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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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낙옆이 짙게 깔린 오후를 밟고 극락사의 산문으로  향했다. 

해는 어느새 서천 하늘로 조금씩 질 기미를 보였다. 극락사의 산문으

로 오르는 길은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지 않고 너른 관도 같이  되어 

있어 이륜거를 밀고 올라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세 일행이 산문

으로 다가가자 산문에 있던 두 승려가 천천히 내려와 합장 반배했다.

  

  "아미타불. 지금 본사에서는 경전연구가 한창인지라 일반 향화객은 

받지 않습니다. 향화를 하시려거든 옆의 보광사(寶光寺)나 천불사(千

佛寺)로 가시지요."

  

  이륜거에 앉아 있는 혈종  악구패는 천천히 오대산  극락사(五臺山 

極樂寺)라고 씌어진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극락이라. 천상은 서른 세 개의 대 극락이 있는데 이  사찰에서는 

어느 극락을 가려고 서원하고 계시오?"

  

  두 승려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륜거에 앉은 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머리를 단정히 묵어 올렸는데 왼쪽 눈에는 안대가  씌워

져 있었고 두 다리가 있는  곳에는 백호피가 이들의 시선을  가렸다. 

두터워 보이는 오른손만 이륜거의 팔걸이를 잡고 있었다. 혈종  악구

패는 두 승려를 보며 보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과거칠불'(過去七佛:석가여래 전에 세상에 왔다고 전해지는 

일곱 명의 부처.)께 '예배'와 '공양'을 바치고자 합니다."

  

  두 승려는 합장 반배했다.

  

  "미래의 대자비자인 미륵에 지금 일십합장하여  귀의합니다.('汝等

今當一心合掌, 歸依未來大慈悲者')" 

  

  이 두 문구는 {미륵하생성불경}과 {미륵대성불경} 에 나오는  문구

로 사리불이 석가불에게 어떻게 하면 미륵불을 만날 수 있느냐고  하

자 석가불이 대답해 준 구절이다. 이는 백련교도들이 서로를  확인하

는 첫 암호로 사용했다. 

  

  악구패는 계속 암호를 이어갔다.

  

  "평마군사(平魔軍司)께서는 출세하셨습니까?"

  

  두 승려는 얼굴을 굳히고 한 말을 더했다.

  

  "새로운 부처가 세상에 나와. (新佛出世)"

  

  "오래된 마귀를 제거하리라. (除去舊魔)"

  

  "몇 되의 쌀을 불전에 올리셨나이까?"

  

  "무량(無量)은 되지 못하나 아승가는 넘나이다."

  

  무량은 교주를 뜻했고 아승가는 교의 장로의 신분을 말했다.  장로 

이상이라면 사대교령과 좌우 양사 뿐이었다. 두 승려의 얼굴이  파리

해 졌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빈승의 배움이 얄팍하여 더 상대해 드릴  수 

없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뎅뎅뎅. 

  

  극락사에서 울려펴진 때 아닌 범종소리에 새들은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고, 선방에서 공부를 하던 학승들은 물론 장작을 하고  저녁공양

을 준비하던 불목하니까지 모두 몰려 나왔다. 어린 사미승은 무슨 일

인지 몰라 청장년 스님들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극락사 주지인 법천대사는 황색가사를 걸치고  대웅보전(大雄寶殿)

으로 향했고 장로들도 사방에서 나와 대웅보전으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승려들이 대웅보전 앞 도량에 모여 산문을  쪽

을 내려다 봤다. 피보다 붉은 노을을 타고 올라오는 이륜거를 유심히 

바라보는 법천대사는 누구를 떠올렸는지 속눈썹을 가늘게 떨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법천대사 좌우에 도열한 장로들도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들은  남

천교령과 좌사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대웅보전 앞 광장에 도달한 혈종 악구패는 오른 손을 가슴에  끌어 

올려 반배를 했다.

  

  "오랜만이오. 서천교령."

  

  법천대사도 합장 반배를 했다.

  

  "살아 계셨구료. 남천교령."

  

  남천교령이라는 말에 혈종 악구패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독왕 

역상은 가볍게 합장하며 미소를 띄었다.

  

  "서천교령께서는 이 좌사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료."

  

  좌사라는 말에 청장년 승려들이 큰 파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무림

삼왕 중 일인인 독왕 역상의 명성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

다. 왜냐하면 독왕 역상이야 말로 전 무림과 교의 배덕자들을 공포에 

떨게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법천대사는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진정시키며 합장했다.

  

  "좌사께서는 더욱 헌앙해지신 듯 합니다."

  

  "예전에는 내가  열반호법파였고, 서천교령께서  미륵귀의파였는데 

오늘에 와서는 같은 열반호법파가 되었구료."

  

  "그때는 아직 평마군사가 나지 않았던 때고, 지금은  평마군사께서 

나셨으니 전 교도가 그 분의 명을 받들 밖에요."

  

  "용화삼회(龍華三會)에서는 허락이 내려졌습니까?"

  

  "서천교령께는 알리지 못했는데 제가 당대 용화삼회를 주관하고 있

습니다."

  

  "사대 교령 중에 세 개 이상 찬성해야 용화삼회가 인증 받는  다는 

걸 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서천교령을 제외한 전 교령이 모여 저를 인정해 주었

습니다."

  

  "그럴리가요. 동천교령께서는 서천교령을 용화삼회의 주재자로  인

정하지 않으셨는데요."

  

  "무슨 말씀을……. 제가 직접 뵙고 하교를 받았는데요."

  

  "하하하 그래요. 헌데 어쩐다. 제가 남천교령과 동천교령을 가지고 

있는데요."

  

  "남천교령은 몰라도  동천교령은 여기에  있으니 허언하지  마십시

요."

  

  독왕 역상이 한 걸음 나섰다.

  

  "서천교령. 거짓 교령으로 교도를 속이고 사리 사욕을 채운 자들을 

어떠한 형벌에 처하는 지 알고 있소?"

  

  법천대사의 후덕한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십삼형."

  

  "덕조가 가짜라는 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천교령은 눈치  챘으리

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었소?"

  

  청장년 승려들은 여기저기서 다시 웅성댔다. 법천대사는 눈을 반개 

한 채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텄다.

  

  "북천교령의 능력은 하늘과 땅을 뒤엎을 정도요. 두 분이 너무  늦

게 나오셨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장년  승려들이 뒤로 물러나고 중무장한 

무승 수백 명이 전면에 도열했다.  번쩍이는 계도와 구환대도, 방편

산, 낭아봉이 첨예한 살기를 뿌려댔다. 

  

  법천대사는 허리를 쭈욱 피며 어깨를 넓혔다.

  

  "평마군을 호령할 십주보살들입니다."

  

  혈종 악구패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법 강단있게 키운 것 같군."

  

  "지금이라도 두 분께서 평마군사를 받들겠다면 제가 선처를 부탁드

려 보지요."

  

  "서천교령께서는 진정으로 지금이 호법을 위해 오계를 파계하고 구

마(舊魔)를 살진(殺盡)하여 용화세계를 열 때라고 보십니까?"

  

  "명은 천의를 잃었으니 곧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혼란을  최

대한 빨리 수습하여 용화세계를 압당기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

입니다."

  

  "그럼 이것만 있으면 미륵불께서 하생하시겠군요."

  

  혈종 악구패는 손바닥만한 원형  붉은 옥패를 꺼내들었다.  옥패의 

전면에는 동자가 씌어져 있었고 뒷면에는 령이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중인들의 시선이 모두 그 옥패에 머물렀다. 동천교령의 신분

영패였다. 

  

  "사대교령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 미륵께서 가람보살도 위를  춤추

리라. 교전 제 삼장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삼대 교령이 모였다면 

남은 것은 이것 하나. 자 이것을 바친다면 미륵께서 가람보살도 위를 

춤추신다는 미륵산화공덕무를 볼 수 있겠네요. 이 공덕무를 보게  된

다면 교도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법천대사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법천대사의 좌측에 있는 장로  법

해대사가 한 걸음 나섰다.

  

  "두 분께서 너무 늦게 나오셨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십니까?"

  

  "그대는 누구인가?"

  

  "교의 집법전을 맏고 있습니다."

  

  법해대사의 턱짓을 신호로 장로들이 법천대사 앞으로 나섰고  무승

들도 전면으로 나섰다. 학승들은 뒤로 더 멀찍이 물러났다.

  

  혈종 악구패의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너희들은 교도인가? 문도 인가?"

  

  "교와 문 모두 지금은 북천교령께서 장악하고 계시오."

  

  혈종 악구패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피라도 

한 바탕 퍼부울 것 만 같았다.

  

  "살진이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혈종 악구패의 시선이 법천대사를 강력하게 

쏘아보았다. 법천대사는 그 시선에 주춤거리며 두 발짝을 물러났다.

  

  "서천교령. 무슨 영화를 누리자고 교의 성덕을 저버린 것인가.  그 

억겁의 죄악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법천대사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오직 교를 위해 이 한 몸을 바쳤을 뿐이오."

  

  독왕 역상이 차갑게 냉소를 지었다.

  

  "흥. 진정으로 교에 잘못이 없다면 미륵불께 참회하고  삼원(三願)

을 외워봐라."

  

  삼원이라는 말에 법천대사를 비롯한 장로들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법해대사가 분위기를 일신 하고자 냉소를 터트렸다.

  

  "삼원을 외우는 건 좌사부터 해야 할 것 같소."

  

  독왕 역상은 서천을 향해 반배를 하며 정갈한 목소리로 삼원을  낭

창했다.

  

  "용화세상이 올 때까지 오늘의 이 신심을 잃지 않겠나이다. 세상의 

모든 마겁(魔劫)이 이 한 몸으로  몰려온다 하여도 정법을 수호하리

다. 미륵께서 세상에 내려오실제 이 몸을 불살라 길을 밝히리다."

  

  독왕 역상의 낭창이 끝나자 혈종 악구패도 서천을 항해 오른  손을 

들어 반배했다. 혈종 악구패의  낭창이 끝나자 법해대사는  심호흡을 

하고 코웃음을 치며 서천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던 법해대사

의 고개가 턱뼈를 안으로 당기며 앞으로 살짝 숙여졌다.  법해대사는 

눈을 빠르게 굴러가며 좌우 장로들을 바라봤다. 순간 장로들은  악귀

라도 본 듯 좌우로 분분히  흩어졌다. 청장년 승려들은 왜  장로들이 

깜짝 놀라는 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법해대사와 장로들을 바라

봤다.

  

  법천대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 십삽형."

  

  독왕 역상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자 어서 모두들 삼원을 낭창해 보시지. 과연 선조영령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는 지 어디 봅시다."

  

  뚜둑. 

  

  법해대사의 머리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뒷통수가 약간  높

게 솟아올랐다. 그와 함께 턱뼈가 목안으로 파고 들어갈 듯이 당겨졌

고 양쪽 관자놀이가 팽팽히 부풀어올랐다. 법해대사의 광대뼈가 살짝 

나오는 듯 하더니 안으로 조금씩 함몰되어갔고 앞이마는 앞으로 조금

씩 튀어 나왔다. 법해대사의 두  눈은 점점 붉게 충혈되어  금새라도 

피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장로들은 일제히 서천을 향해 오체 투지 했다. 

  

  뚜거덕 뚜거덕. 

  

  거친 격타음에 모두들 몸을 떨 뿐 아무도 감히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법해대사의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더니 목뼈가 뒤로 푹 꺽

였다. 앞에 보이는 울대가 두 배로 늘어 난 듯 느껴졌지만 아직 살아 

있는 듯 손과 발이 푸들푸들 떨었다. 뚜구득. 격한 이탈음과 함께 손

톱이 앞으로 빠져 나오며 손가락이 조금씩 작아졌다. 그와 함께 팔목

이 부풀어올랐다. 

  

  독왕 역상은 법해의 앞에 다 달았다. 

  

  "법해. 죄를 고하고 자비로운 죽음을 청한다면 좌사의 권한으로 즉

결 처분에 처해주겠다."

  

  휙 법해의 목이 뱅글 돌더니 가래가 끓는 듯한 탁한 저음을 냈다.

  

  "자 자비를……."

  

  독왕 역상의 손이 가볍게 법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순간  법해는 

한 줄기 물이 되어 폭포수처럼 쏱아져 내렸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

어 오르자 무승들은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도 법천은 그 자리

에 못이 밖힌 듯 움직일 줄 몰랐다.

  

  '여기만 빠져나간다면……. 태원까지만 갈 수 있다면. 그곳에 평마

군이 있다.'

  

  법천대사는 그런 생각을 계속 했지만 발을 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는 좌사가 있는 것이다. 독왕 역상이 천하  무림인들에게 

무한한 공포를 주었다지만 그건 배교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독

왕 역상이 방금 펼친 십삼 형도 일반 무림인들에게는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교의 형벌은 십삼 형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십삼형은 장로 이하의 교도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장로  이상의 

신분에는 저 십 삼 형보다 더 끔찍한 형벌이 존재했다. 지난  백년간 

지상에 펼쳐진 적은 없었지만.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시 자신이  그 

백년 내의 첫 대상자가 될 것이다.

  

  독왕 역상의 눈이 파랗게 빛이 났다.

  

  "미륵 성불상은 어디에 모셔 두었나?"

  

  순간 법천의 눈이 반짝였다. 교권의 상징인 미륵 성불상은  교주의 

신물. 당연히 모든  권한에 우선한다.  용화삼회의 출현을  제외하고

는……. 그 미륵 성불상은 지금 자신의 수중에 있었다. 

  

  법천은 뒤로 몇 장을 날아가며 왼쪽 가사자락을 부풀렸다. 

  

  "네가……."

  

  독왕 역상은 경악한 눈으로 법천을 향해 손을 뿌렸다. 자홍색 기류

가 법천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순간 왼쪽 가사자락이  찢어지며 

일척 길이의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살아 있는 사람 인양  앞으로 

나왔다. 독왕 역상은 숨을 들이키며 손끝을 비켰고 자홍색 기류는 법

천을 스쳐 대웅전의 기둥에 밖혔다. 

  

  대웅전 기둥에서 흐르는 검은 액진에 법천은 등에 흐르는 식은땀을 

잊으며 바로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높이 들었다.

  

  "꿇어라." 

  

  순간 거짓말 같이 독왕 역상이 그대로 오체투지를 했고 혈종  악구

패도 이륜거에서 몸을 날려 한  손으로 땅을 집고 이마를  조아렸다. 

백호피가 그의 허전한 하체를 가려주었다. 

  

  창왕 언무외, 귀왕  허약무와 더불어 무림 삼왕으로 손꼽히는 독왕 

역상과 전 무림의 공포인 삼혈맹의 살아있는 신화 대맹주가 그의  발

아래 있었다.

  

  법천은 가슴속에서 무한한 희열이 가득 차 오름을 느끼며 앙천광소

를 터트렸다. 그 웃음에 서천을 향해 오체투지 해 있던 장로들이  슬

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와 득의의  웃

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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