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패 (爭覇) 편
1. 달 그림자 천강을 비추고.
장안성은 한대부터 철저한 계획도시로 각 신분에 따라 거주할 수
있는 거주지가 구분되어 있었다. 고관대작들이 거주하는 곳은 주작대
로의 동북쪽 방면이었고, 이곳에 각종 행정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다.
신분이나 재력이 떨어지는 자들은 동남쪽으로 밀려나있었다. 그래도
주작대로의 동쪽에 사는 이들은 서쪽에 사는 평민들을 보고 목을 뻣
뻣이 세웠다.
신분의 차이인지 건물들도 주작대로의 동쪽은 건물 한 채가 매우
커서 넓은 공간을 차지한 반면 서쪽 지역은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모
여있었다. 이 서쪽 지역에서도 빈민가에 속하는 서남향 구석진 곳에
는 밤이 깊어 가도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밤을 밝혀줄 유
일한 빛은 달이었는데 때마침 그믐이라 어두운 하늘에 낡고 작은 건
물들이 침침하게 잠겨들었다.
딱딱.
이경을 알리는 야경꾼의 야경소리가 작은 골목 골목을 누비며 돌아
다녔다. 야경꾼의 모습이 멀어지자 침침하게 잠겨 들은 건물들 사이
로 여기저기서 부스럭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탁.
치이익.
부싯돌이 거세게 부딪치며 등잔의 심지에 불을 당겼다. 작은 불꽃
이 거칠게 내 뱉어지는 숨소리에 이리저리 몸을 틀자 얼굴 없는 무수
한 그림자들이 이매망량(이매망량)인냥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칼날 같은 글씨가 씌어진 코란 위로 투박한 손이 올려졌다.
"이제 지하드의 때가 왔다."
그 목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듯 수백 개의 눈동자
가 일제히 떠지며 새파란 광망을 뿜어대었다. 이들의 시선은 성전을
덮고 있는 매우 평범한 인상의 중년인에게 머물렀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것 같은 사내였다.
'실로 오랜 기다림이었다. 양산월 장군을 따라 중원에 들어 온지
십 년. 이제야 그 결실을 맺게 될 때가 온 것이다.'
티무르 제국에서 중원에 침투시킨 정보조직인 광명안의 삼대 수뇌
중 한 명이자 중원 회교의 부흥을 책임진 양사오는 손에 쥔 코란을
뜨겁게 움켜쥐었다. 그의 앞에는 살아 남은 중원 회교도들 중에 자질
이 뛰어난 자들을 뽑아 전사로 훈련을 시킨 성전단의 단원들이었다.
이들 외에도 수만 회교도들을 점 조직으로 연결 유사시에 한 곳에
서 무장 봉기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해두었다. 이 일을 꾸미는데 걸린
시간이 십 년이었다. 이제 그 결실을 거둘 때였다.
"형제들 이제 우리의 사원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사르며 교도를 참
살한 저 간악한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가 왔다."
삼 백 명의 성전사가 새파란 빛을 토했다. 이들 모두 회교의 옥 때
가족들을 잃은 자들이라 명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었다. 그 원한을
짖 씹으며 익힌 무공을 오늘에서야 펼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양사오는 성 전사 하나 하나의 손을 꼭 잡았다. 이들의 임무는 중
원 회교 성군을 이끌고 중원 내부를 휘젓고 다니며 적의 보급로를 차
단하고, 중원 내부에 제 이 전선을 형성 전쟁의 국면을 유리하게 이
끌고 나가는 것이다. 이 작전의 첫 작전지가 비단길의 시발점이자 옥
문관으로 향하는 대명의 보급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장안성이었다.
이 장안성 거병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옥문관에 집
결한 명군은 보급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 후방
에 깊숙이 침투한 부대의 최후가 그러하듯 이들의 대부분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 않은 죽음의 공포보다 명에 대한 원한이 더 깊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훌륭한 전사였다.
양사오는 성 전사 하나 하나의 손을 잡았다.
"이번 장안성 점령은 작전이 아니라 훈련이다. 훈련 중에 다치는
자는 성전에 나설 의지가 없는 자로 알겠다. 신의 축복이 너희와 함
께 할 것이다."
양피지에 검게 그려진 장안성의 내부도가 탁자 위에 넓게 펼쳐졌
다. 북령채주. 아니 티무르 제국의 오대 명장이자 광명안 무력총책이
자 제국의 동정대원수 양산월은 자신과 함께 중원으로 침투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잔살마군 주진우와 마승 하무지청을 앞에 두고 장안성
의 내부도를 짚어나갔다.
"내일 정오에 전 병력을 이끌고 장안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이오."
주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부로 스며들어가 기습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장안
도지휘사사의 정병이 옥문관으로 대거 이동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적
지 않은 병력이 남아지 않습니까. 아군의 피해도 적을 테고요."
"우리의 목적이 장안성의 점령에만 있다면 주장군의 제안이 가장
합당한 계책이오. 하지만 우리의 임무가 장안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
님을 알아야 하오. 나는 이번 진공작전으로 두 가지 효과를 노리고
있소. 하나는 장안성 내외에 우리의 위세를 당당히 보임으로써 군소
군벌과 무림문파들이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려함이오. 두 번
째는 우리 북령채가 병력과 개인 전투력은 일반 병사와 별 차이가 없
지만 대규모의 조직적인 전투를 해 본 경험이 전무하오. 섬서에서 표
맹을 상대로 한 훈련 가지고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소. 이번에 확실
한 실전을 격어 보게 된다면 전투의 감각을 어느 정도 익히게 될 것
이며 적의 대군에 맞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오."
주진우와 마승 하무지청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양산월은 장안성의 지도를 짚어 나갔다.
"오시가 되면 양사오 교령이 이끄는 회교 성전사들이 장안성의 크
고 작은 성문들을 일제히 점령하고 시내 곳곳에서 성군들이 무장봉기
를 할 것이오. 그때에 맞추어 기병을 맏은 주장군은 대안탑(大雁塔)
을 거쳐 소한로(小寒路)를 통해 오시에 남문을 돌파 주작대로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서쪽에 있는 오군도독부를 급습하시오. 장군의 기병
대가 얼마나 빨리 오군도독부를 급습하느냐에 따라 이번 작전의 승패
가 달렸소."
"목숨을 다 바쳐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제 이로는 하무장군이 만수로(萬壽路)를 거쳐 장락로(長樂路)로
들어가 같은 방법으로 서문을 돌파 형옥을 점거 그 안에 있는 자들을
규합하시오. 두 장군이 두 성문을 돌파한 순간 나는 보군을 이끌고
동북의 관청과 고관대작들의 사저를 점령하겠소."
잔살마군 주진우는 고개를 들었다.
"헌데 왜 오시입니까? 보통의 기습은 새벽이나 저녁에 하는 걸로
아는데요?"
"여긴 후방이라 성문을 지키는 병사는 거의 없고 모두 나태한 상태
기 때문에 성문만 탈취하는 데는 성안의 성전사들로 충분하오. 문제
는 섬서도지휘사사(陝西都指揮使司) 휘하에 있는 오천 정병이오. 이
들이 성문 근처로 전진 배치되는 시간이 새벽과 저녁이오. 가급적 이
들과의 전투를 피해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오. 일단 우리가
성안으로 들어간다면 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오. 더우기 수
만의 성전사가 합세하기로 했으니 저들의 두려움은 더할 것이오."
잔살마군 주진우와 마승 하무지청은 고개를 끄떡였다.
"섬서에서 특별한 병력의 움직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소. 적들은
우리의 장안진공작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오. 그리고
이 번 작전은 우리 셋과 양사오 교령(敎領)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는 건문회의 일로 알려져야 하오. 회교 성군들도 이마에 건문이라는
디를 두르고 있을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
"가서 고수들과 채주들을 회의청에 집결시키시오. 내 곧 뒤따라가
겠소."
"존명."
두 장군이 나가자 양산월은 의자에 앉았다. 양사오를 비롯한 네 장
군과 함께 중원에 들어온지 어느새 십 년이 지났다. 그가 한 일은 자
신보다 먼저 들어와 터를 잡고 있던 삼혈맹의 시혈마군과 접선하는
일이었다. 시혈마군에게서 들은 정보로 중원에서 손쉽게 장수와 병력
을 긁어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강호와 녹림.
양산월은 임무를 셋으로 나누었다.
첫째가 중원 회교도의 규합이었다. 이것은 교리에 밝은 양사오가
맏았다.
둘째는 강북의 녹림통일이었다. 이 임무는 자신과 주진우, 하무지
청이 맏아 오늘날의 북령채를 이루었다.
마지막 한 명은 기병대의 창설을 위해서 서북삼성을 휩쓰는 마적단
을 장악하여 오늘날의 월랑대를 이루었다.
처음에는 계획대로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어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원은 그의 생각 밖으로 단단했다. 그를 괴롭힌 것은 관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는 강호의 기인이사들이었다.
화산파 제자에 의해서 회교조직이 완전히 드러나 제 이의 법란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 도적질이나 하는 걸로 알았던 녹림도에도 고
수와 재주가 많아 곳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갔고 녹림은 차차 그의 발 아래로 모여들었
다.
그 와중에 그는 쌍덕을 만났다. 아니 쌍덕이 자신을 잡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는 산서 녹림 일통 과정에 그는 산서 최대의 흑도문
파인 흑룡방을 장악하기 위해 손을 썼었다. 흑룡방의 저항은 완강했
지만 그의 손을 피하지는 못했다. 헌데 흑룡방을 거의 손에 넣었다고
생각 햇을 때 몇 명의 고수들이 북령채를 급습해 왔다.
쌍덕이 이끄는 존덕문의 고수들이었다. 양산월 자신도 몇 년 동안
강호를 돌아다니며 적수가 없다고 여겼는데 그들을 상대하며 그의 생
각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늘 밖의 하늘을 본 기분이
었다. 그때 양산월은 자신의 임무가 산산조각이 나고 자신의 목은 효
수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쌍덕은 티무르 제국의 동진에 대해
서 관심이 많았고, 의외의 협상을 제시해 왔다. 양산월은 거절 할 수
없었다. 그는 티무르 제국이 옥문관을 넘을 때까지는 복종에 가까운
협조를 하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이제 그 굴욕의 시간은 끝이었다.
자신이 장안에서 거병하여 이 해 겨울동안만 중원 내부를 휘젓고
다닌다면 옥문관의 삼십만 대군은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아주 추운 겨울을 나야 했고,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
티무르 제국의 대군이 막북에서 진격해 들어 올 것이다.
물론 장안성을 탈환하기 위해서 중원에 남은 대명의 정병이 진격해
올 것이다. 하지만 장안성을 탈환할 정도의 대군을 모으는 데만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한 곳에 농성하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중원은 넓었고 수만 대군이 숨을 곳도 많
았다. 최악의 순간 자신이 실패 할 때를 대비해 서북삼성의 마적단을
통일해서 강력한 기병대로 만든 월랑대는 부르지 않았다.
양산월은 불현듯 월랑대를 이끄는 그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목
을 좌우로 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손에 끌린 장안성에 몇 겹의 주름이 잡혔다.
회의실로 쓰고 있는 대전 안에 집결한 고수들과 각 산채의 채주들
을 양산월은 번쩍이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양산월의 눈은 자신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는 일월쌍도객을 비롯한
고수들과 채주들을 면면이 훑었다.
"나는 대명제국을 바로 세우고자 하오."
고수들과 채주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커진 눈으로 양산월을
바라보았다.
"초 총채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잔살마군 주진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양장군님께서는 폐하로부터 서북 삼성의 병권을 부여받은 동정대
원수이십니다."
채주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폐하라니? 동정대원수라니? 이
들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나마 대세를 보는 눈이 있는 일월쌍도객이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
났다.
"폐하라면 건문 폐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승 하무지청이 입을 열었다.
"중원의 황제폐하는 그 분 한 분뿐이시오."
채주들은 파리한 안색으로 양산월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자신들
이 거부를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들 있었
다. 모두들 머리 속에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귓가를 윙윙 거렸다. 일
이 성사가 되면 자신들은 개국공신이 되는 것이었고, 잘못 된다고 하
여도 산으로만 도망을 칠 수 있다면 전과 같은 도적이 될 뿐이었다.
강호와 유림에서는 당금 황제보다 폐제를 정통으로 여기고 있기 때
문에 자신들이 강호인들나 유림의 지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몇 명
의 채주가 고개를 발딱 들었다.
"초 총채주님. 아니 장군님. 승산은 있습니까?"
"이미 강남에서는 청룡장이 강남 호족들과 군벌들을 규합해서 응천
부로 진격 중이고 폐하의 성지가 각 지에 도달했으니 간악한 연적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요."
청룡장이 호족들과 군벌들을 규합 강남에서 거병했다는 말에 채주
들은 서로 급히 의견을 나누었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
을 감추지 않았다.
양산월은 진짜 청룡장이 진격중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건 상관없었
다. 장안에서 수 만리 떨어진 강남에서 벌어지는 일을 채주들이 작전
이 시작되는 내일까지 알 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장안만 접수
할 수 있다면 회교 성전사들과 장안성과 인근 현의 장정을 징발해 병
사로 쓰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장안을 접수하고 병사를 징집하는 데
까지만 필요했다. 물론 그 후로도 쓸 수 있다면 유용하게 쓰일 전력
이었다.
채주 중 한 명이 나섰다.
"총 채주께서는 우리와 동거동락한지 벌써 십 년이 되는데 언제 어
떻게 군문에 투신을 하게 된 겁니까?"
"사실 본인의 선부께서는 남옥의 옥 때 옥사를 피해 신분을 감추시
고 녹림에 투신을 하셨소. 후일 건문 폐하께서 우리 양가를 복권시켜
주셨지만 그때는 이미 녹림도라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연적이
찬위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소. 나는 그 복수를 다짐하고 있
었던 차에 폐하의 성지를 받게 된 것이오. 강남과 강북 곳곳에서 내
일 거병을 하여 연적을 몰아 낼 것이니 승산은 우리에게 있소. 연적
을 몰아낸 후 일정 기간 서북 삼성의 지배권을 내가 가지고 있을 것
이오. 그때 나는 여러분들의 공을 잊지 않을 것이오."
양산월이 공을 잊지 않겠다는 말에 채주들은 가슴 설렘을 느꼈다.
그 동안 양산월은 신상필벌을 엄히 적용했고 재물을 얻으면 혼자 독
차지 하는 법이 없었다. 양산월이 서북 삼성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된
다면 여기 있는 이들은 일성(壹城) 일현(壹縣)의 주인이 될 수 있을
테니 그 복록이 작지 않다 하겠다. 주원장도 탁발승에서 출발하여 명
을 건설하지 않았는가. 주원장의 재주로도 왕국의 창업이 가능했는데
지금 양산월의 능력과 자신들의 세력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는 생
각이 들었다.
처억!
채주들이 앞으로 나와 좌우로 도열하더니 일제히 무릅을 꿂었다.
"장군님께 소인들의 목숨을 맏기니 부디 대업을 이루는데 써주시기
바랍니다."
양산월은 고개를 무겁게 끄떡였다.
"이 양산월 진정으로 그대들의 충심을 잊지 않겠소. 진심이오."
초읽기에 들어간 장안진공작전이 준비되는 곳은 장안에서 삼십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종남산이었다. 이곳은 삼혈맹의 섬서 지단이 있
었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협곡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거대한 황색 깃발에 건문(建文)이라는
글자가 황룡처럼 꿈틀 거렸다. 그 깃발 아래 잡털이 하나 없는 새하
얀 백마에 교룡의 편린인 듯한 붉은 갑주와 투구에 꽂힌 공작깃이 어
울리는 양산월이 긴 마상 언월도를 한 손으로 비껴 쥐고 다른 손으로
말고삐를 가볍게 쥔 채 북령채 산적들로 이루어진 보군 이천을 대동
하고 장안성의 북문을 향해 보무도 당당히 진격해 들어갔다. 성 외곽
에서 밭을 일구던 농민들은 집으로 급히 뛰어갔고 관도를 오가던 사
람들은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작은 구릉을 넘자 넓게 펼쳐진 평원 위에 우뚝 서 있는 장안성의
웅장한 북문이 내려다 보였다. 북문에는 미리 약정한 황색 깃발이 바
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중원 회교의 교령 양사오가 성문 장악을 한
것이다.
양산월은 장검을 빼들었다.
"진격하라. 영광이 그대들 앞에 있다."
양산월의 공격명령에 보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진격해 들어갔
다. 이미 점령되어 열린 성문이지만 성문을 돌파한다는 그 상징적 의
미는 장안성을 지키고 있는 명군이나 공격하는 양산월의 북령채에게
도 매우 큰 것이었다.
북문의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병사들의 시체를 성전사단원들이 정리
를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 희미한 얼굴의 양사오가 웃는 얼굴로 양
산월의 입성을 바라보았다.
말을 몰아 북문을 돌파하는 양산월과 성문을 지키고 있는 양사오,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고, 잠시 서로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떡
였다. 양사오는 그 웃음과 함께 형체를 사람들 사이로 감추어갔다.
최후의 순간을 위해, 아니 그 보다 더한 기다림을 위해 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제 부터 모든 대권은
양산월이 주재해야 했고 그가 책임을 져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집으
로 달려들어가 문을 꼭꼭 닫아걸었고 몇 명의 강호인들만 지붕 위에
서 형체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지만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
다. 온통 이들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성안 곳곳에는 회교 성군
들이 날뛰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된 옷도 걸치지
못하고 무기라곤 박도 한자루 뿐이지만 그 수가 만을 넘었고 비록 산
적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무장을 갖추고 군율도 서 있는 북령채의 무
리들이 성문을 돌파하자 일반 포정사나 안찰사 소속의 관병들은 저항
의욕을 상실했다.
양산월은 군대를 몰아 관청과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밀집해 있는 동
쪽구역으로 진격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