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전 야 (前夜) (12/95)

  

  12 전 야 (前夜)

  양주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운하와 동서로 이어진 장강의 수운이 십자

로 교차하는 곳으로 수운의 목 이었다.  따라서 하루에도 수백여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양주를 드나들었고, 그 물동량만 해도 전 중원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물품들이 오고갔다. 배를 타고 오가는  유동 인구가 많기 때문에 

객점과 기루, 유곽이 필연적으로 발달했고, 전장과 창고업이 성행했다. 또

한 성안 곳곳까지 거미줄 같이 뻗어 있는 운하는 양주를 풍류의 도시로 만

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이권이 많이 있으면 날파리도 많이  끼어드는 법이고, 이곳을 노

리는 세력도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양주의 패권은 자주 바뀌었고, 

보통 사람들은 패권이 바뀌어도 별반 무신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에

는 별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청룡장이 이곳에 지단을 설치해서 사해방의  사업장과 이권을 장악한 것

은 무림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했다. 

  무력이 필요한 이권들은 어지간한 장사꾼들도 뛰어  들지 않았다. 그 위

험도를 잘 알고 있었고, 또한 무림 세력들과 공공연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

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주는 쉽게 청룡장의 세력확장을 용인하

였다.  

  

  오늘도 양주의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칠척 장신으로 백

의를 입고, 허리에 두른 푸른 띠에 맨 반월도를 찼다. 

  "홍 당주님!"

  홍당주라는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약간 작은 키에 양쪽 볼에 살이 조금 

오른 청룡장의 주작당주 구겸창 홍균이었다. 홍균을 부른 사람은 인의당주

인 반월도 반승이었다. 둘은 지금 밀명을 받고  이곳 양주에 와 있는 것이

다. 반승은 도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벌써 사흘째입니다. 언제까지 여기서 넋놓고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홍균은 반승의 투정에 피식 웃으며 말을 했다. 

  "자네나 나나 모두 명령을 받고 온 처지가 아닌가? 좀 더 기다려 보세나 

장에서 무슨 연락이 있겠지."

  반승은 자리에 앉아서 차를 쭈욱 들이킨뒤 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나는 장주님이 따로  불러서 비밀 임무를  내린다길래 이번에는 칼이나 

한번 제대로 써보는가 했습니다. 헌데 기껏 한다는 게 여기서 누굴 기다리

라니요. 제기랄. 내가 이 짓거리나 하자고  강호에 나온지 아십니까. 도대

체 나 반승이 사흘이나 기다려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소림사 장문인이

라도 온다는 겁니까."

  "소림사 장문인께서 납신다면 어찌 자네 같은 사람을 보냈겠는가."

  둘은 자리에 앉아서 밖을 보았다. 이곳은  상가의 중심지에 자리잡은 포

목점의 이층이었다. 이곳 포목점은 청룡장에서 직영하는 곳으로 주인은 청

룡장 향주였던 사람이다. 청룡장은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무공의 증진이 

없고, 뛰어난 휘하 무사들이 늘어나면서 자리보전에 급급한 사람들에게 자

금을 대주어 이렇게 장사를 시켰다. 실패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성공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모두 극단적인 예였고 대부분은 그럭저럭 가게들을 

꾸려 나갈 수준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일대의 흑도 무리들에게 상납하

는 것이 없어서 다른 곳보다 이문이 더 남았기  때문에 조금 덜 팔아도 수

지 타산이 맞았다.

  둘은 이 포목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라는 밀명을 받고 기다리는 중이다. 

둘이 여기와 있다는  것은 양주지단에서도 알지  못했다. 둘은 시끌벅적한 

시장통을 내려다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반승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긴 장도를 멘 칠 척의  장신의 사내가 몸집에 맞지  않게 창백한 안색을 

하고 걸어왔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달그닥, 가판 하나가 그의 다리에 걸려 쓰러지면서 그 위에 있던 물건들

이 쏟아져 내렸다. 그 사내는 흠칫 물러나며  사람들 틈 사이로 파고 들어

갔다. 

  가판 주인이 욕지거리를 하려는 듯이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

의 등에 매달린 도를 보고 얼른 고개를 숙여서 물건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

다. 그는 가판 주인을 힐끔 보고, 다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걸어왔다. 그곳은 바로  반승이 있는 포목점이었

다. 그것을 보자 반승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이 저 사람인가?"

  홍균도 고개를 내밀고 장한을 바라보았다. 그는 외가부분에서 조금 성취

를 이룬 듯이 보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나와서 마중해야 할 정도로 비중이 

있는 인물 같지는 않았다. 홍균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안색이 확 바뀌며 외

쳤다. 

  "위험해!"

  장한은 홍균의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홍균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행인들 틈에서 한 여인이 비수를 들어  사내의 가슴팍에 찍어갔다. 그것은 

빠르고 쾌속했다. 장한은 날아오는 비수를 보며 발을 들어 내찼다. 

  퍽. 비수를 쥔 손에 장한의 발이 부딪치며 여인은 비수와 함께 나뒹굴었

다. 그러자 곳곳에서 장검을 든 자들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비명

을 지르며 사방으로 내달았다. 시장통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어느새 그 

장한은 몰려온 자들에게 포위 되었다. 그들은  어린아이, 노인, 물건 파는 

객상 등으로 분장해 있었다.

  홍균은 창문으로 뛰어  내리며 품에서 구겸창을  꺼내 들었다. 평소에는 

아홉 조각으로 나뉘어 소매나 전낭에  집어넣고 다니다가 유사시에는 꺼내

서 연결해서 사용했다. 

  구겸창은 마디 마디가 큰 유격을 가지고  연결이 되어 있어 좌우의 유동 

폭이 컸다. 한번 휘두르면  손은 정면을 향하고 있어도  창끝은 자신의 몸 

뒤를 공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꺼번에 아홉  개의 창을 다루는 것과 같

다고 해서 구환창이라고 하고 아홉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어 구절창이

라고도 했다. 

  홍균은 구겸창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아홉  개의 낫을 휘두르는 것

과 같은 창. 그 구겸창이 이루어지고 땅을  밟으며 주위에 있던 살수의 몸

을 관통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반승이 내려서면서 

반월도를 휘두르며 살수들을 공격해 갔다. 

  장한이 장도를 휘두를 때마다 거친 바람이  일었다. 살수들은 그 바람에 

밀려서 쉽게 달려들지 못하였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노인이 솟구쳐 오르

며 장한을 공격했다. 장한은 대갈일성을  터뜨리며 도를 휘둘렀다. 그것은 

폭풍과 같은 기세였다. 노인의 검은 도풍의  소용돌이를 뚫고 장한의 미간

에 검을 박았다. 검의 폭은 사람 손가락 하나 정도였다.

  노인은 장한의 머리를 뛰어 넘어 그의 뒤통수를 차고 날아올랐다. 단 한 

수였다. 강호에서 이런 살법을 보여줄 수  있는 살수는 흔치 않았다. 미간

에 박힌 검은 협봉검으로 폭이 무척이나  작은 것으로 찌르기 위주의 검법

을 펼치는 데만 유용한 검이었다. 강호에서 이런 검으로 살행을 하는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살인 청부업체인 신월회였다.

  거구의 장한은 눈을  부릅떴다. 장한의 미간에서는  핏물과 함께 뇌수가 

흘러내렸다. 홍균과 반승도 노인의 한 수에  정신이 팔려 추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노인은 모습을  감추었고, 다른 자들은 

병장기를 버리고 마구 도망 치기 시작했다. 

  홍균과 반승은 죽어 쓰러져 있는 장한에게  다가가서 품을 뒤졌다. 신분

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죽은 장한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쪽에서 포쾌들과 관병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병장기를 접고 신영을  날렸다. 거리에는 몇구의  시체들만 널부러져 있었

다. 좀 전에 보이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

다.

  관병들과 포쾌들이 몰려오고 작게 열려져 있던 문이 닫혀졌다. 대낮인데

도 안에는 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았다. 

  확, 등롱에 불이 켜지자 탁자에 앉아 있는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칠척

거구에 얼굴에는 수염을 막 깍은 듯이  파르슴한 기운이 감도는 장한과 다

부진 몸매에 통통한 얼굴 그리고 가늘게  뜬 눈에는 섬광이 쏟아져 나오는 

중년인이었다. 바로 서왕이었다. 서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어떻소, 자신의 죽음을 보는 기분이?"

  거구의 장한은 손을 한곳에 단정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죽은 그 친구는 누구요?"

  서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알 필요가 있겠소? 이미 죽은 자 일뿐이오."

  "나는 청룡장이 백도의 탈을 쓴 마도라고  하는 말을 믿지 않았었소. 헌

데 오늘 보니 그게 사실이었구려."

  서왕은 냉랭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 보았다.

  "우리도 이런 연극은 하고 싶지 않소이다.  어쨌든 이제 당신은 죽은 사

람이오. 우리는 당신에게 약속한 모든 것을 해주었소."

  하지만 그 사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서왕은 양손을 바싹 치켜올리

더니 말을 했다.

  "좋소. 저 친구는 동해의 유명한 해적 중  한 명이오. 저 작자가 저지른 

죄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오.  왜구들과 결탁을 해서 중원의 여

인들을 내다 팔기도 했고, 죄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들을 강탈해서 사내

는 죽이거나 노예로 팔아먹고,  여자들은 첩으로 삼았던  자요. 얼마 전에 

우리 손에 떨어졌소. 그래서 이런 연극을 꾸밀 수 있었소. 이제 마음이 편

하오? 사해방 총관 웅삼 나리!"

  웅삼. 그랬다. 이  거구의 장한은 사해방의  총관인 웅삼이었다. 소천이 

백리세가를 갈 때 운하에서 만났던 그 자였다. 그가 지금 사해방을 배신하

고 청룡장과 결탁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해방은 그것을 알고 웅삼을 죽

이려 했고, 청룡장은 그걸 간파하고 한바탕 연극을 한 것이다. 

  웅삼 대역을 사해방 손에 죽게 한 것이다. 그것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당

분간은 웅삼이 죽었다고 모두들 믿을 것이다.  웅삼은 굳은 얼굴로 서왕을 

보았다. 

  "좋소.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내가 무엇을 더 감추겠소? 다 말하리다."

  서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웅삼은 결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금 있는 사해방주는 가짜요."

  그 말에 서왕의 눈이 커졌다. 가짜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사해방주

는 자신의 책임하에 특별히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사해

방주와 사해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은 극소수의 수뇌부

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웅삼을  만나는데도 자신이 직접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가짜라니…….

  서왕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들이 사해방주의  행적을 놓친 적이 

있었는지를. 하지만 단연코 없었다. 사해방주의  행적을 놓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한번도…… 서왕의 얼굴이 급변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웅삼은 

말을 이었다. 

  "내가 방주를 의심하게 된 것은 방 내  요직 인사에 편파성이 발견이 되

었기 때문이오. 그때까지만  해도 방주를 의심하지는  않았었소. 사해단주 

중 누군가가 돈을 받고 손을 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조사를 시작했었소. 

그래서 나는 간단한 조사만 하고 방주께  보고를 한 뒤에 사해단주에 대한 

약간의 문책을 건의하려고 했소. 헌데 일차 보고를  올리고 나서 알 수 없

는 자들이 내 곁에 머무르기 시작했소. 그리고  내가 분타 순찰을 나갈 때 

그들이 기습을 해왔소. 다행이 배 위였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수장을 시킬 

수 있었소. 그러나 육지였다면 나는 그때  죽었을 것이오. 나는 방주께 다

시 전서로 보고를 드리고 비밀장소에서 만나자고 하였소. 크크큭! 그때 나

는 부상이 심해서 수하를 대신 보냈소이다. 헌데 돌아온 것은 그 살수들이

었소. 내 은신처가 배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오. 그때도 나는 

방주가 가짜라고 까지는 생각 하지 않았었소.  그냥 어디서 정보가 샜다고

만 생각했소. 그래서  부상을 치료하고 비밀통로로  사해방으로 들어갔소. 

나는 그곳에서 사해방주가 사해단주 중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

었소. 그들의 이야기는 삼혈맹을 끌어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소. 그것은 평

소 방주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였소.  그제야 나는 그들이 가

짜라는 것을 눈치를 챘소. 그러나 내게는  힘이 없었소. 사해방주와 두 명

의 단주가 당했다면 이미 가짜들이 방의  전권을 장악했을 것이오. 게다가 

곧 삼혈맹과 손을 잡으면 누가 그들을 상대할 수 있겠소? 그래서 청룡장에 

손을 댄 것이오."

  서왕은 웅삼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었다. 믿기

에는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그냥  흘려버릴 수도 없는 이야

기였다. 서왕은 등이 축축해진 것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복우산맥. 하남성의 중간을 가르는 거대한 산맥  군으로 숭산도 이 복우

산맥의 한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산들은 줄기줄기  이어져 무수한 계곡과 

봉우리가 연이어서 펼쳐져 있었다. 산맥의 고봉들은 어느새 새하얀 눈들로 

고깔 모자를 만들어 쓰고, 키 작은 나무들은 잎사귀들을 다 잃어버리고 앙

상한 몸으로 바위에 기대어 떨었다.

  턱. 발 하나가 나무 옆의 바위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앙상한 나무

는 더욱 떨어야 했다. 바위를 밟은 발은 계곡을 향해 거침없이 나갔다. 그

는 회의를 걸치고 등에는 긴 장검을 메었다. 옷자락은 바람에 한없이 펄럭

였다. 

  그가 지나고 일다향 뒤에 혈의인이 그가 밟았던 바위 앞에 내려섰다. 그

의 눈은 매우 번쩍였다. 잠시 뒤에 입가에는 미소가 잔뜩 묻어 났다. 그는 

품에서 한 마리의 전서구를 꺼낸 뒤  몇 자를 끄적거리고 비둘기를 날려보

냈다. 비둘기는 힘차게 저 멀리 날아갔다.

  혈의인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이렇게 은폐, 

엄폐물이 없는 고산지대에서는 한 두 명으로도  광활한 지역을 감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혈의인의  가슴은 계속 위험신호를 보

내 왔지만 그의 머리는 온통 승진과 영화가 그려졌다. 혈포인은 앞서간 자

의 흔적을 쫓아서 계속 계곡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작은 동굴 앞에 멈추어선 회의인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주위에는 아무

도 없었다.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삼혈난세(三血亂世)!"

  동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혈수정(義血守正)!"

  회의인은 읍을 하고  왼쪽으로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왼쪽 벽이 

살짝 벌어지면서 그를 받아들였다. 왼쪽 벽은  다시 닫혀져서 원래의 모습

으로 돌아왔다. 

  동굴 입구에 위장천을 쳐서 벽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오

면 작은 동굴에서 암호를 나누고 동굴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굴 안에 매복해 있던 고수들에게 격살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회의인은 안을 둘러보았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회의인에게 위장포를 열어  준 자는 허리에 패도를 

차고 거구에 탄탄한 근육질이 드러나 있는 웅패신이었다. 웅패신은 회의인

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이렇게 먼길을 와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

다."

   회의인도 포권을 취했다.

  "불러 주신 것만도 영광이외다."

  그렇게 말하고 회의인은 중인들을 보았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안면이 있

는 듯 서로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동굴 안쪽에 서 있던 자가 고개

를 돌렸다. 그는 제법  준수한 용모에 손에든  옥소가 신분을 밝혀주었다. 

옥소공자였다.  

  "맹주님께서 나오십니다."

  동굴 안쪽에서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백의를  입고 두건을 쓴 그는 제법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 있었다.  그를 보자 중인들은 모두 일어서

서 읍을 했다.

  "반혈맹주를 뵈오이다."

  백영은 포권을 취하였다. 

  "부족한 이 사람의 서신에 모두들 와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중인들은 분분히 허리를 더욱 숙였다. 백영은  눈을 빛내며 중인들을 바

라보았다. 

  "그동안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지난 수십여 년간 삼혈맹의 횡포는 더 이

상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아시라고  믿습니다. 무수한 백도의 영웅호걸

들이 삼혈맹에 의해 살해 당하셨습니다. 게다가  무수한 문파들이 문을 닫

아야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작은 힘이나마 모아서 삼혈맹에 대항 하기 위

해서 반혈맹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 반혈맹은  그동안 지휘권을 놓고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갈등은  해소가 되었고, 우리는 첫 사

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에는 옥소공자와 웅패신, 종

초홍 대협께서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그의 호명이 있자 세  명이 몸을 일으켜서 읍을  했다. 중인들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삼혈맹은 더 이상 공포의 단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속속들

이 파악해 냈습니다. 또한 무림 동도들도  풍무현의 일로 인해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무당파의 일검도장께서  삼혈맹의 소수마후를 

격파했다고 합니다. 지금 삼혈맹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습

니다. 이때 우리가 의거를 일으킨다면 천하 무림동도들도 따라 일어 설 것

입니다. 이제 우리 반혈맹이 삼혈맹을 칠 때가 된 것입니다."

  중인들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자 백영은 뒤를 보고 읍을 했다. 

  "그만 나오시지요."

  어둠 속에서 한 명이 길다란 장대를 들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길다

란 장대라고 생각한 것은 장창이었다. 평범한 장창 한 자루를 들고 호리호

리한 키와 깡마른 얼굴에, 하얀 백발은 상투를 틀었다. 

  그의 손 마디는 뼈만  남았을 정도로 말랐지만 두  눈은 매우 청량했고, 

서 있는 자세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중인들 중 몇 명이 헛바람을 키며 

외쳤다. 그들의 경악성은 놀람 그 자체였다.

  "창왕 언무외!"

  중인들은 모두들 눈을 부릅뜨며 바람 불면 날아 갈 것 같은 노인을 다시 

보았다. 

  한 자루 장창으로 대강남북을 울렸던 전설적인 고수, 무림삼왕 중 일인, 

창왕 언무외. 그라면 삼혈맹의 혈마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백도의 고수들은 삼혈맹을 상대하고 싶어도 혈마를 꺾을 자신이 없기 때

문에 자숙해야 했다. 그러나 창왕 언무외가 혈마만 막아 준다면 다른 자들

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백영의 눈가에 미소가 살짝 얹혀졌다. 이것은  그가 계획했고 바라던 대

로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뜻했다. 창왕  언무외는 중인들을 보며 담담한 어

조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원래 강호의 세사에 간섭을 하지 않으려 했소. 하지만 삼혈맹이 

백리세가를 멸절하면서 무림을  독패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기  때문에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었소. 우리가 나선다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뒤를 따

를 것이오. 삼혈맹을 몰아내고 이 땅에 정의의 기치를 높이 세우도록 합시

다."

  "와아아 와아아!"

  중인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  동안 졸인 마음과 불

안감을 떨쳐 버리려는 듯이 큰 소리를 내질렀다. 동굴 안이라서 그 소리는 

울림이 되어서 더욱 증폭이 되어 이들의 가슴속에 메아리쳤다. 

  백영이 눈짓에 웅패신이 위장 천으로 가린  동굴 입구를 열자 한 혈의인

이 모습이 드러났다. 

  중인들은 해연이 놀라며 분분히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곧 백영과 창

왕 언무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겸연쩍어 하며 병장기를 빼들었다. 

그 중 한 명은 앞으로 달려나가 자신이 용기를 과시하려는 듯이 일장을 갈

겼다.

  퍼억. 혈의인은 피하지 못하고 피화살을 뿜으며  저 멀리 날아가 떨어졌

다. 한번 꿈틀 하더니 축 늘어졌다. 그것을 본 중인들은 놀라 다른 삼혈맹

도가 있는지 찾기 위해서 두리번 거렸다. 

  혈의인은 회영을 추적해 오다가 작은  동굴에서 종적이 발견되어 사로잡

힌 뒤 마혈이 집힌 채로 그곳에 세워진 것이었다. 백영은 중인들로 하여금 

혈의인을 죽임으로서 사기를 최대한  고취시키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명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명분이 섰을 때  물러설 수 없게 몰아 붙여야 

했다. 

  "오늘밤 삼혈맹의 낙양지단을 공격하겠습니다. 모두 계획을 짜보도록 합

시다."

  백영의 말에 중인들은 해연이 놀랐지만 창왕의 웃는 얼굴을 보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제는 정말로 물러 설 수가 없는 것이다. 

  백영은 한 장의 지도를 꺼내 펼쳤다.  그것은 삼혈맹의 낙양지단의 배치

도였다. 회영이 고개를 들어 백영을 보며 물었다. 

  "맹주. 이곳이 어디입니까?"

  "낙양마장입니다."

  여기저기서 경악성들이 터져 나왔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소이다. 맹주. 낙양마장주는 인품이 후덕하고 악을 원수같

이 미워하는 분인데……"

  중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모두들 그렇게 아셨을 겁니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삼혈맹의 낙양지단주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늘 밤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톡톡톡. 손가락 하나가 탁자를 두들겼다.  그 손가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좁혀졌다. 둥근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고 어깨가 좁혀져 있어 마치 

절구공이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탁자를 두들기던 손가락은 깍지가 껴졌다. 깍지낀 손의 임자는 청룡장주

인 단우백이었고, 그 앞에서  우거지상을 쓰고 있는  자는 서왕이었다. 그 

옆에서 고요한 눈길로 찻잔을 보며 상관평이 앉아 있었다. 

  "사제는 그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보는가?"

  "죄송합니다. 대사형."

  단우백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할 것까지야 있겠는가? 사제는 사해방주가 바뀌었다고 믿는군."

  서왕은 고개를 떨구고는 살짝 끄떡였다. 단우백은 나직한 신음성을 흘렸

다. 

  "그럼 언제 바뀐 것 같소이까? 문상."

  단우백이 상관평을 보자 상관평은 입가에 잠시 미소 머금었다. 단우백은 

그 미소를 대하자 약간 의아해 했다. 

  "문상! 모든 것이 우리가 의도하는 대로 되어가다가 결정적인 암초를 만

났는데 어째서 그렇게 웃음이 나오십니까?"

  "하하하"

  상관평이 돌연 웃음을 터뜨리자 단우백과  서왕은 불쾌한 마음까지 들었

다. 

  사해방에 백리세가의 공격배치도를 건네 준  것은 청룡장이다. 단우백은 

사해방을 이용해서 백리세가를 무력화하고, 그 틈에 양주로 세력을 확장하

려고 하였다. 이 일은 성공리에 끝이 났다. 

  사해방이 백리세가를 무너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을 하였지만 일

차 계획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해방의 내력이야 손금 보듯이 잘 알고, 이미 충동질을 해서 내분을 일

으킬 사람들까지 선별해 놓은 상황이었다. 사해방이 내분을 일으키면 청룡

장은 자연스럽게 세력을 회수까지 진출시키고,  거기서는 육정산을 앞세워 

산동무림을 휘하에 둔다는 계획을 세워 두었었다. 

  사해방주가 가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알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가짜라면 더욱 심각한  일이었다.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은 사해방이 아니라 가짜  사해방주를 내세운 배후세력이었기 때문이

다. 

  사해방주의 배후세력은 삼혈맹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삼혈맹에서 가짜 

방주를 세우고, 다시 삼혈맹과 합작이라는 이름으로  사해방을 털도 안 뽑

고 먹겠다는 수작이었다. 그리고 삼혈맹과 사해방이  손을 잡으면 가장 위

험에 놓이게 되는 곳은 바로 청룡장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계획은 전면 수정을  해야 했다. 삼혈맹과의 

대전은 백도가 아닌 자신들이 먼저 벌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삼

혈맹, 아니 사해방은 청룡장과 싸울 충분한  명분이 있고, 그 명분은 다른 

백도문파들의 참가를 어느 정도 막아 낼 수 있었다. 

  상관평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옷매무시를 단정히 했다. 

  "죄송합니다. 장주님. 사해방주는  가짜일 겁니다. 우리가  위기에 처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희망 말이오?"

  "장주님께서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계시다는 점 말입니다."

  "무슨 본질 말이오?"

  단우백은 고개를 갸웃하자 상관평은 섭선을 부쳤다.

  "사해 방주가 언제 바뀌었느냐는 겁니다."

  단우백이 서왕을 보자 서왕은 울상을 지었다. 

  "사해방주 악일비의 능력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여산만 전투 부터였습

니다. 그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전력보다  한배 반은 강한 요동낭인대를 

끌어들이면서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허를  찌르는 용병술로 백

리세가를 멸문시켰습니다. 이것은  사해방주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저도 

그것을 의심을 해왔었는데 오늘에야 그가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

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소이다. 사해방주에 대한 감시는 철통같았소. 그의 최측근

이 우리 사람이고, 또한……"

  상관평은 섭선을 흔들어 서왕의 말을 끊었다. 

  "죄송하지만 거경방주와 만날 때 누가 대동하고 있었습니까?"

  "그건……"

  서왕은 말을 하지 못했다. 단우백도 의아한 표정으로 상관평을 바라보았

다. 

  "그럴 리가 없소. 거경방주는 사부님때 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고, 나와

는 의형제 지간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우리가 건네  준 백리세가의 전략도를 사해

방주에게 건네주기 위해서 단 둘이 있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서왕의 말에 상관평은 고개를 저었다. 

  "장주님께서 거경방주를 의제처럼 여기신다고 해서 거경방주가 장주님을 

의형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해방주가 우리의 이목

을 피해서 바뀌어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간은 바로 그 때입니다."

  상관평의 말에 단우백은 양손을 떨구면서 의자에  푹 주저 앉았다. 상관

평이 그렇게 말을 하는데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단우백은 누

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의  확실한 이야기도 상관평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가 유력하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들으면  되는 것이다. 상관평은 

그 동안 거경방주에 대해서 조사를 단단히 해 두었을 것이다. 단우백은 힘

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확신할 수 있겠소? 혹시 저들의 역공작은 아니겠소?"

  상관평의 목소리는 매우 청량했다.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확증이오. 거경방주가 나를…… 나를……"

  단우백은 차마 자신을 배신했다는 말을 토하지는 못했다. 그로서도 이번 

사안이 저들의 역공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믿

었던 인물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까. 처음으로  단우백의 시선이 탁자 아래

를 향했다. 밖에는 길게 늘어진 그늘이  창가에까지 와서 얼굴을 기웃거렸

다. 단우백은 오늘따라 전각들의 그림자가 길다고 느껴졌다.

  

  사해방의 총단은 운하와 회수가 십자로  교차하는 청강성에서 조금 떨어

진 곳에 있었다. 이곳은 운하와 회수가  교차하는 곳으로 동해와 내륙으로 

드나드는데 꼭 필요한 곳이었다. 

  사해방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뻗어서  강소 일대의 패권을 장악했고 

이제는 산동일대까지 장악한 무림거파로 성장을 한 것이다. 아직은 세력권

이 불투명했고 곳곳에서  반발하는 세력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모두들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 뒤에 삼혈맹이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해방주 악일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내를 순찰하고  자신의 처소인 

사해대전으로 향했다. 사해의 방주. 말 그대로 중원의 바다와 호수를 지배

하는 정복자로 우뚝 설날이 멀지 않았다고, 악일비는 스스로 다짐을 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할지 몰랐다. 

  사해대전 안으로 들어선 악일비는 태사의에 앉아서 붉은 줄을 잡아 당겼

다. 그러자 태사의가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을 했다. 태사의가 밑으로 내려

가고 빈 태사의가 올라왔다. 이것은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로 전각 안에서 

밖을 엄밀히 감시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고수들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악일비가 내려선 곳 바로  앞 벽면에는 강, 호수,  산과 도시가 있었다. 

장강의 하구와 강남 동부의 세밀한 지형도였다.  지형도 위에는 푸른 점과 

선들이 얽혀있고, 그 옆에는 깨알같은 글자들이 씌어져 있었다. 그 글자들

은 푸른 점 안의 인원과 고수 명단이었다. 또한 그 고수들의 무공수위까지 

적혀 있었다. 강남 동부에  이렇게 엄밀한 조직망과 고수들을 거느리고 있

는 곳은 오직 한 곳, 청룡장 뿐 이었다. 그리고 청룡장의 세력분포도가 있

는 곳은 다름 아닌 사해방이었다.

  이러한 정보는 사해방이 독자적으로 알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해방주 악일비가 들어오자 요동혈랑이 반색을 했다. 옆자리에 비어 있

는 의자를 살짝 당겨 안기 편하게 해주었다. 요동혈랑의 좌우에 네명의 혈

의인이 앉았다. 그들은 바로 오대마군 중 사인이었다. 

  상석에는 핏빛 혈의에  피보다 붉은 머리카락을  흘러내리며 얼굴과 손, 

눈동자마저 붉은 혈마가  자리잡았다. 악일비가 읍을  하자 혈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악일비는 요동혈랑의 바로 윗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지도 옆에는 한 명이 작고 가는  지휘봉으로 태호 동쪽의 낮은 구릉지대

를 가리켰다. 그의 얼굴 위에는 깁게 패인  검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지휘봉을 들고 있는 자는 삼혈

맹의 오대마군 중 수좌인 적천마군이었다. 

  적천마군의 얼굴에 난 검상이 꿈틀거렸다. 청룡장과의 대전이 눈앞에 다

가오면서 옛 생각이 흉터를 자극했다.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낸 자, 그와 

다시 한번 겨룰 수  있다는 흥분이 몸을 들뜨게했다.  하지만 설명을 잘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청룡장은 사개지단과 십육타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본 장과 지단 분타

에 속한 정예 무사의  수는 일천 구백명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청룡장에 

충성을 맹세한 문파가  이십구 개가 있습니다.  이들은 저희가 움직인다면 

몇몇 문파를 제외하고는  청룡장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풍무현의 

혈채를 받으러 간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문파의 간섭을 배제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맞설만한 거대문파가 인근  천여 리에는 없는 것

도 우리에게 유리한 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해를 통해서 극비리에 이

들의 안마당인 태호까지 진격할 수 있습니다. 본 맹의 정예무사 일천 명과 

사해방의 수상객 팔백구십 명, 요동낭인대의 무사 일천 명, 도합 이천팔백

구십명의 대군으로 진격해 들어갈 것입니다.  청룡장의 정예무사가 일천구

백 명이지만 사개지단과 십육타에 흩어져 있고, 실제로 장원 안에 있는 무

사의 수는 육백여명 안팎입니다. 우리가 태호에  상륙해서 대거 진격해 들

어간다면 순식간에 청룡장을 함락시키고 강동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습니

다."

  지옥마군이이 손을 들었다. 적천마군은 그를 지적했다.

  "지옥마군께서 하실 말씀이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적천마군께서 하시는 말씀은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사해

방의 수군력으로는 거경방의 동해 해상 방어망을  뚫지 못합니다. 설사 뚫

었다 손치더라도 그들이 운하의 요소요소를  막는다면 우리의 진격에 상당

한 차질을 불러들일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이점을 간과하고 계신 것은 아

니십니까?"

  지옥마군의 말에 적천마군은 정면을 보았다. 지옥마군이 한 질문에 해줄 

대답은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혈마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혈마는 몸을 앞으로 살짝 숙였다. 

  "거경방은 우리를 막지 않을 것이다. 됐나?"

  혈마의 말에 중인들은 모두 침묵했다. 혈마는  다시 느긋하게 몸을 뒤로 

젖혀서 의자에 기댄 채 지도를 보았다. 지옥마군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출정은 오늘밤 자시. 모래 밤이면 우리는  청룡장 문 앞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모두들 인원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해방주

님."

  "옛."

  사해방주 악일비는 일어서서 읍을 했다. 적천마군은 그런 악일비를 보며 

말을 했다. 

  "양주지단에 대한 공격 건은 어떻게 되었습니다."

  "예. 동해단주 왕정이 무사 이백을 이끌고  내일 아침 청룡장의 양주 지

단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일로 인해서 청룡장은  장강 일대의 방어막을 키

우기 위해서 동해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할 것입니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습니다."

  악일비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혈마를 보며 읍을 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다른 마군과 수뇌부들도 일어서서 읍을 하였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오늘밤 출진을 허락한다."

  "존명."

  혈마의 눈빛은 더욱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벽에 걸린 지도의 청점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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