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무군은 주위의 시선이 자신에게 합일될때까지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을 하였다.
"실상 대부분의 문파들이 철군을 내심 바라고들 있소이다."
그말에 소천은 살짝 조소를 지었다가 얼굴을 굳혔다. 백리무군은 철군의
이야기를 단둘이 있을 때 자신이 꺼냄으로서 총회때 건의하지 못하게 미리
못을 밖아 두는 것이었다. 육정산은 허허하는 탄성을 내었다.
"큰일이외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강호 전역이 피바다에 잠길 것이오."
백리무군은 원하는 대답을 듣자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 지금 각파에 증원을 요청해놓고 있소이다."
"증원을요? 각파에서 아무리 빠르게 온다고 해도 반년은 넘게 걸릴텐데
요."
"그래도 해야하오. 여기서 물러선다면 천하의 마도들이 기회인줄 알고 활
개를 칠것이오. 그렇게 되면 강호는 더욱 혼란해 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오. 차라리 우리가 반년동안 이곳에서 머무르는 것이 좋지 않겠소."
백리무군의 말에 소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소천이 말꼬리를 흐리자 청송자가 말을 하였다.
"그동안 삼혈맹은 가많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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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가 잘 버티고 있는군요."
"그런 셈이지"
"우리에게는 참 잘된 일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언제 나서실껍니까?"
"혈마가 천하제일고수라고 모두들 인정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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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끝나고 괴이한 열병을 앓는 이들이 생겨났다. 폭우때 진흙탕에 빠
졌던 이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열병을 알았다. 그것은 삼혈맹도 마찬가지
였는지 혈전이 있은지 나흘동안 아무런 도발도 해오지 않았다. 아무런 싸
움도 없는 고요함만이 남령산맥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스윽 은침이 뽑혀졌다. 그리고 다시 두 개의 금침이 뽑혀졌다.
"초 총 호법님 사 살려 주십시오. 헉헉 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일
어 서서 일어서서 싸우다 죽겠습니다."
상체를 벗은 사내의 가슴은 눈에 띄게 기복을 일으켰다. 스윽 한명이 얆은
천으로 그를 덥어 주었다. 그의 양볼이 순식간에 붉어지면서 눈동자가 크
게 돌았다. 탁탁 몇군데의 혈도를 치자 그의 얼굴이 불그래지면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병동에 누워 있는 이들은 모두들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들도 열병을 알고 있었지만 이 사내처럼 심한 지경은 아니었다. 옆에 서
있는 천일정이 군막을 나서는 소천을 따라 붙으며 말을 하였다.
"무슨 독입니까?"
"독이 아닙니다."
"하 그럼 걱정할게 없네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그말에 천일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독이 아니라면서요?"
"예"
소천은 그렇게 고개를 끄떡이며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한쪽에 서 있던 동
방후가 그의 옆으로 바싹 다가왔다.
"모두들 끌인 물을 먹이고 옷과 장비들을 삶아서 소독하도록"
"모두다 말입니까?"
"군막까지"
"네"
동방후는 그렇게 말을 하고 물러났다. 소천은 맑게 개인 하늘을 바라보았
다.
"병입니다."
"병요?"
"네. 일종의 돌림병입니다. 그때 격류에 휩쓸리면서 이 산곳곳에 있던 썩
은 물과 부초. 약재 동물들이 죽으면서 내뿜은 시독등등이 섞여서 일종의
병이 된거지요. 게다가 급격한 체력의 저하로 저항력을 상실해서 더욱 빨
리 번진 겁니다. 독이라면 해독제를 구해서 처방을 하면되는데 이건 독이
아니고 괴상한 질병이니 치료하기가 난감한 것입니다."
하연적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하였다.
"육노야께서 다른 문파들을 살피러 가셧으니 무언가 좋은 소식을 가져 올
껍니다. 기다려 보시지요."
소천은 이마를 낮게 찌뿌렸다. 이런 병은 전문적인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 근처에 그런 의사가 얼마나 있을 것이며 이들을 다 치료
할 약재들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장근처라면 부족함이 없겠지만 장은
수만리 떨어져 있었다.
"증원군이 왔습니다."
각파를 돌아다니다 온 육정산이한 첫 마디였다. 소천을 비롯한 청룡장의
인물들은 모두 깜짝놀랐다. 수만리 떨어진 중원의 각파에서 증원군이 도착
을 할려면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반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증원은 기다
렸다는 듯이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지리적으로 가까운 형산파가 당도했고
다음으로 남궁세가 그리고 무당파와 청성, 아미파 당가가 도착을 했다. 이
들 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상황이 전해지면서 각지의 한다하는 이들과 군소
문파들이 압다투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혈전에 자신들이 끼었다
는 흔적을 남기고들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는 족족 선봉을 자처
하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을 하자 백도는 새로운 활기를 띄었다.
"이미 이런 사태까지 예상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각 문파에서 이번에 온
이들이야 말로 정예라고 할 수 있을 껍니다. 그리고 어중이 떠중이까지 몰
려와 중앙군영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라고 합니다."
육정산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말을 하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곧 삼혈맹이
무너질 것이고 그 영광은 백리무군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그 영광만 돌아 간다면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육정산도
알 수 없는 암류를 느끼고 있었다. 백도의 문파들이 청룡장을 빼놓고 일들
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삼혈맹이
사라진 공백뒤에 생길 무림의 세력변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천은
뒷짐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잘되었군요. 그들이 왔으니까 우리는 잠시 쉬도록 하지요. 삼혈맹을 치는
데 그렇게 많은 이들이 왔으니 다행한 일이지요."
중인들은 모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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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간간히 삼혈맹의 도발이 있었지만 중인들은 진채에서 한발짝도 나
가지 않았다. 한번도 혈전이 없었던 이들은 나가서 싸우겠다고 아우성이었
지만 각 문파의 수뇌부들은 삼혈맹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
인 행동을 하지않았다. 단지 몇 명의 인물들이 몰래 군막을 빠져 나가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덧 십일월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강북이라면 한겨울이지만 이곳은 무더위
가 계속되고 있었다. 단지 고산지대라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컸다. 낮에는
한여름의 폭염에 가많히 서 있어도 몸에서 땀이 흘렀고 밤에는 차가운 바
람이 불어왔다. 이런 기후는 강북의 무사나 강남의 무사들도 모두 격어보
지 못한 것이였다. 그래서 각파는 초저녁이 되면 곳곳에 화톳불을 놓아 추
위를 달래었다. 그러는 사이 사이 몇차례의 회의가 진행되었고 세부작전들
이 비밀리에 논의되고 있었다. 그에 발마추어 고수들은 운기조식에 오랜
시간을 보냈고 무사들은 병장기를 갈고 닦았다.
화르륵 불꼿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며 용트림을 하고 꺼져갔다. 그 불길
을 따라 사람들의 음영도 천변만화하고 있었다. 검을 쥔 백의피풍의의 사
내가 검을 가슴 높이로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어느 문파의 제자시오?"
"저는 백리세가의 사람이고 이쪽은 응 응 남궁세가 사람이에요."
무사는 불길이 내려 비취는 곳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곳에는 두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한명은 홍장에 갓 결혼한 신부같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백모란이 수놓아진 옷을 입고 있었다. 백모란
이 수놓아져 있는 옷을 입고 있는 소녀가 입술을 뾰로통 내밀며 말을 하였
다.
"저는 백리소연이고 이쪽은 제 언니에요. 저희 둘 모르세요?"
"영이 없이는 외인을 장의 경계안으로 들일 수 없습니다. 누구를 찾아 오
셧습니까?"
"소천공자요. 여기 있죠?"
"이거"
백리소소가 창백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작은 함을 내밀자 백리소연이 확 빼
앗다 시피해 소천앞에 탁 내려놓고 말을 하였다.
"소공자님의 인품이라면 저희의 선물을 거절 하실꺼 같은데 그렇죠?"
그말에 소천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백리소연은 그렇게 말
을 하고 옆에 앉아 있는 육정산과 하연적 천일정을 비롯해서 절명도 풍파
낭아도 진명을 훓어 보았다. 모두들 허허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육정산이
손을 들어 덥석 백리소연의 손위에 올려놓았다. 그렇자 백리소연이 입을
삐쭉내밀며 말을 하였다.
"할아버지 줄꺼 아니에요."
"허허허 구경이나 하지. 늙으면 모든게 귀챤다오."
육정산이 어떻게 손놀림을 놀렸는지는 아무도 자세히 보지 못했다. 단지
작은 함이 열려지고 그 안에서 보광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
다. 중인들의 시선이 그 보광이 흘러나오는 함안으로 멈추었다. 일곱 개의
각기 다른 색깔의 보석들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보석의 크기는 모
두 같았다. 보석 하나 하나의 값어치도 높을 것 같았다. 그보다 이렇게 일
곱 개의 꼭같은 크기의 서로 다른 색의 보석을 모은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그래서 이 칠보석은 값을 따질 수 없는 명품이라 할만했다. 거
대세가를 거느리면서 많은 기진보를 보아온 육정산이나 천하를 떠돌며 옷
갓 것을 구경한 천일정도 이런 보석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제가 어떻게 받겠습니까?"
소천이 그렇게 말을 하자 백리소연이 호호호 거리며 웃었다.
"오빠가 한말하고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백리형도 오셧습니까?"
"네. 하지만 아버님의 불호령 때문에 돌아갔어요. 산동쪽으로..."
백리소연은 그렇게 말을 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입을 오무렸다. 그것을 보
자 모두들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백리소연은 방실웃으며 말을 하였다.
"아버지가 이 칠보는 작은 성의표시라고 했어요. 언니나 오빠 동생 모두
청룡장이 아니었다면 삼혈맹의 포로가 되어 있었겠지요. 그에 비하면 이것
은 정말로 작은 거래요. 그러니 받지 않으면 화를 내시겠다고..."
그렇게 말을 하자 육정산은 그것을 풍파쪽으로 밀었다. 풍파는 침을 꿀꺽
삼켰다. 톡 그 함이 풍파의 소매속으로 빨리듯이들어갔다.
"허허허 가서 잘 받았다고 전해주게나."
"네."
소천은 불빗 사이로 아련히 비취어지는 백리소소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말아 올려 비녀를 꽃고 있었다. 그 비녀는 봉황잠으로 인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명품같았다. 말려 올려진 머리카락 아래로 작은 솜털들이
불빛에 현란히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소천은 고개를 돌렸지만 시선은 여
전히 백리소소의 귓가에 머물렀다. 험 하는 소리와 함께 육정산이 소천의
옷자락을 잡아 다녀서야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라고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으나 소천은 내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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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 이겼다. 삼혈맹이 창설된 이후 이렇게 많은 전투를 단기간내에 하
면서 이런 대승을 거두기는 처음일 것이었다. 그러나 삼혈맹은 이기면서
물러섯다. 싸우면 백전백승을 했지만 어느새 남령산맥의 주요 거점들을 저
들에게 내주고 있었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형국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숫적인 열세.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한 숫적인 열세만이
아닌 고수들의 열세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나마 삼혈맹이 버티고 있는 것
은 오직 한 사람. 혈마. 그 그림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한
계와 왔다고 해야 할것이었다. 저들의 발걸음은 총단으로 한발짝 한발짝
다가서고 있었다.
"이제는 어쩌실 껍니까?"
적혈마군은 손등에 붕대를 감으면서 적천마군을 바라보았다. 그는 도를 움
켜쥔채 붕대를 감고 있었기 때문에 도마져 붕대에 감겨서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원래 병장기는 손위에서 자유자재로 놀아야 했다. 이렇게 구
속을 가하면 그 능력을 십분 발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혈마군
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도를 노칠지 몰라서 궁여지책으로 붕대를 감
고 있는 것이었다. 지옥마군이 침울한 음성으로 말을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버틴 것도 천우신조였습니다. 그때 때 마추어 폭우가 내리
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쯤...."
지옥마군은 말끝을 흐렸다. 악인마군이 벌떡 일어나며 말을 하였다.
"맞습니다. 대군. 우리는 싸울 만큼 싸웠습니다. 전력을 다해. 하지만 이
게 뭡니까? 정녕 맹에서는 우리를 버린 것입니까?"
적천마군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을 하였다.
"우리는 총단을 지킬 뿐이다. 총단이야 말로 맹의 상징. 우리는 그것을 지
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대군."
지옥마군의 일갈에 적천마군이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 그래서 반역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그말에 지옥마군과 악인마군이 움찔하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게 아니라"
"증원을 증원을 해달라는 겁니다. 백도놈들은 하루가 다르게 수가 불어 나
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는... 하다 못해 무사 몇백만이라도 증원을 해주면
더 신나게 싸울 수 있습니다. 싸우면 이기는 우리가 이게 뭡니까? 전무림
의 공포 삼혈맹이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수는 없는 것입니다."
악인마군은 목소리가 갑자기 쉬어졌다. 그리고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얼굴
로 의자에 주저 앉고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중인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서
외면을 하였다. 악인마군은 두 주먹으로 탁자를 움켜쥐고 붉어진 두 눈으
로 고개를 쳐들며 말을 하엿다.
"죽더라도 비겁하게는 죽지 맙시다. 대 삼혈맹의 오대마군답게, 전 무림의
공포답게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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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이 섯다. 그리고 그뒤는 무당파의 칠십이검수들
이 검진을 친채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각문파마다 자신들만의 특기로
무장을 한채 뒤따르고 있었다. 지난 보름간의 작전구수회의에서 내린 결론
은 하나였다. 직선돌파. 삼혈맹의 총단이 보일때까지 무조건 앞으로 앞으
로 전진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전진이라면 적의 방어진도 한곳으로 힘이
모이기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쌍방간에 막대한 사상자가 나는 것은
명확관화한 일이었다. 그러나 백도는 압도적은 숫적 우세가 있었다. 그리
고 무엇보다도 겁없이 선봉을 자처한 무수한 인적자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파의 수뇌부들의 생각이 일치되어 있었다. 분산된다면 삼혈
맹의 혈마를 막을 수 없다것이었다. 그리고 삼혈맹도 전에 처럼 쉽게 무너
지거나 개념없는 반격은 하지 않았다. 그쪽도 정예들이 투입ㄷ는지 곳곳에
서 발악적인 저항을 해서 백도의 힘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숫자가 적었다. 특히 일류고수의 숫자가 적었다. 그것이 삼혈
맹이 물러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백도의 저력이라는 것이 일류고수의 너
른 분포와 두터운 층에 있음이 다시 한 번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일견대사는 손에 쥔 나뭇잎을 부비며 일우대사를 바라보았다. 나뭇잎에는
사람의 채취가 묻어나 있었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처음 온 것이니 이 흔적
은 삼혈맹도들의 것이리라. 일견대사는 앞에 보이는 작은 산 봉우리를 바
라보았다. 산중턱까지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위에는 바위들이 속
살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견대사는 호흡을 가다듬고 봉으로 땅을
치며 몸을 날렸다. 십팔나한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뒤에 이곳으
로 온 무당파의 검수들이 십팔나한이 남겨둔 흔적을 보고 따라가기 시작했
다. 바위산을 넘어선 소림사 십팔나한은 그 자리에 멈추어섯다.
그것은 천벽이었다. 수천길이 넘는 깍아지르는 절벽. 그 절벽의 허리를 감
고 있는 거대한 운해. 그리고 그 운해 사이 사이에 간간히 드러나있는 전
각군들. 백도의 군웅들은 그 모습에 모두들 넋이 나간듯했다. 그리고 천벽
에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글자.
三 血 盟
중인들은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지난 수십년간 전 무림의 공포로
존재하던 그 삼혈맹의 총단을 직접 보게 된 것이었다. 군웅들은 바위산에
진채를 치기 시작했다. 그 주위에는 수천이 넘는 인원이 머물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말로 삼혈맹과의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룰때가
되었다는 것을 모두들 직감하고 있었다. 삼혈맹도 최후의 결전을 위한 준
비를 할 것이 분명했다.
"어렵군"
소천은 그렇게 말을 하고 고개를 설래 설래 저었다. 그 앞에는 삼혈맹의
총단을 축소한듯한 모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임의배치한 붉은 깃발
들이 곳곳에 꽃혀 있었다.
"야간에 절벽을 타고 기습하면 어떻겠습니까?"
동방후는 손으로 절벽을 가리키며 말을 하였다.
"승산이 있기는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 우리가 굳이 그런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는 없지."
육정산과 호법들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한명의 전령이 들어와서 말을
하였다.
"선제공격을 감행할껍니다. 귀장에서 강궁으로 후원을 해주시기 바란다는
맹주님의 전언을 전하고자 왔습니다."
"흠. 알겠다고 전해주게."
소천이 일어서면허 육정산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오호법님과 풍호버님 진호법님과 함께 진을 지켜 주십시오."
"알겠네."
"알겠습니다."
세 호법의 대답을 들은 소천은 천일정과 하연적을 대동하고 군막을 나섯
다.
청송자는 검을 비껴 쥐었다. 그 뒤로 무당파의 검수 칠십여명이 섯다. 그
리고 그들 뒤에는 수백여명의 군웅들이 나와서 무당파를 지켜 보고 있었
다. 무당파가 가장 선봉에 선 이유는 이곳의 지형이 무당파와 가장 흡사하
기 때문이었다. 깍아 지른 듯한 절벽이나 절벽 사이 사이에 난 소롯길등이
무당산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경공과 검법에 뛰어난 무당파가 선
봉에 서게 된 것이었다. 무당파의 뒤에는 화산파의 무량자가 수십명의 제
자들을 대동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화산사검. 이제는 삼
검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화산 사검이라고 불렀다. 화산 사검중 일
인인 죽검서생 곡현도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중인들을 보다가 소천
을 보자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소천도 예를 취하였다. 그리고 전방을 바
라보았다.
그들의 앞에는 너른 호성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호성하 뒤에는 십여장높
이의 성벽과 거대한 성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성문위에는 한명이 우뚝
서 있었다. 붉은 혈포를 바람에 나부끼며 두 개의 혈륜을 들고 있는 중년
인이었다. 바로 적천 마군이었다. 성벽은 좌우로 수백장을 가서 절벽과 이
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호성하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뒤에는 천길 절벽이 우뚝 버텨 서고 있었다. 성벽은 절벽에 난 길을
보호하고 적의 침입에 효과적인 방어를 하기 위해서 만든 것 같았다. 후두
둑 후두둑 거친 소리와 함께 주위에서 베어온 수백그루의 나무들이 이동하
였다. 개방도들과 군소문파의 제자들이 베어온 나무들이었다.
중국은 성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쟁도 성을 빼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야전보다는 공성전과 수성전위주로 전개가 되었다.
그래서 공성전과 수성전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키는 삼혈맹이나
공격하는 백도군웅들도 서로의 수를 꾀뚤고 있었다. 공성전은 물량전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손자의 병법을 들지 않아도, 저런 천험의 험지
라면 십배의 전력으로도 승리를 점치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나무들이
무당파의 한쪽에 도열하자 삼혈맹도들이 강궁을 성벽밖으로 내밀었다. 촤
라락 붉은 전기가 맹주군막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러자 와아아 와아아 하
는 함성과 함께 개방도들이 나무들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호성하 십여장 앞에 도착했을 때 삼혈맹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퍼퍼퍽 화살은 나무에 꽃히기도 하고 사람을 관통하
기도 했다. 화살에 관통된 자가 쓰러져도 나무를 들고 있는 이들은 십수명
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전진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