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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처음 느낀 질투 (143/155)


141화. 처음 느낀 질투
2023.07.23.


카이델 공자가 목청을 키워 불렀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건강하고 멀쩡하게 돌아왔고, 저기 서서 내 눈치를 보는 걸 보니 황궁 상황이 위급한 것 같지도 않았다. 이만하면 해피 엔딩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의 앞에서 자격지심을 가지는 데 지쳐 가고 있었다.

그냥 혼자서 살면 이런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잘난 사람 곁에서 전전긍긍하면서 힘들었단 말이다.

그래, 그와의 키스가 그립기는 할 거다. 독신으로 살면 앞으로 절대 키스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많이 아쉽기도 했다.

차라리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나는 지쳤다. 그를 걱정하기도 지쳤고, 그를 보고 싶다는 걸 부정하는 것도 지쳤고…….

……아무튼 됐다.

어느 틈에 카이델 공자가 내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놔요.”

조그맣게 말하니 내 감정이 숨겨져서 다행이었다.

내가 나가려 하자 로카르드 공자는 내 뒤에서 팔로 내 몸을 감았다. 그의 턱이 내 목덜미를 꾹 누르듯 파고 들어왔다.

“로리샤. 불렀잖아요.”

나는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그가 힘을 주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무덤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재혼 축하드려요, 공자님. 국제결혼이니 이번에는 하객을 더 많이 부를 수 있겠네요.”

“하!”

카이델 공자가 나를 획 돌려세웠다. 평소와 달리 조심성이 조금도 없어서 내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왜요!”

“사람이 바다 건너 다녀왔는데, 당신 걱정하느라 잠도 못 자고 달리고 또 달려서 왔는데, 인사 한마디 없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래, 급하게 달리더라! 마차 바퀴 빠지는 줄 알았어. 내 완벽한 엉덩이에 생긴 굳은살은 어떡할 거야, 로카르드?]

샨라가 빽 소리를 질렀다. 보아하니 그녀도 제국어를 알아듣는 거다.

“와, 축하드려요. 드디어 당신을 이름으로 불러 주는 여자를 만나셨네요.”

“로리샤!”

“스마일란에는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뱃멀미는 많이 안 하셨고요? 어머, 기념품 좀 사 오시지. 아무튼 바쁘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물러갈게요.”

“좀, 그만!”

“읍…….”

화가 나서일까, 오랜만이라 그럴까. 그의 키스는 몹시 거칠었다.

나는 그에게 잡아먹히는 것 같은 기분과 ‘아, 키스란 이렇게 저릿저릿한 거였지.’ 하는 깨달음 사이에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 가운데도 드문드문 스마일란어가 들려왔다.

샨라가 ‘쟤들 미쳤어?’라고 말하니 그레이언 전하가 짜증을 내며 ‘앞으로는 품위 있는 말을 쓰도록 해, 산랴 공주.’ 했다.

카이델 공자는 나를 꽉 안고서 귓가에서 속삭였다.

“그냥 좀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 어디 덧나요?”

“지금 뻔뻔하게…….”

“샨라는 스마일란 공주입니다. 그레이언 전하를 만나러 왔어요.”

“……!”

그는 그제야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혼란 속에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구, 국혼이요? 또요?”

“페일란 왕자께서, 올 때는 태워 준다고 했지만 갈 때는 마음대로 보내 준다고 한 적 없다며 조건을 거시는 바람에…….”

[우리 오라버니가 좀 그래.]

샨라가 끼어들었다. 여자인데도 목소리가 제 오빠처럼 낮고 거칠었다. 하지만 듣기 거슬리기보다는 살짝 야한 느낌이 드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머리를 저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래서 그레이언 전하와 혼인하기로 했다고요?”

“장기적으로 제국과 동맹이 필요하니까요. 이야기가 길어요.”

“오를 전하의 동태를 먼저…….”

카이델 공자는 내 말을 자르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묵직하고도 조심스러운 손길 속에 그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반가움, 고마움, 안도감. 그리고 확신.

나는 그가 이번 상황을 해결하고 돌아왔음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는 나 또한 그것을 알아보아 주기를 바라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다……, 괜찮은 거예요?”

“네. 괜찮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더니 내 손을 잡고 발코니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 있는 긴 의자에 앉더니 나를 끌어당겨 자기 앞에 안았다.

“공, 공자님?”

“몹시 피곤한데 지금은 황궁을 떠날 수 없어요. 그러니 날 좀 재워 줘요. 이게 그리웠단 말입니다.”

“공…….”

그가 내 허리를 꽉 감아 오자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싫다고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등 전체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을 느끼며 그냥 눈을 감았다. 그제야 그동안 꾹꾹 눌러 두었던 나의 피로도 함께 몰려왔다.

[쟤들 뭐 하나 구경하면 안 돼?]

그레이언 전하가 혀를 차며 발코니 문을 닫고 샨라 공주와 함께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황궁의 비밀 통로 복도는 늘 밤이었다.

오를은 온몸에 열이 오르는 괴로움에 밭은 숨을 쉬었다. 그는 독을 바른 단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절대 이것을 떨어트려서는 안 된다. 이 날을 그레이언에게 박아넣기 전에는.

황후가 그를 찾아온 것은 몇 시간 전이었다. 오를은 병상에서도 모후의 초췌한 모습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따듯하게 웃으며 침상에 앉아 그의 이마를 짚어 주었다.

오를은 모후를 보아 안도함과 동시에 불안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의 소중한 모후께서는 어째서 이제 오십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니? 무엇 하러. 내가 너를 어떻게 걱정시키겠어.”

모후의 부드러운 손길에 오를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압니다. 황후 폐하. 황후 폐하께서는 늘 저의 보호자이시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초췌하십니까? 누군지 이름을 말씀하십시오. 이번 열병이 식는 대로 일어나 목을 치겠습니다.”

“오를. 거래를 하였단다.”

“…….”

그는 자신의 모후가 평소와 완전히 다른 기운을 띠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쿵쿵, 병약한 심장이 급히 뛰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후 폐하.”

“네 해독제를 찾았단다. 오를.”

“정말입니까!”

오를은 흥분 속에서 환하게 웃었다.

실은 그도 이런 병약한 몸으로 사느니 차라리 툰바르에 갔어야 했나 후회할 때가 있었다.

그레이언이 승리할 수 있었다면, 그는 더 빨리 이기고 돌아왔을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전쟁 영웅의 숭배도 그의 것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모후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하며 웃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엄습하는 불길함에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구와, 무슨 거래를 하셨습니까?”

“오를. 내일 아침 일어나 황제 폐하를 뵙거라.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니 경연을 포기하고 황태자 자리를 그레이언에게 양보한다고 말하거라. 그리고 함께 떠나자.”

“황후 폐하!”

화르륵, 그의 몸에서 화가 끓어오르며 체온보다 더 큰 열기를 내뿜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저더러 동생 손에 죽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어찌 모후께서……! 그레이언이, 그놈이 제 해독제를 쥐고 그리하라고 했습니까? 대답을 해 보십시오!”

황후는 고통 속에 혀를 깨물어 대답을 삼켰다.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나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내버려 두고 달아나는 모후의 뒷모습을 보며, 오를은 열병도 무색하게 머릿속이 차가워지고 눈이 맑아졌다.

그렇다. 저것은 배신이었다.

세상에 나서 유일하게 믿었던 사람의.

타가르는 배신을 용서하는 법이 없었다.

“끄으윽…….”

그는 갑작스러운 심장의 통증으로 몸을 웅크렸다. 열이 불길이 되어 그의 몸을 태우는 듯했다.

* * *

깊은 밤에 깨어 눈을 뜨고, 오를은 일어나 독이 묻은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타가르만 아는 비밀 통로를 통해 2황자궁으로 향했다.

그레이언은 지금 자고 있을 시각. 동생이 깨어 있다면 이 몸으로 상대할 수 없었으나, 잘 때야 누구든 무방비가 아닌가.

이 단검이 그레이언에게 스치기만 해도 그는 타가르의 유일한 황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해독제를 찾아 돌아가면 된다.

그레이언이 황후를 어떻게 협박했건, 어린 놈이 고깝게 나대는 꼴을 보는 것은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힘을 다 소진하고 그 자리에서 발각되어도 상관없었다. 부황께서 어쩌시겠는가.

유일한 타가르,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아들을.

오를은 비밀 통로 끝에서 손으로 벽을 짚고 기댄 채 심호흡을 했다.

‘이만 경연을 끝내자꾸나, 그레이언. 내 동생.’

오를은 지그시 힘을 주어 비밀 통로 벽을, 제 운명의 문을 밀었다.

캄캄한 침실 가운데 그레이언의 침대를 노려보며, 그는 숨이 더 거칠어지지 않게 하려 한 걸음씩만 옮겼다.

그리고 깊이 잠든 그레이언의 몸 위로 단검을 내리찍었다.

“……!”

그런데 손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게 했다. 그에 오를은 뒷걸음질 쳤다.

이윽고 갑자기 불이 켜졌다.

“크흑.”

그가 찌른 이불 속에는 베개가 들어 있었다. 천천히 몸을 돌리자 그들이 서 있었다.

그레이언, 로카르드, 그리고 황제가.

오를은 단검을 떨어트리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황제 폐하,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보신 것과 다릅니다! 폐하!”

황제의 눈에는 감정이 없었다. 세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남자의 눈동자는 언제나 무기질적으로 건조했다.

황제는 낮아서 거칠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그레이언을 살해했다. 오를.”

“아닙니다! 이것은 저놈의 음모입니다! 로카르드, 당장 실토하지 못해! 네가 그레이언을 꼬드겨 이런 짓을 꾸몄다고!”

“무릎을 꿇어라.”

“황제, 황제 폐하. 폐하……!”

오를은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침대에 털썩 앉았다.

황제의 분노를 더 부추긴 것이 어느 쪽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손에 동생의 피를 기꺼이 묻히려는 장자의 잔혹함인지, 아니면 몇 번 고함지른 것으로 주저앉고 마는 저 무력함인지.

로카르드는 가만히 움직여 바닥에서 독이 묻은 단검을 발로 쳐 냈다.

황제는 오를을 쏘아보며 로카르드에게 말했다.

“오를의 약이 있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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