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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좀 '그런' 카이델 부인 (145/155)


143화. 좀 '그런' 카이델 부인
2023.07.25.


“가서 확인하고 올게요.”

“네. 공자님.”

나는 그가 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모퉁이 너머에서 황궁 하녀들이 잡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지나가신 분 카이델 공자님 맞지?”

“맞아, 맞아. 황태자 전하의 경연 승리 일등 공신. 오늘도 여전히 잘생기셨더라!”

“말해 뭣 하니. 내가 이 맛에 황궁에서 일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니까? 유부남이신 게 너무 아깝지 뭐야.”

“어머, 못 들었니? 지금 딸 가진 귀족들이 죄다 카이델 공자님에게 혼담을 넣으려고 들썩들썩하고 있대.”

“무슨 소리야?”

“지금 카이델 부인이…… 좀 그렇잖아. 오래 갈 거라고 생각 안 하는 거지. 귀족들이 제국의 차기 첫 번째 사자를 ‘그런’ 분이 차지하게 두고 보겠어? 임신이라도 하셔 봐…….”

“그러네. 후계자가 정통성을 의심받게 되면…….”

내 웃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의 귀환에 기뻐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이혼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그래도 하녀들이 나를 사생아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 걸 보니 인심을 아주 잃은 것은 아닌 모양이라고, 나는 자신을 억지로 위로해 보았다.

금방까지 밀리오라 전하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나는, 멍해져서 벤치에 앉았다.

언젠가 류엘이 한 말과 방금 들은 목소리가 겹쳐졌다. 내가 낳은 아이는 나처럼 사생아 취급을 받을 거고, 결과적으로 완벽한 후계자로도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결과적으로 카이델가는 내부 혼란과 비난에 휩싸이다 약해질 것이다. 그가 평생 퍼부은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그도 그래서 조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신부가 술에 취했다고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몰랐던 일도 아닌데, 누군가 가슴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가슴이 뜨겁고 홧홧했다.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내게 말해 보았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

잠시 생각해 보니 일이 원래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과 카이델 공자의 보호 속에서 내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확인할 틈이 없었던 것뿐.

세상은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었는데.

그새 카이델 공자가 탄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활짝 웃으며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황제 폐하는 론드 경에게 후작 위를 수여하셨다.

카이델 공자가 밀리오라 황녀 전하를 한낱 기사의 부인으로 놓아 둘 수 없다고, 그레이언 황태자 전하를 통해 황제 폐하를 꼬셔서 일궈 낸 결과였다.

우리는 그 사실을 전달하러 남부 아모에가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밀리오라 전하는 아모에 후작 부인이었다.

카이델 공자는 오랜만에 찾은 여유를 즐기는 듯 느긋하게 말했다.

“우리 둘이 처음 하는 여행이군요.”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정말 그러네요? 공자님과 장거리 외출은 처음이에요. 저는 여행 경험이 별로 없어서 설레요. 밀리오라 전하가 이 소식을 들으면 정말 기뻐하시겠죠?”

나는 들떠서 말했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레오라 황후 폐하의 자살은 병사로 공표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건강했고, 황태자 즉위식 직전 시점에 사망했기에 밀리오라 전하가 사정을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

아무리 미워도 엄마인데, 지금 그녀가 즐거운 기분이겠는가. 그레이언 전하가 황태자 즉위식을 치르면서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황녀 전하에게 황후 사망의 진상을 전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가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타가르 황가를 휩쓴 고요한 비극은 이제 끝났다. 카이델 공자와 내가 그 종결의 증인이었다. 우리의 소원도 모두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나만 빼고.

“우리가 그 많은 사건을 겪고서 오늘을 맞았다는 게 거짓말 같아요.”

카이델 공자는 내 말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알 것 같아 가만히 함께 미소 지었다.

“폐하께서 그레이언 황태자 전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시는 것 같아요. 카이델 공자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훗. 제가 어딜 가도 좀 예쁨받아요.”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저 매력적인 눈빛과 완벽한 턱선을 보라. 제국에서 힘 있는 부모라면 딸을 위해 저 남자를 빼앗으려고 전쟁이라도 치를 거다.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우리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 이 문제에 대해 대화할 적기였다.

“황녀 전하를 만나고 수도로 돌아가서 우리 이혼 문제를 거론하면 될 것 같아요. 조만간 그레이언 전하의 결혼식이 열리면 세간의 관심도 금방 분산될 테니, 시기도 적당할 것 같아요.”

“…….”

카이델 공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입을 앙다무는가 싶더니 마차 벽을 주먹으로 쾅쾅 쳤다.

“마부! 쉬어 간다!”

놀란 마부는 급정거하고, 카이델 공자는 문을 확 열고 내렸다.

나는 적잖이 당황하여 그대로 앉아 있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정이야 어떻건 내가 여행 분위기를 망쳐 버린 건 사실이었다.

잠시 휴식하고 돌아온 카이델 공자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려고 했으나 그는 죄다 단답이었다.

‘어머, 저기 방금 새하얀 토끼가 지나갔어요. 보셨어요?’

‘네. 봤습니다. 하얗더군요.’

아니면,

‘마, 마차 안이 갑갑하네요. 좀 쉬어갈까요?’

‘마부! 쉬어 간다.’

이런 식이었다.

나는 결국 자책 속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내 앞에서는 늘 웃기만 해서, 내가 그의 화를 달래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묵 속에서 달리다 여관에 도착했을 땐, 그래도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씻고 오더니 침대 끝에 누워 잠을 청했다.

“공…….”

나는 도저히 그를 건드릴 용기가 없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점점 더 미안해졌지만 다음 날, 그다음 날도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점점 부아가 났다.

나는 결국 파국적인 결론에 도달해 버렸다.

‘곧 이혼할 사이에 화해해서 뭐 하려고.’

* * *

남부의 정경은 수도와 완전히 달랐다. 평원에는 관목과 들꽃이 가득 자라고, 완만한 높이의 개방적인 저택은 창이 크고 환한 빛깔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론드 경과 밀리오라 전하가 사는 저택에 도착했다.

“밀리오라 전하…… 아?”

나는 예법도 잊고 달려 들어갔다가 우뚝 멈추고 말았다.

밀리오라 전하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여 일어나더니 노인처럼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가지런한 은발은 예전처럼 윤기 흐르고 찰랑거렸다. 그리고 첫눈에 보기에도 뺨이 통통할 정도로 살이 붙어 있었다.

그녀가 내 앞에 도착하는 건 너무 오래 걸려서, 오랜만에 만나는 흥분마저 다 식었을 정도였다.

“전하?”

“아모에 부인이라니까, 얘는.”

“아모에 부인. 왜 그렇게 걸으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응? 아니야.”

“아모에 부인.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로카르드 공자, 반가워요. 덕분에 잘 지냈어요.”

황녀 전하는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나를 안았다.

“아아, 로리샤! 너무 반가워. 보고 싶었단 말이야.”

“네. 저도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목소리는 왜 그렇게 낮추세요?”

“아니…….”

그때 에리아가 차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전보다 피부가 타서 더 건강해 보였다.

“에리아!”

내가 반가워 소리치자 에리아가 눈이 튀어나올 듯 뜨고 검지를 입 앞에 대었다.

그리고 내 앞에 달려와서 속닥거렸다.

“카이델 부인! 너무 반가워요! 오는 길은 괜찮으셨어요? 그런데 목소리를 좀 낮춰 주세요.”

“왜? 무슨 일인데?”

나는 불길한 기분으로 두 사람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카이델 공자가 내게 말했다.

“론드 경에게 경사가 생긴 모양입니다.”

“그럼요. 경사가 생겼죠. 우리가 그 경사를 들고 왔잖아요.”

그러자 에리아가 꺄르르 웃었다.

“어머, 카이델 부인도 평소답지 않으셔요.”

나는 이 방에서 나만 눈치를 채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헉……. 임신하셨어요?”

내 목소리가 삑 올라가자 황녀 전하가 귀가 아프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얼마 전에 유산기가 찾아왔어. 그래서 의사가 절대 빨리 움직이거나 놀라면 안 된대.”

나는 엄청난 흥분 상태에서 목소리를 낮추느라 기를 써야 했다.

“어머, 난 몰라. 어머! 전하, 축하드려요!”

“응응. 알았어. 앉아. 로카르드 공자. 앉아요. 론드 경은 나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모에가 기사단에서 사고가 났다고 급히 불려 나갔지 뭐예요. 그래도 늦지 않게 돌아올 거예요.”

밀리오라 전하는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살이 올라 그런지, 전의 그 날카롭고 예민한 기운은 어디 가고 부드럽고 평온한 눈매에 여유가 서려 있었다. 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정답을 저절로 깨달았다.

‘사랑받고 계시는구나.’

그녀는 우리를 향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

“로리샤가 들고 온 경사가 뭔지 궁금한데?”

“공자님, 말씀드리세요.”

하지만 카이델 공자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부인이 말씀드리는 게 더 좋겠습니다.”

“하지만 공자님이 황태자 전하를 통해…….”

“나는 괜찮아요. 로리샤.”

더 권하면 내가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론드 경께 후작 위를 하사하셨어요. 전하는 이제 후작 부인이세요.”

“어머……!”

황녀 전하는 우리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로카르드 공자. 신경 써 줘서 정말 고마워요. 론드 경이 국서 취급을 받지 못해서 내내 미안했는데, 이제는 내 면이 좀 서게 되었어요.”

“폐하의 결정이셨습니다. 저희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는 역할을 한 것뿐입니다.”

“공자는 말 예쁘게 하는 건 참 여전해요. 그렇지, 로리샤?”

“네? 네…….”

그는 말을 예쁘게 한다. 나한테만 빼고.

나는 이 여행길에서 카이델 공자가 처음으로 내게 다정하거나 친절하게 굴지 않았다는 데에 그렇게 속이 상했다.

그녀는 카이델 공자에게 물었다.

“그레이언 오라버니는 어떻게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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