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우백은 서찰을 접고 무릅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운룡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사제 집히는게 없는가?"
마운룡은 눈을 내리감았다. 그리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형 설마? 태산의................."
봄기운이 완연한 태산의 한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무덤은 저멀리 동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잔디들이 작은 무덤을 뒤덥고 있었다. 그앞
에는 십여송이의 봄꽃들이 방긋 웃고 있었다. 꽃들은 그림자가 지자 햇살
을 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무덤 앞에는 세대의 향이 타오르
기 시작했다. 원래 중원에서 향을 피울때는 짝수로 피우는 것이 법도에 맞
았다. 그래서 중원에서는 향을 네 개를 피워올렸다. 이렇게 세대를 피워
올리는 것은 동방의 예법이었다.
"부인. 나도 이제 갈때가 되었나 보오. 허허허 자꾸 부인이 그리워 지는
것을 보면 말이오."
"무명이가 컸다면 지금쯤 손주 녀석들을 내 품에 안겨 주엇을텐데.... 무
명이는 당신 품안에 아직도 잠들고 있겠구료 허허허"
"쌍덕 그 친구들이 다시 세상에 나올 것 같소. 어지간히 끈질긴 친구들이
오. 세상사에는 이제 손을 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백아 녀석
은 야망이 커서 강호를 등지지 않을 것이오. 그 아이들의 능력으로는 쌍덕
을 상대하지 못하니 어쩌겠소. 나라도 나서야지"
향은 위로 타오르며 작고 가는 선들을 그려 내었다.
"부인 나를 질책하는 거요. 제자들의 핑계를 대서 부인과의 약속을 저버린
다고 말이오. 허허허 미안하구료 부인. 원수를 갚지 말라던 부인의 말은
내 안위를 위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이제 나도 살만
큼 살았으니 더 살아서 무엇 하겠소."
하나의 손이 무덤의 잔디들을 쓰다듬었다.
"울지 마시오. 곧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오. 그럼 당신이 가보고
싶어 했던 내 고향에 같이 갈 수 있을 것이오. 나도 이제는 고향 기억이
나지 않는 구료. 가도 나를 알아볼 사람 하나 없지만 그래도 그리워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구료. 잠시만 더 혼자 계시구료. 곧 찾아 가리
다."
그는 몸을 일으켜서 산을 내려갔다. 다시 햇살을 받은 꽃잎들이 활짝 날개
를 펴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무덤 앞에 있는 목패를 향기로 젖게 만들었
다. 목패에는 몇자의 글자가 음각이 되어있었다.
<애처 한씨, 백무명지묘. 무부(無夫) 백오 읍립>
단우백은 서찰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그래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단우
백은 그래도 믿지 못해서 극비리에 서찰에 대한 갖은 조사를 다 해보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우백은 약간 헬쓱해진 안색으로 서찰을 접
어서 품안에 간직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마운룡은 눈을 감은채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서왕은 두 주먹을 불끈쥔채 탁자위에
올려 놓고 눈 을 빛내고 있었다. 소천은 약간 굳은 얼굴로 단우백을 바라
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 소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사형 어떻게 하실 껍니까."
"우선은 쌍덕이 어떤 자들인지 알아 봐야 겠지"
"사부님의 말씀대로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게 어떻겠습니까."
서왕의 말에 단우백은 고개를 저었다.
"세력전에서는 한번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끝장이다. 쌍덕이 어떤 자
들인지는 몰라도 백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자들이라면 더욱 더
물러서서는 안되는 법이야. 우리가 여기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면 강동
의 문파들도 우리에게 칼을 들이 댈걸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쌍덕의
존재가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지."
"그럼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그말에 단우백은 반문을 하듯이 말을 하였다.
"그럼 사부님의 적을 사부님 혼자서 처리하게 놔두어야 하는가? 기라성 같
은 제자가 넷이 있고 수천의 무사가 있는데... 정 안되면 민단이라도 움직
이는 수밖에"
단우백의 말에 소천과 서왕은 약간 어두운 얼굴을 했다. 소천이 조심스럽
게 말문을 열었다.
"쌍덕이 사부님과 원한관계가 있다면 저희들도 당연히 나서서 싸워야 합니
다. 그러나 단독으로 쌍덕과 맛선다는 것도 힘들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런 우려의 말씀을 남기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벅찬상대라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쪽과 거래를..."
소천은 말끝을 흐리며 단우백을 바라보았다. 단우백은 소천의 말뜻을 알지
못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소천이 입을 약간 오무리자 단우백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라도 해야 겠지. 어쨌든 쌍덕이 모습을 드러내면 사부님께서도 귀
환을 하실 것이네. 그렇다면 쌍덕이 아니라 천하가 달려든다고 해도 겁날
것이 없지. 문상께서 그들의 존재를 추적하기 시작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네. 아무런 걱정을 할 것이 없네."
단우백은 그렇게 말을 하고 한쪽 손으로 머리를 받혀 들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풀어 줄겸 해서 태양혈을 엄지손가락으로 지긋이 누른 뒤 돌려 주
었다. 머리가 시원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더 힘이 드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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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어둠을 가르며 쳐져 있었다. 그 발의 좌우에는 두개의 의자가 서로
마주보게 놓여져 있었다. 오른쪽 의자는 비어 잇었고 왼쪽 의자에는 한명
의 청수한 유생이 앉아 있었다. 착 섭선을 접어서 무릅위에 올려 놓았다.
약간 창백한 안색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바로 혈유였다. 혈유는 발을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청룡장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
"우리의 뜻을 따르겠답니다."
"......"
"청룡노야의 행적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으음 그런가."
안에서 약간 놀라는 듯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소리가 나오자 혈유는
약간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의 무능 때문입니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혈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앉은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안에서 소리가 나왔다.
"계속하게"
"백도는 남궁세가로 집결을 할 껍니다. 이미 각 문파에 배첩들이 돌려졌습
니다. 명목은 남궁현과 백리소소의 결혼식 하객들로 꾸며질 껍니다."
"형산파가 아니라 남궁세가인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남궁세가와 당가의 배후에 그둘이 있는 것 같습니
다."
"그 둘은 전 백도의 배후에 있다. 그것을 간과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역에서 온 보고에 따르면 내년이 오기 전에 티무르
가 출병을 할 꺼라는 소식입니다. 아직 반혈맹과 쌍덕 북령채 그리고 티무
르제국과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그쪽 지역 병력을
철 수 시켰습니다."
"......."
"그 전쟁이 터지기 전에 백도와 우리의 싸움을 붙이는 것을 보면 쌍덕도
어떤 식으로든지 그들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북령채건도 그들
의 자작극이 었습니다."
"혈유"
"넷"
"아무리 가지가 많은 나무라고 하더라도 그 뿌리를 자르면 가지들은 자연
적으로 지기 마련이다."
"알겠습니다."
"청룡장이 백도의 구심으로 부상하면 쌍덕은 더 이상 참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때까지 우리는 기다린다. 길어야 일 이년이다. 그리
고 셋째에게 다시 한번 그 일을 주지 시켜라."
"알겠습니다. 대맹주"
집들은 깨끗했고 거리는 넒었다. 그리고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강남
의 사월은 강북의 여름과도 같았다. 여인들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서도
이마에 땀을 닦고 있었고 사내들은 무릅아래까지 내려오는 반바지에 웃통
을 벗고 수건 하나만 달랑 어깨에 걸친채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아
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일남일녀가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시장에는 온갓 물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잇었다. 중원각지
에서 나오는 토산품들과 멀리 세외에서 온 신기한 물건들까지 널려 있었
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하였다.
"이상하군요."
"뭐가요?"
그옆에서 같이 걷는 여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하였다. 그 여인은 눈 아
래는 면사로 가리고 있어서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콧잔
등 위로 드러난 두 눈과 눈섭 이마와 얼굴형태만으로도 미녀임을 짐작하게
하였다. 이 여인은 이설군이었고 청년은 양대호였다. 둘은 장강을 타고 내
려와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오월중순에 소주에 도착한 것이었다.
"우리가 강동에 들어선지도 벌써 보름째인데 그동안 청룡장의 무사들은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청룡장이 강동의 패주라고 하는데 내가 보
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아서 이상해서 그럽니다."
"호호호. 그래요?"
이설군은 그렇게 말을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활기차게
웃고 떠들고 물건을 가지고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설군의 눈에는
곳곳에서 자신들을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수레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이들이나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이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던
이들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길을 걷는 이들에서 보였다. 아니 그들 주위
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 두명을 보고 있는 것 같앗다. 이설군은 다시 고개
를 돌려서 양대호를 보며 말을 하였다.
"우리는 청룡장의 안에 들어와 있는 거에요. 강동 그 자체가 바로 청룡장
이죠."
양대호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설군은 눈 웃음을 지으며 한 상점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주인을 보고 물었다.
"저 청룡장을 찾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주인은 그 이설군과 양대호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소이다. 저쪽 길을을 돌아 가면 미곡상이 있소. 그곳에 가서 물어
보면 알려 줄꺼요."
그말에 양대호는 눈을 껌뻑였다. 이설군은 인사를 하고 나와서 양대호를
잡아 끌고 길을 걸었다. 대로를 돌자 커다란 미곡상이 나왔다. 이설군은
그 앞에 앉아 있는 중년인을 보고 물었다.
"청룡장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년인은 눈을 깜빡이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하엿다.
"청룡장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겟소이다."
그말에 양대호는 약간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형산에서 백여리 떨어진 곳
에 사는 사람들도 어떻게 형산파로 가는지 잘알고 있었다. 그런데 강동에
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강동의 패주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
았다. 그때 중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곳을 가리켰다.
"아 저기 마침 청룡장의 무사가 오는 구료."
중년인의 말에 양대호와 이설군은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한명의 청년무
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청의에 백색 피풍의를두르고 있었다. 허리에는 장
검과 단봉이 좌우에 매어져 있었고 머리에는 청색건을 쓰고 있었다. 청색
건의 바로 아래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둘 앞에 서더니 가볍게
읍을 하며 말을 하였다.
"청룡장 소주지단 제 육조장입니다. 두분께서는 저희 장에 무슨 볼 일이
있으십니까?"
이설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저는 이설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형산파의 양대호라고 하오. 소천공자를 찾아 왔소이다."
그말에 육조장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말을 하였다.
"총호법님을 찾아 오셧군요. 본장은 태호 건너편에 있습니다. 배가 준비되
어 있습니다."
육조장은 그렇게 말을 하고 길을 인도했다. 둘은 그를 따라 갔다. 몇 개의
골목을 돌자 소주성내를 흐르는 운하에 도달했다. 소주는 성곳곳으로 운하
가 뚤려져 있어서 배들이 다니고 있었다. 이 운하는 태호와 대운하가 연결
이 되어 있었다. 둘이 간 곳에는 두명의 청의무사가 서 있는 작은 쾌속정
이 있었다. 육조장이 둘을 보고 말을 하였다.
"두분을 장까지 모셔다 드리도록"
"존명"
둘이 읍을 하자 육조장이 타라는 수신호를 했다. 둘이 배위에 올라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배는 네명이 간신히 자리 할 만한 배였다. 슥 뱃 머리
에 푸른 삼각소기가 걸리고 턱 네 개의 노가 들려졌다. 그리고 배는 천천
히 물살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 배 앞에 있던 크고 작은 배들은 좌우로 비
켜서며 길을 열어 주었다. 잠시뒤에 성내 운하를 빠져 나온 배는 태호까지
이어진 운하로 나왔다. 쾌속정은 그때부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촤아아
시원한 바람이 양대호와 이설군의 더위를 날려 버리기 시작했다. 좌우의
폭이 어느 순간 사라지면서 망망대해가 눈앞에 들어왔다. 양대호는 그것을
보고 입을 벌렷다.
"태호군요."
"그런가 봐요"
이설군과 양대호는 서로 경탄성을 터뜨렸다. 양대호는 앞에서 노를 젖는
청의무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는 송글송글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매우 규칙적이었다. 그들 배가 좀더 나아가자 앞에
십여명의 타고 있는 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배에도 푸른 기가 올려져
있었다. 두배는 서로 속력을 줄이더니 잠시뒤에 맞다았다.
"오르시지요."
십여명이 타고 있던 배에서 한명의 무사가 말을 하였다.그러자 둘은 그쪽
배로 올라탔다. 그 둘이 울라타자 작은 소선이 바로 뒤로 빠지고 십여명은
각기 노를 잡고 젖기 시작했다. 파파파 물살이 좌우로 퍼져나가며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배는 물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설군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었
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자신의 코끝위를 스치며 날고 있었다. 양대호도 앞
에서 쏘아지는 거센 바람에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눈에 물방울이 튀어 들
어갔기 때문이었다. 주위로 몇척의 배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보였다.
양대호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태호는 너무 넒었기 때문에 이들이 노를 저
어도 마치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얼굴을 스치는 바람
만이 배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둘이 주위를 둘러보
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을 하였다. 그때
저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배가 가까이 갈수록 육지가 점점 멀어지
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육지가 성큼 성큼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
리고 배는 점점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잠시뒤에 배는 작은 선착장에 닿
았다. 그 선착장에는 두명의 무사가 서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사두마차
가 준비되어 있었다. 척 두 무사가 허리를 숙이며 말을 했다.
"타시지요."
이설군은 미소로 답하며 마차에 올랐다. 양대호는 약간 주저하다가 올랐
다. 마치 뭐에 홀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둘이 타자 두 무사는 각기 마차의
앞과 뒤에 탔다.
"이럇"
하는 소리와 함께 사두마차는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양대호는
창밖으로 스쳐 가는 나무들을 보며 말을 하였다.
"태호가 의외로 좁군요. 소주에서한시진 반 정도만에 반대편 까지 왔으니
까 말이오."
"호호호 태호가 좁은게 아니라 청룡장의 기동력이 그만큼 빠르다는 거에
요."
그말에 양대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설군을 바라보았다.
"청룡장에 대해서 어떻게 그리 잘 아시오?"
그말에 이설군을 살짝 고개를 돌렸다.
"저기봐요"
이설군이 가리킨 곳은 하나의 나즈막한 산이었다. 강북의 산에 비하면 산
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한 곳이었다. 그러나 대평원이 펼쳐져 있는 화남평
야에서는 이정도 높이면 거봉이라고 부를만 했다. 그 산중턱에 산세에 의
해서 포근히 파묻혀 있는 장원이 보였다. 정면에서 보이는 것은 돌담장과
정문뿐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리 큰 장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설
군은 그 장원정면의 주위를 둘러보며 나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아"
"왜 그러시오"
"아 아니에요. 참 멋있는 것 같아요."
그말에 양대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둘은 어느새 정문을 통과하여 예당의
연무장에 도달했다. 마차의 문이 열리자 양대호가 먼저 내려섯다. 정면에
는 예당의 건물이 보였고 좌우에는 긴 회랑이 보였다. 자신이 내려선 곳은
너른 연무장이었지만 조금은 갑갑해 보였다. 그것은 사방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대호는 눈살을 찌뿌렸다.
'어떻게 이렇게 지었담. 우리 형산파의 건물에 비하면 멋이 하나도 없구
나'
이설군도 마차에 내려선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이채가 스
쳐지나갔다. 그때 양대호가 큰 소리를 쳤다.
"소형"
"하하하 양형과 이소저께서 오셧군요."
그 둘 앞에는 어느새 소천이 서 있었다. 소천은 둘을 반갑게 맞이햇다. 이
설군은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 뵙게되었습니다."
"별 말씀을..... 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소천은 둘을 예당의 한쪽에 있는 객빈청으로 안내를 하였다. 이곳은 청룡
장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서 만든 곳이었다. 객빈청은 예당에서 왼쪽에 있
었다. 담장이 따로 되어 있었고 전각 주위에는 화원과 연못과 정자들이 한
데 어우러져서 아늑한 향기를 내었다.
이설군은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소천을 보며 말을
하였다.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군요. 예로부터 소주의 정원이 아름답기로는 중원에
서 첫 손가락으로 꼽힌 이유를 알겠어요."
양대호는 객빈청을 둘러보고는 월동문 저편의 예당건물을 바라보았다. 예
당건물은 다시 보아도 어딘가 꽉 막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소천과
이설군이 앞서 걷고 있었기 때문에 총총히 뒤따라 걸어갔다. 연못가의 정
자에 올라선 삼인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탁자에는 십여가지의 요리와 함
께 술잔이 놓여져 있었다. 소천은 술병을 들어 두 잔에 잔을 채우며 말을
하였다.
"이렇게 멀리 강동까지 찾아와 주시니 정말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강동의 패주라는 청룡장의 성세를 직접와서 보니 놀라울 따름
이에요. 천하에 청룡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곳은 삼혈맹밖에 없을 꺼에
요."
이설군의 말에 소천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천하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있는데 저희들이야 이름이나 낼 수 있겠습
니까."
그때 저쪽에서 한명의 청년이 걸어왔다. 그는 소천을 보자 가볍게 목례를
하며 불렀다.
"소사숙님 동방단주가 호법전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소천은 고개를 끄떡이고 둘을 바라보았다.
"제 사질입니다. 그러나 동생이나 마찬가지죠. 청운아 인사들 드리거라"
단청운은정자에 올라와 가볍게 읍을 하며 말을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단청운이라고 합니다."
"처음뵙겠습니다. 형산파의 양도호입니다."
"호호호 이설군이에요."
세명이 인사를 나누자 소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미있게 놀고 계십시오. 내일은 태호 유람이나 같이 나갑시다."
"예"
이설군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며 눈웃음을 쳤다. 양대호도 예를 취하였
다. 소천은 답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소천이 자리를 떠나자 단청운은
양대호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전에 산서에서 저희들을 많이 도와 주셧다고 들었습니다."
그말에 양대호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이설군은 면사가 가
볍게 흔들렸다.
전각안에 있던 동방후는 소천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했다.
소천은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의 의자에 앉으며 동방후에게 자리를 권했다.
동방후가 앉자 소천은 그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무슨 급한 일인가?"
"거경방의 순찰조에서 온 연락입니다. 남서군도(南西群島: 현 일본 오키나
와 일대)에서 왜구들이 준동을 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 일대를 오가던
밀무역선들 몇척이 이미 당했답니다. 그리고 왜의 영주들 몇 명이 밀려났
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래도 패권 싸움에서 밀려난 영주들이 대거 서진해
오는 모양입니다."
"흠 정찰조는 보내 봤는가? 그보다 대사형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신가?"
"이미 보고가 올라간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청룡단의 이대와 삼
대가 거경방과 연합해서 정찰조를 운영할려고 계획을 짜두었습니다. 그런
데 출진불가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럴 리가. 대사형이나 문상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고?"
"예"
소천은 팔장을 끼었다. 청룡장은 그 탄생이 왜구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
고 있었다. 청룡노야께서 왜구들을 토벌하기 시작하면서 청룡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 장주인 단우백이 삼차 왜구와의 혈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청룡장은 명실상부한 강동 패주로 자리를 잡았다. 그뒤로는 탄탄대
로를 걸어 왔다. 청룡장은 그뒤로 동해의 왜구들이나 해적들의 토벌을 중
시 하였다. 그래서 약간의 기미만 보여도 바로 토벌대를 보내서 소탕을 하
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찰조도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소천은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