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만남(暗中摸索) (21/95)

4. 만남(暗中摸索)

한 장의 검은 첩지가 탁자위에 놓여져 있었다. 햐안 손은 그 첩지를 한참이

나 바라보고 있었다. 

"종남 지단이 무너졌다. 믿을 수 없게도."

"반혈맹의 독자적인 능력으로는 본맹의 이목을 속이고 종남지단까지 이동을 

하기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반혈맹이  종남지단을 발견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그들이 

그런 거대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의 눈을 벗어 날 수가 없었을 것이

다."

어둠속의 그림자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그 고개는 햐안 

손이 바치고 있었다.  그는 붉은 배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작은 세필로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문서번호: 2-219호.

 형    식: 일급 지휘서신

 수    신: 밀은영(密隱營)

 안    건: 맹 내부 지휘조직

 내    용: 역검열(逆檢閱)

 비    고: 삼개월.

 작 성 자: 제 이맹주 혈유>

<문서번호: 3-15호.

 형    식: 특급 요청.

 수    신: 밀은영(密隱營)

 안    건: 창왕 언무외.

 내    용: 정보수집

 비    고: 이개월.

 작 성 자: 제 삼맹주 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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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따사로이 양광을 내비취고 있었다. 그 아래에 작은 연무장에서는 한

명의 소년이 열심히 도법을  연마하고 있었고 그 한쪽에는 백발노인이 앉아

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백발노인이  잠에서 깬 것은 하나의 소리 때문이

었다. 백발노인은 고개를 들어서 자신을 향해서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인영

을 바라보았다. 

쩔그랑 쩔그랑 도집에 매달린 환들이 부딧치면서 경쾨한 소리를 내었다. 구

환도 진명은 활짝 웃었다. 가볍게 읍을 하며 말을 했다. 

"육소협의 도세가 날이 갈수록 정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육능풍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도를 휘두르고 있는 청년을 바

라보았다. 도세가 엄밀하고 하나하나에 힘이 가득차 있었다. 육능풍은 고개

를 저었다. 

"아직 멀었네. 헌데 자네가 왠일인가."

"총호법님께서 잠시 뵙기를  청하셧습니다. 오늘안으로 시간이 나시면 호법

전으로 와주십사하는 부탁입니다."

육정산은 돌연 고개를 획 돌리더니 일갈을 터뜨렸다. 

"녀석아 도에서 힘을 빼라고 몇번이나 말을 했느냐. 진정한 도의 힘은 너의 

팔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너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팔목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공력의  운용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뜻한바 대로 도가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도를 자신의 일부처럼 쓰고자 한

다면 반드시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도를 들고 있다는 생각도 말아야 

한다. 도는 너의 일부이다. 그것을 잊지마라."

"예"

육능풍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진명은 방금 육정산

이 한말이 신검합일의 요체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자신도 알고 있

었다. 아니무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

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신도합일이라는 것

이 말이 쉬워서 신도합일이지 그 경지를 몸으로 실현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

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은 수십년간  도와 함께 살아온 진명 자신도 마찬

가지였다. 진명은 육능풍을 바라보았다. 그또래의 아이들 중에서는, 그리고 

늦게 무공을 시작한 편으로서는 성취가 빠른 편이었다. 아니 놀랍도록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육정산 같은 초고수의 눈에 찰 수는 없는 것이었다. 육정

산은 뒷짐을 지고 걷기 시작했다.  진명은 그가 호법원으로 가고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그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 

양주의 회동 이후 청룡장은 근 한달간 삼혈맹과 사해방의 움직임에 모든 촉

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보망에 들어온 정보들은 삼혈맹

이 다시 청룡장을 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들 뿐이었다. 게다가 

얼마전에는 삼혈맹의 종남지단까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리고 

강소 일대에 포진해 있던  삼혈맹의 주력들이 대거 하남과 산서일대로 이동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청룡장에 내려졌던 비상경계령은 바로 걷

혀졌고 모든 것은 대전 이전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인의당의 고수들은 청룡장

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대부분은 인의당에 남았고 

일부는 떠났다. 그리고  남은 인의당의 고수들은 예전과  같이 놀고 먹는데 

돈을 퍼질러 쓸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의당에 있던 고수 중 두명이 호법으

로 새로이 임명이 되었다. 바로 용권노사 하연적과 단양수 천일정이었다. 

용권노사 하연적은  원래 산서일대 군소문파인  용권문의 문주였다. 그러나 

칠년전 산서일대에서 제법 큰  문파인 흑룡방의 압력에 문파의 기반을 넘겨

주고 강남으로 가솔들을 데리고 온 인물이었다. 하연적이 왜 흑룡방과 일전

도 벌이지 않고  문파의 기반을 넘겨 주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청룡장에서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하연적의 무공수위가 높았고 강호

에 그의 강직한 인품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장강을 넘을 때 청룡장

에서 서왕이 나가 그를 장으로 모셔 왔다. 그때 서왕과 일권을 서로 교환을 

했다고 하는데 그 승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단양수 천일정은 일맥전수되는 단양문의 문주였다. 단양문의 단양수는 양강

수공의 명문으로 강호에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이  파의 단양수는 양기가 

보통 사람보다 몇배는 많아야 제대로 익힐 수 있었기 때문에 제자를 두는데 

한정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의 일맥전수되다 시피 내려왔다. 천

일정은 그래서 전대 문주의  유일한 제자였고 현 단양문의 유일한 생존자였

다. 그는 청룡장에서 그의 제자가 될 자질이 있는 아이들을 찾아 준다는 조

건과 그외에 몇가지 조건으로 영입된  인물이었다. 지난 몇 년동안 몇 명의 

양기가 뛰어난 아이들을 찾아 내었지만 천일정이 퇴짜를 놓았다. 

소천은 의자에 앉아 있는  용권노사와 천일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용권노

사는 백발이  성성한 노구의 몸이었지만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붉고 허리가 

꽃꽃하며 눈은 맑으면서도 섬광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공력이 정

순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천일정은 중키의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양볼은 그가  익힌 단양수 때문에 홍시처럼 붉었다. 그

래서 그의 별명이 홍안동자였으나  이마에 패인 주름은 그의 연륜을 단번에 

말해주고 있었다. 

전각의 문이 열리고 육정산과 진명이 들어섯다. 소천은 일어서서 가볍게 포

권을 취했다.  육정산도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단양수와 용권노사도 예를 

취했다. 네명이 자리에 앉아 소천은 자신의 탁자 위에 있던 서찰을 다시 한

번 내려 보았다. 그리고 사인을 바라보았다. 

"강북에서 일이 벌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말에 사인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들 사인은 강북일대에서 이름

을 날리던 인물들이었다.  물론 육정산은 산동이 본거지  였지만 젊었을 때 

강북일대를 수도 없이 돌아다닌 인물이었다. 이들 사인은 청룡장 내에서 강

북의 지형과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용권노사가 

탐스러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하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까."

"우선 삼혈맹의 종남지단이 무너졌다는 것은 다 아시는 사실일것이고, 삼혈

맹의 고수들이 하남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것도 아실껍니다."

그말에 사인은 약간 얼굴을 굳혔다. 

"그외에도 몇가지 간과 할  수 없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얼마전 장안표국의 

표물과 중원표국의 표물이 한달 간격으로 털렸습니다. 그 두곳의 표물을 턴 

것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여집니다."

그말에사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표국의 표물들이 털리는 것은 종종있는 일

이었다. 물론 중원표국같이 강성한  표국이 털렸다는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

만 중원표국이라고 늘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뭐 이상합니까."

진명은 그렇게 말해놓고 머쓱했는지  어깨를 으쓱했다. 소천은 고개를 끄떡

였다. 

"저도 문상께서 주신 정보만 알고 있습니다. 두 표국의 표사들은 아무도 다

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 일행중에는 잔살마군이라는 자가 끼어 있

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월쌍도객과 금조종을 극성으로 익힌 서역승. 그외에

도 이런 고수들이 십여명이 더 가담했다고 합니다. 지금 화산파의 화산사검

과 중원표국의 국주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말에 중인들은 잠시 침묵에 잠기었다. 

"하대협. 강북에 일월쌍도객과 같은  고수 십여명을 거느릴 만한 조직이 있

습니까. 표물을 털만한 곳으로요."

용권노사 하연적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북에는 거대문파들이 많았다. 하지

만 고수를 십여명씩이나 동원을 해서 표물을 털만한 곳은 없었다. 하연적은 

고개를 저었다. 

"총호법님, 제가 알기로는 그런 문파는 없습니다."

소천은 고개를 끄떡였다. 

"제가 알기로도 그런 문파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강북 일대에 신흥

조직이 꿈틀대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럴리가요. 당금 무림은 삼혈맹과 백도의 싸움으로 신경들이 모두 날카로

워져 있어서 모두들 경계망을  촘촘히 짜두어 어지간한 소문파도 이들의 이

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삼혈맹과 백도와 관련이 없는 곳은 이 기회에 무

럭무럭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녹림이."

하연적은 그렇게 말을 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소천은 하연적을 보며 말

을 했다. 

"강북의 겨울은 어떻습니까. 대병을 움직일 만합니까."

하연적은 고개를 저었다. 

"관도를 이동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산악 이동은 불가능하오. 강북의 겨울은 

이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추위요. 설사 무림의 고수라도 한겨울에 밤

을 며칠동안 지샌다면 진력이 탈진해 죽고 말것이오. 설사 그렇지않다고 하

더라도 큰 병을 앓게 될 정도이오."

"그렇다면 그 일대의 산악지역에  세력을 숨길만한 곳은 없습니까. 남의 눈

에 띄지 않게 말입니다."

하연적은 고개를 끄떡였다.

"얼마든지 있소이다. 실제로  산서와 협서일대의 산악지역에는 수십만 대군

을 감추어 둘만한 곳들이 여러군데  있소이다. 나도 몇군데 보아둔 곳이 있

었소이다."

"이런 한겨울에 그들을 토벌 할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총호법님같은 고수 십여명이 힘을 합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

다."

그말에 모두들 껄걸 웃었다. 소천 정도의 고수는 청룡장에서도 네다섯명 뿐

이었다. 장주인 단우백과 청룡헌에 은거해 있는 마운룡 그리고 서왕 육정산 

정도였다. 그외의 당주들이나 인의당의  고수들은 소천에 비하면 무공이 쳐

지고 있었다. 청룡장은 소천 정도의 고수 너댓명으로 강남의 노른자위를 장

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소천 정도의 고수 십여명은  소림이나 무당이 연합한다 해도 가능할까 말까

한 숫자엿다. 그외에 다른  문파에서는 소천정도의 고수는 고사하고 육당주

급의 고수도 찾기  힘든 정도였다. 단일 조직으로  그만한 고수를 거느리고 

있는 곳은 당금 무림에 삼혈맹  뿐일 것이었다. 소천은 웃음을 거두고 말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일이  심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월쌍도객정도라면 강

호에서 일류고수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십여명이 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약탈한  근 십여만냥에 달하는 은자가 있습

니다. 그리고 산서와 협서일대에 흩어져 있는 녹림산채는 헤아릴수 없이 많

이 있습니다. 십여명의 일류  고수들이라면 그들을 병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녹림이라는 것이 강자에게 붙는 속성이 있있는 곳입

니다. 게다가 지금 이 일대는  삼혈맹과 백도의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습

니다. 그래서 녹림도들은 자칫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해 하는 자들은 어디에고 의지하려는 속성이 생

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들  십여명의 고수들 배후에는 이들보다 뛰어는 

절정고수가 한둘은 있을 껍니다.  이들이 산서와 협서일대의 녹림도들을 뭉

쳐서 하나의 세력화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말에 사인은 입을  딱 벌렸다. 정확한 상황설명과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소천의 말이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소천은 중인들을 바라보고 말을 

했다. 

"만약 저나 육노사 정도의  고수가 여러분들을 거느리고 산서일대의 녹림도

들을 휘하게 두고자 한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들을 모두 무찌른다면 몇 년이 가도 모자랄 것이오. 그러나 휘하에 둔다

면 몇 달만에도 가능할 것이오.  중요 산채 십여개만 장악하면 나머지는 알

아서 휘하로 들어올 것이오. 그들이  지금 불안해 하고 있다면 더욱 빨라질

수도 있는 것이오. 물론 초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하연적은 그렇게 말을 하였다.  그는 그렇게 말해놓고 스스로 놀랐다. 무림

에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공의 뛰어난 고수와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

다. 절정고수 한두명과 일류고수 십여명 그리고 은자 십만냥이면 산서와 협

서 일대의 녹림도  통합은 일도 아니었다. 중인들은  그제서야 소천의 말이 

충분한 가능성뿐만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그리고 강북에서는 우리를  비방하는 유언비어들이 날뛰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삼혈맹의 종이라고까지.........."

소천이 그런 말을 하자 세명이  안색을 굳혔다. 진명이 탁자를 치며 고성을 

터뜨렸다. 

"어떤놈들이 감히 그런말들을"

육정산은 그런 진명을 보며 웃었다. 

"진호법. 강호에서 유명해지면 남을 비방하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기 마련이

네. 그것에 너무 화를 내지 말게. 곧 진실이 밝혀 질 것이네."

육정산의 말에 씨근덕  대던 진명이 끙하는 소리를  내고 의자 깁숙히 몸을 

묻었다. 다른 이들도 안색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천은 소매를 살

짝 저었다. 일순 싸늘한 공기가 사인의 정신을 일깨웠다. 사인의 시선이 집

중되자 소천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강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고, 또한 본장에 대

한 악의적인 소문을 알아 보기 위해서 강북으로 갈 생각입니다."

육정산은 약간 곤란하다는 어조로 말을 하였다. 

"저는 조금 곤란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능풍녀석이"

"알고 있습니다. 육노사께서는  소림사에 방장님과 무당파, 화산파, 공동파 

장문인께 소개장이나 써 주십시오."

육정산은 겸연쩍은 듯이 미소를 흘렸다. 

"이거 죄송합니다. 그리고 소개장은 곧 써드리지요"

소천은 중인들을 바라보았다. 

"그외 강북으로 가시지 못할 분들 계십니까."

"없습니다."

삼인은 일제히 대답을 했다. 소천은 그들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소

천이 강북으로 가려는 목적은 먼저  자세히 설명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뒤

에 간략하게 말한 것 때문이었다. 즉 강북 일대에 넒게 퍼지기 시작한 청룡

장에 대한 음해를  확인하고 그것에 대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었

다. 강북에 강력한 녹림 조직이  생기는 것은 지금 청룡장에게는 아무런 문

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소문은 달랐다. 더욱이 무림지존좌를 노리는 단우백으로서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소천을 파견해서 강북의 대문파들을 

찾아다니며 해명을 할 것은해명을 하고 사실을 밝힐 것은 밝히려는 것이었

다. 그래서 일행도 무림에서  강직하다고 소문난 용권노사 하연적과 단양수 

천일정같은 이를 딸려 보내는  것이었다. 단우백은 육정산도 보내려고 하였

으나 소천이  육정산은 거절을 한것이었다.  육정산이 지금 육능풍이외에는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천은 자리에서 일

어나며 사인을 바라보았다. 

"출발은 내일 아침에 합니다. 그때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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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눈천지였다. 눈이  그친지는 몇시진이 지났지만 이런 강추위에

서는 며칠 아니 몇 달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느 것이 눈이었다. 그것은 정

현도 마찬가지였다. 정현은 개봉에서 서쪽으로 백이십여리쯤 떨어진 현이었

다. 눈덥힌 지붕위로 나 있는 굴뚝마다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연기

는 햇빛을 받아서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다가 점점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총총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아이들은 곳곳에서 

눈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골목 여기저기에는 바람을 피해서 쳐놓은 작은 천막들이 있었다. 그천막에

서는 밀빵과 만두를 팔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라 그래서인지 그 천막주위에

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곳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

여 있었다. 그것도 칠팔세 가량의 소년소녀들이 눈망울을 반짝이며 줄을 서

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아이가  구리돈 몇문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앞에 주

었다. 그러자 그 천막사이로 빙당호로를 든 손이 나왔다. 아이는 그것을 잡

고 저쪽 골목으로 뛰어갔다.  다른 아이들은 군침을 삼키며 있었다. 그것도 

잠시 안에서는 빙당호로가 계속  나왔고 아이들은 연달아 그것을 받아갔다. 

하나씩 빙당호로를 든 아이들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뛰어갔

다. 그들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또한  양볼이 바알갛게 상기가 되어 

있었다. 

"꿀꺽"

침너머 가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 천둥처럼 들렸다. 두 눈을 그 천막에 고정

을 시키고 있는 인영은 외투를  두껍게 껴입은 인영이었다. 코ㄲ이 약간 붉

어져 있었고 눈섭은  매우 진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린것임을 알수가 

있었다. 그는 낙양을 떠나온 이철룡이었다. 이철룡은 자신의 뱃속이 요동을 

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중원표국을 떠나올 때는 한푼의 돈도 없었

다. 그나마 왕유정이 미리 챙겨두라며 표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각성의 통행

증을 만들어 주어서 여기까지 쉽게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왕유정은 이철룡이 며칠 더 머무를 것이고 그 얼굴로는 밖으로 나가

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은자를 주지는 않았다. 물론 이철룡

이 왕유정을  만나서 떠나겠다는 인사를 했으면  왕유정은 몇십냥의 은자는 

선뜻 내 주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철룡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무일푼으로 이곳 정현까지 온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

하고 있었고, 어디를 가서 음식을 사먹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근처에 자신이 하룻밤을 부탁할 만한 인물들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이철룡이었기에 아이들이  빙당호로를 들고 좋아라 뛰어 다

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던 것이었다. 

천막이 살짝 열리고 노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철룡을 보고 손짖을 

했다. 이철룡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노인은 다시 

손짖을 하고 고개를 안으로  집어 넣었다. 아무래도 추운 모양이었다. 이철

룡은 얼른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작은 손수레와 화로가 있었다. 이

철룡은 화로의 열기를 받자 몸이 후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손수레위

에 있는 빙당호로에  눈이 갔다. 이철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노인은 허허 

웃으며 말을 했다. 

"먹고 싶으면 몇 개 먹게나"

그말에 이철룡은 읍을 하며 말을 했다. 

"노야의 은덕은 감사드리지만 저에게는 지금 한푼의 돈도 없습니다. 그리고 

요 며칠안에 돈이 생긴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철룡은 뭐라고 더 말을하고 싶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의 등을 토닥여 주

며 빙당호로를 몇 개 손에  쥐어 주었다. 순간 이철룡은 목이 콱 메이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노인이  등을 몇번 두둘기자 이상하게 가슴이 시

원해 지는 것을 느꼈다. 이철룡은  꼬치에 꽃힌 빙당호로를 깨끗이 먹이 치

웠다. 노인은 천막을 거두고  수레를 접기 시작했다. 이철룡도 얼른 그것을 

도왔다. 

"노야 어디로 가져가실 껍니까."

"내가 며칠 신세를 지는 곳이 있다네, 조금 누추하지만 자네도 가려는가."

이철룡은 얼른 읍을 했다. 

"저야 바람만 피할 수있으면 족 합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떡이고 손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철룡이 얼른 그

것을 잡았다. 

"노야 제가 끌겠습니다."

"허허 그러겠나"

노인은 활짝 웃었다.  그제서야 이철룡은 노인의 얼굴을  제대로 볼수 있었

다. 아까는 먹을 것에 대한 갈증과 오늘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고민

으로 보이는 것이 빙당호뿐이었다.  그러나 배고픔과 잠자리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자 노인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는 반백이었고 눈섭

은 은백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아래 두눈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맑

고 투명했다. 양볼은 발그래 했으며  입술을 방년의 처녀보다 더 생기 있어 

보였다. 흘러 내린 수염까지 빛이 나 보였다. 

그러나 이철룡은  이 노인이 빙당호로를 파는  노인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이  노인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서는 오로지 빙당호로를 파는 노인으로 정의가 되어 버렸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 한  작은 쪽문에 도달했다. 쪽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십여보 걷자 창고같은 건물이 나왔다. 노인은 그 창고의 문

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마초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이철룡은 그것을 보

고 고개를 고개를 끄떡였다. 여기는  아마도 부호집의 마초 창고 일 것이었

다. 한 겨울에도 마초더미 속에 파고 들어가서 자면 추위를 어느 정도 이길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 였다. 그것도 하루 이틀

이지 한겨울내내 이곳에서 지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었다. 

이철룡은 그런 생각을 하고 노인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 노인이 이런  마초에서 자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이 되

지 않았다. 또한 자신은 한번 사람을 믿었다가 호되게 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한번쯤 의심을 하는 성격이 생겼다. 그러나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이 노인에게는 아무런 의구심도  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의

구심을 갖지 않는다는데에 대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철

룡은 이 노인이 하는 일은  모든지 자연스러워 보였다. 또한 아주 예전부터 

잘아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노인은 밖에 나갔다가 잠시뒤에 들어왔다. 노인

의 손에는 유지에 싼 만두 몇점과 사발에 담긴 반쯤 식은 탕이 들려져 있었

다. 

"자 같이 먹세나"

노인이 먼저 만두를  들자 이철룡도 만두를 들었다.  조금 식은 상태였지만 

맛은 더없이 좋았다. 이철룡은 막히는 목으로 말을 하였다. 

"맛이 좋네요."

노인은 빙그래 웃었다.  이철룡은 몇 개 집어 먹자  배가 부르는 것을 느꼈

다. 탕을 후루룩 마시고 입을  스윽 닦았다. 그때까지 노인은 한 개의 만두

를 다 먹지도 않고 있었다. 이철룡은 겸연쩍은 얼굴을 하며 말을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허 아닐세 잠시 옛 생각을  했었네. 전에 내가 데리고 있던 꼬마 녀석과 

자네가 많이 닮았어"

"예에 누구하구요."

"지금은 자네보다 나이가 많을 걸세. 허허허"

노인은 그렇게 웃고 나머지 반쪽을  먹었다. 매우 천천히 먹는데 만두의 맛

을 음미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철룡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머리를 쳤다. 

"이철룡이라고 합니다."

이철룡은 자신이 화산파  제자라는 것을 밝히려다가 이  노인이 믿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여기서 화산파의  제자라는 것을 밝히기도 부끄러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철룡은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노야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흠 내 성이 백가고 다섯째니까 백오(白五)네"

이철룡은 고개를 끄떡였다. 

"가족은 없으십니까."

"가족은 없네."

"그럼 전에 데리고 다니던 꼬마라는 아이는"

"허허 그 아이는 커서 제몫을  하고 있다네. 밥줄은 끊기지 않을 것이니 걱

정을 말게"

"저는 노야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나이도 많아 보이시는데"

"그보다 자네 힘좀 쓰나"

"예?"

"여행을 하는 것 같은데 돈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더군다나 이런 겨울에 돈 

한푼 없이 돌아다니다가는 얼어 죽기  딱 알맞네. 그래서 내가 여기 총관에

게 일자리를 말을 해놓았네만 자네 의양이 어떨지"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흠 한마디로 잡역부일이네 나무를  패고 석탄을 나르고 하는 일이지. 힘은 

들지만 겨우내 두달동안 일을 하면  은자 세냥을 주겠다고 했네, 겨울을 여

기서 나고 봄이 되어 은자를 챙겨서 여행을 계속하면 되지 않겠나."

이철룡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가 화산파에서 오래 살았지만 은자 세냥가

지고는 보름도 못 돌아 다니는  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달동안 

일을 해야 그 정도를 번다니  믿기지 않은 것이었다. 노인은 이철룡의 얼굴

을 보며 말을 했다. 

"왜 싫은가."

"아 아닙니다. 하지만 세냥은 좀,  일은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힘이 있으

니까요."

백오는 빙그래 웃었다. 

이철룡이 머무른 곳은 정현성에서 제법 큰 반점이었다.그래서 겨울에는 하

루에도 수십가마니의  석탄과 수십짐의 나뭇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힘있는 

일꾼은 자연 대접을 받았다. 이철룡은 화산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기 

때문에 하룻만에 일의  요령을 터득했다. 또한 내  외공이 충실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일을  몇배로 할수 있었다. 그래서  이철룡은 다음날 두달에 

은자 닷냥을 받기로 합의를 했다. 

탁탁탁 이철룡의 도끼질에 나무는  반쪽씩 쪼개져 나아갔다. 화산에 있을때

도 해 본 일이라서 어렵지 않았다. 한 무더기의 나무를 다 패자 그 팬 조각

들을모아서 새끼줄로 들고 가기  쉽게 묵어 놓았다. 십여개의 묶음이 생기

자 이철룡은 허리를 쭈욱 펴고  이마의 땀을 딱았다. 지붕너머로 해가 반쯤 

가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 일은 이걸로 끝이었다. 이철룡은 짐들을 가

지고 부엌으로 같다. 부엌에서는 저녁에 쓸 요리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

었다. 그는 부엌 한쪽에 쌓여 있는 장작더미에 자신이 팬 나무들을 쌓아 놓

았다. 그러자 한 보조요원이 천으로 덥힌 바구니를 주었다. 

이철룡은 활짝 웃었다. 이게  자신과 백오의 저녁인 것이었다. 천으로 덥은 

것을 보니 오늘은 맛있는 음식이 들은 모양이었다. 이철룡은 고개를 끄떡이

고 그것을 들고  나갔다. 보조요원은 그것을 건네주고  자신의 일로 돌아갔

다. 누구와 잡답을 할 정도로 지금 시간은 한가하지가 않았다. 

바구니 안에는 만두 한접시와 구운 오리고기약간 그리고 술이 한병 들어 있

었다. 이철룡은 술병을 열어 향기를 맛아 보았다. 일반 죽청엽이었다. 하지

만 입맛을 돗구기에는 충분한 술이엇다. 삐꺽 문이 열리고 백오노인이 수레

를 끌고 들어왔다. 이철룡은 얼른  나가서 수레를 받아서 한쪽에 세워 두었

다. 

"오늘은 어때셧습니까?"

"늘 그렇지 허허 그래 일은 고되지 않고?"

"고될게 무엇이 있습니까. 늘 하던 일인데요."

백오노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바구니 옆에 앉았다. 이철룡도 그 옆에서 앉아

서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이철룡은 만두를 먹으며 말을 했다. 

"노야께서는 이렇게 사시는게 좋으십니까?"

백오노인은 웃으며 말을 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저는 이렇게 혼자 사는  것은 매우 힘들고 괴로울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노야의 얼굴을  뵈오니 매우 평온하고 만족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이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화가 나셧다면 용서를 해주십시오."

"허허허 화가 날게 무에 있나. 그래 자네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철룡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했다. 

"남아라면 모름지가 천하제일미를  아내로 맞이하고, 강호의 뭇 영웅호걸들

을 호령하여 마도를 쳐부셔  천하를 태평케 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

다."

"사명말고 자네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말해보게"

이철룡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글적였다. 그것을 보자 백오노인은 조용히 

말을 하였다. 

"나는 한때 만금을 가지고 무수한 미녀들과 주지육림에서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네. 아주 젊었을  때지. 조금 나이가 들자  이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들더군. 그래서 젊을 날을 싸움터에서 보냈

네. 나이가 조금  들자 창고에 만금이 쌓아두고 가인영색(佳人英色:미인)을 

얻어 자신의 쾨락을 즐기는  것보다 명예와 존귀함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러나 이 나이가 되자 명예도 존귀함도 다 꿈이었더군."

이철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노인장께서는 거부이셧습니까."

"허허허 지금은 빙당호로를 파는  노친네 일뿐일세. 과거가 무슨 소용이 있

겠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지. 자네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철룡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하였다. 

"이왕이면 미인 아내를 얻고  처첩도 두세명 정도 두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검을 들고 나가면 강호의 뭇 영웅호걸들이 저를 알아 주었으면 합니다."

"젊은 나이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그런 꿈을 꿀 수가 있지. 자네는 솔직해서 

좋아"

이철룡은 빙그래 웃었다. 이철룡은 밥을 다먹자 바구니를 한쪽에 밀어 넣고 

마초더미에서 목검을 들고 밖으로  나아갔다. 창고의 한쪽은 담벽과 이장정

도의 거리를 두고 있어서 그늘이 져 있었다. 이곳은 구석진 곳이라 찾아 오

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이철룡은 여기서 검초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왕

유정에게 어이없이 당한뒤에 자신의 무공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에서 목검을 들고 소양검법부터 

시작했다. 

소양검법은 화산파의 입문당시 처음으로 배우는 기본검초였다. 찌르고 베고 

휘둘루는 세가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진 검초였다. 어린아이도 몇가지 동작만 

익히면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그런 검초였다. 이철룡은 소양검법을 계속해

서 펼쳤다. 그의 뇌리에는 사부이신 매화검군의 말씀이 울리고 있었다. 

'기본이 중요한 것이다. 다른  이들이 변초를 먼저 배운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라. 본산제자들을 보아라 그들을 삼년동안 소양검법만 익히고 있다. 속가

제자들을 본파의 화려한 껍질만 가져 갈 수 있을 뿐이다. 후일 변초를 배운

자와 기본기를 충실이 한자와 차이가 날 것이다. 너는 소양검법만 연마하도

록 해라'

이철룡은 소양검법을 완전히  알고 있었다. 아니 완전히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을 능숙하게 펼칠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소양검법을 

펼치자 자신에게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는 몰랐다. 이철룡은 두시진  가까이 소양검법을 펼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의 발끝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철룡은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

을 느끼고 그 그림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명의 사람이 서 있

었다. 달빛이 반사가  되는 듯이 백의가 화사하게  빛을 뿌리는 것 같았다. 

그 인영은 나직한 탄성을 내질렀다. 이철룡은 그가 백오노야라는 것을 어렵

지 않게 알수 있었다. 백오노야는 이철룡을 보며 말을 했다. 

"자네는 화산파의 제자인가."

"그렇습니다. 헌데 노야께서 어찌"

이철룡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하였다. 

"화산파의 우이보와 소양검법을 제대로 배웠군." 

그말에 이철룡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우이보를 펼친 적이 없

었다. 소양검법에 맞게 조금만 변화를 준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 노인은 단

숨에 자신이 우이보를 익혔다는 것을 간파해 낸 것이었다. 그순간 이철룡은 

이 노인이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보

는 순간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아무리 보아도 그냥 평범한 노인네일 뿐

이었다. 백오노인은 이철룡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자네는 지금 앞이 꽉 막혀 있을 것이네"

"그렇습니다."

"그것은 자네가 이제는 초식을 벗어 던질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네"

백오노인은 손을 들었다. 손을 펼치거나 흔드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철룡의 

목검이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이철룡은 멍하니 백오노인을 바라

보았다. 이철룡은 백오노인이 자신의 목검을 가져 갔지만 전혀 신기하게 생

각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백오노인이 원래부터 목검을 가지고 있었다

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백오노인은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구름에 점점 가

리워 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서 주위도 조금씩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저 구름이 가는 길을 아는가."

이철룡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구름의 가는 길이 있는지 없는지 알수

가 없었다. 

"그럼 바람이 어디로 흐르는지 아는가."

이철룡은 멀뚱한 눈으로 백오노인을  바라보았다. 백오노인은 말을 잠깐 끊

었다가 다시 이었다. 

"세상사람들은 구름이 흐르는 것과  바람이 부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태어

나고 죽는 것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믿고 있지. 사람들은 이 법칙을 알고

자 무수히 노력을 했네.  유학자들을 유학자 나름대로 이(理)와 기(氣)로써 

세상의 법칙을 설명하고, 도가와 불가와  같이 수도를 하는 자들은  수련으

로 그 궁극의  경지를 알고자 했네. 그래서  유가에서는 성인이 불가에서는 

성불이 나왔고, 도가에서는 진인이  나왔네. 그러나 이 세가지는 다름이 아

니네."

백오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목검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소양

검법의 기본식이었다. 그러나 달랐다.  이철룡은 뭐가 다른지는 몰랐다. 단

지 달랐다. 

백오노인의 신영이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철룡의 눈에는 오직 목검만이 보였

다. 백오노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지만 이철룡의 눈에는 오직 목검

만이 보였다. 

'신검합일 일검장신(身檢合一 一劍藏身)'

그렇다 이철룡은 신검합일을 보고  있는 것이엇다. 신검합일이라고 하면 검

과 몸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것은 물리적인 합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검이 신체의 일부처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단계를 의

미했다. 그리고 일검장신은 칼날에  자신의 몸을 숨길수 있는 경지였다. 검 

날 가지고는 사람의 몸을 가릴수가 없다. 그러나 일검장신의 경지에 도달하

면 가능했다. 실제로 검날에 사람의  몸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착

시였다. 그 검앞에 선자는 그 기세에 눌려서 그 검뒤에 사물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착시는 공포에서 비롯이 되었다. 

적의 검이 언제든지 자신을 벨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검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자연이 그  검뒤에 사물은 물론 검주위의 사물까지 볼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이철룡은 오직 검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검이 

사라지자 주위의 사물이 확연히 드러났다. 모든 것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에서도 서기가  뿜어지고 돌담장과 창고 

건물에서도 음습한  그늘뒤에서도 서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빛들은 점점 사라지고 주위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도로서 수련을 하여도 궁극에 경지에 도달을 할 수가 있네. 도가의 단은 

선도의 성취이자 무학의  성취라고 할수도 있는 것이지.  원래 세상 만물이 

모두 도에서 나왔으니 어떠한 길을  가더라도 그 궁극의 경지는 같네. 무도

의 대종사들은 그러한 경지에 도달을 한 뒤 후학들을 위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체계적으로 정리를 하엿네.  그것이 세인들이 말하는 상승의 무학들이

네. 그러나 그것을 배우는 이들은 그 정수를 얻지 못하고 껍질만 얻어서 초

식을 만들었네. 그리고 그  초식을 익히기 위한 기초무공들을 만들었지. 처

음에는 그 궁극의 경지에 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들 알았네. 그러나 시

간이 흐르고 상승의 초식들마져도  익히기가 여려워 지자 사람들은 그 상승

의 초식이 전부인줄 알게 되었네.  그래서 세인들은 무도는 알지 못하고 무

공만 알게 되었네. 무도의 궁극에 도달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길을 걸었네. 

그것은 그들이 태어난 환경과 자라난 시대가 달랐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들

이 다다른 무도의 경지는 모두  같아도 그들이 만든 무학도 다를 수밖에 없

었네. 그러나 세인들은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자파의 무공이 모두들 최

고라고 하여 그것을 인증하기  위해서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고 있네."

백오노인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상승의 무학은 병기와 자신의 몸을 동일하게 여기는데 있네. 그래서 그 병

기를 자신의 몸처럼 움직이는 데 그 요체가 있네. 신검합일이 그 좋은 예이

지.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자신의 몸은 자기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

일 수 없다는 것이네. 신검합일이라고  말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팔이 조

금 길어진 것일 뿐일세.  그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진정한 신검합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네. 자

기 몸도 자기가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어찌 외물을 자신의 몸처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상승의 경지는 우선 자기 몸을 아는데부터 출발을 하네."

백오노인은 이철룡을 바라보았다. 

"화산파의 도인체조는  몸의 감각을 극도로 일깨우는데  큰 도움을 준다네. 

세상에는 많은 도인술이 있지만 자네는 화산파의 문인이니 화산파의 도인체

조를 매일 두시진씩 하게. 일년이  지나면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

낄수 있을 것이네. 도는 어디에도 있으나 그 정수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

기 마련이네. 그 근본을 튼튼히 하는 것이 곧 상승의 경지에 도달하는 첩경

이네."

백노오인은 다시 이철룡을 바라보았다. 

"자네와 나와의 인연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 보네. 자네는 너무 섭섭

해 하지 말게."

이철룡은 자신의 손이  묵직해 지는 것을 느끼고  손을 내려보았다. 어느새 

목검은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서 오한이 일어났다. 이

철룡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희뿌연한 여명이 터오르

는 산능선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붕과 지붕너머에 보이는 산능선을 따라 붉

은 햇살이 창천을 찌르며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이철룡은 창고 문으로 급히 달려갔다. 활짝 창고 문을 열자 가득히 쌓인 목

초더미가 보였다. 

"노야 노야"

이철룡은 노야가 매일 잠들어 있던 자리를 가보았다. 그곳은 말끔히 정돈이 

되어 있었다. 이철룡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갔다. 이른 새벽이라서 길거

리에는 사람들이 뜸했다.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그늘진 속에 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백오노인이 늘빙당호로를 파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골목에는 어느새  몇 명의 아이들이 몰려 나와 있었다. 그 

아이들도 천막이 없어진  것을 알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리고 이철룡을 

바라보며 한 아이가 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저씨 여기 빙당호로를 파는 할아버지 어디 같는지 아세요."

"모르겠구나."

이철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은  골목에 쭈그려 앉아서 오손도손 이야기

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뒤에는 서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골목을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와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이철룡의 정신을 일깨웠다. 

백오노야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정현제일루의 총관도 그

런 노인이 잠시 머물렀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을 했지만 언제 머물렀다는 

것은 기억을 해 내지  못했다. 그외의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었다. 그날부터 

이철룡은 소양검법도 버리고 화산파의 도인체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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