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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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마군이 물러나자 적혈마군은 별이 짙게 깔린 하늘을 올려다보았

다. 검은 먹물이 금새라도 떨어질 것 같은 하늘에 뿌려진 별은  보석

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맹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 오대마군

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일. 그러고 보니 나도 맹에 대해서 아는 게 별

로 없었구나."

  

  밤은 점점 깊어가 삼경을 헤아렸다. 

  

  적천마군이 몸을 일으키자 여기저기서 삼혈맹도들이 모습을 드러냈

다. 이들은 삼경이전에 깨어 적천마군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맹도들이 모여들자 적천마군은 낮은 바위 위에 올라갔다. 

  

  어둠 속에 묻혀 바로 앞에 있지만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는 맹도들. 

반짝이는 두 눈만 아니라면 석상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적천마군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어둠을 울렸다.

  

  "우리는 밀리고 있지만 본 맹이 백도에 패한 건 아니다. 우리는 도

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을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중책을 

맏은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백도의 고수들을 삼맹주님 한 분이서 

상대를 하고 계신다. 그런데 나와 삼대마군이 이끄는 너희들이  고수

하나 없는 오합지졸들을 두려워해야 되겠는가."

  

  맹도들은 힘을 담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좋다. 이제 우리는 그 열기를 담아 오늘 밤 백도 놈들에게 치명적

인 반격을 가하겠다. 각 마군들이 무사들을 인솔해 가라."

  

  삼대 마군은 각기 삼사 십 명씩 인솔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적

천마군도 남은 인들을 이끌고 어둠 속으로 달렸다. 

  

  삼혈맹을 추적하는 백도 군웅들은 각 문파 별로 평평한 곳을  찾아 

약간씩 거리를 두고 있었다. 몇 명이 나서서 야습에 대비해야 한다면

서 한 곳에 모일 것을  주장했지만 추격대 전 인원이 한꺼번에  모일 

만한 곳은 없었고, 산에서 잡은 동물을 잘 구워 먹는 속인들  사이로 

청정수도를 하는 승려와 도사들이 합석하기에도 껄끄러웠다. 

  

  또한 삼혈맹 총단 공격때는 똘똘  뭉친 백도지만 총단이 무너지고 

잔당을 추격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평소 있던 각 문파간의 알력이  다

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래저래 백도 군웅들은 배짱 맞는 문파와 이

들끼리 넓게 흩어져 있었다. 

  

  적천마군은 나무 가지를 내리며 앞을 주시했다. 넓게 펼쳐진  개활

지에 이십 여 개의 화톳불이 밝혀져 있었다. 화톳불 가에는 십여  명

이 둘러앉아 잠을 청하는 곳도 있었고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술을 권

하는 자리도 있었다. 이들 중에 적천의 눈에 차는 고수는 한 명도 보

이지 않았다.  

  

  '모래알도 모이면 탑이 된다더니, 평소 강호를 종횡 할 때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 자들에게 나 적천이 쫒기고 있다니.'

  

  적천은 혈륜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맹도들

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적은 자신들의 예닐곱 배가  넘는 

숫자였다. 이런 무리가 이 근처에만도 서 너개가 더 있는 것이다. 

  

  적천마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화톳불이 미치지 않는  거리에 

있는 그는 흐릿한 형체만 드러났기  때문에 고수라고 할지라도 바로 

알아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적천마군이 혼자서 다가오는 것을  보

던 한 명이 소리를 약간 높혔다.

  

  "거기 누구요?"

  

  적천마군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숲에서 잠시 볼일 좀 보고 나오는 길이네."

  

  "숲에 함부로 들어가지  마쇼. 삼혈맹도들이 쥐새끼처럼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저쪽 

화톳불에서 잠을 청하던 이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좀 잡시다. 그래야 내일 힘써 싸울 거 아니오."

  

  "내일? 훗 녀석들은 밤 새  도망을 치고 있을 테니 내일은  흔적만 

추격하고 말 껄."

  

  다른 한 명이 맞장구를 쳤다.

  

  "어제 그제야 놈들이 반격을 한답시고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멀리 

못 갔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화톳불을 켜 놓고 쉬고 있는 걸 보면 도

망치고 있을 꺼야. 머리가 좀 있는 놈이라면 재빨리 내빼야지."

  

  적천마군은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화톳불에 가까이  다가왔

다. 그때 한 명이 손가락질로 숲을 가리켰다.

  

  "적이다."

  

  그가 가리킨 곳에서 함성과 함께 수십 명이 달려나왔다. 잠을 자지 

않던 이들은 동료들을 이리저리 깨우고  몇 명은 병장기를 빼들려고 

했다. 

  

  하지만 적천마군의 손이 더 빨랐다. 한 명이었기에 어둠 속이라 형

체를 알아보지 못해 경계를 하지 못했던 적천마군의 일격은 하수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다. 

  

  다리와 몸통이 둘로 갈라지며 피와 내장을 쏱아냈고, 선잠에서  깨

어나 경황이 없던 이들은 적천마군의 일격에 피를 뿌리며 화톳불  위

를 덮었다. 순식간에 십 여 명이 사상하자 몇 명이 몸을 돌려 숲으로 

달아났고 선잠에서 깬 이들은 적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동료가 도망치

는 것을 보고 다른 이를 발길로 한 번 걷어차고 어둠 속으로 내뺏다. 

  

  몇 명은 병장기를 움켜쥐고 분한 기색을 토했지만 남들 다  도망가

는데 혼자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주를 하던 몇 명을  주살

하던 적천마군은 혈륜을 내리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내가. 천하의 적천이 이런 자들에게 쫒기고 있는 건가?"

  

  적천의 웃음소리에 메아리 치듯 반대편 능선 쪽에서 함성과 비명성 

추적하라는 고함성이 연달아 울려 펴졌다. 악인마군과 지옥마군이 일

을 벌린 모양이었다. 

  

  적천마군은 주위에 모여든  삼혈맹도들을 이끌고 적혈마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지금 악인마군과 지옥마군을 지원하러 갔다간 피아

를 확인하지 못해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야간작전은 상

황이 어떻게 튀든 처음 계획했던 작전대로 움직여 줘야 했다. 

  

  악인마군은 피로 물든 단창을 늘어뜨리며 협곡 아래를 바라보았다. 

별 빛 마저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격렬하게 부딪치는 병장기의 격

렬한 타격음이 산천을 쨍쨍 울렸다. 잠시 후 병장기 소리가 줄어들더

니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저 나왔다. 어디서는 화

섭자에 불이 붙어 오르기도 했다.   

  

  악인마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제야 서로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아챘군. 쏴라."

  

  악인마군의 명령에 뒤에 도열해 있던 삼혈맹도 중 열 명의  궁수가 

앞으로 나섰다. 이들은 화섭자가 타오른 곳을 조준해 연달아 십여 발

의 화살을 날렸다. 화섭자는 순식간에 꺼지고 여기저기서 

  

  '적이다. 속았다.' 

  

  하는 소리와 함께 병장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인마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은 점점 깊어져 갔다. 이제 곧 동천에서 해가  떠

오를 것이다. 어둠을 걷어 내고 피로 물든 산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악인마군은 가슴 섬을 집었다. 손에 끈적이는 핏덩어리

가 만져졌다. 야습 중에 누구에게 맞았는지 모를 일검에 당한 상처에

서 나온 피가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삼혈맹도들은 능선을 타고 달렸다. 

며칠간의 격전으로 피곤에 지친 기색이었지만 짐을 벋은 듯이 어깨는 

가벼워 보였다. 

  

  적혈마군과 그 수하들이 길을 텄고  그 뒤를 적천마군, 악인마군, 

지옥마군 순으로 이어졌다. 멀리서 본  다면 붉은 혈룡이 산  능선을 

타고 미끌어져 나가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늘도 땅도 이들의 물결에 붉게 물 들어가는 저녁 무렵, 선두에서 

달리던 적혈마군의 걸음이 천천히 멈추어 졌다. 그에 따라 전 무사들

이 신법을 멈추었고 각 마군들이 재빠르게 앞으로 뛰어 나왔다. 

  

  옅은 숲 사이 바위가 광대뼈처럼 듬성듬성 드러난 능선으로 네  개

의 하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눈 깜빡할 사이  네 

그림자는 이십 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다시 숲 사이로 사라졌다. 

  

  적혈마군은 약간 떨리는 입을 열었다.

  

  "대단한 경공 입니다. 경공만으로는 우리보다 한 수위인 것 같습니

다."

  

  "무이산맥쪽에서 오는 걸 보면  귀왕곡의 곡주와 귀왕삼사일  것이

다."

  

  적천마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개의 햐얀 그림자가 백포를  흩

날리면 이들 앞에 내려섰다. 분을 바른 듯한 햐얀 얼굴에 피를  바른 

듯한  입술이 반짝였다. 먼 거리를 달려 왔음에도 하얀 백발은 단정

히 묵여져 있었다.

  

  적천마군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귀왕곡주님을 뵙습니다."

  

  귀왕은 고개를 가볍게 끄떡이며 품에서 붉은 혈첩을 꺼냈다.

  

  "대 맹주님께서 전하라는 교지일세."

  

  대 맹주님의 교지라는 말에 삼혈맹도들이 일제히 오체투지했다. 적

천마군은 오체투지한 상태에서 공손히 혈첩을 받았다. 

  

  <사대마군은 태원으로 집결하라.>

  

  적천마군은 혈첩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맹도들에 대한 다른 명령은 없었습니까?"

  

  "이 능선을 따라 계속 동쪽으로 나가면 본 곡의 사람이 마중을  나

올 것이네."

  

  "그럼?"

  

  "자네들은 즉시 태원으로 가보게. 우리는 금불산에 들렀다가  갈테

니까."

  

  적천마군은 의야한 눈으로 별이 떠오르기 시작한 북쪽 하늘을 바라

보았다.

  

  단우백은 다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삼혈맹이 무너졌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이겠군요. 그래 저들이  어

떻게 나오고 있소?"

  

  그 앞에 앉은 상관평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약간 혼란한 모양입니다."

  

  "그럴만도 하겠지. 사제가 혈마를  제거했으니 말이오. 이로써  본 

장이 삼혈맹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은 낭설이 되고 말겠군. 하지만 쌍

덕이 준비한 게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

  

  "본 장이 혈천마궁의 후예라고 하더군요."

  

  단우백은 풋 하는 웃음을 흘렸다.

  

  "말도 안돼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군. 그래 증거가 뭐랍니까?"

  

  "쌍덕의 진술과 북령채주 양산월이 태상장주님께 보낸 편지라고 하

더군요."

  

  단우백은 눈을 깜빡였다.

  

  "쌍덕의 진술?"

  

  "네. 쌍덕 자신들은 용맥의 후예로 혈천마궁에 위장  잠입했었답니

다. 거기서 태상장주님을 만났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단우백은 눈썹을 찡그렸다.

  

  "쌍덕이 직접 그런 소리를 했다는 거요?"

  

  "개방의 태상장로 풍개 견로자가 그렇게 들었답니다."  

  

  "그것 뿐이오?"

  

  "또 하나 있습니다. 본 장을 감시하던 구육두개가 독왕 역상의  성

수환독에 죽었다는 소문입니다."

  

  "허 참. 구육두개가 본 장을 감시하기나 했었소?"

  

  "몇 번 장 밖을 배회하기는 했지만 곧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별 일 

아니라서 장주님께 까지는 보고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단우백은 허탈한 듯한 음성을 터트렸다.

  

  "성수환독이라. 허허 참. 존덕문에서 철저히도 준비했구료."

  

  상관평이 약간 놀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럼 정말 금지에 계신 분이 독왕 역상이십니까?"

  

  "독왕은 아니지만 성수환독을 만들 수 있는 분이 있기는 있소."

  

  상관평은 담담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랬군요. 그럼 장주님께서 직접 손을 쓰신 겁니까?"

  

  "구육두개 정도를 상대하는데 성수환독을 쓸 필요는 없지  않겠소. 

아마도 존덕문에서 우리를 모함하기 위해 일을 꾸민 것 같소."

  

  "그럼?"

  

  "존덕문에도 성수환독이 있다고 봐야 겠지."

  

  상관평은 빙그래 미소를 지었다.

  

  "장주님께서 소인에게 숨기는 것이 의외로 많으신가 봅니다."

  

  "나도 문상이 때로는 겁이 나오."

  

  "하하하 하하하. 농담도 진하십니다."

  

  단우백은 얼굴을 살짝 굳혔다.

  

  "그나저나 이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소. 존덕문과의  일전이야 

두렵지 않으나 이 일이 천하대전으로  발발하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강산이 피와 시체로 뒤덮일 지 모르는 일 아니오."

  

  "장주님. 아홉 개의 진실에 한 개의 거짓을 넣으면 그 하나는 참이 

되고, 아홉 개의 거짓에 하나의 참을 넣으면 그 하나는 거짓이  되는 

법입니다."

  

  단우백은 고개를 끄떡였다.

  

  "흐음 일이가 있는 말이오."

  

  상관평은 섭선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또한 상처는 감추려 할 수록 더 곪는 법입니다. 드러내  소독하면 

처음에는 조금 아프지만 빨리 아물지요."

  

  "일을 떠벌리자는 말씀이시오?"

  

  "군웅들이 우리 청룡장에 도착을 해서 그 소식들을 듣게 된다면 앞

뒤 안 가리고 달려들 것이 뻔한 이치이니 될 수 있는 한 크게. 빨리 

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말씀을 들으니 이미 손을 쓰신 듯 합니다."

  

  상관평은 섭선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며 눈을 내리 깔았다.

  

  "죄송합니다." 

  

  "소문만 내신 건 아니시겠지요?"

  

  "믿을 만한 사람이 소문의 진상을 확인해 줄 껍니다. 하지만  독왕 

역상에 대한 해명은 장주님께서 직접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단우백은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건 어렵지 않소. 헌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단우백의 미소가 매우 짙어졌다. 

  

  "상관덕조. 그 분과는 어떻게 되는 사이시오?"

  

  극망봉의 단애 아래서 혈마의 시신을 찾던 백도 군웅들은 피로  물

든 옷자락과 살점 몇 조각을  건진 것에 만족하고 서둘러 하산을  했

다. 

  

  남왕련의 발호로 당가주가 죽고 당문이 불타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 

졌기 때문이다. 

  

  군웅들은 분분히 상강을 타고 장사로 흘러 들어왔다. 장사에서  이

들을 기다리는 것은 이상한 소문이었다. 

  

  객점 안에는 형산파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각파의 제자들이  가득차 

있었다. 장문인과 장로급 명숙들은 모두 당문의 일을 상의하기  위해

서 한 곳에 모여들었다. 

  

  객점의 한 창가에 앉은 양대호는 귀를 손가락으로 후벼팠다.  방금 

들은 소리가 실감나지 않았다. 양대호는 찡그린 얼굴로 소리가 난 곳

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몇  명의 청년들이 둘러 쌓고  있어서 

사람의 등만 보였다.

  

  "청룡장이 삼혈맹과 한 통속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청룡장이 삼혈맹과 손을 잡았다면 소천 대협이 어떻게 혈마를  죽

였겠소."

  

  "누가 그따위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거요?"

  

  "젠 장할 우리는 남령산맥에서 무림정의를 위해 피를 흘렸는데  집

안에서 희희낙낙하며 놀던 이들이 남의  공에 배가 그런 헛소문이나 

지어내다니."

  

  형산파의 제자들과 남령산맥의 대전에 참가했던 이들이 한 명을 공

박하고 있었다. 사십대 가량의 염소수염을 단 사내는 중인들의  공박

에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개방  제자에게 그 소리를 들었다는  거

요."

  

  벽가에 있는 회의인이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 그 개방 제자에게 들은 소리나 한 번 들어봅시다. 어떻게 소

문을 내고 있는지?"

  

  그는 염소 수염을 꼬며 말을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개방에서 한 말이오.  그러

니 나를 탓하지 마시오."

  

  객점 안에 있는 형산파 제자들과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소. 우리도 그 정도 양식은 있는 사람들이오."

  

  염소수염의 사내는 청룡장과 삼혈맹, 북령채와 혈천마궁의  후인이

며 한 통속이라는 것과 양산월의 편지와 쌍덕의 증언, 구육두개 장로

의 중독사를 댔다. 그 말을 듣던 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

웃했다. 실내 분위기가 가라앉자 회의인이 냉소를 지었다.

  

  "정말 잘 꾸며낸 거짓말이군."

  

  중인들의 시선이 회의인에게 모아졌다. 회의인은 탁자를  손가락을 

두들기며 중인들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들였다. 염소수염의 사내가 회

의인을 보며 의야한 얼굴을 했다.

  

  "뭐가 거짓이라는 건지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좋소. 우선 양산월의 편지라는 거 말이오. 그건 일고의 가치도 없

소."

  

  "가치도 없다?"

  

  "한가지 물읍시다. 혈마가 양산월이 쓴  것과 같은 종류의 편지를 

형산파에 보냈다면 둘이 한통속이라는 말이 되는 거요?"

  

  형산파 제자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노성을 터트렸다.

  

  "귀하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본 파가 삼혈맹과 한통속이라니?"

  

  회의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양산월이라는 자가 어디에다 어떤 내용의  편

지를 못 보내겠소. 게다가 그 편지는 청룡장에 가지도 못한 것  같은

데……."

  

  중인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편지야 얼마든지 

써서 아무 문파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구육두개 장로님의 죽음이 한 달 전에 일어 난 거라는데 그  동안 

개방은 뭐하고 있었소? 자파의 장로가 성수환독에 죽었는데 별  대책 

없이 남령산맥으로 같이 쳐들어갔다는  거요?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미리미리 우리에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었소? 설사 우리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각파의 수뇌부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었어야 하는 거 아니

오. 여러분 중에 개방이 청룡장을 경계한 적이 있는 걸 본 사람이 있

소? 아니면 자파의 장문인이나 장로들께서 청룡장을 경계하라는 뜻을 

비췬 적이 있소?"

  

  중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약간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

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을 탐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회의인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리고 쌍덕 두 분의 증언이라. 그것도 풍개 견로자께서 혼자  들

은 말이라는 거 아니오?"

  

  "그렇소."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중인들 앞에 나서서 당당히 사실을  밝혀

야 하는 것 아니오? 왜 지난 오  십년 간 가 많이 있다가 이제 와서 

그런 사실들을 밝힌다는 거요? 물론 풍개 견로자님의 인덕을  의심하

는 것은 아니지만 말 몇 마디에  한 문파에 죄를 준다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오? 그것도 얼굴도 보이지 않고 말이오. 게다가 두 분이 혈천

마궁에 가담했었다는 것부터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소. 용맥의 

주류는 백련교에 흡수되었고, 혈천마궁에 침투한 중원 고수들도 대부

분 백련교도라고 합디다."

  

  중인들은 서로 고개를 맞대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염소수

염의 사내는 슬그머니 객점을 빠져나갔고 회의인은 일침을 더했다.

  

  "아미파의 보광(寶光) 노사태께서는 당시 혈전에 살아 남은 분이니 

쌍덕 두 분이 세상에 나와  이 분을 뵙는다면 이번 일은  명명백백히 

밝혀지지 않겠소.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말이오."

  

  중인들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미파의 보광 노사태와 쌍덕이 만난다

면 이 일은 아주 쉽게 풀려질 것이 분명했다. 중인들이 서로  의견을 

개진하는 걸 본 회의인은 자리를 조심스럽게 떴다. 

  

  백리무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누가 조직적으로 소문을 내고 있는 것 같소."

  

  남궁천상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가주께서는 청룡장이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고 보는 겁니까?"

  

  "처음 소문을 드러내 놓고 떠벌리고 다니던 자들의 신원이 아직 확

보되지 않고 있소. 첫 소문만  퍼트리고 모두 잠적했다는 이야기요. 

그 흔적을 살펴보면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였소. 군웅들의 동향은  어

떻소?"

  

  "이런 저런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고, 구구절절한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분 존자님께서 전면에 나서시면 곧 혼

란이 진정되리라고 봅니다."

  

  백리무군은 약간 어두운 얼굴을 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두  존자님

은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설마.'

  

  백리무군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떠올려진 생각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어도 지워야할 일이었다.

  

  남궁세가의 남궁천상이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전 강호가 피에 물들게 되겠지요. 청룡장과 싸우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 아 정말 암담할 따름입니다."

  

  "당가는 어떻게 하겠답니까?"

  

  "당표만 남겨두고 모두 본가로 향했습니다. 잡지 못했습니다."

  

  "하기사 당문이 그 지경이 됬으니 같이 강동으로 가지는  못하겠지

요." 

  

  백리무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 문파를 돌며 뜻을 규합해야 겠소."

  

  "그럼?"

  

  "칼을 빼든 이상 여기서 주춤거릴 수는 없는 것이오."

  

  남궁천상은 백리무군의 좁아진 등을 보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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