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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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령산맥의 극망복에 올라선 군웅들은 망연자실 밑을 내려다  보았

다. 절벽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에 봉우리에 올라 온 사람들을 이리저

리 흔들었다. 협개 나정호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혈마가 죽다니."

  

  두 눈으로 보고도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촥촥. 

  

  칡덩쿨을 이어 만든 밧줄이 구름을 가르며 밑으로 떨어졌다. 그 줄

을 잡고 경공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 하나 둘 씩 밑으로 내려갔다. 이

들이 내려간 자리에는 뒤에 밀고 올라온 이들이 금새 들어찼다. 아니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것 같았다. 나정호는 허리를  피고 

고개를 아래로 돌렸다. 산을 울리는 함성은 줄어들지 몰랐다.

  

  "천하제일 고수 만세."

  

  "청룡장 만세."

  

  "소천대협 만세."

  

  이런 함성 속에 백색 물결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정호는 

걱정스러운 안색을 했다.

  

  '소공자를 위해서 뭔가를 준비했으면 좋겠는데.'

  

  나정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백리무군의 모습을 찾았다. 허탈한  표

정을 짖고 있는 화산파의 무량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장로님 맹주님을 보셨습니까?"

  

  무량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여기 계셨는데,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계시

나 봅니다."

  

  나정호는 사람들을 헤치며 밑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나 방주님."

  

  나정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무당파

의 청송자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 청송도장 무슨 일이십니까?"

  

  "혈마가 죽기는 죽은 겁니까? 저는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나정호도 약간 김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심장에 검을 찔리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죽지 않았을  지

도 모르겠지요."

  

  "정말로 검에 찔리기는 한 걸까요?"

  

  협개 나정호는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서 좌우로 둘러싼  개방도들이 

군웅들의 봉우리 진입을 막고 있는 것을 보고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개방도들이 밑으로 한 걸음 내딛으면 군웅들은 그 빈자리를 바로  메

꾸었다. 청송자도 나정호를 따라 봉우리 밑으로 향했다. 무당파의 젊

은 후기지수들은 청송자와 봉우리를 번갈아 보다가 청송자의 뒤를 따

랐지만 몇 명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군웅들 틈 사이로 몰래 스며들

어갔다.

  

  나정호는 청송자의 머리위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말을 했다.

  

  "제 안목으로는 소공자의 검이  틀림없이 혈마의 심장에  박혔습니

다. 검이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면 알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청송자는 물론 무당파의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취

선개가 누런 이를 드러 내며 뭐라고 한 소리를 하려고 했다. 그때 저 

쪽에서 형산파의 장문인 반양상인이 붉은 얼굴로 사람들을 헤치며 제

자들을 이끌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혈마가 죽은 건 확실하네. 그의 심장에 검이 박히자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을 했네. 그 기운은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천주가 

될 정도였네."

  

  무당과 개방은 물론 반양상인을 따라왔던 형산파의 제자들과  주위

에 밀집해 있던 군웅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반양상인은 수염을  쓰다

듬었다.

  

  "방주께서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부끄럽습니다."

  

  군웅들의 시선이 어느새 둘에게 모아졌고 한 명이 궁굼하다는 듯이 

소리를 쳤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양상인이 협개 나정호에게 왼손을 옆으로 펼쳐 말할 것을 권하자 

나정호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반양상인은 붉은 얼굴에  웃음

을 머금고 발걸음을 떼었다. 

  

  "어느 정도 공력이 모이게 되면 몸 안에서 응집이 일어납니다."

  

  군웅들은 반양상인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불가에서 이르는 것처럼 좁쌀 안에 수미산을 집어넣는 것과  같은 

현상이지요. 이 응집된 공력은 과도한 오욕칠정, 특히 분노에 의해서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만 고수들이야 어디 그런가요? 하하하."

  

  반양상인은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어갔다.

  

  "고수들 간의 격전이 벌어져 한 쪽이 크게 상하면 응집되었던 공력

이 흩어지게 됩니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공력

도 크게 응집된 곳에서 넓게 퍼진 천지간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

다. 이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크게 상한 사람의 주위를 관찰한다

면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상승의 고수라면 그  기

운이 금새 주위와 동화되지 않아서 마치 기둥이 선 것처럼 뿜어져 올

라가게 되는 겁니다. 입에 물을 머금고 강하게 뿜어 대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럼 혈마의 공력이 그와 같이 흩어졌다는 말씀이십니까?"

  

  반양상인은 천천이 고개를 끄떡였다. 중인들은 여기저기서  탄성을 

터트렸다.

  

  "혈마의 공력이 그와 같이 흩어 졌다면 설혹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공력을 회복하지는 못하겠네요?"

  

  반양상인은 고개를 끄떡였다.

  

  "높이 올라갈 수록 깊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서 혈마 정도의 

공력이 한 번 부서진 거라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설사 전

설의 영약을 수레로 구한다 한들 다시 이와 같은 공력을 얻지는 못할 

것이오."

  

  군웅들 사이에서 한 명이 소리쳤다. 

  

  "아 저기 대청룡장의 용권노사 하노영웅께서 오십니다."

  

  용권노사 하연적이 너털걸음으로 걸어 올라오자 군웅들이 그를  둘

러쌓다.

  

  "소천공자. 아니 대협께서는 평안하십니까?"

  

  "혈마를 죽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청룡장이야 말로 천하제일대파입니다."

  

  여기저기서 축하와 감탄과 위문이 쏱아졌다. 하연적은 일일이 대답

을 하지 못하고 손만 모아 예를 표하며 나정호 앞으로 다가왔다.  형

산파 장문인 반양상인은 하연적의 손을 잡았다.

  

  "정말 수고가 많으셨소이다."

  

  나정호도 하연적에게 다가갔다. 

  

  "노사. 소대협께서는 좀 어떻십니까?"

  

  "내상이 심하시나 몇 달 요양을 한 다면 완쾌 될 수 있을 껍니다."

  

  "오. 정말 다행입니다."

  

  "맹주님과 여러 동도분들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먼저 가서  죄송

하다는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죄송하다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맹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신지요?" 

  

  "어. 조금전까지는 여기에 계셨는데……."

  

  군웅들은 여기저기서 백리맹주를 찾았다.

  

  "맹주님. 맹주님."

  

  협개 나정호도 주위를 둘러보다가 취선개에게 물었다.

  

  "건곤 장로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건곤장로는 잠시 일이 있다며 진영으로 내려갔습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바위계곡 아래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흘렀

다. 소슬한 바람이 바위위에 앉은  두 은의노인의 긴 수염을  흔들었

다. 반짝이는 은발 안에 어린아이처럼 붉은 동안이 순진무구한  눈빛

을 뿌렸다. 떠나갈 듯한 함성의 여운이 골골 마다 울렸고 두  노인은 

입안에 한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두 노인은 왼쪽 가슴에 각기 대(大)자와 조(照)자를 수놓았다.  바

위 골을 차고 백의에 백모란이 수놓아진 옷을 입은 백리무군이  빠르

게 날아와 두 노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혈마가 소천의 손에 죽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일을 진행시켜 나

가야 겠습니까?"

  

  "청룡장을 크게 높여 주고 현재 남령산맥에 집결해 있는  백도문파

들을 청룡장으로 이동하게 하라."

  

  백리무군은 고개를 들었다.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가슴에  대자를 

수놓은 선우대덕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기호지세다. 우리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다

시는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상관덕조는 수염을 쓸어 내렸다.

  

  "군웅들이 너를 찾는 모양이니 속히 돌아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척. 

  

  백리무군은 포권을 취하고 계곡을 빠르게 내려갔다. 그가 사라지자 

상관덕조는 입술을 약간 우그렸다.

  

  "혈마가 소천의 손에 죽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혈마의 공력이 완전히 흩어지는 걸 보지 않았느냐?"

  

  "그렇기는 하지만……. 매복해 있는 부하들이 자칫 상황을 잘못 판

단하여 청룡장을 공격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는 혈마를 자신이 죽이고, 군웅들에게 청룡장과 삼혈맹의 관계

를 밝힌 후 군웅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부하들을 선동해 남령산

맥에 있는 청룡장 무사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이 여세를 몰아 남령산맥에서 바로 강동으로 진격하고, 운하를  따라 

내려오는 풍개 견로자가 호응하기로 한 것이다. 헌데 소천이  혈마를 

죽임으로써 계획이 처음부터 틀어진 것이다. 

  

  선우대덕은 낮은 신음성을 토했다.

  

  "피는 될 수 있는 한 덜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구나. 나의 천수가 

십 년만 더 남았어도 기다려 보련만."

  

  "그럼?"

  

  "아직은 대국을 우리가 주재하고 있고, 제 이의 방안이 남아  있으

니 걱정할 것 없다."

  

  선우대덕은 심사숙고하고 있는 상관덕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설혹 백오가 열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잡고 있는 대세를 막지

는 못한다. 지금은 잠시 돌아가는 것뿐이다. 너는 이 길로  제남으로 

가서 풍개 견로자를 만나 일이 변경되었음을 통보해라. 나는  응천부

로 가서 황실을 움직이겠다."

  

  "알겠습니다." 

  

  요동낭인대가 있는 제남의  동원장(東原壯)에는 수십 기의  기마가 

시시각각 출입을 했고 장원 주위를 순찰했다. 말발굽에 이는  흙먼지

가 평야지대를 낮게 깔았지만 이들이 들고 있는 창검의 예기를  감추

지는 못했다. 

  

  동원장의 정문 위에 설치된 망루에 선 한 사나이는 햇살 때문에 약

간 찡그려진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황금빛으로 물 들어가는  드넓은 

평야 몇 군데는 검은 땅을 드러내기도 했다. 

  

  "개방. 언제고 우리 발목을 잡으리라 생각했다." 

  

  요동낭인대의 부 대주로 요동혈랑 다음의 위치에 있는 사망혈극 형

위는 쏱아지는 햇볕을 피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멀리 보이는  농부

들 중에는 개방을 비롯한 소위 강북무림의 백도인들이 이곳을 주시하

고 있을 것이다. 형위는 주먹을 꾸욱 움켜쥐었다.

  

  '지역기반이 없고 본 거지에서 너무 먼 중원에 이렇게 단독으로 자

리를 잡은 건 애초 무리였다. 하지만 이대로 등을 보이고 돌아갈  수

는 없다.'

  

  두두두. 

  

  경쾌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덩어리의 먼지가 망루위로 올라왔

다. 형위는 손으로 먼지를 저으며 시선을 앞에서 떼지 않았다.

  

  초립을 눌러쓰고 낫을 약간 삐뚤게 쥔 상태로 벼의 윗부분을  성겅 

성겅 베는 사나이가 허리를 쭈욱 피며 시선을 동쪽에 두었다. 

  

  밝은 대 낮에 창검을 들고 순찰을 돌고 있는 수십기의 기마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군. 이런 평야지대에서 저들과 기마전을 벌

인다는 건 쉽지 않겠어.'

  

  사나이는 곧 몸을 숙여 벼를 베었다.

  

  신수개는 주위에 둘러앉은 풍개 견로자와 소림사의 혜심대사. 무당

파의 일송자. 화산파의 포응검객 나관추, 백리세가의 백리웅풍, 존덕

문의 구풍당주를 바라보았다.

  

  "현재 요동낭인대는 각 지단을 포기하고 동평장에 모두 집결한  상

태입니다. 그 수는 무려 팔백 사십 명에 달합니다."

  

  "으음 팔백 사십 명이라."

  

  무당파의 일송자는 묵직한 신음성을 터트렸다.

  

  "우리가 동원한 수보다 더 많군."

  

  신수개는 담담히 답했다.

  

  "수로서는 요동낭인대가 일 백 명 정도 더 많지만 우리측에는 고수

들이 많기 때문에 전력비로는 우리가 더 우세합니다."

  

  백리웅풍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면대결로는 우리의 희생이 크지 않겠습니까?"

  

  포응검객 나관추는 굵은 목소리를 냈다.

  

  "지금 남령산맥에서는 여러 동도들이  삼혈맹과 맛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우리가 희생을 두려워 해서야 되겠소."

  

  "희생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최선의 공격법을 찾아 전력을  유지하

자는 거지요."

  

  구풍당주는 신수개를 보며 나직히 물었다.

  

  "헌데 요동낭인대가 포위 당하는 것을 무릎 쓰고 한 곳으로 집결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요동낭인대로서는 이 산동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포위망 같을 껍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점령지에 병

력을 넓게 배치해 놔봐야 적에게 각개격파를 당할 뿐이지요."

  

  "흐음. 그렇기는 하겠군."

  

  "다른 하나는 무엇이오?"

  

  신수개는 약간 허망한 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퇴각입니다."

  

  구풍당주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곧 신색을 되찼았고  중인

들은 깜짝 놀랐다.

  

  "퇴각?"

  

  백리웅풍은 허연 김을 토해냈다.

  

  "퇴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들이 어디로 도망을 갈 수  있다

는 거요?"

  

  신수개는 말을 돌렸다.

  

  "아쉽게도 우리의 수상전력은 사해방에 크게 못 미칩니다."

  

  "그럼 사해방이 요동낭인대를 거들거란 말이오?"

  

  "정보에 따르면 사해방은 요동낭인대에게 퇴각을 종용했다고  합니

다."

  

  백리웅풍은 주먹을 꾸욱 움켜쥐었다. 그대로 퇴각해서는 안되었다. 

양산박에 흐르던 가솔들의 피가 아직 눈에서 마르지 않았는데.  그건 

절대로 안될 말이었다. 그의 바램에 답변을 하기라도 하는 듯 신수개

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 종용을 요동혈랑이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퇴각 할 수는 

없다며 우리와 일전을 벌여봐야 겠다고 했습니다."

  

  백리웅풍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잘 됬습니다. 이 기회에 중원의 힘을 오랑캐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백리웅풍의 웃음에 구풍당주가 미소로 답변했지만 다른 이들은  약

간 탐탁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정면돌파를 강하게 주장했던 포응검객

도 약간 회의적인 얼굴이었다.

  

  "요동혈랑도 자신들의 전력이 우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

을 텐데……. 일전을 각오했다면 뭔가 믿는 게 있다는 말 아니오?"

  

  "허장성세가 아닐까요?"

  

  "허장성세로만 보기에는 좀 이상합니다."

  

  중인들의 말이 겉도는 것 같자 신수개는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그때 격하게 문이 열리며 한 명이 거칠게 들어왔다. 그의 몸에서는 

기괴한 악취가 흘렀고 얼굴은 더 없이 굳어져 있었다. 중인들의 시선

이 모두 개방장로 구선개에게 모아졌다. 신수개는 눈살을 찡그렸다. 

  

  "무슨 일입니까?"

  

  "태상장로. 동평장을 감시하던 이들이 요동낭인대와 일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남성과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져 있던 이들이  급히 

동평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으니 어서 우리도 움직여야 합니다."

  

  신수개는 눈을 부릎떴다.

  

  "네?"

  

  "여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동원평야는 시산혈해로 바뀌

고 있다니까. 어서 어서 움직여라."

  

  이철룡은 볏단에 숨겨둔 장검을 빼들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의  주

위에 있던 화산파의 본산제자와 속가제자  서 너 명도 그 뒤를  따랐

다. 시작이 어떻게 되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 지는 몰랐지만 분명

한 것은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자신들 앞까지 달려와 구원을 요

청하며 쓰러졌다는 거였다. 

  

  이철룡의 귓가로 바람이 미친 듯이 질주했다. 눈앞에서 목이  뒹굴

던 사부의 시체가 계속 떠올려졌다. 황금 벌판의 일부는 피로 물들었

고 수십 명이 각종 병장기를  휘두르며 사방에서 달려드는 기마대가 

좌우충돌하고 있었다. 

  

  "이야아."

  

  이철룡은 격전장으로 달려가 단숨에 삼장을 날아올라 마상 위에 있

는 자를 내리쳤다. 그는 혈도를 들어 이철룡의 검을 비꼈다. 까가강. 

격한 쇳소리와 불똥이 튀며 이철룡의 눈을 어둡게 하고 피를 끌어 오

르게 했다. 

  

  "죽어라."

  

  땅에 내려선 이철룡을 향해 수십 필의 거대한 말의 동체가  벽처럼 

연결되어 밀려왔다. 이철룡은 좌우로 피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음을 알

고 발을 굴렀다. 그의 몸이  높이 떠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창이 

몰려왔다. 

  

  "이야합."

  

  이철룡은 장창을 쳐내며 그 반탄력으로 기마대의 옆으로 날아갔다. 

화산파에 있을 때 부터 경공에는 자신이 있었고 태행산맥에서 연무를 

하면서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기 때문에 기마대의 돌격대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철룡처럼 경공이 뛰어나지도 임기응변

을 할 실력도 되지 못했다. 말의 동체에 받히거나 장창과 혈도에  난

시되어 사방에 피를 뿌렸다. 이철룡은 기마대의 좌측면에 내려서면서 

몸을 몇번 굴러 십여장을 더 물러난 뒤 몸을 세웠다. 수십 기가 이룬 

돌격대오가 흙먼지와 검불을 날리며 사라진 자리에는 이겨진  시체들

이 흐느적거렸다. 

  

  이철룡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평원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모습을 드

러내는 백도협사들과 수십명씩  돌격대를 이루고 있는  요동낭인대를 

바라보며 머리를 쳤다.

  

  "아뿔사 함정이다."

  

  백호대를 따라다니며 배운 조직전의 경험이 되 살아났다. 

  

  요동낭인대의 기마대는 앞에 서 너 명이 선봉을 형성해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중인들이 선봉대에 신경을 쓸때 선봉대는 이들의 예봉을 흘

렸고 바로 돌격조가 철벽으로 밀어 버리는 거였다. 

  

  이철룡은 함정인 것을 알았지만 기마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기마대

는 백도협사들이 한곳으로 모이지 못하게 분산을 시켜 하나씩 하나씩 

처치해 나갔다. 

  

  그 와중에 한 오의 기마대의  무너지면서 비명성과 함께 팔다리가 

허공으로 난무했다. 이철룡은 그곳을 바라보았다. 

  

  "사숙."

  

  풍개 견로자를 위시해서 포응검객과 이번 토벌전에 참가한  백도의 

수뇌부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주위에는 이백여 개방도들

이 타구봉을 들고 팔문금쇄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철룡은 그쪽으로 

힘껏 뛰었다. 요동낭인대에 쫒기던 백도협사들도 일제히 풍개 견로자

가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기마대가 바싹 쫒았다.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동원장의 정문이 활짝 열리며 수백기의 기

마대가 일제히 밀려나왔다. 그들의  선두에는 혈도를 비스듬이  눞인 

요동혈랑이 자리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요동혈랑의 좌우

측에서 나온 낭인들이 화살촉 모양의 추행지진을 구성했다.

  

  구풍당주는 다른 삼개 당주를 바라보았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존

덕문의 전력은 구, 십, 십일, 십이당 이백 명이었다. 이들의  총지휘

는 구풍당에서 맡았다. 구풍당주는 요동낭인대의 주력이  가까워오자 

검을 빼들었다.

  

  "총 공격."

  

  중군을 이루고 있는 개방도들은 부릎뜬 눈으로 요동낭인대의  돌격

을 노려보았고 구풍당과 십익당은 좌측으로 십일비익당과 십이비붕당

은 우측을 맡았다. 

  

  풍개 견로자는 양손으로 폭풍을 일으키며 앞으로 돌격해나갔다.

  

  "이야합."

  

  거대한 기합성과 함께 세 필의 말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산산조각

이 났다. 소림사의 혜심대사와 무당파의 일송자도 각기 선장과  검으

로 요동낭인대의 예봉을 꺽었다. 요동낭인대의 예봉이 무너졌지만 좌

우측으로 밀려가는 기마대는 일점의 요동도 없었다. 

  

  요동낭인대의 파도가 개방의 팔문금쇄진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존

덕문의 무사들이 요철진을 형성하며 요동낭인 주력의 좌우측을  노렸

다. 

  

  사방에서 백도협사들을 추살하던 기마대들이 일제히 말을 돌려  개

방과 존덕문의 주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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