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서성의 군정(軍政)을 장악하는 위소(衛所)를 통솔하며 평상시의
최고군사영도기구(最高軍事領導機構)인 도지휘사사의 군영은 여섯 개
의 전각이 가운데 하나의 전각을 호위하듯 배치되었고 각 대전 각은
중간 크기의 전각 여섯 개와 그 전각에 딸린 행랑 열 두개를 호위하
듯 거느렸다. 전각 사이 사이 순찰병들이 삼삼오오 순찰을 돌았지만
절도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군영의 정문은 장안성의 성문보다는 작았지만 곳곳에 설치된 망루
에 가지런한 기창(旗槍)이 군영임을 알게 했다. 남쪽 각루를 지키는
양육은 긴 하품을 해댔다. 짧아지는 그림자에 방금 먹은 점심이 눈을
무겁게 했기 때문이다. 옆의 고참 전칠은 반쯤 감긴 눈으로 병든 닭
마냥 고개를 꾸벅였다. 양육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옥문관으로 끌려간 동료들의 얼굴이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
은 작은 연줄이라도 돼서 은 몇 냥을 쓰고 이곳에 남을 수 있어서 다
행이었다. 근무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났지만 전방에서 칼을 맞대고 있
는 것보다 이곳이 몇 배나 좋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양육은 저려 오는 다리를 털며 망루에 몸을 비스듬이 기댔다. 긴
하품이 다시 터져 나왔다. 그 하품의 끝물을 타고 한 필의 말이 급히
질주해왔다. 엉성하게 걸친 갑주 여기저기에 붉은 핏자국이 배어있었
고 말의 엉덩이에도 두 대의 화살이 부러진 채 매달려 있었다.
양육은 급히 전칠을 깨우며 옆에 달린 종을 두드렸다. 양육의 종소
리에 선잠들을 깬 망루의 병사들은 사방을 살폈고 전각 안에서 순찰
을 돌던 병사들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말은 정문을 거칠게 통과했다.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말
을 막으로 했지만 말탄 기수의 호통에 놀라 손을 거두었다.
병사들은 무슨 일인가 여기 저기서 모여들었다. 말을 탄 기수는 중
앙전각으로 급히 달려갔고 경보소리에 놀란 도지휘사 오유지가 지휘
동지와 첨사 참장들을 거느리고 대전 밖에 까지 나와 있었다.
기수는 급히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군례를 올렸다.
"반란이 일어나 남문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도지휘사 오유지는 멍한 표정으로 남문수비대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 반란이라니? 누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이냐? 적은
몇 명이더냐?"
정백호는 고개를 떨군 채 들지를 못했다. 그는 갑자기 기습해 온
적에 정신없이 도주를 할 생각을 했지 적의 정황을 살필 겨를이 없었
다. 그는 책임 회피를 위해 급급히 입을 열었다.
"황망 중이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적이 몇 만인지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남문 주위에는 온통 적의 모습뿐이었습니다."
오유지는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걸 느꼈다. 원래 도지휘사사에는
한 개 직속 위(偉)오천 육백 명과 두 개의 수어천호소(守御千戶所)의
이천 이백 이십 사명 도합 육천 팔백 이십 사명이 머무르고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부상의 숫자였다. 게다가 전국의 정병을
옥문관에 집결시키고 있는 터라 장안성에는 이천 오백 명 가량의 병
사만 남아 있었다.
장안에 이만한 병력이 남은 것은 옥문관 집결한 삼십만 대군이 쓸
병기와 식량 등 각종 군수물자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적이 수만이라면 싸우나 마나한 전력차이였다. 그걸 적에게 탈
취 당한다면 자신의 생명 하나 죽는 걸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인근의 위지휘사사와 천호소들은 뭘 했다는 거냐? 적이 장안까지
진격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오유지는 우선 적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말뿐이라도 위지휘사사
와 천호소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섬서 일대의 위지휘사사
와 천호소의 통괄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그때 거친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울리며 도지휘사사의 정문으로 밀
려들어왔다.
오유지는 고함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냐?"
오유지의 좌우에 있던 참장들이 군도를 빼들고 주위에 산개 해 있
던 병사 수십 명을 이끌고 정문쪽으로 달려갔다. 대소 전각과 행랑에
서 병사들이 갑주를 제대로 걸치지도 못하고 손에 잡히는 병기를 대
충 들고 뛰쳐나왔다.
잔살마군 주진우는 북령채의 기병 삼백을 이끌고 대안탑을 거쳐 남
문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성밖의 관도를 오가던 사람들은 기겁을 하
며 사방으로 피했고 몇 명은 욕지거리를 해댔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지휘사사의 군병들이 정신을 차리고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난입
하여 적을 헤집어 놓아야 했다. 거친 말발굽 소리와 울렁거리는 몸이
피를 빠르게 돌렸고 머리는 차갑게 식혀주었다.
황색기가 올라와 있는 남문 주변에는 수천 명의 회교 성군들이 건
문이라는 깃발과 머리띠를 두르고 박도를 움켜쥔 채 모여 있었다. 이
들은 주진우가 입성을 하자 일제히 함성을 터트렸다.
"주장군 만세. 만세. 만세."
주진우의 뒤를 따르던 북령채의 기병들은 자신들이 장안성을 공격
하는데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수천 명이 박도를 휘두르며 환
호해주자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용기가 용솟음 쳤다.
"모두 나를 따르라."
주진우는 곧장 도지휘사사의 군영으로 말을 몰아갔다. 기병을 선두
로 수천의 성군이 그 뒤를 따라 도지휘사사로 진격해 들어갔다. 무장
이라고는 박도가 전부였지만 수천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서로가 서
로에게 힘이 되어주어 그 기세는 백만 대군 못지 않았다.
도지휘사사의 망루마다 종소리가 요란히 울렸고 정문이 거친 소리
를 내며 닫혀지기 시작했다. 주진우는 망루에서 간간이 쏘아대는 화
살을 장도로 쳐내며 반쯤 닫혀진 정문으로 말 머리를 디밀었다. 순간
좌우에서 몇 자루의 긴 장창이 주진우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잔살마군 주진우는 티무르 제국이 중원에 침투시킬 만한 명장이었고,
강호에서도 고수로 손꼽히는 인물인데 일개 병사가 휘두른 창에 맞을
턱이 없었다.
주진우는 자신이 창을 피하면 돌격하는 기세가 약해 질까봐 전 공
력을 실은 군도로 좌우에서 날아드는 장창을 쳐냈다. 두 대의 창대가
반듯이 베어지고 세 대의 창대는 옆으로 튕겨지며 창수를 땅바닦에
나뒹굴게 했다. 주진우는 문 좌우에서 달려드는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각 사이사이에서 쏱아져 나오는 병사들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
다. 그의 등뒤에서 뒤따라오는 북령채의 기병대와 정문 수비병간에
어우러지는 병장기 격타음과 비명성이 울려퍼지고 곧 말발굽 소리만
남았다.
주진우의 기병대가 도지휘사사의 정면 전각을 돌파해 중문에 도달
했을 때 급히 달려온 성군이 정문을 돌파했다. 군영안에 있던 병사들
은 수천이 넘는 성군의 기세에 사기가 급격히 내려앉았다. 전투시에
는 적의 상태가 하나 하나 제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가장 앞에서
활약하는 자들의 모습만 크게 확대되어 보이는 법이었다. 때문에 도
지휘사사의 병사들에게는 북령채의 기병대의 큰 모습에 뒤따르는 병
사들도 자신들 보다 더 크게 보였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장수들은 주진우의 기병대를 제외한 성군들의
무장수준이 빈약한 것을 보고 급조한 병사들이라고 판단 병사들을 독
려하며 힘껏 싸우려고 했지만 이미 퍼지기 시작한 공포를 잠재울 수
는 없었다.
병사들은 뒤로 계속 해서 물러났고 장수들도 어쩔 수 없이 물러 날
수 밖에 없었다.
본영에서 전황을 살피던 오유지는 격노해 도주해 들어오는 병사들
을 단칼에 내려쳤다. 붉은 피보라와 함께 수급 하나가 높이 치솟아
오르자 병사들이 주춤 거렸다.
오유지는 집결하기 시작한 병사들을 보고 호통을 쳤다.
"군령이다. 어서 나가 싸워라. 싸우지 않는 자는 참하리라."
오유지의 호통성에 장수들도 병장기를 빼들고 병사들에게 고함성을
터트렸다.
"나가라 나가서 적과 맞서 싸워라."
그래도 산서에서는 최강의 정병을 자랑하는 도지휘사사의 군병들이
었기에 도지휘사사의 군령에 몸을 돌렸고 장수들도 몸을 아까지 않고
선두에서 주진우의 기병대를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주진우는 선두에서 언월도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장수를 노려보며
말을 거세게 몰았다. 여기서 약간이라도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성군의 전투력을 모르는 현 상황에서 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집단간
의 싸움은 그 평균전력의 싸움이 아니라 기세의 싸움이었다. 주진우
는 장도를 옆으로 비스듬이 세워 마상돌격도법을 펼쳤다. 말을 추진
력을 이용 일격에 상대의 목을 베는 이 도법은 기마병이라면 누구나
처음에 배우는 도법이었다.
"이야압."
함성과 함께 달려오는 언월도의 장수를 끝가지 노려본 주진우는 그
의 헛점을 파고 마상도를 크게 휘둘렀다. 서걱 무가 쓸리는 듯한 소
리와 함께 박달나무로 만든 창대와 장수의 목이 옆으로 꺽였다. 붉은
피보라가 솟구쳤다. 잔살마군 주진우는 더 돌아보지도 않고 좌우로
말을 돌려가며 병사들을 헤집었다. 그 뒤를 기병대가 따랐고 성군이
받혀 주었다.
기병도가 번뜩 일 때마다 피와 비명성이 난무했고 문안으로 꾸역꾸
역 밀려드는 병력과 군영 사방을 넘어 오는 성군에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사방팔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장수들은 혼란을 수습하
려고 했지만 한 번 무너진 둑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전황을 살피
던 오유지는 관모를 내 팽개치고 관복을 벋어 던지고 병사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양산월이 장안성의 관청을 접수하고 마승 하무지청이 일천 보군으
로 형옥을 접수할 때 그곳을 지키는 관병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성
문이 정체 모를 적들에게 돌파 당했다는 보고를 들은 후 대부분의 관
리와 관병, 옥리들이 사방팔방으로 도주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과 장
안성의 유지 부호들은 양산월이 비워둔 동문을 통해 장안성을 빠져나
갔다. 그 와중에서 고관대작과 부호들이 키우고 있는 가병이나 호장
무사들과 작은 충돌이 있었지만 양쪽 다 큰 피해는 없었다.
양산월은 각 채주들에게 개인적인 약탈과 살인, 방화, 강간은 엄금
했지만 건문제의 이름으로 징발되는 재물은 허락했다. 자신들은 장안
성을 약탈하기 위해서 온 북령채의 산적들이 아니라 건문제를 다시
세우기 위한 군대였기 때문이다.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이 급히 성을
탈출하는 바람에 귀금속들을 챙기지 못한 덕으로 대부분의 재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렇게 장안성의 고관대작과 부호들의 창고에
서 긁어모은 재물이 보석만 삼십 상자가 넘었고 금은이나 비단은 헤
아릴 수 없었다.
얼마 전 까지는 대명의 깃발이 휘날리던 포정사사 건물에는 건문이
라는 익히 알지만 지금은 낯설은 깃발이 수도 없이 펄럭였다.
넓은 대청의 상석에는 양산월이 자리했고 그 좌우로 어깨와 목에
힘이 꽉 들어간 채주들이 도열했다. 대청 가운데에는 장안성에서 긁
어모은 각종 보물 수십 상자가 보광을 뿜어 대었다.
양산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개의 상자를 가볍게 들어 주진우에게
덥석 안겼다. 주진우는 깜짝 놀라 상자를 받으며 한 걸음 휘청 물러
났다. 다른 채주들은 크게 떠진 눈으로 주진우를 바라봤다. 다른 채
주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양산월은 보석 상자들을 하나씩 각
채주들의 가슴에 덥석 덥석 안겼다. 채주들은 깜짝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모두들 가슴이 쿵쾅거리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몇
명은 상자 안에 뭐가 있는지 손을 넣어 이리 저리 헤집기도 했으나
좌우에서 터지는 헛기침 소리에 손 놀리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손
을 상자 안에서 떼지는 않았다.
분배가 끝난 양산월은 손을 탁탁 털고 자리에 앉아 경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각기 돌아가 병사들을 위로하고 날이 밝으면 군량을 풀어 무사들
을 배불리 먹이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시오."
"존명."
전각을 나서는 채주들은 반짝거리는 눈 아래 찢어질 듯 벌어진 입
이 다물어 질줄 몰랐다. 양산월은 막 나가려는 주진우를 불러 세웠
다.
"주장군은 잠시 남으시오."
"네."
주진우가 몸을 돌려 양산월 곁에 가자 양산월은 사위를 살짝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우선적으로 섬서 일대 각 주현과 위소에 건문제의 명으로 복속하
라는 군령을 내리게. 낙오병은 잘 수습하여 우리 군으로 편입하고
식량을 나누어주면서 계획대로 모병을 실시하게."
"알겠습니다."
"모병의 정도에 상관없이 성군은 각기 오천 씩 자네와 하무지청이
맏게. 성전사 삼 백은 내 직속 친위대에 둘 것이니 어떠한 일이 있어
도 이들은 최후까지 그 전력을 온전히 유지해야 하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전력은 이들 뿐이네."
"잘 알고 있습니다."
양산월은 주진우의 어깨를 투닥여 주었다.
"그럼 수고하게."
날이 밝아오자 장안성 곳곳에 건문제의 이름으로 방이 나붙었고 여
기저기서 성전사들이 쌀과 잡곡을 일반 평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양산월은 휘하 친위병으로 꾸민 성전사 호위대와 함께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곡식의 배급상황과 모병 상황을 살폈다. 배급은 잘 이루
어지는 반면 모병은 한산했다. 양산월은 눈을 찡그렸다. 병력이 모이
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진행시킬 수 없었다. 양산월은 옆의 친위병에
게 말을 건넸다.
"며칠 후부터 오가일병제(五家一兵制)를 실시하게."
오가일병제란 다섯 가구에 한 명의 병사를 징병하는 것으로 징병
대상은 다섯 가구에서 협의하에 뽑았다. 일을 이렇게 하면 징병되는
병사와 그 가족이 징병하는 군에 대한 반발심보다 그 병사를 뽑은 나
머지 네 가구에 대해 더 깊은 원한을 가졌기 때문에 징병하는 측에서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었다.
양산월은 모병 상황을 살피고 군량창고로 향했다. 성안밖에 수십만
석의 군량이 풀렸는데도 창고는 아직 가득 가득했다. 아무리 퍼써도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군량창고를 지키는 병사들이 잠시 동요를 보
인 가운데 이곳을 지키는 작은 산채의 채주가 황급히 앞으로 나왔다.
"군량상황은 어떤가?"
"이 백 만석이 넘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 쌀은 처
음 봅니다."
양산월은 채주의 어깨를 투닥여 주었다.
"이것 보다 더한 보화가 자네 주머니에 들어 갈 테니 열심히 하
게."
"네 잘 알겠습니다."
양산월은 웃으며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병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터트렸다.
"양산월 장군님 만세 만세 만만세."
"병기고로 가지."
수십개의 병기고는 여기저기 이빨 빠진 모습들을 보였고, 병기고
여기 저기에는 자신의 손에 맞는 병기를 찾는 녹림 산채 무리들과 성
군들이 뒤섞여 있었다. 녹림 산채의 무리들은 반짝이는 갑주에 큰 군
도를 차고 서로의 모습을 보며 낄낄대었다. 그에 반해서 성군들은 각
기 자기 마음에 드는 갑주와 병장기를 들고 그 효용도를 점검하는 모
습이 보였다.
"후후후. 옥문관에 가야할 갑주와 병기들을 이제는 너희들을 노리
는 칼날이 되어 천하를 질타하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양산월의 등장을 알아챈 병사들이 일제히 군례를 취했다.
"장군님을 뵙습니다."
양산월은 고개를 끄떡이며 병기고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 병기면
십만 대군이 충분히 무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산월의 가슴은
점점 크게 부풀어올랐다.
"군마의 숫자는 얼마인가?"
호위 전사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군마의 대부분은 옥문관으로 징발되어서 산서 일대에는 이렇다할
군마와 기병대가 없습니다."
양산월은 고개를 끄떴였다.
"차라리 잘된 일이야. 군마가 있다고 기병이 바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에게 군마가 없다면 적들도 군마가 없지 않겠나. 당분
간은 말이지. 어쨌든 군마가 아니더라도 말과 소를 최대한 확보해 놓
게"
"알겠습니다."
그때 한 명의 연락병이 급히 양산월에게 달려왔다.
"장군님 적병이 함양에 출몰한다는 보고입니다."
양산월은 고개를 끄떡이며 몸을 돌렸다.
"알았다. 제장들을 소집해라."
병사들도 서둘로 자신들이 소속된 곳으로 달려갔다. 여기저기서 병
장기들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발자국 소리와 어울려 귓가를 때렸다.
장안성을 탈출한 섬서 도지휘사사 오유지는 인근 위지휘사사로 급
히 달려가 병력동원을 명령했다. 오유지는 위지휘사사에서 각 천호소
의 병력을 집결시키는 한 편 의용군이라는 명복하에 지방 호족들과
무림 군소문파들이 가병을 이끌고 나서줄 것을 거의 강제적으로 독려
했다.
화산파에도 사람을 보냈지만 화산파는 장안성에서 탈출한 제자들이
양산월이 건문이라는 깃발을 내 밀었다는 말에 강호는 황실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다는 것을 들어 일체의 제자들이 동요하지 말 것을 명
했다. 양산월이 단순한 녹림도적이라면 화산파에서 나서겠지만 건문
제의 친군(親軍)임을 내세웠다면 무림 문파가 끼어들기에는 껄끄러운
바가 많았다.
오유지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산서
의 병권을 장악한 도지휘사사이지만 황제가 직접 내려준 보도를 가지
고 있는 화산파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언가도 고수들이 모
두 출타중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어 전황에서 발을 뺐다. 하지만 이런
비상시국에 산서에서 도지휘사사의 눈을 거슬리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화산파와 언가가 전부였다. 그 외의 군소문파들은
제자 몇 명이라도 보내 생색이라도 내야 안전했다.
오유지는 이렇게 사흘만에 긁어모은 군사 일만 칠천을 수습하여 바
로 장안성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도지휘사사가 자신의 군영을 탈취
당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참수형이었다. 게다가 장안성에는
옥문관으로 보내야 할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가 있지 않은가.
오유지는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군수물
자는 되찾아야 했다. 그래야 이리저리 손을 써서 목숨이라도 구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일만 빠르게 진압되면 큰일은 작게 작은
일은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었다. 행정을 담당하는 포정사사와 형옥
을 담당하는 안찰사는 아예 코빼기도 안 내밀고 있지 않은가. 오로지
자신만이 저 반란군과 싸우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닌가. 오유지는 그렇
게 자신을 위로하며 병사들을 닥달했다.
오유지는 장안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함양에 진을 치고 척후를
보내 장안성의 동태를 파악해 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