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 풍청방. (8/95)

  

  8. 풍청방.

  

  탁자 위에는 산과 강, 갈대 그리고  배가 있었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인

형이 그 사이에 놓여졌다.인형들은 황토색의 인형들과 흰색 인형들로 나뉘

어져 있었다. 손들이 진흙인형을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했다. 황토 인형들

이 갈대밭을 가르며 다리를 놓자 흰 인형들이  화살을 쏘아 저지 했다. 잠

시 뒤 활을 쏘던 인형들이 퇴각하고  산능선에 있던 인형들이 수로로 접근

해왔다. 둘이 합쳐지는 사이 황토 인형들이  다리를 그들 가까이까지 놓았

다. 그러자 흰 인형들이 활을 쏘아댔다. 손 하나가 붉은 깃발을 갈대밭 사

이로 꽂았다. 그 깃발에는  화(火)자가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말을 탄 인형들이 달려오고 그 기세에 놀란 흰 인형들이 산 능선으로 퇴각

하기 시작했다. 

  "잠깐!"

  외침과 함께 주위가 환해지며 실내가 드러났다.  탁자 주위에는 십여 명

의 인물이 자리했다. 상석은 좌우에 서왕과  단청운을 거느린 단우백이 앉

아 있었다. 인형들을 옮기던 손의 주인들은  매우 젊은 청년으로 양산박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그 인물들이었다. 청룡장의 신진고수로 단우백으로부터 

직접 사사를 받았다. 이 둘은 청룡장의 최강전투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왼

쪽의 키가 큰 자는 장주 직속의 최정예인 오기령을 이끌고 있는 잔백검 한

충이었고 그 옆의 다부진 몸집은 청룡장의 전위 공격대인 청룡단을 이끌고 

있는 동방후였다. 주위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상관평에게로 모아졌다. 상

관평은 멈추어진 부분에서 강가를 지적하며 말을 했다.

  "백리세가의 패착은 바로 이곳입니다. 백리인군은 겁을 먹은 겁니다."

  그 말에 중인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상황이라면 누가 겁을  먹지 않겠소이까? 불길을  뚫고 달려오는 그 

많은 군마에…….?"

  "그래도 지휘관은 겁을 먹으면 안됩니다.  그게 명장과 패장의 차이입니

다." 

  "흠. 여기서 막아섰다 하더라도 객관적인 전력상 패배는 뻔한 것이 아니

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패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상관평은 섭선을 흔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 물 속에서 적들의 기마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

려 거추장스러운 짐입니다. 만약 여기서 이  백살대를 뒤로 빼고 백리세가

의 일반 무사들이 전면에 나서 사해방도들의 상륙을 저지했다면 이 기마대

는 불길에 휩싸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에서 화살밥이 됐을 겁니다."

  그 말에는 모두들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에 비하면 적장은 전투감각이 매우  뛰어난 자입니다. 게다가 사지

에서 생을 구하는 전형적인 전사입니다. 적이라면  매우 꺼려 할만한 자입

니다. 만약 이때 기마대가 불을 두려워 후퇴를 했다면 사해방은 전력이 분

산되어 대패 했을 겁니다."

  상관평이 침묵을 지키자 불이 다시 꺼졌다. 그리고 탁자 위의 등불이 다

시 켜졌다. 황토인형과 흰 인형들이 도망치고 추적하는 추격전을 거듭하다

가 다시 흑색 인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모든 것은 사해방과 백리세가

의 양산박 대전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청룡장의 수뇌부들은 그것을 보

며 전술을 검토하고 있었다.  대전이 끝나자 다시  안이 환해졌다. 탁자는 

어느새 치워져 있었고 인형들을 움직이던 청년들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상관평은 수뇌부를 한번 쓸어보고는 단우백에게 시선을 고정 시켰다.

  "사해방은 백리세가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지 않음으로써 두 가지 실익을 

얻었습니다. 첫째는 전력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첫째 못지 않은 것으로  대의명분을 얻었습니다. 즉,  이번 싸움을 녹림과 

백도문파의 싸움이 아닌, 사해방과 백리세가의  이권과 세력다툼으로 규정 

지었다는 겁니다. 문제점이 있다면 백리세가의  최고고수들이 아직 건재하

고 있어 언제든지 백리세가의 재기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사

해방은 다시 한번 전쟁을 치러야 할 겁니다. 또한 요동낭인대의 처우 문제

입니다. 요동낭인대는 백리세가를 배신하고 사해방에 투항을 했습니다. 사

해방에서는 지금 아쉬운대로 쓰고 있지만 이들을  믿지 않을 겁니다. 또한 

요동낭인대는 그들대로 중원 내에 자신들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할 겁니다. 

이 둘의 밀월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이 둘의 관계가 끝나는 순간 멸망

하게 될 겁니다."

  "문상! 사해방에서 우리가 양주로 진출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항의가 없

었소이까? 불만이 많을 텐데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청룡당주 예리성이었다.  청룡당주와 백호당주는 쌍

둥이로 얼핏 보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예리성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백호당주인 예리극은 콧수염을  기르지 않고 있었다. 상관

평은 예리성을 한번 보고 수뇌부들을 보았다.

  "없습니다. 불만이야 있겠지만 지금 사해방으로서는 우리를 적으로 돌릴 

형편이 못됩니다. 게다가 내부의 정리도 끝내지 못 한 상태라 당분간은 아

무런 대응도 못할 겁니다."

  중인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한 명이 일어서서 예를 취했다.

  "장주님 그리고 여러 분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단우백과 상관평을 비롯한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작달막한 키에 꾀죄죄

한 몰골과 얼굴에는 수염이 드문드문 나  있는 현무당주 가구통이었다. 왜

소한 몸집이 무림고수들이 모여 있는  청룡장의 현무당주에는 어울리지 않

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사천당가의 명숙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다는 암

기의 달인이었다. 왜소한 몸집으로 인해 권법이나 장법을 극상승까지 익힐 

수 없다는 신체적 단점을 알고 일찌감치  암기 연구에 몸을 바친 인물이었

다. 그의 비산영(飛散影)이라는 암기 아닌 암기는 사천당가에서도 혀를 내

두르고 있었다. 가구통은 시선이 집중되자 약간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사해방주 악일비는 모두 다 아시다 시피  수공에 조금 능하고 처세술이 

조금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 인간의 위인됨으로 볼 때 사해방을 이끌고 있

는 것도 기이한 일입니다. 헌데 그는  백리세가와의 무모한 싸움을 완승으

로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요 며칠간의  전황은 도저히 악일비의 능력

에서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사해방의 빈약한 정보망으로는 요동낭

인대의 출발조차 알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우리 청룡장에서도 몰랐던 

사실이 아닙니까? 헌데 사해방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요동낭인대를 휘하에 거두는  대범함과 그들을 이용하

는 전법 등은 수상전에 능하고 육상전에  약한 악일비의 능력 밖의 결과라

고 봅니다. 게다가 양산박의 상륙공격전법은 저희 청룡장의 집단전 전문가

들도 며칠을 싸매야 도출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헌데 악일비는 기다렸다

는 듯이 부교 공격진을 편성해서 쳐들어갔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이 부

교에  쓸 개미선들을 준비해두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악일비나 사해방

의 능력으로는 모두 벅찬 것들입니다."

  평소에 아무말이 없던 가구통이 일단  입을 열자 의아해했는데 뜻밖에도 

매우 논리가 정연하고 이치에 맞는 말이 흘러 나오자 모두 혀를 내둘렀다. 

모두 그가 평소에 알던 가구통인지 의심이  가서 다시 한번 얼굴들을 살펴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상관평은 가구통의 그러한  지적에 섭선을 흔들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다면 가당주께서는 사해방에 배후가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직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드러난 상황을 볼 때 사해방에 

배후가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게 됩니다. 사해방은 우리와 세력권이 교차하

는 곳이 많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그들의  터전이었던 양주를 비롯해서 장

강 하구에 우리의 세력을 크게 진출시켰습니다.  사해방은 그에 대해 우리

에게 항의를 해올수가 있습니다. 만약 사해방의 배후세력이 존재한다면 그

것을 빌미로 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합

니다."

  단우백은 고개를 끄떡였다. 

  "가당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이다. 문상."

  "예."

  "문상께서 이일을 좀더 조사 해보시겠습니까?."

  "예. 그러지요."

  "다른 안건이 없다면 이번 월례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소이다."

  단우백의 말에 중인들은 분분히 일어나 읍을  하였다. 소천도 가볍게 단

우백에게 읍을 하고 자리를 떴다. 자신의 처소로 가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

리가 들려왔다.

  "소공자!"

  소천의 공식직함은 총호법이었지만  모두들 소공자라고  불렀다. 그것은 

태상장주때부터 무사들이 부른  것이 지금은 하나의  칭호가 되어 버렸다. 

돌아본 소천은 육정산이 보이자 환히 웃었다.

  "육당주님. 안색이 않좋으신데 무슨 불편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허허허. 너무 편해서 탈이지요. 헌데 손주 녀석 소식은……?"

  육정산의 손자인 육능풍은 청룡장의 명의에게 인계 되었다. 명의의 신분

을 아는 사람은 전대  장주이신 청룡노야와 지금의  장주인 단우백 뿐이었

다. 

  명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극소수였지만 진면목을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단지 청룡장에서 쓰여지는 대부분의 상비약, 구급약, 금창약과 해

독단등 의술과 관련된 것은 그의 손을 거쳐서 나온다는 것을 몇 명의 수뇌

부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철저한 비밀에  가려져 있는 청룡장의 명의, 소

천과 몇 몇 수뇌부는 그를 약왕각주로  불렀다. 그래서 육정산은 육정풍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실력은 맥만 있으면 누구라도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한번 볼 수는 없겠는지……?" 

  소천은 어깨를 으쓱했다. 약왕각주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는 것도 금기시

되어 있었다. 청룡장에는 그런 인물이 약왕각주 외에도 몇 명 있었다.

  "제가 대사형께 청을 한번 드려보지요."

  "그래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육정산은 소천의 손을 잡았다. 소천은 육정산의  손이 매우 거칠다는 것

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한때는 일가를 이루어 중원의  한 지역을 호령했던 

일세 영웅의 손 치고는 매우 거칠었다.  육정산은 청룡장의 집법당주로 제

수받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한때  산동을 양분했던 육가의 가주인 

그에게 일개 당주는 매우 낮은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

다. 그는 손자가 다시 보통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말에 직함은 어떻게 되

어도 좋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소천은  걱정스러운 노안으로 자신을 쳐다 

보고 있는 육정산을 한번 더 안심 시키고 청룡대전으로 되돌아 갔다. 소천

이 대전에 들어섰을 때 단우백은 서왕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소

천은 웃으며 말을 했다.

  "제가 두 분 사형의 대화를 방해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왕과 단우백은 웃었다.

  "하하하. 사제가 우리  일을 방해할게 무에  있다고……. 그렇지 않아도 

사제를 부르려던 참이네."

  소천은 자리에 앉아서 단우백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육정산에 관한 이야기

를 하였다. 단우백은 소천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소천은 누구에게나 안면

을 가리지 않고 서슴없이 직언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두

들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깊은 속내까지 통하게 되었다. 단우백은 

소천을 청룡장의 소식통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 청룡장의 하급무사들

도 소천에게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했고 소천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 중

에서 중요하다 싶은 것은 단우백에게 말을 했다. 어떤 때는 단우백이 매우 

곤란해하는 것도 서슴없이 지적을 했지만  그것이 충심임을 알기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곤란하네."

  단우백은 소천의 말을 듣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언제쯤 볼 수 있다는 정도는 알아봐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단우백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건 가능하네. 그리고 자네가 해주어야 할 일이 생겼네."

  "뭡니까?"

  "무창에 가주어야겠네."

  "무창에요?"

  

  무창은 호북성의 성도로 장강 수운의  중심이자 주위에 광활한 호북평야

를 끼고 있는 곡창의  중심지이며 황학루가 있어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무창성에서 동북쪽으로 사십리쯤 가면 나즈막한  동산 아래에 수천여 호

가 모여 사는 작은 현성이 나타난다. 

  벌판을 거칠 것 없이 달려와 불어오는  바람과 새벽이면 현성 옆 호수에

서 이는 아름다운 안개가 무척이나 유명한 풍무현(風霧縣)이라 이름지어진 

곳이다.

  풍무현성 동쪽에 자리한 호수는 제법 컸다.  동정호나 포양호에 비할 바 

아니지만 풍무현성의 몇십 배는 되었다. 풍무현성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곡

물들은 이 호수와 연결된 장강수운(長江水運)을  따라 무창성으로 팔려 나

갔다.

  평화로운 이곳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부터였다. 이곳 풍

무현성을 비롯, 인근 백여 리에 걸쳐 사업체를 가지고 있던 풍청방이 하룻

밤 사이에 초토화 된 것이다. 

  풍청방과 현성은 채 십여 리도 안되는 거리였음에도 며칠이 지나서야 사

람들은 풍청방의 참사를 알았다. 

  무림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풍청방의 정문에  꽂힌 삼혈맹의 삼각 

소기였다.

  인근에서 무림 문파간의 혈사가 벌어지자 풍무현 사람들은 해가 지면 집

밖으로 나다니지 않았고 현령은 관병들에게 현성 수비를 엄중히 하라고 지

시했다. 몇 달이 흐르자 민심도 차츰 가라앉았다. 

  헌데 요즘 들어 병장기를 든 무림인이  하나 둘 현성으로 모여들자 백성

들은 다시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열래객잔.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객점이었으나 이틀 전부

터 이곳은 평범한 객점이 될 수 없었다. 객잔 앞에 꽂힌 하나의 깃발 때문

이었다. 

  아홉 마리 용이 서로 뒤엉켜 승천 하는 모습이 수놓아진 큰 깃발로 강호

에서 이런 깃발을 표식으로 사용하는 곳은  오직 한군데, 장강수로연맹 뿐

이었다. 장강수로연맹은 장강일대에 산재해 있는 수채들의 연합체다.

  과거 장강의 수채들은  구역을 두고 상호간에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다. 

그 와중에 무수한 인명이 손실  되고 업친 데 덥친  격으로 관군의 토벌이 

강화되자 수채들은 힘을 잃은채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장강 일대의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던 아홉 개의 수채

의 주인들은 연맹을 결성하여 결속을 다짐하고 외부의 적에 대해 공동대응

키로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장강의 수채들이 연합 하자 커다란  힘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장

강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속속 한  곳으로 모였고 관군의 움직임이 곳

곳에서 노출 되었다. 

  수로맹은 소부대 관군은  기습 섬멸하였고, 대규모  토벌대가 오면 꼭꼭 

숨었다. 지리한 싸움에 관군 수뇌부도 지쳐갔다. 

  결국에 관부의 토벌이 유야무야되고 장강수로맹은 장강 일대의 수채들을 

담아내는 큰 틀이 되었다. 그 힘은 매우  강력하여 장강에 띄우는 작은 조

각배 하나에도 장강수로맹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몇 군

데 예외적인 곳이 있다면 대문파나 관부의 전선 정도였다.

  그 장강수로맹의 깃발이 열래객잔에 내 걸린 것이다. 수로맹의 인물들이 

어디엔가 집결을 해야 할 때, 이렇게  깃발을 내걸어 그곳을 장강수로맹의 

임시 분타나 임시 총단으로 사용했다. 즉, 지금은 열래객잔이 아니라 장강

수로맹의 풍무분타가 된 것이다.

  장강수로맹이 수적의 집단인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현성의 

현령은 관군을 동원하여 토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단지 현령은 이들의 

수뇌라고 자처하는 자가 찔러준 은자만  만지작거리며 소일하고 있을 뿐이

었다.

  열래객잔에 내걸린 깃발을 보며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

다. 청룡장과 장사를 하고 있는 풍무현의  상인으로 소주에서 나는 벼루와 

먹을 사서 이곳에서  파는 인물이었다. 청룡장과의  관계는 싼값에 물건을 

사들이는 대가로 풍무현의  소문이나 근황 등을  가끔 알려주는 정도였다.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정대인이라고 불렀다. 대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뭣했

지만, 평소 인덕을 많이 쌓아서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가 내쉬는 한숨을 정문에 있는 두  사내가 보았지만, 그들은 요지부동

이었다.

  '어렵다 어려워!'

  그는 며칠 전 청룡장에서 고위급 인사들이  찾아오니, 이곳 풍무현의 객

점을 하나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려운  부탁도 아닌지라 그는 열래

객잔의 특실을 모두 계약 했다. 이번 기회에 거래 규모를 늘려볼 요량이었

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헌데 난데없이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치더니 이곳을 장강수로맹의 분타로 

삼아 버린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다

른 곳을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 다른 객점들도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정대인은 저쪽에서 다가오는 종업원을 보고 다시 큰 한숨을 내쉬었다. 

  정대인은 터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점포로 향했다. 세칸의 점포 안

에는 벼루와 종이를 비롯한 문방사우들로 넘쳐 났다. 점포 뒤쪽의 작은 쪽

문으로 들어가자 십여 칸의 건물과 마당이 나타났다. 

  

  정면의 문이 '덜컹!' 열리며 계집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왔다. 계집 아

이는 입에 문 빙당호로를 우물거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아빠! 손님이 오셨어. 내게 이것도 사줬다."

  계집아이는 작고 귀여운 노리개를 흔들었는데  일견하기에도 값 나가 보

였다. 정대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몇 점의 서화와 글씨가 걸려 있고, 창가 탁자위로 분재들이 우아하

게 자리잡은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대인은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들어섰으나 쳐다 보는 고리눈에 삽시간

에 몸이 위축 되어버렸다. 눈 앞에는  다섯명이 있었다. 고리눈의 칠 척이 

넘을 듯한 큰 키에 산적같은 빳빳한 수염, 등에는 두 개의 곤을 멘 사내와 

오순가량에 염소수염이 꽤나  밉살스럽지만 허리춤에 구환도를  차고 있어 

위풍스러워 보이는 사내, 또 한 사내도  허리에 도를 차고 있었다. 마지막

으로 머리가 새하얀 노인과 청년이 등을 보인채 서 있었다.

  정대인의 눈길은 등을 보인 노인을 쫓았고,  그의 예상대로 노인이 그림

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주름진 얼굴을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약관이 갓 넘었을 법한 청년이 몸을 돌리며 정대인의 예상

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청룡장의 소천입니다."

  "정익지라고 합니다. 모두들 정가라고 부르지요." 

  "열래객잔에 수로맹이 들어 차 앉았다고요?"

  정익지는 소천이 먼저 그런 말을 하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다른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오익상이 탁자를 치며 말을 했다.

  "총호법! 장강수로맹이 우리가  먼저 예약한 곳을  무력으로 선점했다는 

것은 분명 청룡장을 무시한 명백한 도발행위입니다. 가서 모두 쓸어버립시

다."

  정익지는 얼굴이 샛노래졌다. 이들은 자신의 짐작대로 무림인이었다. 청

룡장과의 거래는 어디까지나 상업적인 목적에 국한되어야 했다. 이렇게 무

림인들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에게 집의 방 두어칸을 내어 줄 생각도 해봤으나, 무림인 간의 다툼

에 끼어들게 되면 후일 무슨 화를 당할지 몰라 망설이고만 있었다.

  "거기는 족히 사오십 명이 몰려 있습니다."

  오익상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오합지졸은 기백명이 모여 있어도 겁날게 없소이다."

  "오호법께서는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육정산은 이번 일에 삼혈맹이 관련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먼저 참가를 

요청 해왔다. 

  소천은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가 말을 했다.

  "이 근처에 빌릴만한 별장이나 독채가 없습니까?"

  "현령께서 작은 별장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흠. 현령은 곤란하고……"

  "곤란할 게 무어 있습니까?"

  오익상의 말에 진명이 핀잔을 주었다.

  "우리가 곤란하다는 게 아니고 이 분 정대인이 곤란하다는 걸세. 여기서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야 떠나면 그뿐이지만  정대인은 타격이 크지 않겠는

가?"

  정익지는 이들의 담대한 모습에 한 곳이 생각났다.

  "지금은 폐가가  되었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사람이 살던  곳이 있습니

다." 

  "어디요? 그곳이……."

  "풍청방에서 운영 하던 비단 가게입니다. 그런  곳이 몇 군데 되지만 모

두들 두려워해서……."

  오익상은 껄껄 웃었다. 

  "우리는 삼혈맹을 두려워하지 않소이다. 안내 하시오."

  

  오익상을 앞세운 일행은 상점가 한가운데에 있는  매우 큰 건물 앞에 도

착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물건들은 온데 간데 없고  거미줄만 잔뜩 깔려 

있었다. 

  뒤로 통하는 문을 열자 이십여 칸의  건물과 너른 공터, 창고가 보였다. 

정익지는 밖에서 두려움에 떠는 십여 명의 장정들을 불러 들였다.

  그러나 장정들은 모두 울상을 지은채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몇배의 후

한 일당도 이곳 폐가에 들어가는 공포를 이기게 하지는 못했다.

  소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고 곳곳에 거미줄들이 

늘어져 있지만 건물 자체는 모두 쓸만했다. 소천은 정익상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왜 이렇게 남게 되었소이까?"

  "이곳은 원래 풍청방에서 운영 하던  곳입니다. 풍청방이 무너지자 이곳

에서 일을 하던 이들도 사라지고, 그 뒤로 이곳을 인수하겠다는 사람도 없

고 해서 그만 폐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이 집에는 들어오는 사람

들이 없었습니다."

  "이곳은 삼혈기가 내린 곳이 아니니 안심 하고 들어오셔도 됩니다. 삼혈

맹의 율법은 독특한 데가 있어 삼혈기가  내린 장소에는 백일간 외인의 출

입을 금하지만 그 외의 장소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저희가 이곳을 쓰

지요. 저희가 가면 정대인께서 사용을 하셔도 무방 하실 껍니다. 나중에라

도 풍청방의 후인이 나타난다면 제값을 쳐주면 되지요." 

  장정들이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오익상은  고리눈을 뜨며 고함을 쳤

다.

  "돈벌기 싫으면 어서들 가시오. 나원 참! 하루에 은자 오전 벌기가 쉬운 

줄 아나?"

  은자 오전이면 농부가 반달을 고생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정대인 육전 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천이 고개를 끄떡여 승락하자 모두 연장과 청소도구를 들고 안으로 들

어왔다. 

  소천은 세 호법을 보았다.

  "세 분은 주위 상황을 정탐한 뒤  유시(酉時)에 다시 이곳으로 모이십시

오. 그리고 정대인께서는 이 돈으로 쾌속선 한 척을 장만하십시오."

  "사공은 필요 없습니까?"

  "위험한 일에 외인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배라면 저희들도 사용 

할 수 있으니 걱정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정익지는 전표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소천은 적의 습격을 우려해  점포 앞에 벽을  만들고 허물어진 담벼락을 

손 볼 것을 장정들에게 지시했다.

  그때 육정산이 힐끗 밖을 보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날파리들이 몇 명 와 있네."

  "어디 같습니까?"

  "수로맹인데."

  "곧 돌아가겠지요. 시비를 걸러 온건 아닐 겁니다."

  "그렇겠지. 헌데 여기는 무슨 일로 이렇게 많이 모여드는 겐가?"

  "저도 잘 모릅니다. 장강수로맹과 무당파가 움직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뭔가 있나 싶어 덩달아 나와 본 겁니다."

  육정산은 피식 웃었다. 

  일은 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끝이 났다. 건물에서  손 볼 곳은 별로 없었

고 간단한 내부 청소와 가재도구, 침대를 가져다 놓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

다. 거기에는 밤까지 일을 하지 않겠다며  점심까지 거르고 열심이었던 사

람들의 공도 컸다. 그들은 일당을 받자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떨어지자 거리에는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소천은 정익지

와 배를 확인한 뒤,  자신들이 찾을 때까지 이곳에  오지 말것을 당부하고 

집으로 보냈다.

  소천 일행이 다시 모인 것은 유시말  무렵이었다. 근처 객점에서 저녁을 

먹은 일행은 차를 들며 각기 자신이  수집해 온 정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

했다.

  먼저 오익상이 보고했다.

  "장강수로맹에서는 대대적으로 인원을 파견한 모양입니다. 열래객점에만 

해도 사십 명은 족히  될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호수에 전선이 배치되어 

있고 그곳에도 일백은 집결해 있었습니다."

  "일백이나요?"

  소천의 말에 오익상은 고개를 끄떡였다. 

  "중형전선이 한 척에 소형 전투선이  다섯 척이었습니다. 중형에 사오십 

명, 소형 전투선에 열 명씩만 잡아도 일백은 족히 될 겁니다."

  "음…… 풍호법께서는 어땠습니까?"

  "풍청방이 있던 자리에 삼혈기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각파의 

고수들이 사방을 뒤지면서 서로 견제하고 있습니다."

  "무당 쪽은 어떻습니까?"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당의  제자 이십 여 

명과 속가제자 십여 명이 이 지역 객점에 머물고 있다는 것만 확인 되었습

니다."

  소천의 질문이 더 이상 없자 이번에는 절명도 풍파가 물었다.

  "총호법! 우리가 왜 왔는지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천은 고개를 끄떡이며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열자 

작은 옥배가 나왔다. 중인들의 시선이 옥배에 집중 되었다. 소천은 옥배를 

뒤집었다. 그 뒷자리에는 한왕(漢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뭡니까?"

  소천은 옥배에 씌어진 한왕이라는 글자를 보고 단우백을 보았다. 단우백

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홍무제가 개국 할 때 장강 이남에는 홍무제를 견제하는 몇 개의 세력이 

있었네. 그 중 하나가 포양호와 장강 중류  일대를 제패하고 있던 한왕 진

우량과 소주의 패주였던 장사성이었지. 후일 태조도 오(吳)를 개국 하면서 

왕이라 칭했지. 하지만 먼저 왕이라 칭한  이는 진우량일세. 이 잔은 진우

량이 왕위에 오르면서 쓴 옥배일세."

  "이게 이번 무창행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이 잔이 풍청방에서 흘러나왔다네. 진우량은  보물에 대한 탐심이 강해 

각처에서 보물을 긁어모아 그 재화가 산을  이루고 호수를 덮는다고 했네. 

진우량의 대군이 포양호에서 대패를 하자 그 중 일부는 살아남아서 무창까

지 도주 했다고  하더군. 무창까지 도주한  패잔병들은 토벌되거나 투항을 

했지."

  단우백은 옥배잔을 한바퀴 돌렸다.

  "풍청방의 시조는 진우량의 보물을 숨겼던 무관이라고 하더군. 삼혈맹이 

그들을 친 것도 진우량의  보물 때문이라는 첩보가 있네.  자네가 할 일은 

첩보의 사실 여부와 보물이 있다면 행방을 알아보는 것일세." 

  "재화는 저희 장에도 가득하지 않습니까?  다시 진우량의 보물을 찾는다

는 것은 남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보물 때문만은 아니네." 

  

  "왠 놈이냐?"

  '핑!' 육정산의 손을 떠난 찻잔이 창문을  뚫고 날아갔다. 그와 함께 오

익상, 풍파, 진명이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육정산은 창문을 뚫고 나가 

담을 넘는 자에게 비도를  날렸다. 침입자는 담을 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장검으로 비도를 막았다. 그 때문에 오익상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

었다. 

  소천은 지붕 위에 올라가 다른 동조자가 있는지 주위를 살폈다. 

  오익상의 쌍곤이 폭풍처럼 몰아치자 검을 쥐고  있던 사내가 더 이상 방

어를 하지 못했다. 순간 그의 입에서 비명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육대형! 나요. 나 종초홍이오."

  오익상은 곤을 거두며 멀찍이 물러났다.  종초홍이라면 강호에서도 이름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육정산은 달빛아래 은백의  머리를 반짝이며 종초홍이라  자칭한 자에게 

다가갔다.

  얼굴에 쓴 두건을 천천히 벗었다. 얼굴은  나이가 들었지만 제법 준수했

고 칼끝 같은 검미가 일품이었다. 육정산이  찬찬히 바라보자 오른쪽 어깨

에서 선혈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런! 내가 종형을 다치게 했구료. 정말로 미안하오."

  "아니오. 내 불찰이 컸소이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종초홍이 거북스러운 표정을 짖자 육정산이  어깨를 토닥이며 안으로 안

내했다. 

  종초홍의 어깨는 다행이 뼈를  다치지 않아 며칠만  조섭하면 나을 것이

다. 육정산은 친히 그의  상처에 금창약을 발라주고 흰  천으로 감아 주었

다. 종초홍은 다른 이들을 보며 쓴 얼굴을 했다.

  "육대협께서 다시 강호에  출도 했다는 말을  듣고 강호의 동도제현들중 

기뻐하지 않은 자가 없었오. 헌데……." 

  육정산은 웃으며 붕대를  묶었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종초홍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내가 청룡장에 가담  한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오?"

  "솔직히 말해서  다른 동도들은  육대협이 청룡장의   협박에 마지 못해

서……."

  그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세 명의 호법이 눈을 부라렸기 때문이

다. 하지만 소천은 담담히 웃었고 육정산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협박에 굴할 성 싶소? 종형께서도 그리 생각하셨소?"

  "천만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육대협께서 협박에 굴하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확인차 왔습니다."

  "그럼 정문으로 들어올 것이지 왜 염탐을 하셨소?"

  풍파의 말에 종초홍은 고개를 떨구며 사죄를 표했다.

  "죄송하외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싶었소이다."

  종초홍은 약간 우물쭈물한 했다. 소천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급하면 그만 가보시지요. 다른 분들이 기다리시지 않겠습니까?"

  종초홍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육대형과 오랜만의 만남인데 이렇게  헤어질 수야 있겠소이까? 

괜찮다면 며칠 육대형과 같이 있고 싶소이다."

  "육당주님만 좋다면 저희야 좋습니다."

  소천의 말에 육정산은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종형이 같이 동행을 한다면 나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하오. 그래, 

다른 친구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들 있소?"

  육정산의 말에 종초홍은 강호에 흩어져  있는 인물들에 대한 중대사부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종초홍은  정말로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이야기를 듣던 소천은 단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먼저 침소로 향

했고 다른 이들도 눈치 채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종초홍은 둘이 남게 되

자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했다.

  "육대협. 우리는 육대협을 구출하기 위해 타는 불, 끓는 물 속도 마다하

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 마시고 기다리십시오."

  육정산은 미소를 지었다. 

  "종형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소. 하지만 청룡장은 

강호에 알려진 대로 백도의 탈을 쓴 마도  문파가 아니외다. 이 몸이 어떤 

협박에 의해 묶여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외다."

  "손자께서 인질로 잡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허허허. 누가 그런 낭설을 퍼뜨렸는지, 원!"

  육정산은 입안이 썼다. 

  "내 손주 녀석이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장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실이외

다. 하지만 인질이라니 가당치도  않소. 정 의심이  간다면 종형께서 나와 

한동안 동행을 해보면 될 것 아니오?" 

  "그럼 강호의 소문은?"

  "모두 거짓이오. 사실 청룡장이 단기간에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성장 하

고 그 세력이 중원의 노른자위에 집중 되어 있어 음해를 하는 곳이 많소이

다. 하지만 청룡장은 알려진  것처럼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무리가 아니라

오. 더군다나 내가 집법당주가 아니겠소? 어쨌든 종형께서 이렇게 이 몸을 

생각해 주시니 정말로 고맙소이다."

  "그렇게 말씀 하시니 더 이상 이 일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종초홍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아직  탁자에 남아 있는  옥배에 눈길이 갔

다.

  "이건……?"

  육정산은 옥배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소천이  이렇게 귀한 것을 그냥 

놓아두고 갔을 리 만무했다. 육정산은 그 옥배를 집어들며 잔 밑이 보이게 

뒤집었다. 종초홍은 그 밑에 씌어진 글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름모를 새들이 호수 위를 날면서 물고기들을 잡아 다시 솟아오르고 있

었다. 호수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비치는 그림  같은 풍경을 몇 척의 배가 

가로질러 나갔다.

  쌍수곤룡 오익상이 노를 한번  저으면 배는 수면  위를 스치듯 부드럽게 

나갔다. 평소 그의 신분을 생각할 때, 노를 젓는 일을 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지만 군말 없이 배를 젓고 있었다.

  선두에는 소천이 선채 정면을 보고 있고, 그 뒤로 종초홍, 풍파, 진명과 

육정산이 오익상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었다. 

  다섯 명이 탄 배건만 오익상은 지칠 줄 모르고 노를 저어 단숨에 호수를 

가로 지르고 있었다. 

   한 척의 중형전선이 따라 잡자 전선  위에 병장기를 든 장강수로맹도가 

보였다. 그들이 뭐라고 소리를 쳤지만 소천 일행은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

갔다. 전선은 소천이 탄  쾌속정보다 느려서 배의  간격은 점점 멀어졌다. 

장강수로맹의 전선이 보이지 않을 때쯤 배는 한 호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소천은 가볍게 몸을 날려서 앞에 보이는 길에 내려섰다. 길 앞에는 작은 

논밭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그 앞에는 작은 산이 있었다. 

  소천이 주위를 살피는 동안, 오익상과 풍파  진명은 쾌속정을 갈대숲 사

이에 위장을 시켜 두었다. 

  종초홍은 평소 이들의 명성으로 볼 때  이런 일을 할 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아무런 군말 없이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일행이 모두 길 위에 올라서자 소천은  절명도 풍파에게 선두를 부

탁했다.

  절명도 풍파는 성큼 걸음을 떼었다. 그 뒤를 구환도 진명과 소천이 따랐

고 오익상과 육정산이 이장 간격을 두고 따랐다. 종초홍은 맨 뒤에서 육정

산과 같이 걸었다. 일행의 간격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된 듯이 이

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척! 풍파가 손을 들자 일행은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소천만 앞으로 나

아가서 풍파와 나란히 섰다. 종초홍은 앞  상황이 궁금했지만 제자리를 지

켜야 했다. 소인이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자 일행은  이장씩 간격을 두고 

횡대로 늘어섰다. 

  앞에있는 작은 공터에서 두명이 신나게 싸우고  있었다. 큰 박도를 쓰는 

자와 옥소를 휘두르고 있는 서생이었다. 

  "저 두분의 신원이 어떻게 됩니까?"

  소천의 물음에 오익상이 대답했다.

  "한명은 옥소공자라는 자입니다. 강호에서 그런대로 밥을 먹고사는 친구

지요. 다른 한 사람은 패(沛)에서 그런대로 이름께나 있다는 웅패신이라는 

자입니다. 아마 서로 은원이 있거나 시비가 인 모양입니다."

  "그럼 그냥 지나갑시다."

  소천의 말에 일행은 다시 아까와 같은 대오로 나갔다. 둘은 그들이 지나

가거나 말거나 신나게 싸우고 있었다. 

  종초홍은 뒤를 힐끗 보고  일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잰걸음을 하였

다. 작은 산봉우리를 넘자 정면에 제법 웅장해 보이는 봉우리와 산세가 나

왔다. 그들이 오른 곳은 주봉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와 자리잡은 봉우리

였다. 

  주봉 아래에는 담과 전각의 일부가 무너진 장원이 고즈너기 자리잡고 있

었다. 

  후다닥하고 한 마리 노루가 담에서 튀어나왔다.  몇 발짝 못가서 그대로 

꾸라지졌다. 담장에서 몇 명이 나와서 노루를  짊어지고 장원 안으로 들어

갔다. 

  "선객이 있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가봅시다."

  

  장원의 정문은 부서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들보만 남아 있어 한때 이곳이 

정문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 삼삼

오오 모여 있는 패들이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자신들의 패거리와 숙덕거렸

다. 그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일어서더니 눈을 크게 뜨고 다가왔다. 도

복을 걸치고 등에 불진과 장검을 꽂고 있는 자였다. 

  "산동 육가의 육정산 육대협 아니십니까?"

  안에 있던 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분분히 

사람들이 일어나 읍을 하였다. 육정산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웃었다.

  "아직도 이 늙은이를 기억해 주시니 고맙소이다. 일검도장."

  일검도장이라는 말에 중인들은 다시 해연이 놀랐다. 무당파의 현 장문인

의 사제로 무당제일검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도명이 

일검자라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검에 미친 자인지 알 수 있었다. 일검도장

은 한쪽에 있던 도사들을 불러서 모두  일일이 소개를 해주었다. 육정산은 

미소로 답례 했다. 

  "헌데 이분들은?"

  일검자가 소천 일행을 보자 소천 일행은 자신들을 소개했다. 청룡장이라

는 말에 일검자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 했더니 강남의 영웅호걸들이시군요. 자자, 앉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잠시 장원을 둘러보지요. 말씀들을 나누십시오."

  소천은 사양을 하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갔다. 세 호법도 소천의 뒤를 따

랐다. 일검자는 더 만류하지 않고 육정산과  앉아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

다. 종초홍은 어정쩡히 있다가 육정산 옆에 앉았다. 

  장원의 곳곳에는 각파에서 나온 사람들로 들끓었다. 그들은 각기 머리를 

맞대고 수근대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척 했다. 

소천은 폐허가 된 장원을 둘러보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이곳도 한때는 아름다운  장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런 

몰골이 되고 말았구나! 우리 청룡장이 강남에서  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언

제 이런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겠지. 사람은 죄가 없으되, 재물을 가진 

것이 죄라더니……. 풍청방은 진우량의 보물과 관련이 되어 이렇게 멸망하

고 말았구나!'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소천 일행은  몸을 돌렸다. 정문 앞에는 

수십 여명의 인물들이 병장기와  아홉 마리 용이  뒤엉켜 승천하는 그림이 

수 놓아진 삼각소기를 들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몇 명의 인물들이 역시 병장기를  빼들고 있었다. 그 가운데

에 무당파의 일검자가 검을 들고 두패를  말리는 모습이 보였다. 일검자는 

도호를 외우며 양쪽을 진정 시켰다.

  "무량수불. 양파의 은원에 이 늙은 도장이  낄 일은 아니오만 여기서 혈

전을 벌인다면 그 파급이 전 강호로 퍼지게  될 것이오. 그러니 은원을 해

결 하고자 한다면 이곳에서 벗어난 곳에서 해주기 바라오."

  일검자의 말에 소수의 무리가 병장기를 집어넣었다. 

  "좋소이다. 이곳에서는 싸우지 않겠소이다."

  "우헤헤. 겁이 나는가 보군?"

  한 명이 그렇게 웃자  다른 이들이 덩달아 따라  웃었다. 소수의 무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열이 분명한 이때에 싸

운다는 것은 개죽음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장강수로맹도들이 계속 

웃어대자 일검자가 나지막하게 도호를 외웠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 매우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수로맹도들은 귀가 얼얼

했다. 수로맹도들은 눈을 흘기면서 장원의 한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

들이 자리를 잡자 옆에 있던 무리가 자리를 옮겼다. 

  육정산과 종초홍이 소천의 옆으로 다가왔다. 육정산은 약간 곱씹은 표정

을 하고, 종초홍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무당파와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

지 몰랐지만 별로 좋게 끝을 맺은 것  같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소천 일행

은 담벼락 옆에 자리를 잡았다. 

  무당파가 자리 잡은 곳은 이곳보다 좋았지만 육정산은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천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을 쪼였다. 

  세 호법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돌아보기도 하

고, 이곳저곳 뒤져보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는지 빈손으로 오갔다. 종초

홍은 육정산 옆에 앉아서 모닥불을 보다가 소천을 보며 물었다. 

  "소공자께서는 왜 다른 이들처럼 찾지 않으십니까?"

  "다른 이들처럼 해서 찾을 수 있었다면 삼혈맹이 찾았을 겁니다. 아니면 

다른 분들이 찾았거나요."

  "그럼 왜 여기 이렇게 앉아 계십니까?"

  "나는 다른 분들보다 별로 뛰어난 게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나서서 찾

아보아야 헛고생이지요.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이렇게 있는 것도 좋

은 겁니다."

  종초홍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 무리를 책임지고 데려온 사람치고는 싱거

운 대답이었다. 육정산도 보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세 호법은 터덜거리며 왔다. 오익상이 자리에 앉으며 말을 했다.

  "몇몇 패거리들은 장원 주위와 이 산 일대를 뒤지고 있지만 특별한 발견

은 없습니다."

  소천은 건량을 꺼내서 입에 물었다. 다른 이들도 건량을 꺼내어 먹었다. 

육정산은 투박한 손으로 한 무더기의 건량을 종초홍에게 주었다.마침 배가 

고파올 때인지라 맛이 좋았다. 

  수색을 포기한 몇몇 무리들은  장원을 떠나기도 했고  새로 들어오는 이 

패거리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들이었다. 

  "신기하지 않소?"

  "뭐가 말입니까?"

  "어떻게 알고들 찾아오는지 원!"

  소천의 말에 호법들은 고개를 끄떡였다. 육정산만 빙그레 웃었다. 

  "육당주께서는 왜 웃으십니까?"

  "강호는 원래 비밀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만 비밀은 거의가 없지요. 서

로가 상대방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안달을 해대니 어지간한 비밀은 떠돌

아다니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풍청방의 일이 일어난 것은 이미 몇 달 전입

니다. 풍청방의 일이 일어나고 한두 달이면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강호의 

거대문파들은 알아낼 능력들이  있습니다. 그게 확산이  되는 것은 길어야 

두세 달 정도입니다. 그 동안 이곳에 오지 못한 것은 삼혈기 때문이었으니 

그 기한이 끝나는 지금 각처에서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아마 

이 근처에서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고수들도 있을 겁니다."

  종초홍은 육정산을 보며 말을 했다.

  "헌데 이상한 게 있습니다.  풍청방에 그렇게 많은  재화가 있었다면 왜 

이런 문파에 머물렀겠습니까?"

  "풍청방은 아마 그것을 관리하거나 아니면 어떤  연관만 있을 뿐, 그 재

화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소천의 말에 종초홍은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청룡장에서는 풍청방이 그 재화와 어떤 연관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땅을 파보고 전각의  벽을 헐어 보기도  하고 바닥을 두들겨도 

보며 장원을 헤집고 다녔다. 

  세 호법은 그들 틈바구니에서 이것저것  살펴보았지만 특출한 것은 하나

도 없었다. 해는 점점 지고 모닥불은  점점 거세게 타올랐다. 소천은 모닥

불을 보며 묵묵히 묵상에 잠기었다. 

  '내가 풍청방주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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