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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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봉에서 물러난 요동혈낭은 전황을 살피며 얼굴을 활짝 폈다.  적

들은 총 전력이 우세한 자신들이  기습당하리라고 예상을 전혀 못한 

듯 조직적인 저항을 하지 못했고, 기병전력이 전무한데도 자리를  고

수할 생각을 하지 않고 맞  받아쳐 오고 있었다. 이들은  몽고기병이 

펼쳤던 전법을 알지 못했고, 설사 몇 명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

국을 주재해 백도군웅들을 일사불난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요동혈낭이 명령을 내릴 것도 없이  적과 조우한 선봉의 기마대는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났다. 백도 군웅들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왔다. 기마대는 말고삐에서 손을 놓고 각궁을 들고  몸을 

돌려 추격해 오는 군웅들에게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몇 몇 고수들은 

화살을 쳐냈지만 선두에 선 대부분의 인원이 화살에 맞아 나뒹굴거나 

부상을 당해 전투력을 상실했다. 

  

  화살비에 백도 군웅들이 주춤거리자 요동혈랑의 본진이 일제히  돌

격해 들어갔다. 본진이 돌격하는 사이 선봉대는 말머리를 돌려  대오

를 갖추며 전열을 정비했다. 

  

  요동혈랑의 본진이 다가오자  백도군웅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고수를 전면에 포진했다. 누가 명령을 내려 뛰쳐나온 것이  아니었고 

기병의 돌격을 막을 수 있는 고수들이 사명감 하나로 자발적으로  앞

에 선 것이다.

  

  고수들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본 요동혈랑은 본진을 돌격시키지 않

고 사십장 앞에서 화살을 퍼부어댔다. 비처럼 쏱아지는 화살비에  고

수들도 치명적인 요혈을 맞지는 않았지만 몸에 한 두대씩 화살을  맞

기 시작했다. 

  

  풍개 견로자와 무당파의  일송도장 소림사의 혜심대사는  화살비를 

뚤고 앞으로 돌격해 나갔다. 이들이 돌격해 오자 요동혈낭은  주저없

이 말머리를 돌렸다. 말머리는 돌려  퇴각은 하지만 몸은 뒤로  돌려 

화살을 계속 쏘아댔다. 이들 셋이 본 진에서 이 삼십장 거리가  떨어

지자 사방에 흩어져셔 백도군웅들을 주살하던 요동낭인대의 척살대가 

좌우에서 개방의 팔문금쇄진 안으로 난입해 들어왔다. 

  

  세 고수가 주춤거리는 사이 퇴각하던 요동낭인대의 본진과  선봉이 

하나가 되어 일제히 전력질주를 해왔다. 산악을 뭉개 버릴를 듯한 기

세에 세 고수도 오금이 저려 정면대결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세 고수가 물러나는 여파는 전 백도군웅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

고 거칠게 이는 말발굽 소리와 먼지는 모두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군

웅들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각 파간의 호흡이 맞지 않게 되어  진의 

곳곳에 틈을 만들었다. 기마대는 그 틈을 노치지 않고 난입해 장도로 

군웅들을 베어나갔다.

  

  팔문금쇄진안에서 이 모습을 보는 신수개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요동낭인대의 선봉이 팔문금쇄진과 격돌하자 잘려진 팔다리에서 피

분수가 치솟았고 백도군웅들의 대오는 곳곳에서 무너졌다.  요동낭인

대의 일격에 팔문금쇄진이 붕괴된 것은 아니자만 계속 밀려드는 파경

에 땅은 이미 피로 축축이 젖어든 상태였다. 

  

  백도 군웅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포기하고 곳곳에서 문파별로  삼삼

오오 짝을 이루어 요동낭인대를 공격했다.

  

  "이야합."

  

  풍개 견로자가 일수를 흔들 때마다 요동낭인대의 기마가 피를 뿌렸

다. 

  

  백리웅풍과 그가 이끌고 온 백리세가의 무사들은 광적으로  요동낭

인대에 달려들었다. 백리웅풍의 손과 옷이 피로 물들어가는 만큼  세

가 무사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순간 요동낭인대의 기마대가 썰물처

럼 빠져나갔다. 백여 장을 물러난 요동낭인대는 십열 종대로 길게 늘

어섰다. 

  

  이들의 퇴각을 뒤따라 몇 명을 격살한 풍개 견로자가 피로 물든 손

을 내리며 땅에 내려섰다. 그뒤에 백도 군웅들이 피에 흠뻑 절어  다

가왔다. 발에 걸리는 건 말과  사람의 시체였다. 이철룡은 한쪽팔을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있는 포응검객 나관추 옆으로 다가갔다.

  

  "사숙 이미 우리가 졌습니다. 지금 퇴각해야 합니다."

  

  포응검객 나관추는 핏발선 눈을 부릎떴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이철룡은 나관추를 비롯한 중인들이  눈빛에 목을 움츠렸다.  그때 

신수개가 나섰다.

  

  "이런 평지에서 기마대와 정면승부를 하는 것은 우리의 피해를  크

게 하는 겁니다. 우선 제남성으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

습니다."

  

  신수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동낭인대가 돌격대오를  유지한 

채 밀려들어왔다. 

  

  "이야아."

  

  풍개 견로자는 요동낭인대의 선봉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견로자의 

손이 움직일 때마 몇구의 기마가 피를 뿌렸다. 그 피를 본  백도군웅

들은 누가 뭐랄 것 없이  함성과 함께 달려나갔다. 나관추는  매서운 

눈길로 이철룡을 한 번 보고는 몸을 날렸다. 

  

  "사숙 안 됩니다."

  

  백리웅풍은 요동낭인대를 베고 또 베며 앞으로 앞으로  진격해나갔

다. 그는 좌우에서 공조를 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을 살필 겨를이  없

었다. 한 명이라도 더 한 명이라도 더 자신의 손으로 이들을  죽여야

만 속이 풀릴 거 같았다. 한  명의 낭인을 베어 쓰러트리고 말  위에 

올라타기 위해서 발을 굴렀다. 순간 왼쪽 발목이 접질렸다.

  

  '헉.'

  

  백리웅풍은 흐트러지는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 등을 구부렸다. 순간 

등줄기가 화끈해지며 말이 멀어졌다. 백리웅풍은 몸을 돌리며 자신을 

벤 자를 찾았다. 혈도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그의 좌우측에서 피로 

물들은 하얀 무복을 걸친 백리세가의 무사들이 달려왔다.

  

  "소가주님 피하십시요."

  

  퍼걱 퍼걱. 

  두개의 수급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백리웅풍의 시야를 가렸다. 

  

  슈욱. 

  한줄기 빛 줄기가 피막을 뚤고 백리웅풍에게 날아들었다. 백리웅풍

은 검으로 쳐내며 몸을 미끄러지듯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왼

쪽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의족이 완전히 달아난 것 같았다. 

  

  퍼억. 

  장창이 어깨를 뚤었고 백리웅풍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위를 

몇 필의 말이 지나갔다. 말발굽에 채여 공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백리웅풍의 몸이 잔 경련을 일으켰다.

  

  신수개는 이제는 반으로 줄어든 개방도들을 지휘하며 전황을  살폈

다. 존덕문의 무사들과 몇 몇 고수들이 선전을 하고 있었지만 전황은 

이미 기울대로 기운 상태였다. 신수개는 목청이 터저라 소리쳤다.

  

  "제남성으로 퇴각하라."

  

  이철룡은 고개를 숙이고 약재 보퉁이를 들고 전각으로향했다.  그

의 몸 곳곳에도 혈흔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대전에는 팔다리가 잘린 

이들과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당한이들이 신음성을  흘

려댔다. 이철룡은 약재를 다듬는 사람들 옆에 보퉁이를 내려놓고  조

심스럽게 물러났다. 부상을 당한  이들은 이철룡을 저주스러운  듯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패배가 이철룡의 말 때문인  것처

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

  이철룡은 전각을 빠져나와 저잣거리로 향했다.

  

  상체를 붕대로 감고 있는 구선개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는  이들

을 돌아보았다. 풍개 견로자를 비롯해 소림과 무당, 화산의 고수들과 

존덕문의 당주급들은 모두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강호에서  손꼽히는 

고수들인지라 명줄은 챙기고 있었다. 

  

  단지 한 자리. 

  백리웅풍이 앉아 있던 자리만 비어 있었다. 반혈맹주의 큰아들이자 

제남 공격의 상징인 그가 죽어 버린 것이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백리

영풍이 존덕문에 남아 이번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관계로 대를  이어 

갈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

  

  구선개는 침중한 얼굴로 중인들을 살폈다.

  

  "요동낭인대가 그 동안 산동성에서  긁어모은 재보를 가지고  오늘 

요동으로 가는 배를 탄다고 하오."

  

  구풍당주가 거친 목소리로 중인들을 선동했다.

  

  "놈들을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만으로도 기습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풍개 견로자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에게 남은 전력은 여기 모인 우리들뿐이오. 이 전력으로 저들

을 공격하는 것은 적들의 전과를 올려주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소."

  

  구풍당주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놈들을 그냥 보내야 한다니 정말 억울할 따름이오."

  

  구선개는 풍개 견로자와 혜심대사등을 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은 남령산맹에 간 반혈맹의 동도들이 삼혈맹을 

무너뜨리고 혈마를 죽였다는 것이오."

  

  "오. 혈마를."

  

  "혈마를 죽인 분은 청룡장의 소천이라는 분이오. 그래서  천하백도

인들이 청룡장에 모여 위로를 해주기로 했소."

  

  구선개의 말에 풍개 견로자와 혜심대사 일송자는 어리둥절한  얼굴

을 했다. 그들이 알고 있기로는  청룡장과 삼혈맹은 한 통속이  아닌

가. 그런데 어떻게 청룡장의 무사가 혈마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풍개 견로자는 격한 음성을 토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전서를 이리내라."

  

  풍개 견로자가 손을 내밀자 구선개는 전서를 내밀었다.

  

  <삼혈맹 토벌하는데 성공했다. 혈마는 청룡장의 소천대협의 칼  아

래 죽었고 소천대협도 중상을 입었다. 우리는 강동으로 가  소천대협

을 위문할 것임.> 

  

  견로자는 전서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맹주의 필체와 비표

가 담겨 있었다. 풍개 견로자는 한쪽 팔이 잘려진 구풍당주를 바라보

았다. 구풍당주는 멍한 표정으로 풍개 견로자를 쳐다보았다.

  

  산들바람이 머리카락을 얕게 날렸다. 신수개는 머리카락을  정돈하

며 산밑을 바라보았다. 산비탈 아래  있는 넓은 부둣가에 자리한  세 

척의 대형범선에 사람과 짐이 가득 실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기찰을 

도는 포쾌 몇 명이 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림인들의 모습은 보

이지 않았다. 요동낭인대는 전략적  패배를 전술적 승리로  화려하게 

장식하며 당당하게 퇴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내려다보는 신수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리가 전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나의 생각은 그릇된  것이

었다. 다수간의 전투에 있어서 조직되지 못한 병력은 전력이 아니다. 

단순히 고수가 많다는 그래서 이길 거라는 나의 오만이 패배를  불렀

다.'

  

  사람과 짐이 다 실린 범선의 깃봉에는 요동낭인대의 상징인 혈랑기

가 나부꼈다. 혈랑기는 바람을 타고 황하를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

했다. 배가 멀어지면 멀어 질 수록 신수개의 상실감은 더욱  커졌다. 

가다가 물에 빠져 죽기를 기원했지만  배는 바람만 가듣 담은 채  더 

빠른 속도로 작아져갔다.  

  

  요동혈랑은 멀어져가는 부두를 바라보았다. 그의 좌측으로  사망혈

도 형위가 다가왔다.

  

  "대주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우리가 여기 온지 얼마가 되지?"

  

  "일년을 조금 넘겼습니다."

  

  "일년."

  

  나직히 고개를 끄떡이던 요동혈낭은 다시 입을 열었다.

  

  "중원은 우리의 예상보다 넓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기지 않았습니까? 좀더 준비를 해서  진출한다면 

그리 어렵지 많은 않을 꺼라고 생각됩니다."

  

  "아니다. 어렵다. 아주 어렵다. 그렇지만 다시 올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중원진출이 아닌 원래 우리의 땅을 되 찼는 것이기에."

  

  "네 그렇습니다."

  

  형위가 물러나자 요동혈랑은 손에 쥔 작은 서찰을 손으로 비볐다.

  

  '그들이 있는 한은 안되겠지만 말이다.'

  

  풍개 견로자와 존덕문의 구풍당주가 서로 머리를 맞대었다. 한  장

의 전서로 인해 이 둘에게  있어서 백리웅풍의 죽음과 요동낭인대의 

퇴각은 아주 작은 것이 되어 버렸다.

  

  "아직 두 분께서 연락이 없는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 건가?"

  

  "저들의 금선탈각지계가 아닐까요?"

  

  풍개 견로자는 고개를 끄떡였다.

  

  "흠 금선탈각지계라 일이가 있네."

  

  "소천은 전에 소림사의 혜명대사와 비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풍개 견로자는 약간 놀란 얼굴을 했다. 자신이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이가 천하의 혜명과 비무를 했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아 그런가? 어찌 됬나?"

  

  "그 비무에서 둘은 막상막하의 솜씨를 겨루었습니다."

  

  풍개 견로자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호. 젊다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한 솜씨군. 혜명과 손속을 나눌 정

도라니."

  

  "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혈마를 죽였다는 걸 믿지 못

하겠습니다. 개전초기 소림사의 혜명대사님과 무당파의 일검도장께서 

혈마를 상대했지만 결국 물러나고 말지 않았습니까?"

  

  풍개 견로자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랬었지."

  

  "앞서 소천과 혜명대사의 비무를 봐서라도 그 혼자서 혈마를  상대

했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흐음. 그래 그래 맞어 바로 그거야. 서로 짜고 싸우지 않는  이상 

소천이 혈마를 상대 할 수는 없지. 이로서 청룡장이 삼혈맹과 한  통

속이라는 심증은 더욱 확고히 굳어졌군."

  

  "하지만 중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아니한 모양입니다. 요동낭인대를 

토벌하고 청룡장과 삼혈맹과의 관계를 만 천하에 폭로한다는  계획은 

잠시 접어야 하겠습니다. 잘 못 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음성적으로 퍼저나가기 시작했는데……."

  

  "공개적으로 저희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그냥 소문 일  뿐이니 

누가 나서서 밝히려고 하지 않을 껍니다. 단지 의심하는 생각은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겠지요. 차라리 이렇게 음성적으로 퍼저  나가다가 

군웅들이 청룡장에 모였을 때 사실을 밝히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

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더 많은 증거를 모아 저들이 발뺌을 하지  못

하게 해야 합니다."

  

  풍개 견로자는 고개를 끄떡였다.

  

  아미파의 장로 월명사태는 열 두 명의 본산 제자와 삼십명의  속가

제자를 거느리고 수풀을 나는 듯이 헤치며 나갔다. 이들이 입고 있는 

가사와 옷은 피로 점철되어 있었다. 지난 사흘간의 추격전에서  뿌려

진 자신과 동료의 피였고, 간악한 삼혈맹도의 피이기도 했다. 

  

  월명사태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하늘 높이 폭죽신호가 터저  올

랐고 곧 산 저편에서 고함성과 비명성이 골골이 메아리쳤다. 

  

  월명사태는 선장을 휘두르며 눈앞을 가리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쳐

댔다.

  

  "다른 문파가 삼혈맹의 잔당들을 잡고 있는 모양이다. 어서 가자."

  

  "네."

  

  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자 나무들이  점점 낮아지며 낮은 잡목과 

수풀로 이루어진 너른 구릉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하늘을 이고 

있는 구릉 밑에는 피보다 붉은  혈의를 입고 백도군웅들과 어우러진 

삼혈맹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월명사태는 구릉 위에 올라 반대편  능

선을 내려다보았다. 자신들이 달려온 반대편 능선은 시체에서 흘러나

온 피가 냇물이 되어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월명사태는 선장을 휘두르며 격전장으로 달려갔다.

  

  "무림악적들을 토벌하라."

  

  아미파의 제자들도 그 뒤를 따랐다. 

  

  삼혈맹도 중 한 명이 이들을 보고 외쳤다.

  

  "아미파다."

  

  그 소리에 삼혈맹의 선두에서 백도군웅을 베던 적혈마군의  시선이 

아미파를 향했다. 파파파. 좌우에서 날아드는 병장기를 쳐내며  적혈

마군은 아미파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좌우로 지옥마군과 악인마군이 

따라 붙었고 삼혈맹의 고수들이  일제히 아미파를 향해  질주해왔다. 

이들의 앞으로 두 개의 혈륜이 먼저 월명사태를 노렸다. 몸을 움직이

는데 늦은 이들은 백도군웅들을 막기 위해 저지선을 형성했다.

  

  월명사태는 앞으로 나가는 자신의 기세를 선장에 담아 두개의 혈륜

을 강하게 쳐냈다. 무수한 불똥이  튀어 오르며 두개의 혈륜은  뒤로 

돌아갔고 월명사태도 달려오는 속도가 주춤거렸다. 

  

  왼쪽 뺨에 난 검상이 꿈틀거리는 적천마군은 혈륜을 잡자 땅을  스

치듯 날며 월명사태의 두 눈을 직시했다. 월명사태도 눈을  부릎뜨고 

적천마군을 노려보았다. 순간 적천마군의 좌우에서 적혈마군과  악인

마군이 튀어 나와 월명사태의 좌우로 달려오는 아미파의 제자들을 행

해 날아갔다. 이 둘이 스치는 곳에서 피와 비명성이 연달아 터져  나

왔다. 그 뒤를 따르는 삼혈맹도들도 아미파 제자들을 상대하면  힘이 

백 배로 치솟는지 일반 무사들도 거센 도풍을 일으켰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붉은 물결에 아미파의 제자들은 속절없이 쓰

러졌다. 삼혈맹의 뒤를 공격하는 다른 문파에서 함성을 지르며  더욱 

거세게 압박해 들어왔지만 삼혈맹의 고수들은 아미파를 주살하는  데

서 몸을 빼지 않았다. 월명사태의 눈썹이 푸들푸들 떨릴 때 적천마군

의 쌍륜이 허공을 날았다. 월명사태는 기합성과 함께 선장을  휘둘러 

쌍륜을 쳐냈다. 그때 두개의 단창이  월명사태의 배를 뚤고 나왔다. 

등뒤 명문혈에서 꽃혀진 두개의  단창은 악인마군의 병기였다.  배를 

내려다보는 월명사태의 머리는 적혈마군의 장도에 의해서 베어졌다. 

  

  적혈마군은 월명사태의 머리를 높이 던졌다.

  

  "이쪽으로 진격하라."

  

  적혈마군의 명령에 군웅들과  격전을 벌이던 삼혈맹도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그 뒤를 산하를 메우며 백도군웅들이  밀려들어왔다. 

사대마군은 자신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삼혈맹도를 보며 병장기를  높

이 세웠다. 붉은 물결이 금새  끝나고 백도의 군웅들이 이들을  향해 

달려왔다.

  

  "목을 내놔라 마군들."

  

  적혈마군은 도를 그으며 백도 군웅들을 주살하며 뒤로 조금씩 물러

났다. 백도 군웅들은 숫자는 넘쳐났지만 고수들이 없었다. 각파의 고

수들은 대부분 혈마를 잡기 위해 동원된 상태였고, 삼혈맹의  퇴각부

대를 쫒아 온 이들은 이류급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믿는 것

은 승리했다는 자신감과 숫자뿐이었다. 그리고 부상당한 것으로 보이

는 사대 마군 중 한 명을 베어 명성을 떨쳐 보겠다는 생각들을 가지

고 있었다. 

  

  청성파의 진성도장은 이마에 흐르는 피땀을 닦았다. 그의 좌우에는 

일곱 명의 본산제자와 이십 명이 채 안 되는 속가제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채 거친 호흡을 토해내고 있었다.

  

  "사숙님. 삼혈맹이 우리 청성파나 아미파와 어떤 특별한 원한이 있

습니까? 어떤 원한이 있길래 우리  청성파와 아미파만 보면 못  죽여 

안달일까요? 조금 전에도 아미파가 오자 삼혈맹의 고수들은 모두  그

쪽으로 달려가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귀주에서 천독문과 싸울 때는 몰랐지만 이곳  남령산

맥에 그렇게 지독한 격전을 치루며 온 문파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당

가 하나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삼혈맹의 절벽이 무너질 때도  우리와 

아미파가 있쪽이 가장 많이 무너졌고, 적의 주력도 우리와  아미파가 

있는 곳으로 돌파를 했습니다. 덕분에 우리와 아미파의 형제들이  가

장 많이 죽었구요."

  

  "네 우리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처음 문을 떠날 때는 일 백 명이 

넘는 형제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 남은 게 전부 아닙니까?"

  

  "그래서 추적에서 빠지자는 말이냐? 지금 물러난다면 그 동안 쌓아 

왔던 본 파의 명예는 어떻게 하겠느냐? 저들이 본 파와 아미파를  집

중적으로 노리는 것은 우리 두 곳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하려

는 속셈이다. 우리 두 곳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저들은 다시 

두 문파를 선정해 집중공격을 할  것이다. 고난은 누구한테나 온다. 

단지 그걸 피하느냐 극복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자 한 숨  돌

렸으면 모두 나를 따르라."

  진성자가 신법을 펼치자 남은  청성제자들도 일제히 몸을  날렸다. 

청성제자 중 한 명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극복하려다 깔려 죽는 수가 있습니다. 사숙.'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자 산을 울리던 신호탄과 고함성이  잦아들었

다. 지리에 어두운 백도 군웅들이 밤에까지 삼혈맹을 추적하는  것은 

위험했다. 실제로 첫날 한 밤 중에 삼혈맹도들을 추적했다가  매복에 

걸려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적혈마군은 삼삼오오 모여 원형진을 이루고 있는 삼혈맹도들을  찾

아다니며 일일이 인원과 부상정도를점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몸

을 움직일 수 없는 중상자들은 없었다. 아니 중상자들은 이곳까지 따

라오지 못한 것이다. 처음 총단을 떠났던 삼백 무사가 어느새 절반으

로 줄어 있었다. 

  

  삼삼오오 흩어져 있는 이들은 감시병 한 명만 남겨두고 모두  선잠

을 자고 있었다. 이것도 남령산맥이 자신들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가

능한 일이었다. 

  

  인원점검을 끝낸 적혈마군은 혈륜을 닦고 있는 적천마군에게  다가

갔다.

  

  "대군. 야습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적천마군은 혈륜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미끌한 기름기가 손을 끈적

끈적하게 했다. 싸운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적혈마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사들이 모두 지쳤습니다."

  

  "지난 사흘간의 추적을 보니 적들은 지휘명령체계가 전혀 없다. 또

한 각파가 공을 세우기 위해 다른 파의 공격을 방해하기도 하고,  심

지어 자기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기도 했다."

  

  적천마군 앞에 있는 악인마군이 지옥마군의 어깨에 붕대를  감아주

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걸 저도 느꼈습니다. 백석파의 고수 한 명이 제 사혈을  노리

고 일검을 날렸을 때 옆에 있던 다른 자가 견제를 하더군요. 그때 피

하거나 반격 할 수 있었지만 부상은 당했을 껍니다."

  

  "적은 몇 개의 계곡과 능선에 흩어져서 밤을 보내니까 우리가 야습

과 유인을 적적히 이용한다면 서로  상잔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세 대군은 고개를 끄떡였다. 적천마군은 계속 말을 이었다.

  

  "더우기 이번 야습과 유인작전이 성공한다면 저들은 밤이면 경계를 

철저히 하고 추적을 꺼려할 것이다.  우린 그 틈을 타  무이산맥까지 

밤낮을 도와 달린다면 저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다."

  

  악인마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귀왕곡의 응원은 없는 겁니까?"

  

  적천마군의 눈에 새파란 섬광이 튀었다.

  

  "우리는 대 삼혈맹의 오대마군이다. 이걸 잊지마라."

  

  악인마군은 얼른 목을 움츠렸다.

  

  "넷. 죄송합니다."

  

  "이번 야습에 굳이 청성과 아미를 노릴 것은 없다. 내가 저들 중에 

경계가 허술 한 곳을 흔들면 좌우에서 응원이 나올 것이다. 그때  지

옥마군과 악인마군 너희 둘은 백도 군웅들로 위장하여  응원을 오는 

척 하다가 다른 곳을 기습공격해라. 이들이 반격하면 병력을 돌려 다

른 문파를 향해 돌격해라. 이때 단 한 번 접전하고 병력을 빼라. 협

곡과 능선을 이용한 다면 적들이 서로를 확인하지 못하고 싸우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발생하면 다른 곳에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

고, 여의치 않을 때는 이곳으로 퇴각해라."

  

  "네."

  

  "적혈 너는 이곳에서 매복해 있다가 나나 이 둘이 꼬리를 달고  오

면 떼어내는 임무를 맡는다. 적이 함정을 파고 기다려 이곳까지 밀리

게 된다면 흩어져서 황류산까지 퇴각한다. 질문 있나?"

  

  "없습니다."

  

  "삼경에 기습한다. 너희들도 가서 쉬어라."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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