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남왕련(南王聯). (68/95)

  

  4. 남왕련(南王聯).

  

  보드라운 비가 대웅전의 처마와 앞의 넓은 공터에 도열한 수십  명

의 눈썹에 걸린 물방울을 떨어 뜨렸다. 약간 왜소한 키에 누런  살결

은 약간 검은 기가 감돌았고 얼굴에 난 수염은 칼날처럼 날이 서 있

었다. 이들은 각기 백의 청의 홍의 흑의를 입은 이들끼리 무리를  지

어 있었다.

  

  대웅전에서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 머리카락 위로 물안

개가 번져 살짝 파란 빛을 띄었다. 희고 고운 피부에 약간 높은 콧날

과 깊이 들어간 눈에는 푸른색 기운이 감돌았다. 

  

  도열해 있던 이들이 일제히 오체 투지했다.

  

  "남가왕(南家王)을 뵙습니다."

  

  청년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수고했다."

  

  일제히 소리쳐 외쳤다.

  

  "왕야의 신산귀계의 공입니다."

  

  묘강 천독문의 문주이자 묘족의 사대 거족을 장악한 기린아 남가왕

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일어서도록 하라."

  

  모두 일어서며 다시 읍을 했다.

  

  "황송하옵니다."

  

  "귀주고원에 집결해 있던 청성파 무사들을 섬멸했으니 귀주에서 우

리를 상대할 곳은 없을 것이다. 소식에 의하면 남해 검파는 귀왕문에 

의해 일패도지를 했다고 한다. 때문에 거병의 대가로 약속 받은 사천 

귀주 광서 중에 사천만 남았다. 특가호."

  

  청년의 부름에 백의를 걸친 중년인이 한 걸음 나서서 허리를  숙였

다.

  

  "네."

  "광서 일대의 묘족 중에는 백묘(白苗)가 가장 많지?"

  "그렇습니다."

  "그들의 통합을 너에게 맡긴다."

  "황송하옵니다."

  

  "탄호아."

  "네."

  

  청의를 입은 반백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귀주를 평정하라."

  "존명."

  

  청의인이 들어가자 남가왕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머지는 나를 따라 사천을 친다."

  

  청묘(靑苗)족의 족장 탄호아가 한 걸음 나섰다.

  

  "사천에는 아미, 청성, 당가가 있습니다. 왕야의 신산귀계는  하늘

과 땅을 뒤엎을 수 있어 이들을 토벌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으시겠지

만 전력을 모아 희생을 줄이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남가왕은 조소를 머금었다.

  

  "지금 사천에서 우리와 맛설 수 있는 곳은 아미파 뿐이다.  청성은 

우리에게 일패도지를 했고, 당가는 주력이 남령산맥에 집결해  있다. 

본 문의 정예와 화묘와 흑묘에서 착출한 전사들이면 충분히 상대  할 

수 있다. 너희들은 맡은 구역을 반 년 안에 장악을 해야 한다. 그래

야 천하를 향한 기틀을 다질 수 있다."

  

  홍의를 걸친 화묘(花苗)족의 대 족장  마리파는 상기된 얼굴을 했

다.

  

  "삼성을 장악하신 후 바로 천하를 향해 포효하실 것이옵니까?" 

  

  남가왕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천하는 넓다. 일이 십 년 안에 장악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리고……."

  

  남가왕은 잠시 말을 끊었다.

  

  "중원에는 혈마. 그가 있다."

  "아!"

  "오."

  

  중인들은 나직한 신음성을 흘리는 것을 본 남가왕은 빙그래 미소를 

지었다.

  

  "지금 명나라는 숙부가 조카를 죽이는 패륜이 자행되었다. 이는 제

국의 황혼. 강호 또한 삼혈맹과의  대전으로 정기를 잃어가고 있다. 

혈마 그는 하늘을 불게 태우며 타오르는 석양. 나는 아직 어둠  속에 

있지만 밤을 비추는 달. 석양은 아름다운 만큼 빨리지고 달은 차가운 

만큼 기다릴 줄 안다. 달이 뜰 때 석양은 질 것이다." 

  

  "오오!"

  

  중인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트렸다. 남가왕은 오른 손을 들어  올렸

다.

  

  "이제 묘강 천독문이라는 지역색이 강한 이름은 버린다." 

  

  약간 불안 한 듯한 군웅들의 시선이 남가왕의 얼굴에 멈추었다.

  

  "허면?"

  

  남가왕은 오른 손을 펼쳤다. 대웅전 안에서 거대한 깃발이  수평으

로 날아와 남가왕의 손에 잡혔다.  펄럭. 깃발이 펼쳐지고 황금으로 

수놓은 글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남가왕은 고고성을 터트렸다.

  

  "남왕련(南王聯)!"

  

  중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남왕련 만세 만세 만만세!"

  

  "백묘와 청묘는 귀주와 광서의 모든 군소문파를 이 깃발 앞에 무릎

을 꿇게 하라. 나는 사천을 정벌하겠다."

  

  여인처럼 고운 턱선을 섬섬옥수로 쓰다듬었다. 그의 손에는 사천성

의 지도가 그려진 양피지가 들려져 있었다. 좌측에 앉은 화묘족의 대

족장 마리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천당가가 있는 당가타는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강의 줄기가 절벽으로 둘러 쌓인 삼면을 휘감고 돌고 있고, 남쪽으

로 난 대로 좌우에는 무수한 기관매복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왕야께

서 친히 가신다면 굴복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전사들의 희생이 

클까 염려됩니다."

  

  남가왕은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며 미소를 머금었다.

  

  "족장이 무슨 염려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소."

  

  남가왕은 양피지를 접으며 마리파와 흑묘족의 족장 라오카이를  처

다 보았다.

  

  "당가를 정면 공격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소. 하나는  백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수 열 명 정도가 연합해서 쳐들어가는 것이오. 다

른 하나는 막대한 인원을 이용한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것이오.  마

리파 족장은 내가 후자의 방법을 사용할까 두려운 것이 아니오."

  

  마리파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 뜻이 아니라. 청성과 아미파도 생각을 해야 겠기에……."

  

  "당가의 주력은 현재 남령산맥과 서북변경으로 나뉘어져 있소.  본

가에도 몇 명의 고수는 남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류급 인물들만  있

을 뿐이오. 허나."

  

  남가왕은 둘의 시선이 모이자 입을 방긋 열었다.

  

  "당가가 지난 수백년간 설치한 기관을 움직일 정도의 능력들은  되

오."

  

  라오카이는 눈을 반짝였다.

  

  "허면 다른 계책이 있으신지요?"

  

  남가왕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전선의 확대." 

  "전선의 확대?"

  

  "당문은 혈족중심이라 단결력이 강하고 비전을 잘지키고 있지.  하

지만 혈족주의기 때문에 그 숫자가 한정이 되어있고, 손실이 나도 당

장 채울 수가 있는 게 아니지. 이런 폐쇠성 때문에 당문은 천하에 명

성을 떨칠 수는 있지만 사천을  벗어날 정도의 세력을 확장 할  수는 

없는 거네. 헌데 지금은 남령산맥에 정예를 투입시켜 놓고도 서북 변

경에까지 힘을 분산 시켜 놓았네. 현재 당문은 본가 방어를 위한  최

소한의 병력만 남겨진 상태라서 사천에 새로운 전선이 형성된다 하더

라도 당장 인원을 투입할 수 가없지."

  

  "그럼?"

  

  "당가는 지금 스스로 처 둔 철창 안에 갇혀 있는 거라네. 우린 그 

철창 밖에 있는 열매들을 가지기만 하면 되네." 

  /////////////

    

       

  이마 아래로 흘러내린 흰머리가 위로 올라가며 검은머리 사이에 묻

혔다. 약간 헐렁한 소매로 흘러내린 귀왕령을 메만졌다. 

  

  "나 당문호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이야."

  

  강서 남창에서 청룡장에게 밀린 벌로 사천 서쪽 고산지대의 상로를 

맡게 된 당문호였다. 당문호는 고개를 돌려 소로 주위에 나 있는  풀

들을 확인하는 조카를 쳐다보며 염소수염이 떨리도록 한 숨을 내쉬었

다.

  

  "뚜코족이라고 했나?" 

  

  당민궁은 가볍게 대답했다.

  

  "네."

  

  사천당문을 동정상회의 한 기둥으로 있게 하는 사천의 약재의 칠할

이 이들 고산족들에게서 나왔다. 이  고산족 중 남부 뚜코족과  서부 

빠림족 간의 삼년 전쟁이 얼마  전에 끝났다. 이 전쟁에서  뚜코족이 

승리하자 이들은 사천당가, 정확히 말해서 사천당가에서 운영하는 사

천약재포에 자신들이 캐는 약재를 넘기지 않겠다고 선언 한 것이다. 

  

  당문호의 임무는 이들을 좋은 말로 설득해서 계속 거래를 하게  만

드는 것이다. 사천의 서쪽 고산지대는 사천성의 삼분지 이를  차지할 

만큼 넓어 많은 부족이 있었고, 그 부족간의 전쟁도 심심치않게 일어

났고, 승리한 부족에서 사천 당가와 거래하지 않겠다며 뗑깡을  부리

기도 했다. 당문에서는 그 부족의 세력을 봐가며 힘으로 눌러 버리거

나 약재값을 약간 올려 주는 걸로 타협을 봐왔다. 이 번도 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약값을 조금 올려주고 적당히 타이르면 될 것을……."  

  

  당문호는 이런 일을 자신이 맡았다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자기 

뒤에 오는 조카만 나서도 될 일이었다. 

  안내인을 따라 산을 넘자 약간 검은 당문호의 눈가에 산 중턱의 넓

은 숲이 잡혔다. 안내인은 숲을 지목했다.

  

  "저곳입니다."

  

  당문호는 안력을 돋구어 산중턱을 쳐다보았다. 울창한  나무사이로 

간간이 삐져 나온 지붕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숲의 일부

처럼 느꼈을 것이다. 

  

  "생각보단 작군."

  "뚜코족의 한 갈래입니다. 뚜코족은 저런 마을 백 개를 합친 것 보

다 큽니다."

  

  당문호는 피식 웃었다.

  

  "어서 내려가기나 하세."

  "예."

  

  안내인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당문호의 옆으로 당민궁이  내려섰

다.

  

  "삼숙부님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당문호는 고개를 저었다.

  

  "문제될게 뭐가 있겠나?"

  

  당문호는 수염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그의 앞에는 붉고 푸른  새 

깃털로 장식을 한 관을 쓰고 있는 검은 얼굴의 사내가 열 명의 전사

를 거느리고 앉아 있었다. 얼굴이 검다 보니 나이를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한 사십은 되는 것 같았다.

  

  당문호는 옆에서 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당민궁을 힐끔  보았다. 

안색이 약간 붉어진게 마음의 평정이 흐트러진 것 같았다. 

  

  '어려울 수록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하는 데.'

  

  당문호는 뚜코족의 부족장을 다시 한 번 처다 보았다. 당민궁은 당

문호를 처다 보며 목소를 낮게 깔았다.

  

  "일옆초를 근당 은 한 푼씩 달라고 합니다."

  

  일옆초는 일년에 한 잎씩 이파리를 여는 풀로 중원에서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흔하디 흔한 풀이었다. 이 일엽초가 보양에 효

과가 있다는 것을 안 당가에서 전량 매입해 갔고, 그 외 거래되는 약

초의 기준 가격이 되었다. 이들이  일옆초를 근당 은 한냥씩  달라고 

한 것은 그외의 약재에 대해서도 그만큼 올려 달라는 말이었다.

  당문호는 눈살을 찡그렸다. 

  

  "닷 근당 은 한 푼이 아니었나?"

  "그렇습니다."

  '칠까.'

  

  당문호는 신경을 문 밖으로 돌렸다. 마을 공터에 모여 있는 이들의 

잡담 소리가 생생이 들어왔다.

  당문호는 소매에 잡히는 귀왕령을 메만졌다. 

  

  "다섯 배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당문호의 말을 당민궁이 통역을 했다. 대족장은 고개를 저으며  뭐

라고 화답했다. 당민궁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삼숙. 이들의 말로는 자신들이 결정한게 아니고 대 족장이 결정한 

금액이랍니다. 뚜코 대 족장에게  찾아와서 우리와 거래하는  가격의 

열 배를 주겠다고 한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부연해서 우리가 

자신들에게서 산 물건을 삼십배나 비싸게 팔고 있다고 했답니다."

  

  당문호는 이를 살짝 물었다. 

  

  '그 정도 이문이 남지 않으면 뭣 하러 여기에 들어와.'

  

  당민궁이 당문호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낼까요?"

  

  당문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족장의  처소에서 

나온 당문호는 어느새 검게  물들어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그의 전신에 맺힌 땀방울을 날려 버렸다. 전쟁의 끝물이라 그

런지 마을 둘레에 단단한 목책을 둘렀고 전사들은 온 몸에  울긋불긋

한 색을 칠하고 머리는 회가루를 뒤집어썼다. 

  

  당문호는 나무와 풀로 역은 집들  사이로 보이는 숲을 둘러보다가 

제법 큰 나무를 가리켰다. 

  

  "잠시 이야기나 하지."

  "네."

  

  둘은 마을 공터를 가로질러 전사들이  지키는 문을 통과해 숲으로 

들어갔다. 둘은 숲으로 들어오자 마자 신법을 갈지자가 교차되게  펼

쳐서 서로 배후를 확인 한 뒤 지목한 나무위로 올라갔다.  

  

  나무 위에 올라가자 마을의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마을에

서 이 둘을 본 어린애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당문

호는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해주었다.

  

  당민궁은 눈을 빛냈다.

  

  "누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걸까요?"

  

  "우리를 노리는 곳은 예전부터 많았다. 성공한 곳은 없지만……."

  

  "중주상인 연합회는 서북 상권 때문에 이곳에 신경을 쓸 수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들 이곳에 거래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

금과 고수들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습

니까?"

  

  "그렇지. 중원 삼대 상인연합은 다른 상회의 배후에까지 손을 뻗치

게 할 정도로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지 않다. 삼대 상권의  다툼은 

서로의 경계선 외곽에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북 변경과 

강서의 상권을 노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당민궁은 자신의 머리 속에서 떠올려 지는 대상들을 하나 하나  지

워 나갔다.

  

  "개인적으로 만금을 쌓은 부호나  거상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무시하면서 이곳까지 진출할  턱은 없고, 강호쪽을  돌아보면 

삼혈맹이 있기는 하지만 그쪽도 지금 이곳에 손을 쓸 여력이 없을 테

니……."

  

  잠시 말을 끊은 당민궁은 불쑥 한 단어를 꺼냈다.

  

  "천축이나 서장 쪽이 아닐까요?"

  

  당문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천축의  상권이 이곳까지 손을  미쳐서 

얻어 갈 게 없었고 서장은 중원으로 진출할 정도의 거대 상권이 발전

되어 있지 못했다. 천축과 서장의 문파들이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

기에도 약재거래는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는 곳은 한 곳 뿐.

  

  "묘강 천독문!"

  

  독을 다루는 이들이라 약재에도 밝은 것은 불문가지. 귀주에서  삼

혈맹을 도와 청성파의 포위망을 분쇄 한 것을 보면 중원 진출의 야욕

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당문호는 나무가지를 돌며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당민궁도 긴

장된 표정으로 사방을 살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동물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끝없이 펼쳐진 산능선 중에 약간 너른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는 작

은 부족마을이 있었고, 제법 넓은 분지에는 목책으로 울타리와  망루

까지 만들어 놓은 촌락도 많았다. 주민들은 모두 짐승가죽이나  풀을 

엮어 만든 옷을 걸쳤다. 짙은  얼굴색 사이로 반짝이는 눈과  이빨이 

인상적이었다. 당문호는 안내인이 고삐를 잡고 있는 나귀에 앉아  자

신을 빙둘러 쌓은 사람들을 보았다. 어린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손을 

흔들어 댔고, 여인들은 당문호가 있고 있는 옷을 한 번씩 만저보기도 

했다. 자신과 거리를 두는 강호인들과 달리 이들의 순수한  호기심에 

약간 기분이 들떠졌다. 

  

  풀을 엮어서 만든 문이 열리고 몇 명의 부족 전사들과 당민궁이 걸

어 나왔다. 당민궁의 얼굴은 약간 굳어져 있었다. 긴 곤 같은 장대에 

풀잎과 새 깃털로 보살의 관 같은 모자를 쓴 중년인이 팔을 벌려 당

민궁은 안았다. 당민궁도 그를 안고 등을 두들겨 주었다. 

  

  당문호는 당민궁의 얼굴을 보고 쓴 침을 삼켰다. 

  

  '혹시나 해서 와본 건데…….'

  

  당민궁은 당문호 옆에 있는 나귀에 올라타고 족장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족장도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당민궁은 안내인을 보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뚜코족의 대족장이 계시는 곳으로 갑시다."

  "네."

  

  안내인이 당문호의 고삐를 움켜쥐고 걸음을 옮기자 마을에 있던 주

민들이 모두 달려나와 작은 흙모래를 집어던지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당문호는 미소를 머금고 몸에 쏱아지는 흙모래를 피하지 않았다.  이

것이 이들이 길을 떠나는 나그네에게 해주는 성의라는 것을 알고  있

었기 때문이다.

  

  당민궁은 찡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천고원의 남부 일대는 모두 뚜코족의 뜻대로 하겠답니다.  자신

들을 찾아 왔던 이들은 모두 뚜코족의 왕성. 쳇. 이들은 몇 개 부족

의 조공만 받아도 왕이라고 하니."

  

  "그들이 뚜코족의 본거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기다리고 있는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확

실한 모양입니다."

  

  "으음."

  

  당민궁은 마른 입술에 혀를 살짝 대었다.

  

  "헌데 저희 둘만 가서 되겠습니까?"

  

  당문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손을 쓸거였다면 고원지대에 들어왔을 때 공격을 했을 꺼야."

  "하긴 그렇군요."

  "왜 걱정되나?"

  

  당민궁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놈들에게 본문의 매운  암

기 맛을 보여 주고 상권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당문호는 숲이 조금씩 낮아지며 거대한 바위들이 드문 드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산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그 능선 위로는 파란 하늘

이 있었다.

  

  "상권을 되찾아도 문제야."

  "예?"

  "한 번 부풀려진 가격은 여간해서는 내려가지 않거든."

  "우리 당문이 아니면 누가 감히 여기 들어와서 자리를 피려고 하겠

습니까? 잠시 뻗대기야 하겠지만 곧  원래의 가격으로 떨어 질  껍니

다."

  "그때까지가 문제지."

  

  당문호는 남쪽하늘을 처다 보았다. 남령산맥과 서북변경에  투입한 

인원이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해서 이쪽까지 투입할 여력이 없는 상

황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다른 거대 세력이 들어온다면 약재 거래선

을 재탈환하는데 막대한 출혈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좌우 산봉우리에서 흘러 내려온 산줄기가  고개를 이룬 곳에 높은 

성문이 자리했다. 성문 위에는 이층 망루가 설치되어 멀리서도 한 눈

에 보였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성문으로 올라가자 문 앞에  두꺼운 

갈의와 유엽창, 장궁으로 통일된 복장을 하고 있는 병사들이  성안을 

오고 가는 이들을 검문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문호는 안내인을 처다 보았다.

  

  "여기가 뚜코족의 본거지인가?"

  

  안내인은 목소리를 죽였다.

  

  "여기선 왕성이라고 하십시요."

  

  당민궁은 당문호를 쳐다 보았다.

  

  "어떻게 하실 껍니까?"

  

  "호굴에 들어온 이상 당당하게 행동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너

도 마음 단단히 먹고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갖추어라."

  

  "네."

  

  당민궁이 결의에 찬 표정을 짖자 당문호는 허리를 곧게 피고  내공

을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사천당가에서 대왕께 사절로 온 사람들이다. 어서 대왕께 안

내를 하거라."

  

  병사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성벽을 울리는  목소리

에 저으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당민궁도 잠시 가슴이 뛰었지만 곧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통역을 해주었다. 병사 몇명은 급급히  안으로 

들어갔고, 등나무 갑주를 걸치고 중원의 투구를 조잡하게 흉내만  낸 

가죽 투구를 쓴 자가 문 밖으로 나왔다. 그가 뭐라고 떠들자  병사들

    

       

  

이 좌우로 갈라섰다.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성문 안 쪽의 공터에 수십 명의 병사

들이 질서 정연이 도열하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척. 투구를 쓴 자가 군례를 취하자 병사들이 일제히 몸 바로  옆에 

세운 창대를 앞으로 내밀며 긴 구호를 터트렸다. 주위에 있던 주민들

은 일제히 오체투지를 해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당민궁이 뭐라고 하자 대장이 몸을 세웠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도 

창대를 거두었다. 안쪽에서 문관차림을 한 한족이 나귀를 타고  와서 

이 둘 앞에 섰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어가 귀를 편안하게 했다.

  

  "당가에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당문호는 한족이 모습을 드러내자 약간 의야한 기운을 띄었다. 

  

  "그렇습니다만."

  

  "운남의 목규환이라고 합니다. 오신다는 소식은 뚜코족을 통해  들

었지만 언제 오실지 몰라 마중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네."

  

  "여기서 역관직을 맏고 있지요."

  

  역관이라는 말에 당문호와 당민궁은 서로 얼굴을 처다 보았다.  역

관은 관의 연락소 같은 곳으로 공무로 길을 떠난 관리들이 말을 바꾸

어 타거나 쉬어 갈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고, 문서의 수발도  담당했

다. 이 역관은 대대로 세습되는 관직이었다. 역관은 기본적으로 백리 

단위로 관병이 머무를 수 있는  곳에 설치가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여긴 역관이 들어 설 만한 곳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머문 당문호는 급급히 손을 맞잡았다.

  

  "목대인을 뵙습니다."

  

  목규환은 얼른 손을 저었다.

  

  "대인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몇 달만에 동족을 뵙게 되니  참

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자자 어서  왕성으로 갑시다. 왕사께서 두 

분이 오시기를 학수 고대 하고 계셨습니다."

  

  왕사가 기다렸다는 말에 당문호는  소매의 귀왕령을 메만졌다.  손 

끝에 이는 쇠의 차가운 감촉이 정신을 날카롭게 했다. 

  

  "대인의 명인데 누가 따르지 않겠습니까."

  

  당문호의 눈짓을 받은 당민궁도 허리를 숙였다.

  

  "당가의 민궁이라고 합니다."

  

  "아하하 당 소협이셨구료. 역시 어딘가  비범한 티가 흐른다 했더

니."

  

  당민궁은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숙부의 겸양을 떠는 모습에 속으로 

꾹 눌렀다. 목규환의 안내로 둘은 산굽이를 돌았다. 순간 눈앞이  확 

트이며 저 멀리 자리한 산봉우리가 보였고 그 사이에 들어앉은  분지

를 가득 메운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족히 수 만 명은 거주하고 

있음 직한 성읍이었다. 당민궁은 물론 당민호도 입을 딱 벌렸다.  이

런 사천 서 남부의 오지에서 중원의 현성을 능가하는 성읍을 보게 되

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족히 만호는 되겠습니다."

  

  "만 칠 천 호에 사만 구천여 명이 살고 있지요."

  

  목규환의 대답에 당문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이만한 성도를 이루었으니 이 곳 대 족장님의 위치가 낮지 않겠습

니다."

  

  목규환은 손을 모아 공손히 올렸다.

  

  "얼마전 황상께서 종 일품 서평대원수라는 큰 벼슬을 내렸지요. 하

지만 여기선 서평왕이라고 부른답니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내려가자  산 중턱에 자리한 석 성과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석성의 앞에는 너른 공터가 있었

고 그 아래 밑으로 쭈욱 뻗은 큰 길과 좌우로 늘어선 건물들, 사이사

이 보이는 샛길이 일정한 법칙을 가진 듯 했다.

  

  "저곳이 내성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노새에서 내려서 가야 합니다."

  

  목규환이 노새에서 내리자 당문호와 당민궁도 노새에서 내렸다. 저

쪽에서 병사 둘이 달려와 얼른 허리를 숙였다. 목규환은  자연스럽게 

고삐를 병사들에게 넘겨주었다.

  

  "하인은 이 병사들을 따라가라고 하십시요. 더 이상은 못 들어갑니

다."

  

  "아 네."

  

  당문호가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안내인은  병사들과 함께 옆에 난 

샛길로 아래로 내려갔다. 성문은 큰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중

문들이 나 있었다. 이는 중원의 법도로 중앙대로는 황제만이 오갈 수 

있었고, 문관은 왼쪽, 무관은 오른쪽 문을 드나들게 되어 있었다. 

  

  이 문에는 좌우 측에 네 명씩 부와 월을 들고 경계를 섰다. 목규환

이 다가가자 모두들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수고들 하게."

  

  목규환은 별 제제를 받지 않고  왼쪽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당문호는 소매 끝에 잡이는 귀왕령을 메만졌다. 

  

  문안에는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담장을 따라 구분되어  있

었다. 왕성과는 비교 될 수 없지만 현성보다는 위엄이 있어 보였다. 

  

  당문호는 내성을 순찰도는 병사들 앞에 선 자를 보고 하마터면  손

을 쓸 뻔했다. 가벼운 경장 차림에 장도를 휴대한 그는 틀림없는  중

원인이었다. 그도 목규환을 보자 포권례를 취했다.

  

  "목대인을 뵙습니다. 이분들이 사천 당가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그렇네 왕사께서는 안에 계신가?"

  "네."

  "흠."

  

  당문호가 미처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목규환은 안쪽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당문호는 급급히 예만 갖추고 목규환을 뒤따랐다. 

  

  몇 개의 문을 통과하자 울긋불긋한 꽃들이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는 

화원에 들어섰다. 화원에서 꽃놀이를  하던 여인들이 목규환을  보자 

얼른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모두  머리에는 화려한 장식을 하고, 

옷 또한 중원에서도 찾기 힘든 비단을 걸쳤고, 얼굴 또한 미색들이었

다. 목규환도 이 여인들에게는 손을 맞잡고 고개를 살짝 숙여 가볍게 

예를 표했다.

  

  당민궁은 목을 넘어 올 것  같은 의문을 꾹꾹 눌러 참고  여인들을 

힐끔 힐끔 보며 목규환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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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공입니다.

  ^_^;;;

  오래전에 신청을 하셨는데 주소가 없어서 책을 못 보내 드린 분

  들이 계십니다. 예전에 신청을 하시고도 다음주  수요일 까지 도착

이 안되면 7-4번란을 찾아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멜을 보내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전에 주소를 보내 주신 분들을 프린트를 해서 깔끔하게  보

내드렸는데;;;;

  지금은 제가 일일이 주소를 써서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글자가 워낙 악필이라서;;;;;;

  양지를........

  석공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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