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삼혈맹 (9/95)

  

  9.삼혈맹

  붉은 기운이 완연히 남아 있는 개봉성 하늘가가 숲으로 들어서면서 어둠

으로 변했다. 그 어둠 속에 일대의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작은 나뭇가지와 

풀잎들이 스치며 나직히 울었다. 약 이십여 명의 인원이 피보다 붉은 혈의

를 입고 붉은 복면을 한 채 장도를 등에 메고 있었다. 

  천하에 이렇게 붉은 경장을 마음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곳

밖에 없었다. 이 시대 전 무림의  공포 바로 삼혈맹이었다. 풍청방의 혈겁 

이후 한동안 종적을 보이지  않던 삼혈맹이 오늘  개봉의 외각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십명은 한 봉우리 바로  아래 능선에 자리를 잡았다.  산 아래가 훤히 

보이는 곳에 포진을 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하나의 별장이 있었다. 

그 별장으로 무수한 혈영들이 각 조별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삼

혈맹은 오늘 저 별장을 섬멸하려는 것이다. 

  별장의 정문에는 화톳불이 바람 따라 일렁였다. 장검을 찬 백의무사들이 

그늘을 늘이며 서 있었다. 백의는 불빛에 여러가지 색으로 변했다. 

  두 자루 핏빛 륜을 든 자가 그들을 지켜 보았다. 오른쪽 뺨에 검상이 나 

있어 더욱 그의 얼굴을 차갑게 만들었다.  번뜩이는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

던 그의 고개가 돌려졌다. 장도를 찬 중년인이 그 옆에 내려섯다.

  "대군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대군이라는 사내는 고개를 끄떡였다. 삼혈맹에서 대군이라고 불릴 수 있

는 인물은 오직 한 명. 오대마군의  수좌인 적천마군뿐이었다. 도를 찬 자

도 오대마군중 한명인 적혈마군이었다.

  둘은 오늘 저 별장에 사는 자들을 섬멸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삼혈맹의 

오군 중 둘 이상이 출전해야 할만큼 강한  적이 저 별장에 있었다. 적천마

군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백리장천은 무시 못할 고수이다.  둘째 네가 먼저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라."

  "존명!"

  적혈마군은 읍을 하고 물러났다. 적천마군은  정면의 별장을 보았다. 이

곳은 백리세가가 새로  자리잡은 거처였다. 저들은  삼혈맹의 포위 공격을 

모르는지 아직 조용했다. 적천마군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오늘 백리세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전과 같은 실수는 없을 것

이다."

  적천마군의 오른쪽 뺨의 검상이 씰룩였다. 적천마군은 그의 뺨을 쓰다듬

었다. 

  '십년 전이었던가? 후후후. 그가 무림에 다시 나왔다니 투지가 끓는군.'

  적천마군은 잠시 자신에게  상처를 남겼던 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털어 버렸다. 지금은 자신의  앞에 있는 척살대상만 생각해야 

할 때인 것이다. 적천마군은 폭죽을 꺼내서 위로 터뜨렸다. 

  슈우욱 퍼엉! 폭죽이  눈부신 불꽃을 만들며  떨어지자 사방에서 연달아 

치솟아 올랐다. 펑퍼펑 퍼퍼펑! 무수한 폭죽들이  터져 올랐다. 장원 안에

서 갑자기 터져오르는 폭죽들에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적천마군은 나뭇가지 위에서 별장의 담을 넘는 삼혈맹도들을 보았다. 비

명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파아악. 적천마군은 단숨에 십여 장을 건너 뛰어 정문의 문루를 밟고 다

시 날았다. 연무장에서 어우러진 삼혈맹의  무사들과 백의검수들을 뛰어넘

어 첫 번째 전각의 지붕에 내려섰다. 

  휘리릭. 백모란이 수놓아진  백의를 입은 젊은  청년이 전각의 지붕위에 

내려섰다. 백리웅풍은 전각 위에 올라서자 적천마군을 향해서 빠르게 일검

을 찔러갔다.  

  적천마군은 몸이 빙글 돌며  두 개의 혈륜으로  백리웅풍의 검을 흘리고 

폭풍처럼 륜을 휘두르며 압박해갔다. 일순 공세에서 수세로 변환된 백리웅

풍은 연신 뒤로 물러서며 륜을 피했다. 

  백리웅풍은 전각지붕에서 뒤로 물러서다가 전각의  경사면을 밟았다. 백

리웅풍은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앞으로 숙이려  했지만 적천마군의 륜이 

머리를 쳐서 몸을 미끄러지게 놔두었다. 적천마군의 륜이 백리웅풍의 목덜

미를 노리며 날아왔다.  백리웅풍은 천근추를 써서  떨어지는 속도를 빨리 

했다. 덕분에 륜이 그의 등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목숨은 건졌지만 등에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상처를 돌볼 사이도 없이 사방에서 삼혈맹도의 도가 밀려들어왔다. 삼혈

맹이 자랑하는 혈살대원들이 어느새 백리웅풍을 겹겹이 포위한 것이다. 

  적천마군은 전각 지붕 위에서 전면을 보았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백리

세가 무사들이 진세를  구축하고 혈살대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하는 이는  백리세가의 삼가주인 백리인군이었다. 

그 외에 몇 명의 노검수들이 혈살대를  막고 있어 전선은 고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적천마군은 그 담장 너머를 보았다. 

  네명이 한 명을 포위 공격하고 있었다. 적천마군은 뺨에 난 상처를 씰룩

이며 미소를  띄었다. 싸움은 그의 계획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밑을 보았다. 백리웅풍의  주위에는 몇 구의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고 혈살대원들은  차륜전을 짜서 백리웅풍을  공격하고 있었

다. 

  탓, 적천마군의 신영이 떠오르고 두 개의  륜이 백리웅풍을 향해서 날아

갔다. 백리웅풍은 검을 휘둘러서 그것을 막아갔다.  따다당, 두 개의 혈륜

을 튕겨내며 백리웅풍은 뒤로  물러섰다. 그 사이 한  장도가 그의 다리를 

휘감아 돌았다. 

  "아악!"

  백리웅풍의 단말마와 함께 그의 왼쪽 발목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피

를 뿌렸다. 장도에 발목이 잘려나간 것이다. 쓰러진 백리웅풍을 겨누고 수

십 개의 도가 내려쳐 졌다. 

  백리인군은 달려드는 혈살대를 쳐내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아직까지는 

전선이 고착이 되어 있었지만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의 좌우에는 

백리소소 소연 소취가 연검을 휘두르며 혈살대를 막았다. 

  그 중에서도 소연의 활동이 눈부셨다. 그녀의  검이 스치는 곳마다 삼혈

맹도들의 피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십여 명 노검수들의 활약도 눈에 들어

왔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무사들은 점점 쓰러지고 있었고 혈살대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백리인군의 얼굴로 두 개의 륜이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백리인군

은 검을 들어 륜을 쳐내었다.  따당, 두 개의 륜이  부딪치면서 뒤로 다시 

날아갔다. 그 여파로 백리인군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야 했다. 백리인군

이 있던 자리에 적천마군이 륜을 든  채 내려서서 백리인군을 몰아 붙여갔

다. 적천마군의 륜에 백리인군은 거푸 세  걸음 물러면서 문안으로 들어섰

다.

  문안에는 백리장천이 장검 한 자루에 의지한  채 네 명의 협공을 받아내

고 있었다. 도를 든 적혈마군과 작은 키에 애꾸눈을 가지고 극을 휘두르는 

악인마군, 두자루 단창을 쓰는 지옥마군, 깡마른 키에 퍼어런 안색을 하고 

날카로운 손톱을 병장기  대용으로 쓰는 시혈마군이  합공을 하고 있었다. 

백리장천의 공력이 딸리는지 검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적천마군은 륜을 든 채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다. 백리인군은 검을 

들고 입구를 바라보며  초조히 서 있었다.  그가 뛰쳐나간다면 적천마군은 

합공에 끼어들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가뜩이나  밀리고 있는 노가주가 

버티지 못할 것이고 백리세가는 그대로 끝장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적천마

군과 다시 싸운다는 것도 그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밖에서는 비명성이 연

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적천마군은 희미하게 웃었다.

  "십년 전에도 이랬었지. 후후후. 그때 산동육가의 가주는 이런 상황에서

도 자기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탈출을 하더군.  헌데 노가주께서는  한 몸 

건사하기 급급하시구려."

  적천마군의 조소 어린 말에도 백리장천은 화를  내지 않았다. 더욱 신중

히 사대마군의 합공을  받아내었다. 백리인군은 고개를  돌려 서쪽 하늘을 

보았다. 적천마군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개방이 도착했을 때면 이미 상황이 끝이 났을 거요."

   백리인군의 입에서 고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삼혈맹과 아무런 은원이 없는데 어째서  이토록 핍박을 하는 거

냐?"

  적천마군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곧 알게 될 꺼요."

  밖에서의 비명성은 잦아들었다. 이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백

리인군은 밖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빨리 끝나리라고는……. 게다가 

밖에는 삼혈맹의 이렇다 할 고수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늘진 문가로 한 명이 두 명의 노인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

자 적천마군이 허리를 꺾었고 사대마군이 포위 공격을 풀고 적천마군의 뒤

에 가서 시립했다. 백리인군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백리장천은 들어선 자를 보고 검을 들어 스스로 목을 찔렀다. 검은 무엇

에 맞았는지 목을 비껴 올라가 백리장천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

리카락이 우수수 주위에 떨어져 내렸다. 백리장천은   달빛아래 드러난 자

를 바라보았다.

  붉은 혈포보다 얼굴과 손, 머리카락이 더 붉었다. 심지어 눈마저도 백과 

흑이 없이 새빨간 적색이었다. 머리카락은 묶지  않아서 뒤로 마구 흘러내

리고 있었는데 마치 사자의 갈기와도 같아 보였다. 

  백리인군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생각 나지 않

았다. 그의 머리는 텅 빈 것 같았고 주위에 누가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

다. 백리장천은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보며 검으로 찔러내렸다. 그리

고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백리장천은 결의의 빛을 띈 채 검을 치켜들었다.

  "백리세가 이십칠대 가주로서 삼혈맹의 삼맹주인  혈마에게 삼가 도전을 

청하는 바이오."

  혈마. 그랬다. 백리인군은 그제서야  머릿속이 정리가 되면서 그의 이름

이 생각이 났다. 삼혈맹이  오늘날 강호에 공포로 존재하게  만든 인물 혈

마. 삼혈맹의 다른 두 맹주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혈마는 지난 수십 년간 

마도 제일고수로 불리며 천하무림에 공포로 존재해 왔었다. 혈마의 고개가 

살짝 끄떡였다. 백리장천은 백리인군을 바라보았다. 

  "보아두거라.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백리세가의 지존검

법이다."

  백리인군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혈마에게  직접적으로 병장기를 들이대

고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백리장천은  그것을 알면서도 도전을 한 

것이다. 생포되어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결의였다. 혈

마는 묵묵히 백리장천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껏 하시오."

  강자의 아량인가. 굳게 닫아진 백리장천의 입이 비틀리며 신음성과 같은 

소리가 흘러 나왔다.

  "너는 네 형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백리인군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이 되었다. 몇 년 동안 보이지 않은 형의 

모습이 은연중에 마음에 걸리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해방과의 이권다툼 그리고 요동낭인대의 수입  때 형의 존재가 그리워

지곤 했었다. 또한 양산박에서 패주를 할 때 얼마나 형이 보고 싶었던가.

  오늘 삼혈맹의 포위 공격에 빠져서 전  가솔들이 전멸을 할 상황에 처하

게 되자 더욱 형의 그림자가 커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원망이 아닌 희망

의 그림자였다. 여기서 자신들이 모두 죽는다고  하여도 형이 있으면 세가

의 재건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의 존재를 자신의 

부친인 백리무군은 원망의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다. 백리인군은 이해가 가

지 않았다. 

  문밖에서 들리는 발 걸음 소리에 백리인군은  밖을 보았다. 희미한 달빛

아래 몇 명의 부상자들이 삼혈맹도들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다. 죽은 것 같

지는 않았다. 아니 시체라면  저렇게 옳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삼혈맹이 

시체를 묻어 주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순간 백리인군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생포? 하지만 왜?'

  백리인군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삼혈맹에서는  자신들을 생포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삼혈맹의 포위공격은 주살이 목적이지 생포가 목적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한번도.  백리인군의 머리는 무언가가  꽉 들어 차있었다. 

생포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자신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

만 자신들은 둥지 잃은  새일 뿐이었다. 삼혈맹이 원하는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순간 백리인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삼혈맹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는 몰라도  자신들을 생포해서 얻을 거라고

는 오직 한가지 뿐이었다.  지난 삼년여간 아무런  소식도 없는 형이었다. 

백리세가의 가주라는 신분으로  가문을 삼년간이나 비운  무책임한 형이었

다. 백리인군은 부친인 백리장천을 보았다.

  아버지는 무언가를 알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죽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죽으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가  사람 중에서 아무도 

없을 것이고, 삼혈맹에서는 자신들을 좀더 오래 살려 둘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가치가 있는 한 인질은 죽이지 않는 법이니까. 

  백리인군은 주먹을 쥐었다. 그가 뭐라고 소리 치려 할 때 백리장천의 몸

은 검과 함께 치솟아 올랐다. 검이 그의 손을 떠나 혈마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이기어검술!"

  백리인군과 오대마군의 눈이 커졌다. 백리장천의  장검이 호선을 그리며 

혈마의 미간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검은 백리장천의  손끝에 따라 움직였

다. 혈마의 몸이 허공  중으로 떠오르며 쌍수를  휘젓듯이 흔들었다. 파라

라, 그의 소맷자락이 무수히 흔들리며 검과  부딧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연

달아 터져 나왔다. 혈마는 소맷자락에 수백겹 겹쳐진 철판을 달고 검을 막

는 듯했다. 

  한번 크게 떨어지는 폭포보다 작게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먼저 바

위를 뚫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장검에 실린 백리장천의 공력을 혈마는 무

수한 소매의 잔 떨림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찰라지간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혈마의 손이 백리장천의  장검을 내쳤다. 장검이 빙그

르 돌아가며 백리장천을 향해서 날아갔다. 백리장천은 쌍수를 들어 자신의 

장검을 잡아갔다. 헌데 그 장검이 그의  손앞에 와서 미끄러지듯이 옆으로 

가며 백리장천의 손을 벗어났다. 

  혈마의 손짓에 따라 빠른 속도로 백리장천의  목을 뚫고 나왔다. 백리장

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니 오대마군과 혈마의  뒤에 시립해있던 두 노인

의 눈도 커졌다. 그것은 백리장천이 펼친  어검술보다 높은 경지의 어검술

이었기 때문이다.

  백리장천의 손이 들려지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터져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피였다. 백리장천의  몸이 천천히 무너지면서 그

가 앞을 가리킨 손은 어느새 하늘로 향해 있었고  뒤로 꺾인 고개는 두 눈

을 부릅뜬 채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백리인군은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서 백리장천의  몸을 부여잡았다. 몸은 

점점 싸늘해져가고 있었고 피는 끊임없이 흘러나와 주위를 적셨다. 백리인

군은 오열을 하다가 정신을 잃었는지 푹 쓰러졌다. 

  "정중히 묻어 주도록……"

  혈마는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렸다. 

  

  별들이 하나 둘 지면서 주위는 점점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 전체

가 수증기를 내뿜는 것처럼 안개에 휩싸였다. 

  밤을 새우거나 곳곳에서 새우잠을 자던 자들은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

다. 소천도 몸을 일으키고 가볍게 몸을 푸는 운동을 했다. 몇 번의 손짓과 

발짓을 하여 몸을 푼 소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무리가 아직도 이곳 

저곳을 헤매고 있었다. 

  "산 주위를 찾아봅시다."

  세 호법과 육정산은 소천을 따라 풍청방을  나섰다. 하지만 종초홍은 주

위를 둘러보더니 육정산을 보았다. 

  "육대형. 소제는 여기에 남아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육정산은 고개를 끄떡이고 나갔다. 진행 대오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풍파

가 선두에 섰다. 산에 난 소롯길을 따라 반시진 정도 오르자 일행은 산 정

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산줄기는 그곳에서  시작이 되어 사방 삼십여리정

도 뻗어 나간 것 같았다. 중원의 거악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인근이 평

야지대라서 이 정도만 되어도 제법  큰 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멀리 

산 아래는 호수가 아름답게 보이고 있었고  호수 건너 풍무현이 아련히 모

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천은 뒷짐을 지고 그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 한 명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거리는 이십 여장 정도 떨

어져 있었는데 매우 낭패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한 명이 박도

를 휘두르며 따라오고 있었다. 어제 소천이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옥소공

자와 웅패신이었다. 

  옥소공자는 소천 일행을 힐끗 보더니 저쪽 능선을 타고 내달리기 시작했

다. 웅패신은 그 큰 몸을 이끌고 올라오더니 도로 땅을 집고 숨을 연신 몰

아쉬었다. 그러나 옥소공자의 모습이 멀어지자 웅패신은 도를 휘두르며 달

려갔다. 소천이 산세를 내려다보자 오익상이 다가왔다.

  "총호법님 무얼 찾아볼까요?"

  "여기서 보았을 때 무얼 감추어 둘만한 곳은  아니면서 눈에 잘 띄는 곳

을 찾아보십시오."

  세 호법은 궁금했지만  산세를 살펴보고 각기  흩어져서 산을 내려갔다. 

육정산은 소천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소공자 왜 이곳으로 올라오셨습니까?"

  "초대 풍청방주는 신의가 있는 인물입니다. 진우량이 망하고도 자신과을 

후대를 위해서 보물들을 꺼내 쓰지 않을 걸 보면 말입니다. 견물생심이라, 

보물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불문가지. 그렇다면 가족들에게도 알리

지 않을 터이고, 먼  곳에 단서를 남겨두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

다. 나라면 이곳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러나 아무도 보물을 숨겼다고 

생각하지 않을 곳에 감추어 두겠소. 그게 보물이든 그 보물을 찾는 단서든 

말이오."

  하루종일 산을 누볐지만 이렇다 할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사실 자그마

한 동산도 샅샅이 뒤지려면 수많은 인원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서

너 명의 인원으로 수십  리의 산세를 뒤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소천과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는지 아니면 자신들만의  단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산줄  이곳 저곳을 뒤져보는  자들도 꽤 되었

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서 해가 졌다. 소천 일행은 바람을 피해서 정상 아래

에 있는 바위 밑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며칠을 찾아 

헤매었지만 그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타타탁. 나뭇가지가 타오르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소천은 바위에 등

을 기대어 앉아서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렸다.  일행은 약간 의기소침한 표

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이 지났건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정산이 모닥불을 헤집었다.

  "소공자, 여기서 더 이상 무얼 찾는다는  것은 아무런 성과가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만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오익상과 풍파 등이 맞장구를 쳤다. 소천은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주위를 한번 더 

살펴보고 해가 지기 전에 풍무현으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때 육정산은 손으로 땅을 집으며 몸을 부웅 떠올렸다. 단숨에 십여 장

을 솟구친 그의 손이 허리에서 뻗어져  나가며 하나의 장도가 산정상에 서 

있는 자를 향해 나갔다. 그 자는 눈을  부릅뜨며 몇 발짝 물러났지만 이내 

도영에 갇혔다. 그는  옥소를 휘둘러서 막아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땅을 구르며 몇 장을 뒤로 물러났다. 

  육정산은 도를 거두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깡마른 얼굴과 만신창이 

된 옷가지, 여기저기 혈흔이 묻어 있는 몰골은 영락없는 상거지 꼴이었다. 

단지 그의 한쪽 손에든 옥소만 그가 옥소공자라는 사실을 대변해 주고있었

다.

  "옥소공자. 그대는 왜 우리의 회동을 몰래보고 있었소이까?"

  강호에서 다른 문파의 회동을  몰래 지켜보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사람을 죽여도 그 죽은 자의 사문에서는 복수를 할 수 없었

다. 옥소공자는 처연한 얼굴을 하였다.

  "먹을 것을 조금 나누어주시오."

  옥소공자는 떨리는 입으로 그렇게 말을 하였다. 그때 저쪽에서 웅패신이 

큰 코를 벌름거리며  박도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웅패신이 도를 휘두르며 

달려오자 옥소공자는 훌쩍 정상에서 뛰어내려 바위를 한번 차고 다시 소천 

일행이 있는 곳에 내려섰다. 잘익은 토끼고기 몇점을 가져다 먹었다. 

  웅패신은 한손으로 바위 위를 집으며 내려서며 고함을 쳤다. 

  "이봐! 어서 사생결단을 내자."

  옥소공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기를  뜯다가 입이 막혔는지 컥컥 거

렸다. 그러자 육정산이 물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옥소공자는 물주머니에서 

물을 들이켰다. 

  웅패신이 시위용으로 바위에 도를 내려치자 돌 조각이 튀어 오르고 바위

에 움푹 홈이 패였다. 그걸 보고 한쪽에  앉아 있던 쌍수곤룡 오익상이 일

어서서 성큼 다가갔다. 

  "허허허. 제법이군."

  오익상은 두 개의 곤을 들어 심호흡을 하고 바위를 연달아 내려쳤다. 그

가 내려치는 곳은 웅패신이 그은 도흔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바윗돌이 사방으로 튀면서 웅패신이 새겨놓은  도흔이 모두 사라지고 대

신 오익상의 곤에 의해  움푹 패인 흔적만 남았다.  그것을 보자 웅패신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되었다. 

  "나와 손 힘을 겨룰 생각이 있느냐?"

  오익상은 껄껄 웃으며 곤을 등 뒤에  집어넣고 양손을 벌였다. 웅패신도 

도를 집어넣고 양손으로 오익상의 양손을 잡아갔다.  둘이 손을 맞잡고 힘

을 쓰자 팔에서 근육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땅 속으로 발이 빠져 들

어가고 둘의 얼굴은 점점 새빨개져갔다. 

  오익상은 오익상대로, 웅패신은 웅패신대로 서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오

익상은 내공이 약한 웅패신이 천생신력으로만 자신을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는 것에 놀랐고 웅패신은 힘으로 자신을  능가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놀

라웠다. 

  오익상도 내공으로 끝장을 보지 않고 신력으로 끝장을 보고 싶어 내력을 

쓰지 않았다. 그러자 둘은 누가 이긴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대결

을 보였다.

  옥소공자는 배가 찼는지 우아하게 고기를  뜯으며 물을 술처럼 홀짝이며 

둘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웅패신이 조금씩 밀리는  것을 보며 내심 고소하

게 생각을 하는지 미소를 지었다. 

  육정산이 몸을 일으켜 둘 사이에 다가가서 한 손으로는 오익상의 가슴을 

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웅패신의 가슴을 밀었다. 둘은 가슴이 답답해져 옴

을 느끼고 서너 보씩 물러났다. 오익상은 육정산의 정순한 내공에 혀를 내

둘렀고 웅패신은 얼굴이 벌개져서 소리 쳤다. 

  "이 늙은이야! 무슨 사술을 사용했기에 나를 밀어내었느냐? 어디 정정당

당히 힘을 겨루어 보자."

  육정산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들어 바위를  가리켰다. 그것은 단지 손바

닥을 살짝 펼치는 시늉이었다. 그러나 바위가  움푹 패이며 선명한 손자죽

이 났다. 그것을 보자 중인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운기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일장에 바위에 손자국을 낸 것이다. 

  바위에 손자국을 내는 것은  바위를 쪼개거나 부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수법이었다. 그 내공이 정순해야함은 물론,  타격시 타점이 흩어지지 않아

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상승의 절예가  육정산의 아무렇지 않게 떨구는 

손에서 나온 것이다. 한때 백리가와 함께  산동을 양분했던 산동육가의 저

력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웅패신도 그러한 상승절예를 알아보

는 눈이 있기 때문에 군소리를 더 하지 않았다. 

  육정산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웅패신은 거들떠보지 않고 소천을 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지요?"

  "그렇습니다."

  소천이 검을 빼들자 중인들이 분분히  물러났다. 옥소공자는 육정산까지 

뒤로 물러서자 자신도 얼른 뒤로 물러났다. 웅패신만 두 눈을 멀뚱멀뚱 뜨

고 허약해 보이는 소천을 보며 말을 했다. 

  "바위를 검으로 자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조금 멀리 피하십시오."

  소천의 말에 모두들 좀 더 물러났다. 소천은 장검을 들어올렸다. 

  웅패신이 바위를 쳤을 때 들린 소리는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

익상의 곤이 부딪치는 소리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고 육정산의 장력에

서 확인 할 수 있었다. 그가 들은 소리는 바위 뒤가 비어 있을 때 나는 공

명음이었다.

  '탓' 하는 기합과 함께 소천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중인들은 그냥 뭐

가 움직인다고 생각을 했다. 웅패신은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는 헛바람을 

터뜨렸다. 

  "제기랄! 그 정도는 이 웅패신 나으리께서도 하겠다."

  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손바닥을 바위에 가져갔다.  쓰윽 잡아 당기자 바

위가 정확히 사각형으로 잘려서 나오는 것이다.  바위가 빠져 나오자 안에

서 강한 바람이 쏘아져 나왔다. 소천은 얼른 몸을 돌렸다. 

  바람은 악취를 담고 있었다. 오랫동안 공기가  막혀 있어 생기는 현상으

로 사람이 흡입을 하면 치명적인 독상을  입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천이 

모두들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한 것이다.

  바위는 벽돌처럼 잘려져 있었다. 그것도 일정하게  잘려져 있는 것이 아

니라 서로 교차가 되어 있어 하나  하나 빼내더라도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

게 되어 있었다. 일행들도 달려들어  바윗덩이 조각을 들어내었다. 잘려진 

단면이 매우 깔끔했다. 

  바위를 주위에 깔자 너른 돌판이 되었다. 풍파가 먼저 들어가려 하자 육

정산이 제지를 했다. 소천도 들어가지 않고 화섭자에 불을 붙여 안을 살폈

다. 그러다 무엇을 발견했는지 한곳을 가리켰다. 그들의 눈에는 바닥에 낮

게 깔려 있는 작은 줄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인들은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진우량이 감추어둔 보물이거

나 아니면 그와 관련이 된 것을 찾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헌데 소천의 얼

굴이 딱딱히 굳어지며 뒤로 물러났다. 

  "물러서시오."

  파파파! 안쪽에서 무수한  강전이 날아올라왔다. 중인들은  뒤로 분분히 

피했다. 슈슈슉, 몇 명이 동굴 안에서  뛰어 나오며 중인들을 공격해갔다. 

그들의 옷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삼혈맹!"

  파파파, 육정산의 도가  흔들리며 그에게 달려들던  두 명의 삼혈맹도의 

목이 그대로 잘려져 올라갔다. 츄리릭, 두  명은 소천의 장검에서 나온 검

기에 의해 혈도가 제압이 되었다. 오익상은 곤으로 한 명의 머리통을 박살

내었고 풍파와 진명도 자신들에게 달려온  삼혈맹도들을 깨끗하게 베었다. 

소천은 제압된 삼혈맹도의 아혈을 풀었다.

  "여기 누가 있느냐?"

  삼혈맹도는 비웃는 얼굴을 하며 침을 뱉었다.  소천은 살짝 몸을 움직여

서 그 침을 피했다. 오익상이 곤으로 그의 어깨를 내리치자 우득하는 소리

와 함께 삼혈맹도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푹 고꾸라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기절을 한 모양이었다. 소천은  다른 한 명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때 육정산의 시선이 봉우리로 향했다. 봉우리 위에는 어느새 몰

려 왔는지 수십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뻥  뚫린 동굴과 죽어 있는 삼혈맹

도들, 소천 일행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육정산은 불타는 그들의 눈을 선명

히 볼 수 있었다. 무당파의 일검자가 그들 앞에 내려섰다.

  "무량수불. 청룡장에서 먼저 동굴을 발견한 것을 경하 드립니다."

  소천은 머리가 복잡해  졌다. 우선 삼혈맹도들이  튀어나온 것이 이상했

다. 삼혈맹이 보물을 차지했다면 여기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각파  군웅들을 보고 무언가  석연치 않음이 느껴졌

다.

  "대사, 이 동굴은 저희가 먼저 발견을 했지만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습니

다. 저는 여러분과 이 동굴을 같이  탐사해볼 작정입니다. 만약 보물이 있

다면 운이 좋으신 분이 차지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위험도 함께 하니……"

  소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몇 명의  회의인들이 내려섰다. 그들은 회의

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는 한 마리 매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에 나섰다.  

  "대인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저희들이 길을 뚫겠습니다."

  그들은 뭐라고 말릴 사이도 없이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소천이 제

지를 하려고 하였다.

  "위험하오!"

  "크악! 으악!"

  먼저 들어갔던 이들이 비명성을 터트리며 퉁겨져 나왔다. 회영들의 몸에

는 무수한 강전들이 꽂혀져 있었다. 그리고 옷이 점점 붉게 변해가면서 바

닥에 깔린 돌을 물들였다. 

  중인들은 그것을 보자 모두들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

이라는 것은 위기 때 더욱 발휘되는 것이다.  기관이 이 정도라면 이 안에

는 필시 대단한 보물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수십여 명이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왔다. 그들은 장강수로맹의 인물들이었다. 

  "제기랄!"

  그들 중 한 명이 고슴도치가 된 시체를 발길로  저 멀리 내차고 안을 들

여다보았다. 그는 가슴에 수북한 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옷깃을 반쯤 풀

어헤치고 턱 주위에는 빳빳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중인들은 돌아

보지도 않고 동굴만  바라보았다. 모두들 무례하게  생각을 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제지를 하지는 않았다. 동굴은 얼마나 긴지 보이지 않았다.  

  "돌을 던져라!"

  그 말에 사내들이 일제히 바윗돌들을 들고  안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쿵

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전들이 날아왔다.  수로맹도들은 이리저리 피했지

만 몇 명은 피하지 못하고 강전에 맞아  나뒹굴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그

렇게 하고나자 이제 강전은 나오지 않았다.

  장강수로맹의 인원들은 각기 병장기를 빼들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

다. 그때였다. 안에서 흐릿한 형체들이 움직이더니 십여 개의 강전을 쏘아 

대었다. 동굴로 들어가던 수로맹도들은 그 강전을 맞아 나{{}}뒹굴었다. 몇 명

은 뒤로 몸을 빼었지만 십여 명은 몸에 맞고 동굴 입구에서 나뒹굴며 신음

성을 토해내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

  소천은 동굴에 가까이 가서 안을 살펴 보았다. 안에는 과연 사람들이 있

었다. 하지만 은폐와 엄폐를 확실히한 채 강전으로 입구를 겨누고 있는 이

들을 공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옥소공자가 입을 열었다.

  "토끼사냥을 하듯이 입구에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놓읍시다."

  "하지만 저기에는 내 동료들이 있네."

  장강수로맹의 사내가 말을 하자 옥소공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바닥에 있는  수로맹도들은 고통에 찬 신음성을 

토해내었다. 털북숭이 사내가 수하들을 보고 외쳤다. 

  "가서 굵은 나무들을 구해와라!"

  "예."

  수로맹도들은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도로

는 상처만 날뿐 나무가 베어지지 않았다. 

  육정산이 그것을 보자 도를 뽑아 들고 가서 베었다. 육정산의 도가 움직

일 때마다 나무들은 규칙적으로 베어졌다. 육정산이 사람 한 명이 들기 좋

게 나무를 잘라내자 중인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장강수로맹도들은 그 나무들을 부여잡고 동굴 앞에 섰다. 나무주위를 칡

넝쿨로 얽어매서 손으로 잡기 편하게 한 다음,  한 명씩 나무를 세로로 세

워서 들고 섰다. 그렇게 여섯 명이  서자 훌륭한 방패가 되었다. 털보사내

가 도를 휘두르며 전진을 명령하자 수로맹의 인물들이 나무를 앞세우고 달

려들어갔다. 안의 삼혈맹도들은 강전을 쏘았지만 나무에 막혀서 아무런 소

용이 없어졌다. 

  "모두 나무를 밀고 들어갑시다."

  누군가의 말에 나오자 다른 무리도 나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

다. 핑핑핑. 강전들이 나무 틈새로 파고들면서  몇 명 쓰러졌지만 이미 나

무둥치와 중인들이 그들이 숨어 있는 은폐물까지 다가온 뒤였다. 

  우지끈! 누군가의 내력에 의해 나무가 부서져 나갔다. 들고 있던 나무들

을 앞으로 밀 듯이  내던지고 수로맹도들이 병장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갔

다. 강전을 쏘던 삼혈맹도들은 동굴 아래로 내달려 갔다. 

  동굴은 가파르게 아래로 연결이 되어 있어  경공을 쓰지 않아도 매우 빠

른 속도로 달려나갈 수 있었다. 앞서서 도주를 하던 이들은 빠르게 달려가

고 있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중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내달려갔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돌연 앞의 땅바닥이 솟구쳐 오르며 수십 개의 장창이 

날아왔다. 선두에서 달리던 몇 명은  병장기를 휘두르며 장창을 쳐내었다. 

하지만 앞에서 달리던 대부분이 장창에 맞아 나뒹굴었다. 

  다시 땅바닥이 솟구치며 기관에 연결이 되어  있던 장창이 날아와 몇 명

이 쓰러졌지만 중인들은 개의치 않고 달려 나갔다.

  그들은 곧 너른 지하공터에 다다랐다. 지하수로가 흐르는 한쪽에 인공적

으로 만든 가교가 보였다. 동굴 곳곳에 불타고 있는 횃불들이 웅크리고 있

는 삼혈맹도의 모습을 희미하게 잡고 있었다.  중인들은 병장기를 들고 주

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삼혈맹이 보물을 독차지하고 있소이다."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중인들은 다시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달려갔다. 각 동굴과 바위 뒤에서 강전들이 날아왔다. 하지만 중인들이 강

전을 쳐내며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도 장도를 빼들고  대항을 하기 시작했

다. 

  턱턱, 소천은 세 호법들을 동굴의 한쪽  그늘로 잡아 당겼다. 세 호법들

은 선두에 달려가다가 소천의 제지로 한쪽 벽으로 바싹 붙었다.  

  육정산은 선두에서 일도로 삼혈맹도들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일도에 삼

혈맹도들은 별 저항을 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육정산의 활약에 크

게 고무된 중인들은 사방팔방으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소공자. 이 기회에 우리 청룡장의 무력을 알려야 하지 않겠소?"

  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오. 옥소공자와 웅패신이 어디 있는지 자세히 보시오."

  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웅패신과 옥소공자를 보았다. 세패로 갈라

진 중인들 앞에 웅패신, 옥소공자, 종초홍이  있었다. 종초홍이 도를 빼들

고 고함을 쳤다. 

  "저쪽으로 놈들이 도망을 가고 있소이다."

  중인들은 우르르 그쪽으로 달려 나갔다. 육정산의 모습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천은 개의치 않았다. 육정산쯤 되는 고수라면 자

신의 몸은 자신이 지킬 수 있었다. 그 무서운 삼혈맹의 포위공격에서도 살

아 나온 인물이 아니었던가. 세 호법은 중인들이  저들 세 명의 고함에 움

직이는 것을 보고 몸을 떨었다. 

  "그럼 이게 음모……?"

  소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어떻게 되어서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저들 세 명은 어느 정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알고 있

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분께서는 종초홍을 뒤따르십시오. 그자는  일이 끝나갈 무렵이면 몸

을 감출 겁니다. 그를 생포해서 풍무현의 거처로 데려 오십시오. 될 수 있

는 대로 다치지 않게  하십시오. 어쨌든 우리의 적인  것 같지는 않으니까

요."

  세 명은 고개를 끄떡이고 종초홍이 간 동굴로 몸을 날렸다. 어느새 주위

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천은 그늘에서 나와서  가장 큰 동굴로 향했다. 동

굴의 곳곳에는 삼혈맹도들과 중인들의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동굴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소천은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

다. 동굴 안에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고함소리들이 웅웅거리며 들려오

고 있었고 커다란 그림자들이 마구 어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소천이 나간 곳은 넒은 동굴이었다. 동굴의 반쯤은 물에 차 있었고 동굴

은 물위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아마도  밖의 호수와 통하는 동굴 같았다. 

물위에는 몇 척의 전선이  떠 있었다. 저 수로를  통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배들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삼혈맹도들과 수십명의 수로맹도들이 어우

러져 있었다. 삼혈맹도들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배 위에 올라오는 

장상수로맹도들을 척살하고 있었다. 

  그들의 혈포가 흔들리고  도가 떨리우면 장강수로맹도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갔다. 십여 명이 그렇게 쓰러지자 배 위에 올라와 있던 자들은 다시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수로맹도들이 배  위에서 내려가자 혈영들은 노를 

젖기 시작했다. 

  그때, 물이 출렁이더니 한쪽에 수십 개의 손이 올라왔다. 그리고 밑으로 

당기는 것이다. 그러자 배가 기우뚱하였다. 그런 연후에 일제히 손들이 물 

속으로 사라지고 배는 반대편으로 다시 흔들렸다. 

  몇 명의 삼혈맹도들은 그  반동에 물 속으로 떨어졌다.  물 속에 떨어진 

그들은 주위를 붉게 물들이며 창백한 모습으로 아무런 움직임 없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물 속에서 장강수로맹도들에게 당한 것이다. 

  어떤 시체는 목과 몸이 분리되어서 따로 떨어져 올라오기도 했다. 배 위

에 있던 삼혈맹도들이 그것을  보자 발악적으로 물  속으로 암기를 날리고 

도를 휘저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암기를  날리고 도를 휘두르기 위해

서 몸을 세우자 손들이 다시 올라오고 이번에는 완전히 배를 뒤집었다. 

  잠시 뒤에 뒤집힌 배 주위로 시체들이  떠올라왔다. 그들의 모습은 조금 

전에 올라오던 시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보라가 일면서 배가 다시 원

래대로 돌아왔다.

  동굴과 물이 닿는  부분에서도 수십명의 중인들과  몇명의 삼혈맹도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은  싸움이 더 치열했다.  이곳에 온 인물들은 

모두 각 문파에서 뽑은 정예들이었다. 게다가  수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

기 때문에 삼혈맹도들을 일방적으로 몰아 붙이고 있었다. 

  삼혈맹도들도 배수진을 치고 발악적으로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중인들

도 자신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아서 동귀어진의 초식으로 달려드는 

삼혈맹도들에게 적극적인 공격을 하는 않았다.

  소천은 다시 배를 바라보았다. 이십명의 수로맹도들이 아미자를 입에 물

고 배 위에 올라왔다. 장강수로맹의 수상객들은  배 위에 상자를 올리더니 

활짝 열어보았다. 상자에는 은자와 전표, 금괴가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서둘러 그것을 닫고 배를 몰아 물이 반쯤 차 있는 동굴로 빠져나가기 시작

했다. 털북숭이 장한이 중인들을 보고 소리 쳤다. 

  "우리는 금은 약간을 얻었소이다. 이 동굴 곳곳에 이것보다 더한 보물들

이 있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이 정도에서  손을 떼겠소이다. 불만들이 

있으시면 이 배 위로 올라와 보시오."

  장한의 소리에 중인들은 삼혈맹도들을 몰아  붙이면서도 배 위로는 감히 

올라가지 못했다. 삼혈맹도들이 물 위에서 어떻게 당했는지 보았기 때문이

다. 

  "그럼 그만 가겠소이다."

  그가 신호를 하자 장한들이 일제히 노를 젖기 시작했다. 그러자 배는 빠

른 속도로 동굴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  속에서도 사람들의 고개가 올

라와서 배를 따라서 헤엄을 쳐 나갔다. 배와 수로맹도들은 금새 동굴 안쪽

으로 사라졌다. 

  "이보시오! 갈 땐 가더라도 이름석자나 남겨두시오."

  누군가 소리치자 동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장강수로맹의 장강일교 장운생이라고 하외다."

  삼혈맹도들은 거의 대부분 토벌이  된 듯이 보였고  중인들도 이제 뭐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삼혈맹을 기습했다

는 사실을 상기하고 몸을 떠는 이들도 있었다. 

  삼혈맹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한 자들을 살려두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공포를 내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이곳에 온 문파와 사

람들은 매우 많았고 또한 그런 공포를  보여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싫

었기 때문이다. 모두 호탕하게  보이려는 듯 웃기  시작했다. 단지 소천만 

중인들을 보며 얼굴을 굳혀갈 뿐이었다. 다른 동굴도 아마 이와 비슷한 모

습일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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