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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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웅들도 그제서야 대형 군막 안의 고수들을 순식간에 중독시킨 독

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사방을  둘러보았

다. 존덕문에 속한 오전 칠각의 고수들은 군웅들을 선동하여 맞서 싸

울 청룡장의 무사들을 살폈다. 헌데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청룡장

의 인사들은 대형 군막 뒤에 있는 고수 들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

의 몫이 아니었다. 어느새 무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전  칠

각의 고수들은 지금 군웅들을 선동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

졌다. 선동을 한다면 맞상대할 적이 있어야 하는데 청룡장은  공성계

로 이들의 투지를 불사를 곳을 아예 없어 버린 것이다. 

  

  오전 칠각의 고수들은 백리무군에게 시선을 주었다. 주적이 보이지 

않으니 그의 신호에 움직일 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백리무군은 호흡을 가다듬고 남궁천기가 손을 쓰기를 기다렸다. 남

궁천기가 손을 쓰는 순간 청룡장의 소주지단은 피로 물들 것이다. 바

야흐로 당문이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상태였고, 남궁천기가  여

기서 먼저 손을 쓴다면 그 뒷감당을 남궁세가가 감당해야 했다. 일이 

이렇게 진행 된다면 백리무군으로서는 더 좋을 수 없었다. 헌데 남궁

천기를 본 백리무군은 인상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궁천기의 

단순히 서 있는 자세에서 그가 공격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뒤로 물러

나려는 기세를 읽었기 때문이다. 남궁천기는 자신이 선봉에 서고  싶

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군웅들은 남궁천기가 바로 움직일 것으로 생각

하고 공력을 팽팽히 끌어 올렸다. 하지만 남궁천기는 식은땀을  흘리

며 움직일 줄 몰랐고 군웅들의 기세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군막안에 

있는 각 문파를 대표하는 고수와 명숙들도 성수환독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는데 자신들의 능력으로 어찌 중독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

가 지금 이자리에는 청룡장의 일반  무사들은 한 명도 없지  않은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군웅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번들거리는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성수환독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자신들

에게는 해약이 없었다.

  

  군웅들은 남궁천기가 손을 쓰지  않기를 바라며 가슴을  졸였지만, 

몇몇 고수들은 백리무군처럼 남궁천기의 자세에서 뒤로 내빼려는  기

세를 읽고눈길을 돌렸다. 

  

  백리무군은 이를 악물고 검에 손을 얹었다. 남궁천기가 나서지  않

겠다면 자신이 검을 뽑아야 했다. 자신이 검을 뽑는 순간 오전  칠각

의 고수들이 군웅들을 선동하여 청룡장과 맞설 것이다. 

  

  검이 딸깍거리기 직전에 홍사옥의 눈길이 당표에게 머물렀다.

  

  "이 성수환독은 뭘로 해독하죠?"

  

  그 한 마디로 군웅들은 물론 오전 칠각의 고수들도 전의를 잠시 접

어두고 당표에게 시선을 모두 모았다. 성수환독의 해독은 강호에  발

을 담그고 있는 모든 이들의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없었다.  더우

기 청룡장이 성수환독을 보유한 이상 그 해독방법은 당장에 자신들의 

생사와 관련된 일이라 소홀이 할 수 없었다. 청룡장이 지금이라도 성

수환독을 뿌려댄다면 누가 중독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직  당표만

이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군웅들의 침넘어 가는 소리에 당표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성수환독의 비밀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보물은 그만한 피의 대가

를 요구하는 법. 당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얻은  비밀

을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

지 않으면 당표 자신은 자신만 살기 위해 동도를 저버린 자가 될 것

이고, 당문은 백도에서 지탄을 받을 것이다. 또한 성수환독의 비밀은 

홍사옥이 밝힐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해독법을 물어온 이상 홍사옥

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할 것이 분명했다. 

  

  당표는 자신이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하

지만, 하지만 어찌 자신의 입으로 당문의 비밀을 누설 할 수  있겠는

가. 자신은 백색 피를 토하고 죽었어야 했다.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

려왔다.  

  

  당표는 떨리는 뺨으로 입을 열었다. 

  

  "성수환독."

  

  군웅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표를 바라보았다. 성수환독을  뭘

로 해독하냐는데 성수환독이라고 답을  하다니. 모두들 당표가  잘못 

들어서 그렇게 대답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당표는 자신이 모

든 것을 말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잊지 않았다. 군

웅들의 시선은 이제 홍사옥에게  모아졌다. 이때에 이르러  군웅들은 

청룡장과 맞서 싸울 전의보다는 성수환독의 비밀과 당문이 어떻게 성

수환독을 얻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버렸다. 

  

  백리무군은 남궁천기로 인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속

으로 가슴을 쳤지만 얼굴표정에 변화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직  기

회는 있는 것이다.

  

  홍사옥은 자색과 백색 자기병을 흔들었다.

  

  "이 두 병에 든 건 모두 성수환독이에요."

  

  홍사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군웅들은 모두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가 홍사옥의 시선이 머무는 당표에게 향했다. 당표는 이번  소동에도 

고개만 처박고 있을 뿐이었다. 군웅들은 그를 보면서 당표는 이번 사

태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리

를 떠나고 싶은 것 같은데 혼자 힘으로 일어 설 수조차 없는 것 같았

다. 몇몇 눈치 빠른 이들은  귓속말로 구육두개 장로의 죽음은  매우 

깊은 음모가 있을 거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음모에는 당문

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로 표현하지

는 않았다.

  

  홍사옥은 말을 이었다.

  

  "독왕 역상은 그 자체로 천하 의가와 독가의 연구대상이었어요. 특

히 그의 성수환독은 천하 독문사상 유래가 없는 기이한 독이었죠. 그 

독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영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

기도 했어요. 독이라고 생각을 하면 해독약이 없는 독이 되고,  약이

라고 생각하면 일세의 영약이 되었으니까 말이죠. 때문에 성수환독을 

독으로 생각하고 먹은 사람을 치료 할 수 있는 약은 성수환독을 약이

라고 생각하고 먹는 길 밖에 없는 것이죠. 이건 지난 오십년간  천하

의 의가와 독문은 물론 전 무림 동도분들을 애태우게 만든 비밀이죠. 

호호호 이렇게 마음에 따라 독이 되고 약도 되는 성수환독이  아니었

다면 운기로 독을 막고 있던 여러 분들을 중독 시킬 수  있었겠어요. 

처음부터 독성을 뿌려댔다면  여러분들께서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데 

독에 쉽사리 중독 되었겠나요. 운기를 하지 않더라도 쌓인  공력만으

로도 위험신호를 내며 밀어냈겠죠. 하지만 처음 이 것에 제 손을  떠

날 때 약으로 떠나 더 없는 영약의 기운을 띄었으니 여러분들의 몸이 

스스로 알아서 이 기운을 빨아 들였죠. 마른 천으로 물기를 닦아  내

듯이 말이에요. 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몸에 더 없이  좋았을 

것을 아깝네요. 이제 성수환독이 중독되는 과정과 해독 방법을  아셨

으니 앞으로는 이 독에 중독되에 죽지는 않으시겠죠. 이런 비밀을 공

개하는데 세심경을 한 번 못 들려주시다니 섭섭하군요."

  

  해심대사는 나직한 불호를 외우고 시선을 피했다. 

  

  "그럴리가. 세상에 그런 독이 있다니……."

  

  백리무군의 경악성에 홍사옥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독왕 역상을 천하제일독이라고 했으며 그를 

천하제일 신의라고 인정했겠어요. 또한  그가 만든 것이  독뿐이라면 

어찌 천하 의가의 명숙들이 성수라는 말을 붙였겠어요?"

  

  "그건……."

  

  백리무군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혀끝에서 머무는 말들은 모

두 궁색하기 그지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홍사옥은 말을 계속 이었다.

  

  "독왕 역상의 독이 세상에 나오자 천하 의가와 독문은 모두 밤잠을 

설치며 그 독을 연구했죠. 어떻게  한 가지 약물이 시술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바로 그 자리에서  독이 되고 약이 되는지.  천하 

의가는 독왕 역상의 성수환독으로 병을 치료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연구를 했고, 독문은 성수환독에 죽은  이들을 찾아 다녔죠. 그러던 

와중에 독왕 역상에게 받은 성수환독을 가진 사람을 한 의가에서  구

할 수 있었어요. 그 의가는 그 환자를 온갓 영약으로 치료를  해주고 

그 성수환독을 손에 넣었죠. 그 의가는 비밀리에 성수환독을  연구하

기 시작했어요. 약으로의 성수환독은  우선 자신들이 스스로  환자가 

되어 실험을 했었죠. 헌데 실험을 하는 족족 죽어나갔어요. 그때  그 

의가에서는 성수환독은 독이라고 정의를 하고 이 사실을 천하게 공표

하려고 했어요. 독왕이 사람을 치료  한 것은 이 성수환독이  아니라 

다른 약이라는 거죠. 이 사실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  의가에서는 

몇몇 지인들을 초청하기로 했죠. 헌데 그 의가의 한 견습 의생이  이

에 반발을 해서 중환자에게 기사회생의 명약이라고 말을 한 뒤 그 약

을 나누어주고 도망을 쳤어요. 자신도 뒷감당을 할 수가 없었죠."

  

  군웅들은 모두 홍옥상의 말에 흡입이 되어 자신들이 왜 여기  왔는

지 모를 지경에 도달했다. 

  

  "성수환독을 먹은 환자들이 거의 완쾌를 했어요. 한 명은 병이  너

무 깊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죠. 이 사실을 안 의가에서는 다시  연구

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지인들에게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성수환독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로부터 석달 후 그 의가는 철저하게 무너졌죠. 

아무도 살아 남지 못했어요. 누가 멸문시켰는 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

니다." 

  

  홍옥상의 시선이 당표의 어깨 위에 올라앉자 군웅들의 시선이 다시 

당표에게 모아졌다. 모두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고 그 흉수

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라는 곳임을 알았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

지는 못했다.

  

  "그후 견습 의생은 자기 때문에 그 의가가 멸문했다고 생각하고 평

생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사람이 지은 죄는 없지만 보물을 가진 건 

죄가 되는 법이죠. 그후 그 의생은 속죄를 하기 위해서 독왕  역상의 

실종이후 사라진 성수환독을 만들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십여년간의 

고된 연구 끝에 성수환독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의생은  그

걸 가지고 세상에 나와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환자 

중 삼분지 일이 백색 피를 토하며 죽어갔습니다."

  

  "그럼 강호에 독왕 역상이 다시 나타났다고 소문이 난 것은……?"

  

  "그 의생의 작품이었죠." 

  

  그녀의 말에 풍개 걸노자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럼 소저가?"

  

  홍옥상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자 풍개는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얼른 입을 다물었다.

  

  "끝을 알면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지죠."

  

  어느새 사위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청룡장의 무사들은  사

방에 횟불을 지피러 다녔고, 시녀들은 다과를 곳곳에 내려놓아  사람

들이 먹게 했지만 그 음식에 손이 가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돌아앉아 있던 개방도만 취선개를 가장  앞에 앞세우고 몸을 돌려 

홍옥상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꾸역꾸역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 의생은 성수환독이 사람의 마음에 일말의 의혹이라도 남아있

으면 독이 된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의가가 실패한 원인

도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죠. 의생은 자기 때문에 다시 수십  명의 

생령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  분을 

말린건 성수환독으로 불치병을 치료하고 그 분을 따르던 몇 몇  무리

들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덕으로 이렇게 구차한 생이나마 연명을 하

게 되었습니다. 저같이 천한 분들께는 선생님 같으신 분이 한번 보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이 죽을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여

기서 목숨을 끊으시겠다면 저희 같이 천한 이들은 이제 바라볼  하늘

마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정녕코 자결을 하시겠다면  말

리지 않겠습니다. 단 제게 선생님의 의술을 모두 전수해 주시고 나서 

자결을 하십시오.'

  그 의생은 자신을 따르던 이들에게 의술을 전수해 주기 시작했습니

다. 그때 천하무림인들이 독왕을 찾기 위해서 천하를 이잡듯이  뒤지

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 때  그 분에게 배우던 제자 중  몇 

분이 성수환독에 중독 된 모습으로 죽어가며 태백산까지 고수들을 유

인하셨습니다. 그 의생은 그사실을  알고 스스로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수제자만 의서들을 챙겨서 세상에 숨었습

니다."

  

  "그 분들이 아 그분들이……."

  

  풍개 견로자는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죽일 놈이오.  그때 백도의 추적대를  꾸린 것이 바로  나였

소." 

  

  홍옥상은 풍개 견로자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약속을 잊지 마세요. 여기서 자결을 하거나 한다면 제 목숨은  누

가 지켜 주죠?"

  

  풍개 견로자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 수제자는십 년간의 생사를 넘는 연구 끝에 성수환독을 한  단

계 떨어뜨리는데 성공을 했어요. 환독의 부분을 빼고 성수만  세상에 

내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군웅들 사이에서 연수를 계산하며 강호사를  비교하던 

이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태백산. 제성가."

  

  삼십 년 전 천하에 혜성처럼 나타나 천하를 떠돌며 세상의  질병을 

한 몸에 이고 있는 사람처럼 산 성자. 제성(濟聖) 홍인.  천하인들은 

그에게 태백산에 제성가를 세워 주었고, 제 성가는 천하의 성지가 되

었다. 헌데 구년 전 제성 홍인이 의문의 실종을 당하고 제성가의  이

름이 유야무야 되어 갔었다. 그러나 그의 의거를 높이 산 천하의  의

생들이 무너져 가는 제성가에 모여 다시 인술을 펼쳤고, 지금도 천하

인이 공경해 마지않는 곳이다. 군웅들은 그제서야 제성 홍인이  천하

의 명산대천과 고관대작들이 기증한 곳을 다 마다하고 태백산을 택했

는지 알게 되었다. 

  

  "그 수제자는 제성가에서 환자를 치료하며 여러 분들이 가져다주는 

의서와 독서들을 연구를  하면서도 한가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

다."

  

  "성수환독."

  

  군웅들 사이에서 이 이름이 자연스럽게 거론이 되었다.

  

  "성수만 가지고는 그 치유력이 약했기 때문에 불치병에 걸린  사람

이나 내상이 심한 분들에게는 성수환독을 써야 했습니다. 아마  여기 

모인 분들 중에  이 성수환독으로 내상을  치료한 분들도 계실  껍니

다."

  

  여기저기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분은 성수환독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천하의  독문

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모

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이때 제성가의 성수를 연구하고 싶어하는 

몇 몇 의가와 독문이 환자가 받는 성수 중 일부를 몰래 빼돌린 적이 

있었습니다. 성수에 대해서는 제성가의 인물들이 배우고 있었기 때문

에 유출에 대해서 깊이 신경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헌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제성가를 찾아 온 환자 중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은 별  중증

이 아니었지만 간이 썩어서 성수환독만으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있

었습니다. 그 환자는 돈을 받고 성수를 빼돌리기로 했기 때문에 성수

환독을 밖으로 빼돌렸고, 그걸 받은 곳에서는 눈이 뒤집혔습니다. 그 

쪽도 어느 정도 성수환독을 연구하다가 포기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

에 제성가의 성공에 경악을 한 것이죠. 한편 그 환자의 상태는  점점 

중증으로 변했고 제성께서는 성수환독으로도 치료하지 못하는 줄  알

고 깜짝 놀랐습니다. 결국 그 환자는 모든 사실을 실토했고 제성께서

는 그 환자를 나무라지 않고 성수환독을 내려 치유케 하고 본인은 몸

을 감추었습니다."

  

  "그럼 그 분은 어디 계시오?"

  

  홍옥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두 눈이 붉게 물들어갔다.

  

  "그날은 하늘이 맑았습니다. 아침부터 파란 하늘이었고 밤에는  소

녀가 좋아하는 별들이 무수히 떠 있었습니다."

  

  홍옥상의 환한 미소를 타고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모습

을 본 군웅들은 자신의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녀의 슬픔을 미리 감지한 하늘은 눈을 감아 세상이 영원한 어둠

에 잠겨 버렸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그로부터 며칠을 더  사셨지만 

소녀는 그날 돌아가시기를 바랬습니다."

  

  홍옥상의 목소리가 점점 메어지며 가녀린 어깨가 떨렸다. 

  

  단우백이 뒤에서 다가와 홍옥상의 어깨에 손을 얹어 주었다. 

  

  "사조께서 이 두분 부녀를 모셔 오셨소. 그때 제성께서는 심한  상

처를 입고 계셨소. 최선을 다했지만 그 분께서는 끝내 유명을 달리하

셨습니다. 유언으로는 홍소저께서 성수환독의 약효를 가지며 독을 제

거한 영약을 만들기 전에는 출사하지 말라는 명을 내리셨소. 이런 영

약은 한 평생을 다 연구해도 만들어 내기 어려운 것이오. 내  생각에

는 그 분께서는 어린 따님이 세상에 대한 원한을 갖고 사시기를 원하

지 않은 것 같았소. 아니 세상에 대한 원한 보다 당신이 따님이 세상

으로부터 입을 위해에서 보호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강했으리라

고 보여집니다."

  

  "그 흉수가 누구요?"

  

  군웅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였다. 단우백의 시선이  옮기기 

전에 군웅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여 졌다. 당표는 고개를 벌떡  쳐

들었다.

  

  "본가는 결단코 아니오. 본가도  성수환독에 지대한 관심이  있고, 

제성가에서 성수환독을 쓰는 게 아닌가하는 의혹을 가지고 성수를 비

밀리에 유입을 했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성수환독이 아니라 제성가의 

성수였을 뿐이오. 우리는 결단코 손을 쓰지는 않았소."

  

  "아무도 당가를 흉수로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단우백의 말에 당표는 어깨를 떨어  뜨렸다. 단우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군웅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사이 서왕은 홍옥상이  앉은 

의자를 들어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홍옥상은 의자의 팔걸이를  움

켜쥔 채 굳어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말라  있었지

만 눈은 깜빡이지 않았다.

  

  "본 장이 이렇게 천하 무림동도  여러분께 한 순간이 나마  어려운 

걸음을 하게 한 점을 마음  깊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천 

당가에 씌워진 오명 또한 저희와 같을지 모릅니다. 구육두개  장로님

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제성가의 혈겁과도 맥을 잊고  있는 

겁니다. 제성가를 피로 씻은 그들은 우리가 홍소저를 모시고 있는 것

을 알고 오래전부터 백도와 우리를 이간질할 계획을 세워 왔던  것입

니다. 구육두개 장로님은 그들이  홍소저와 우리 청룡장을  압박하는 

제물로 희생이 되신 것입니다. 이 점은 정말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

습니다."

  

  군웅들 사이에서는 여기저기서 고함성과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그 동안 긴장이 풀렸는지 하품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단우백은 잠시 

주위를 환기키기고 말을 이었다.

  

  "제성께서는 최후의 유언으로 자신이 성수환독에 손을 댄 이상  독

왕 역상의 죄업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죄업은 어디까지나 자신 혼자서 짋어  져야 하는 것으로 제성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 때문에  제성가

에서 베풀어지고 있는 인술의 맥이 단절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셨습

니다. 지금 제성가는 의생의 부족과 각 유지들의 무관심 속에 찾아오

는 환자들에게 계피라도 마음놓고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해서 암중 인물들이 제성가를 핍박할 지도 모르는 사태가  벌

어 질 수 있습니다. 이에 저는 만금을 내어 이분들을 돕고자 하고 독

왕 역상의 혈채를 제성가에서 받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이 단모가 대

신 받겠습니다."

  

  단우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명이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를 쳤

다.

  

  "내가 가진 돈은 기십 냥에 불과하고 무공은 천박하기  그지없으나 

이 일로 인해서 제성가에 해를 끼치는 무리가 있다면 이 한 몸 제성

가의 제방이 되고자 하오."

  

  그를 필두로 여기저기서 제성가를 돕겠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구

체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돕겠다는 말까지 해댔다. 군웅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단우백은 손을 들어 올렸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천막의  지

붕이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갔다. 군웅들의 시선이 모아지자  단우백은 

하늘로 날아올라 천막에 장력을 뿌렸다. 

  

  천막에는 제성가 무림호위(濟聖家  武林護衛) 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졌다. 먹으로 쓴 것도 아닌데도 검었고 뒷면에 배일 듯이 나왔지

만 천이 뚤리지는 않았다.

  

  "여기에 우리의 결의를 적어 제성가에 보내도록 합시다. 비단 천에 

황금으로 수를 놓아 보내는 것은 오히려 제성가를 욕되게 하는 것 같

습니다."

  

  백리무군은 검집에 손을 얹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분란을 일으켜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오

전 칠각의 고수들이 군웅들을 선동 할 수 있다.'

  

  순간 한줄기 예기가 그의 마혈을 노렸다. 백리무군은 흠칫하는  기

색을 지었지만 미소를 띄며 천천히 고개를 돌렷다. 그를 유심히 바라

보는 사람은 협개 나정호 였다.

  

  단우백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자신의 먼저 약지에서 피를 내어  깨알

같이 적어갔다. 청룡장주 단우백 황금  만냥 희사. 단우백이 그렇게 

쓰자 협개가 자리에서 일어나 풍개 견로자를 바라보았다.

  

  "사부님."

  

  풍개 견로자는 고개를 떨군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방주께서 방을 대표해 적으시구료."

  

  협개는 혜심대사와 일송자에게 포권을 취했다.

  

  "두 분께서 먼저 하시지요."

  

  "저희들은 장로의 신분이고 방주께서는  지존의 신분이니 어찌  그 

위치가 같겠습니까?"

  

  협개는 남궁천기와 백리무군을 쳐다보았다. 둘도 무언의 긍정을 보

내왔다. 협개 나정호가 서명하자 남궁천기도 뒤따랐다.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하고 혈서를 쓰는 백리무군은 입안에 쓴 소태

를 문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얼굴에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흡사 무림지존기에 서명을 하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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