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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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걸은 화톳불이 타오르는 관제묘 안에 앉아 묵상에 잠겼다.  지난 

사흘 동안 일곱 번이나 길을  바꾸어 금불산으로 향했다. 어떤  때는 

아예 길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헌데 그 앞에는 항상  평래

라는 깃발을 단 객점이 자신들을 맞이했다. 자신들이 움직이는 걸 천

독문이 아예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길 앞을 막고  있

을 줄은 몰랐다. 자신들의 이동로를 적이 알고 있다면 어디서든지 기

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의 이동로를 알아냈단 말인가? 가문을 나선 후 

길을 내 마음대로 몇 번이고 바꾸었는데……. 신이라고 해도 이 이동

로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헌데 어떻게.'

  

  당걸은 관제묘 안에 있는 식솔들의 안색을 살폈다. 모두 피곤한 기

색이 얼굴에 약간씩이나마 드러나 있었다. 지난 사흘간 적의  야습에 

대비해 교대로 선잠들을 잦기 때문에 신경들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것이었다. 

  

  다가닥 다가닥. 

  

  거칠게 울리는 말발굽이 관제묘를 울리자 일제히 암기를 손에 쥐고 

밖으로 시위처럼 튀어나갔다. 관제묘 밖에 매복해 있던 당문  식솔들

도 모습을 드러냈다. 저 앞에 서 있는 당문 청년이 고함을 쳤다.

  

  "당문호 장로님이십니다."

  

  밤이슬을 맞으며 달려오는 이는 당문호였다. 당문호는 수염에 달라

붙은 이슬을 손으로 털어 내고 당걸 앞에 섰다.

  

  "가주. 적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

  

  "가주. 앞에 세 갈래 길을 모두 살펴보았는데 세길 모두  평래객점

이 있거나 마을에 평래 깃발이 펄럭였습니다."

  

  당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적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갈 수 있는 지점에 모두 평래 객점을 만

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당문 식솔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무엇이?"

  

  "그게 가능하다는 거요? 우리가 본  객점만도 삼십개가 넘었고 그 

안에 있는 장한들의 숫자는 도합 일 천이 넘었소. 천독문에서 이만한 

인원을 동원 할 수 있다는 말이오? 게다가 우리는 이제 반정도  왔는

데……."

  

  "우리가 본 자들은 천독문도들이 아니었소. 내가 그 중 한 곳에 있

는 자들을 제압해 알아본 결과 그들은 대부분 삼류 건달들이고, 농부

도 있었소. 천독문에서는 체격만 좋은 자들에게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게 해 줄테니 이 삼일만 한곳에 있게 해 달라고 한 거요."

  

  당걸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평래라는 깃발을 내 걸고?"

  

  "그렇습니다. 적은 우리가 갈 길을 미리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요

지 요지에 평래객점을 세워둔 겁니다. 이는 발빠른 자 몇 명과  은자

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평래객점에 적의 간세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그들이 우리

의 이동을 알고 준비를 하는 것 아니오?"

  

  "그 동안은 그들이 우리를 찾아 낸 게 아니라 우리가 평래  객점을 

보고 이상히 여겨 찾아 간 것이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그들이  우

리에게 찾아 왔나 우리가 그들에게 찾아가 상황을 정탐했나."

  

  당문 식솔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하하. 정말 얄팍한 수법이군. 가주 더 두려워 할 게 없습니다."

  

  "흠. 그들의 수법을 알았으니 우리가 평래객점을 돌아간다면  저들

은 혼란에 빠지겠군요."

  

  당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 우리가 알아챘다는 걸 알면 적은 계책을 바꿀꺼다.  그

러니 오히려 적의 계책이 속는 척 해주는 것도 좋겠지."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당인걸에게 평래객점은 무시하고 금불산으로 직행하라고  전해라. 

우리도 금불산으로 직행한다."

  

  당가식솔들은 우렁찬 함성을 터트렸다.

  

  "존명."

  

  작은 야산을 끼고 도는 관도를 따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 당

인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쯤이면 하나 또 나타날 만 한데 이상하게 없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명이 앞을 가리켰다.

  

  "저기 노천객점이 있습니다."

  

  전면에는 숲이 우거진 두개의 낮은 구릉이 사이 좋게 서 있었고 관

도는 왼쪽 구릉을 끼고 돌았고 관도 앞에는 가을걷이를 끝낸 밭이 모

습을 드러냈다.   

  

  관도 옆 공터에 붉은 등롱이 반짝이는 노천 객점에는 어김없이  평

래라는 깃발이 펄럭였다. 등롱 밑 깃발 주위에는 커다란 술독 이십여 

개가 있었다. 천막아래 탁자에는 수십 명의 장한들이 박도를  여기저

기 널려둔 채 술과 고기를 양껏 먹어댔다. 당인걸은 더 살피지도  않

고 코웃음을 쳤다.

  

  "천독문이 백만금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이렇게 쓴다면 우리가  금

불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산하고 말겠군."

  

  당인걸은 말에 박차를 가했다. 

  

  당인걸이 떠나자 장한들 사이에서 한 명이 고개를 들고 새액  미소

를 지었다. 

  

  당인걸이 평래객점을 지나 십여리 쯤 가자 가릉강(嘉陵江)의  지류

가 보였다. 당인걸 일행은 강둑을 따라 남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

다. 

  

  당인걸은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세 척의 어선을 보며 잠시 생

각에 잠겼다.

  

  '말을 타고 가면 사흘 정도 걸리고, 배를 타고 가면 하루 반나절이

면 될 건데 가주께서는 어떤  이동방법을 택하실 껀지,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편하게 일을 처리 할 텐데……. 어쨌든 배는 구해 놔  봐

야겠지.'

  

  평래라는 깃발 때문에 처음에 계획했던 이동도를 무시하고  시시각

각으로 길을 바꾸었다. 덕분에 미리 안배한 선박과 쉴 수 있는  거점

들을 하나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선봉의 피로도는 평소의 배에 달했다. 

  

  슛. 슈슛. 

  

  수십줄기의 날카로운 예기가 당인걸의 상념을 깨고 날아들었다. 당

인걸은 말에서 풀쩍 뛰어 올랐다. 발 밑으로 몇 대의 화살이 스쳐 지

나갔다. 그와 함께 있던 여덟명의 당문 청년들도 일제히 말안장을 차

고 올라 화살을 피했다. 당인걸은 허공에서 화살이 날아온 곳을 노려

보았다. 

  

  세 척의 어선은 거적으로 덮었던 지붕을 활짝 연 상태였고 그 지붕 

안에서 궁수들이 활을 날리고 있었다. 

  

  당인걸은 말안장에 내려서며 코웃음을 쳤다. 저 멀리서 날리는  화

살에 맞아 줄 정도로 자신들이 허약한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

살이 통하지 않자 세 척의 어선은 강 가운데로 배를 가져가 태연스럽

게 낚시를 드리웠고 몇 명은 입에 담기 험한 욕들을 해댔다.  

  

  당문 청년 몇 명이 노해서 암기를 날렸지만 강둑에서 배까지의  거

리는 칠십 장에 달해서 암기들은 그곳까지 날아가지 못하고 강물  속

에 빠졌다. 그걸 본 암습자들은 배 위에서 온갖 야유를 퍼부었다. 

  

  당인걸은 새빨개진 얼굴로 노성을 터트렸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이곳으로 올라와 봐라. 나 혼자서  너희

들을 모두 상대해 주마."

  

  한 청년이 당인걸 옆으로 달려왔다.

  

  "이 강 하류는 말굽모양으로 안쪽으로 휘어 돕니다. 우리가 삼십리

쯤 길을 가로 질러간다면 하류  쪽에서 저들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말이 건널 정도로 수심이 낮습니다.  몇 명이 그곳에 먼저가  지키고 

있다면 저들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습니다."

  

  "좋다. 먼저 가되 길을 잘 살펴 매복에 걸리지 않게 하라."

  

  "알겠습니다."

  

  그 청년의 인솔로 다섯 명이  강둑 밑으로 내려갔다. 강둑에  남은 

당인걸과 나머지는 어선에서 쏱아지는 욕설에 같이 맞대응을 하며 하

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둑을 따라 십리쯤 내려가자 배에서  무엇

을 느꼈는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당인걸도 말을 빨리 달렸

다. 

  

  '후후후. 지금 깨달았지만 늦었다.'

  

  배가 말보다 빠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거리를 움직일 때 하는 

말이었다. 이 십리 정도의 거리라면  그렇게 큰 차이를 내지  않았고 

말이 충분히 따라 갈 수 있었다. 말굽모양으로 안쪽으로 휜 강을  따

라 빠른 속도로 십 수리를 내려온 세 척의 어선은 반대편 강가로 배

를 몰아갔다. 저 밑에서 말에 박차를 가하며 상류로 올라오는 세  명

의 당문 청년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십 명의 북련총람 무사들은 

배를 버리고 강둑으로 기어올라갔다. 

  

  세 당문 청년은 그들을 보며 함성을 내질렀다. 이 십 명의  북련총

람 무사들이 강둑을 넘자 두 명이 수십 필의 말을 몰아 달려왔다. 북

련총람의 무사들을 말을 타고 북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해는 어느덧 깊이 졌고, 사위는  어둠에 잠겨 들어갔다. 당인걸은 

저들이 준비된 말을 타고 도주하는 것을 보고 추격을 멈추었다. 

  

  '우리를 유인한 건가? 왜 이곳에는 매복도 없는데.'

  

  산 그림자가 길게 이어져 반대편  산까지 뒤덮었고 객점 주위에는 

수십개의 등불이 대낮같이 밝혀져 있었다.

  

  본대의 가장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당문호는 앞에 평래 객점이  나

타났지만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앞에 이상이 있다면 전위가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 사내들은 모두 독째  술을 들이키는 지 탁자  위에는 

독이 가득했다. 당문호는 평래객점이  다가오자 입안게 가득  조소를 

머금었다.

  

  "여어. 술맛이 좋은가?"

  

  근육이 울긋불긋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맛이 아주 좋소. 먼길을 가는 것 같은데 여기서 한 잔 들고 가

시오."

  

  "하하하. 나도 그러고 싶네만 금불산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길이라 

술은 하지 못하네."

  

  "하하하. 금불산에서 불공을 들이는 것 보다 여기서 이  화골주(火

骨酒)를 마시는 것이 좋을 텐데. 이 화골주 한 잔이면 뼈가 나 녹아 

나오."

  

  화골주라는 말에 당문호는 눈살을 찡그렸다. 그의 주위에는 어느새 

당걸과 식솔들이 모여들었다. 장한은  술독을 힘껏 당문호에게  던졌

다.

  

  "자 한잔 들어보시오."

  

  당문식솔 중 한 명이 암기를 던졌다. 

  

  "무례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술독이 깨지며 안에 있던 술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당문 식솔들은 술을 맞지 않기 위해 관도 한 쪽으로  물러났

다. 순간 장한들이 일제히 술독을 내 던졌다.

  

  "내 술도 한잔 받으시오."

  

  장한들이 일제히 술독을 던지자  당문 식솔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암기를 던졌다. 일부는 술독을 부셨고  대

부분은 장한들을 에가 날아갔다.  장한들은 그걸 예상했는지  술독을 

던지자 마자 탁자를 앞에 세우고 몸을 그 밑에 숙였다. 타타타탁. 당

문 식솔들이 뿌린 암기는 탁자에 밖혀 들어갔다. 순간 객점 뒤  구릉

의 땅거죽이 뒤집히며 백 명의 궁수가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은 모두 화전을 들고 있어 구릉이 타오르는 듯 보였다. 

  

  "매복이다."

  

  폭풍우처럼 쏱아지는 불화살은 하늘에서 쏱아지는 화우 같았다.  

  

  퍼퍼퍽. 

  

  당걸은 장포를 벗어 화살들을 말아 올렸다. 하지만 주위에  떨어지

는 불화살을 막지는 못했다. 불화살이 땅에 떨어지자 거센 불길이 치

솟아 올랐다. 장한들이 뿌린 술독의  반에는 불이 바로 붙는  화주가 

있었고 나머지 반은 돼지기름과 송진이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불길

이 일자 말들은 사방팔방으로 날뛰었고 당문 식솔들은 말에서 떨어지

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화살들은 이들을 노치지 않았다. 당걸

은 장포로 화살을 막으며 훌쩍 뒤로 물러났다.

  

  "모두 뒤로 물러났다."

  

  불을 피해 밭으로 들어온 말의 발목을 노리고 야수용 덧이 높이 튀

어 올랐다. 말들은 발목이 잘려  울부짖으며 쓰러졌고 말 위에  타고 

있던 이들도 사방으로 날아갔다. 당문 식솔들은 모두 고수들이라  허

공에서 몸을 바로 잡았지만 계속 떠 있을 수는 없었다. 불길을  뚫고 

수백 발의 강궁이 이들이 정신을 차리는 것을 놔두지 않았다. 당걸은 

화살막던 장포를 땅에 내려서기 전에 한 번 밑으로 휘둘렀다. 캉  하

는 소리와 함께 맹수용 덧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이장이나  솟

구쳐 올랐다. 

  

  당걸은 그 위에 가볍게 내려서며 장포로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그 

주위에 내려선 당문식솔들 모두가 화살과 덧을 한꺼번에 상대할 무공

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고수들은 당걸을 따라 땅에 내려섰지

만 하수들은 덧에 정신을 두어 화살에 맞거나 화살에 신경을 쏟아 덧

에 걸려 비명을 토해냈다. 덧에 다리가 걸려 휘청이는 몸이 쓰러지않

게 손으로 땅을 집은 한 명은 튀어 오른 덧에 손목이 잘려나갔다. 그

는 멍하니 피가 뿜어지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발의 화

살이 그를 노치지 않고 밖혀 들었다. 그의 몸은 그대로 무너져  버렸

다. 

  

  불길은 송진띠를 따라 이쪽으로 번져왔고 덧에 걸리지 않은 식솔들

은 화살비를 막으며 덧에 걸린 형제자매들을 보호했다. 

  

  불길은 어느새 하늘을 태울 듯이 치솟아 올라 관도 주변을 대 낮같

이 밝혔다. 덧에 걸린 당문  식솔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질퍽한  피가 

흘러내렸다. 흔들어대는 덧 사이로 허연 골수가 드러났고 발목이  잘

려져 몸을 나뒹구는 이도 있었다. 이 불 빛에 당가식솔들은 몸  전체

를 드러낸 꼴이 되었고 구릉에 있는 궁수들은 더 깊은 어둠 속에 잠

겨 화살을 쏘지 않는다면 사람이 있는지 조차 모를 것 같았다.

  

  당걸은 새빨개진 눈으로 고함을 쳤다.

  

  "남가왕.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비겁하게 뒤에 숨지 말고."

  

  그 목소리에 호흥이라도 하듯 객점  반대편 구릉 위가 태양이라도 

떠오르는 듯 밝아지며 백여 명의 장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도와 가

죽 방패를 든 장한들 앞에는 한 명이 고고히 서 있었다.

  

  "나는 여기 있다."

  

  당걸은 수십 개의 암기를 땅에 뿌리며 남가왕이 있는 구릉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그의 앞에서는 수십 개의 덧이 폭죽처럼 튀어 올랐

다. 당걸의 뒤를 따라 이십 명 정도의 당문 고수들은 암기를 밭에 뿌

리며 달려나갔다. 나머지는 덧에  걸렸거나 그들을 보호하느라  바빴

다. 당걸이 구릉 밑까지 달려오자 남가왕은 손을 내렸다.

  

  "당겨라."

  

  남가왕의 명령에 수십 명의 장한이 일제히 줄을 당겼다. 

  

  당걸이 달려가는 구릉 앞의 땅거죽이 들어올려지며 수백 개의 지둔

창이 날아갔다. 그걸 신호로 반대편 구릉 위에서 수백발이 화살이 이

들을 노리고 쏱아졌고 남가왕이 있는 구릉에서는 장한들이  가죽방패

와 박도를 앞세우며 달려 내려갔다. 

  

  당문 식솔 몇 명은 화살과 지둔창을 피하지 못해 피를 뿌리며 나뒹

굴었고, 덧에 거린 이들인 그 모습을 보며 비명을 질러댔다.  불길은 

어느새 이들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당걸은 장력으로  날아

드는 지둔창을 십여 발 쳐냈지만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비에 어깨를 

허락해야만 했다. 당걸은 작은 옥병에 손이 갔다. 넓은 지역을  중독 

시킬 수 있는 연무독이 그 안에 가득했다. 

  

  '적은 독을 쓰지 않았다.'

  

  독문과 독문의 싸움에 독이 동원되지 않는 다는 게 참 이상한 일이

었지만 실제로 독문과 독문과의 대전에는 대량 중독 시킬 수 있는 독

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상대에게 그런 독을 쓰

면 상대도 자신들에게 그런 독을 꺼리낌 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독

문의 조종이라고 해서 천하의 모든 독을 해독 할 수 있는 것은 아니

었고, 설사 해독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 비전의 해약을 대

량으로 구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예 그 일맥을  단절시킨다면 

모를까. 더군다나 천독문에 사람을 대량 중독시킬 수 있는 어떤 독이 

있는지 모르고 인원수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먼저 그런 독을 쓸  수는 

없었다. 자신이 쓴다면 저들도 꺼리낌  없이 이 자리에서 그런  독을 

쓸 것이고 그럼 당문식솔들은 아무도 살아서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

이다. 하지만 독을 쓰지 않는  다면, 남가왕만 자신이 막고  있다면, 

고수들은 몸을 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깨가 욱씬거려 왔지만 찡그린 내색하나  하지 않고 품에서 팔목 

길이 만한 비수를 꺼냈다. 검은 검신의 비수는 푸르슴한 독기를 뿜어

대었다. 

  

  차차창. 

  

  당걸은 품에서 두자루 독비를 꺼내 자신의 몸 위에 내려 꼿히는 칼

들을 막고 위로 밀쳤다. 그의 공력에 밀린 도수부들은 사방으로 나뒹

굴었다. 나뒹구는 동료를 밟으며 이들은 노도와 같이 몰아쳐왔다. 둘

을 베면 넷이 넷을 베면  여덟로 늘어났다. 당걸 주위에서  들려오는 

비명성이 점점 잦아들었지만 그의 등뒤에서는 비단폭을 찢는  비명이 

더욱 크게 터져나와 당걸의 가슴을 난자해 댔다. 당걸은 이를 악물었

다. 

  

  약관의 청년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아버지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

  

  당문호는 그 청년의 발목에서 덧을 풀었다. 덧에서 풀린 청년의 한 

쪽 다리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이 패여 있었고, 머리는 불길에  그

슬려 있었다. 넘실대는 불길은 말의 시체 앞에서 잠시 멈추는 듯  하

고 있었지만 곧 이곳도 불길에 휩쌓일 것이 분명했다. 당문호는 주변

을 둘러보며 몸이 온전한 식솔을 한 명이라도 더 모으려고 했다.  몸

이 온 전한 사람들은 화살비를 막으며 덧을 벗기느라 손이 더뎠다.

  

  당문호는 이를 악물었다. 당문 식솔들을 잡고 있는 덧을  어떻게든 

벗길 수는 있지만 뼈가 상할정도의 깊은 상처와 잘려진 팔다리는  당

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상이 덜한 식솔들 혼자라면 어

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부상당한 아들이나 형,  동생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화살공격이 돌연 뚝 끊기더니 수십 개의 항아리가 불길을 넘어  날

아왔다. 항아리는 불길속에 하나의 불덩이가 되어 이들의 머리  위에 

타는 기름을 쏱아 부었다. 몇 명이 기름을 뒤집어쓰며 마른 장작처럼 

타올랐다.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본능 적으로 뒤로 몸을 뺐지만  몇 

명은 동료들을 그 자리에 놓고 자신만 몸을 뺐다. 그걸 확인하고  비

명을 지르며 손길을 내 뻤었을 때 남은 이들은 이들에게 손을 뻣으며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 돼."

  

  몇 명은 불 속으로 뛰어들려고 했고 나머지는 그들을 붙잡았다. 손

을 내밀며 장작처럼 타오르는 이들의  울부짖음과 그걸 보는 이들의 

비명성이 암천을 갈갈이 찢어댔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화살 비도 멈

추었다.   

  

  불타 쓰러지는 손을 밟고 수백 명이 박도를 휘두르며 불속에서  뛰

쳐나왔다. 아들과 형제들이 불타는 광경에 비명성을 토하는 당문도들

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깨닫기 전에 불에 달구어진 박도를 몸이 먼저 

맞이했다. 

  

  이들의 몸은 개기름을 바른 듯 번들거렸고 신발은 마를 얼기  섥기 

역어 만든 듯 보였다. 두 눈은 석류처럼 새빨갛게 충혈되어 검고  흰

자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몇 장에 달하는 불길을  뚫고 

나왔는데도 이들의 몸이나 신발에는 불이 달라붙지 않았다. 

  

  당가 식솔들은 정신없이 암기를 뿌려댔다. 그 앞에 달려온 몇 명이 

쓰러졌지만 동료의 시체를 밟고 턱  앞까지 전진해온 이들의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눈물로 범벅이 되었던 압섬은 어느새 피로  물들었고 

당가 식솔들은 남왕련의 물결 속에 잠겨 들어갔다. 

  

  "도망쳐라." 

  

  누군가의 외침에 몇 명이 암기를 뿌리며 몸을 돌렸다. 그들의 등뒤

로 몇 대의 화살과 당문형제들의 피눈물에 잠긴 외침이 날아들었다. 

  

  "당씨 성이 남아 있는 한 당문은 멸망한 게 아니다. 누군가는 살아

서 복수해야 한다."

  

  텃. 

  

  두 발로 땅에선 당걸의 한 쪽 다리가 휘청이며 수십개의 칼날이 다

시 밀려왔다. 당인걸은 독비를 좌우로 휘둘렀다. 가죽방패들이  수박

이 갈라지듯이 갈라졌고 검게 물들어갔다. 

  

  당걸은 독비를 들고 우뚝 섰다.  수십개의 자상을 따라 붉은  피가 

몸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그의 주위로 수십구의 시신이 검에  중독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스스슥. 

  

  도수부들이 뒤로 뒤로 물러나 대오를 정비했다.

  

  이들 앞에는 파란빛을 띄는 머리카락에 약간 높은 콧날과 파란  빛

이 감도는 눈가 주위는 유난히 하얀 청년이 서 있었다. 

  

  당걸은 피로 감기는 눈을 팔뚝으로 쓸어 올리고 한 손으로  왼쪽어

깨의 혈도를 짚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대는?"

  

  "남가왕. 천도를 대행하는 자."

  

  "훗. 이 작은 승리로 자만하지 마라 당가는 이 정도에 쓰러지지 않

는다."

  

  남가왕의 옷자락이 흔들거리며 당걸의 앞으로 확대되었다.

  

  "천의는 이미 이루어졌다 나는 그걸 구현 할 뿐이다."

  

  당걸은 눈을 새파랗게 빛냈다.

  

  "독문 사람이니 독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어떤가?"

  

  독으로 승부를 가른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가 있었다.  아니 

부식독을 쓴다면 남가왕에게 치명적 일격을 가할 수도 있을 것  같았

다. 하지만 무공이라면 지금 당걸의 심신으로는 일반 무사를  상대하

기도 힘들었다. 

  

  남가왕은 새파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시간이 촉박하외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에 당걸은 깜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남가왕을 

가리켰다.

  

  "너는……."

  

  순간 남가왕의 몸이 크게 확대되며 당걸을 뒤덮었다. 당걸은  독비

로 그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헌데 그의 왼손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막을 수 있는데 막을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막을 수 있는데.'

  

  하니 하늘 전체를 그의 손이 뒤덮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느낀 순

간 그의 손은 당인걸의 얼굴을 뒤덮었고 그의 몸은 당인걸의 몸을 타 

넘었다. 뚜걱. 당인걸의 목 위는 어디로 같는지 사라졌고 붉은  핏물

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천기는 누설하는 게 아니오. 바로 실현되는 거라고 할지라도."

    

  수백 마리의 말이 달빛을 타고 관도를 힘차게 질주했다.

  

  "히야 히야."

  

  말발굽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소리에 놀라 개들이 일제히 짖어  대었

고, 마을 주민들은 무슨 일인가 밖으로 나와봤다. 당문이 바로  앞에 

있는 이 마을에 이렇게 질 주 할 수 있는 이들은 당문 밖에 없었다. 

촌장은 말들이 사라진 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문의 분들치고는 조금 많은 것 같은데……."

  

  원정을 나간 당가주를 대신해 당문을 지키고 있는 노대부인은 피로 

쓴 전서를 받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좌우로 있는  부인들이 

파리한 안색을 했다.

  

  "어떤 소식입니까?"

  

  노대부인은 전서를 움켜쥐었다.

  

  "우리 당문이 당문이……."

  

  노대부인의 몸이 비틀거리자 좌우에  있는 부인들이 부축을  했다. 

몇 명의 아녀자들은 무엇을 직감했는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피로 쓴 전서. 

  

  당문이 사천에서 본가로 전서를 보내는데 피로 쓴 경우는 지난  오 

백 년 동안 두 번 밖에 없었다. 당문의 기반이 아직 제대로 서지 않

았던 사백 년 전과 혈천마궁이 검협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뿐이었다. 

남은 이들은 사 백년 전의 일은 잘 모르고 실감나지 않았지만 혈천마

궁과의 검협대혈전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바

로 노대부인이었다. 

  

  노대부인은 크게 일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의복을 단정히 했다.

  

  "석년 혈천작 쿠차호가 천하무림을 이끌고 사천을 넘보았지만 우리 

당문은 격퇴해 냈다. 천독문 따위에 당할 본 가가 아니다."

  

  노대부인의 말투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아녀자들은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노대부인은 서릿발같은 소리를 토했다.

  

  "우리가 여기서 모두 죽는다 하여도  당문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복수는 남령산맥과 서북쪽에 가있는 아이들이 해 줄  것이다. 

모두 칼을 들고 일어서라."

   

  사천당가. 

  

  밤하늘 위에 우뚝 서 있는 현판이 밑에서 타오르는 화톳불에  일렁

였다. 

  

  달그닥. 

  

  현판이 살짝 떨리고 관솥불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정문 좌우

에서 경비를 서던 두 당문  청년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발을 타고 정갈하게  깔린 돌틈 사이로 먼지가 

피어올랐다. 득 드득 득. 화톳불이 움직이면서 바닥을 긁었다. 

  

  "무슨 일이지?"

  

  한 명이 약간 놀라는 사이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터저 나왔

다. 

  

  두두두 두두두. 

  

  "하오. 하오."

  

  눈앞에 보이는 어둠을 진동시키는 함성과  말발굽 소리에 한 명이 

문 옆에 달린 줄을 잡아 다녔다.

  

  "적이다."

  

  뎅뎅뎅. 

  거친 종소리가 당가의 밤을 깨웠다. 

  

  붕붕붕. 

  말 위에서 돌려지는 철추와 갈구리들이 어둠을 뚫고 당문으로 향하

는 관도가의 숲으로 날아갔다.  어둠이 철추와 갈구리들을  잡아먹자 

사슬 끝을 안장에 묵고 말머리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탁 타탁. 

  관도 좌우에서 격한 소음이 터저 나왔다. 일진이 갈구리와  철추를 

끌고 본대가 있는 곳까지 오자  이진이 출발을 했다. 이들은  앞으로 

더 전진한 상태에서 갈구리와 철추를 던졌다. 당가의 정문과 담을 따

라 하늘 높이 불빛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진과 삼진의 움직임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사진이 갈구리를  던

지고 퇴각할 때 당문의 담장에서 암기가 쏘아졌다. 

  

  "히히힝."

  

  두 세 마리의 말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지만 나머지 말들은 더욱 빠

르게 퇴각했다. 남가왕은 그 모습을 보자 손을 내렸다.

  

  "공격."

  

  갈구리 부대가 개척한 길로 수백 명이 방패를 앞세우고 일제히  밀

고 올라갔다. 

  

  "암기를 던져라."

  

  담장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당문의 식솔들은 일제히 암기를 쏘아

대었다. 암기에 몇 명이 나뒹굴자 남왕련 쪽에서도 수십 명의 궁수가 

달려나와 담벽을 향해 화살을 날렷다. 

  

  "와와와."

  

  함성과 함께 사다리 부대가 담벽 밑까지 밀려오고 어둠을 뚫고  몇 

명이 비조처럼 날아 기병들의 사천 당가의 정문을 넘었다. 

  

  슈슈슉. 

  정문 좌우에서 무수한 암기가 이들을  향해 날아갔다. 퍼퍼퍽. 몇 

개의 그림자가 암기에 관통이 된 채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몇  명

이 그들을 향해 달려갔는데 긴 나무에 옷을 여러 개 걸친 허수아비들

이었다. 허수아비들의 재차 허공을 나르자 당문사람들은 그들을 무시

하고 성벽으로 밀려드는 이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이번에 날린  허수

아비 중에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땅에 내려서기 무섭게 담벽에 붙

어서 밖을 향해 암기를 날리는 이들에게 수백 수천 개의 암기를 무차

별적으로 뿌려댔다. 뒤에서 쏱아지는 암기에 정신을 못차린 당문  식

솔들이 속절없이 쓰러졌고 몸을 뒤로 돌린 이들도 격렬히 저항했다. 

  

  허공에서 암기와 암기가 부딪치는 불꽃이 한 여름 밤 쏱아지는  별 

빛처럼 반짝였고 사람들의 몸에서는 작은 핏물들이 튀어 올랐다. 

  

  담벽의 좌우로는 방패를 든  이들이 끊임없이 밀려올라왔다.  당문 

식솔들은 무수한 암기를 뿌려 대었지만 절대적인 수의 부족으로 계속 

밀리고 있었다. 

  

  남가왕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암기를 왼쪽 소매로 후려치고 오른

쪽 소매에서 십 개의 비도를 날렸다. 비명을 확인하지 않고 정문으로 

달려가 정문을 지키고 있는 서 너 명의 당문 식솔을 베어 버렸다. 어

느새 그 옆으로 내려선 도수부들이 방패수들의 보호를 받으며 정문을 

열었다.

  

  노대부인은 피로 물든 옷을 털었다. 역부족이었다. 당문의  고수들

이 모두 밖에 나갔고 지금은 무공이 약한 이들과 아녀자들만 남은 상

황이었다. 

  

  "안으로 퇴각하고 화탄을 준비해라."

  

  당문식솔들은 부상자들을 이끌고 중문으로 몸을 피했다.

  화탄이라는 말에 남가왕이 싸늘한 냉소를 지었다.

  

  "저쪽에서 화기를 먼저 쓴 이상 우리도 독을 쓰는 걸 꺼려할  필요

가 없다. 독무를 피워라."

  

  옆에 있는 자가 크게 복창했다.

  

  "독무를 피워도 좋다."

  

  남왕련 무사 수 백 명이 검은 환약을 꺼내 입에 넣었고, 독연대 십

여명이 품안에서 종이에 쌓인 고약덩어리를  꺼내 사방에 피어 있는 

관솥불에 짚어 넣었다. 

  

  퓨시시식. 

  하는 소리와 함께 회색 연무가 짙게 퍼져 나갔다. 몇 명이  화톳불

의 다리를 잡고 당문의 이차 저지선인 중문으로 달려갔다. 그것과 때

를 맞추어 무사들도 일제히 달려갔다. 

  

  "공격."

  

  연기가 밀려오자 당문에 남아 있던  고수 중 한 명이 중문을  넘어 

연무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은  중독이 되더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해독할 기회를 주어야 했다. 코를 찌리는 짜리한 냄새에 속이 울렁거

렸다. 그는 입에서 나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크게 외쳤다.

  

  "마갈독이다. 해독약을 복용해라."

  

  당문의 한 명이 그렇게 외쳤지만 사방에서 밀려드는 도수부들은 이

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사다리는 어느새 중문의 담벽에도  달라

붙었고 무사들은 거침없이 담벽을 뛰어넘고 있었다. 베고 베어도  밀

려드는 이들. 당문의 식솔들은 마갈독에 하나 둘 씩 머리가 어질해지

며 구역질이 나는 것을 느꼈다. 

  

  쾅. 

  정문이 거칠게 열리고 기마  백기가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이들은 

중문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해 들어갔다. 

  

  중문을 지키고 있던 당문 노대부인이 외쳤다.

  

  "화탄을 던져라."

  

  쾅쾅. 

  

  폭음과 함께 정면에서 달려오던 몇 기가 폭사되어 혈우를  뿌렸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혈우를 뒤집어쓰고 당문의 이차  저지

선을 돌파해 버렸다. 

  

  쾅 쾅. 

  몇 발의 화탄이 저지선 안에서 터지고 다시 혈육이 난무했다. 

  

  "조사전으로 퇴각해라."

  

  살아 남은 수십 명은 다시 암기를 뿌리며 뒤로 뒤로 퇴각하기 시작

했다. 기병들은 그들을 노치지 않고  따라가 장도를 휘둘렀다. 퍼퍼

퍽. 당문의 식솔들이 뿌려대는 암기에 기병 십여명이 그대로  쓰러졌

다. 

  

  슥 암기주머니에 손을 넣던 한 청년의 얼굴이 헬쓱히 변했다. 그의 

좌우로 두필의 기마가 달려오며 박도를 휘둘렀다. 

  

  "이햐합."

  

  청년은 땅을 차고 날아오르며 비수를 꺼내 한 기병을 향해 몸을 날

렸다. 

  

  퍼걱. 

  기병의 가슴 깊이 박힌 비수와  함께 둘은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 수십 필의 기마가 둘을 밟고 지나갔다. 

  

  휙휙. 

  남왕련의 무사들은 당문의 건물 곳곳에 불을 놓기 시작했고 곧이어 

사방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조사전에 모여 마지막 저지선을 피고 있는 당문 식솔들은 월동문을 

맊고 있는 집기들 위에 서서 당문이 불타고 있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온다."

  

  화마를 빨아먹으며 한 청년이 파란  녹광을 흘리며 날아오고 있었

다. 그 뒤로 십 여대의 수레가 항아리를 가득 싣고 방패수와  궁수들

의 보호하에 밀려왔다. 

  

  파파파 파파파.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아대었고, 월동문 안에서 진을 치고  있던 

당가 식솔들도 일제히 암기를 쏘아댔다. 하지만 암기는 활이  미치는 

범위 밖에 있었다. 당문 식솔들은 탁자와 의자를 머리 위에 두고  저

들의 일제 화살 공격을 막았다.

  

  땅에 내려선 남가왕은 독을 발로 후려 찼다. 그의 발길질에 독들이 

담을 넘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깨졌다. 

  

  퍽 퍽. 

  

  당가 청년은 몸에 뿌려지는 깨진 독과 물줄기를 받고 역한 솔잎 냄

새를 느꼈다. 

  

  "기름이다."

  

  그때 몇 명이 검은 상자를 들고 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화탄을 가져 왔습니다."

  

  "오면 안돼."

  

  그 순간 하늘을 수놓는 수십  발의 화전이 이들의 눈을 부시게  했

다. 

  

  콰콰쾅 콰콰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건물의 잔해가  사방으로 퍼저 나갔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불길은 보며 남가왕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당가. 이제 그 영광의 이름은 끝이다."

  

  "이야아아."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 사이로 전신으로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오르

는 몇 명이 뛰어나와 남가왕을 향해 암기를 뿌렸다. 

  

  휘리릭. 

  

  남가왕의 몸이 회오리처럼 돌며 뒤로 물러났고 암기는 주위에 있던 

이들에게 맞았다. 

  크억 으억. 

  몇 명이 격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남가왕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

었다. 

  "당문의 오만은 여기까지다."

  

  그의 소매가 떨리고 불덩이들의 윗 부분이 잠시 분리되어 타올랐다

가 다시 연결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더 이상 보이지  않

았다. 남가왕은 소매를 털었다. 

  

  "청성과 아미의 움직임은 없는가?"

  

  "지금쯤 소식이 들어갔으리라 여겨집니다만 이곳으로 오지는  못할 

껍니다."

  

  "그렇겠지."

  

  남가왕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병력은 금불산으로 물려라. 우리의 힘으로 당문을 멸하긴  했지만 

아미와 청성이 있는 한 성도  일대를 지배할 수는 없다.  남령산맥과 

서북쪽으로 가 있는 당문식솔들의 반격에도 대비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천 일대 군소문파에  본 련의 위용을 널리 

알리고 복종을 요구하겠습니다. 그 장소로는 중경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남가왕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타다 남은 재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건물들. 그 건물  사이로 

방금 만들어 놓은 듯한 거대한 무덤. 무덤 앞에는 청강석으로 세워진 

비석이 차디찬 눈물을 흘렸다. 

  

  <당문 일 백 십삼 인 총. 당문 사십칠대 손 당인걸 읍립.>

  

  "으아아아."

  

  당인걸은 장도로 미친 듯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당문호는 불에 탄 수염을 밀어 버려 창백한 턱을 

드러냈다. 당문호는 묵묵히 무덤을 바라보았다. 본가에 있던  이들은 

시체라도 묻어 주었지만 이름 모를 산촌에서 불타오른 가솔들은 형체

조차 찾지 못했다. 

  

  한 참 허공을 휘젓던 당인걸은 어깨를 들썩였다. 

  

  "당문은 이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남가왕. 천독문 기다려라. 곧 이 

혈채를 천만배로 갑아 주마."

  

  내강을 따라 장강으로 흘러 내려가는 수십 척의 범선에는 남왕련이

라는 글자가 수놓아진  깃발이 강바람에  펄럭였다. 선단은 넓게 편 

학익진으로 강 전체를 압도하며 나갔고 그 위세에 강위에 떠 있는 배

들이 급히 강가로 물러났다. 

  

  학익진의 정점에 선 거선의 상석에는 녹포를 바람에 휘날리는 남가

왕이 서 있었다. 그 아래 갑판에는 수십개의 군소문파의 깃발들이 펄

럭였고 깃발 앞에는 한 두 명씩 서 있었다.

  

  당걸가주와 당가의 정영들이 불에 타 죽고 본가마져 불타 없어지자 

남왕련의 첩지를 받은 흑도 군소문파들이 투항을 해온 것이다.  하늘 

위로 배 위에 서 있는 이들이 질러대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남왕출세."

  

  "무림앙복."

  

  연이어지는 함성 속에 특가호가 남가왕 옆에 시립했다.

  

  "사천의 반은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당문의 움직임은?"

  

  "반격을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남가왕의 눈매에 미소가 잡혔다.

  

  "당문의 종말이 눈앞에 선히 보이는군. 그대로 눌러 앉았다면 성도

는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왕야의 신산지계를 그들이 어찌 당해 내겠습니까? 중원으로  진출

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남가왕은 소매를 저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일이 잘 풀릴 수록 한 번 더 생각하고 잠

시 쉴 줄 알아야한다."

  

  "알겠습니다."

  

  특가호가 물러나자 남가왕은 강을 내려다보았다. 한 유생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혈유. 내가 넘어야 하는 또 하나의 산. 무로는 혈마. 문으로는 혈

유. 이 둘을 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중원 진출이 있을 수 없다. 그

들이 허락한 건 사천까지니까.'

  

  황하의 탁한 물줄기를 따라 세 척의 대형 범선이 이십 사척의 소형 

전선의 호위를 받으며 흘러 내려왔다. 바람을 가득 안은 범선의 돗에

는 사해(四海)라는 글자가 한껏 부풀어올라 하늘까지 올라 갈 듯  보

였다. 

  

  선두에 한 쪽 발을 올리고 몸을 앞으로 살짝 숙여 격류를 바라보는 

중년인은 앞으로 살짝 처진 배를 한 손으로 끌어 올렸다. 그의  옆으

로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다가왔다.

  

  "부방주님 곧 제남입니다."

  

  "음"

  

  사해방의 부방주 왕정은 무게를 잡으며 몸을 바로 세웠다. 한 눈에 

자신이 이끄는 선단이 들어왔다. 눈을 조금 더 하늘위로 펄럭이는 깃

발에 씌인 글자가 그의 입가에 미소를 담게 했다. 

  

  <왕정>

  

  사해방의 동해단을 주축으로 서해단을 합하여 만든 사해방의  주력 

선단으로 왕정이 직접 지휘했다. 그가 바라본 깃발은 대장군기로  선

단의 지휘자가 누구인지 밝혀주는 상징이었다.

  

  '이극상 녀석이 머리가 좀 있어  방주가 되었지만 수로에 관한  한 

나를 따라 올 수야 있나.'

  

  왕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부두에 나와 있는 백여 기를 바라보며  손

을 흔들었다. 곰 같은 허리에  호랑이 어깨를 하고서 덥숙한  수염을 

사나이의 상징으로 아는 요동낭인대였다.  

  

  긴 판교가 내려지고 수십 명이 사해방과 왕정의 깃발을 들고  이열

로 내려왔고 그 가운데로 십여 명의 무사를 거느린 왕정이 내려섰다. 

부두에 도열해 있던 요동낭인대원들이 일제히 장도를 뽑아  하늘높이 

들어 올렸다. 

  

  도에서 반짝이는 빛이 왕정의 눈을 부시게 했고 걸음걸음이 하늘을 

밟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서오시오. 부방주."

  

  요동혈랑은 왕정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왕정도 환한 미소를  머금

으며 요동혈랑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오랜만입니다. 대주."

  

  "장원에 연회를 준비했습니다."

  

  연회라는 말에 왕정은 입을 함지박만큼 벌렸지만 자신이 맏은 임무

를 망각할 위인은 아니었다.

  

  "이 단주. 아니 방주가 전해 주라는 서찰입니다."

  

  왕정은 품에서 밀봉한 서찰을 꺼내 요동혈랑에게 건네주었다. 요동

혈랑은 아무렇지 않게 받으며 옆에 있는 반월랑마에게 넘겼다.  반월

랑마 또한 아무 생각 없이 품안에 집어넣고 웃는 얼굴로 사해방의 다

른 귀빈들을 맞이했다. 

  

  왕정은 자신의 임무가 끝나자 아랫배를 한 번 쓰다듬으며 요동혈랑

이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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