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 협상 (15/95)

  

  15. 협상

  

  사해방과 삼혈맹의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무석분타로  집결한 청룡장의 

무사들은 희소식을 접했다. 그것은 소천이 지휘한 거경방과 사해방의 동해 

대해전이 거경방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놀라운 소식

은 적천마군을 생포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곧 전 강호로 퍼졌고, 무석 

근처에 있던 무림인들은 속속 무석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무림

의 공포. 삼혈맹의 오대마군 중 수석마군인  적천마군을 보기 위해서 몰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무석은 무림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했다.

  청룡장 무석분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원래 청룡장 분타의 

정원은 오십여명이었다. 유사시를  대비해서 백  수십여명까지는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청룡본장에서 지휘본부로 쓰면서 근 

이백여명이 몰려왔고 거기다가 적혈마군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몰려든 수

백명의 무림인들로 넘쳐났다. 청룡장에서는 부랴부랴  마당에 천막을 치고 

인근 밭에도 막사를 세웠지만 넘쳐나는 인원들은 어쩔 수 없었다. 오십 명

짜리 막사를 세우면 백 명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평소에 적천마군이 나타

났다면 수십 리를 도망칠 인물들이지만  생포된 적천마군은 이렇게 구경거

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청룡장에서는  그런 것을 부추기지는 않

았지만 나름대로의 계산에 의해 방조하고 있었다. 

  

  단우백은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상관평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눈을 감고 두 손가락으로 약간 옆으로 숙여진 머

리를 받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서왕이 싱글벙글하며 그 큰 손을 부볐다. 

  "사제가 큰 건을 할 줄 알았지만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해 올 줄은 몰랐

습니다. 대사형 이걸로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긴 거라고 봐야겠지 않겠습

니까?."

  단우백은 서왕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혈마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다른 사대마군도 멀쩡하니 싸움이 

끝난 거라고는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도망을 쳤던 인의당의 고수들도 모두 

돌아왔고 전 무사들에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니 본격

적인 싸움에도 낙관을 해도 좋지. 거기다가 우리가 싸울 주무대가 장강 하

구이니까 수상전을 펼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

  단우백은 그렇게 말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듯이 상관평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곳 무석으로 오면서  인의당의 고수들은 하나  둘 종적을 감추었었

다. 단우백은 그것을 알았지만 내심 모른 척하였다. 싸우기 전부터 도망을 

칠 위인들이라면 싸움터에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

런 그들이 적천마군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다시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번에도 단우백은 모른 척 하였다. 아직 그들은 쓸모가 많았

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평은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단우백은 상관평이 저렇

게 깊이 생각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눈 깜빡할 

사이에 답을 찾아내는 인물이 문상이었다. 헌데  저렇게 장고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터질 것만 같아 단우백은 못내 불안했다. 

하지만 상관평의 사색을 깨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상관평의 

눈이 떠졌다. 단우백은 상관평을 바라보았다. 

  "문상.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앞으로의 일을 잠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래 어떻던가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삼혈맹에서 휴전을 제의 해 올 가능성이 높

습니다." 

  "그럴 리가요? 삼혈맹은  작은 패배를 당했다고  물러날 곳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아직 주력이  건재하지 않습니까? 초전에  손해를 조금 보았다고 

물러난다는 것은 삼혈맹답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 물러난다면 삼혈맹은 그 

위명이 크게 훼손 될 것입니다."

  단우백의 말에 상관평은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여기가 하북이라면 아마 그랬을 겁니다."

  단우백은 고개를 갸웃했다. 단우백은 상관평의 말을 좀 더 잘 듣기 위해

서 고개를 상관평  쪽으로 숙였다. 상관평은  그런 단우백을 생각해서인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삼혈맹에서는 이번 동해의 해전으로 수전에 대한 자신들의 전력을 자각

했을 겁니다. 삼혈맹은 이제 동해로의 진출은 당분간 꿈에도 꾸지 않을 겁

니다. 그렇다면 우리 청룡장을 치기 위해선  장강을 도하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장강  중상류로 이동해서 도하를 한다고 

해도 곳곳에 강과 호수가 막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 피해서 저희 장까지 

온다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분산해 우리 장의 영역으

로 잠입시킨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요. 그렇게 잠입할 수 

있는 정예 고수들만 가지고는 저희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저들도 잘 알

고 있습니다. 게다가 방금 전 들어 온 정보에 따르면 낙양마장이 반혈맹에 

의해 무너졌다고 합니다."

  "낙양마장이라면 낙양성에서도 제법 큰 마장이  아니요? 왜 반혈맹이 거

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요?"

  "낙양마장의 본래 면목은 삼혈맹이 낙양지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확

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창왕 언무외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창왕 언무외!"

  단우백과 서왕은 거의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창왕 언무외는 이들이 

검을 잡기 전부터 들어오던 고수의 대명사였다.  그가 반혈맹에 가담을 했

을 줄이야……. 

  "반혈맹도 믿는 구석이 있기는 있었구려."

  "창왕 언무외는 삼혈맹에서도 상대할 고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강

한 고수입니다. 아마 혈마가 직접 나서기 전에는  일 대 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반혈맹이 이런 저력을 가지고 있다면 삼혈맹

에서도 다시 작전을 짜야 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 저희 청룡장에 수천 여

명의 인력이 묶이게 된다는 것은 삼혈맹으로서는 바라지 않는 상황입니다. 

삼혈맹이 단기간 내에 우리 청룡장을 섬멸하여 강호를 다시 한번 위진시키

고자 대병을 일으켰지만 지금의 상황은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

니다. 그렇게 되면 반혈맹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고, 여타 백도문

파도 삼혈맹에 노골적인 공세를 취할 것입니다. 저희 장과 일단 휴전을 하

면 그 유효인력을 반혈맹 토벌에 투입할 수 있고, 또한 다른 백도문파들도 

선뜻 나서기가 꺼려지게 될 겁니다. 누구도  자신들이 먼저 피해를 보면서 

까지 삼혈맹과 맞서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흐음."

  "문제는 삼혈맹도 우리가 확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인 양보안을 제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저들이 어떤 협상안을 제시해 오겠소이까?"

  "몇 가지 생각해 둔 게 있기는 있습니다만  아직은 확정 지을 수 없습니

다. 삼혈맹에서 보내오는  사람을 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

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잠시뒤 한 무사가 문 밖에서 말을 했

다.

  "총호법님께서 적천마군을 대동하고 십리 밖에서 오시고 계시답니다."

  단우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상관평이 섭선을 흔들어 제지를 했다.

  "체통을 지키십시오. 적천마군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이십시

오. 지금은 강한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상관평은 밖을 보며 말을 했다.

  "총호법님을 모시고 이리로  오거라. 적천마군은  데리고 올  필요가 없

다."

  단우백의 얼굴이 약간 찌푸렸다. 

  "문상……?"

  "총호법께서는 적천마군을 데려 올 테니 아무런 염려를 마십시오."

  

  두두두. 수십여 필의 기마가 한 대의 마차를 호위하며 내달렸다. 기마대

는 모두 청색무복에 바람에 휘날리는 백색피풍의를 걸치고 있었다. 선두에 

선 기마대원은 청룡이 소요하는 깃발을 들었다.  깃발은 바람에 한없이 펄

럭여 청룡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두마차의 마부석에는 두 명

이 앉아 있었다. 

  소천은 원래 적천마군을 말에 태워 단둘이 조촐히 갈 생각이었지만 관도 

곳곳에서 무림인들이 몰리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부랴부랴 마차로 바꾸고 

인근 분타에서 기마대를 지원을 받아 꾸린  것이다. 배를 이용할까도 생각

을 했지만 인근 분타의 모든 청룡선이  장강에 투입되어 있어 말을 이용했

다. 민선을 이용했다가 자칫 불상사라도 일어나면 안되겠기에 취한 고육지

책이었다. 마차 안에는 적천마군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 앞에

는 소천과 좌목이 자리했다. 좌목은 거경방주의  회복 여부를 확인하러 가

기 위해 동승을 한 것이다. 소천은 적천마군을 보며 물었다. 

  "피곤하시지 않소?"

  "아니네."

  적천마군은 무뚝뚝한 어조에 소천은 빙그레 웃었다. 적천마군은 전신 혈

도가 모두 점해져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소천은 한 시진마다 혈도를 점검

했다. 적천마군정도 되는 고수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혈도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천은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차를 타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도 기분이 

틀리군요."

  좌목은 푹신대는 의자를 쿡쿡 누르며 창밖을  보았다. 마차가 갑자기 정

지를 하는 바람에  좌목은 앞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소천은 양발로 지지를 

했다. 하지만 혈도가 집혀서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적천마군은 고개

를 바닥에 처박아야 했다. 소천은 그런  적천마군을 제대로 세워주고 창문

을 열어 밖을 살폈다. 마차 주위를 물샐 틈 없이 호위하고 있는 기마대 바

깥에는 수백 여명의 군웅들이 몰려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적천마군을 죽이라고 소리치며 돌을 던지도 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텅텅텅. 마차에 돌이 맞고 퉁기기도 했지만 청룡장의 무사들을 의식해서

인지 공력을 실어 던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공력이 높은 고수들이 저항을 

할 수 없는 상대에서 손을 쓴다는  것을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기기 때문에 

돌을 던지지는 않는 건지도 몰랐다. 적천마군을 소천을 보았다. 

  "나를 잠시 내보내 주겠나?"

  소천은 고개를 저으려다가 적천마군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적천

마군의 눈은 광채를 번뜩이고 있었다. 그가  지금 무공이 폐쇄되었다는 것

이 믿어지지 않았다. 소천은 적천마군의 공력을  묶어두는 혈도를 더욱 강

하게 집고 몸을 움직이게 마혈을 풀었다. 이렇게 되면 적천마군은 몸은 움

직일 수 있지만 공력은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천이 아니

라 좌목이라도 단칼에 적천마군의 목을 칠 수 있었다.

  딸깍, 문이 열리고 펄럭거리는, 혈포를  입은 적천마군이 모습을 드러내

자 주위는 일순 침묵에 빠졌다. 중인들은 단지  그가 눈을 빛내고 있는 모

습 하나에서만도 공포가 되살아났다. 바람에 펄럭거리는 혈의는 그들 자신

의 피처럼 느껴졌다. 소천이 그 옆에  내려섰다. 붉은 혈의와 푸른 청의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적천마군은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은 

매우 빛이 나고 있었다. 기마대도 군웅들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

다. 그때 소천의 손이 적천마군의 가슴을 밀쳤다. 적천마군은 뒤로 밀려났

고 소천은 적천마군의 앞에서 서서 검을  빼들었다. 소천의 앞으로 무언가 

번쩍이며 날아왔다.

  파아악. 소천의 검이 빛을 발하고 십여 개의 암기는 소천의 발밑으로 떨

어져 내렸다. 척, 소천의 검이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암기를 날리기 

위해서 손을 들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는 소천이 검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한 동작에 몸이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아니 움직이면 소천의 검이 자신

의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척,  소천은 검을 거두었다. 

기마대는 암기를 발사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 소천으로부터 어떠한 일

이 있어도 자신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공격을 하지 말라는 엄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천은 검을 거두고 포권을 취했다. 

  "적천마군은 이미 포로로 잡혀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합니다. 우리 백도

인이 마도처럼 행동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두들 삼혈맹에 대한 개인적

인 원한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지금은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

가 분타로 갈 수 있게 모두들 길을 열어 주십시오. 오늘 하루는 저희 청룡

장 무석분타에서 적천마군을 볼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중인들은 길을 터 주었다. 소천은 적천마군을 데리고 마차 위에 올랐다. 

그러자 기마대와 마차가 동시에 출발을 했다. 

  

  무석분타 정문에 다다르자 소천과 좌목 적천마군은 마차에서 내렸다. 길 

좌우에는 수십여명의 청룡장 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길밖

에 서 있는 무림인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적천마

군은 파아란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았다. 주위에 있는 군웅들은 

적천마군을 보고 서로 수군대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 있는 무림의 공포를 

보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적천마군은 어깨를 펴고 정

면을 향하며 성큼 내 딛었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모르

는 이들이 보면 그가 청룡장의 소천을 압송해 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모습에 청룡장의  무사들과 군웅들은 저으기  감탄하고 있었다. 청룡장 

무석분타의 정문을 넘어서서 몇 발짝 걸어왔다. 그 순간 한 청룡장 무사가 

달려오더니 협봉검으로 적천마군의  목 찔렀다. 그  순간 적천마군은 눈을 

내리 감았다. 그의  공격은 정말로 의외였고  청룡장의 무사들은 자신들의 

저지선 밖에 있는 자들을 감시하느라 그에게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게다

가 적천마군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눈만 내리 감았다. 협봉검은 여지없

이 그의 목을 꿰뚫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소천의 다리가 적천마군의 등을 

내찼다. 적천마군은 그대로 앞으로 퉁겨져 나갔다.

   그 한 수는 협봉검으로 적천마군을 죽이러 내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천은 협봉검이 적천마군의  목을 비껴가게 찬  것이다. 적천마군의 몸이 

앞으로 쏠림에 따라서 협봉검이 방향을 틀 시간을 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런 소천의 돌발적인 행동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적천마군

이 뒤로 물러나거나 밑으로 쓰러졌다면 그 순간에 협봉검의 방향을 바꾸어 

상대의 목을 관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 퉁겨져 나왔기 

때문에 협봉검을 바꿀  시간이 부족했다. 따라서  청룡장무사가 들고 있는 

협봉검은 적천마군의 어깨를 관통했다. 그 순간  소천의 검이 빛을 뿌리고 

협봉검을 들고 있는 살수를 단칼에 베었다.  하지만 살수도 녹녹하지 않는

지 협봉검을 놓고 뒤로 물러서면서 붉은 구슬을 내던졌다.

  "벽력탄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중인들은 몸을 날렸고  청룡장의 무사들은 눈을 부릅떴

다. 소천은 적천마군의 몸을 감싸안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좌목은 그 자

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그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

지 않은 것이다. 퍼펑. 붉은 구슬이 터지면서 검은 연막을 만들어 내었다. 

  "외형삼각진을 구축해라!"

  소천의 명령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청룡장의 무사들은 소천의 주위에 몰

려와서 삼각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진은 벌판에서 다수의 적과 싸울 때 

유용한 집단전법이었다. 그리고 이 진은 각기  정위치가 있었기 때문에 청

룡장의 무사의 탈을 쓴  살수가 있다면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진법이었다.

  소천은 연무가 가라앉자 적천마군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협봉검이 박힌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소천은 얼른 지혈을  하고 협봉검을 부러뜨렸

다. 의술에 밝지 않은 사람이 검을 잘못  뽑았다가는 한쪽 팔이 완전히 병

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천은 그렇게 까지 적천마군을 생각하는 자신

이 한심스러운지 피식 웃었다. 소천은 그가 삼혈맹의 오대마군 중 한 명이

기 이전에 무인으로서, 적수로서 이렇게 죽게 내버려두기에는 아깝다는 생

각이 들었다. 

  "왜 죽으려고 했소? 그리고 죽을 거면  자살을 하지 일개 살수 나부랭이

의 검에 죽으려고 했소?"

  "본 맹에서 자살은 대맹주의 허락 없이는 용납되지 않는다."

  소천은 고개를 흔들고 적천마군을 어깨에 걸쳐맨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의자가 부서지고 관목의 가지들이 꺾이고 

심지어 작은 나무는 아예 뿌리째 뽑혀  있기까지 했다. 벽력탄이라는 외침

에 담벽을 허물고 도망간 위인까지 있었다. 사람들에 밟혀서 쓰러진 채 신

음성을 토해내는 자들도 부수지기였다. 벽력탄의 살상력이 일 이장을 벗어

나면 급감한다는 것을 알만한 이들도 주위를 난장판을 만들며 담밖으로 내

뺀 것이다. 소천은 살수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살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

았다. 소천은 적천마군을  짊어지고 전각으로 향했다.  소천은 적천마군이   

갑자기 죽으려고 마음을 바꾼 것이 궁금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청룡장의 소속이 아닌  인물들은 양해를 구해서  분타 밖으로 내보냈다. 

그들도 한바탕 난리를 겪어서인지 순순히 밖으로 나가 주었다. 

  소천은 문상의 예측대로 부득불 단우백이  있는 전각으로 적천마군을 데

려왔다. 제이, 제삼의 살행을  막기 위해서는 그곳보다  안전한 곳이 지금 

이 근처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각에 모인 군웅들은 단우백이 적천마군을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는 데에 대해서 저으기 놀라고 있었다.

  소천은 전각의 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적천마군을  앉혔다. 그리고 등에 

손을 대고 공력을 주입했다. 그 공력은  적천마군의 왼쪽 어깨로 흘러가서 

어깨에 박힌 협봉검의 조각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스믈스믈 빠져나오던 조

각은 핑 하는 소리와 함께 전면에 날아가  벽에 박혔다. 검이 밖혔던 자리

에서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피가 가라앉고 붉은 피가 흘러나오자 

소천은 얼른 지혈을 하였다. 그러자 한 명의 무사가 다가와 상처에 붕대를 

감아 주었다. 군웅들은 묵묵히 앉아 있는 적천마군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상석에 앉아 있는 단우백은 적천마군을 보았다. 

  "처음 뵙겠소이다. 청룡장의 단우백이오."

  "적천마군이오."

  적천마군의 무심한 어조에 단우백은 눈을  반짝였다. 백도의 인물이었다

면 놓치기 아까운 인물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삼혈맹의 오대마군 중에

도 수석마군이었다. 

  "가서 편히 쉬시오."

  적천마군은 내심 저으기 놀랐다. 삼혈맹에 대한  온갖 심문이 이어질 것

으로 예상했는데 아무런 심문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천마군도 이내 평

정을 되찾고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다음에 한번 겨루어 보기로 합시다."

  "그러길 바라겠소. 처소로 안내해드리거라."

  단우백의 말에 두 명의 무사가 나와서  단우백에게 읍을 하였다. 그리고 

적천마군을 보며 말을 했다. 

  "가시죠."

  적천마군이 나가자 단우백은 중인들 특히  인의당의 고수들을 보며 나지

막하게 말을 했다. 

  "오대마군 중 수석마군이 잡혔으니 이제 혈마가 올 것이오. 허나 혈마가 

온다면 잡으면 그뿐이 아니겠소? 모두들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 주

기 바라오."

  혈마가 온다는 말에 인의당의 고수들은 얼굴이  약간 어두워 졌다. 하지

만 처음 청룡장을 떠날 때처럼 죽을 상들은 아니었다. 단우백은 미소를 지

었다. 지금 도망가는 위인들은 다시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그들의 힘까지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실전이 닥치면 내뺄 이들

에게 피같은 황금을 털어 넣기보다는 그  돈으로 무사를 키우는 것이 낳기 

때문이다. 

  단우백은 혈마라는 화두를 던져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명은 단우

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의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골

똘히 생각하였다. 단우백은 냉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인의당의 

고수들은 진정한 청룡장의 식구가 되느냐 아니면 뜨내기 생활을 계속 하느

냐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슈우욱. 한줄기 빗살이  허공을 격하여 날아가  연무장의 한쪽에 세워둔 

목인의 목에 가서 맞았다. 핑핑핑. 타타탁.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간 비도는 목인의 사혈에 차례대로 가서 박혔다. 짜짜작. 십여 

명이 박수를 쳐대었다. 그리고 함성도 내질렀다.  

  "와아아!"

  "시끄러!"

  목인의 십여 장 앞에 서 있던 중년인이  호통을 쳤다. 그러자 십여 명은 

손을 얼른 내렸다. 손에 두 개의 비도를 들고 있던 자는 자신의 배를 쓰다

듬었다. 생각보다 배가 많이  나와 있었다. 예전에는  군살이 하나도 없는 

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배만 나이를 먹은 것 같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는 묵묵히 남은 두  개의 비도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었다. 

관군에 쫓기고 일류고수에게 걸려서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지만 이렇게 

무기력하지는 않았었다. 

  "으아아!"

  사해방 동해단주 왕정은 전력을 다해서 남은 두 개의 비도를 날렸다. 두 

개의 비도는 놀랍게도 목인을 관통해서 뒤에 있는 바윗덩이에 가서 퉁겨져 

나왔다. 티팅, 바위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비도로 저 단단한 목인을 관

통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한 수는 그들이 전에 

본적이 없는 수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동해단주 왕정도 어

깨를 으쓱했다. 

  "가서 좀 닦아야겠군."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는 오랜만에 흠뻑 땀을 흘려

서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목욕물을 데우라고 할까요?"

  왕정은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찬물로 하고 싶군."

  왕정은 수하들을 뒤로 한 채 수채 뒤에  있는 작은 연못가로 갔다. 이곳

은 회수의 지류를 수채 안으로 끌어들여 만든 연못이었다. 작은 이 연못은 

사해방의 동해단주가 된 기념으로 만든 것이다. 왕정은 옷을 벗고 연못 안

으로 들어갔다. 때는 초겨울이라 연못의 물은  싸늘한 냉기를 뿜어대고 있

었다. 차가운 기운이 전신을 타고 뇟속까지 전해졌다. 왕정은 정신이 모처

럼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왕정은 인기척을  느끼고 손을 흔들었다. 

자신의 몸을 닦아주기 위해서 온 시녀들임을  발자국 소리에서 알 수 있었

다. 그는 지금 혼자 있고 싶었다.  발자국소리가 멀어지자 왕정은 몸이 점

점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몸이 아니라 물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

졌다. 스르르, 왕정은 눈을 내리 감았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왕정은 지난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양산박의  대전도 그렇고 청룡장의 

양주지단 건도 그랬다. 모두들 자신이 상대하기 벅찬, 아니 예전의 그였다

면 결코 상대하지  않았을 강적들이었다. 양산박의  대전은 뒤에서 기습을 

당한 것이니 그렇다고 쳐도 청룡장의 양주지단으로 보낸 방주가 서운한 것

은 사실이었다. 마치 자신더러 죽으러 가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힘껏 싸운 

자신에게 방주는 패한 것도  모자라 수하들을 버리고  도망을 쳤냐고 윽박 

질러대었다. 

  "제기랄! 누구는 도망치고 싶어서 도망쳤나? 상대가 돼야지 싸우든지 말

든지 할거 아니야."

  왕정은 두 주먹으로 물살을 내리쳤다.  파아아. 물보라가 튀어오르고 얼

굴을 흠뻑 뒤집어썼다.  찬물에 얼굴이 일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얼굴은 

시뻘개졌다. 그리고 악다물린 왕정의 입에서 신음성  같은 소리가 터져 나

왔다. 

  "북해단주 이극상 이놈!"

  왕정은 능글능글한 북해단주  이극상의 얼굴을 떠올리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자신이 패해서 도망쳐 오면 그 작자가 늘 씹어대곤 하였다. 이

번에는 동해에서 대패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씹히는 것이 적었지만 그래

도 이극상은 이렇게 씹어대었다. 

  '동해단주가 청룡장의 양주지단을 함락하거나 큰  피해를 입혔다면 거경

방의 전선은 결코 동해로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오. 이번 동해의 패전 책임 

중에는 동해단주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아셔야 하오.'

  북해단주 이극상이 방주를 끼고 도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지

만 요즘은 아주 노골적이었다. 동서남북의 사해단주가 모두 동등한 위치인

데도 지금은 다른 삼해단주 위에 서고 있었다. 방주께 올라가는 모든 보고

들를 그를 통해서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방 내 전권을 그가 휘두르다시피 

했다. 사해방에는 공공연히  북해단주가 방주의 뒤를  이을 거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서해와  남해단주는 그런 이극상에게  굽실대었다. 하지만 

왕정은 그럴 수가 없었다. 북해단주 이극상은 어디서 굴러 온 지도 모르는 

놈이었다.

  사해방은 원래 회수 일대의 수적들이 연합해서  만든 것이다. 동해 단주 

왕정은 강소 남부 해안가와 장강하구 일대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

었다. 그의 밑에는 똘망똘망한 수하들도 많았고  왕정 자신이 수로에도 밝

아 수적질을 해먹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게다가 염상들의 소금도 운송해 

주면서 짭짤한 부수입도  챙기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구채연합이 생기고 장강수로연맹이 탄생하면서  왕정은 장강수로연맹에 가

입하라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왕정은 닭머리가  될지언정 용꼬리가 되지 

않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그 혼자서 장강수로맹의 거대한 힘에 맞설 수 있

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 것이 사해방주였다. 

  왕정은 장강수로맹과 사해방을 저울질 하다가 결국 사해방을 택했다. 그

의 선택은 나름대로 훌륭해서 장강수로맹의  일개 분타주로 전락할 위치에

서 일약 사해방의 공동수뇌부인 사해단주가 된  것이다. 그 초기에 사해방

과 장강수로맹간에 알력이 있었지만  양쪽 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선에서 타협이 잘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당시에 장강수로맹이 관

부의 집중 토벌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사해방과  싸울 만큼 여력이 남아 있

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십여 년 간 왕정은 배부르고  등따습게 살았다. 예전처럼 직접 

수적질을 하러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앉아 있어도 어지간한 표국에서 상납

이 들어왔다. 게다가 인근 부호들과 상인들로부터도 보호비 명목으로 솔찮

은 금액이 들어왔고 운하를 운송하는 화물업에도 손을 대서 운하를 이용하

는 물동량의 이 할을 자신들의 손으로 옮겼다. 

  수적에서 자신들이 털던 화물업으로 전업을 한 뒤에 잠시동안 왕정과 그

의 수하들은 헷갈렸지만 짭짤한 고정수입이 생기고 예전처럼 목숨을 걸 필

요도 없다는 것이 인식이 되자 모두들 기뻐했다. 사실 하고 싶어서 수적이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강호를  돌아 다녀도 사해방의 동해단주

라는 그럴싸한 직함이 그의 위신을 세워주었다.  그렇게 십년 동안은 정말

로 잘나가고 있었다. 백리세가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는…….

  왕정은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다.  운하의 이권을 두고 백리세가가 

공격을 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백리세가의  기업도 작은 게 아닐텐데 겨

우 녹림수채에서 발전한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기 위해서 쳐들어올지는 몰

랐던 것이다. 무슨 대의멸사니 녹림도들을  토벌해 무림평화를 지키겠다는 

거창한 명분을 달기는 했지만 그것은 엄연한  이권 싸움이었다. 그래서 다

른 백도 방파들이 백리세가를 지원해서 사해방을 치지 않은 것이다. 

  "이 모두가 이극상 그놈 때문이야."

  백리세가와 충돌이 일어난 곳은 이극상이 관리하고 있는 영역이었다. 이

극상은 운하의 무슨 수채의 채주였다고 전해지는데 확실한 것은 알지 못했

다. 단지 그의 수공과 머리를 사해방주가  인정을 해서 북해단주를 맡겼다

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백리세가와 충돌이 일어나는데

도 별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오늘날 이꼴로  만든 것이다. 왕정은 턱을 괴

고 앉았다.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야."

  왕정이 일단 이극상에 대해 의문을 갖자  이상한 점이 하나 둘씩 생겨나

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정은 그런 사실들을 하나로 연결해서 결론을 낼 능

력은 없었다. 

  "거기다가 삼혈맹은 왜 끌어 들였어?"

  왕정은 그것도 못 마땅했다. 사해방이 뭐가  아쉬워 삼혈맹과 손을 잡았

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극상과 방주는  제남을 지키기 위해서는 삼혈

맹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사해방도들을 설득했지만 왕정은 그것

이 못내 못 미더웠다. 대부분의 사해방도들이  불만이 많았지만 방주와 북

해단주가 설득을 하고 삼혈맹이라는 이름이 가진 공포에 눌려 잠자코 있었

다. 그런데 청룡장을 정벌하러 간다고 기세좋게 가다가 동해에서 거경방을 

만나 무자비하게 깨지자 사해방 내에서도 수뇌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가

기 시작했다. 

  '제기랄! 거경방이 청룡장의 팔과 같은 곳이라는  걸 몰랐나? 그리고 바

다에서는 거경방과 우리의 전력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을 방주도 잘 알고 

있는데…… 이번에 무리하게 동해원정을 떠난 것은 이극상 그 놈이 방주를 

부추겼기 때문이야. 삼혈맹이나 요동혈랑대가 바다가 뭔지나 아나? 이극상 

그놈이 바다에서도 끄떡없다고 껄떡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청룡장을 

칠 거면 장강을 도하했어야지. 장강에서 청룡선과  맞서 싸우면 피해가 크

겠지만 그래도 동해에서처럼은 안  당했을 꺼 아니야.  제기랄, 전선 다섯 

척이 힘 한번 못써보고 화포에 당했다니!  장강이라면 거경방 놈들이 화포

를 쏠 수 있었겠어? 관군이 그냥  놔뒀겠느냐고? 동해니까 아무도 보는 사

람이 없고 그 근처에  지나가는 배도  없으니까 거경방에서 신나게 쏘아댄 

거 아니야.'

  그러한 생각은 왕정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동해 해전에 참가한 사해방도

들은 모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해방도들은 거경선이 화포만 

쏘지 않았어도 그렇게 무참히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왕정

은 그런 기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을 토로해 내지 

못했다. 불만을 토로해내는 순간이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이다. 왕정은 자신의 눈앞으로  무엇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큰 

나뭇잎이었다. 그리고 그 나뭇잎에는 벌래가 먹은  것처럼 홈이 파여져 있

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글자를 이루고 있었다. 

  <방주가 가짜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소?>

  왕정은 너무 몰라서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그는 얼른 물의 상류를 바

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작은 계류만이 있었다. 그 계류 위에는 철통같

은 방비를 하고 있는 수하들이 있을  테고 그 너머에는 사해방의 정예선단

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뚫고 들어와 이런  서신을 남긴다는 것은 거의 불

가능한 일이었다. 왕정은 입사귀를 집어서 찢어 발겼다. 

  '이건 나와 방주의 사이를 음해하려는  작자의 농간이야. 내부의 소행자

이겠지.'

  왕정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렸다. 그는 북해단주 이극상이었다. 

  

  소천은 요 며칠동안 잠잘 시간도 없이  바빴다. 무석에 세운 지휘본부의 

방어체계가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단위의 병력을 지

휘해 본 인물들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다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

는 장강과 장강 이북의 양주지단 그리고  사개 분타에 전진 배치되어 있었

다. 지금 여기 있는 인원들은 인의당의 고수들과 각 분타에서 지원받은 무

사들이었다. 이들은 소수의 인원을 통솔할 능력들은 되어도 이렇게 조직을 

활용하여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문상인 상관평은 전방과 각 분타에서  날아오는 보고를 처리하고 명령을 

하달하는 것에 매달려 있었다. 무사들이 훈련이 좀 덜 되어 있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래서 이 방어체계는 소천이 맡아서 

해야 했다. 소천에게 한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이번 진세가 방어진세라

는 것이다. 원래 청룡장의  집단전법은 방어에서 출발을  했고, 그 시초가 

병법과 무공을 모르는 민간인을 조직해서 전투 경험이 많은 왜구들과 싸우

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지금  이 정도의 불협화음은 진세만 구축되

면 충분히극복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진세를 구축할 시간이었다.

  소천은 우선 담장을 두껍게 쌓고 곳곳에 쇠노발사대를 설치했다. 그리고 

분타 십리 내에는 매복조를 설치해서 운용하고  이십 리에는 경계조를, 삼

십 리에는 정탐조와 연락보호조를 설치했다.  매복조는 청룡장의 무사들로 

운용을 하였고 경계조와 정탐조, 연락보호조는  인의당의 고수들을 이용했

다. 소천이 이렇게 인의당의 고수들을 외각으로 돌리자 서왕이 근심스럽게 

물었었다. 

  "사제.이렇게 인의당을 외각으로 돌리면 모두들 도망을 가지 않겠나?"

  "사형. 어차피 도망을 갈  사람들이라면 싸우기 전에  도망을 치는 것이 

저희를 도와주는 겁니다. 싸우다가 도망을 가면 지휘체계가 엉망이 되어서 

우리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러 인의당의 

고수들을 밖으로 내돌린 겁니다."

  서왕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지금 당장은 무사 한 

명이 아까운 때라서  인의당 고수들을 억지로라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소천이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자 자신이 남에게 의지하는 것 

같아 한심스럽기도 했고 그  동안 무공연마를 게을리  한 것을 후회되기도 

했다. 그 사이 좌목은 거경방주가 청룡장에 안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

식을 듣고 바로 장강하구에 있는 거경선으로  향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선 거경선을 지키겠다며 돌아간 것이다. 소천은 대사형과 좌목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소천은 서류들을 정리하고 나서 양쪽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며칠 동

안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소천은 기지개를 켰다. 전

방에서는 이렇다할 상황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될 것 같군."

  소천은 서류들을 다시 한번 살펴 본 뒤에 몸을 일으켰다. 지휘본부로 쓰

고 있는 무석분타는 전처럼 인원이 넘쳐나지  않았다. 혈마가 직접 처들어

온다는 소문에 강호의 명숙들도 짐을 챙겨서 떠났고, 소천이 각 조를 운용

하면서 무사들의 반 수정도가 분타 밖으로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천은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다. 

  계절은 초겨울이지만 이곳 강남은 날씨가  온화했기 때문에 강북의 가을 

날씨와 비슷했다. 그래서 한  겨울에도 눈을 보기  힘들었다. 소천은 문득 

자신이 한 전각 앞에 와 있는 것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띄었다. 전각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무사가 가볍게 읍을 했다. 소천은 고개를 끄떡였다. 

  "별 이상없지?"

  "예."

  "수고들 하게."

  소천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은  평이했다. 한쪽에 작은 

침상과 탁자가 있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창문들이 모두 원목으로 막혀 

있어 그 틈새로 가는 빛이 들어온다는 정도였다.  다 식은 찻잔 앞에서 적

천마군은 고독을 음미하는 듯  했다. 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그 앞에 앉았

다.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지금 밖의 상황이 어떤가"

  "제 질문에 대답을 해드린다면 저도 대답을 해드리지요. 물론 제가 대답

을 할 수 없는 거라면 하지 않겠습니다.  단 한쪽이 대답을 못한다면 대답

을 들을 때까지 질문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적천마군은 고개를 끄떡였다. 

  "좋군."

  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했다. 

  "왜 죽으려고 하셨습니까?"

  적천마군은 소천을 바라며 말을 했다. 그의 눈은 무심한 그 자체였다. 

  "맹에서 보낸 줄 알았으니까."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그럼 맹에서 보낸 게 아니었나요?"

  적천마군은 고개를 끄떡였다. 

  "맹에서 보냈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네. 나는 강호에 

원한이 많으니 그중 한사람이 살수를 고용했겠지. 이번에는 내가 묻지. 자

네 사문이 어떻게 되는가?"

  "사부님께서 배웠습니다."

  적천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 말고 사문 말일세. 자네  사부님은 누구에게서 배우셨느냐는 말일

세."

  소천은 어깨를 으쓱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알지  못합니다. 사부님께서는 한번도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고 우리들도 물을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적천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알 수가 없군. 강호에는 뿌리가 없는 무공은 없네. 특히 상승의 무공에

는 더욱 그러하지. 헌데 우리는 청룡장의 뿌리를 알아내는데 실패했네. 천

하의 모든 유파는 몰라도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집단이라면 그 뿌리를 안

다고 자부했는데 말일세."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럼 중요하지 않은가? 상대의  뿌리를 알면 그  변식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 골격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네. 이것은 생사를 가르는 중요

한 정보가 되기도 하네. 처음 싸워보는 상대가 자신의 무학골격을 알고 있

다고 생각을 해보게."

  소천은 고개를 끄떡였다. 수준이 비슷한 경우라면 작은 조건 하나에서도 

생사가 갈라지는 것이다. 

  "그럼 마군께서는 사문이 어디입니까?"

  적천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소천은 어깨를 으쓱했다. 소천은 사해방주의 

건을 물어 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알려줄 턱이 없었

기 때문이다. 적천마군은 이마를 집었다. 

  "왜 그러십니까?"

  "모르겠네. 요즘 들어 악몽을  자주 꾸게 되고  머리가 지끈거리게 아파 

오네."

  "내공이 오랫동안 막혀 있어 그러는가 봅니다. 하지만 내공을 풀어 드릴 

수는 없네요."

  적천마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마군의 순서는  아니지만 대답을  해드리지요.  한마디로 소강상태입니

다."

  "그럴 리가……? 삼맹주님께서는 한번 칼을 빼들면 폭풍처럼 몰아치시는 

분일세. 지금쯤 장강 일대가 혈하가 되었을 텐데  괜한 소리를 하는 게 아

닌가?"

  "어쨌든 지금은 소강  상태입니다. 우리가 북진하기에도  여건이 마땅치 

않고, 그쪽에서도 쳐내려오기 마땅치 않을 겁니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총호법님. 장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알겠다."

  소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읍을 했다.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알겠네."

  소천은 밖으로 나갔다. 

  

  단우백과 상관평과 서왕은 소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천이 들어서자 셋

은 소천을 바라보았다. 소천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왜들 그러십니까? 저를 처음 보는 사람들 같이요."

  단우백은 손을 뻗어서 자리를 권했다. 

  "앉게."

  "예."

  소천이 앉자 단우백은 소천을 바라보았다. 단우백은 소천과의 오랜 생활

로 말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직선적으로 묻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

고 있었다. 

  "삼혈맹에서 휴전을 요구해 왔네."

  "휴전을요? 허면 대가가 있을 꺼 아닙니까?"

  소천은 그렇게 말하고 무언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적천마

군이었다. 소천은 잠시 침묵했다. 단우백은 소천이 침묵하고 있는 것을 참

지 못하고 그의 생각을 확인 시켜 주었다. 

  "적천마군을 달라고 하더군."

  소천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미  결정은 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를 한다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적천마군을 넘겨주면 백도에서 고깝게  볼 겁니다. 어떤 이들은 

삼혈맹과 한통속이 되었다고 할겁니다."

  단우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을 했던 

문제였다. 

  "대신 백리세가의 식솔들을 넘겨준다는 조건이네.  그리고 본 장이 입은 

손해를 보상해 주겠다고 하더군."

  "저희가 돈을 받는  것은 반대합니다. 저희들도  돈은 풍족히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받는 다면 다른 이들의 구설수에만 오를 뿐입니다."

  "그럼 사제는 동의하는가?"

  "저야 대사형의 의견을 존중할 뿐입니다. 하지만 적천마군을 사로잡는데

는 거경방도 일조를 했습니다. 그들도 신경을 써주어야 할 것입니다."

  단우백은 상관평을 바라보았다. 상관평도 고개를 끄떡였다. 상관평은 소

천에게 물었다.

  "그래, 무엇이 좋겠습니까?"

  소천은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그는 거경방도들이 사해방이 가지고 있는 

동해의 염전을 탐내고 있다는 것을 전에 들은 기억이 났다.  

  "동해의 염전을 달라고 하십시오. 저희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거경방

에게 주는 것으로 말입니다."

  "동해의 염전은 사해방의 중요한 젖줄이네. 그것을 넘겨 주겠는가?"

  "거경방이 흘린 피도 만만치 않으니 그 정도는 해 주어야 될 겁니다. 그

리고 휴전을 하자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저쪽입니다. 게다가 삼혈맹으로서

는 그 염전에 별 효용가치를 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미 방어진을 다 

구축을 해 두었습니다. 겁날게 하나도 없습니다. 혈마가 아무리 대단한 고

수라고 해도 우리의 방어진을 뚫고 승리를  하기란 요원할 겁니다. 우리가 

약하게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단우백은 고개를 끄떡이며 상관평을 바라보았다. 

  "문상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총호법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번 협상에  그것을 끼우도록 

하겠습니다. 거경방의 건도 신경을 쓰겠습니다."

  상관평의 말에 소천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상관평은 미소로 대답했다. 소천은 단우백에게 물었다.

  "육당주님께는 의견을 여쭈어 보셨습니까?"

  단우백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에게까지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닐세."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원한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분도 백

리세가의 식솔들과 적천마군을 바꾼다면 반대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

니 대사형이 그 처리의향을 묻는다면 육당주님은 대사형의 호의에 더욱 감

격해 할겁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으십시오. 사

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장의 사업에 반영이  된다는 점을 매우 기뻐할 겁니

다. 그게 비록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요.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

면 설득을 하십시요. 지금 대사형의  모습은 독단적인 패웅의 모습입니다. 

비상시국에는 대사형같이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지만 휴전에 들어간다면 남

의 의견을 경청해주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소천의 말에 단우백은  입을 벌렸고 상관평은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서왕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단우백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제의 말이 옳네. 내 최대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도록 하겠네. 그럼 

사제는 적천마군을 넘겨주는데 동의를 하는가?"

  "네. 그 외에 세부사항은  대사형과 문상 어른  그리고 삼사형이 알아서 

하겠지요. 저는 일이 바빠서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소천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단우백은 더 붙잡지  않았다. 소천은 가볍게 

목례를 취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 위에는 몇 조각의 뭉게 구름이 흘러가

고 있었다. 소천이 나가자 단우백은 상관평을 바라보았다. 

  "사제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이다. 무엇보다도  백도의 반발이 예상이 되

는데 이점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개방을 끌어들이십시오."

  "개방을? 어떻게?"

  단우백은 놀라서 상관평을  보며 물었다. 상관평은  섭선을 흔들며 말을 

했다. 

  "지금 백리세가의 이소저는 개방에 몸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개

방에 소식을 보내어 적천마군과 백리세가의  식솔들과의 교환을 어떻게 생

각하느냐고 묻는 겁니다. 물론  개방에서는 대 찬성을  하고 나올 겁니다. 

개방의 장로인 취선개와 백리세가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가 힘을 쓰겠지요.  그리고 나서 교환장소에  개방의 고수들을 보호자로 

초빙하는 겁니다. 어차피 백리세가의 식솔들이 교환되어 온다고 해도 우리

가 맡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렇소?"

  서왕은 의문을 띄우며 물었다. 상관평은 조용한 어조로 말을 했다. 

  "개방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리세가의 식솔들도  잘 알지 못하는 우리에

게 몸을 의탁하느니 개방에 몸을 의탁하고자 할겁니다."

  서왕은 상관평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자신에 비하면 천양지차

인 상관평의 두뇌를 믿기 때문에 고개를 끄떡였다. 

  "개방이 그 장소에 이소저를 모시고 나온다면 우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겁니다. 적천마군과 백리세가의 식솔을  바꾸는 것은 비단 우리

의 일만이 아니라 개방의 일이니 이 사건에 대한 비난을 희석시킬 수 있고 

또한.."

  "또한?"

  "개방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회에 개방과 친선을 도모하여 후일의  발판으로 삼는 것입니다. 개방

만 본 장을 도와준다면 그야 말로 날개  달린 호랑이요, 비구름을 만난 잠

룡이 되는 겁니다. 제가 교환을 허락하는데는  단순히 휴전을 맺어 지금의 

불안한 평화를 이어가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교환은 저희 장

이 백도무림의 주축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몇 가지 변수

가 중간에 생기겠지만 그 정도는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단우백은 상관평의 말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무림맹주 무림제일인자가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실제로 상관평은 자신의 말을 현실화 시켰

다.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상관평은 자신의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가 된다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대대적인 출혈을 피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일은 

성공인 것이다. 당금 무림에 삼혈맹의 공격을 받고 이렇게 무사한 곳이 어

디 있단 말인가? 단우백은 고개를 끄떡였다.

  "좋소. 협상을 하겠다는 서신을 보내시오. 대신 사해방의 주력을 전선에

서 칠십 리 이상 퇴각시키라고 하시오. 우리도 그쪽에서 퇴각하는 것을 보

고 최전선의 경계를 풀겠다고 전하시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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