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바람결에 조금씩 나부끼고 있었다. 그의 들려진 손에는 다섯
개의 손톱이 각기 다른 색깔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그 손톱들이 원주를
이루며 한 점에 모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원뿔주를 들고 있는 듯
한 모습이었다. 그 원뿔주가 갈라지면서 손 바닥 사이의 텅 빈 공간이 보
였다. 그리고 그 공간은 소천의 눈앞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것을 신호로
귀왕곡도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육정산은 그들 가운데서도 빠르
게 날아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맏아야 할 고수들이었
다. 육정산이 말을 차고 날아 오르자 오대호법도 말을 차고 날아올랐다.
"분"
동방후의 명령에 각대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일자진이 허물어졌다. 귀왕곡
도들은 그 갈라진 틈으로 밀려들어왔다. 각대는 방패에 의지해 창날을 세
우고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열"
귀왕곡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각대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들은 방패를
뛰어넘고 좌우로 돌아서 청룡단원들을 공격해갔다. 청룡단원들은 귀왕곡도
들이 튕겨내는 손톱들을 피풍의로 막아내며 좌우는 창과 검을 휘둘러 근접
하지 못하게하였다. 귀왕곡도들은 귀곡성을 터뜨리며 청룡단원들을 휘몰아
쳐갔다.
"합"
와와와 와와와 하는 함성과 함께 청룡단원들이 장창을 일제히 내던졌다.
귀왕곡도들은 그 장창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 물러섯다. 그 틈에 청룡단원
들은 장검을 들고 일제히 귀왕곡도들을 공격해갔다. 차차창 차차창 장검과
독조가 부딧치며 불꽃들을 튕겨내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함성과 비명성
이 터저 나왔다. 귀왕곡도들은 청룡단원들의 일제공격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섯다. 그 때였다. 동방후의 일성이 터졌다.
"벽"
돌연 검날이 씻은 듯이 사리지고 피풍의들이 사방을 가렸다. 그리고 겹쳐
져 있던 피풍의들이 옆으로 퍼져나가며 그 자리에 무사들이 들어찼다. 그
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하나의 원형벽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단
궁수들이 천살망을 들고 섯다. 귀왕곡도들은 뒤로 물러서면서 전신을 보호
했다. 그러나 그들이 물러서면서 서로의 등이 닿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
다. 그들은 어느새 포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천살망이었다. 명령을 내리려던 동방후는 소천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면 귀왕곡도들에게 치명적 일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귓가를 파고든 명령은 정말이지 의외의 것이었다. 그래서 진세를 보지 않
고 소천을 본 것이었다.
티티팅 열 개의 귀왕조가 소천의 검 한자루에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그리
고 귀왕조의 틈을 파고들어 귀왕의 가슴을 노렸다. 귀왕은 귀왕조가 소천
의 검과 부딧치는 탄력에 의지해 몸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허공에서 몸을
옆으로 이동시키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귀신같았다. 소천의 검은 계속해서
그의 몸을 따라갔다. 하지만 귀왕은 소천의 경력을 이용해서 계속 맴을 돌
뿐이었다. 귀왕은 소천의 검막을 뚤지 못하였고 소천은 귀왕의 경공을 따
라잡지 못하였다. 스으으 소천의 검이 귀왕의 움직임을 따라 흐르기 시작
했다. 귀왕은 바람이었고 소천의 검은 바람의 결을 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귀왕에게는 귀왕조가 있었다. 귀왕의 귀왕조는 손톱밑으로 돌돌말려 들어
갔다가 튀어 나와 소천의 사혈을 찍어갔다. 귀왕의 몸을 갈라가던 검은
날아드는 귀왕조를 막아야만했다. 파파파 소천의 검이 흡사 십여개로 불어
난 듯이 보였다. 검의 환영사이로 귀왕의 움직임이 정지된 동작의 연속처
럼 보였다. 타타탕. 바람과 바람을 가르는 검 그리고 내려치는 번개가 어
우러진 듯했다.
귀왕은 뒤로 살짝 물러 났다. 소천은 그것을 노치지 않고 검을 날렸다. 이
제 이기어검술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다. 소천의 검은 채찍이 땅을 후려
치는 듯한 모습으로 날아갔다. 그의 검이 스치는 곳의 잔가지와 풀잎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검을 따라 같이 날아갔다. 잔재들로 인해
서 귀왕 허약무의 시야가 가려졌다.
촤아악 그의 손에서 튀어나오는 손톱들은 가볍게 나뭇가지와 풀잎들을 헤
처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날아오는 검을 향해 다섯 개의 손톱을 연달
아 튕겼다. 티티팅 검은 다섯 개의 손톱에 맞고는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
러나 풀잎들은 계속해서 날아왔다. 귀왕의 흰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리면
서 소매가 먼지를 쓸 듯이 정면의 분진을 쓸어 버렸다. 그러자 주위가 일
순 환해지면서 앞으로 날아드는 소천의 모습이 보였다. 촤라라 귀왕조가
모두 손톱밑으로 말려들어갔다. 그 순간 그는 몸이 화끈해 져오는 것을 느
끼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몸은 소천의 움직임보다 빨라서 소천이 휘두르
는 손이 그의 옷깃을 스쳤다. 소천은 일격이 실패하자 그대로 멈추어 섯
다. 귀왕은 이십여장의 사이를 두고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에는 파
아란 풀잎이 하나 밖혀 있었다. 그 풀잎은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귀왕은 그 풀잎을 보고 다시 그의 앞에 서 있는 소천을 바라보았다. 소천
은 맨손으로 서 있었다. 검은 허리에 들어간 뒤였다. 귀왕은 소천의 맨손
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떳다. 방금전에 이기어검술로 자신을 공격했다면 자
신은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소천은그렇게 하지않고 적수공
권으로 자신을 상대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귀왕조에는 다섯가지 독이 묻어 있었다. 그 모두다 치명적인 극독
으로 스치기만 해도 상대를 죽게 만들 수 있엇다. 게다가 자신의 경공은
무림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귀왕은 경공으로는 소천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적수공권이라면 귀왕이 유리했다. 게다가 적수공권은 자신의 성명
절학이었다. 귀왕조에 맨손이라니. 귀왕은 허허롭게 서 있는 소천을 보고
두발짝 물러섯다. 그가 물러선 이유는 하나. 거리를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했다. 소천과 귀왕
은 칠장을 두고 섯다. 귀왕은 다시 소천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그의 눈
을 바라보았다. 소천의 눈은 매우 담담했다. 귀왕은 그의 눈에서 이번 일
전에 한합승부를 가르고자 하는 의지를 읽었다. 귀왕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러나 왜 검이 아닌 맨손인가.'
뽑은 상태로 검을 휘두르는 것과 검집에 있는 상태에서 검을 뽑아 상대를
공격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는 생사를 가르른 차
이었다. 그것도 무림에서 가장 경공이 빠른 귀왕을 상대로 할 짖은 아니었
다. 귀왕은 허리를 쭈욱폈다. 그리고 소천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가 가지
고 있던 의문들은 모두 바람에 날려버렸다. 상대를 공격할때는 오직 하나
만 생각해야했다. 의문을 가지고 공격을 하면 십중십 실패하기 마련이었
다. 상대의 의중을 모를때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자신의 최고
공격법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촥 귀왕의 손이 활
짝 펴졌다. 손톱밑에 말려있던 귀왕조들이 독아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
면서 귀왕은 천천히 손가락들을 오므렸다. 다섯 개의 독조가 하나의 점으
로 모이기 시작했다.
탓 먼저 움직인 것은 소천이었다. 귀왕은 소천이 먼저 움직이자 희미한 미
소를 지으며 신영을 날렸다. 땅위를 스치면서 나가는 귀왕은 소천보다 한
박자 늦은 출발이었다. 그러나 소천보다 빨랐다. 파파파 열 개의 귀왕조가
소천의 전신을 찍어갔다. 그것은 흡사 열 개의 창을 동시에 내 찌르는것과
같았다. 가장 단순한 동작. 그래서 가장 빠른 수법이었다. 소천의 양손이
들려졌다. 그리고 열 개의 귀왕조를 막아갔다.
'금강불괴라도 나의 귀왕조를 막지는 못한다.'
파파파 소천의 손과 귀왕의 귀왕조가 부딧쳤다. 푸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귀왕의 귀왕조가 소천의 손을 뚤고 삐져나왔다. 그리고 그 끝은 소천의 심
장위에 멈추어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그대로 심장이 관통될 것 같
았다. 주르르 귀왕조를 타고 검은 피가 흘러 내렸다. 그피는 귀왕조가 가
리키고 있는 소천의 가슴으로 떨어졌다. 소천의 양손은 검게 물들기 시작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얼굴마저 검게 물들였다. 귀왕은 그것을 바라보았
다. 소천의 지금 모습은 귀왕조에 묻어 있는 극독에 중독되어 나타나는 현
상이었다.
'이겼다'
귀왕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소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묻
고 싶었다. 왜 이런 무모한 일을 했느냐고? 귀왕은 소천이 죽기 전에 그것
을 묻기위해서 입을 벌렸다. 주르륵 그의 벌어진 입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
내렸다. 그 핏물은 귀왕의 햐얀 옷을 붉게 태우며 땅에 떨어졌다. 귀왕은
자신의 가슴어름을 바라보았다. 옷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피도 다
른 사람의 피와 마찬가지로 뜨거웠다. 귀왕은 다시 소천을 바라보았다.
'내가중수법'
왜 같이 죽고 싶었나. 귀왕은 그런 눈빛을 보냈다. 소천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단지 소천의 얼굴에는 변화가 있었다. 소천의 얼굴이 파랗게 변하
더니 이내 붉게 변했다. 그리고 다시 검게 변하더니 다시 파랗게 변했다.
다시 붉게 변하고 점점 창백해지더니 이내 새하얀 얼굴이 되었다. 그것을
본 귀왕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설마 선천지경'
천지와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경지였다. 그래서 천지간의 모든 것들과 기의
교류가 가능한 경지. 그래서 독이 통하지 않는 경지였다. 생물을 죽이는
독마져 승화 시킬 수 있는 경지. 귀왕은 그런 경지에 이른 이를 한명 알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처음으로 패배시킨 인물. 혈마. 바로 그였다. 자신의 귀왕조에 상처를 입
고도 멀쩡했던 혈마. 그때의 놀라움을 소천에게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이었
다. 파아악 귀왕의 신영이 뒤로 무섭게 날아갔다. 아니 그것은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소천이 공력으로 튕겨보내는 것이었다. 예전에 바위를 치
던 그 수법으로 귀왕의 양손을 친 것이었다. 귀왕은 소천이 튕겨보내는 여
력과 자신의 경공을 더해 뒤로 몸을 빼었다. 그러자 수십장을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귀왕곡도들은 귀왕이 몸을 빼자 방패막을 뛰어 넘으며 모
두들 물러나기 시작했다. 청룡단원들은 방패막을 뛰어 넘는 그들을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하늘을 덥고 있던 하얀 배포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갔다. 그리고 동쪽 하늘
가에 떠 있는 샛별이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청룡단은 즉각 대오를 수습
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진 말들을 모았다. 이말들은 평소에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산마를 시켜도 멀리 달아나는 법이 없었다. 육정산은 소천의
옆으로 날아 내렸다. 소천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가는
실선처럼 생긴 상처가 몇 개 나 있었다. 바로 귀왕조에 관통된 부분이었
다. 소천은 뒷짐을 지으며 양손을 서로 맞잡았다.
'아직 파왕권이 극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무모한 모험이었다. 노선배가 준
피독주가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 크게 당했을 것이다.'
소천은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쾌감에 몸을 살짝 떨었다. 육정산이 그런
소천을 보며 물었다.
"괞찬소이까?"
"예 아무일 없습니다."
"무모했었소이다. 이기어검술로 계속 공격을 했다면 승산이 있었는데...."
육정산의 말에 소천은 미소를 지었다. 육정산은 소천을 보며 다시 물었다.
"헌데 왜 도살령을 내리지 않은 것이오? 귀왕곡도들은 우리의 천살진에 갇
혀있었는데"
소천은 샛별을 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육정산은 소천이 가리킨 곳을 바라
보았다. 새벽의 여명이 산 등성이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쪽에서
보이는 산은 주위보다 더 어두웠다. 그러나 그 어둠은 하얗게 타올랐다.
수백 수천개의 등롱이 일제히 켜졌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육정산과 오
대 호법도 헛바람을 켰다. 육정산은 침음성을 흘리며 말을 하였다.
"대단한 위세군요. 족히 일천은 되겠습니다."
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허장성세입니다."
"허면 왜?"
육정산의 물음에 소천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말해 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샛별의 뒤는 여인의 면사같은 하얀 막이 드리우기 시
작했다. 그리고 이내 붉게 물들어 가며 새벽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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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후는 지도를 보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소천은 지도위에 몇 개의 깃발
을 꽃았다가 빼기도 했고 다시 몇개를 연달아 늘어 놓았다. 동방후는 소
천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의문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 소천이 지도위에
펼치고 있는 진세들은 대부분 방어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삼혈맹의 본거지
인 남령산맥이 가까워 지고 있는 지금은 방어진보다는 공격진을 연마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소천이 하고 있는 전략도상의 전술연습은 거의가 다 방
어진이었다. 공격진도 몇 개 있었지만 그것은 방어를 위한 기본적인 공격
뿐이었다.
이렇게 몇 개의 깃발만으로 공격진과 방어진을 구상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
다. 그러나 소천이 하나의 깃발을 놓을 때는 그 깃발이 의미하는 병력의
단위의 소진이 구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깃발 하나 하나의
연관에 따라서 그 깃발이 표시하는 단위의 진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었다.
아마 이것을 목각인형으로 한다면 인형들을 제자리에 놓는 것만으로도 반
시진 이상 걸릴 것이었다. 동방후도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소천
이 이마를 집으며 묵상에 잠기자 동방후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총호법님 저 한가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소천은 나직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떡였다. 동방후는 전략도를 보며 말
을 하였다.
"저희가 삼혈맹을 치러가는 것이 맞기는 맞습니까?"
소천은 빙그래 미소를 지었다.
"왜 아닌거 같은가?"
"아니 그게 아니라 총호법님께서 연구를 하시고 계시는 진법들이 대부분
방어진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그랬습니다. 삼혈맹을 치러가는 것이면 공격
진을 구상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요."
"하하하 동방단주도 전략도의 오의를 깨달아 가는군. 그래 내가 연구를 하
는 것은 모두 방어진이네.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
소천은 고개를 약간 갸웃하다가 말을 하였다.
"자네가 병력을 지휘해서 삼혈맹을 친다고 해보세나."
"네"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동방후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소천은 수백개의 깃발들을 동방후 앞에 내밀
었다. 그 깃발들에는 작은 글씨로 각 문파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동방
후는 남령산맥의 일대에 깃발들을 꽃기 시작했다. 동방후는 깃발을 들고
이리저리 고심을 하다가 하나를 놓고 다시 하나를 들고 전체를 살펴보았
다. 그런 식으로 깃발의 반쯤 놓다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아하는 탄성을 터
뜨렸다.
"그랬군요. 저희의 임무는 후방의 차단임무였군요."
"그렇네"
그말에 동방후는 미소를 짖다가 얼굴을 굳혔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손쉬운 임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어려운 임
무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게 아니라 우리더러 죽으라는 이야기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해
검파와 청성파가 우리와 함께 이곳을 차단 한다는거지."
소천은 그렇게 말을 하고 남령산맥의 배후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왼쪽
에 청룡장의 깃발을 꽃았다.
"어렵군요. 삼혈맹이 패주를 한다면 무이산맥이나 귀주, 운남 쪽으로 빠질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청성이나 본장의 피해가 막심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방어진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네. 이제 되었나?"
"예"
그때였다. 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삐익 삑 삑 삐익 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동방후는 벌떡 일어났다. 동방후가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군막의 문이 열리며 하나의 인영이 손살같이 튀어 들어왔다. 동방후는 앞
으로 달려가며 기합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장검으로 날아드는 인영을 베었
다. 파아악 햐얀 구름속에서 눈발이 휘날리는 듯한 착각이 들고 동방후의
검이 튕겨지며 한쪽으로 밀렸다. 동방후는 옆으로 구르면서 소천을 바라보
았다. 소천은 어느새 검을 뽑아 운무를 찔러가고 있었다. 사아악 소천의
눈 앞에 하얀 천이 거두어 지면서 창백한 안색의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부르르 소천의 검이 떨렸다. 얼굴과 머리카락에는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고
두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바로 백리소소였다. 소천의 검
이 떨리고 멍하니 서 있을 때 햐얀 소매사이로 백색투명한 손이 빠져나왔
다. 그것은 바로 소수였다. 두 개의 소수는 소천의 가슴을 가격해 들어갔
다. 소천은 아직도멍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그의 기가 소수의 기에 격발이 되어서 운기가
되면서 전신을 보호했다. 파아악 가슴을 가격한 소수가 소천의 호신강기
때문에 옆구리로 흘러갔다. 그래서 그녀가 소천의 품속으로 안기는 모습이
되었다. 그녀의 얼굴과 소천의 얼굴이 아주 가까이 다았다. 둘이 눈이 바
로 앞에서 마주쳤고, 그녀의 코와 소천의 코가 서로 닿았다. 소천은 그녀
의 숨결을 느끼며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물방울이 소천의
입술을 촉촉히적셨다. 소수마후의 가슴이 소천의 가슴을 약간 압박해 들
어왔다. 그리고 무언가가 소천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입안으로 이물질이
들어오자 소천은 본능적으로 양손을 뿌렸다. 파아아 그의 옷자락이 한없이
부풀고 군막마저 부풀었다. 티티팅 하는 소리와 함께 군막을 유지했던 나
무틀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며 군막이 순식간에 해체가 되었다.
그녀는 경력을 타고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그쪽에서는 수십명의 청룡단원
들이 방패진을 치고 그녀를 막고 있었다. 피피핑 무수한 화살들이 허공에
난무하였다. 그녀는 날아오는 화살들을 향해서 정면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퍼억 한 대의 화살이 그녀의 어깨에 격중하였다. 소수마후의 어깨에서 붉
은 피가 샘물처럼 솟아 올랐다. 햐안 옷에 점점히 혈흔이 뿌려졌다. 그녀
는 고개를 돌려서 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과 뺨에는 새햐얀 눈물
이 흐르고 있었다. 소천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소소'
피피핑 피피핑 다시 무수한 화살들이 날아 오르고 그녀는 소매를 저어서
화살들을 쳐내며 어둠속으로 몸을 날렸다. 붉고 하얀 천이 나풀거리며 화
살들을 유인했다. 그리고그 천은 무수한 화살들에 의해서 관통이 되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총호법님"
동방후와 육정산이 소천의 곁에 내려섯다. 육정산은 얼른 소천의 맥문을
잡았다. 그리고는 헛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빙글 돌리며 뒤로 물러섯다.
육정산은 찌르르 떨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동방후가 소천의 몸
을 만지려하자 육정산이 손을 내밀었다.
"아무 이상이 없으시네. 잠시 놀라신 것이니 좀 기다리면 제정신으로 돌아
오실 것이네"
그말이 끝나기 전에 호법들이 사방에서 달려왔다.
"자객이 왔었습니까."
"소수마후가 왔었네만 소공자께서 신공으로 단 합에 날려 버렸네. 공자께
서는 마음이 여리신 분이라 그런 여아에게 독수를 쓰신 것이 가슴이 아프
신 것이네. 그냥 놔 드리게"
"네"
육정산은 그렇게 말을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삼혈맹의 공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곳곳에서 진을 친채 밖을 주시하는 청룡단원들만 보
일 뿐이었다. 소천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날뛰고 있는 공력
들이 차츰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빠르게 뛰던 심장도 원래의
밖동수를 찾아가고 있었다. 육정산은 알지 못했지만 소천은 방금 주화입마
의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소천은 손가락을 움직여 볼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손가락은 움직였다. 그러나
그 손가락은 바로 앞에 있는 풀잎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소천은 멍
한 상태에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두 개로 보였다. 그것을
확인하자 일순 사방이 빛의 무리에 휩싸인 듯이 보였다.
사방의 모든 것이 모두다 빛이었다. 그 빛은 어둠속에서도 환하게 웃고 있
었다. 소천은 멍한 상태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가슴은 다시 뛰었다. 빛의 환영속에서 한명이 서 있
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츰 빛이 가라앉고 사방은 어둠속에 뭍혀가
고 있었다. 소천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의 주위에는 어느
새 군막이 쳐져 있었고 몇 명이 호법을 서고 있었다. 소천과 육정산의 눈
이 마주쳤다. 육정산이 소천을 보며 포권지례를 올렸다.
"축하합니다. 총호법님."
소천은 대답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 그때 혀 끝에 걸리는 것이 있어 입을
얼른 다물었다. 그것을 보자 육정산이 고개를 끄떡였다.
"옛날 무학의 대종사들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을 하면 며칠간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얻은 바를 다시 검증을 했다고 합니
다. 소공자께서도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셧으니 이 어찌 기쁘지않겠습니
까."
소천은 육정산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이게 화(華)일지도'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쉽게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소천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움직여졌다. 변한 것은
없었다.
톡 입밖으로나온 것은 작은 밀납환이었다. 그 밀납환에는 끈적끈적한 타
액이 묻어 있었다. 톡 소천이 손톱으로 밀납환을 벗기자 돌돌말린 종이가
나왔다. 스윽 소천은 그것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이내 밀납환과 종이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소천은 자신의 입술을 살짝 눌러 보았다. 스쳐
지나간 촉촉한 물기는 이미 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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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5 유재용 (석공 )
[연재] 청룡장 08/09 01:13 369 line
기름기가 질질 흐르는 머리를 벅벅 긁어 대었다. 손톱 사이로 때와 기름이
범벅이 되어 묻어났다. 슥슥 손을 옷에 비벼서 때를 지웠다. 그리고 고개
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 앞에는 중년거지 웅크리고 앉아 있었
다. 그 옆에는 장년거지가 허리를 쭈욱 편채 어깨를 펴고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웅크린 거지의 입가에서 퍼저 나간 주름이 깊을 골을 패면서 얼굴
을 더욱 흉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긁던 취선개는 건곤신개의 그런 얼굴에
서 기발한 생각이 튀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건곤신개는 얼굴을
손으로 비볐다. 그러자 몇 덩이의 때가 밀려나왔다. 협개 나정호는 건곤신
개를 보며 말을 하였다.
"곧 작전회의인데 장로께서는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이번 패전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말에 취선개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측은 저들보다 세배나 많았는데, 전력상으로도 배 이상
차이가 났단 말이다."
건곤신개는 눈을 빛내며 취선개를 바라보았다.
"산서에서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산서에서 뭐? 산서에서 나는 본방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없다."
건곤신개는 고개를 젖고 나정호를보며 말을 하였다.
"우리에게는 군사가 없습니다. 전력상으로는 분명히 우리의 우위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무력이 강하다고 이기는게 아닙니다. 수천명이 움직이는 전
투에서는 무력보다는 병법이 승패를 좌우하는 법입니다. 백도에는 고수들
이 모래알처럼 많지만 그들을 일사 분란하게 움직일만한 군사가 없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흐음, 각파에 내로라는 수재들이 있지 않소? 지금이라도 그들이 모여서
병력을 움직이면 되지 않겠소."
"예 각 문파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지요. 개중에는 병법을 꾀뚤고 있는
인물들도 있을 껍니다. 하지만 이런 대단위 병력을 움직여 본 사람은 없습
니다. 게다가 삼혈맹에는 뛰어난 군사가 있습니다. 어줍잖은 머리로 병력
을 움직였다간 적벽의 사태가 재현 될 뿐입니다."
"청룡장의 소천 공자는 어떠냐? 그라면 능히 대병을 거느릴 만하지 않느
냐?"
취선개의 말에 건곤신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청룡장의 소대협이라면 대병을 지휘해 삼혈맹과 맛서 싸울만한 인물입니
다. 그러나 백리가주는 무슨 이유에선지 청룡장을 싫어 합니다. 그들에게
남령산맥의 뒤로 가게 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리고..."
건곤신개는 선발대를 소림과 무당에 맏긴 실책을 지적하고 싶었다. 소림과
무당은 그 위상이나 무게로 보아 중군에서 중인들의 구심점이 되어야 했
다. 그러나 백리무군은 선발로 내 세운 것이었다. 덕분에 혜명대사와 일검
자는 부상을 당해 자파로 돌아가다. 형양에 집결한 무림동도들은 선발대의
패배에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사실 선발대가 당한 피해는 경미했다. 그
러나 소림과 무당이 패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리적인 패배감과 공포가
다시 이들을 떨게 만들고 있었다. 그 외에도 작전상의 실수가 눈에들어왔
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그 것들은 이미 지나간 일들이었다. 건곤신개는
지도를 펼쳐 들었다.
"대군으로 휘몰아쳐 간다는 기존의 작전은 바뀔껍니다. 남령산맥의 한 곳
에 집결지를 정해 놓고 수백개의 노선을 만들어 이동을 할껍니다."
"그때 삼혈맹이 각개 격파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소?"
"숫적으로는 우리가 몇배나 우세입니다. 아마 이삼십개로는 전멸을 할껍니
다. 그러나 대군으로 몰아쳐 가다가 이렇게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남
령산맥은 곳곳이 험지라 대군이 이동하기에는 적합하지가 못합니다. 그리
고 단신으로도 능히 천명을 막아 낼만한 지형도 많습니다. 따라서 삼혈맹
에서 소수의 고수만 내더라도 능히 수천명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
리가 분산하여 공격한다면 저들도 병력을 쪼개야 할 껍니다. 아니면 퇴각
을 하여 방어망을 좁히던지요."
"병력을 쪼개지 않고 서너개 공격로를 쳐부시며 각개격파를 해온다면 어쩌
겠나?"
"후후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나머지 병력으로 포위를 하여
일거에 소탕을 한다면 우리는 승리할 걸세. 우리가 산서에서 당한 것을 그
대로 돌려주는 셈이지"
그말에 취선개는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핏
발이 곤두선 얼굴로 소리쳤다.
"혈마는?"
건곤신개는 나정호를 보며 말을 하였다.
"혈마도 사람인 이상 그 많은 공격로를 막지는 못할 껍니다. 그리고 일단
남령산맥의 중간 집결지에 도착 하게 되면 삼혈맹도 자연스럽게 힘이 모일
껍니다. 이때에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띄워야 겠지요. 바로 전투에서는 패
해도 전쟁에서는 이기는 방법입니다. 삼혈맹도 안마당까지 들어온 우리를
쉽게 공격해 오지는 못할 껍니다."
"상책이라고는 생각이 되지는 않는구료."
나정호의 말에 건곤신개는 고개를 끄떡였다.
"중간책이입니다. 상책은 처음 계획했던대로 힘의 절대적 우위와 함께 대
군으로 정면공격을 하는 겁니다."
나정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건곤신개를 보며 말을 하였다.
"장로께서 나서시면 안돼겠습니까?"
"저의 부족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주님"
"네"
"본방은 맹주일행과 함께 공격로를 잡고 싶습니다. 그게 안 된다면 저와
몇 명의 고수들만이라도 끼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본 방의 주력은 좌익을
맏게 하십시오. 그래서 청룡장과 연결이 되게 해 두시는 것이 여러모로 좋
을 껍니다."
나정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나정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중충한 하늘가로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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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뼈만 남은 듯한 손이 낡은 봉을 타고내려왔다. 그 봉끝에는 파르슴한
창날이 밖혀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 생사를 같이한 이창. 오늘 따라 창 여
기 저기에 흠집들과 빛바랜 흔적들이 있었다.
"너도 그동안 고생이많았다."
언무외는 창날을 잡았다. 스윽 붉은 핏물이 창날을 타고 흘렀다. 혈마. 그
의 이름은 자신이 가문을 뛰쳐 나올 때 이미 천하를 울리고 있었다. 언무
외는 한때 그를 찾아 천하를 떠돈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흔적을 발견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무수한 강자들과 겨루어 창왕이라는 이름을 얻
게 되었다. 그 뒤 잠시 은거를 한적이 있었다. 은거중에 혈마가 모습을 드
러내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강호에 재 출도를 하였다. 그리고 혈마의 흔
적을 따라 갔다. 혈마의 흔적을 따라 가면 갈수록 그에 대한 두려움은 커
져만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혈마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혈마가 남긴 흔적에서 공포를느끼고 있었던 것이
었다.
그로부터 십수년 뼈를 깍는 수련 끝에 다시 무림에 재 출도를 하였다. 그
리고 이제 십수년간 자신의 가슴에 공포로 남은 혈마와 일생일대의 승부를
겨룰 때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창날에 자신의 피를 먹이고 있는 것이었
다. 창을 한바퀴 돌리던 창왕은 한 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창의 중간 쯤
되는 부분. 그곳은 손때가 찐뜩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손때 중간에 푹 패
인 자죽이 나 있었다. 창왕은 그곳을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렸다.
'이게 어디서 난 흔적이었지'
창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창에 난 흔적이
어디 하나 둘이었던 말인가. 언무외는 장창을 비껴 쥐었다. 이제는 자신이
선봉에서 출전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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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고 있었다. 때는 시월에 접어들고 있엇지만
강남의 남부는 무더위가 식을 줄 모르고 있었다. 강북에서 온 이들은 이
더위에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수백개의 노선을 따라 남령산맥으로 진
격하는 백도의 군웅들은 삼혈맹과 싸우기 전에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그
나마 가끔 내리는 폭우가 더위를 앁겨주었다. 그러나 그 비로 인해서 길이
막히기도 하였다.
스윽 면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청년은 그것을 옆에 건네 주었다. 그럼
그 옆의 사람은 그것을 한번 짠 뒤에 얼굴에 묻은 땀을 닦고 옆으로 건네
었다. 툭 한명이 손으로 옆의 청년을 쳤다. 옆의 청년은 약간 멍한 표정을
짖다가 어 하는 탄성을 지르고 면수건을 받았다. 그리고 닦는둥 마는둥 하
고서 옆으로 건네었다. 그것을 본 한 청년이 말을 하였다.
"양사형. 뭘 그렇게 유심히 보시오?"
"지세를 좀 보고 있었다."
"지세를요?"
그말에 주위에 있던 청년 몇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칠십구로를 타
고 가는 형산파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중에는 양대호도 끼어 있었다. 양대
호는 산서에서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에 유난히 지형에 신경을 쓰면서 따
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에 적들이 쏱아져 나온 곳과 비슷한 지형을 보자
더욱 유심히 살펴 본 것이었다. 그러나 사형제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웃
은 것이었다. 난데 없는 웃음소리에 선두에 가던 형산파의 장로인 명현자
는 고개를 돌리며 눈살을 찌뿌렸다.
"무슨 일이냐?"
"양사제가 지세를 보고 있었답니다."
그말에 명현자는 눈빛을 빛내며 양대호를 바라보았다.
"그래 뭘 보고 있었다구?"
"지세를 보았습니다."
"흠 그래 앞의 지세가 어떠하냐?"
"산세가 평이하고 험준한 지형이 없으니 매복하기에는 좋지 않은 곳입니
다. 그런데 저 뒤로 이어진 산줄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도주하
기에는 딱 좋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적들이 소수의 병력으로 치고 빠지더
라도 부담이 없는 지형입니다. 언제든지 뒤로 도망을 칠 수 있으니까요."
양대호의 말에 청년들은 다시 웃었다.
"사제가 그렇게 겁을 먹었으니 산서에서 녹림도들에게 쫒겨왔지. 쯔쯔"
몇 명의 혀를 차자 명현자는 눈빛을 빛내며 말을 하였다.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좋은 법이다. 우리의 움직임을 삼혈맹에서도 지금
쯤 눈치를 챘을테니 무언가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명현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걸음을 떼었다. 몇걸음
걷던 그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정면을 보던 양대호가 갑자기 검을 빼
들었다.
"적이다."
양대호가 외치자 중인들은 분분히 검을 빼들었다. 명현자도 검을 빼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러나 전방에는 나뭇가지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청년들은 다시 껄걸 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명현자만 웃지 않고 있었다.
청년들은 명현자가 웃지 않자 얼굴을 굳히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앞
에는 하나의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피보다 붉은 깃발. 아니 깃발
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람의 장삼이었다. 장삼을 입고 서 있는 자. 그는 두
자루 단창을 들고 있었다. 명현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옥마군"
명현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옥마군의 몸이 떠올려졌다. 그리고 두자루
단창을 맹렬히 휘두르며 공격해 들어왔다. 명현자는 검을 휘두르며 지옥마
군과 맛서 갔다. 형산파의 제자들도 일제히 지옥마군 주위를 포위하였다.
파라라 명현자의 현란한 검광이 지옥마군의 두자루 단창을 휘감았다. 그리
고 형산파의 제자들도 검진을 구축한채 지옥마군을 압박해 들어갔다. 지옥
마군은 이들의 공세에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차차창 두자루 단창이
빠르게 움직이며 명현자의 검을 밀쳐내었다. 그리고 몸을 뒤집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몸을 따라 형산파 문도들의 검이 허공을 수놓았다. 빙글빙
글 지옥마군의 몸은 허공에서 공처럼 회전을 하면서 십여장을 물러났다.
척 지옥마군이 땅에 내려서자 명현자의 검이 그의 목을 베어갔다. 탓 지옥
마군은 몸을 뒤로 빼면서 두자루 단창을 안으로 모았다가 밖으로 밀쳐냈
다. 팅 명현자의 검이 왼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지옥마군은 다시 뒤로 몸
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보자 모두들 함성을 지르며 지옥마군을 따라갔다.
그때 양대호 뒤로 물러섯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주위의 숲은 매우 적
막했다. 소리 한점 없는 숲. 양대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며 소리를
쳤다.
"매복이다."
일순 형산파의 제자들이 멈칫거렸다. 명현자도 공격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
다. 그때 뒤로 물러서던 지옥마군이 다시 공격해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붉
은 혈영들이 솟구치며 형산파의 제자들을 공격해갔다. 그들의 수는 오십이
넘었다. 명현자는 고함성을 터뜨렸다.
"물러서라"
파파파 명현자는 검으로 달아드는 몇 명의 혈영들을 벤뒤에 뒤로 몸을 빼
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지옥마군이 악착같이 달라붙었기 때문
이었다. 몇초를 둘이서 나누는 사이에 명현자의 주위에는 삼혈맹도들이 둘
러 쌓았다. 그러자 형산파의 제자들은 뒤로 물러서지 못하고 삼혈맹도들과
어우러졌다. 양대호는 혼전의 와중에 사형제들을 바라보았다. 사형제들은
검진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서 단신으로 맛서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삼혈맹도들은 조직적인 검진으로 형산파의 문도들을 요리하고
있었다. 비명성과 함께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양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들은 전멸을 면하지 못할 것이었다. 양대호는 검으로
삼혈맹도들의 도를 마구 휘몰아쳤다. 땅땅땅 검과 도가 부딧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지옥마군은 명현자를 몰아쳐 갔다. 그의 두자루 단창은 쾌속무비하게 공간
들을 분할해갔다. 명현자의 몸과 검은 그 분할 공간안에서 이리저리 피하
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몸은 지옥마군의 단창에 점점
갇혀져 갔다. 명현자는 헛바람을 터뜨리며 급급히 검으로 전신을 보호했
다. 삐익 삐익 날카로운 소성이 들려왔다. 지옥마군은 그소리를 듣자 기합
성을 터뜨리며 단창으로 명현자를 찍어갔다. 차창 명현자는 장검으로 두자
루 단창을 쳐내었다. 그리고 몇걸음 물러나서 전신을 보호했다. 그러나 예
상했던 후속공격은 없었다. 아니 지옥마군과 삼혈맹도들은 등을 보인채 도
주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숲속으로 사라질때까지 형산파의 문도들은 멍하
니 서 있었다. 휙휙 밑에서 고함소리와 함께 수십명이 달려왔다. 형산파의
문도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밑을 향하여 검진을 펼쳤다. 그러나 달
려오는 이들을 보고 검진을 거두었다. 그들은 후방을 지원하기로 한 무당
파의 제자들이었다.
약간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는 청송자는 명현자를 보고 예를 취했다.
"삼혈맹도들을 격퇴하시느라 수고하셧습니다."
청송자의 말에 명현자는 낫빛을 고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귀파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찌 이 늙은 몸이 살아 남았겠는
가."
"헌데 이런 이동이 참으로 위험합니다. 그러나 서로 모여서 의지해서 진군
을 한다면 삼혈맹이 어찌 감히 준동을 하겠습니까."
명현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네. 이번 분산공격은 나로서도 탐탁치 않는 방법이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게 문제지"
"네"
명현자는 시체를 치우는 제자들과 무당파의 제자들과 떨어저 걸었다. 청송
자는 그뒤를 따랐다. 약간의 거리가 떨어지자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혈마 때문에 병력을 분산한 것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남령산
맥까지 가기 전에 몇 개의 대단위로 묵는다면 혈마가 직접 나설 것이네.
그렇다면 그 피해는 지금의 피해를 능가할 것이네. 혈마도 사람인 지라 이
렇게 널리 퍼저서 서로 응원을 하는 진세에는 큰 힘을 발위하지 못하지.
그래서 전원이 집결하는 곳까지 이렇게 분산해서 가는 것이네."
"하지만 몇 개로는"
"혈마에게 걸린다면 전멸을 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빨리 이
차 집결지에 도착을 해야 하네."
"그렇군요."
"하지만 이건 하지하책이야. 자네 같은 젊은이들은 갑갑할 께야. 하지만
혈마를 직접보게 된다면 생각을 달리 할 걸세."
명현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 안색을 고치고 형산파 제자들에게 갔다. 청송
자는 그런 명현자는 보고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사숙 일검자가 부상으
로 무당파로 호송된 지금 무당파제자들의 목숨을 자신이 책임져야 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여러모로 능력이 달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래서 자신에게 배정된 노선을 포기하고 형산파와 동행을 하겠다고 본대에
전서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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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손이 가슴 어름께를 만졌다. 쿵쿵 심장이 뛰는 느낌이 전달이 되었
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는 세명의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다.
스르르 그는 눈을 감았다. 은백색의 머리카락이 창백한 안색과 붉은 입술
을 타고 흐느적 거렸다. 그의 입술을 꿈틀거렸다. 불패의 무림삼왕이라는
이름이 깨진 것은 이미 이십여년전이었다. 그때 불패의 명예는 잃어 버렸
다. 그때도 이렇게 아팠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패했다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설욕을 하리라 맹세를 했다. 그러나 이십년이 지난 지금
까지 그는 설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오늘 다시 약관의
청년에게 패하고 나니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어쩌시렵니까? 우리가 맡은 문파는 청룡장과 남해검파인데... 곡으로 돌
아 가시겠습니까?"
이들 삼인은 귀왕곡의 원로인 귀곡삼사(鬼谷三師)였다. 귀왕은 고개를 저
었다.
"일전도 하지 않고 물러날수야 있나."
"그럼 남해검파를 치시겟습니까? 그들도 약한 곳은 아닙니다. 게다가 곡주
님께서는"
"후 나는 별문제 없네. 문도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모두들 그런 공격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겠지"
귀왕은 청룡장과의 대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귀왕곡도들을 순식간
에 가두던 그 진법이 떠올려졌다. 다시 그 진법을 상대 해야 한다면? 귀왕
은 고개를 저었다. 마땅한 방법이 떠올려지지 않았다. 귀왕은 머리를 좌우
로 흔들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남해검파만을 생각할 때였다.
"남해검파는 지금 어디 있나?"
귀왕은 나즈막한 산구릉에 쳐져 있는 수십개의 막사를 바라보았다. 막사
곳곳에는 화톳불들이 있어서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정갈한 깃대에는 수
십개의 깃발들이 바람에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귀곡일사가 소리도 없이
옆에 내려섯다.
"한번 깨진 귀곡대진이 통하겠습니까?"
"청룡장의 진세같은 것이 남해검파에도 있다면 패하겠지."
"알겠습니다."
귀곡일사는 흐릿하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잠시뒤에 날카로운 소리가 하늘
의 별들을 일깨웠다. 삐이익 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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