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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놓으면 가만 안 둬요 (148/155)


146화. 놓으면 가만 안 둬요
2023.07.28.


그러자 후작님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괜찮겠어요?”

“산책은 아기에게도 좋다고요. 의사도 그랬어요. 후작님.”

그러자 그는 마지 못해 그녀를 부축하듯이 데리고 나갔다.

그녀의 말대로 호수는 아름다웠다. 보트 하나 정도를 띄울 아담한 크기에, 멀리 오리 두 마리가 수면에 떠 있었다.

곁에 작은 정자가 있어 파티 장소로도 맞춤했다.

두 남자가 정자에 앉자 후작 부인이 내게 팔을 내밀며 말했다.

“카이델 부인, 우리 한 바퀴 돌까?”

“네. 좋아요.”

우리는 호수 둘레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대화했다.

“후작 부인이 행복해 보이셔서 기뻐요. 후작님은 정말 다정하세요.”

“얘. 그이가 다 잘하는 건 아냐. 밤에 코를 얼마나 고는데!”

“어머…….”

그녀는 새침하게 웃었다.

“그래도 귀여워서 봐주기로 했어.”

나도 그녀와 함께 웃었다.

물이 맑아서 물가로 다가가니 물고기가 오가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바람도 선선해서 산책에 완벽한 장소였다.

“나중에 아이들이 물놀이하기도 좋겠어요.”

“아이에게는 깊어.”

“그래요?”

“너, 울었니?”

나는 우리가 정자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걸 확인한 후에 조그맣게 말했다.

“티 나요?”

“왜?”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 듣지 마세요. 아기님에게 나빠요.”

“로리샤!”

나는 물가에 쪼그려 앉아서 한 손을 물에 담가 찰랑거리며 말했다.

“딸 가진 귀족들이 카이델 공자님과의 재혼을 위해 경쟁하고 있대요. 저 같은 건 그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예요.”

나는 한숨을 폭 쉬고 말을 이었다.

“공자님은 무시하라는데 그게 되나요? 제가 비켜야지. 그동안 서로 선을 지킨 게 다행이지 뭐예요. ……제가 이혼녀가 되어도 만나 주실 거죠?”

“세상에…….”

그녀는 마치 내가 사람을 다섯쯤 죽였다는 고백을 들은 것처럼 전율했다.

“그, 그렇게 놀라실 것까지야……. 사람 민망하게…… 엣!”

밀리오라 전하는, 아니 후작 부인은 다가오더니 내 등을 발로 꾹 밀었다. 나는 균형을 잃고 데구르르 앞구르기 하듯 호수에 빠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녀의 배신보다, 내가 헤엄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 애썼지만 목구멍으로는 미지근한 호숫물만 들어왔다.

중간중간 소리가 들리긴 했다.

내 비명. 그리고 ‘로카르드 공자!’ 하는 범인의 고함.

하지만 나는 새까만 물속으로 꼬르르 가라앉고 있었다.

* * *

“부인! 무슨 짓이에요!”

론드 후작이 전에 없이 큰 소리를 내자 후작 부인은 두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강아지 같은 표정을 보고 어쩌지도 못하고, 당혹한 얼굴로 카이델 공자의 등 너머로 나를 살폈다.

그때 나는 풀 위에 누워서 자각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열고 있었다.

“캐엑! 캑!”

곧이어 삼킨 물을 토해 내고 나니 그제야 숨쉬기가 편해졌다. 정신도 한결 돌아왔다.

카이델 공자는 머리카락 끝에서 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리샤. 괜찮아요?”

차갑게 젖은 얼굴에, 그의 목소리는 위태롭고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내가 안 괜찮다고 말하면 그는 펑 터져서 공기 중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후작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카르드 공자가 정자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이 초나 걸렸나? 나는 그가 달리는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

“부인!”

론드 후작이 나무랐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침하게 말했다.

“로리샤, 너 방금 무슨 생각 했어? 그 생각 그대로 그에게 말해 줘. 네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인!”

당황한 후작님은 후작 부인의 손목을 잡아끌고 사라졌다.

그리고 카이델 공자는 내 곁에 퍼질러 앉았다. 그는 평화로운 호수면과 새파란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 헛헛하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금방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건져 올린 것답지 않게 차분하고 나지막했다.

“제가 먼저 말할까요? 저는 물에 뛰어들며 당신을 잃으면 이대로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구하지 못하면……. 로리샤. 저는 당신을 원해요. 당신만 원해요.”

그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겹게 뱉었다.

“저는 당신이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믿어 주기를 바라요.”

느슨해졌던 내 심장이 팽팽하게 조이며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숨이 차는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말을 다듬고 숨기기에는 기력이 너무 달렸다.

“저는……, 무서워요.”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무서워 눈앞이 아찔했다. 기력이 다한 젖은 몸에서는 한기가 돌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저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걸 생각하면 무서워서 죽어 버릴 것 같아요. 공자님을 좋아하고 의지하게 되었다가, 공자님이 저를 훌쩍 떠나면……. 그러면 저는…….”

그의 더운 손이 내 젖은 이마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꽉 감고 말했다.

“물에 빠지는 순간 공자님을 부르고 싶었는데 소리가 안 나왔어요. 공자님에게 구해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죽으면 공자님을 못 본다는 게 싫었어요. 흐흑, 공자님 곁에 좀 더 있고 싶었어요.”

나는 울음을 터트리기 싫어 끅끅거렸다.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어르듯 나직이 말했다.

“그거, 날 좋아하는 거예요. 로리샤.”

“…….”

“당신은 이미 날 좋아한다고요. 나한테 푹 빠졌어요.”

“끄흑. 아닌데? 아닐걸요……? 흐흐흑.”

“하아……. 이리 와요. 로리샤.”

카이델 공자는 내 상체를 일으켜 자기 품에 안았다. 그제야 세상이 따뜻해졌다.

* * *

나는 카이델 공자의 품에 안겨 저택으로 돌아갔다.

목욕을 하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지쳐서였다.

나는 이제 후작 부인이 나를 물에 빠트린 이유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진짜 대화를 나누게 하려고.

그녀도 독약을 마신 죽음의 순간에서야 론드 경에 대한 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나 같은 고집쟁이에게 자신과 같은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못됐어! 타가르는 다 못된 데가 있어요. 공자님도 고생이 많으세요.”

그러자 카이델 공자가 숨소리처럼 웃으며 내 쪽으로 돌아누워 팔을 괴었다.

“그 정도 압박이 아니었다면 당신 입을 열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신의 고백은 그 정도 값어치는 있었다고 봅니다.”

“고, 고백이요? 제가요?”

“날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나한테 푹 빠졌다고.”

“제가 언제요? 그건 공자님이…….”

그의 손바닥이 내 뺨에 내려앉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각에, 나는 저절로 입을 다물었다.

검을 잡는 손이 부드러울 리가 없는데, 마치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얼굴을 더듬으며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내가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내 입술을 은밀하게 스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움직이며 속삭였다.

“당신이 나를 위해 스마일란으로 밀항하려 했던 것을 알고 있어요. 나를 위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꺼이 목숨을 걸려 했다는 걸.”

“그건…….”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내가 그러듯이.”

어느 틈에 그는 내 입술을 자기 입술로 스치며 속삭였다.

“로리샤. 우리에게도 있었어요. 보통 부부들에게 있어야 할 그것이. 오히려 남들보다 더 크고 깊어서 발견하기 어려웠을 뿐이에요. 그러니 그냥 여기 있어요. 내 곁에.”

“하지만…….”

“앞으로 아무도 당신 앞에서 ‘그 말’을 지껄이지 못하게 하겠어요. 당신이 그 사실을 잊을 때까지.”

“아아……. 거기 손……. 공…….”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목소리는 그렇게 속삭였다. 호흡이 거칠어 무서웠다.

“가만히 있어요. 로리샤.”

“아, 아니, 아아……!”

* * *

“으으.”

나는 힘을 주고 몸을 꿈틀대 봤지만 카이델 공자는 알을 품듯이 사지로 나를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알몸으로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의 따뜻한 피부가 내 피부를 온통 감싸 마치 설탕통에 빠진 듯 간지러웠다. 나는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가만히 호흡을 조절하니 그의 체취와 밖에서 들어오는 꽃향기가 섞여 느껴졌다.

나는 나른한 가운데 옅은 당혹을 느꼈다.

‘이제는 도망 못 가는 건가? 이런 게…… 부부의 기분인 건가?’

카이델 공자가 잠에서 깼는지 자기 뺨으로 내 뺨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보채는 짓이었다.

“로리샤. 응?”

가만 보니 이 남자는 가끔 반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또요? 공자, 공자님. 진정하세요. 여긴 남의 집, 아……!”

* * *

나는 여태 내가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카이델 공자처럼 강철의 뻔뻔함은 아니어도 최소한 우수한 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후작 부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차마 인사도 못 하고 수도로 돌아가는 마차에 혼자 먼저 올랐다.

남의 집에서 첫날밤을 치르다니, 이 정도면 실례가 아니라 범죄다.

그래도 후작 부인의 새침한 목소리는 내 귀에 쏙쏙 들어와 꽂혔다. 그녀는 나더러 들으라고 부러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게 서로서로 솔직하게, 뭐든 솔직하게 터놓고 지내면 얼마나 좋아? 그렇지, 로리샤?”

나는 마차 안에서 내 머리를 꽉 감쌌다.

“로카르드 공자, 또 좋은 소식 들려줘요. 호호호!”

“물론입니다. 두 분 건강하십시오. 아기님도요.”

카이델 공자가 마차에 오르자마자, 나는 주먹으로 벽을 치며 고함쳤다.

“마부! 출발해요!”

카이델 공자는 나를 놀리듯 웃으며 바라보다가 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자 피식 웃었다.

그는 내 손을 꽉 붙잡고 말했다.

“나 이제 이 손 안 놔요. 로리샤.”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외면한 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놓, 놓으면 가만 안 둬요. 공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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