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요동혈랑. (67/95)

  4. 요동혈랑. 

  곧추선 수염에 부리부리한 눈 아래  한일자로 굳게 다물린 입술이 

꿈틀 거렸다. 그의 손안에 쥐어진 서찰이 바스러질 듯 구겨졌다.  탕 

양손으로 탁자를 차고 일어나자 좌우에 시립해 있던 두 명이  고개를 

떨구었다. 

  요동혈랑은 창가로 다가갔다. 가을로 접어든 계절을 따라 단풍들이 

곱게 물들어 갔다. 

  

  "우리가 산동을 제패 할 당시  형제의 숫자는 구백 칠십  오명이었

다. 지금은 팔백 사십 구명. 지난 일년간 백 이십이 넘는 형제가 변

변한 싸움 한 번 못하고 암습으로 죽어갔다."

  두 무사는더욱 고개를 수그린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산동은 우리 영역이지만 우리는 작은 현성도 마음놓고 돌아다니지 

못한다. 말에서 내린 전사들은 강호의 암습과 독계를 상대 할 수  없

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고사하고 말 것이다. 우린 중원에  대해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힘에서 밀리면 복종의 예를 다하는  북방의 민족과는 다른 중원의 

방식에 요동낭인대가 한 정된 숫자로 산동의 패업을 유지해 나가는것이 

이제는 숨이 차오른 것이다. 이를 악다문 요동혈랑의 얼굴을 보고 부관  

반월랑마(半月浪馬)가 입을 열었다.

  

  "요동에서 무사들을 데려 오는 것은 어떻습니까?"

  "바다가 문제다."

  

  요동혈낭은 탁자에 앉아 턱을 괴었다. 어느 문파나 조직이든지  새

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동낭인대는 산동에서 수하들을 

거두어들일 수 없었다. 북방 오랑캐의  문파라는 것. 그것은 흑도의 

무리들에게까지 배척되는 꼬리표였다. 무리를  한 다면 세를  불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불린 세력은 오히려 짐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요동을 떠돌고 있는 이들을 불러오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지

만 이들이 오려면 발해만을 통과해야했다. 이 발해 만은 연경을 수비

하기 위해 대명의 정예 수군이 집결해 있었고, 이들은 작은 어선  한 

척이라도 눈을 부라리고 살폈다. 이들의 눈길을 피하려면 황해로  넓

게 돌아야 하는데 그런 장거리 항해는 요동인들에게는 무리였다.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간간이 장성을  넘어 산동까지 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해방에서의 연락은 없는가?"

  "예 아직 없습니다."

  

  요동낭인대가 중원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 사해방이었고,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도 사해방  뿐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들어서 사해방의 행동이 시큰둥했다. 

  

  "으음. 방주가 바뀌어서 그런가."

  

  방주가 바뀐 지금의 사해방은 은일자중해서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

었다. 요동혈랑은 손을 돌려 등줄기를 긁었다.

  

  "정보망의 확충은?"

  

  반월랑마는 자기 앞에 있는 혈수검랑에게 눈짓을 보냈다. 혈수검랑

은 고개만 떨구었다. 

  반월랑마가 말꼬리를 흐리자 요동혈랑은 손을 더욱 깊이  집어넣어 

등을 박박 긁었지만 가려움은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갔다. 

  

  "병력 통제는 잘되고 있는가?"

  "그것이 저……."

  

  요동혈랑은 등을 긁던 손을 빼내어 이마를 눌렀다. 

  

  "눈 귀가 먹은 상태에서 군기마저 헤이 해 졌다 이건가?"

  "죄송합니다."

  "황해로 해로를 열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

는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보내라. 더 지체 했다간 산동의 패권은 물론 우리의  존립

이 위태로워 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반월랑마는 읍을 하고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혈수검랑도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혼자 남은 요동혈랑은 벌개진 얼굴을  들어 붉은 단풍을 바라보았

다. 

  

  청룡장 예당주 이귀는 옷자락을 떨치며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안

에는 청룡장주 단우백과 서왕, 상관평이 고요한 신색으로 앉아  있었

다. 이귀는 가볍게 읍례를 하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장주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이귀의 직언에 단우백은 고개를 돌려 상관평을 쳐다보았다. 상관평

은 물이 흐르듯 고요한 목소리를 내었다.

  

  "예당주님의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심정은 이해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야 이 청룡장에 몸을 

바친 사람으로서 장주님의 명을 거역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

금 소항상회의 상인들이 아우성입니다."

  

  서왕은 고개를 숙이고 손장난을 벌였다. 자신이 뭐라고 말할 수 있

는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자리가 약간 거북스러웠다. 서왕은  단우백

에게 눈짓을 보내 자리를 뜨겠다는 의사를 보냈지만 단우백은 거절하

는 눈빛을 강렬하게 보냈다. 서왕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손가락이 노

는 것만 지켜보았다. 

  

  "소공자께서 남창까지 가서 남궁세가와 당가의 위세를 꺽고  우리

가 진출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세인들은 이제  강서 

무림이 청룡장의 휘하에 들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급

작스런 세력 확장은 세인들의 눈에 패도로 비췰 수 있지만 상권의 확

장까지 막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서왕은 어깨를 으쓱했다.

  

  "소항상회의 진출까지 막은 것 아닙니다. 우리만 가지 않겠다고 한 

거지요."

  

  이귀는 바로 반박을 했다.

  

  "그게 그말 아닙니까? 포양호는 장강수로연맹에서도 제대로 다스리

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 어줍지 않은 표사나 보표 몇 명을 고

용해서 장사를 할 수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것도 한 두 푼이  오고가

는 거래가 아닌데요?"

  

  서왕은 답변을 하지 못하고 상관평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상관평은 입을 다물고 예당주 이귀의 쏘아붙이는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 청룡단이 남령산맥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육당과 지단, 분타의 정예들이 건재하고 인의당의 고수들도 할  일이 

없어 노닐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 상황이라면 강서의 접수가 큰 부담

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앞길을 막았던  남궁세가가 

반혈맹의 후방지원에 정신이 없어 강서에서 발을 뺀 상태라 탄탄대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개  당만 보내도 강서무림을 아우르는  것이 

어렵지 않고, 상단 또한 청룡장의 깃발 하나만으로도 안전을  보호받

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헌데 이것마저 못해 주겠다면 소항상회가 우

리와 손을 잡고 있을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귀는 흥분된 안색을 가라앉히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방금 소항상회의 대 회의에서 받은 상인들의 열기입니다.  그들은 

지금 장주님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회의장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장주님 소항상회는 저희 청룡장에게 대해와 같은 곳입니다. 저희들이 

모르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서왕은 눈을 내리 깔았다.

  

  '있기야 있지.'

  

  상관평은 전혀 변함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실에서 우리를 심도 있게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귀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

  

  "소주에서 일어난 사태로 짐작은 했었지만 밖으로 세력을 확장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합니까?" 

  

  상관평은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이귀는 이를 악다물었다.

  

  "그 동안  우리가 음으로  양으로  같다가 바친  황금이 얼마인데

……."

  

  단우백은 부드러운 낮빛으로 이귀를 위로했다.

  

  "예당주님 좀더 지켜보도록 하지요. 우리나 남궁세가의 동정상회가 

강서의 상권을 하루아침에 장악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

가 남해대원정에 투자를 한다면 우리도 큰 여유자금이 있는 것은  아

니지 않습니까?"

  

  "남해 원정이야 성공확률이 불분명 한 것이고 일회성으로 끝날  가

능성이 높지만 강서의 상권이야 문 앞의 텃밭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

까? 해서 저는 남해대원정에 따라 붙는 것 보다 강서 상권에  무게를 

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상관평이 마무리를 했다.

  

  "저나 장주님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소항상회 분들에게 강서의 

상권은 본 장의 주도하에 손에 넣을 테니 다른 분들은  남해대원정에

만 신경을 쓰시라고 설득을 좀 해주십시요."

  

  "강서에 대한 안배는 있으신 겁니까?"

  

  상관평은 나직한 그렇지만 힘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이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읍을 했다.

  

  "그럼 저는 그렇게 알고 상인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언성을 높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장을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

니다."

  

  단우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귀는  약간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이귀가 전각을 나가자 단우백은 소매를 떨치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아무도 근접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요."

  

  대답은 없었다. 서왕이 궁금하다는 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로 강서에 대한 비책이 있으십니까?"

  

  상관평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눈을 살짝 치켜올렸다.

  

  "생길껍니다."

  

  서왕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어쩔줄 몰라하자 단우백은 기침을터트

려 어색한 분위기를 깨었다. 상관평은 소매에서 서찰을 꺼냈다. 

  

  "혈유가 보낸 급서로 존덕문의 대략적인 전력표와 얼마 전에  무너

진 태행산맥의 삼혈맹지단에 관한 정보입니다."

  

  단우백은 상관평으로 부터 서찰을 넘겨받았다. 몇 줄 읽어  내려가

다가 시선을 어디다 둘줄 몰라 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서왕은 

단우백이 쥐고 있는 서찰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존덕문. 오전 칠각 십삼당이 주력을 이루고 있음. 오전 불영,  도

림, 절정, 선화, 중림전. 각기 소림. 무당. 개방. 전진.  정사중간의 

고수들로 구성되어 있음. 칠각. 화산,  청성, 형산, 공동, 백리,  남

궁, 당가. 십삼당. 각기 일백 명 정도로 당주급 무공수위는 본  맹의 

지단주보다는 두 수 아래임. 

  존덕문의 주요고수. 쌍덕이라 불리우는 선우대덕 상관덕조. 태상호

법인 풍멸과 광도. 현 문주인 상관중현과 부문주인 선우덕성.

  특이사항 - 현 개방주의 사부인 풍개 견로자가 가담한 것으로 밝혀

졌음. 

  그 외에도 몇 개의 조직이 더 있지만 아직 밝혀내지 못했음.

  태행산맥 오씨피방의 멸망은…….>    

  

  서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존덕문  그 자체만 하더라도  자신들과 

버금가는 세력이었다. 헌데 이들은 거기다가 전백도를 등에 업고  있

는 것이었다.

  

  "아예 백기를 드는 게 낳겠습니다."

  

  단우백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수염을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삼혈맹에서 사부님과 쌍덕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인가?"

  "아마 그렇다고 보여집니다."

  

  단우백은 눈을 빛냈다.

  

  "어떻게 나도 모르는 일을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일까?"

  

  상관평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장주님 그건 당장 꺼야할 불이 아닙니다."

  

  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선제 공격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상관평은 고개를 저었다.

  

  "대의명분도 없이 저희가 먼저 칼을 뽑을 수야 있겠습니까?"

  "아참. 사제에게 서신을 보내 삼혈맹과의 전투에 전력을 다하지 말

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서왕의 의견에 단우백이 대답했다.

  

  "그건 사제가 알아서 할 것이네. 그보다 문상께서는 무슨 복안이라

도 가지고 계신지요? 이 도표에 따르면 존덕문의 전력은 그야말로 공

전절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민단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승

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힘입니다."

  

  상관평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민단을 동원하면 그 즉시 황실과의  전쟁이 벌어질 껍니다. 그건 

불가합니다."

  

  단우백은 말을 약간 후퇴했다.

  

  "단순 전력을 비교 해 보았을 따름입니다."

  

  이번에는 서왕이 물었다.

  

  "허면 어떻게 이들을 상대하실 껍니까?"

  

  "장주님이나 무상께서는 이들의 무력을 보시지만 저는 조직을 봅니

다. 겉으로 보기에 존덕문은 전 백도의 결집체 인 것 같지만 이 곳에 

속한 문파들이 쌍덕의 수족처럼 움직여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

다. 몸집만 비대해서 움직이는 데만도 많은 심력을 쏟아 부어야 합니

다. 게다가 구심점이라고 해봐야 삼푼의 가치도 없는 허접한  대의명

분이겠지요. 이들에게서 대의명분을 빼 버린다면 이 조직은 사상누각

처럼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게다가 명령체계도 서 있지 않아서 당장 

큰 힘을 발휘 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는 장주님의  일언

에 일사 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예화 된 조직입니다. 설혹 일이 틀어져 

자웅을 겨루어야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쉽게 밀리지는 않을 것입니

다."

  

  "대의명분을 제거하자? 좋은  말씀입니다만 쌍덕과 우리가  맛서고 

있는 이유는 단순한 과거의 원한 때문이 아닙니까?" 

  

  "실질 내용은 그렇다 하더라도 쌍덕은 교묘하게 대의명분을 내세워 

백도와 본 장의 상잔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쌍덕이 

내세울 대의명분을 미리 제거한다면 백도가 나서지 못함은 물론 쌍덕

도 주위의 눈 때문에 함부로 경거망동을 하지는 못할 껍니다."

  

  "우린 잘못한 게 없는데 쌍덕이 무슨 대의명분을 세울 수 있겠습니

까? 뭐 이 일대의 흑도와 마도를 아우르고 있다는 게 꼬투리가  되긴 

하겠지만 그 정도로는 백도가 전력을 다해 쳐들어오기에는  부족하다

고 봅니다."

  

  상관평은 입에 냉소를 머금었다.

  

  "몇 가지 집히는 것이 있습니다."

  

  단우백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방책이 있는 겁니까?"

  

  상관평은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천하를 두고 다투는 책사의  수

긍치고는 너무도 가벼워 보이는 모습에 단우백과 서왕은 다시 확답을 

받고 싶었다. 

  

  "어떤 비책인지 지금 알면 안되겠습니까?"

  

  상관평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늘 손님이 오는데  무상께서 중요한 일을  맡아 주셔야  겠습니

다."

  

  서왕은 주먹을 들어 가슴을 쳤다.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다정루(茶貞樓)는 소주에서 제법 유명한 차집이었다. 서호의  특산 

용정은 물론 송대의 구품차와 당대 다도가들이 극찬하는  십팔락까지 

입맛에 맞추어 주문 할 수 있었다. 

  

  다정루의 명성이 높은 것은 차뿐만  아니라 차를 마시는 환경에도 

심력(心力)을 들였기 때문이다. 넓은 장원 내부를 개조해 인공호수에

는 조각배를 띄워 놓고, 가산과 화원에는 정자를 만들어 취향이 맞는 

곳에서 차를 즐길 수 있게 해 놓았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아 나비들이 살랑거리는 화원 한 가운데 있

는 잔디밭에 고려에서 수입해 온 화문석을 깔아 멋을 내고  손바닥만

한 다탁에 두 잔의 차를 놓았다. 잔에서 흘러나온 다향과 주위를  둘

러쌓은 꽃향기가 배합을 이루어 가만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정신을 

선계로 이끄는 듯했다.   

  백의 유생이 하얀 섭선을 꺼내 다향을 살짝 흐트러트렸다.

  

  "다향이 진합니다."

  

  섭선을 잡고 있는 손은 여인의 그것처럼 작고 섬세하였고,  고요히 

가라앉은 눈가에는 연륜을 나타내는 작은 잔주름들이 자리를 잡고 있

었다.

  

  그 앞에는 학창의를 입고 약간 통통한 얼굴을 한 중년유생이 자리

했는데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꽃향기는 또 어떻구요."

  "그 동안 많이 외로우셨겠습니다."

  

  혈유의 독백 같은 대사에 상관평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일에 파 묻혀 살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쪽도 그러신 것  같은

데요?"

  

  혈유도 생긋 웃으며 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물가에 내 놓은 어린아이들 같아서요. 자."

  

  둘은 잔을 턱 아래로 가져가 향을 음미하고 나서 입술을 살짝 축여 

맛을 보았다. 

  혈유가 먼저 품평을 했다.

  

  "다향인지 꽃향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향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취하면 되는 것을 

요."

  "하하하 하하하. 정말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 듯 합니다."

  

  이번에는 상관평이 먼저 차잔을 들자 혈유도 따라 들었다. 다 마신 

잔을 내려놓은 둘은 잠시 서로를 주시했다. 

  혈유의 눈에 인공호수의 물길을 따라 떠내려가는 빈 조각배가 들어

왔다.

  

  "빈배가 흘러가는군요."

  "화를 낼 장자가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둘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백리를 뒤덮는 비단이라 할 지라도 끝이 있고, 천 일을 가는 연회

라도 파장은 있는 법이나 우리 둘 마신 이 한 잔의 향은 지워지지 않

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고자 하면 백일인들 가겠습니까만  바람에 흘려 보내면  천지와 

동화되어 만세가 흘러도 이 향기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혈유가 일어서며 읍을 하자 상관평도 따라 일어났다. 

  

  작별의 인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혈유도 상관평도 더 이상  말로 

논하지 않았다. 

  

  혈유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자  한 쪽에 서 있던 서왕이  쭈뼛한 

걸음으로 상관평에게 다가왔다. 그가 한 중요한 일이라고는 상관평의 

신호에 따라 인공호수에 빈조각배를 띄운 것뿐이었다. 

  

  "문상 무슨 말씀을 나누신 겁니까?"

  "천하에 대해서 논했습니다."

  

  서왕은 혈유가 나간 월동문을 뚤어저라 쳐다보았다.

  

  "뭐라고 했습니까?"

  "빈배라고 했습니다."

  

  서왕은 얼굴을 붉혔다.

  

  "제가 학문이 짧아서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서왕이 머리를 긁적이자 상관평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서왕은 

그 옆에 따라 붙어 들을 자세를 갖추었다.

  

  

    

  <강호 무림 동도에게 고함.

  

  새 하늘 새 땅이 열린지도 어언 오십여 성상이 흘렀습니다. 한  때

는 열정이었고, 생사를 오가는 혈전도 시간이 흐르면 재담가들의  입

에 오르내리는 흥미거리가 되고 맙니다. 백년전의 영웅 호걸들이  재

담가들의 혀 위에서 튀겨지고 볶여지며 첨삭되고 우상화되어  진실을 

아는 이들에게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사태도 벌어집니다. 

  

  과거의 일이기에 모든 것이 미화되고 수줍어하던 청년이 천하를 질

타하는 영웅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만 그 근본만큼은 이야기 속에 녹

아서 전해져 내려갑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습니다. 천하 무림의  안위를 

위협하는 삼혈맹 타도의 기치아래 전 무림이 대동단결하여  일어섰습

니다. 실로 오십 년만의 쾌거요 기담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영웅호걸들이 남령산맥으로 달려가  후세의 

귀감이 되고자 땀과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허나 이 때를 노려  천하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음지의 세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

다. 때문에 자신이 아니면 일가 친척과 마을을 지킬 사람이 없는  이

들은 일심전력으로 저들과 맞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일어 설 차례입니다. 거리가 멀어 남령산맥으로  달

려가지 못했던 많은 동도 여러분. 이제 일어섭시다. 나 풍개  견로자

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강호에 암적으로 자라나는 무리들을 이  기회

에 일거에 소탕하여 중원의 의기를 바로 세우도록 합시다.   

  

  혼자서는 힘든 일입니다. 둘이 서면 쉬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서는 한 걸음이 강호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쌍십절 개봉에서 대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강호 동도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개방 태상호법 풍개 견로자.

                  소림사 장로 혜심대사.

                  무당파 장로 일송자. 공동 배상 >

  

  몇 장의 수배지 위에 올라탄  공고문 위로 풀을 잔뜩 머금은  붓이 

휙휙 지나갔다. 거친 당지가 풀을 머금고 벽면에 찰싹 달라붙어 윤기

를 뿌렸다.  

  

  풀칠을 다한 이철룡은 공고문 뭉치를 왼쪽 팔에 끼고 풀 통에 붓을 

기대어 넣은 후 오른손으로 들었다. 그의 주위에는 평민 몇 명과  칼

을 찬 무림인 서넛이 모여  공고문을 들이다 보고 있었다.  까막눈도 

있는 듯이 옆 사람이 나직하게 공고문을 읽어 주기도 했다.

  

  "잠시만요."

  

  이철룡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 잰걸음으로 다음 장소로 향했

다. 그가 맡은 석가장일대의 공고판에 이 글을 다 붙이려면 하루  종

일 재빠르게 돌아 다녀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성안이라 어줍잖은 경공이나마 사용 할 수 없었고, 말을 사

자니 주머니 돈이 허락치 않았다.  해서 공고 용지를 사대문과  중앙 

대로에만 붙이는 걸로 대폭 축소했다. 그럼에도 하루 낮 안에 붙이기

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서문에 공고를 붙이고 남문으로 온 이철룡은 남문 옆의 담장에  등

을 기대고 쪼르르 앉은 개방도들을 보며 입술을 부륵 내밀었다.

  

  '개방도들은 두었다가 뭐에 쓰는지 몰라.'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공고문을 붙인 이철룡은 그제서야  성

안의 개방도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보자 뒷골이  땡기

는 듯한 느낌을 밭았다. 공고를 다 붙인 이철룡은 좌우로 개방도들이 

몰려오자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안녕하십니까."

  

  거지들 중에 한 명이 나서서 포권을 취했다. 

  "개방 향주 옥진개입니다. 복장으로 보아 화산의 제자 같은데 무슨 

공고문입니까?"

  

  이철룡은 머쓱한 표정으로 공고문을 가리켰다.

  

  "이거요?"

  "네."

  "아직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을 말씀하는 것인지?"

  

  이철룡은 공고문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옥진개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서명을 하신 분이 귀방의 태상호법님이 풍개 견로자  선배

님……."

  "뭐라구요? 저희 태상호법님이 강호에 재 출도 하신다는  말씀이십

니까?"

  

  옥진개는 이철룡의 옷을 잡고  냄새나는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이철룡은 옥진개의 입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져와 고개를 옆으로  돌렸

다. 옥진개는 실례를 깨닫고 손에 힘을 풀고 포권을 취했다. 그 주위

의 개방도들은 태상호법이 누구고 풍개 견로자가 어떤 인물인지 서로

가 서로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미 개방에서도 전설이 되어 버

린 인물. 그가 무림에 재 출도를 하는 것이다. 

  

  "정말로 본 방의 태상호법님께서 강호에 다시 나오신다는 말씀이십

니까?"

  

  옥진개의 정중한 물음에 이철룡도 목소리를 깔았다.

  

  "네. 제가 직접 그 분을 뵈었습니다."

  

  풍개 견로자와 직접 만나 보았다는 말에 개방도들은 다시 웅성대었

다.

  

  "태상호법님의 풍채는 어떻시던가요?"

  

  이철룡은 처음 본 풍개 견로자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바람든 거지가 늙은 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지.'

  

  이 말이 입안에서 맴돌다 밖으로 나왔다. 

  

  "신광이 번뜩이시고 만인을 압도하시며 일세를 영도하시고도  남으

실 분입니다."

  

  이철룡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개방도들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고 

옥진개는 이철룡의 손에 있는 공고 뭉치를 쳐다보았다.

  

  "이건……?"

  "아! 이 공고문으로 이곳 석가장과 인근 마을에 제가 붙일  것들입

니다."

  

  옥진개는 얼른 공고문과 붓을 빼앗듯이 받았고 이철룡은  자연스럽

게 공고문을 넘겨주었다. 옥진개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띄었다.

  

  "이런 것이 있으시면 저희 분타를 찾아 주지 않으시구요?"

  

  이철룡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제가 할 일인데요."

  

  "본 방의 태상장로님이 하시는 일인데 그 문도들이 이렇게 쉬고 있

으면 천하 동도들의 웃음 꺼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옥진개는 그렇게말을 하면서 공고문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개방의 제자 중 한 명이 공고문을 펼쳐 들고 가장 위에 크게 쓴 공고 

글자를 가리켰다.

  

  "이게 위로 가게 붙여야 한다."

  "네."

  

  개방의 거지들은 두 명만 남기고 각기 몇 장씩 들고 사라졌다.  옥

진개는 한쪽 팔로 이철룡의 오른 소매를 잡았다.

  

  "피곤하실 텐데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쉬시지요."

  

  이철룡은 머리를 긁었다. 배가 약간 고프기는 했지만 개방의  거지

들이 구걸해 온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사숙님을 뵈어야 합니다."

  

  옥진개는 무엇이 생각났다는 듯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 혹시 팽가를 방문하신 포응검객 나관추 나 대협을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사숙님을 알고 계십니까?"

  "평소 교분이 두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도 할 

수 없지요."

  "그래서 저는……."

  

  이철룡이 말끝을 흐리자 옥진개는 싱긋 흰 이빨을 보였다. 

  

  "본 방이 구걸로 생계를 이어 가나 손님에게까지 그 음식을 내  놓

기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나 대협께는 저희가 따로 사람을  보내겠습

니다."

  

  옥진개를 따라 골목을 몇 개 돌자 작은 주점이 하나 나왔다.  주점 

안에는 네 개의 탁자가 때에 절은 빛을 내며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십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술병과 잔. 산적 한 접시를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가져왔다.

  

  옥진개는 의야해 하는 이철룡을 보며 인심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

었다.

  

  "여기서는 죽청옆과 산적만 팔고 있습니다. 몇 명이 오더라도 이게 

기본으로 나오죠."

  "그렇군요."

  

  고개를 끄떡이던 이철룡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얼른 포권을 취했다.

  

  "화산파의 이철룡입니다."

  "아 네."

  

  옥진개는 답례를 하며 말머리를 꺼냈다.

  

  "헌데 태상호법님을 언제 만나 보셨습니까?"

  

  이철룡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이 존덕문에 들어가게 된  경우부터 

주절거렸다. 풍개 견로자를 처음 본 전각 부분의 이야기를 끝내자 혜

심대사와 일송자간에 선담이 오고간  부분을 장광설로 늘여  놓았다. 

나관추가 설명한 부분을 자신이 해석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바꾸어 

사족을 달았다.  

  

  잠시 뒤에 그 이야기도 마르자 전각 안에서 벌어진 회의 부분이 떠

올려 졌다. 하지만 그 부분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존덕문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던  사숙의 

말이 맴돌자 말끝을 흐려갔다.

  

  "그게 저……."

  

  이철룡의 난처해하는 얼굴이 보이자 옥진개는 얼른 술잔을 채웠다.

  

  "자 한잔 드시지요."

  

  이철룡이 술로 목마름을 채우자 옥진개는 말머리를 돌렸다.

  

  "나대협께서는 이번 일로 하북 팽가에 가신 겁니까?"

  "네."

  

  옥진개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제 생각이지만 좋은 이야기는 듣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이철룡은 잔을 입에만 대고 나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옥진개는 얼굴을 이철룡 앞으로 내밀며 나직이 말을 했다.

  

  "하북 팽가가 현 황제의 거병을 도와주었다는 것은 이미  만천하가 

아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하북 팽가는 현 황제의 신임을 돈독히 받아

서 군문과 관부에 줄줄이 출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강호의 

행사를 멀리하고 우리 같은 야인과 어울리기를 꺼려합니다."

  

  "말씀을 낮추시지요. 듣기 거북합니다."

  

  옥진개는 고개를 저었다.

  

  "태상호법님께서 주재하시는 회의에  참가하실 정도의  신분이라면 

어찌 저 같은 것이 어깨를 나란히 하겠습니까." 

  

  이철룡은 얼른 손을 저었다.

  

  "저야 사숙님을 따라가서 경청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무공도 변변

치 못해서 사문에  누를 끼치고 있는  이름 없는 속가제자일  뿐입니

다."

  

  옥진개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겸양도 할 줄 아시는 군요."

  

  이철룡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고  답변을 

해도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줄 것 같아 말을 하지 못했다. 옥

진개는 안주를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북 팽가는 그 세력이 많이 위축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군문과 

관부에 뿌리를 내려 명조가 계속되는 한 영세토록 영화를 누릴  기반

을 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십년  정도 지나면 하북 팽가는  강호의 

문파가 아니라 관계의 명문세도가로 탈바꿈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

이기 때문에 포응검객 나관추 나 대협께서 가신다고 한들 강호에  발

을 담그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이철룡은 자신이 들은 상황과 하북팽가의 입장을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존덕문에서 들은 것과 같이 청룡장이 전대 황제를 감싸고  있다는 

걸 하북 팽가에서 알게 되면 가많히 있을까?'

  

  이철룡은 이런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하북 팽가가 관직에 뜻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모르겠습니

다."

  

  "무슨 말씀이신지……?"

  

  옥진개는 공손히 들을 준비를  갖추었다. 이철룡은 잠시  머뭇거렸

다. 

  

  '이분도 의와 협으로 사는 개방의 제자고, 풍개 견로자 노선배님의 

문하이니 내가 말을 한다고 한들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모르지. 게다가 이 번 일은 존덕문이 직접적으

로 거론 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사숙께서 비밀로 간직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철룡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라서 비밀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옥진가는 양손을 맞잡고 얼굴에 무게를 두었다.

  

  "개방의 입은 무겁습니다."

  "실은……."

  

  이철룡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 구육두개의 죽음에 관한 

부분은 살짝 건너 띄었다. 개방의  태상호법이 알고 있는 흉사를  타 

문파의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이철룡의 말을 들으며 나직한 탄성을 터트리던 옥진개는 이마에 땀

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머리를 팽팽  돌렸다. 이철룡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강호의 거대세력들의 행보와 앞으로 일어날 일대 혈겁과 관련

이 되었기 때문에 한마디도 노칠 수 없었다. 이철룡은 술을 한 잔 주

욱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그분들께서는 청룡장의 수뇌부가 독왕 역상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청룡장을 좀더  주위 깊게 살폈으면 합니다. 

그들이 황산 백련교의 진전을 얻었다는 것도 확인 된 바가 없고,  독

왕 역상이 있다는 증거도 많이 부족합니다. 건문회와는 음……. 강호

의 일이 아니니 제가 말할 바가 못 되는 군요. 강호에는 음모가 중첩

되어 있으니 이번 일이 청룡장과 백도를 이간질하려는 삼혈맹의 농간 

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옥진개는 살짝 찡그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았다.  이철룡

은 그 모습을 보고 한손으로 탁자를 잡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전에 일풍마참수(日風魔斬手)에 당한 내상이 아직 아물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그만 일어나야 겠습니다."

  

  옥진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철룡도 덩달아 일어났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 죄송합니다."

  

  옥진개는 손을 맞잡았다.

  

  "뭘요. 덕분에 안계를 넓혔습니다."

  

  이철룡은 가슴 한 구석이 약간 눌리는 듯 하여 몇 마디 말을 더 보

탰다.

  

  "제가 말씀 드린 일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옥진개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저희 개방은 함부로경거망동을 하지 않습니다."

  

  옥진개는 급히 허리를 숙이고 총총히 자리를 떴다. 잠시 뒤 문가에 

몇 명의 거지가 와서 거적을 깔고 앉아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철룡은 술을 한잔 다시 들이켰다. 속이 확 달아오르며 얼굴이 붉

어졌다. 마음이 편해지며 호기가 일어 검무라도 추고 싶어 졌다.  술 

덕분에 그 동안 안에 꽉 차 있던 탁기를 뽑아 낸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술을 즐기는 거구나.'

  

  이철룡은 턱을 괴고 앉아서 창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평소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보던 사람들과 어딘가는 틀린 듯한 모습으

로 보였다. 마치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 것처럼 보였다. 

  

  '창을 하나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 보이다니.'

  

  사각틀 안에 보이는 하늘 위 구름이 더욱 선명히 보였다. 이철룡은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 신기하게 다가왔지만 조금

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철룡의 오랜 침묵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확 달아나 버렸다.

  

  "아 나대협 아니십니까?"

  

  이철룡은 벌떡 일어나 문가를 바라보았다. 두 명의 거지가  석양을 

밟고 선 한 중년도인 앞에서 예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

철룡은 벌개진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는 옷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문

가로 다가갔다.

  

  "사숙님."

  

  나관추는 굳게 다문 입으로 고개를 슬쩍 끄떡였다. 아무말 없이 탁

자에 앉은 나관추의 양 눈가가 붉게 달아올라 싸늘한 한광을 뿌렸다. 

이철룡은 나관추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내가 옥진개에게 쓸데없는 말을 해서 그런건가?'

  

  나관추는 연거푸 석잔의 술을 마시더니 얼굴빛을 고쳤다.

  

  "사질.내가 많이 화난 모습인가?"

  

  이철룡은 말을 얼버무렸다.

  

  "네 조금……."

  

  나관추는 눈을 감고 마음을 평안케 해주는 진심주(眞心呪)를  외웠

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진심주를 외우기를  멈

춘 나관추는 번뜩이는 눈으로 북쪽 하늘을 처다 보았다.

  

  "하북 팽가가 얼마나 기고 만장해 졌는지 자네가 직접 봤어야 하는 

데. 허 참 관부에 명패를  올리면 강호의 동도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건가."

  

  이철룡은 눈을 반짝였다.

  

  "팽가가 이번 일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나요?"

  

  나관추는 술을 쭈욱 들이켰다. 

  

  "아예 말도 꺼내지 못했네. 가주는 아예 얼굴도 보지 못했고  반나

절을 기다려 만난 장로 팽서는 하북 팽가의 십년 가운(家運)이  명이

(明夷)라 지금은 홀황(惚恍)할 뿐이라며 곤(鯤)에 관한 이야기만  해

댔네."

  

  나관추가 술을 몇 잔 들이키는 동안 이철룡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운세를 보았다면 명이라는 건 주역의 한 괘라는 건데. 이  명이는 

역의 서른 여섯 번째 괘로 해가 땅 아래 있다는 말인데, 팽가가 해고 

지금은 땅 아래 있다는 건가? 홀황은 노자에 열 네 째 장인가 나오던

가? 전에 뭐라고 배웠더라. 비몽사몽간이었나? 이건 잘 모르겠네. 곤

은 장자의 첫 편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북명에 산다는 물고기가 

아닌가? 그럼 지금 자신들은 땅속에 있는 해요, 대붕이 될  곤이라는 

건가? 관계에 진출하기 위해서 …….'

  

  전에 혜심대사와 일송자의 선문답에 관한 해석을 들은 후 화산파에

서 배운 사서  삼경과 태상노군신경(太上老君神經:道德經)과  남화경

(南華經:壯子)의 구절들을 끌어 모아 간신히 응용하고 재해석해서 여

기까지 정리된 이철룡은 나관추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강호와 완전히 손을 뗄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나관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려면 금분세수를 하고 무림에 정식으로 공표를 해야 하네. 물

론 하북팽가와 구원(舊怨)이 있는 자들의 합격을 피할 수 없기는  하

지. 하지만 그 정도를 두려워한다면 어찌 오대세가라 할 수 있겠나."

  

  '그럼 명이가 어쩌구 홀황이 어쩌구 곤이 어쩌구 한 말의 뜻은  뭐

야? 그냥 발을 빼겠다는 건가?'

  

  머리가 아파 오는 이철룡은 쉽게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했다. 

  

  "그럼 이번 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아닐까요?"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건 또 뭐가 있나? 무림 정의를 위해서 삼혈

맹과 맞서자는 건데 이걸 회피한다면 백도문파라고 할 수가 없지. 그

들은 나를 무시  한 것이  아니라 본산과  소림 무당은  물론 두  분

……."

  

  나관추의 언성이 점점 높이다 말을  끊었고 이철룡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관추는 헛기침을 터트렸다.

  

  이 둘은 존덕문을 나설 때부터 하북 일대를 돌아다니며 각  문파를 

직접 방문하여 고수들의 참여를 설득하는 임무를 맡았다. 백리세가의 

형제와 소림의 혜심대사나 무당의 일송도장도 각기 산서와 하남을 돌

고, 섬서와 감숙 일대는 풍개 견로자가 화산과 공동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하기로 일을 분담했다.

  

  헌데 하북에서 가장 큰 명문대파인 팽가를 방문한 나관추가 문전박

대에 준 하는 대접을 받은  것이다. 나관추의 명성이나 화산파의  배

경, 개방의 태상호법과 소림과 무당 장로의 친필서신을 휴대한  무게

로 볼 때 나관추가 화를 터트릴 정도의 대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었다.

  

  "사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네."

  

  이철룡은 시선을 낮추었다.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팽가가 우리의 일에 시큰둥하다면 다른 문

파를 도는 것도 헛수고에 그치지 않을까요?"

  

  나관추는 입술을 굳게 닫았다.

  

  "아무래도 팽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겠지. 하지만 우리가  맡

은 곳은 다 돌아는 봐야 겠지."

  

  이철룡은 고개를 끄떡였다. 

  "당근이죠."

  /////////

   오랬동안 글을 올리지 못해서 한 번 웃겨 봤습니다.

   ^_^

   양해를.....

   네 라고 해석 하시면 될껍니다.

    

      

  남쪽으로는 넓은 벌판을 끼고 북쪽으로는 황하를 굽어보는 곳에 자

리잡고 있는 관제묘 가 석양을 받아 붉게 타올랐다. 관제묘 주위에는 

수십 명의 거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구걸해온 음식을 큰  바가지

에 넣고 범벅해서 손으로 퍼먹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거적을 짊어진 거지가 오만상을 쓰며 관제묘로 터벅터

벅 걸어 올라갔다. 주위에 있던 거지들이 눈을 빛내며 그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아무렇게 꼬아 놓은 매듭은 일곱 개를 이루고 있었다.

  

  몇 명의 거지들이 그를 알아보고 일어서서 포권을 취했다. 그는 주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으려는 듯이  손을 휘휘 흔들고는 관제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문을 넘어 왼쪽에 있는 작은 소로를 따라 가자 비바람을  피할만

한 전각에 달라 붙은 장로원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오자 침을 퇴 뱉

았다.

  

  장로원 안에서 삼결제자 신수개가 튀어 나와 얼른 읍을 했다. 

  

  "어서 오십시요. 구 장로님."

  

  개방 장로 중 한 명인 구선개(口仙 )는 입을 딱 벌렸다. 

  

  "왜 나를 불렀어?"

  

  신수개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를  피

하며 대답했다.

  

  "본 방에서 대 행사를 하는데 구심점이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구선개는 짜증나는 얼굴을 했다.

  

  "후개가 있쟎아."

  

  "수련중이라서 공식, 비공식 행사에 전혀 참가를 하지 못한다는 걸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구선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딴 놈 없어?"

  

  신수개는 웃는 낮을 고치지 않았다.

  

  "본 방에서의 위치로 보나 강호상의  무게로 보나 구 장로님  만한 

분이 있겠습니까?"

  

  "건곤개가 강남에 가 있는 이상 강북에 나와 위치를 겨룰 만한  놈

이 없긴 하지만……. 늙다리까지 나왔다며?"

  

  늙다리라는 말을 잠시 생각한 신수개는 우거지상을 썼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말씀하지요."

  

  "늙으면 죽어야지 뭐 먹을게 있다고 다시 강호로 나온지 몰라.  귀

찮게 스리."

  

  구선개는 오만상을 다 쓰고 장로원 안으로 들어갔다. 신수개는  주

위를 둘러보며 구선개가 한 말을 들은 자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

다. 

  

  삐그덕 거리는 의자에 앉은 구선개는 탁자 앞에 쌓인 전서들을  손

으로 잡아 올렸다가 놓았다. 수십 장이 눈처럼 떨어졌다.

  

  "많이도 날아왔군."

  "네."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만 어케 된 거야?"

  "보고 들으신 대롭니다."

  

  "늙다리하고 소림 땡초하고 무당 도사 놈이 이 기회에 백도 천하를 

구가 해 보자며 강북 무림계에 바람을 넣는 일 말이냐?" 

  

  신수개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꼭 우는 것 같은 얼굴이 되었

다.

  

  "다른 깊은 뜻이 있으시겠지요."

  

  구선개는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깊은 뜻은 무슨……. 이 기회에 한 몫 보자는 거지."

  "무슨 그런 말씀을……."

  

  구선개는 혀를 찼다.

  

  "정말 몰라?"

  

  신수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구선개는 시선을 살짝 돌렸다.

  

  "백리세가가 주도하는 반혈맹이 무림의 태산북두로 올라서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세 명이 나섰다는 걸 아는 걸 보니 아주 돌대가리는 

아니군."

  

  "백리세가가 아니라 쌍덕 존자님들이 주도하는 일입니다."

  

  구선개는 인상을 찌그렸다.

  "끄응."

  

  "아참 구 장로님은 쌍덕 존자님들을 직접 뵈었었죠?"

  

  구선개는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마구 긁었다.

  

  "왜 아직까지 안 죽었는지 몰라."

  

  "독왕 역상의 독에 중독  당한 걸 두  분이 해독해 주셨다고  하던

데……."

  

  구선개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내가 방규에 따라 방주 대행이 됬다는 건가?"

  

  "네 그런 셈입니다."

  

  평상시라면 방주 대행을 임명할 필요가 없었지만 방주가  남령산맥

에 있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개봉에서 주재하는 대 행사가 코앞에  다

가와 있었기 때문에 방을 대표할 존재가 필요했다.

  

  개방의 방규에 따르면 방주 부재시 후개가 대권을 주재했고,  후개

도 나설 수 없는 상황이면  선임장로가 그 임무를 수행했다.  개방의 

팔 장로 가운데 가장 선임인 건곤신개가 없기 때문에 구선개가  방주 

대행이 된 것이다. 

  

  "난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되는 거지? 모든 건 자네가 알아서 할 꺼

지?"

  

  "네."

  

  "아 물론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마음놓고 하고 싶은 대로 해."

  

  구선개가 손을 휘휘 젓자 신수개는 웃는 얼굴로 읍을 하고  물러났

다. 그가 책임진다는 것은 개방  장로의 직분을 벗어 던지고  천하를 

주유 하겠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평소 그의 꿈이었다. 개방의 장로라

는 신분도 방주가 간곡히 청을 해서 마지못해 수락한 것이기  때문에 

별 미련이 없는 그였다. 

  

  구선개는 긴 하품을 하고 두 다리를 탁자 위에 걸쳤다.

  

  "번천개 이 개놈의 자식은 뭘 하는지 몰라."

    

  신수개는 장로원 앞의 공터에 앉아서 초대장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개방이었지만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거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이 쓴 글을 베껴 쓰는 작업을 다른 거

지들이 하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 실수가 있을 지도 몰라  최후검정은 

그가 직접 챙겨야 했다.

  

  한참 서찰들을 훑어보던 신수개 앞으로 한 거지가 헐레벌떡 달려왔

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수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개방의 

정보망을 관장하는 정무전주 호룡신개였다. 평소 넓적한 얼굴이 반쪽

이 되어 있었고, 때꿉이 줄줄 흐르는 얼굴이 더 검게 변해 있었다.

  

  "한단에서 날아온 홍황첩 이네 장로님은 안에 계신가?"

  

  신수개는 이맛살을 찌뿌렸다. 홍황첩은  개방의 급서 중  중품으로 

개방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일에 사용되었다. 개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면 홍홍첩이 발송되었을 것이다. 

  

  "네."

  

  신수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구선개는 거지가 들고 온 서찰을 받아 펼쳤다. 얼기설기 역긴 비문

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선개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와락 서찰을 구겨 잡고 앞에 호룡신개를 쳐다보았다.

  

  "이 사실을 또 누가 아느냐?"

  

  "아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이 사실을 외부로 일체 발설하지 말고 떨거지들을 조용히  불러모

아."

  

  구선개가 말한 떨거지들은 개방의 장로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신수

개는 구선개의 손에 들린 서찰을 자연스럽게 받아 살펴보았다.  밖으

로 나가려던 호룡신개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럼 방주님께는……."

  

  신수개가 구선개 보다 먼저 대답했다.

  

  "일을 이렇게 벌려 놓은 정도면 백리가주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

입니다. 그쪽은 그쪽대로 대비책을 세워 두었을 껍니다." 

  

  "알겠네."

  

  호룡신개는 읍을 하고 물러났다. 신수개가 삼결제자이기는  했지만 

그 두뇌를 인정을 받아 중히 쓰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평소 장로

들도 그의 말에 많은 힘을 실어 주었다. 해서 호룡신개도 별  거부감 

없이 신수개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호룡신개가 나가자 구선개의 얼굴이 새빨개지다 못해 시커머 케 죽

어갔다. 안에 담고 있는 화기를 터트리지 않으면 속이 타 버릴 것 같

은 표정이었다. 그의 입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화산의 그 덜떨어진 자식이야 그렇다고 쳐. 소림과 무당의 장로쯤 

됬으면 앞을 바라보는 눈은 있어야 할꺼 아니야! 이런 중대사를 무림 

초출의 햇병아리에게 들려주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 옆에 시립해 있는 신수개의 얼굴은 태풍 눈처럼 고요했다. 

  

  "그쪽에서 그 사실이 유출되기를 원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이철룡

이라는 친구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구선개는 서찰을 움켜쥐고 눈을 빛냈다.

  

  "유출?"

  

  "네. 그런  이유가  아니고서 아무리   화산의 제자지만  무림초출

의……. 저희 분타주가 유도하는 족족 입을 열정도의 친구를  회의에 

참석시켰겠습니까?"

  

  구선개는 인상을 확 구겼다.

  

  "천하의 소림과   무당이 그런  잔 술수를   쓴다 이건가?  거기에 

으……."

  

  구선개는 말을 끊고 인상을 확  썼다. 신수개는 살짝 냉소를  흘렸

다.

  

  "쌍덕 존자님이시겠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