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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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교 신임 동천교령 상관평과 좌사 독왕 역상이 삼가 본교 남천

교령이시며 삼혈맹의 대맹주이신 혈종 악구패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가늘고 흰 손가락이 섭선을 촥 펼쳐 더워지기 시작한 몸을 식혓다. 

몸을 식히고 있는 혈유는 자신의 손에 들린 배첩을 다시 한 번 보고 

눈살을 찡그렸다. 

  

  "상관평이 동천교령이었나. 그래서 강동에서 존덕문이 허겁지겁 물

러난 거였군."

  

  강동에서 청룡장과 존덕문이 일대 대결을 벌이지 않아 대업이 뒤틀

어진 덕에 삼혈맹은 지금 진퇴양난에 처한 상태였다. 맹의 핵심 세력

을 한 곳에 집결시킨 이상 곧 백도와 존덕문이 눈치를 챌 것이 분명

했다. 물론 백도가 눈치를 챈다는 걸 각오하고 벌인 일대  역사였고, 

이 역사로 존덕문의 숨통을 잘라 버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헌데  존

덕문은 주력을 온건히 한 채 태행산맥으로 무섭게 회군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움직인다면 존덕문의 주력과 맞부딪쳐야 하는데  혈마

가 없는 현 상황에서는 승산을 장담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배첩의 대상이 자신이 아닌  대 맹주님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혈유는 배첩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관평이 정말로 동천교령의 후인이라면 대맹주님의 상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터. 이쪽에서 감추어 약점을 확대시킬 필요는 없겠

지. 문제는 주도권이 내 손아귀에서 멀어진 다는 것인데…….'

  

  혈유는 잠시 더 생각을 한 연후에 배첩을 들고 삼혈맹의  대맹주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떼었다.

  

  낮게 깔린 지붕아래 작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향의 공양을  받으

며 앞에 앉은 두 명을 지긋한 눈길로 내려 보았다.

  

  반백의 머리에 고개가 약간 옆으로 기운 듯한 노인은 단정히  앉아 

전각 안에 감도는 향 내음을  깊이 들이마셨다. 검버섯이 살짝  살짝 

핀 노인은 턱밑으로 살짝 난 수염을 살짝 꼬았다. 노인 옆에는  유생

차림의 상관평이 무슨 깊은 생각을 하는지 섭선으로 이마를 살짝  쳐

댔다. 

  

  향촉이 점점 짧아졌고 둘의 몸에는 향 내음이 깊이 배어 들어갔다. 

  

  딸깍. 

  

  문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노인의 시선이 천천히 불상  옆의 

쪽문에 멈추었다.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것 같은 쪽문 사이로  가

볍게 손수레를 미는 소리가 들려왔다. 

  

  흔들의자에 두개의 큰 바퀴를 매달은  이륜거가 문에서 흘러 나왔

다. 이륜거에는 단정히 묵어 올린 머리 아래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찬 혈의인이 약간 일렁이는 눈으로  노인을 보고 있었다. 목  아래를 

덮고 있는 새하얀 백호 가죽 사이로 오른 손이 천천히 들려졌다. 

  

  "오랜만이오. 좌사."

  

  백련교의 좌사이자 성수환독의 주인이며 무림 삼왕 중 일인인 독왕 

역상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두 배덕자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었소."

  

  혈의인의 이륜거를 밀고 들어온 이는 삼혈맹의 제 이 맹주  혈유였

다. 혈유는 독왕 역상을 보고 깊이 읍했다.

  

  "소인 혈유가 역 백부님을 뵙습니다."

  

  독왕 역상은 약간 놀란 얼굴을 했다.

  

  "백부?"

  

  혈의인은 혈유의 손을 잡았다. 

  

  "내 큰아들이오."

  

  독왕 역상은 고개를 묵직히 끄떡였다.

  

  "그럼 혈마가 둘째인가?"

  

  전 무림의 공포 대 삼혈맹의 대맹주 혈종 악구패는 오른 손으로 턱

을 쓰다듬었다. 눈가에 쓸쓸한 빛이 감돌았다.

  

  "둘째는 관문돌파를 실패해 죽고 말았네. 혈마는 내 막내지."

  

  독왕 역상은 약간 침중한 얼굴을 했다. 

  

  "내가 당시 자네 말만 들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을.  정말 

미안하네."

  

  혈종 악구패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자네가 몸 성한 것을 보니 그 빚은 없던 것으로 하지."

  

  독왕 역상의 눈가에 애잔한 미소가 걸렸다. 

  

  상관평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포권지례를 올렸다.

  

  "상관평이라고 합니다."

  

  혈유는 약간 탐탁치않은 표정을 지었다가 풀었다. 

  혈종 악구패는 잠시 멍하니 상관평을 보다가 찬찬히 얼굴을 뜯어보

았다.

  

  "닮았군 닮았어. 동천교령과 정말 많이 닮았어."

  

  상관평은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말씀은 좌사께서도 해주시더군요."

  

  "헌데 정말 놀라운 일이네. 자네가 동천교령의 손자였다니? 허허허 

대덕이 꾸민 강동역사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역시, 천하를 손아귀에서 놀리던 덕조의 피를 이어 받았군."

  

  "소인의 일천한 재주로 어찌 천하를 재단하겠습니까. 좌사께서  도

와주셔서 이제 겨우 광명을 찾았을 뿐입니다."

  

  혈종 악구패는 오른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내 왼손을 가져간 사람이 덕조라는 건 알고 왔겠지?"

  

  상관평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당당히 물음을 던졌다.

  

  "일신에 당한 혈채가 더 무겁습니까? 교법을 바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혈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교법을 세우는 것과 일신의 혈채는 따로 해결이 가능하지요."

  

  "제가 청룡장에서 있으면서 배운 한가지는 서로 원하는 것이  있으

면 불가능한 거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혈유는 고개를 내려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교보다는 아버지가 중했지만 아버지는 그 무엇도 교에 우선 할 수 없

었다. 자신과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대권을 주재 할 수 없는  혈유는 

마음속에 천만개의 단어가 연어 떼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튀어 

올랐지만 꾹 참아 내렸다.

  

  혈종 악구패는 담담한 눈길로 상관평을 바라보았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네만 시간이 없을 것 같군. 짧고  간략하게 

답변을 해주겠나?"

  

  상관평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번 협상은 빠르면 빠를 수록  양쪽에

게 다 유리했다. 시간을 끌어 자칫 대덕이 태행산맥에 당도하는 날이

면 일이 크게 틀어 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상관평은 그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혈종 악구패가 자신의 내심을 알면서도 시간을 끌  수 

없고 바로 승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 시점을 택한 것이다. 

  

  "대덕과 조부님께서 남천교령과 맞서시고  나서 여기 이  좌사님의 

급습을 받았다는 건 아시고 계시지요?"

  

  혈종 악구패는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 잘 알고 있네."

  

  "좌사님의 급습으로 두 분께서는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조부님께서

는 그 독을 몰아 내기 위해 요처를 찾아 몸을 숨기셨는데 그때 대덕

과 그 일족이 생사를 걸고 승부수를 띄운 거죠."

  

  "중독 된 몸으로?"

  

  "네. 지금 저희 일족을 뿌리 뽑을 수 있다면 독상이 번져 몇 년을 

더 보내도 상관없다고 생각을 한 거죠."

  

  "흠. 대덕이라면 그랬을 수 있지."

  

  "우리 상관일족은 대응이 늦어서 저만 남기고 멸문지화를 당했습니

다. 제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조부님과 아버님  어머니뿐이었으니

까요. 그때 저는 조부님께서 넘겨주신 남천교령을 가지고 중원  이곳 

저곳을 숨어 다녔는데 사경에 놓인 좌사님을 우연히 뵙게 됬습니다."

  

  혈유가 냉소를 지으며 말을 끊었다.

  

  "우연이가 아니라 알고서 찾아 간 거겠지."

  

  상관평은 쓴웃음을 짓자 독왕 역상이 한 걸음 나섰다.

  

  "우연이든 계획 된 것이든 그때 중상을  입고 있던 날 구해 준  건 

사실이네. 당시 만 해도 덕조의 공력이 어떤 성격을 띄고 있는지  몰

라 치유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으니까. 내가 이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

면 지금까지 폐인으로 지냈어야 했을  거네. 상관일족이 병 주고  약 

주고 한 격이지만 덕조는 이미 죽었고 나는 생명의 구함을  받았으니 

이 아이에게 손을 쓸 수 없었네. 그렇다고 거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

지." 

  

  "그래서 자네가 청룡장을 추천했나?"

  

  독왕 역상이 대답하려 하자 상관평이 말을 잘랐다.

  

  "대덕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곳 중에 원한이 깊은 곳을 찾아보니 청

룡장이 나오더군요. 좌사께서 추천해 주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가 

그곳을 찾아갔을 껍니다."

  

  혈종 악구패가 약간 기운이 빠진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좌사, 자네가 그때 나를 찾아 왔다면 이렇게 일이 오래도록  진행

되지는 않았을 것이네.  대덕과 덕조가 갈라선 걸 알았다면 내가 굳

이 이렇게 큰 세력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네."

  

  "자네가 살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네. 더욱이 쌍덕이 교의  대권

을 장악한 후였고 나 또한 내상이 깊어 몸을 숨기기 급급했지."

  

  혈종 악구패는 독왕 역상이 끝에 하지 못한 말을 알 수 있었다. 상

관평이 입막음을 했을 것이다. 악구패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상관평을 바라봤다.

  

  "그 사실을 내가 아닌 백오에게  전했다면 일이 아주 쉽게  풀렸을 

텐데. 대덕 혼자서는 백오의 적수가 되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본  맹

도 생기지 않았을 테고 자네의 복수는 아주 빠르게 이루었을 텐데."

  

  "하하하 선우대덕이 이루고자 하는 것과 제가하고 싶은 게 크게 다

르지 않았습니다."

  

  혈종 악구패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랬군."

  

  "그가 애써 준비하도록 그냥 지켜만 봤습니다. 중간중간에  필요한 

사람을 넣거나 포섭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청룡장에서 자네를 몰랐나?"

  

  상관평은 고개를 갸웃했다. 

  

  "쌍덕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올 때 나를 대동하라고 한 것을 보면 

백오노야는 내 신분을 알았던 것  같은데 단우백은 나중에서야 들은 

모양인 것 같습니다."

  

  상관평은 섭선을 휘둘러 이마에 흐르는 땀을 날려보냈다. 

  

  "백오노야. 그분은 조석으로 나를 대하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안 했

다니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완벽하게 속였다고  자신

만만해 했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나를 통해서 존덕문과 연관된  끈을 

찾으려고 했겠지만 아시다 시피 대덕과 나는 적대관계에 있었으니 혼

란스러웠을 껍니다."

  

  혈종 악구패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은 있는가?"

  

  상관평은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 약간 고개를 갸웃하더니 미소

를 머금었다.

  

  "천하제패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라면……."

  

  상관평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고개를 저었다.

  

  "천하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건 귀 맹도  마찬가지라

고 생각되는데요?"

  

  "우리 둘이 손을 잡으면 불가능하지도 않네."

  

  "남천교령으로서 제의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삼혈맹의 대맹주로 제

의하시는 겁니까?"

  

  "남천교령으로 하는 제의일세. 삼혈맹이야 본 교의 하부조직정도에 

머물러 있으면 족하네."

  

  혈유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상관평은 악구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승낙하리라고 보십니까?"

  

  혈종 악구패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거절했으면 하네."

  

  상관평은 고개를 들어올리고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하."

  

  악구패는 상관평의 웃음이 끝날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기다렸

다. 한참을 웃던 상관평은 옷매무시를 단정히 했다.

  

  "산동, 하북, 산서, 관동, 내몽고, 외몽고에서 손을 떼시오.  아울

러 존덕문에서 나오는 모든 물자와 인원은 내 몫이오. 물론 그  인원 

중에 교 직속은 제외하겠소. 그들은 데리고 있어봐야 골치만  아프니

까."

  

  "자네가 챙길 수 있다면 그건 어렵지 않네."

  

  "교령에서 나와 내 수하가 될 자들을 제외시켜야 하오."

  

  교령에서 제외해 달라는 말은 교와 완전한 결별을 하겠다는 소리였

다. 일단 백련교도가 교를 떠나가 위해서는 교주나 용화삼회의  허락

이 있어야 했다. 허락이 없다고 교에서 나오지 않을 상관평이 아니었

지만 교도들에게 배교자라는 작은 마음의 짐일 지라도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수하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당당함을 유지해야 했다.

  

  혈종 악구패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도 어렵지 않네."

  

  "마지막으로 십 년 간 싸우지 맙시다."

  

  악구패는 씨익 미소를 머금었다. 

  

  "그 정도면 되겠나?"

  

  상관평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십 년이면 어느 누구와도 쟁패를 할 

정도로 세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물론이오."

  

  혈종 악구패는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내 조건을 말하지. 좌사를 제자리에 놓아주게."

  

  상관평은 입을 다물고 악구패를 바라보았다. 독왕 역상은 포기하기 

아까운 고수였다. 그의 무공수위도  수위려니와 독을 다루는  신기는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골수  백련교도였

다. 자신이 교를 떠나는 이상 독왕 역상은 자신을 더 이상 돕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독왕 역상을 내 놓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어렵지 않소."

  

  "동천교령을 내게 정식으로 넘기게."

  

  "당연히 넘겨드려야 겠죠."

  

  혈종 악구패는 진중한 얼굴로 상관평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가람보살도(伽藍菩薩圖)의 행방을 알아냈나?"

  

  상관평은 달라는 것이 아니고 알아냈냐는  말의 의미를 머리 속에 

몇 번 굴리고 답변했다.

  

  "훗. 교주의 생사여부 부터 물어야 하는 것 아니오?"

  

  "교주께서 그 치욕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  계시리라고 믿지  않

네."

  

  상관평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혈종 악구패도 교주를 다시  모시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자신의 교령을 얻고 대덕을 꺽

어 세 개의 교령을 한 곳에 모은다면 그의 신분은 교주보다 높은 용

화삼회의 회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주의 생사와 가람보살도의 행방은 알지 못하오. 조부님께서  대

덕에게 당하기 전까지는 교주가 살아 있었다고 하던데……. 그  이후

의 일은 알지 못하오."

  

  혈종 악구패는 상관평을 잠시 노려보았다. 상관평은 지지 않고  시

선을 바로 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키자 독왕 역상이 헛기침을 

했다. 

  

  "남천교령.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소. 이건 좌사로서의 권고요."

  

  악구패는 눈동자를 살짝 끄떡였다.

  

  "좌사 예식을 거행하지요."

  

  독왕 역상은 품에서 두 개의 비취 잔과 옥병을 꺼냈다. 두 잔 위에 

우유빛 액채가 가득 고였다. 독왕 역상은 상관평과 혈종 악구패를 번

갈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일말의 사심을 품고 있으면 이 맹약을 물릴 수 있소."

  

  둘은 말이 없이 서로를 바라만 봤다. 독왕 역상은 두 잔을  공손히 

미륵불 앞 신단에 놓고 합장 반배를 한 뒤 뒷걸음 질쳐서 자리로 돌

아갔다.  

  

  혈종 악구패와 상관평은 미륵보살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은은히 

피어오르는 향연이 일직선으로 높게 올라갔다. 

  

  상관평은 구배를 올렸고, 다리가 성치 않은 혈종 악구패는 아홉 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둘이 동시에 맹세의 표를 올렸다.

  

  "오늘의 맹약을 구천에 알리오니 천상에 그 맹약의 증서를 새겨 하

늘과 땅이 끝나는 날 까지 후인들의 경계로 삼게 하시고, 만약  맹약

을 어길 시에는 무간지옥에도 들지 못하고 천하를 떠도는 원귀가  되

게 하여도 결코 원망치 않겠나이다." 

  

  구배가 끝나자 독왕 역상은 공손히 두 잔을 가지고 내려와 잔을 나

누어주었다. 악구패가 오른손으로 잔을 받자 상관평이 왼손으로 잔을 

들었다. 둘은 서로 잔을 눈  높이에서 맞추고  단숨에 잔을 비웠다. 

반가한 미륵보살상은 촛불에 흔들리며 여러 개의 그림자를 사방에 드

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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