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삼우(三憂. 세가지 근심)
장안성은 장치구안(長治久安)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길게 다스리
고 오래 평안하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 이름은 명 홍무 2년(서기
1369년) 서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서안이라는 말은 중국 서부는 평안
하다라는 뜻이다. 이 서안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사용을 하고 있다. 그러
나 당시 명대에 사람들은 천수백년간 써온 장안이라는 이름에 애착이 가 있
어서 서안이라는 말과 장안이라는 말이 공통으로 쓰이고 있었다.
장안성에서 서쪽으로 백여리를 가면 함양이 나온다. 이 함양은진시황제가
도읍을 정한 곳으로 아방궁이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도가의 명산인 종남산
이 이 함양을 굽어보고 있었다. 진시황제는 아방궁을 종남산까지 넒히려고
했지만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화려했던 궁궐의
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방궁이 있었다고 짐작이 가는 곳에는 논과 밭이
있을 뿐이었다. 종남산은 도가의 성지로 한때는 전진교가 크게 일어선 곳이
기도 했다. 전진교는 도사 왕중양이 신선 종리권으로부터 함양에서 도서를
받고 입산수도해 도를 깨우친 뒤 세웠다고 알려진 교파였다.
하지만 원대에 핍밖을 받아서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중원 각처
에 수백개의 전진 도관이 세워졌는데 모두들 자신들이 왕중양의 직계라고
할 뿐 서로 뭉쳐서 힘을 발휘할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무
림 오대거파로 명성을 날리던 전진교파는 이제 무림에서도 이름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단지 세속의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도교의
맥을 이어가고는 있었다.
청빈관은 그런 전진교파의 아류 중 한곳으로 종남산에서 제법 성세를 자랑
하는 도관이었다. 청빈관의 청빈단은 인근 주민들에게는 만병통치약으로 알
려져 있었다. 그리고 효능도 좋아서 어지간한 병들은 단번에 떨어졌다. 그
래서 늘 향화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도관의 지붕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그 눈이 달빛에 빛이 나서 은색의 광휘
를 뿌리고 있었다. 처마밑에 달린 풍경은 바람 소리를 따라 혼자서 울고 있
었고 불켜진 전각안에서는 나직히 독경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속에서 그런 도관을 바라보는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
종 병장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한명이 작은 소기를 들어서 두 번 좌측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왼쪽으로 삼십여장쯤에 있던 한 거구의 사내가 도관 경내
로 뛰어 들었다. 그는 텅빈 마당을 질주하였다. 그리고 긴 그림자를 앞마당
에 드리우며 북대 위에 섯다. 그인영은 곰같은 덩치에 어울리게 털 가죽옷
을 입고 있었다. 그는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서 북을 치기 시작했다.
둥둥둥 북소리가 산중의 정적을 깨었다. 곳곳의 전각에서 불이 켜지고 횟불
을 든 도사들이 몰려 나왔다. 둥둥둥 북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
고 그 인영은 멈출줄 몰랐다. 도관 마당에 무수한 도인들이 몰려나오자 그
는 북치는 것을 멈추었다. 촤악 도사들이 좌우로 갈라서고 그 사이로 한명
의 도인이 불진을 휘두르며 걸어 나왔다. 그 도인은 긴 흰수염을 바람에 날
리우며 한손을 가슴앞으로 들어올리며 예를 취했다.
"무량수불 도반께서는 무슨 볼일이 있기에 이리도 야심한 시각에 본 도관을
방문하셧는지요."
"나는 웅패신이라고 하오. 이 도량에서 가져 갈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웅패신이라는 말에 도사는 너털 웃음을 흘렸다.
"이곳의 도인들은 가난한 이들입니다. 수도를 업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
슨 재화가 있겠습니까. 약간의 향은을 받은 것이 있으나 저희들 살림하기에
도 빠듯하옵니다. 그러나 도가는 자비를 생명으로 하는 곳이니 약간의 은자
는 보태에 드릴수 있습니다."
"하하하 삼혈맹에서 언제부터 그렇게 자비로워 졌는지 모르겠소이다. 하하
하"
웅패신의 웃음에 도인의 눈섭은 역팔자로 휘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문
루를 바라보았다. 문루 위에는 한명이 인영이 긴 장창에 의지해 서 있었다.
펄럭거리는 옷자락은 금새라도 바람에 휩쓸려 떨어질 것 같았고 차가운 바
람에 노출 된 손목과 팔뚝은 그 인영이 의지해 있는 장창보다 가늘어 보였
다. 하지만 이 도인은 뒤로 물러서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창왕 언무외"
그렇다. 문루위에 서 있는 인영은 다름 아닌 창왕 언무외였다. 창왕 언무외
는 도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 청빈관이 삼혈맹의 종남지단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자네를 보니
도저히 안 믿을 수가 없네 그려. 안그런가 반마(半魔)"
반쪽만 마라는 외호를 가지고 있는 이 인영은 원래 전진도가 계열의 도사였
다. 그러다 도관으로 향화를 올리러온 처자에게 마음이 뺐겨서 강제로 범한
뒤에 강호로 뛰어든 인물이었다. 그는 강호를 전전하면서 처음에는 선행을
행하였다. 그러나 점점 제멋대로 행동을 하고 나중에는 악행이 심해진 인물
이었다. 반마라는 외호는 그가 선과 악을 분멸하지 않고 제멋대로 할 때 생
긴 외호였다. 십여년전에 홀연히 사라져서 모두들 죽었다고 생각을 하였었
다. 그런데 죽은 것이 아니라 삼혈맹에 가입을 하고 이렇게 종남지단의 지
단주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반마는 냉소를 하였다.
"창왕 선배. 은거한채로 계속 있었다면 그나마 영명을 유지했을 것이건만
이렇게 강호에 나왔으니 시체도 온전히 남기지 못할 것이오."
"허허허 노부가 이제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반마는 장도를 뽑아 들었다. 차차창 그 뒤에 서 있던 백수십여명의 도사들
도 장도를 뽑아 들었다. 반마는 땅을 밖차고 날아 오르며 외쳤다.
"쳐라"
"우아아"
도인들은 장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어왔다. 창왕 언무외는 장창을 휘두르며
날아 올라오는 반마를 공격해갔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수십여명의 인영들이
각종 병장기를 들고 도관의 담장을 넘어 날아들어왔다. 바로 반혈맹도들이
었다. 그들은 이번 공격도 반신 반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 인
정을 하자 더 이상 볼 것이 없었다. 웅패신은 박도를 휘두르며 장도를 휘두
르는 도사들을 베어갔다. 창창창 곳곳에서 반혈맹도들이 도사들과 어우러졌
다. 도사들과 반혈맹도들은 무공의 차이가 나서 곳곳에서 쓰러져갔다. 하지
만 숫적인 우세와 조직력으로 곳곳에서 반혈맹도들과 어우러져 싸우고 있었
다.
피피핑 창왕 언무외의 장창이 무수한 환영을 그리며 반마의 전신 혈도를 찍
어갔다. 반마는 전진파의 검법을 변환시킨 도법으로 장창을 막아갔다. 티티
팅 티티팅 창과 도가 부딧치면서 무수한 불꽃을 뿌렸다. 반마의 도법은 뛰
어났지만 창왕 언무외에 비하면 처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반마는 계속해서
밀려났다. 반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최소한 같이 죽는다.'
반마는 날아드는 장창을 왼쪽 어깨로 받았다. 푸욱 어깨에 화끈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사이 반마의 도가 언무외를 향해 날아갔다. 그는 전력을 다해
서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도를 날렸다. 이기어도에는 미치치 못했지만 강력
한 내공이 실린 것이고 창왕의 신영이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고 반마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창왕의 허리가 옆으
로 휙 휘어 지면서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반마의 도는 그 공간으로
슬ㅉ 비껴 나아갔다. 그리고 창왕은 장창을 타고 들어와 손으로 반마의 턱
을 가격해갔다. 반마는 양손을 들어 그것을 막으로 했다. 하지만 그의 왼쪽
손은 움직일 수 없었다. 턱 오른 손으로만 창왕의 일수를 막아내었다.
그 충격으로 반마의 신영이 뒤로 물려지고 언무외의 손에는 피뭇은 장창이
들려져 있었다. 파파파 무수한 창영이반마의 전신을 뒤덥었다. 반마는 몸
을 굴려서 피했다. 그리고 반마는 신영을 뒤집으며 땅을 차고 올랐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몇 개의 암기가 밖혀 있었다. 반마가 땅을 차고 오르자 언무
외의 장창이 그를 노리고 날아갔다. 반마는 허공에 뜬채 창왕의 창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반마는 천근추를 써서 떨어지는 속도를 빨리했다. 그러자
장창도 그의 몸을 따라 호선을 그리며 날아 들었다.
"이기어창"
반마는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반마의 오른손이 크게 원을 그리며 장창을
막아갔다. 턱 장창과 반마의 오른손이 부딧쳤다.
"크윽"
장창은 반마의 오른손을 꾀뚤고 얼굴로 날아들고 있었다. 반마는 얼굴을 굳
히며 손을 털었다. 그러자 장창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뒤로 날아갔다. 그때
땅에서 한명의 인영이 솟구처 오르며 반마를 찍어갔다. 그의 손에는 한자루
옥통소가 들려져 있었다. 반마는 양손이 마비된 상태에서 발로 그 옥통소를
쳤다. 옥통소를 들고 있던 옥소공자는 그 발길질에 뒤로 몸을 뒤집으며 땅
에 내려섯다. 그리고 다시 십여개의 암기를 내던졌다. 반마는 땅에 떨어지
면서 한쪽 발을 무수히 차올리며 그 암기들을 쳐내었다.
그때 창왕의 신영이 반마에게 다가가서 일권을 내질렀다. 반마는 몸을 굴리
며 창왕의 권풍을 피했다. 그순간 옥소공자의 옥소가 그의 가슴을 찔러갔
다. 반마는 발을 들어 옥소를 쳐내었다. 그순간 옥소의 사이에서 가는 비침
이 쏘아져 나왔다. 반마은 얼굴을 돌려서 급히 피했다. 그러나 얼굴의 일부
가 따뜸해지는 것을느꼈다. 옥소공자는 급히 몸을 돌렸다. 반마의 얼굴 반
쪽이 푸르슴하게 변하면서 대갈일성을 터뜨리며 옥소공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언무외의 손에 들려진 장창이 폭사했다. 반마는 옥소공자를 ㅉ느라 창
왕을 잠시 잊었던 것이엇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퍼억
반마의 옆구리에 밖힌 장창은 그의 몸을 관통했다. 반마는 자신의 옆구리를
뚤고 나온 창끝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 묻어 있는 피는 매우 붉었다. 끄윽
하는 소리와 함께 반마의 신영이 무너지고 언무외는 장창을 회수했다. 한쪽
에 서 있던 옥소공자가 읍을 하며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옥소공자의 이런 행동은 명문정파의 행동으로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
다. 그러나 혼전 중에 적의 수뇌를죽인다는 것은 크게 사기를 고무 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 옥소공자는 세인들의 비난 따위를 접어 둔지는 오래였
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복수가 중요했다.
언무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옥소공자는 반마의 시체를 들어 올리고
외쳤다.
"반마를 죽였다."
그 소리가 울려퍼지자 도사들의 대오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옥소공자는
도사들을 향해서 신영을 날렸다. 창왕 언무외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도사
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서 발악적인 저
항을 하고 있었다. 언무외의 눈살이 살짝 찌뿌려졌다.
'삼혈맹의 주력도 아닌 지단을 하나 괴멸하는데도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어
떻게 삼혈맹과 싸워 나간단 말인가. 어렵다 어려워'
언무외는 장창을 들고 도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손을 쓰기로 한 이상 철
저히 손을 쓰는 것이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일이었다. 이런 지단 하나를 괴
멸하기 위해서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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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로 오르는 길 좌우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있는데도 돌 계단에는 눈을
찾아 볼수가 없었다.
왕유정은 자신이 어릴 때 눈을 쓸던 생각이 나서 잠시 길을 멈추었다. 그러
나 이내 발걸음을 빨리해서 일주문 앞에 섯다. 좌우 두 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그 사이에 들보를 놓아 문을 만든 것이 이 일주문이었다. 이 일주문
을 경계로 세속과 불국토가 나뉘는 것이었다. 이 일주문의 의미는 '모든 진
리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일심(一心)의 작용에 의해 나타
난다'였다. 소림사의 일주문의 현판에는 숭산 소림사라는 글자가 웅장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왕유정의 목에 걸려 있는 백팔염주가 좌우
로 살짝 움직였다. 일주문앞에 도달하자 문옆에 서 있던 두명의 지객승들이
가볍게 합장 배례를 하였다.
"어서오십시오. 왕사숙님"
왕유정도 가볍게 합장배례를 하였다. 이 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같
았지만 왕유정은 둘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림사에만 수백명의
무승이 있었고 근 이천여명의 학승과 행자승들이 있었다. 그래서 얼굴은 기
억이 나지만 법명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승려들이 꾀 많았다. 그래서 왕유정
은 가볍게 합장으로 예를 취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
르기 시작했다. 소림사의 이 계단은 십리 남짓 뻣혀 있었다. 이 계단은 당
나라 고종이 행차를 하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뒤로 무수한 개보수가
이루어져서 그때 사용한 돌들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일주문은 그 십리
길 중 후반에 위치해 있었다.
이 일주문을 통과한뒤에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서야 사천왕문에 도달을 했
다. 불가의 수문장과도 같은 이 사천왕문은 매우 컸다. 사천왕상도 거대해
서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하였다. 사천왕은 제석천이 거느리고
있는 천신이었다. 사천왕이 있는 사천왕천은 가장 낮은 등급의 천계였다.
사천왕은 수미산에 살고 있었다. 동쪽을 맏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황금타(黃金타)에 있는 천궁(天宮)에 살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칼이 있었
고, 왼손에는 보석을 쥐고 있었다. 그 옆에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의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 광목천왕은 서쪽을 지키며 수미산 중턱에 있는 백은타
(白銀타)에 살고 있었다. 붉은 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을 들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보탑을 들고 있었다. 증장천왕(增長天
王)은 수미산 남쪽 유리타(琉璃타)에 살고 있었다. 오른 손에는 용을 쥐고
있었고 왼손에는 여의주를들고 있었다.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북쪽 수정타
(水精타)에 살며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있었다. 비파를 들고 있었다.
이들 사천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찔한 공포를 자아내게 하였다. 그것은
왕유정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이곳을 지나면서 느꼈던 공포감이 머
릿속에 생생이 떠올려졌다. 어린 나이에 이 신상들을 보고 얼마나 놀라서
울었는지 처음에는 모두들 울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왕유정은 그런 생각
을 접어두고 길을 올랐다.
사천왕 문을 지나고 몇 개의 문을 더 지나야 불이문(不二門)이 나타났다.
불이문을 지나야 소림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웅보전 장경각 약왕당.
소림삼십육방 등등의 전각군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각군들 외에
도 무수한 암자들이 소실산의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가히 그 숫자와 크기
만으로도 중원 불문의 성지이자 무학의 본산이라 치부할 만 했다.
왕유정은 우선 대웅전에 가서 삼배를 올리고 향화를 한뒤에 나한전으로 향
했다. 그는 가는 길목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마당을 쓸고 있는 노승이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낡은 승포를 걸치고 머리를 삐집고 잔디처럼
자란 하얀 머리카락을 하늘로 곳추 세운 노승이 비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
었다. 노승은 비를 들고 아주 천천히 마당을 쓸고 있었다. 마당에는 겨울이
라 낙옆도 떨어지지 않았고 눈은 이미 치워져서 깨끗한 상태인데도 노승은
쓰는 것을 멈출지 몰랐다.
'허 저분이 아직까지 살아 계시다니'
왕유정은 자신이 어릴 때 저 노승이 이곳에서 비질을 하는 것을 본적이 있
었다. 그때는 지금보다는 조금 젊어 보였었다. 왕유정은저 노승을 계속 잊
고 있었는데 오늘 보자 옛생각이 나서 잠시 멈추어 섯다. 저 노승이 언제부
터 마당을 쓸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누가 가서 물어 보면 웃을 뿐 아무
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당이 깨끗하나 더러우나 늘
저렇게 비질을 했다. 모두들 저 노승이 미쳤다고 생각을 하고 아무도 관심
을 가져 주지 않았다.
왕유정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나한전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왕유정이 고
개를 돌리자 그 노승에 대한 생각은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에게는
오직 나한전의 수좌이자 자신의 사형인 혜명대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 뿐
이었다.
소림십팔나한을 휘하에 두고 있으며 소림 무승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
는 나한전주인 혜명대사는 무림고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푸근한 살집에 양
볼에는 볼거리를 앓은 것 처럼 넉넉한 살집이 매달려 있었다. 그 살집은 축
늘어지거나 퉁퉁부어 오르지 않고 팽팽한 살결을 유지하고 있어서 보는 이
로 하여금 미륵의 환생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눈매와
동자의 볼처럼 붉은 양볼은 순진무후구한 아이를 보는 듯했다. 그 앞에는
왕유정이 앉아 있었다. 왕유정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혜명대사는 왕유정의 이야기를 다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아미타불."
그는 눈을 내리감고 조용히 합장을 하였다. 그리고 염주알을 굴리기 시작했
다. 그가 들고 있는 염주는 보통 고승들이 쓰는 씨알이 굵은 열알짜리 염주
가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이 쓰는 백팔염주였다. 얼마나 오랬동안 ㅆ는지 반
질반질한 묵광이 빛을 토해 내고 있었다. 이 염주는 염주가 가지는 본래의
용도와 함께 암기로도 사용이 될 수 있었다. 염주알이 나무가 아니라 강철
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혜명대사는 이것을 암기로
날려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제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강호에 신비세력이 하나 더 생긴 것 같군."
"그렇습니다. 그들을 일반 녹림도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 걸리는 점이 있습
니다."
왕유정은 일단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 내었다고 생각했다. 소림사가 표물을
턴 일개 산적들을 잡기 위해서 고수들을 하산 시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
다. 그래서 왕유정은 소림사가 그들이 산적들이 아니라 신비문파의 고수들
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혜명대사는 염주알을 굴리다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왕유정을 바라보았다.
"사제"
"예"
"사흘전에 반혈맹이 삼혈맹의 종남지단을 붕괴시켰네. 그곳에 있던 반마와
일백이십구명의 삼혈맹도가 죽었네."
그말에 왕유정은 눈을 크게 떴다. 낙양지단에 이어서 종남지단까지 무너졌
다면 삼혈맹이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
이었다. 그리고 그 무대가 하남과 협서인 이상 이 일대가 혈전장으로 변하
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하남에는 소림사가 있었고 협서에는 화산파가 있
었다. 그리고 이 일대에는 소림과 화산의 제자들이 득실대었다. 백도문파의
고수들이 삼혈맹에게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들이 심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반혈맹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것은 뒤집어 말해서 삼혈맹과 반혈맹의 혈전에 소림과 화산의 제자들이
피를 볼 수 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피를 흘리면 가많이 있
을 소림과 화산이 아니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뻣한 것이었다. 소림과
화산대 삼혈맹의 대혈전. 그리고나아가 정사대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왕유정은 주먹을 움켜 쥐었다. 소림은 지금 조용히 숭산에 자리잡고 있었지
만 천하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은 자신의 표국의 안위에 대한 걱정
으로 소림에 올라왔지만 소림은 그보다 더 큰 것을 보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국에서 고수를 청하러온 자신이 부끄러워 지기 시작했
다. 혜명대사는 합장을 하였다.
"아미타불"
왕유정은 그 불호에서 자신이 청한 것, 아니 청하려 했던 요청의 대답을 들
을 수 있었다. 소림은 지금 하산을 시킬 제자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사방
에 나가 있는 제자들을 불러 모아야 할 실정인 것이었다. 삼혈맹은 소림 혼
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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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룡은 얼굴을 메만졌다. 오늘은 붕대를 푸는 날이었다. 지난 며칠동안
붕대를 풀자마자 약을 다시 바르고 금새 감는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햇다. 이철룡은 떨리는 손으로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한꺼풀 한꺼풀 붕
대가 벗겨지고 마지막으로 왼쪽 뺨에 붙어 있던 부분이 떨어졌다. 이철룡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세숫대야를 가져다가 얼굴을 ㅆ기 시작했다.
얼굴을 ㅆ자마자 동경앞으로 달려갔다.
이마에서는 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코 ㄲ에는 한방울의 물방울이 맺혔다
가 똑 하고 떨어졌다. 얼굴은 며칠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서 인지 약간 창백
했다. 그리고 그의 턱과 코밑에 조금 나 있던 솜털들은 몽땅 빠져 있었다.
이철룡의 시선이 눈위로 향했다. 없었다. 눈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눈섭이
하나도 없었다. 이철룡은 얼굴을 찌뿌렸다. 그래도 얼굴이 모두 상하지 않
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 인피면구가 하루나 이틀정도 더 붙어 있었
다면 뗄데 얼굴이 더 상했을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철룡은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고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눈섭이 없는 것을 빼면 별 이상한
데는 없었다. 이철룡은 여인들이 눈섭을 그릴 때 쓰는 작은 붓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섭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그리는 눈섭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한쪽이 마음에 들면 다른 한쪽이 이상했고, 한쪽을 고치면
다른 한쪽과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몇번이고 고친 다음에야 겨우 볼만한
눈썹이 되었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눈섭이 없다는 것을 알기 힘들 정도
로 진하게 칠해 놓았다. 이철룡은 목을 한번 돌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기지개를 켰다. 얼굴이 멀쩡하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 몰랐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차가운 북풍이 사정없이 몰아쳐왔다. 이철룡은
얼른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몸을 오들 오들 떨면서 양팔로 몸을 부볐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이철룡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화산파에서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던 자신이었다. 가끔 장난을 잘쳐서 혼도 몇번 났지만 그정도는
애교라고 모두들 생각을 했다. 강호에 나가면 뭇 영웅호걸들을 호령도 하
고, 절세미녀들과 정다운 한때도 보내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강호에서 자신 같은 초보자는 남들의 밥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던 것이었다. 문파에서 배운 무공이 전부인 줄 아는 자신
같은 사람. 처음 본 사람을 쉽게 믿어 버리는 멍청한 인간. 음식에 독을 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인물. 이철룡은 그런 생각
을 이어가자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고 바보 멍청이처럼 생각이 되었다. 그래
서 그는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몇대 갈겼다. 머리가 아팠다. 이철룡은
머리를 쓰다듬고 제자리에서 몇번 뛰었다. 그리고 외투를 두껍게 껴 입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눈두덩이가 잔떨림을
일으켰다. 입술은 오그라 들었고 양 빰은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이철룡
은 성큼 발을 내딧었다.
전각은 아래로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계단의 끝에는 너른 연무장이
있었다. 연무장에는 십여대의 마차가 질서정연히 늘어서 있었다. 말은 없었
다. 연무장의 한쪽에는 십여개의 창고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표사들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다. 이철룡은 양볼을 쓰
다듬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저쪽에서 한 표사가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이철룡에게 다가와 읍를 했다.
"이공자님"
"아예"
이철룡도 가볍게 읍을 했다. 얼굴은 본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이름이 기억
이 나지않았다. 하지만 표사는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거리
며 웃었다.
"화산파에서 매화검군 이한생 대협과 죽검서생 곡현대협등, 화산사검께서
모두 저희 표국으로 오신다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그말을 듣자 이철룡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오줌이 마려
워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 가서 해결할 데도 없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사는 더욱 떠벌렸다.
"그 네분이 오면 저희"
이철룡은 급히 읍례를 올리고 말을 하였다.
"급해서 이만"
이철룡은 총총히 표국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표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화산사검에 대해서 가지는 관심과 흥분은 이철룡과 달랐다. 표사는 화산사
검이 자신들과 힘을 합하여 이번에 표행을 턴 이들을 잡으리라 기대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화산 사검도 중원표국의 표행이 털렸다는 말을 듣고 그
방법이 장안표국이 털린 것과 유사해서 그것을 논의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었다. 화산 사검은 이철룡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철룡은 그렇지 않았다. 화산사검이 오면 매화검군 이한생은 자신
이 집에 돌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한소리 할것이 분명했다. 또한 여기 까
지 오게된 과정을 설명하다 보면 자신의 멍청한 행동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
었다. 그것은 이철룡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철룡은 총총히 중
원표국의 문을 나선 것이었다. 어디로 갈 목적지는 없었다. 그러나 화산사
검이 낙양으로 온다면 서쪽으로는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철룡은
동쪽으로 길을 택했다. 낙양의 동쪽에는 개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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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자유로이 춤추며 떨어져 내렸다. 한송이 한송이
꽃잎이 되어서 땅위를 포근이 감싸 않았다. 떨어지던 눈송이가 ㅇ은 검날
끝에 사뿐이 내려 앉았다. 검날은 아무런 미동이 없었고 끝에 매달린 눈송
이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는 바람도 불지 않았고 눈도
더 이상 내리지 않는 것 같았다. 탓 검날이 상하로 움직였다. 그에 따라서
눈송이도 상하로 움직였다. 검날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고 눈송이도 그대
로였다. 그것도 잠시 눈송이는 반으로 갈라지면서 검날을 타고 떨어져 내렸
다. 그러자 바람이 불고 주위에는 눈송이들이 더욱 떨어져 내렸다.
"후우"
검날위로 거친 숨이 토해져나왔다. 검을 쥐고 있는 인영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굵은 눈섭과 서글한 눈매 그리고 꽉다물어진 입술은 매두 두터
웠다. 옷은 백의를 입고 있엇는데 가슴에 백목련이 수놓아져 있었다. 바로
백리세가의 소가주인 백리웅풍이었다. 백리웅풍은 눈에 덥힌 발을 바라보았
다. 한쪽발은 시린 것이 느껴졌지만 다른 한쪽은 시린 것이 느껴지지 않았
다. 그쪽은 의족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백리세가의 식솔들은 개방의 호위로
이곳 개봉에 모두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이들은 개봉성내에 장원을 임대해
서 살고 있었다. 이들이 개봉에 정착을 하자 그때 까지 살아 있던 백리세가
의 무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모두들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모여든 것이었다.
백리웅풍은 월동문을 지나 약그릇을 들고 오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역시 백
의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 창백한 안색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미녀였다. 백
리세가의 대소저인 백리소소였다. 백리웅풍은 백리소소를 바라보며 말을 했
다.
"영풍이 약이냐?"
"예. 오라버니께서는 이화검법을 연마하시고 계시군요."
백리웅풍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화검법(梨花劍法)은 백리세가가 만들어낸
검법이었다. 이것은 배꽃잎이 바람에 무수히 날리는 것을 보고 창안해 낸
검법이었다. 바람에 자유로이 휘날리는 배꽃잎들을 베면서 자연히 검법이
숙달이 되는 것으로 쾨와 환이 절묘하게 조합이 된 검법이엇다. 방금 백리
웅풍이 한 한수의 동작은 이화검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인엽만백(引葉滿
白)이었다.
검기로 배꽃잎을 끌어 당겨서 검날 끝에 세워 놓고 검을 휘둘러 떨어뜨리거
나 베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의 검기가 검에서 ㅆ아져나와 상대를 베
는데 반해서 이 수법은 상대의 병장기나 공력을 자신의 검끝으로 유인을 하
는 초식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림으로서 상대의 병장기도 들어
올리는 효과를 가져 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뒤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단순한 동작으로 상대를 베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지는 실전에서 사용을 할
정도로 익히기는 정말로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펼칠 수 있다면 더없는 위
력을 발휘했다. 상대의 병장기를 자신의 검으로 유인한뒤에 공격을 하기 때
문에 상대는 방어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었다.
이 검초가 상대의 병장기를 유인하는 시간은 매우 ㅉ았다. 그러나 그 ㅉ은
순간이라도 상대에게 헛점이 보인다면 충분히 벨 수 있을 정도의 후속공격
이 갖추어져 있었다. 백리소소는 그릇을 들고 전각안으로 들어가며 백리웅
풍을 바라보았다.
"오빠 잠시뒤에 연운각에서 뵈어요."
"알았다."
전각문앞과 지붕위의 눈은 모두 녹아 있었다. 그래서 처마를 타고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전각들 지붕에는 눈이 아직 그대로 있었고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것에 비하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안은 매우 더웠
다. 한 여름의 찌든 더위도 이보다는 낳을 것이었다. 백리소소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맷히기 시작했다. 방안 한쪽에는 큰 청동향로가 있었고
그 향로에서는 하나의 굵은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큰 침대가 있었다. 그 침대위에는 한명의 인영이 누워 있었다.
그는 바로 백리영풍이었다. 백리영풍의 안색은 창백하다못해 헬쓱했고, 베
개 주위에는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백리소소는
이마와 콧잔등의 땀을 딱고 그 옆에 가서 앉았다. 백리영풍은 힘없이 고개
를 돌려서 소소를 바라보았다.
"누나"
백리영풍의 손이 이불밖으로 나왔다. 소소는 그 손을 꼭 움켜 쥐었다.
"그래 곧 일어 날 수 있을꺼야. 원로분들께서 사방으로 영약을 구하러 가셧
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꺼야"
백리영풍은 고개를 저었다. 소소는 아무말을 하지 않고 약을 그 앞에 가져
갔다.
"아"
백리영풍은 입을 아 벌렸다. 소소는 그 입에다 약을 흘려 넣어주었다. 아주
천천히. 백리영풍은 꿀꺽꿀꺽 약을 마시기 시작했다. 백리영풍의 얼굴은 잔
뜩 찌뿌려져 있었다. 약을 다 먹자 백리소소는 옆에 있던 사탕을 하나 입에
물려 넣어 주었다. 백리영풍은 그것을 입에 물며 소소를 바라보았다.
"누나 이거 어디서 났어"
소소는 백리영풍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취장로님께서 가지고 오신거야."
백리영풍은 몸을 뒤로 움직여서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백리영풍은 양산박
의 싸움에서 중상을 입은뒤에 제대로 치료를 받을 시간도 없이 다시 삼혈맹
에 잡혀 들어가는 바람에 내상이 악화가 되었다. 백리영풍에게는 찬바람이
독약과도 같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생명을 갉아 먹는 일이었다. 백리영풍
은 반짝이는 눈으로 소소를 바라보았다.
"누나. 소연 누나랑 소취는 좀 어때. 소취는 많이 놀랬을 텐데"
백리소소의 눈가가 일순 붉어졌다.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모두 괜챦아. 소연이는 개방총타에 취장로님과 함께있고, 소취는 아직 방
밖을 나올려고 하지 않아. 곧 좋아 지겠지."
"백부님은"
백리소소는 고개를 돌려서 문가를 바라보았다. 이들 중에 가장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백리인군이었다. 통상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강호가 어떤 곳인지
아는 백리인군이 조카들과 자기 딸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이끌어야 정상이었
다. -백리웅풍과 소소는 백리무군의 자식들이었고, 백리영풍과 소취는 백리
제군의, 백리소연은 백리인군의 딸이었다.- 그러나 백리인군은 연공실에 처
밖혀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소소가 가끔 내려가도 보이는 것은 광기 어린
눈동자 뿐이었다. 어떤때는 소소가 그런 백리인군의 눈을 보고 놀랜적이 있
지만 모두 가문의 혈채에 대한 원한이라고 생각을 했다.
"무슨 신공을 수련하시나봐. 자세한 것은 말씀을 안하셔."
백리영풍은 소소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누나 혼담은 어떻게 ㄷ어."
백리소소는 호남 남궁세가와 혼담이 오고가고 있었다. 그러나 백리세가가
멸망한 지금 그 혼담이 성사되리라고는 백리소소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리고 지금은 자신의 혼담보다 동생들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다. 백리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백리영풍은 조용한 소리로 말을 했다.
"남궁형은 멋있는 형이었는데"
백리영풍은 이불속으로 깁이 몸을 파묻었다. 소소는 백리영풍의 이마를 쓰
다듬어 주고는 빈 그릇을 들고 나갔다. 밖은 아직 눈이 내리고 있었고 백리
웅풍은 눈을 계속 맏고 있었다. 소소는 문득빙당호로가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그정도냐"
백리웅풍은 소소를 빤이 바라보았다. 소소는 고개를 끄떡였다. 백리웅풍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식구가 늘어가고 있으니 돈이 딸리는 것은 기정사실이
었다. 그리고 당장 돈이 들어올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모든 기업은 사해방
이 차지한 뒤였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재화도 삼혈맹의 공격때 모두 빼았
겼다. 지금 이렇게 장원을 빌려서 있는 것은 모두 개방이 편의를 봐주었기
때문에 가능 한 일이었다. 그러나 개방이 편의를 봐줄 수 잇는 것도 여기까
지였다. 개봉에도 무림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일구어놓은 상권이 있었다. 그
들은 개봉의 상권에 백리세가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개봉에
있는 백리세가는 개봉지역의 무림인들이 볼때는 손님일 뿐이었다. 때문에
백리세가가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였다.
"그래서 취장로님이 몇 군데 명문 귀족의 자녀들을 주선해 주시겠다고 했어
요."
백리소소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백리소소가 말하는 것은 명문귀족과 거상
부호들의 자제에게 백리세가의 무학을 전수해 주자는 것이었다.물론 그 대
가는 돈이었다. 이런 관계는 사승의 관계라기 보다는 계약의 관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명목상으로 사부 제자라고 하지만 부호의 자제들은 자신들이 거
느리고 있는 무술선생정도로 여길 뿐이었다. 그들은 멋과 폼으로 무예를 익
히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강호에서 말하는 사승의 관계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은 상승의 무공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거상들과 부호들은
만금을 들여 명문대파에 자제들을 보내기는 하지만 그들이 배우는 것은 껍
데기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명문대파에가서 이것 저것을 가르쳐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강호인들 중에는 말보다 주먹이 압서는 사람들이 많았
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개봉 일대의 거상 부호들은 백리세가의 무공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무림오대세가 중 한자리를 차지했던 명문정파의 상승절예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자신들을 오만히 내려보던 강호
의 대문파를 아래로 내려볼수 있다는 쾌감을 누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알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공은 내가 가르치마."
"오빠."
"하루에 반나절 정도만 지도하면 되겠지"
백리웅풍은 굳게 닫긴 입술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아직 눈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