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공자님의 이상한 매력
(153/155)
151화. 공자님의 이상한 매력
(153/155)
151화. 공자님의 이상한 매력
2023.08.02.
피의 맹세라니.
그녀의 목소리는 심지어 근엄했다. ‘지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백작 부인이 생각하시는 제국의 질서는 귀족이 아무나 납치해서 죽여도 되는 자유를 말하는 건가요?”
“하! 뭐라고? 올리튼, 당장 저것을 닥치게 해!”
올리튼은 내 목을 조르려는 듯 한 팔을 내밀고 다가왔다.
나는 벽까지 뒷걸음질 쳐 고함쳤다.
“여보오!”
문짝이 부서지고, 거구의 몸이 바닥으로 내던져지고. 백작 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구르고.
우리는 납치범들과 카이델가 기사들이 만드는 소란 속에 서로를 마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서로를 뚫어지게 응시한 채로.
배시시, 참을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기사들은 흘끔흘끔 우리 눈치를 보며 소리 죽여 그들을 포박했다.
하지만 백작 부인은 우리 눈치를 볼 생각이 없었고 아직 목청도 좋았다.
“이건 음모야! 배신이야! 저년이 내게 누명을 씌운 거라는 걸 모르겠소? 카이델가는 제국의 첫 번째 사자의 가문으로서 내 누명을 벗겨 줘야 할 것이에요!”
카이델가 기사가 후다닥 움직여 그녀에게 재갈을 물려 끌고 나가자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올리튼이 끌려 나가기 전, 카이델 공자는 그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이자는 내가 친히 심문하겠다. 너는 특별히 아무 데도 돌아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주지.”
기사들이 올리튼을 끌고 나간 후, 내 작은 납치 공간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밖에서는 기사들이 주변을 조사하고 백작가의 하인들을 체포하는 소음이 났지만 그것들은 우리 안중에 없었다.
카이델 공자는 다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나는 괜히 민망해 벽으로 몸을 돌려 섰다.
“머, 머리 못 감았는데……. 부끄러운데…….”
내가 몸을 배배 꼬는 동안 카이델 공자는 내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같은 사람 발소린데, 이 사람의 걸음 소리는 사람의 심장을 그 박자에 따라 쿵쿵 뛰게 만들었다.
물론 올리튼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말이다.
그는 내 앞에 다가오더니 머리를 숙여 나직이 말했다.
“‘여보’?”
나는 흘끔 눈을 치떠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를 ‘여보’라고 부른 게 처음인 듯했다.
“이, 이상했어요?”
“그렇게 잘할 수 있는 걸 왜 안 했어요?”
“부끄러워서……. 로바일가의 하수인들은 다 잡으셨어요?”
그는 내가 말을 돌리는 행동을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도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로바일 백작저는 지금 폐허나 다름없습니다. 내 아내를 숨긴 장소를 찾아야 한다고 벽까지 다 뜯어내 버렸거든요.”
“어머, 너무하셔라.”
“딸 가진 가문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야 하니까요. 그게 우리 이번 계획의 목적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그렇죠.”
“이번 일에는 특별히 신경이 곤두서는군요. 저는 가끔 성격이 나빠져요.”
나는 양손의 검지를 마주 꼬무락거리며 말했다.
“가끔 아닌데……. 원래 엄청 성격 나쁘셨어요.”
그는 한쪽 눈썹을 살짝 기울이면서 짐짓 말했다.
“거기 반한 것 아니었어요?”
“그렇긴 한데……. 공자님은 이상한 매력이 있으시거든요. 특히 이런 환경에서 보니까 더 그게 부각되어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당신의 심미안을 높이 삽니다. 로리샤.”
“심미안까지야……. 결혼 하나 잘한 것 가지고 뭘요.”
“로리샤. 그렇게 자극적인 말, 남이 들을까 겁나요.”
그는 그대로 내게 입을 맞췄다. 이틀간 감금되어 지저분한 내 꼴을 그에게 보이는 게 부끄럽고 싫어야 하는데, 어쩐지 그런 생각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극받는 기준을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도 별스럽지 않았다.
그 기준이 천장에 붙어 있으면 어떻고 바닥에 깔려 있으면 어떤가.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좋은데.
* * *
제국 사교계에는 거대한 태풍이 한차례 지나갔다. 로바일 백작 부인은 카이델 부인, 곧 나를 납치하고 살해하려 한 죄로 종신형에 처했고, 로바일가는 귀족원 의결을 통해 백작 위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나머지 네 개 가문은 그것을 공모한 죄로 카이델가에 입이 쩍 벌어지는 금액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공작님에게 보내는 청혼서가 뚝 끊겼음은 물론이다.
거기에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는데, 카이델 공자가 백작저를 벽돌까지 뜯어낼 기세로 나를 구해 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우리 부부 관계를 의심하는 시선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에트랑에서부터 나를 줄곧 추적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백작저를 망가뜨린 건 순전히 심술이었다.
우리가 집무실로 불려 갔을 때, 공작님은 쿵쿵거리며 책상 근처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카이델 공자는 나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이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지금 아버님이 ‘너희가 쌍으로 미쳤구나’라고 말씀하고 싶은 걸 참고 계세요. 며느리에게는 욕을 하지 않으시려고요.”
나도 속삭였다.
“어머, 하셔도 괜찮은데. 공자님, 저 너무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그냥 내게 맡겨요. 당신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돼요.”
“죄송해요. 공자님.”
너무 든든한 기분에, 내가 무심결에 그의 팔짱을 끼자 공작님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로리샤.”
“네, 공작님!”
나는 깜짝 놀라서 그의 팔을 놓고 대답했다.
“부부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여야 한다.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동시에 때로 서로를 적절히 견제해 주기도 해야 하지.”
“그,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작님.”
“아버님, 이번 일은…….”
“닥쳐라, 이 미친놈아.”
나는 그때 로카르드 카이델 공자의 말문이 턱 막히는 표정을 처음으로 보았다. 보아하니 공작님은 평소 그에게도 거친 말을 잘 하지 않으셨던 듯했다.
공작님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로리샤. 그런데 부부가 같이 정신을 놓으면 너희들에게 카이델가를 어찌 안심하고 맡긴단 말이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
공작님이 갑자기 내 대답에 더 화를 내서 내가 눈치를 보자, 카이델 공자가 이마를 짚으며 내게 말해주었다.
“그건 제가 이런 상황에서 잘 쓰는 대답이라 그래요. 혹시 알고 한 말인가요?”
“아니요. 설마요.”
우리가 눈빛으로 찌찌뽕이나 하고 있자, 카이델 공작님은 전의를 상실하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로카르드.”
“네, 아버님.”
“제국의 유서 깊은 명문가 하나를 끝장내고 나니 기분이 좋으냐? 아주 날아갈 것 같아?”
“그들은 제 아내를 납치했고 살인 미수까지 저질렀습니다. 카이델가를 건드리고 무사할 수 없다는 메시지는 명확하게 보내야 합니다. 그것은 아버님의 철칙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일이 거기까지 커지도록 조장한 것도 너희들 아니냐. 처음부터 알면서 말이다.”
“버젓이 아내가 있는 유부남에게 끝도 없이 들이대는 여자들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합니까. 로리샤가 그런 꼴을 볼 이유가 없습니다. 아버님.”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지 않아. 어째 일을 조용조용히 해결하지 못해.”
“앞으로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되도록이요.”
나는 카이델 공자가 말끝을 흐리며 나와 눈을 맞춘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도 우리가 오두막에서 보낸 짜릿한 밤을 떠올린 것이다. 그 기억은, 아마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눈 감으면 떠오는 기억이 될 것이다.
카이델 공작님은 우리가 제정신이 아닌 걸 다시 깨닫고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면 요즘 우리를 보면 괜히 시선을 피하거나 한숨을 쉬거나, 아무튼 괴롭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았다.
카이델 공자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배상금을 유용하게 쓰면 됩니다. 아버님. 상당한 금액이 아닙니까.”
“하! 내가 아들을 참 구김 없이 키웠지.”
나는 저도 모르게 끄덕끄덕하며 환하게 웃었다. 돈 이야기에 좋아서가 아니라, 그를 이렇게 구김 없이 키워 준 카이델 공작님에게 감사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작님은 더 부아가 났는지 우리에게 손을 저어 댔다. ‘빨리 꺼져 버려!’ 하는 손짓이었다.
* * *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카이델 공자는 내 허리를 감아 안고 목덜미에 입을 맞춰 댔다.
“그래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죠?”
“네?”
“그때 그 오두막에서 그랬잖아요. 차분히 듣고 싶어서 묻지 않고 아껴 뒀어요.”
“어머…… 어?”
나는 곁눈으로 테이블의 편지를 보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카이델 공자도 나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거기 놓인 것은 미샤의 초대장이었다.
‘또?’
나는 그와 눈을 맞춘 다음에 봉투를 천천히 뜯었다.
“휴우. 이건 진짜 미샤의 편지예요. 티 파티를 열 테니 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야기나 들려 달라고……. 얘가 미쳤나 봐.”
카이델 공자는 키득거리며 내 허리를 놓아주었다.
“가요. 미샤 양이 당신을 위해 사교계 인맥을 넓혀 주려는 모양인데.”
“……그런 거라고요?”
카이델 공자는 공중을 향해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골랐다.
“아마 당신은 지금 제국 역사상 최고의 악녀일걸요? 이대로는 사교계에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거예요.”
“예. ……예에?”
악, 뭐? 내가?
“…….”
그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난감한 웃음을 띤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머릿속이 차근차근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남의 눈에 사생아 주제에 황족의 시녀가 된 수단 좋은 야망녀였다.
그리고 궁에 들어와 제국 최고 가문의 후계자와 염문을 뿌려 억지 결혼을 하더니, 그런 나를 제거하고 그와의 재혼 기회를 노리던 귀족가를 초토화해 버렸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건, 대부분의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우와. 저 같은 악녀는 타가르 역사에 없었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