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화 (1/124)

< 그 얼굴을 보는 게 아니었어 >

학창 시절 내내,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명곡을 들으면 심장이 뜨겁게 뎁혀졌다.

나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을 가득 채웠으며,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충만했다.

하지만 나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동시에, 현실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유민아, 음악은 취미로 하는 게 어떻겠니?”

작곡을 배우고 있던 학원의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열정적인 선생님이었다. 학원에 들어온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그래서 반대로 더 선생님의 말에 더욱 신뢰가 갔다.

이 사람은 나한테 장사해야겠다는 마음보다, 내 미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더 컸다는 게 느껴졌다.

사실 내게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다만 애써 외면해왔을 뿐이다. 천재가 아니더라도 수재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며.

그러나 그 또한 헛된 희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꾸었다.

가슴이 시키는 걸 완전히 외면하지 않는 선에서, 이 차가운 머리를 활용해보자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매니저로서 승승장구의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김실장!”

복도를 걷던 중, 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외침이 들려왔다.

우리 GO엔터 매니지먼트1팀의 팀장이자, 내 직속 상사.

이팀장님은 자켓 안에 몸의 태가 드러나는 얇은 상의를 입고 있었다. 불룩한 배를 씰룩이며 내게 다가왔다.

“김실장, 아직도 안 들어가고 있었어? 너 프로젝트에 껴준 거라니까? 미리 가서 뭐라도 좀 거들고 있지. 그리고 오늘은 제발 표정 좀 풀고 들어가. 응? 하하! 내가 누누이 말했지? 매니저는 웃는 얼굴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연습생들이 네 얼굴 보면 무서워서 제대로 실력 발휘라도 하겠어? 큭큭.”

유들유들 휘어진 눈매. 살 때문에 실처럼 보이는 눈동자는 음험한 빛을 띄고 있다.

이팀장님은 습관적으로 내게 면박을 쏟아내면서도, 말끝에 웃음을 주며 자신의 말을 농담으로 포장했다.

내가 보통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내 속은 지극히도 뜨거운 열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니저에는 재능이 있더라고.

대형 기획사에 신입 로드 매니저로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도통 인기를 얻지 못 하고 있던 보이그룹을 천천히 띄우기 시작했고.

지금에 와선 그룹의 멤버 한 명 한 명이 모두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매니지먼트의 재능은 가수 쪽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나는 배우들도 맡았다. 그리고 내가 맡은 뒤로 한두 작품만에 대중들에게 이름을 널리 퍼뜨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말인즉슨.

“표정은 상관없던데요, 팀장님.”

내 표정이 어떻든 업무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는 말이다.

또박또박 내뱉는 말에, 이팀장님의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누가 봐도 욱한 모습이었으나, 그가 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록 직급은 내가 이팀장님보다 낮았으나.

나는 회사에서 이팀장님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었으니까.

내가 지금 이팀장님한테 이렇게 대한다고 하여, 누구에게나 싸가지없게 행동하는 건 아니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의 속담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손님이 푸줏간 주인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고기의 양이 달라진다고.

‘저건 이 서방이 주는 한 근이고, 그건 돌쇠 놈이 준 한 근이라서 그렇소.’

나 또한 그랬다.

나한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거지.

또한, 비굴하게 굴지 않아도 될 만한 능력을 가졌는데 굳이 숙여줄 이유가 없다.

나는 입꼬리를 파르르 떨고 있는 이팀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휙, 몸을 돌렸다.

이제 신인 걸그룹 ‘레모네이드’ 프로젝트의 최종 평가에 들어갈 시간이다.

평가단 중에 내 이름도 들어가 있거든.

이팀장의 이름은 없었고.

***

내가 아예 표정이 없는 건 아니다.

‘보통’ 그럴 뿐이지.

지금 같은 경우엔 내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르곤 했다.

준비한 모든 걸 보여준 뒤, 차렷 자세로 굳어 있는 6명의 소녀들.

아직 데뷔조로 확정되지 않은 예비 데뷔조의 멤버들이었다.

그리고 내 시선은 이 여섯 명의 소녀들 중에서 한 곳에 머물렀다.

‘김별.’

여기 있는 여섯 명의 멤버들 모두 예비 데뷔조가 되기까지 내 입김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기록된 영상들과 거기에 첨부된 평가지를 하나하나 봐가며 뽑았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김별은 더욱 특별했다.

“김실장?”

고개를 돌리니, A&R팀장님이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내가 말할 차례구나.

깜빡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대표님과 이사들, 그리고 우리 회사의 중추가 되는 수많은 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는 가운데.

나는 마이크를 들고 내 평가를 담담하게 말했다.

“다들 지금까지 너무 잘해줬습니다. 자랑스럽네요. 그리고 특히, 김별 연습생.”

“네···!”

무표정일 땐 사나워 보이는 고양이상의 얼굴, 뭘 입어도 태가 나는 성숙한 몸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과한 긴장 때문인지, 퍽 귀여워 보였다.

입은 꽉 다물려 있었고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다.

확실히 재능과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아이돌로서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사람이다.

“김별 연습생은 메인 보컬로서 굉장히 좋은 원석입니다. 지금까지 갈고 닦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더 크게 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려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구태여 한마디를 덧붙였다.

“엄청 잘했어요. 아주 즐겁게 봤습니다.”

주변에서 작은 소음이 뒤따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게 결코 흔치 않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난 주위에 관심을 쏟는 대신, 김별만을 눈에 담았다.

덜덜 떨리고 있는 다리는 여전했지만, 긴장을 머금고 있던 눈매는 부드럽게 풀어지고, 꽉 다물려 있던 입술은 산뜻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나운 고양이상의 얼굴로, 어떻게 저렇게 순둥순둥한 아기 같은 얼굴이 될 수 있는지···.

정말로 너무나 많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

그렇게 최종 평가가 끝나고 퇴근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내 핸드폰 화면에 최이사님의 이름이 떴다.

“전화 받았습니다, 이사님.”

-저녁 약속 없으면 같이 먹을까?

개인적으로 부르는 모양인데, 왜 부르는 걸까.

하필 이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최이사님이.

스멀스멀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최이사님의 조카 이수진.

그녀는 3개월 전에 우리 회사의 연습생으로 들어왔다.

어려운 퍼즐도 아니다.

단 세 피스 정도 되는 아주 간단한 퍼즐.

머릿속에서 퍼즐이 완성되려는 걸, 난 애써 흩트리며 회사 밖으로 나갔다.

최이사님이 나를 이끈 곳은 룸의 형태로 된 한정식 가게.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이사님과 소주 한잔을 마시자마자 입을 열어 물었다.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역시 직설적으로 물어보네. 김실장다워. 그럼 나도 김실장처럼 직설적으로 대답해주는 게 좋겠지?”

지극히 여유로운 태도와 목소리.

망설임 한 점 엿볼 수 없었고, 걱정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최이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부탁할 게 있어.”

“부탁이요. 이사님께서 실장인 저한테.”

정말 부탁일까.

아니면 부탁 아닌 부탁일까.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다.

“김실장한테 직급은 아무 의미 없는 거 우리 회사에서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하.”

말끝에 웃음을 붙인 건 아까의 이팀장님과 같았으나.

다가오는 무게는 그것과 천지 차이였다.

나는 소주를 내 잔에 따르고, 입안에 천천히 털어 넣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상했던 그 부탁을 듣는다면, 난 어떻게 하지?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작지 않은 위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를 부른 걸 거다.

내 담당이 될 애들. 내가 고른 아이들.

그리고··· 잘만 하면 내가 다시 바꿀 수 있는 아이들.

최이사님의 부탁이 정확하게 무엇이냐에 따라, 난 수락에 무게를 둘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회사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긴 하나, 순조롭게 일하고 싶은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니까.

작곡가를 포기하고 매니저로 뛰어든 결정처럼.

이번 역시 차가운 머리를 따라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런 부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김별 대신 수진이를 넣어보면 어떨까?”

심장이 덜컥였다.

걱정했던 최악의 경우의 수를 아주 태연하게도 입에 담는다.

“···굳이 김별을 빼야 하는 겁니까? 이 팀의 핵심이 될 멤버··· 아.”

핵심이 될 멤버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뺀다는 거였다.

어차피 GO엔터 같은 대형 기획사에서 신인 걸그룹을 낸다면 성공엔 그리 큰 문제가 없을 테니까.

김별이 아닌 다른 멤버들도 대형 기획사의 날고 기는 연습생들 사이에서 몇 년 동안 훈련하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실력이 있다.

무엇보다 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뽑은 애들이다.

아무리 김별을 받쳐주기 좋은 멤버들을 뽑았다지만, 재능이 없었으면 그 안에 들지도 못했지.

그런데 만약.

김별과 이수진이 한 그룹에 같이 들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핵심이 될 김별과, 이제 막 연습생이 된 지 3개월이 지난 이수진.

그 둘은 단지 노력과 재능의 차이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압도적인 비주얼의 김별.

예쁘장하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주얼의 이수진.

심사평을 듣는 잠깐 사이에도 다양한 매력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스타성을 가진 김별.

지나가는 일반 여학생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이수진.

더 이상 비교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물론 대형 기획사에서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스타가 될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아무런 포장도 없이 스타가 될 수 있을 만한 떡잎이 옆에 붙어 있다면, 대중들의 관심은 한 쪽으로 쏠리게 될 것은 자명했다.

“···.”

“···.”

우리는 서로의 눈을 꿰뚫듯 바라봤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는 듯이, 최이사님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느긋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이곳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혼자 잔을 채우고 수저를 움직였다.

나는 최이사님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도, 수저를 손에 쥐지도 않았다.

그저 심장과 머리를 양쪽에 매단 저울이 한 쪽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었다.

뭐라도 말을 더 해주면 좋겠는데, 그는 답답해서 말라죽어보라는 듯 식사에만 열중했다.

탁.

최이사가 수저를 내려놓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입가를 닦은 냅킨도 테이블 위에 놓였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난 거다.

이제 대답을 할 때라는 듯, 최이사는 나를 무심한 눈으로 재촉했다.

“저는···.”

아직 대답이 결정되지 않은 채로 입부터 열었는데.

입이 열리자마자, 저울의 무게가 한 쪽으로 확! 하고 기울어졌다.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팀장이 싫어하는 예의 그 무뚝뚝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식사 맛있게 했습니다.”

최이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꿈틀댔다.

난 물끄러미 그의 시린 눈빛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김별을 메인 보컬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얼굴을 보는 게 아니었어.’

픽, 하고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저울이 한 쪽으로 쏠린 이유.

내 칭찬을 듣고 아이처럼 웃었던 김별의 얼굴이 떠오른 탓이었다.

역시.

김별이 데뷔만 하면 팬들을 쓸어모으는 건 일도 아니겠다.

“나도 이러는데···.”

***

현실은 내 머리처럼 차가웠다.

GO엔터의 창립멤버이자 대표님의 오른팔 격인 최이사.

그의 부탁 아닌 부탁을 따랐어야 했나 보다.

분명 나도 프로젝트 담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텐데.

나는 그날 이후로, 이 프로젝트에 조금도 관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다.

대회의실 스크린에 띠워진 여섯 개의 프로필.

김별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다른 얼굴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최이사의 조카 이수진.

그녀가 아주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 모인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오로지 내 눈에만 저 사진이 보이는 모양이다.

대표와 이사들은 물론,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저는 이수진이 아니라 김별을 넣는 게 맞다고 봅니다.”

“···!”

“···!”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

순식간에 차오른 긴장감은 천장을 뚫기 직전이었다.

나는 들끓는 눈으로 좌중을 쓸어보았다.

“하아···.”

“미친놈.”

당황하는 이들, 놀란 이들, 멸시하는 이들,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이들까지.

모두의 시선이 내 얼굴에 화살처럼 꽂혔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딱딱하게 굳은 최이사의 얼굴을 발견하고, 보란 듯이 미소 지었다.

여태까지 회사에 다니던 중 가장 시원스럽게.

< 그 얼굴을 보는 게 아니었어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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