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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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인들은 분분히 사방을 살폈고, 몇 명은 운기조식으로 다시  중독

여부를 살폈다. 팽팽한 살기가 지단의 전체를 휘감아 돌았다. 여기저

기서 침 너머 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백리무군은 

남궁천기에게 전음을 날렸다.

  

  '남궁형 검을 뽑으시오.'

  

  남궁천기는 백리무군의 전음을 들었지만 운기조식으로  중독여부를 

살피고 있었던 터라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홍사옥의 두 눈은 더욱 빛이 났다.

  

  "넌 이미 나를 죽였다.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어둠

고 캄캄한 골방에서 지내게 만든 게 바로 너다. 내 마음의 상심을 네

가 아느냐?"

  

  홍사옥의 일갈은 당표를 향한 것이지만 중인들 중 가슴에 섬뜩하게 

와 닿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몇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

끼고 청룡장을 몰래 빠져나가기도 했다. 

  

  협개 나정호는 처음부터 탐탁치 않은 일이었고,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자 방도들을 이끌고 백배사죄를 한 뒤에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이번 일의 주동자가 풍개 견로자이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

고 성수환독이 나타난 이상 구육두개 장로의 죽음에 관한 의문을  풀

어야 했다. 협개 나정호가 주먹을 움켜쥘 때 건곤신개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다. 

  

  무량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자신이 알던 

바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홍사옥은 당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네가 이대로 죽는다면 나는 성수환독으로 개방의 장로이신 구육두

개님을 죽인 살인자가 되겠지. 호호호. 어때 네가 죽는다면 모든  일

은 아주 쉽게 풀릴 꺼 같은데.  나는 아쉬운 것이 없는데 너는  나와 

함께 죽을 용기가 있느냐?"

  

  당표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여기서 이대로 죽는다면 

그녀의 말대로 대국은 잘 풀릴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그녀

가 자신이 죽은 후의 사태를 생각치 않고 성수환독을 썼다고  생각되

지 않았다. 자신은 죽어도 일은  처음 계획했던 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왜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 당문이  세

력을 크게 손상당한 지금 동정상회는 남궁세가의 독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고, 당문은 별 혜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자기 합리화라고  해

도 좋았다. 당표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당표는 품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의 손에는 붉고 작은 자기병이 들

려져 있었다. 중인들의 시선은 그  자기병에 모아졌다. 당표의 손은 

점점 거세게 떨렸고 전신은 이미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었다. 백리무

군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당형."

  

  백리무군이 다가가자 무량자가 '흠' 하며 주위를 환기 시켰다.  백

리무군은 고수들의 시선이 모아지는 것을 느끼고 한 쪽으로 물러났지

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고 추궁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당표

의 안색에서 안됬다는 느낌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

다. 당표는 떨리는 손으로 자기병을 열고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뜨거

운 눈물을 흘렸다. 

  

  텁. 

  

  자기병이 입안으로 들어가고 당표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채 흐느

끼기 시작했다.

  

  홍사옥은 배시시 미소를 머금었다.

  

  "당가에서도 성수환독과 해약을 만드는데 성공했군요."

  

  홍사옥의 일언에 중인들의 가슴은 더욱 싸늘히 식었고, 여기저기서 

청룡장을 향해 포권을 하고 물러가는 이들이 늘어났다. 더러는  개방 

쪽에 침을 뱉기도 했다. 

  

  "아."

  

  홍사옥은 이마를 손으로 집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대고."

  

  단우백과 서왕은 깜짝 놀라  달려들었고 협개 나정호와  백리무군, 

일송자마저 몸을 일으켰다. 혜심대사와 무량자는 움직이지 않고 중인

들의 움직임을 슬쩍 훑어보았다.

  

  홍사옥이 넘어지지 않게 부축을 한 것은 풍개 견로자였다. 그 옆에 

선 단우백은 홍사옥에게 허리를 숙였다.

  

  "대고."

  

  홍사옥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입술을 오물거렸다. 단우백은 품에

서 몇 개의 자기병을 꺼냈다. 홍사옥의 입술이 다시 오물거리자 그중 

하나를 꺼내 홍사옥의 입안에 흘려 넣어 주며 서왕에게 전음을  보냈

다. 서왕이 군막 밖으로 물러나 수신호를 보내자 육대 당주 중 몇 명

이 모습을 감추었다.  

  

  군막 안에 있던 군웅 중 일부가 자리를 이탈해 좌측으로 몰려 나가 

방관자적 입장을 취했다. 

  

  취선개는 개방도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가담을 하려 가자 좌측에 몰

려 있던 군웅들은 냉소를 지으며 모두 일어나 다른 쪽으로 물러났다. 

취선개는 뜨거운 불덩이가 뱃속에서 올라와 자신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개방도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서로

를 보고 앉아 등을 밖으로 향한 채 고개를 숙이고 주저앉았다.  개방

도들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협개 나정호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몸을 태우며 마음을  갈기

갈기 찢었다. 건곤신개도 양 눈이 붉어진 채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났

다. 그의 두 눈은 협개 나정호의 등을 떠나지 않았다.

  

  단우백이 의자를 놓고 물러가자 홍사옥은 배시시 웃으며 의자에 앉

았다. 풍개 견노자도 그 앞에 앉은 채 눈을 감았다.

  

  백리무군은 남궁천기에게 전음을 날렸다.

  

  '저 계집의 사문을 우선 족쳐 봅시다.'

  

  전음을 받은 남궁천기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허면 소저의 사문이 어떻기에 성수환독을 지니며 해독을 하실  수 

있는 것이오?"

  

  홍사옥은 배시시 웃으며 당표를 바라보았다.

  

  "당 대협께도 해당되는 질문이신가요?"

  

  백리무군이 남궁천기를 거들었다.

  

  "말을 돌리지 마시오. 소저께 물은 것이오."

  

  "좋아요. 하지만 제 사문의 비밀은 일신상의 생사가 오고가는 중요

한 문제에요. 여기서 소녀의 비밀만 밝힌 다면 소녀의 손해에요."

  

  "소저는 지금 독왕의 후인으로 지목되고 있소. 이 자리는 그에  대

한 해명을 하는 자리요."

  

  "호호호. 누가 소녀가 독왕의 후인이라고 지목 하셨나요? 또한  누

가 그 책임을 어떻게 지실 건가요? 남궁가주께서는 소녀가 독왕의 후

인이라고 지목하신 이유가 뭐지요?"

  

  남궁천기는 얼굴이 꿈틀 거렸지만 이내 신색을 되찼고, 고개를  돌

려 홍사옥의 시선을 피했다. 성수환독의 해독과 용독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당가도 있는 것으로 밝혀진 이상 더 말싸움을 하

면 자신이 손해라는 것을 알고 말을 멈춘 것이었다. 그녀는 혼자였고 

이곳에 모인 이들은 다수였다. 자신이 굳이 입을 더럽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미타불.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오."

  

  혜심대사의 질문에 홍사옥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먼저 한 가지 요구를 해서 그 요구를 들어주시면 여러분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드리지요. 단 한 가지 요구를 들어주지 못할 때에는 

두 가지로 늘어납니다. 두 가지를 다 대답 못하시면 네 가지로  늘어

나고, 하나만 말씀 해주시고 다른  하나를 포기하시면 다시 두  개를 

요구를 하겠습니다."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백리무군이 성을 내자 홍사옥은 바람에  살짝 떨리는 치마를 잡고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소녀의 답변 여하에 따라서 소녀의 목이 오고 가는 거 아닌가요?"

  

  "독왕 역상은 무림 공적이오. 그의 후인은 살려 둘 수가 없소.  그

리고 그의 후인이 아니라면 이제 떳떳이 강호를 돌아다닐 수  있으니 

소저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 것과 같은 이치요. 그 자체로 득

이 되는데 어찌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거요?"

  

  "귀하께선 소녀가 처한 상황을 알고 계시나요? 소녀의 신분이 밝혀

지면 여러 분들의 오해를 풀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소녀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누가 책임을 지실 껀가요?"

  

  "청룡장이 지켜 주지 않소."

  

  "청룡장이 지금의 소녀를 지켜  주던가요? 그래요. 나중에  원한은 

값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죠. 하지만 소녀의 생명을 지켜 주기는  힘

들 답니다. 해서 소녀의 신분을 밝히기 전에 강호상에 몇 가지  궁금

한 사항을 알고자 할 따름입니다.  이에 응해 주시지 않는다면  좋아

요. 제가 이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 주면 되는 건가요?"

  

  홍사옥의 섬찟한 눈 빛에 중인들은 눈길을 돌렸다. 홍사옥은  싸늘

한 미소를 백리무군에게 보냈다.

  

  "이 나이에 혼자 죽기는 억울해요. 백리가주 천하무림을 위해서 소

녀와 같이 죽을 용기가 있으신가요?"

  

  백리무군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소저께서 죄가 없다면 왜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소."

  

  "당신이 내가 독왕 역상의 후예고 무림 정의를 위해서 반드시 제거

해야 할 상대라고 확신을 한다면 왜 한 목숨 바쳐 정리를 하지 않나

요. 살아 영웅이 될지도 모르는데……."

  

  "스스로 죄가 없음을 밝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오. 이렇게  시간

을 끄는 것을 보면 무언가 속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오?"

  

  "난 독왕 역상의 제자가 아니에요. 자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건

가요?"

  

  홍사옥이 눈을 상큼 치켜뜨고 독기  어린 표정을 짖자 백리무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런 발칙한……."

  

  백리인군이 노성을 터트리며 검광을 폭출했다. 그의 검광은 너무도 

빨라 뒤에 앉아 있던 단우백이 미처 손을 쓸 수 없었다. 홍사옥은 굳

은 몸으로 싸늘한 눈길만 혜심대사에게 보냈다. 혜심대사는 그  눈길

을 대하자 자신도 모르게 호체기공이 일면서 손을 휘저었다.

  

  "아미타불."

  

  혜심대사의 소매가 홍사옥을 향해 날아가는 검을 휘어감고 뒤로 살

짝 밀치었다. 백리무군이 전력을 다한 다면 홍사옥을 벨 수 있었지만 

혜심대사 역시 상하게 될 터였다. 

  

  백리무군은 잠시 주저했지만 이를  악물고 공력을 더했다.  어떻게 

됬던지 간에 여기서 사단을 벌여야 했다. 그 순간 무량자가 백리무군

의 허리를 휘어감고 뒤로  당겼다. 백리무군은 무량자까지  합세하자 

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자리에 앉아 붉어진 얼굴로 씩

씩거렸다.

  

  홍사옥은 방금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혜

심대사와 일송도장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소림과 무당을 모두들 태산 북두로 인정을 하는데 왜 이번 일에는 

나서지 않는 거죠? 나중에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인가요?"

  

  "아미타불 그럴리가 있겠소."

  

  "무량수불 홍 소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저는 이미 반쪽 답변을 드렸어요. 그러니 소림에 한 가지  요청을 

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나머지 반쪽 답변을 마저 해 드리죠."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혜심대사에게 모아졌다. 그들도  소림에게 

묻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무공의 비밀이 많았다. 혜심대사는 눈을 내

리감았다.

  

  '필시 역근세수경에 대해서 물어 올 텐데 그 건 원래 두 권이 비급

이나 역근경은 기본개괄서로 무학의 큰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무림 대의를 위해서 구술해 준다고 해도 큰 해가 되지는 않으리라.'

  

  중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더 참지 못한 혜심대사가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좋소이다. 소저께서는 무엇에 원하시오?"

  

  "소녀의 마음이 크게 상심했으니  세심경을 강독해 주시기  바랍니

다."

  

  세심경이라는 말에 중인들 사이에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

고, 몇몇은 그녀가 생을 포기하고 불문에 귀의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

측을 해댔다. 

  

  혜심대사는 세심경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계인이 우그러지

게 이맛살을 모았다. 

  

  "소저께서 말씀하시는 세심경은……."

  

  "범창으로 듣고 싶네요."

  

  "아미타불 아미타불."

  

  혜심대사의 소매는 폭풍처럼 일어 올라 천막을 날려 버릴 듯한  경

기를 뿜어 대었다. 

  

  "빈승은 감당 할 수 없소이다."

  

  "그럼 질문이 두개가 됬네요."

  

  "아미타불 그 역시 감당 할 수 없소이다."

  

  "그럼 어쩌시겠다는 거에요. 소림도 백리가주 처럼 강짜를  부리실 

건가요?"

  

  "아미타불." 

  

  혜심대사는 아니라고 대답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소림은 백리

가주처럼 강짜를 부리지 않겠다고 하면 백리가주가 강짜를  부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홍사옥의 눈길이  일송자에

게 다가가자 일송자는 몸을 움찔거렸다. 

  

  "무량수불 빈도도 감당 할 수 없소이다."

  

  "노을이군요."

  

  홍사옥은 붉게 물 들어가는 하늘을 잡을 듯이 손을 뻣었다가  눈물

을 한 방울 머금었다. 중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저런 

소녀를 핍박하기 위해서 강호의 기라성 같은고수들이 모인 것이란 말

인가. 

  

  "제가 이런 식으로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을 돌려보낸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의 의문을 가지고 계실 것이고, 혹은 무림정의를 위해서  손을 

쓰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제가 출신내력을 밝힌다면 원흉이 저를  죽

이려 들 꺼에요. 어떻게 하든 소녀가 살아날 길은 없는 거군요."

  

  홍사옥은 단우백이 놓고 간 자기 중에 청색 병을 들어 마개를 열었

다. 단우백의 깜짝 놀라 고함을 쳤다.

  

  "대고."

  

  혜심대사와 일송자, 무량자가  벌떡 일어섰지만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은 독에 대한 방비로 공력을 운용했기 때문에 온 몸에  느껴지는 

화끈거림을 가장 먼저 알아챘기 때문이다. 풍개 견로자는 단우백에게

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무언가 움직임이 있다면 단우백을  노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협개 나정호는 무슨 생각에선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고수들은 현 상황에서 앞장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방

비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일격을 날릴 준비만 했다. 

  

  홍사옥은 태연히 입을 열었다.

  

  "이건 냄새로 중독되는 독이에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인들은 일제히 옷자락을 부풀어 올렸

다. 몇 몇은 다급한 신음성을  터뜨렸다. 남궁천기와 백리무군은 두 

눈을 부릅뜨며 출수를 하려고 했지만 공력을 운용하면 오장육부타 타

는 듯이 뜨거워져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들

이 홍사옥에게 살수를 펼친다고 하여도 자신들보다는 조금 멀리 있지

만 공력이 온전할 것 같은  단우백의 손을 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

다. 

  

  이들의 움직임과는 달리 군웅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사방을 경

계했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청룡장 인사들은 군막 뒤에 있는 몇 

명이 전부다 였다. 중독 상태를 확인한 군웅들은 자신들이  중독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경계를 취할 뿐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청룡장이 

어떤 안배를 했는지 모른 상태에서 앞으로 나서는 것은 군막 안에 있

는 고수들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홍사옥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호. 무림 정의를 위해서 손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아무

도 손을 쓰지 않는 군요. 지금 저를 죽인다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

기는 게 아닌가요?"

  

  홍사옥의 빈정거림에 혜심대사와  일송자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고, 남궁천기와 백리무군의 안색은 불그락 푸르락 해졌다. 

  

  "조문도 석사가라. (朝聞道 夕死可)"

  

  홍사옥의 눈은 꿈을 꾸는 듯이 몽롱해 졌다.

  

  "홍사옥아 홍사옥아.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나를 따라 죽어주니  한 

생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구나. 이제 원이 없으니 저승길을 간다 하더

라도 후회하는 바는 없겠구나."

  

  홍사옥의 말에 남궁천기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변했다.

  

  "단 장주 이게 단장주의 속셈이었구려. 우리를 중독시켜  제거한다

고 해서 천하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소?"

  

  대형 군막 밖에 있는 이들의 눈에는 경계의 빛이 가득담겼고, 좌측

으로 빠졌던 이들까지 병장기에 손을 얹었다.

  

  백리무군은 잠시 눈을 굴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선동하면  청룡장

과 백도의 대전이 벌어질 것이다. 백리무군은 자신과 홍사옥, 단우백

과의 거리를 계산했다. 자신은 중독 된 상태에서 단우백과 너무 가까

이 있었다.

  

  '정말 지독한 독이다. 찰라의 여유도 주지 않고 중독을 시켜  버리

다니.'

  

  백리무군은 공력으로 독을 손끝으로 모으며 경공을 펼칠 준비를 했

다. 어느 정도 독이 억제된 상태에서 움직여야지 지금 움직이면 대업

은 성공시켜도 자신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단우백의 얼굴도 노랗게 변했다.

  

  "대고 그러시면 안됩니다. 부친의 유명을 잊으셨습니까?"  

  

  홍사옥은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백색 자기병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해약이에요. 역시 냄새로 퍼지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막안의 인물들은 청아한 기운에 해독

이 되는 것을 느끼고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다. 

  

  남궁천기는 심신이 청아해 지자 바로 출 수 할 듯 눈을 부릅떴지만 

홍사옥이 자색 병을 흔들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홍사옥은  오른

쪽 손으로 자색병을 들어 입술을 살짝 가렸다.

  

  "세상에 이렇게 지독한 독은 뭘까요?"

  

  "성수환독."

  

  남궁천기는 그렇게 외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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