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령채의 산적 삼천과 이념으로 강력히 무장을 했지만 접전의 경험

은 별로 없는 회교 성군 일만. 형옥에서 꺼낸 죄수로 이루어진  잡군 

일천에 반강제적 모은 신병 일천 오백.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성전사

단 삼백. 총 일만 사천 팔백 명의 양산월과 장안 인근의  위지휘사사

와 천호소를 동원해 어느 정도 군사훈련을 받은 지방군 칠천과  군소

문파와 무술도장, 호족들의 가병을 합쳐 숫자를 채운 일만 칠천의 오

유지의 군대가 함양 평야를 사이에 두고 길게 대치를 했다. 

  오유지는 기치창검이 가지런한 양산월의 군세를 보고 정보장교들을 

노려보았다.

  "뭐야? 저게 산서에서 산적질이나 해대던 자들의 모습이냐? 엉  네

놈들의 눈에는 저놈들이 산적들 나부랭이라 보이나?"

  정보장교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이들도 나름대로 장안에서  거병한 

자들의 정보를 모으느라 지난 이틀간 밤잠을 설쳤다. 저들이  북령채

의 무리들이었다는 것은 표맹에 참가했던 장안표국의 표사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 하지만 그들의 무리가 아무리 많아야  삼천을 

조금 넘을 정도라는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억지로 쳐도 오천이 채  안 

되야 마땅했다. 

  이들이 장안성에 있는 젊은 청장년들을 강제 동원했다면 몇 만이라

는 숫자를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지금과 같은 기세를 보일 수

는 없는 것이다. 눈으로 확인하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였지만 

그들의 기세는 억지로 끌려 나온  백성과는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회교의 옥으로 일가친척이 도륙 된 회교도이었으니  군사훈련은 

거의 받지 못했어도 그 정신상태는 정병 못지 않았다.  

  오유지는 이맛살을 찡그렸다. 장안성을 침탈한 적도가  삼사천이라

면 이 숫자로 어떻게 눌러 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급히 달려왔

지만 적이 예상외의 전력을 보이자 어떻게 병력을 운용해야 할지  갈

피가 잡히지 않았다. 사실 이 쪽도 숫자만 많았지 아무렇게 긁어모으

다 보니 지휘명령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대규모 접

전이 벌어지면 주먹다짐식의 난전을 벗어 날 수 없었다.

  '일단 전선을 고착시키고 응원군을 더 불러모아야 겠다.'

  양산월은 군막에 각 채주들을 모아 놓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수염

을 쓰다듬었다.

  "오합지졸을 잘도 모아 왔군. 하루 아침 해장거리도 안되겠어."

  양산월의 웃음에 채주들은 무거운 짐이라도  덜은 냥 같이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양산월은 넓게 펼친 진세의 우측을 가리켰다.

  "흠 우익은 무림 군소문파로 좌익은 호족들의 가병으로 채웠군. 좋

은 배치긴 하지만 좌우익에 명령하달이 잘 될까. 주장군."

  잔살마군 주진우가 한 걸음 나섰다.

  "네."

  "기병을 이끌고 나가 저들에게 우리의 의사를 알리고 전투가  벌어

지면 전선에서 이탈해 달라는 권고를 하시오."

  "알겠습니다."

  잔살마군 주진우는 삼십기를 이끌고 적 우익을 향해 달려갔다.  저

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잔살마군 주진우를 빤히  바라보았

다. 주진우는 우익의 백장 앞에 말을 멈추었다.

  "무림동도 여러분 이번 우리의 의거는 건문폐하의 어명에 따른  것

으로 이 일은 어디까지나 황실의 내분이오. 석년 연왕반정 때도 무림

문파는 황실의 내분이라 끼어들지 아니하였으니 그 선례를 따라 주기 

바라오. 강호가 어떠한 곳인데 일개 관인이 여러분들을 호령한단  말

이오. 부끄럽지도 않소."

  우익에 자리한 군소문파의 제자들은 얼굴이 벌개져 서로 바라만 보

았다. 이들은 존장의 위엄과 도지휘사라는 그 위치에 눌려 자리를 떠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은 눈에 띄게 드

러났다.

  중군에서 한 장수가 말을 몰고 뛰어 나왔다. 

  "산서에서 도적질이나 일삼던 놈이 무슨 무림도의를 따지느냐?  여

기 내 창을 받아라."

  긴 장창을 나뭇가지 휘두르듯이 가볍게 놀리며 달려오는 장수를 바

라본 주진우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장창을 놀리는 것으로 보아 백

전노장으로 손색이 없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문과 강호의  실력 

없는 무사들을 상대할 때였다. 강호에서 소위 일류라는 이름이  붙은 

자를 상대 할 수 있는  건 압도적인 다수이거나 어느 한  방면에서고 

일류라는 이름이 붙은 자가 있어야 했다.

  주진우는 군도를 빼들고 창을 들고 나오는 장수를 향해 말을  몰아

갔다. 창과 군도에서 갈라지는 바람 소리가 좌우 대군의 심장을 빠르

게 뒤흔들었다.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두 줄기 황진이 서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둘의 거리가 오장으로 가까워오자 창대가 현란한 춤을  추

며 수십 수백 개로 불어났다. 군문에 대대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양가

창법이었다. 

  주진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중원의 양가창법을 연구한지 오래다."

  티무르 제국이 중원을 정벌하기 위해서 한 일 중에 하나가 중원 군

부에서 사용하는 각종 병기술에 대한 연구였다. 주진우는 오래  전부

터 이 연구에 동참해 있었고 지금은 양가창법을 능숙하게 펼칠 수 있

을 단계에까지 와 있었다. 

  바람에 흘러내리는 버드나무가지 같다고 하여  유엽만청(柳葉滿淸)

이라는 초식이 펼쳐지며 주진우의  몸을 상하로 쓸어갔다.  주진우의 

군도가 장창의 상하 쓸림의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둘의 병장기는 서로 허공을 맴돌다 스쳤고 황진은 계속 자신이  달

려온 방향으로 질주했다. 

  파각. 

  장창을 든 장수의 몸이 뒤로  넘어지듯 쓰러지며 목줄기에서 붉은 

피를 뿜었다. 말은 그의 몸을 등자에 매단 채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달려가 한점의 먼지로 화해갔다. 

  와아아. 

  양산월의 진영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오유지의 

군막에서 한 명의 날렵한 몸매의 사내가 장검을 들고 달려나왔다. 청

갈색 비단 장포를 걸친 사내는 삼십이 채 안되어 보였는데 하늘을 받

히고 있는 듯한 어깨와 긴 팔이 주진우의 시선을 끌었다.

  '고수.'

  사내는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강호식 인사였다.

  "흑선보의 초도운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흑선무정랑이라고  불러주

지요."

  주진우도 가볍게 군례를 취했다.

  "동정대원수 막하의 정천호 주진우라고 합니다."

  초도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은 강호식 인사를 통해  주진

우와의 싸움이 황실간의 내분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강호의 은원이나 

비무가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것을 안 주진우는 자신의 신분을 정

천호라 밝힘으로써 네가 싸움을 걸어오면 황실의 내분에 끼어들게 되

는 거라는 걸 분명히 한 것이다.

  초도운은 흔들림 없이 장검을 뽑았다. 

  "이름을 걸고 나온지라 물러 설 수 없구료."

  주진우는 군도를 비껴 쥐었다.

  "검에는 눈이 없으니 조심하시오."

  탁. 

  둘이 거의 동시에 박차를 가했다. 츄리릿. 허공에서 현란한 검광을 

발하며 초도운의 검이 주진우의 전신 사혈을 노렸다. 검의 빠름과 변

환을 최대한 이용해서 펼친  초직이었다. 주진우는 군도의  투박함과 

무게를 이용해 일도 양단의 초식으로 대해를 가르듯이 초도운의 검세

를 갈라 갔다. 검은 도의 날 위에 노는 듯 두 병기는 부딪침이 없이 

서로 현란한 검광과 도광만 뿌렸고 말도 서로 꼬리를 물고  제자리를 

맴돌며 주인 대신 거친 숨만 토해냈다.

  둘의 전황을 살피는 양산월은 각 채주들을 불러 긴급히 명령을  내

리기 시작했다. 채주들은 양산월의 호출에 정신을 차리고 각기  자신

의 병력들을 조심스럽게 지금 상황을 일깨우고 명령을 하달했다. 

  처음 검과 도가 부딪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은 검의 일방적  공세

로 돌아섰고 장도는 검의 빠른 변환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여  도의 

좁은 이동으로 쳐냈다. 그 덕분에 잔살마군의 전신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진우의 이마에 땀방울이 하나 둘 

맺히기 시작했다. 초도운의 검세는 더욱 현란해 졌다. 

  주진우는 순간 좀 전에 자신이 몇 개의 혈도가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도세가 조금 느려졌다. 순간 

주진우와 초도운의 눈이 마주쳤다.  초도운은 웃고 있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주진우의 사혈을 노리지 않고 옆으로 비껴간 도 위를 찍었다. 

쨍. 다시 격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순간 주진우의 정신이 번

쩍 들었다.

  '나와 전력으로 싸울 생각은 없구나. 역시 적극적으로 황실의 개가

되지 않는 이상 강호인들은 될 수 있는 한 황실 내부의 문제에 끼어 

들려고 하지 않는 구나.'

  그때 양산월 쪽에서 우렁찬 함성과 함께 수백의 기마대가 오유지의 

좌익을 노리며 벌판을 우회해 돌격해 들어갔다. 기병의 전통적인  공

격법인 우회타격이었다. 기병에는 기병.  보병에는 보병을 쓰는  법. 

오유지는 적 기병을 잠시 헤아린 뒤 자신의 기병대가 이백 정도 많다

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적기병대를 부수고 적 후방을 유린하라."

  적 기병대가 출진하는 것을 본 양산월은 군도를 빼들었다. 전군 총

사령관이 군도를 빼들경우는 한 가지 뿐이었다. 

  "전군 총 돌격."

  우와악. 

  거대한 함성과 함께 성군 일만이 폭풍노도와 같이 달려갔다. 그 뒤

를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던 북령채의 삼천 병력이 손으로 가슴을  몇 

번 두들기고 달려갔다. 이들의 머리 위로 수백 발 을 화살이  폭풍처

럼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오유지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리도 체계적인 전투를 할 수  없지만 너희들도 마찬가지. 좋다 

여기서 승부를 건다."

  오유지는 군막을 지키고 싶었지만 기세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

각에 군도를 빼들고 말위에 올라탔다. 그를 따라 참장들도 말에 올라

탔다. 오유지는 군도를 크게 휘둘러 앞으로  내렸다.  

  "전군 총 돌격."

  오유지의 명령은 수십 명의 참장이 복창했고 총기들이 일제히 좌우

로 달려나가며 총돌격의 깃발을 휘둘렀다. 

  양쪽의 대군은 서로 화살을 쏘아대며 주진우와 초도운이 싸우는 격

전장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초도운은 사방에서 쏱아져 내리는 화살과 

양쪽 대군의 함성 돌격에 주진우를 급히 몰아쳤다. 혼전의  와중에는 

어디서 날아오는 화살과 칼에 몸을 상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초도운

은 그런 혼전의 한 가운데 있고 싶지 않았다. 

  '옆으로 틈을 줄테니 좌측으로 빠지시오. 추적하지 않겠소.'

  전음을 보낸 초도운은 검으로 주진우의 장도를 밀어내듯 쳐내며 거

리를 두었다. 주진우는 그의 일격에 손목이 얼얼함을 느끼고 바로 좌

측 기병대로 말을 달렸다. 초도운은 그를 추격하지 않고 우익으로 말

머리를 돌렸다. 

  혼전을 벌이고 있는 좌익으로 달려간 주진우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 

사이로 파묻히는 초도운의 잔영을 슬쩍 보았다.

  '아직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자 같은데 이런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니. 과연 중원무림의 저력은 무섭구나.'

  거대한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주진우의 상념을 깨트렸다. 주진우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오유지의 기병대를 향해 박차를 가했다. 

  양산월은 회교성전사단 삼백을 직접 거느리고 공격의 선봉에 섰다. 

대장군이 선봉에 선 이상 제장과 병사들은 힘을 다해 싸우는  법이었

다. 하지만 일군의 대장군이 최선봉에  섰다는 것은 전 군의  생사를 

그 한 번의 공격에 승부를 건다는 말이었다. 양산월도 알고 있는  매

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여기서 패한다면  다시 병력을 모을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양산월은 적 중군을 돌파하면서 우익을 계속 주시했다. 우익이  적

극적으로 나선다면 이번 전투에서 이길 확률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다. 주진우의 말에 우익이 술렁였고 지금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

는 듯 보이지만 전투가 격렬해져 동료가 사상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

을 보일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전에 적 중군을 돌파 오유지를 잡아야 했다. 양산월은 회교 성전

사단을 독려하며 추행지진으로 중군을 계속 뚤고 앞으로 앞으로 나갔

다. 양산월이 휘두르는 군도에 좌우로 달려드는 적 보병의 시체가 수

숫단처럼 쓰러져갔다.  

  주진우는 이를 악물고 좌우에서 협공해 오는 적 기병대를  막았다. 

오유지의 기병대는 숫자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지방군이긴 하지만 정

규군사훈련을 받은 이들 답게 기병끼리의 전투에 익숙한 모습을 보였

다. 그에 반해 주진우의 북령채 기병대는 강호상에서 소규모로  싸우

는 전투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조직전에서 밀리고 있었다. 이 공

백을 주진우를 비롯한 몇 명 고수들의 개인능력으로 막고 있지만  과

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주진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좌우로 달려드는 적 기병창을 쳐내며 좌

충우돌을 벌였다.

  '장군 시간이 없소이다.' 

  푸학. 

  거친 피보라와 함께 눈앞이 확 트이며 넓게 포진한 궁수대의  모습

이 보였다. 양산월은 군도를 옆으로 뉘이며 좌우 측에서 달려드는 적

군을 무시하고 말을 몰았다. 양산월의 돌파에 놀란 궁수들은  일제히 

시위를 메겨 양산월을 노렸지만 그 좌우에는 아군 보병이 산개해  있

었다. 이들이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양산월의 말은 빠르게  궁수대에 

난입했다. 그 뒤를 따라 핏물을 뒤집어 쓴 성전사 이 백이 악귀 같은 

몰골로 함성과 함께 질주해왔다.  일백은 적진을 돌파하면서  이들의 

가슴에 묻은 것이다. 이들의 함성에 궁수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정확한 조준을 하지 못하고 화살을 날렸다. 

  일사가 끝나고 다시 시위를 당겼을  때 양산월이 궁수대에 난입했

다. 단기필마였지만 일세의 무장이자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기 

때문에 무장과 방어력이 약한 궁수대로는 버거운 상대였다. 궁수대는 

급격히 와해되갔다. 그때 오유지의 군막에서 두 명의 참장이 각기 마

상 언월도와 낭창을 휘두르며 수십 명의 친위병을 대동하고 달려나왔

다.

  이들의 응원에 궁수대는 한 숨을  돌리며 뒤로 빠르게 퇴각 할  수 

있었다. 양산월은 두 명의 참장을 향해 군도를 옆으로 뉘며 돌격해갔

다. 

  두 참장이 터트리는 함성과 하늘에서 번쩍이는 언월도와 낭창이 수

십갈래의 예기를 뿜어대며 양산월을 난자해갔다. 양산월은 두 참장의 

병기 사이로 드러난 작은 틈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두  참장은 

무장이기는 했지만 강호의 고수라고 하기에는 손색이 많았다. 고수가 

하수를 베는데는 일격 이상이 필요 없는 법. 양산월은 가볍게 군도를 

놀렸다. 

  파각 파각. 

  갑주가 튀어 오르며 두 장군의 허리가 뒤로 크게 꺽였다. 참장들의 

호위속에 이 모습을 지켜보는 오유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  두 

참장이 일격에 당했다면 여기 있는 이들로는 막아 낼 수 없는 고수였

다. 

  '적군에 저런 고수가 있었다니.'

  오유지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금의 전황

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퇴각 퇴각한다."

  좌익을 우회한 기병대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잊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말 머리를 급히 돌렸다. 주위에 흩어지던 궁수대도 급

히 자기 살길을 찾아 도주했다. 양산월은 오유지를 향해 박차를 가했

다.

  여기서 오유지를 베야 산서의 군병들이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 

도지휘사사의 명이 없이는 각 위지휘사사와 천호소가 마음대로  병력

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유지를 비롯한 참장 등 적의 수

뇌부는 모두 말을 탄 반면에 양산월과 성전사들 중에는 오직  양산월 

혼자만 말을 타고 있었다. 양산월의 기병대는 오유지의 기병대와  힘

겨운 격전을 치루고 있었다. 

  양산월은 말머리를 돌렸다. 아쉽지만 지금은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 

할 때였다. 격전이 한 창 벌어지고 있는 전투장에 있는 오유지의  군

대는 장군이 도주한지도 모르고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양산월은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적장이 도망갔다. 투항하라.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양산월의 고함을 성전사들이 받아 합창했다. 전투를 벌이던 병사들

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후방을  지키던 궁수대는 어디로 같는  지 

보이지 않았고 장군이 있던 군막은 텅 비어 있었다. 순간 강호  군소

문파로 구성된 우익은 급히 북쪽으로 퇴각했고 그 근처에 있는  병사

들까지 그들을 따라 도주했다. 우세를 차지하고 있던 오유지의  기병

대는 급히 말머리를 돌려 퇴각했지만 주진우는 그들을 추적하지 못했

다. 대신 기병대를 몰아 적 좌익의 보병을 위협하여 중군으로 모이게 

했다. 

  강호군소문파로 이루어진 우익을 상대하던 양산월의 부대도 이들을 

추격하지 않고 중군을 포위해 들어갔다. 이들은 목청을 돋우어  고함

을 쳐댔다. 

  "투항하라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병사들은 지휘부가 자신들을 버리고 도주했다는 것을 알고  여기저

기서 병장기를 버리고 손을 들었다. 

  정난지변 때 연왕은 투항한 건문제의  병사나 장군들을 죽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니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있는 연왕은 그  병사들과 

장군들을 죽여 군심을 영영 멀어지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복

잡한 속내는 알지 못하지만 내전 중에 투항한 병사와 장교를  죽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급 장교들과  사병들은 

어렵지 않게 투항을 한 것이다. 

  병사들이 투항 의사를 밝히자 양산월은 오유지가 도주한 쪽을 바라

보며 주먹을 꾸욱 쥐었다. 오유지가 살아서 도망친 이상 산서 일대의 

위지휘사사와 천호소의 병력이 바로 집결해  언제든지 쳐들어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앙군이 올 때까지 잠시 긴 평화를 원했던  양산월

에게는 작지만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양산월은 주진우를  호출했

다. 주진우가 기병을 이끌고 양산월 앞에 와 군례를 취했다.

  "부르셨습니까."

  "정말 수고가 많으셨는데 한 가지 일을 더 해 주셔야 겠소."

  "뭐든지 명만 내리십시요. 광명의 그날까지 이 한 몸 분골쇄신하겠

습니다."

  "장군 휘하의 기병과 성군 오천을 이끌고 인근 위지휘사사와  천호

소를 돌며 항복을 받아 오시오. 그들의 정예는 다 이곳에 모였을  테

니 그 병력이면 어렵지 않게 일을 진행 할 수 있을 것이오."

  "존명."

  장안 거병의 소식은 가을의 끝물을 알리며 밀려오기 시작한 북서풍

을 타고 남쪽으로 급격히 날아갔다.  이 소식이 응천부에 접수가  된 

것은 구월 구일 중양절의 태양이 가라 앉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초

저녁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