개발팀 사무실 앞 비상계단.

여기는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다.

김별은 그곳에서 숨죽여 울었다.

이제 다음은 없었다. 이대로 끝.

이제 이곳에서 데뷔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다른 기획사 역시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었다.

확신했던 데뷔가 무산돼서 그런지, 김별의 머릿속엔 온통 부정적인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현실을 파악하길 얼마.

꽉 닫히지 않은 비상문 틈새로 신인개발팀 직원들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과장님, 김유민 실장이요. 대표님이랑 본부장님한테 끌려간 거 들으셨어요?”

“뭔 뒷북이야. 이미 최이사랑 복도에서 한 판 끝냈구만. 아주 살벌했다더라. 하여간 겁대가리가 없어가지고. 쯧.”

“헐! 진짜요? 이 바닥 뜨려고 하나?”

“그렇겠지. 그러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지. 아니, 지가 뭔데 김별을 넣으라 마라야? 회의실에서 아주 미친놈인 줄 알았다니까?”

무릎에 파묻었던 고개가 번쩍 들렸고, 귀가 절로 곤두세워졌다.

김별은 혹여 작은 소리라도 날까 싶어 몸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숨까지 낮게 쉬며 이어지는 뒷담화를 모두 들었다.

꽉 깨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꾸역꾸역 목으로 넘겼다.

외딴 섬에 혼자 남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딱 한 명이 더 남아 있었다.

< 유얼웰컴이다 이 자식아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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