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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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천은 단우백의 뒤를 따라 태호가 내려다보이는 우둔산(牛屯山)을 

올랐다. 한 마리 황소가 풀을 뜯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

서 이름 붙여진 이 우둔산은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인근에 비견할 만

한 산이 없는 넓은 평야였기 때문에 무림문파가 자리하기에는 더  없

이 좋은 요지였다. 

  

  소천의 얼굴은 어두웠다. 태호 남쪽의 세 산에 집결한  존덕문도들

을 치는 데 세 당주만 보낸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게다

가 방금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이들은 서천목산에서 신안강 쪽으로 

도주를 하고 있다고 하지 않은 가. 서천목산에서 신안강으로 바로 남

진하는 길은 청룡장의 광역 포위망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었다.  적은 

자신들의 유사시 펼쳐지는 포위망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아군

의 정보가 적의 손에 들어가 있으면 패배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서왕은 어느새 이 둘을 따라왔는데 술이 올라 새빨개진 얼굴로  연

신 싱글벙글 댔다. 밑의 지단에서 방금전 까지 강호의 여러 동도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서왕은 빨리 일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잘 놀고 있는데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우리를 이리로 부른  거

요?"

  

  단우백은 뒷짐을 진 채 대꾸하지 않고 달빛을 깔고 산아래  펼쳐진 

청룡장 소주지단을 내려다보았다. 안개에 살짝 감겨진  대소전각들이 

촉촉이 젖은 모습을 보였다. 그 전각들 사이로 불빛과 음주가무를 즐

기는 소리가 태호의 물결처럼 밤을 적셔 나갔다. 

  

  소천이 이슬에 젖어 가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세 당주만 보낸 것은 실패를 염두에 두신 것 아닙니까?"

  

  "내가 왜 그랬는지도 알겠구나?"

  

  소천은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세 당주야 말로 단우백과 함께  불모지에서 오늘날의 영광을 이룬 

청룡장의 창업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로 그 위치가 다른  당주들

과 달랐고 무사들의 신망도 매우 두터웠다. 이들은 청룡장의  충신이

었다. 하지만 단우백은 그들이 더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소천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 당주가 아무리 커진다고 하

여도 현 장주인 대사형을 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단청운

이라면. 바람막이가 되 줄 사숙들이 한 명도 남지 않는 상황을  가정

한다면, 단우백으로서는 세 당주의 기세를 꺽을 필요성을 느꼈을  것

이다. 아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이어야만 

했다. 다음에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단우백의 뇌리를 강력하게  지

배하고 있는 것이다.

  

  소천은 어떤 면에서 쌍덕이 사형에게 그렇게 거대하게  다가왔는지 

궁금해졌다. 

  

  "무언가 새로 얻은 정보가 있습니까?"

  

  단우백 나직한 한 숨을 내쉬었다.  

  

  "소림은, 아니 백도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존덕문에  대

해서 어느 정도 의심을 하고 있었다."

  

  소천과 서왕은 무슨 말인지 궁금한 듯 단우백을 바라보았다. 

  

  "백도는 아니 소림과 화산파의  장문인은 쌍덕의 존재와  존덕문의 

실체에 대하 의구심을 가지고 세 명의 고수를 차례로 파견했다. 이들

은 각기 서로에 대해서 몰랐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소림과 화산에 존

덕문의 정보를 보냈다. 이 세 명의 정보를 취합해 본 소림과  화산파

의 장문인은 이들의 정보가 일치하자 존덕문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어

들였지." 

  

  "세 명이라고 하시면?"

  

  "창왕 언무외와 풍개 견로자, 백리무군이다."

  

  "그럼 그들이 처음부터 대덕과 손을 잡은 게 아니었습니까?"

  

  "존덕문의 비밀을 파헤치러 들어갔다가 대덕에게 세뇌를 당하고 꼭

두각시가 된 것이다."

  

  소천과 서왕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백리무군은 그렇다고 쳐도 창왕이나 풍개 견로자는 전대의 고수인

데 쉽게 세뇌가 되겠습니까? 게다가 다른 고수들을 잠깐은 몰라도 오

랜 시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단우백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제는 사부님으로 부터 관(觀)을 배웠으니  미생환몽선법(未生幻

夢仙法)도 들어 봤겠지?"

  

  소천은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유가에서는  회광반조(회광반조)라 

부르고 선가에서는 원상법이라고 부르는 방법으로 기억을 과거로  돌

렸다. 자신이 이곳에서 올라와서 단우백을 본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

해서 꺼꾸로 돌아가는 기억의 편린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소

천이 원상법을 펼치는 것을 본 단우백과 서왕은 깜짝 놀랐다. 단우백

은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자신의 귀로 들었고 서왕은 어깨를  움

츠린채 눈을 껌뻑이지 못하고  소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소천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찾듯이 무서운 속도로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끝이 없는 해안가에 일렁이는 파도를 한 점에 모아 둔 듯했다.

  

  나는 그때 어린아이였다. 

  파아란 하늘 아래 꿈에서나 보던 큰 집. 처음 보는 그러나  낮익은 

사람의 얼굴들.

  '아저씨 나 이거 전에 본적 있어요'

  '언제 말이냐?'

  '꿈속에서 말이에요. 몇 번 본 것 같아요. 믿기지 않으시죠?'

  '허허허 나도 그렇단다. 처음 가보는  곳인데 전에 왔던 것  같고. 

꿈속에서 본 사람과 풍경을 다시보고, 특이한 일을 격고 나면 어디선

가 겪었던, 다시 생각해보면 언제 꾼 꿈인지 모르지만 이런 삶을  살

았던 기억이 있지.'

  '화아 아저씨도 저하고 똑같네요.'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지. 하지만  그런 

경험을 말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모두들 입을  다

물고 있는 거란다. 그리고 애써 부정을 하는거지'

  '아저씨는 왜 그런지 아세요?'

  '내가 어찌 알겠느냐. 그런게 있다는 걸 알뿐이지. 선가에 이걸 이

용한 비전이 있기는 있다고 들었다.'

  '무슨 비전이요?'

  '미생환몽선법. 깨달음과 마장의 사이에서 제자가 번민을 할 때 덕 

높은 스승이 도력으로 마장의 삶을 꿈속에서 살게 해줌으로 깨달음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비법지. 이 비법에서 몇가지 몽환술이 파생되

어 나왔다고 하더구나'

  '화아 그럼 그 비법을 익히면 자신이 원하는 꿈을 꿀 수가  있겠네

요.'

  '자신이 원하는 꿈을 꾸는건 간단하단다 애야. 관을 배우면 되지'

  '관요? 그게 뭐에요?'

  '앞으로 네가 배울 거란다. 미생환몽선법은 매우 위험한 거야.  상

대의 꿈을 지배하는 방편으로도 사용할 수가 있어서 그 비법의  전수

가 극히 까다롭지. 이것을 악용하게  되면 사람의 정신마저 지배  할 

수가 있단다. 단지 이것을 쓰는 사람의 얻음이 수준 이상이어야 하고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거나 자신과 파장이 어느 정도  일치

해야 가능하단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요?'

  '흠'

  아저씨는 아니 아저씨라고 생각되었던 분은  두 개의 단검을 꺼내 

반보 간격으로 땅에 날이 나오게 거꾸로 밖았다. 그리고 한쪽을 손가

락으로 튕겼다. 딩. 한쪽이 울자 다른 한쪽 또 소리를 내며 따라 울

었다.

  '화 신기하네요.'

  '공명이라는거다. 기의 장이 같은 상태면 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곳에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서로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거지, 

너는 열 명이 같이 걷다 보면 서로 보폭과 걸음걸이 내딛는 발이 일

치하는 걸 본적이 있느냐?'

  '예'

  '너는 참 볼 줄을 아는구나. 내가 너를 데리고 가는 이유도 그거긴 

하지만. 미생환몽선법도 그런 원리를 이용한거지. 이 단검이 서로 공

명하는 것 처럼'

  '그럼 누구나 다 펼칠 수 있나요?'

  '그건 아니란다. 내가 이 검을 울릴 때 반대편 검은 움직임이 없어

야 하지. 하지만 사람의 의식은  끊임없이 요동을 치고 있으니  서로 

간섭을 받을 수밖에'

  아저씨는 두 개의 검을 거의 동시에 쳤다. 딩 띠잉. 하는 서로 다

른 소리와 떨림을 보이더니 나중에는 한 소리 한 떨림으로 변해갔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따라서 경지에 도달한 스승이 아니면 자신과 상대가 큰 해를 당하

게 된단다.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제자가 세속의 일과 공부의  길

에서 갈등을 할 때  이걸 이용해서 한 생의  삶을 삶게 해주는 거란

다.'

  '강제로도 할 수가 있나요?'

  '경지에 오른 스승이 강력하게 한다면……. 하지만 스승이 왜 그런 

일을 하겠느냐.'

  '악용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이 선가의 비전은 단맥 될  지언정 함부로 전해지지 않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 근데 뭐 하나 물어 봐도 되요?'

  '뭐든지 물어 보렴.'

  '전에 재담꾼 아저씨에게 남가일몽의 고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게 사실인가요?'

  '글쎄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

란다.'

  '와 아저씨 그럼 제게 좋은 꿈을 꾸게 해 주실 수 있나요?"

  '어떤게 좋은 꿈인데?'

  '편히 밥 먹고 잠 잘 자는 거요.'

  '흠. 그건 네가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란다. 그리고  이제는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거라.'

  '그럼 뭐라고 불러요?'

  '사부라고 부르거라.'

  

  소천은 눈을 감았다가 털어 내었다. 

  

  "미생환몽선법을 썼다면 가능하겠지만……. 사부님께서도 그런  경

지에 도달했는지도 모를 높은 경지인데, 쌍덕이 그런 경지에  도달했

다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세 명은  대단한 고수들인데

……."

  

  소천은 말을 하다 멈추었다. 서왕이 팔을 벌려 소천을 덥썩 않았기 

때문이다. 서왕은 사제의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사제 사제. 정말로 사제는 대단하네. 벌써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

다니. 사부님께서 자네를 굳이 제자로 맞이한 것을 이제야 알 것  같

네. 하하하 하하하. 헌데 언제 그런 경지에 도달했는가?"

  

  소천은 흠칫 하며 자신이 좀전에  한 일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꿈만 같이 여겼던 원상법(原象法)을 성공시킨 것이었다. 소천 자신도 

너무 놀라 떨리는 입으로 말문을 열었다.

  

  "처 처음 이었습니다. 미생환몽선법이라는 말을 듣자 저 자신도 모

르게……."

  

  "그럼 다시 할 수 있는가?"

  

  소천은 눈을 반개하고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아주 쉽게  진행이 

되었다. 소천의 얼굴 가득에 미소가 차오르고 몸이 부웅 뜬 듯  가벼

워졌다. 소천은 눈을 털고 고개를 끄떡였다.

  

  "어렵지 않게 됩니다."

  

  서왕은 소천의 어깨를 투닥여 주었다. 새로운 경지에 접어 든 것은 

소천이었지만 서왕 자신이 더 기뻐했다. 단우백은 수염을 쓸어  내렸

다.

  

  "축하하네 사제."

  

  소천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별일 아닙니다."

  

  "별일 아니긴 이제 생사현관에 도전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인

데……. 강호 고금역사상 그 누가 자네 나이 때 그런 경지에  도달했

겠나? 사부님께서도 서른이 넘어서야 원상을 바로 보게 되셨다고  하

셨는데 말일세."

  

  "그나저나 쌍덕이 미생환몽선법을 썼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  세 

분의 상태도 상태지만 쌍덕의 경지가 예사롭지 않은 겁니다.  백도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말인가?"

  

  "으음."

  

  "백도는 스스로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네. 그만한 힘이 있는 곳이니

까."

  

  "그래 괞히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지 그나저다 쌍덕이 그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니 정말 큰일입니다."

  

  "대덕은 완전한 미생환몽선법을 쓸 정도의  경지는 아닌 것 같네. 

이 선법을 이용해 과거의 기억을 몇 개 바꾸어 놓는데 약물을 이용했

다고 하니까. 게다가 이런 일에는 하수보다는 고수가 더 쉽다는 군."

  

  "고수가 더 쉽다니요?"

  

  "이 선법은 내공의 고하보다는 시술자와 피 시술자간의 공명이  중

요한 요건인데……. 하수들은 전신 혈도가 열려져 있지 않으니  서로

간의 공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나 고수들은 전신 혈도가  대부

분 열려있고 천지간의 기운과 상호 교류를 하니 공명이 더 잘 일어나

지 않겠나."

  

  소천은 손뼉을 쳤다.

  

  "사부님께서도 미생환몽선법을 평범한  사람에게 펼치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꿈에서 격는 것을 현실로 너무 강렬하게 느껴 꿈에서 당

한 상처가 몸에 남거나 심지어 죽어 버린다고 하셨죠."

  

  서왕은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잘 몰랐지만 고개는 연신  끄떡

였다.

  

  "그래 그래 그렇군."

  

  "대덕은 자신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유사시 실력 행사를 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들어왔던 창왕과 풍개  견로자, 백리무군에게 이  선법을 

펼쳐 과거의 기억 몇 개를 조작하고 새로 집어넣었네. 그 후 다른 사

람과의 접촉을 극도로 제안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집중적으로  주입한 

모양이네."

  

  소천은 입을 딱 벌렸다. 단우백이  말은 쉽게 했지만 당금  천하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는 게, 아니 인간이 그런 경지에 

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쌍덕이 그런 경지에 올랐다면  자신들이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사부님께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

다. 대사형이 자신과 사제들의 죽음을 생각하고 세 당주에게  약속된 

실패를 명한 것이 이해가 됐다.

  

  "그럼 막간산과 천목산 일대에 숨어 있던 존덕문의 무리들이  우리

의 경계망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원인은 뭡니까?"

  

  "상관평이네."

  

  소천은 깜짝 놀라 되 물었다.

  

  "문상이요?"

  

  서왕은 이마를 탁쳤다.

  

  "아참 아까부터 문상이  보이지 않던데 남쪽에  내려가 있는  겁니

까?"

  

  "상관평은 상관덕조의 손자네. 그러니 이제는 문상으로 부르지  말

게"

  

  "음."

  

  "억!"

  

  소천과 서왕은 높고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서왕은 술이 확 깬  얼

굴로 단우백을 바라보았다.

  

  "사형.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문상이 어떻게……. 그게 어

떻게"

  

  서왕은 말을 잊은 듯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다가 양손으로  가슴을 

두들기기도 했다. 단우백은 청룡장을 굽어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대덕과 덕조는 같은 걸 추구했는데 그 자리에 맞는 의자는 하나밖

에 없었지."

  

  소천은 흠칫 숨을 들이 켰지만  이내 시선을 내리 깔았다.  서왕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 둘이 싸웠고 덕조가 밀려 상관평이 본 장으로 피난해 왔다

는 겁니까?"

  

  "그렇네. 내게 세 명이 세뇌를 당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 것도 상관

평이었네."

  

  서왕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럼 이제 쌍덕을 아니 대덕인가 뭔가 하는 놈만 조지면 되는  겁

니까? 두 놈이 아니라 한 놈이라니 다행입니다. 헌데 사형은  언제부

터 문상이 덕조의 손자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사부님께서 장을 떠나실 때 이야기 해주셨네."

  

  서왕은 엄지손가락을 꼽아 올렸다.

  

  "역시. 그때 사형은 장주로 인정받은 겁니다."

  

  "시험을 받은 거겠지. 턱 밑에 칼을 밖고 다니는 기분이었으니까."

  

  소천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럼 문상자리는 이미 내정해 두셨겠군요?"

  

  단우백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어려운 일이었네. 상관평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무엇보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써야 하는데 그게  정말로 

쉽지 않네."

  

  서왕은 뭐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을 부볐다.

  

  "아참 문상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였나요? 죽이긴 조금  아깝지 

않았나요?"

  

  단우백은 담담히 웃음을 지었다.

  

  "문상 정도 되는 사람이 자신이  발각되었을 때 빠져나갈 패  하나 

안 만들어 놨겠나?"

  

  "그래서 살려 보내 주셨습니까?"

  

  "살려 보내 줄뿐만 아니라 덕조회  무사들을 한 곳으로 몰아  그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었네. 우리가 몰지 않았다면 그들이 정신

없이 도망을 치겠나? 필시 선우대덕과 연락을 하여 상황을  보고하고 

명령을 받으려고 하겠지."

  

  "하기사 문상이 계획 한 일이니 모두들  혼 줄을 빼 놓을 수  있을 

껍니다. 하하하 놈들에게 고생문이 열린 것이 눈에 훤하군요."

  

  말을 잠시 끊었던 서왕은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웃을 때가 아닙니다. 적이 된다면  문상 아니 상관평이 대덕보다 

더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는 잡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내정을  속속

들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상관평이 우리의 내정을 모두 알아냈다면 백도와의 상잔을 어떻게 

해서든 이끌어 냈겠지. 사실 이건 모두 허깨비이지 않은가? 본  장은 

사부님과 오기령. 그 자체가 아닌가."

  

  서왕은 말끝을 흐렸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대덕이 혼자라면 지금 이 기회에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

까?" 

  

  "조금 기다리기로 하지. 날이 밝으면 군(軍)이 움직일지도  모르니

까."

  

  "군(軍)이라면?"

  

  "오군도독부의 정예들이 강동의 요소요소에 깔려 있네. 수효는  약 

오천 명 정도지만  신분을 드러내는 즉시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와 

각 위소(偉所)의 병력을 모두 통괄 할 수 있으니  적지 않은 대군이 

될 걸세."

  

  소천과 서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홍 무제에게 반역의 땅으로 인

식되어 있는 소주에 태상장주님이신 사부님께서 청룡장을 세울  때부

터 황실과 큰 마찰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위기감을 느껴왔지만  직접 

군을 움직였다는 말을 듣자 담담함과 더불어 허탈함이 밀려왔다. 

  

  서왕이 씨근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대로 당하고 있을 껍니까? 오군도독부의 정병이  오천이라

고 하지만 본 장이 먼저 선수를 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대사형 빨리 

놈들을 제거 합시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들을 죽인 후에는?"

  

  자신들이 오군도독부의 정병을 주살 한다면 그건 황실과의  전쟁을 

의미했다. 서왕은 쌔빨개진 얼굴로 씨근덕거렸다.

  

  "제기랄 저 빌어먹을 황실과 한 판 붇는 겁니다. 민단을  움직입시

다. 본 장의 무사들만으로 황군과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단우백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대덕은 우리가 군과 싸우는 것을 원한다고 하더군."

  

  "그럼 어쩔 겁니까? 이대로 도주 할 껍니까?"

  

  "기다려 보게. 사부님께서 직접 사태 수습에 나서셨으니까."

  

  서왕과 소천은 깜짝 놀라며 반가운 기색을 표했다.

  

  "사부님께서 연락을 해오셨습니까?"

  

  "사부님은 어디 계십니까?"

  

  "나도 오기령을 통해 서신만 받았네."

  

  "아 오기령이 움직였군요.  사부님께서 오기령을 이끌고  나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부님께서 나서셨으니 승리야 불문가지이지만, 만약을 대비해 미

리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장이 현판을 내리는 한이 있어도 전쟁은 피하라는 사부님의  전교

가 있으셨네. 일이 틀어진다면 우리를  제외한 전 식솔들을 동해  밖 

잠룡도(潛龍島)로 빼돌리는 작전이 펼쳐질 것이네. 뭐 더 남기고  싶

은 말이 있다면 옷에 써서 여기 놔두게 이 사제가 기다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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