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혈마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혈마가 양손을 벌려 도와 선장을 막은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 혈마의 빈 가슴을 찌를 수 있었다. 장검은 혈마의
가슴을 뚤었다. 그러나 검 끝에 느껴지는 감촉이 없었다. 그는 아래를 바
라보았다. 혈마가 천근추의 수법을 써서 밑으로 몸을 떨구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래에는 먼저 떨어진 두명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커다란 그림자에 가려져 있
었다. 그림자는 대붕이 나래를 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림자는 지금
자신이 취한 자세가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위에는 두 개의 광채가 있었
다. 태양보다 더 강렬해서 그의 눈이 탈 지경이었다. 그의 모습에는 오직
빛 뿐이었다. 두눈을 파고든 빛은 그의 머릿속을 태워버렸다. 멍해진 머
리.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
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수련해서 얻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너무
도 자연스러운 움직임. 까강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
끼고 그는 편안함을 느꼈다. 주위에서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
았다. 극락이 사방에서 일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미타불.'
누군가가 자신을 낚아채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그것을 뿌리칠려고 하였지
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빛무리에 휩싸인 하나의 모습을 바라보았
다. 대자대비의 관세음 보살의 환영인 듯도 했고 아수라계의 모습인 듯도
했다.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지극히 평온했다.
'아미타불'
혈마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혈포가 가슴에서 아래로 길게 찢어
져 있었다. 그것은 검이 혈마의 가슴을 찌를 때 생긴 것이었다. 혈마는 검
을 피하기 위해서 검에서 이는 검기를 타고 날아 올랐다. 그때 검은 그의
옷자락에 닿아 있었다. 그래서 검에 걸린 옷이 길게 베어진 것이었다. 그
옷자락 사이로 선홍빛 피부가 보였다. 혈마의 시선은 다시 산 아래로 향해
졌다. 그곳에는 세명이 내달리고 있었다. 선두의 인물은 한명을 들쳐 업고
있었다.
"소림사천왕 전설대로 강하군. 조금만 더 강했다면 좋았을 텐데"
혈마는 뒷짐을 진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노을 끝에 걸린 달이 보였다.
/////////////////////
"지금이 적기입니다."
"뭐가 말이냐?"
"소림의 사대호법승을 손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쯔쯔 그랬다가는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뿐이다."
"소림은 혈마가 죽였다고 생각할껍니다. 그렇게 되면 정사대전에 더 빨리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정사대전은 일어난다. 그전에 삼혈맹에서 우
리의 존재를 눈치 챈다면 일은 더 번거롭게 될 뿐이다. 그리고 사대호법승
들은 내가 처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저자다."
"혈마보다는 아버님이 더 강하십니다."
"그게 아니다.내가 나선다면 혈마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나도 어느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대업은 큰 차질을 빗게 될꺼
다. 우리의 적은 혈마뿐만이 아니다."
"어쨌든 이번일로 혈마의 능력을 알았고 호법승들의 실력도 알았으니 우리
는 크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군요."
"그런셈이다."
"헌데 삼혈맹은 그렇다치고 청룡장은 어떻게 하실껍니까?"
"왜 걱정되느냐?"
"조금은 그곳에는 저희들이 침투시킨 간세들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게 죽
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청룡장에서는 본문이라는 것을 모를테지만 말입
니다."
"모든 안배가 되어있다."
"청룡노야의 실력도 한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볼 필요가 없다."
"그래도......."
"됐다. 그만가자"
"네"
/////////////////
남궁세가. 무림오대세가 중 한곳으로 천하 삼대 상권 중 하나인 동정상회
의 태두였다. 남궁세가는 무림보다 상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
었다. 그러나 남궁세가는 상가로 불리우기 보다는 무림세가로 칭해지는 것
을 원했다. 막강한 재력과 그 재력을 바탕으로 키운 무력으로 무림오대세
가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세가였다. 오늘 그 거대한 세가의 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고 무수한 인물들이 세가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지
난 며칠 동안 들어간 이들이 수천이 넘어 수만을 헤아릴텐데도 장원 안은
전혀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바다에 빠진 모래알 같았다.
전각과 전각들 사이의 공터에 무수한 천막들이 쳐져있었다. 그 안에도 사
람들이 복작대고 있는 것만이 이들이 남궁세가의 혼례식 때문에 온 이들이
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툭툭 옷자락에 뭇은 먼지를 턴 반승은 홍균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인가?"
"각 문파의 수뇌부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이틀동안 이곳에 있으
면서 본 인물들 중에 명문정파의 고인들은 없었습니다. 남궁세가의 혼례식
인데 아무도 안왔을리 없고..."
홍균은 반승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들이 혼례식을 보러 온 것 같은가?"
홍균의 말에 반승은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 보며 말을 하였다.
"그렇군요. 어느 누구도 술잔을 비우는 이들이 없습니다. 음식도 배불리
먹지 않고..."
홍균과 반승은 그런 말을 나누며 한적한 곳으로 걸어갔다. 얼마를 걸어가
자 한명의 무사가 나와서 읍을 하며 말을 하였다.
"이곳은 신부가 머무르는 곳이니 양해를 해주십시오."
그말에 홍균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안을 슬쩍 보고는 몸을 돌렸다.
반승은 홍균의 옆으로 바싹 붙으며 말을 하였다.
"무슨 낌새라도 있습니까.?"
"낌새는 무슨. 그보다 정말로 우리는 빼놓을 생각인가 보군. 흐흠 소위 명
문정파라는 것들이 너무 하는군"
////////////////
옷자락에 주름이 잡혔다. 그랬다가 다시 펴졌다. 얼굴을 가린 주렴이 좌우
로 흔들렸다. 그 옆에 있던 백의소녀가 파리한 손을 잡으며 말을 하였다.
"언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그게 아니고"
백의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주렴을 거두었다. 그 안에는 약간 창백한 안색
의 얼굴이 있었다. 바로 백리소소였다. 백리소연은 생그르 웃으며 말을 하
였다.
"오늘만 지나면 안정이 될꺼야. 오늘 사람들 많이 왔어. 언니 실수하면 안
되"
그말에 백리소소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자 주렴들이 흩날리며 백리소소
의 얼굴을 살짝 때렸다. 백리소연은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었다. 방안을
서성이다가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는 너른 숲과 담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담장 너머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이 먼곳
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별원 주위에는 십여명의 무사들이 규칙적으로 순찰
이 도는 것이 보였다.
"언니 남궁세가가 우리집보다 더 커 보여. 건물들도 화려하구. 언니는 좋
겠다. 이런 집에서 살아서"
"으응"
그때 문이 열리고 백리웅풍이 들어왔다. 백리무군이 없는 지금 그는 백리
세가의 가주인 셈이었다. 그래서 지금 혼례도 그와 남궁세가주가 주도를
하고 있었다. 이제곧 혼례식이 있을 것이었다. 그뒤에는 백리소소는 남궁
세가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백리웅풍은 그전에 동생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하하하 오늘따라 참으로 곱구나. 많이 떨리지."
백리소소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백리소연은 잠시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
서 한쪽에 있는 작은 보따리를 몸뒤로 해서 소소가 보지 못하게 들고 나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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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쌓인 천이 풀어지고 안에 있는 옷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햐얀 백
의에 푸르고 붉은 색실로 무늬를 수 놓은 옷이었다. 팔랑 그 옷을 펼쳐들
자 주위가 연분홍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호호호 형부가 이걸 봤다면 큰일이겠지. 내가 중간에 가로채기를 잘했어"
백리소연은 그렇게 말을 하고 옷을 걸친 뒤 동경 앞에 서 보았다. 자신의
몸에는 약간 작은 듯했다. 옷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본 뒤에 백리소소는 옷
의 한쪽을 잡고 쫘악 찢기 시작했다. 쫘악 쫘악 옷을 찢어 발기던 백리소
소는 한조각의 천을 집어 들었다. 그 천에는 작은 글씨들이 수놓아져 있었
다.
<백리소소>
백리소연은 그 천조각을 갈기갈기 찢어 발긴뒤에 보자기에 다시 쌓았다.
그리고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갈려고 문을 잡다가 다시 멈추었다. 그리고 보
자기를 화로속에 넣고 불살라 버렸다. 작게 퍼지던 불길은 갑자기 천정까
지 태울 듯이 터저 오르고 다시 불길이 잔잔해졌다. 백리소연의 양볼은 불
길에 상기된 듯 붉어졌고 눈가에는 분홍빛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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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천지(拜天地)"주)
결혼식을 주재하는 자의 목소리에 따라서 남궁현과 백리소소는 제단앞에서
세 번 절을 하였다.
"배고당(拜高堂)"
그말에 둘은 시부모가 되는 남궁천기부부에게 세 번 절을 하였다.
"교배(交拜)"
라는 말에 둘은 서로 마주보고 세 번 절을 하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하객
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리며 박수세례를 퍼부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남궁천상부부와 백리웅풍은 술잔을 부딧쳤다.
붉은 촛불이 환히 켜지고 새납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남궁현은 붉은 비단
한 끝을 백리소소에게 쥐게하고 신방으로 신부를 안내했다. 백리소소는
땅을 밟지 않고 붉은 양탄자 위를 걸어 신방에 들어갔다. 남궁현의 조카
들과 질녀들이 그뒤를 졸졸 따라가며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방안에는 침상이 꾸며져 있었고 홍포로 두른 탁자위에는 교배주(交拜酒)가
있었다. 두 개의 잔은 경덕진에서 만든 것중에서도 최상품인 자옥배(紫玉
杯)였다.
"듭시다."
남궁현은 두 잔에 가득 호박색 금존청을 따라 하나는 백리소소에게 주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들었다. 남궁현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모르고 있
었다. 백리소소의 잔은 작은 파란을 일으키며 떨고 있었다. 몇방울의 술이
떨어저 백리소소의 신부복을 적셨다. 잔 두 개는 댕기로 묶여져 있었다.
남궁현이 먼저 한잔을 마시고 백리소소에게 권하는 시늉을 하였다. 백리소
소는 떨리는 손으로 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남궁현은 다 마신 뒤 잔을 화
관(시집가는 여자가 썼던 칠보로 꾸민 관과 주) 함께 침대 아래에 던졌다.
침상위에는 수십개의 신방의 구석구석과 침대 위에 대추, 밤, 땅콩 등을
띄엄띄엄 뿌려져 있었다. 남궁현은 그것들을 한쪽으로 몰았다. 그리고 백
리소소에게 다갔다.
"하하하 하하하"
대청안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열 사람씩 둥근 상에 앉아서
먹고 마시고 있었다. 그런 상이 대청안에 수십개가 있었다. 그러니 대청안
에 있는 이들만도 근 삼백여명이 되는 인원이었다. 게다가 밖에는 불야성
을 이루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대청의 입구쪽. 대청안에서는 말석이라
고 할 수 있는 곳에 앉아 있는 구겸창 홍균과 반월도 반승은 심드렁한 얼
굴을 하고 있었다. 구겸창 홍균도 연거푸 세잔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너무하는군 그래. 여기 모인 이들이 모두 강호의 명숙이라고 하지만 우리
도 빠지지는 않는거 아닙니까. 나야 그렇다고 쳐도 구겸창 홍균하면 산동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인물이었고, 강호에서도 손 꼽히는 고수가 아닙니까.
그런데 명성이나 세력에서 모두 뒤지는 자들이 앞에 있고 우리가 뒤에 있
으니 이거야 원참내"
반승이 그렇게 말을 하였지만 그탁자 둘레에 있는 이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 둘의 강호 명성과 그 배경이 되는 청룡장의 세력
에 비하면 이들의 문파와 무림의 위치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괜한
시비거리에 일신의 생사는 물론 문파의 존망을 걸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반월도 반승이 붉은 얼굴을 하며 말을 하였다.
"헌데 남궁세가에서는 왜 몰락한 백리세가의 여식을 며느리로 맏아 들인거
요? 다른 좋은 혼처도 많았을 텐데. 옛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했을이는
없구."
"그걸 내가 알겠나."
"그리고 전쟁은 언제 하는거요? 우리는 이미 출진준비를 끝내고 왔는
데..."
"그렇게 싸우고 싶나"
"할꺼면 빨리 하는게 좋지요. 이런 꼴 안보고 말이오. 나원 참 내가 개인
자격으로 왔다면 바로 나갔을 꺼요."
"곧 시작하겠지. 식이 끝났으니 연회가 길어도 칠주야를 넘기기야 하겠나.
그전에 어떤 움직임이 있겠지. 우리나 삼혈맹이나"
"삼혈맹에서 알겟소?"
"그들이 바보들인가?"
홍균은 그렇게 말을 하고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잔을 내려 놓
으며 말을 하였다.
"포양호쪽의 인사들에게 잠시 시간 좀 내달라고 해"
"어 그건 왜요?"
홍균은 피식 웃으며 반승의 잔에 술을 채웠다.
///////////
남궁현은 소소의 옷자락을 풀어 나갔다. 소소는 바들 바들 떨고 있었다.
남궁현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표정이 일더니 그대로 소소를 안고 뒹굴었
다. 소소는 손을 들어 남궁현을 밀쳐내었다. 그러자 남궁현은 하하하 하하
하 하는 웃음을 터뜨리며 능숙하게 손을 놀렸다. 그의 손놀림과 백리소소
의 움직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어느새 백리소소는 나신이 되어가고
남궁현도 벗은 몸이 되었다. 남궁현은 백리소소의 전신을 쓰다듬었다. 처
녀는 처녀 나름대로의 상대하는 방법이 있었고 남궁현은 그런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남궁현은 힘껏 내질렀다. 백리소소는 얼굴을 찡그렸고 입가
에서 나직한 신음성을 토해 내었다. 남궁현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기뻐서
허리를 강하게 놀렸다. 밤은 지고 꽃도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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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하얀 천이 속이 보일 듯이 투명한 창날위를 스쳐지나갔다. 주름진 손
이 봉을 쓰다듬다가 움푹 패인 곳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몇번 문질렀다. 그
때 문이 열리고 한명의 청년이 읍을 하며 말을 하였다.
"모두들 대청에서 기다리십니다."
노인은 창을 들고 마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눈부
신 햇살이 그의 눈을 잠깐 찌뿌리게 하였다.
'이제는 그분들이 나서실 때도 된 것 같건만'
노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 대청으로 향했다. 너른 연무장의 곳곳에는 휘장
들이 쳐져 있었고 그 안에는 각문파의 인물들이 병장기를 손질하고 있었
다. 그리고 그곳 어느곳에서도 어제의 흥분은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청에
는 수백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상석에는 한명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
다. 각이 진 턱에 구렛나루와 턱수염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의 너른 이
마 아래는 짙은 눈섭과 사각진 눈이 자리하고 있었다. 반승은 고개를 갸웃
하다가 홍균의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홍균은 정면에 앉아 있는 중년인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반승이 잡아끄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
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홍균이 고개를 끄떡였다.
"저분이 창왕 언무외이시네"
창왕 언무외. 무림 삼왕 중 한명이자 당금 백도에서 단신으로 혈마를 상대
할 수 있다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중년인에게 가볍게 예를 취했다.
그러자 그도 앉은채로 예를 취하였다. 중인들은 분분히 일어서서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창왕 노선배님을 뵙습니다."
창왕이 상석 바로 옆에 앉자 중인들도 자리를 잡았다. 중년인들이 자리를
잡자 한명이 일어섯다. 염소수염에 등이 약간 굽은 노인이었다.
"가주께서 반혈맹주였다니 정말이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구료."
중년인은 노인의 말에 중인들을 보며 손을 맞잡고 말을 하였다.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기밀을 엄수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신분을 숨길
수밖에 없었소이다."
노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수염을 메만지며 중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은 당걸. 바로 사천당가의 가주로 암기와 독의 대가
였다. 그리고 상석에 앉아 있는 중년인은 바로 반혈맹주이자 백리세가의
가주인 백리무군이었다. 그가 이제 복면을 벗고 중인들 앞에 그 모습을 드
러낸 것이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백리웅풍은 멍한 눈으로 눈을 꿈뻑
이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화산파의 장로인 무량자가 눈을 빛내며 물었
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서신을 보내서 무력결집을 청한 사람이 가주요?"
무량자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서 듣는 이로하여금 귀에 거슬리게 하였다. 그
말에 몇 명의 시선이 백리무군에게 모여졌고 몇 명은 눈을 살짝 찌뿌렸다.
중인들은 백리무군을 바라보았다.
백리무군은 품에서 하나의 삼각소기와 옥패를 꺼내어 앞에 놓았다. 몇 명
의 원로고수들의 눈이 소기와 옥패에 멈추었다. 그리고 경악성을 터뜨렸
다.
"대덕기(大德旗)과 덕조령(德照令)"
그들의 경악성에 중년배의 인물들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고 몇몇은 경악성을 터트린 원로의 고수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러나 그
들은 백리무군을 바라 볼 뿐이었다. 창왕 언무외는 중인들의 모습을 보며
만면에 미소를 띄었다. 백리무군은 중인들을 보며 말을 하였다.
"사실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이 두분께서는 지난 수십년간 삼혈맹
을 견제해 오셧소이다. 그러나 이두분께서도 천명을 어기지 못하시고 때가
되심을 스스로 느끼셧소이다. 그래서 귀천로(歸天路:하늘로 돌아가는 길
즉 죽는다는말)에 들기 전에 끝을 보려 하시어 각대문파에 연락을 취했던
것입니다."
중인들은 여기저기서 웅성웅성대었다. 그중 한명이 벌떡일어나며 말을 하
였다. 그는 형산파의 장문인인 반양상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매우 잘익은
대추빛처럼 매우 붉었다. 두 눈동자에 신광이 흐르지 않았다면 혈마로 오
인을 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그 두분께서 지금 살아 계시단 말이오?"
백리무군은 그를 보며 약간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살아 계신것도 돌아가신 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인간의 탈을 쓰고 계시지
만 그 정신만은 이미 선계에 들어가 계십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탄성의 소리가 터저 나왔다. 백리무군은 그들의 소리를
잠재우며 일갈을 하였다.
"이미 각대문파들은 모든 출진준비를 갖추엇소이다."
"반혈맹주 너무 급한게 아니오. 상대는 삼혈맹이오. 게다가 각대 문파가
이미 출진준비를 갖추었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소."
군웅중에 한명이 일어나 그런 소리를 하자 상석에 앉아 있던 혜명대사가
나직히 합장을 하며 말을 하였다.
"아미타불. 본파를 비롯하며 몇몇 문파는 이미 오래전에 대덕기와 덕조령
을 받았소이다. 여기 계신 분들의 대부분이 이 두 개의 물건이 무엇인지
모를껍니다. 이 두 개의 신물은 무림에 큰 복을 베푸신 두분을 기리기 위
해서 만든 것으로 무림이 혼란할 때 이 기가 출현하면 각파에서는 한번씩
명을 받들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말에 몇몇의 중인들은 헛바람을 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수
이상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명이 벌떡일어
나 소리쳐 외쳤다.
"그럼 그 기의 주인이 우리를 호령하여 삼혈맹과 맛선다는 것이오. 아님
백리가주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오?"
그말에 백리무군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누가 누구를 호령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외다. 삼혈맹이라는 무
림악도들을 힘모아 토벌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대덕기와 덕조령
의 대리인으로 나온 것이지 백리가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령은
이번 토벌전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후에도 이
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청성파의 장문인인 사일검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하였다.
"이미 소림과 무당 화산 아미 점창을 위시해서 본파. 그리고 개방.사천당
가. 백리세가. 남궁세가가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온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중인들게 알리지 않은 것은 저들이 눈치를 채고 대비를 할까 두려웠기 때
문이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게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니오. 우리는 내일
새벽에 출진을 할 것이오. 그뒤를 따르건 따르지 않건 그것은 여러분들의
자유요. 나는 제자들에게 사마외도를 토벌하는 자리에 당당히 섯다고 말을
할 수 있어서 기쁘오. 또한 삼혈맹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급거 백리세가를
섬멸하였었소. 그들은 백리세가가 무너지면 반혈맹주께서 그모습을 드러
내리라 믿었던 것이오. 만약 그때 맹주께서 분기를 참지 못하고 모습을 드
러냈다면 강호는 이미 피바다가 되었을 것이오. 그랬다면 지금쯤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삼혈맹과 기나긴 혈전을 벌여야 했을 것이오. 그러나 반혈맹
주께서는 대의를 위해 분루를 삼키며 오늘을 기다려 오셧소. 내가 반혈맹
주를 따라 나서는 것은 그 의기에 감탄했기 때문이오. 그것 뿐이오."
그말에 중인들은 침음성을 삼켰다. 대세는 이미 정해진 뒤였다. 따르느냐
마느냐의 선택만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때 누가 말을 하였다.
"그 두 성물의 진정한 주인들께서는 어디에 계시오? 그분들도 이번 싸움에
참전하시는 것이오?"
///////
주)결혼식 장면은 성호달님께서 보내주신 자료를 그대로 베낀것입니다. 성
호달님께 다시 한번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컴이 제정
신이 아니었습니다. 컴도 저를 닮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엉망이된 글을 올
리려니까 정말 낮이 뜨거워 집니다. 몇분께서 보내주신 비판의 말씀은 금
과옥조로 새기겠습니다. 청룡장의 삼부 한상귀편 다음부터는 영 엉망이지
요. 압니다. 그러나 엉망이되어도 계속 올려보겠습니다. 다 망가지고 나면
새로 다시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쓸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