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죽. 그는 웃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웃어보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이내
눈살을 찌뿌렸다. 햇살이 너무도 눈이 부셧기 때문이었다. 슥슥 그는 옷감
이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새옷감이라서 그런지 빳빳한 느낌이 들었다. 좋
았다. 자유라는 것. 그것도 십년 만의 자유라는 것. 그의 옆을 지나가는
여인들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여자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던 그였
다. 그러나 십년간 갇혀 살면서 그는 여자가 그리워 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여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들을 빨리 만나야 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그들. 그들을 만나면 그
는 너무 끼쁠 것 같았다. 아니 지금도 기쁨에 넘쳐나고 있었다.
스윽.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소이가 얼른 달려나와 방글방글
웃으며 뭐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그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점소
이를 밀치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몇 명이 앉아있엇다. 그들은 이
층으로 올라오는 그를 주시했다. 그리고 눈살을 찌뿌렸다. 점소이가와서
뭐라고 하는 것 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점소이를 한손으로
밀쳤다. 점소이는 일층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그들을 보며 씨익웃었다.
그순간 그들은 뭐가 잘못 ㄷ다는 것을 느끼고 병장기를 빼들었다.
"누구냐?"
그는 히죽 웃었다. 옷이 맞지 않는지 소매와 옷자락을 잡아 늘어 뜰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탁자주위에 있는 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
다. 그들은 각기 병장기를 빼든채 그를 예의주시했다. 창백한 얼굴에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리며 일행중 몇 명을 쓸어 보며 말을 하였다.
"너희들 사부는 아직 안죽었겠지?."
그말에 일행중 다섯이 눈을 부릅떳다. 그들은 창백한 안색의 중년인을 바
라 보았다. 태행오호(太行五虎). 태행산일대에서 산채를 가지고 장사를 하
던 이들이었다. 나름대로 실력과 명성이 있는 이들이었으나 몇 년전 산채
를 접고 사냥꾼으로 전업을 한 자들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을 토벌하던 관
부에 빌붙어 살고 잇다는 것은 모순된 일이었다. 그러나 관부에서는 그런
걸 따질만큼 인력이 많지 않았다. 강호의 이름있는 고수들은 건문회의 소
탕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군부의 무장들을
대거 빼내서 이런 임무를 맏길수도 없었다. 정난지변이 성공한지 이제 겨
우 이년 아직 정국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태행오호는 고개를 갸웃했
다.
"누구냐?"
태행일호가 소리를 쳤다. 그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빳빳한 자기 옷을 문
디겼다.
"내옷 너무 하얗지."
그말에 태행일호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괴성을 질렀다.
"도망쳐"
태행일호의 괴성에 사호는 눈을 껌뻑였다. 그러나 일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사호도 그를 따라서 신영을 날렸다. 남
은 세명은 창백한 안색의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안색의 중년인은
세명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세명은 그가 달겨들자 각
기 병장기를 빼들며 대항을 했다. 하지만 느렸다. 그의 손에서 나온 두자
루 단도. 단도라기에는 좀 이상한 형태였다. 손잡이 부분은 폭이 넒은데
반해서 반월모양으로 급격히 좁아지는 날을 하고 있었다. 그런 단도 두 개
를 양손에 거꾸로 쥐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기형도의 등은 그의 팔꿈치에서
한뼘 정도 더 나왔다. 그 두 개의 단도의 끝이 한 명의 목젓에 닿고 있었
다. 방울방울 목젓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그 피는 단도를 타고 내려가 그
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좌우의 두명은 목언저리에 피를 뿜으
며 쓰러졌다. 그는 씨익 웃었다.
"잔인하게 더욱 잔인하게. 하하하 하하하"
그는 광소를 지르며 단도를 교차했다. 그리고 태행오호가 도주한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
"혈의천작은 그쪽에서 푼 모양입니다. 그자는 태행오호의 사부로 알려진
태행일독종과 원한이 있습니다. 그쪽도 그걸 알고 "
"다른 사냥꾼들은?"
"그자가 그들을 잡고 태행오호의 행방을 대라고 잔인한 짖을 한 모양입니
다. 모두들 겁을 집어 먹었습니다. 몇 명이 그와 상대하겠다고 나섯지만
시체로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그쪽을 감시하던 자들도 모두 제거 되었습니
다. 나머지는 소주에서 모두 벗어나 있습니다."
"금의위는?"
"혈의천작을 잡아 죽이겠다고 난리입니다."
"쿡. 그렇게 쉬운 상대라면 그쪽에서 풀었을리가없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자를 잡아 죽이기는 쉽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조직이 들어난다. 아직
은 때가 아니지."
"그럼"
"처음부터 쉽게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쪽은 삼혈맹
의 일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야 하니까 이번엔 이 정도에서 끝내
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
양대호는 청룡장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장의 고수들과 환담도 나누도 소주
일대의 명소들을 돌아 다니기도 하였다. 이설군과 소천 단청운도 대부분
함께 돌아 다녔다. 그리고 말괄량이 기질이 있는 단소혜 때문에 네명이 골
탕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서야 양대호는 청룡장의 조
직력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강동 그 자체가 청룡장이라는 이설군
의 말을 조금씩 체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름을 같이 놀고서 이설군과
양대호는 소천과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양대호는 남궁세가의 결혼식에 참
가하기 전에 본파에 들렀다 갈 생각이었고, 이설군도 그런 양대호를 따라
형산을 구경하겠다며 길을 떠났다.
단소혜가 그 둘을 따라 가겠다고 어거지를 쓰고 장밖으로 내뺄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를 해서 자신의 방문을 닫아 걸고 며칠째 나오지 않았다.
///////////////////////////////
동방후는 서찰을 만지작 거렸다. 푸른 배첩에 주사로 글씨가 씌어져 있었
다. 그것은 청룡장의 일반 명령서였다.
"정찰 임무를 영파분타에 일임하라고, 후우 걱정이군. 분타병력으로 할 일
이 아닌데..."
동방후는 혼자 주절거리고 명령서를 접어서 화로에 집어 넣었다. 명령서는
순시간에 타올라서 재만 허공에 띄워보냈다. 그리고 청색두건을 쓰고 밖으
로 나갔다. 지금은 각대의 전술 훈련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감독관으
로 그들의 움직임을 살필 의무가 있었다. 몸을 일으키던 그는 한쪽에 놓인
해도를 집어 들었다. 정찰은 영파분타에서 한다고 하더라도 전투는 자신들
이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붉은 홍첩에는 청룡장 소공 친전이라는 글자가 씌여 있었다. 그리고 뒷편
에는 개봉 백리세가에서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소천은 뛰는 가슴을 누
르며 그 홍첩을 열어 서찰을 펼치자 여인의 지분내음과 간결한 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서찰에는 간략한 글귀들이 씌어 있었다. 소천은 서찰을 천
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또 읽고 다시 일고 몇번을 되씹어 읽어 보았
다. 소천은 서찰을 내려놓고 잠시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두
덩이는 뜨겁게 달구어 지더니 두줄기 눈물을 흘려 내려보냈다.
그 물줄기는 양볼마저 붉게 달구며 소천의 가슴 어름을 적시며 떨어져 내
렸다. 소천은 눈을 깜빡였다. 눈이 콕콕쑤시는 것 같이 아파왔다. 소천은
홍첩을 들어 올렸다. 화르륵 홍첩은 파아란 연기를 내며 타 올랐다. 소천
은 손위에서 타오르는 홍첩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었지 않느냐'
백리소소를 처음 본 것은 양주에서였다. 그때 처음 본 그녀는 가련한 여인
일 뿐이었다. 양주에서의 잠깐의 만남. 거기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만
남이었다. 단지 무언가 도와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
개봉부에서만났을 때 그녀는 성숙한 여인으로 보였다. 그리고 난생 처음
여인에게 받은 선물. 그때 소천은 가슴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
러나 그녀는 오래전에 정혼을 한 남자가 있었다. 그래서 소천은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지 못했었다. 그리고 산서 대회전 이후 개봉을 지날 때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소천은 그곳에서 그녀를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이미 남궁세가에서 곧 혼인식을 올린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곳에 가서 그녀를 보는 것이 그녀를 위한 일
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러나 이렇게 배첩을 받고 보니 마음
이 편하지 않았다. 결혼식은 구월구일 중양절 날이었다. 중양절은 중국의
명절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절의 하나였다. 소천은 달수를 계산해 보았다.
이제 삼개월 가량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사이에 모든 준비를 마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 일것이었다. 이번 결혼식은 단순한 결혼식만 치룰 것이
아님을 소천도 알고 있었다. 이번 결혼식은 바로 정사대전의 서막을 알리
는 행사가 될 것이었다. 소림을 통해서 온 반혈맹의 서찰에서도, 삼혈맹이
극비에 보낸동맹서의 내용에서도 남궁세가의 결혼식이 중요한 전환점입을
언급하고 있었다. 소천은 눈을 내리 감았다.
'결혼식날 혈전이 벌어 진다면 어쩌면 그가 죽을 수도.......'
그런 생각을 하던 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된다면 백리소소는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소천은 재마저 흩어져 버린 홍첩의
잔재들을 보고 소매를 떨구었다. 작은 바람에 그 재마져도 날아가 버렸다.
소천은 창밖을 보며 눈가에 묻어 있는 눈물을 닦아 내었다.
"비라도 왔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날이 너무 맑군"
/////////////////
사각사각 작은 소도가 어른 머리통만한 통나무를 깍고 있었다. 그 옆에서
는 한명의 청년이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청년은 바로 육능풍이
었고 소도로 통나무를 조각하는 노인은 육정산이었다. 그 둘은 호법전 한
쪽에 있는 그늘에 앉아있었다. 저쪽에서 두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양볼이
어린애처럼 통통하고 붉은 천일정과 단소혜였다. 단소혜는 입술에서 무언
가를 오물거리며 말을 하였다.
"음 그럼 강호에서 가장 독을 잘쓰는 사람은 누구에요?"
천일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독이라면 우선 사천당가를 들 수가 있지. 그외에도 묘강의 천독문이 있
고, 그리고 독을 주무기로 하는 문파들이 여럿이 있지. 그러나 그들의 위
에 우뚝선 이름이 하나 있단다."
"그가 누구인데요?"
"무림삼왕이라고 아느냐?"
"네. 창왕 언무외. 귀왕 허약무. 그리고 독왕 역상 아닌가요?"
천일정은 고개를 끄떡였다.
"독왕 역상이 천하제일독공고수에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독왕 역상은 모르는 독이 없겠네요?"
그말에 천일정은 눈을 살짝 찌뿌렸다. 그리고 잠시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손뼉을 치며 말을 하였다.
"태상장주님의 무공은 매우 뛰어나지. 모두들 그분을 천하제일고수라고 여
기고 있단다."
"사조님은 천하제일고수세요. 아빠가 그랬는걸요."
천일정은 빙그래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그분이 천하의 모든 무학을 다 아실까?"
그말에 단소혜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 아실 필요가 있나요? 무학의 뜿을 얻으면 된다구 하던데..."
단소혜는 혀를 낼름거리며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독의 세계도 그와 마찬가지일꺼다. 천독문의 비전은 사천당가가 해독하기
힘들고, 사천당가의 비전도 천독문이 해독하기 힘든 법이란다."
"그럼 해독할 수 있다는 말이네요?"
"흠. 그렇겠지. 예를 든다면 음 나는 청룡장의 권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흉
내는 낼수가 있는 거지. 이렇게 말이다."
천일정은 손을 펼쳐서 파왕권을 펼쳐 보였다. 소매에서 이는 권풍이 단소
혜의 땀을 날려 버렸다. 파파팍 권은 각을 이루며 펼쳐졌다. 발은 권법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아갔다.
"와아아 서사숙보다 더 멋지게 펼치는데요."
천일정은 반로의 초식을 펼치고 빙그래 웃으며 옷을 털며 섯다.
"걷으로는 멋있게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무런 위력이 없단다. 그것은
내가 심법을 모르기 때문이지. 이렇게 펼치는 것이야 외공의 힘밖에 더 싣
겠느냐. 중요한 것은 내공의 운용에 따른 힘의 결집과 폭발이지. 일반 고
수는 그 형은 한번보고 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공의 운용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형대로 펼쳐봤자 아무런 위력이 법이란다."
"아하 요는 독도 고수급에서는 어떤건지 겉모습은 흉내는 내지만 그 위력
과 해독은 하지 못한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러나 일가를 이루게되면 독의 뜿을 알게 되고,그럼 만독의 해독도 가
능하다는 거군요."
천일정은 더뭐라고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할 능력이 되지 못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바를 설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
다. 그러다 이내 입을 열었다.
"글세다.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같은 재료의 독이라도 그 배합에 따라서
독성이 천지차이로 틀려진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해독의 방법도 달라지
고, 그래서 강호인들은 여간해서는 독을 다루는 이들과 원한을 가지지 않
으려고 하는 법이란다."
"우와 그렇게 독이 좋으면 왜 독공고수들이 적죠"
"흠 그것은 외물이기 때문이지"
"외물요?"
"그래. 외물. 즉 자기 신체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작용도 심하
지. 게다가 독에 의지하게 되어 자기의 발전이 뒷걸음질치기 일수고,"
"하지만 독의 대가가 된다면 천하무적의 고수가 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독은 어디까지나 외물이다. 휴 내 지식이 짦아 설명이 제
데로 될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장주님께 여쭈어 보거라"
"피. 아빠는 요즘 무슨 일이 많은지 바빠요. 서사숙도 그렇고. 그보다 하
북의 생활은 어때요?"
단소혜는 요즘 천일정에게서 강호의 각종 기사기담들을 듣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천일정은 후계자 감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안돌아 다녀본 곳
이 없었다. 게다기 일인문파였기 때문에 걸리적 거릴것도 없었다. 그래서
각종 지역의 특색이나 전설 그리고 그 지역의 고수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장안에만 있는 단소혜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
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강호에 나가면 뭇 군웅들을 한번 호령해 보겠다
고 큰소리를 땅땅쳤다. 그말에 천일정은 실소로 답하면서 걸어오고 있었
다. 단소혜는 호법전 앞에 서서 문을 바라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무슨일 있어요?"
단소혜는 육능풍을 바라보았다. 육능풍은 단소혜의 얼굴을 보고 눈을 여기
저로 옮기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육정산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소공자께서는 지금 연공중이시라네"
"연공요? 오빠가요?"
소혜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 십수년간 소천을 보아왔지만 자기 전각에서
문을 닫아걸고 연공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때는 연무장에서 남
들과 같이 비지땀을 흘리며 무공을 연마했다. 그러다 어느날 부터인가 산
속에 들어가서 몇 달씩 나오지 않거나 갑자기 태호에 가서 멍청히 태호만
보다고 온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자 소천은 그런 식으로 연공을
한다고 모두들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연공실이나 자기 처소를 닫고
연공하는 일은 소천에게는 안어울리는 방법이 되어 있었다.
단소혜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고리를 잡아갔다. 그러자 육정산이 소도를 튕
기었다. 단소혜는 곡지혈을 노리고 날아드는 것을 보고 입술을 삐쭉 내밀
며 손을 뒤집어 튕기었다. 그러나 한손은 여전히 문고리를 잡아갔다. 팅
육정산이 튕긴 나무조각과 소혜의 손가락이 부딧쳤다. 그러자 소혜는 가벼
운 충격을 받으며 한걸음 물러났다. 소혜는 입술을 삐죽내밀며 안을 보고
소리쳤다.
"오빠 뭐해. 나야 들어가도 되지"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소혜는 양손을 들어 다시 문고리
를 잡아갔다. 그리고 눈으로는 육정산을 바라보았다. 육정산은 조각에만
열중할뿐 더 이상 소혜를 제지하지 않았다. 확 문이 열리자 한 장의 천이
문을 가리며 날아왔다. 소혜는 그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천은 사방
몇장은 됨직한 비단천이었다. 그 천이 넒게 퍼진채 하나의 구김살 없이 자
신을 향해서 날아 오고 있는 것이었다.
"오빠 난 몰라"
소혜는 그렇게 말하고 허리에서 연검을 뽑아 천을 갈라갔다. 그러자 천이
살아 있는 물건처럼 좌우로 접히기 시작했다. 그 천은 검날을 감사고 소혜
의 몸을 감싸았다. 소혜는 눈앞에 오직 천만 보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천은 소혜의 전신을 감싸고 소혜의 몸을 뒤로 밀어내었다. 소혜의 몸은
천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다. 천으로 뒤덥한 아래로 나운 두 발이 마구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천일정은 그것을 보고 다시 안을 들여다 보았다.
문이 닫히는 사이 잠깐동안 안이 보였다. 천일정 정도의 고수라면 그 잠깐
사이 안에 누가 어디에 있고 무엇이 있는지 알아 낼 수 있었다.
천일정은 문이 닫히자 웃으며 몸을 돌려서 저만치 내려서는 소혜를 바라보
았다. 그러다 얼굴을 쌔빨갛게 물들이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가
본 것을 믿지 못하는 눈으로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문고리를 잡아가자 육
정산이 나직한 기침을 터뜨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
다.
"오빠 이러기야. 내옷이 다 망가졌쟎아."
소혜는 자신을 감쌓았던 천을 헤집으며 쌔끈쌔근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문앞에 서서 문고리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팩 돌려서 총총걸음으로 뛰
어갔다. 그러다가 전각쪽을 보고 소리를 쳤다.
"아빠가 오빠보구 청운오빠에게 심법을 전해주랬어. 난 말했으니까 알아서
해"
천일정은 육정산의 뒤를 잠시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둘이 가자 육정산이 말을 하였다.
"그만 나오거라"
그말에 전각 뒷부분에서 한명의 시녀가 나왔다. 육정산이 고개를 끄떡이자
시녀는 문을 열고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육정산은 변함없이 조각
을 하고 있었고 육능풍은 그 조각하는 소도를 보고 있었다.
"나무에는 결이라는 게 있다. 그 결이라는 것은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지.
그러나 사람이 가장 쉽게 발견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나무이다. 그래서
우리 육가에서는 이 목각조각법을 중시 여긴다."
"바람에도 결이 있습니까.?"
"그렇다. 바람에도 결이 있다. 그러나 그 결을 집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헌데 그것은 왜 묻드냐?"
"총호법님께서 눈발을 갈랐다는 말을 듣고 바람에도 결이 있는지 의심이
갔었습니다."
"허허허 좋은 자세다. 이 청룡장에는 강호의 고수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의
무공을 보고 느끼다보면 배우는 바가 많을 것이다. 늘 그런 자세를 유지하
도록 해라."
"할아버지"
"응"
육정산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본가의 도법으로 청룡장의 검법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육능풍의 말에 육정산은 소도를 거두며 말을 하였다.
"네게는 그게 걱정인 모양이구나. 무학의 도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것
이다. 산을 오르는 데는 많은 길이 있는 법이다. 지금 네가 보는 청룡장의
고수들은 그 산을 많이 오른 사람들이다. 그리고 너는 아직 밑에서 헤메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본가의 도법도 상승의
무학을 근저로 삼는다. 따라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면 청룡장의 검법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네게 중요한 것은 상승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잊지말거라."
육정산을 그렇게 말을 하고 소도를 품안에 넣었다. 그리고 아직 미완의 조
각상을 손으로 비볐다. 그러자 조각상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가 새기
고 있던 조각상은 먼저 떠나버린 아들의 얼굴이 반쯤 새겨져 있었기 때문
이었다.
////////////////////////////////
스윽 햐얀 천이 붉은 륜을 타고 흘러 내렸다. 륜은 햇살을 받아서 매우 반
짝이고 있었다. 그 륜에는 한명의 사람모습이 투영이 되었다. 붉은 혈포를
입고 있는 중년인이 그 안에 있었다. 그 중년인의 오른쪽 뺨에는 검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적천마군이었다. 적천마군은 쌍륜을 등에
차고 건량을 꺼내서 씹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에는 적혈마군과 지옥마군
악인마군이 각기 방위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들도 자신들의 병장기를 닦
고서 건량을 하나씩 먹고 있었다. 적천마군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
다.
"좀 늦는군"
"원래 중들은 걸음이 빠른데 이번에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중녀석이 있나
봅니다."
지옥마군이 그렇게 말을 하자 모두들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내 얼굴을
굳혔다. 적천마군은 목을 좌우로 틀었다. 우드득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
다.
"이번에 오는 중들은 목이 좀 질길꺼야."
그말에 나머지 삼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떡였다.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중들은 보통 중들이 아니었다. 소림사에서도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소
림호법승들이었다. 그들이 이번에 혈마를 상대 하기 위해서 장문인의 명으
로 하산했다는 첩보가 삼혈맹에 긴급히 접수가 되었다. 그리고 확인작업을
거친 결과 소림호법승들이 하산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에
삼혈맹에서는 사대마군을 보내 그들을 상대 하게 했다. 적천마군은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정찰조에서 연락이 있어야 정상이었
다. 그러나 하늘은 푸르를 뿐이었다.
'어떻게 할까?'
'제압하기 쉽지 않겠는데'
'음 강호에는 강자들이 끊임없이 생긴다더니 지난 삼십여년간 고수들이 많
이 생긴 모양이야'
'돌아가지. 여기서 우리의 종적을 드러 낼 수는 없쟎아'
'그럴까'
'그게 좋겠군'
'헌데 우리의 종적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건 차차 알게 되겠지'
사사삭 옷깃에 스쳐지는 나뭇잎의 놀라는 소리는 바람속에 묻혀가고 그들
의 모습은 나무들 사이에서 사라졌다. 사대마군은 묵묵히 방위를 정한채
호법승들이 나타 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사대마군이 자리를 잡은 곳을
돌아서 길을 가던 소림호법승들은 공력을 더욱 끌어 올렸다. 길을 돌아 가
는 만큼 시간을 지체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사인중에 한
명이 어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어 섯다. 그가 멈추어 섬과 동시에 다른 사
인도 멈추었다. 먼저 멈춘 이와 나중에 멈춘 삼인간에는 시간적인 괴리가
있었지만 모두들 한꺼번에 멈춘 듯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니 잠시 늘어 났던 고무줄이 원래대로 돌아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삼인은 한명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도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
다. 사인은 이동을 할 때 서로 방위를 정해 놓고 그곳을 살피며 이동을 해
왔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다른 삼인도 알고 있었고
그가 멈춘 일이라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제법 큰 바위가 있었다. 산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큼지막한
바위였는데 윗부분은 사람 모양으로 돌출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
은 유난히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인은 공력을 돋구었다. 그러자 그 돌출된 부위가 바위의 일부분이 아니
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붉은 옷과 붉은 얼굴
그리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붉은 머리카락. 사인은 자신도 모르게 주
춤 물러났다. 그리고 네명이 동시에 외쳤다. 그래서 한사람의 소리처럼 들
렸다.
"혈------------ 마"
혈마의 신영이 점점 커지면서 해가 뒤로 숨었다. 그러자 혈마의 그림자가
산과 계곡을 다 뒤덥었다. 사인의 모습도 혈마의 그림자에 잠기었다. 혈마
의 신영이 떠올려지고 그의 양팔이 새의 날개처럼 펼쳤다. 그리고 활강을
하듯이 바람을 타고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사인은 고개를 들어 올려 혈마
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혈마의 모습은 점점 더 커져서 온 하늘을 뒤덥는
것 같아 보였다. 아니 사인은 혈마의 모습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타핫"
네명은 땅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그들의 품에서 각기 도와 선장과 염주와
비파가 나왔다. 디디딩 맨처음으로 비파가 탄주가 되었다. 그때 혈마의 오
른 손이 가슴께로 모아지면서 그의 몸이 오른쪽으로 빙글 돌기 시작했다.
디디딩 비파의 탄주음은 점점 더 격해져갔다. 그와 함께 백팔개의 염주가
허공에 연꽃을 수놓으며 혈마를 향해서 날아갔다. 혈마의 왼손도 가슴께로
모아지면서 그의 몸은 더욱 빨리 회전을 하였다. 수수숙 염주들은 혈마의
몸안으로 빨리듯이들어갔다. 아니 들어간 것이 아니라 혈마의 몸주위를
흐르는 경력에 휘말려 그의 몸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혈마의 어깨가 떨
리자 염주들이 다시 사인에게 날아갔다.
"이야합"
염주를 날렸던 인물이 소매를 떨구며 날아오는 염주들을 잡아갔다. 그리고
그의 몸위로 도와 선장을 든 두명이 솟구쳐 오르며 혈마를 공격해갔다. 후
발선도의 수법으로 염주를 잡아가는 이보다 늦게 모습을 보였지만 그들은
염주를 뛰어 넘어 혈마를 공격해들어갔다. 파악 혈마의 양손이 펼쳐지며
붉은 혈포사이로 핏물에서 방금 꺼낸듯한 손이 나왔다. 따당 손과 도와 선
장이 부딧치면서 격렬한 쇳소리를 내었다. 팅팅 도와 선장이 뒤로 튕겨졌
다. 그와 함께 두명도 같이 뒤로 튕겨졌다. 그때 비파를 든 이가 비파의
목을 잡아 뽑았았다. 촤아아 햇살이 부서지면서 한자루 장검이 토해져 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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