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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손님의 진짜 관심사(1) (128/155)


126화. 손님의 진짜 관심사(1)
2023.07.08.


나는 두 스마일란 남자와 남겨졌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차를 더 드릴까요?”

“류엘 님은 괜찮다고 하십니다.”

“아니요, 통역사님이오. 아까부터 통역하느라 거의 못 드셨잖아요. 지금 좀 드세요.”

그러자 통역사는 금세 경직하며 류엘의 눈치를 보았다. 류엘은 피식 웃으며 과자가 담긴 접시를 통째로 통역사 앞으로 밀어 주었다.

[첫마디부터 거짓이기에 거짓말쟁이라 여겼더니, 사람 마음을 얻을 줄 아십니다.]

류엘의 난데없는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짓말이라니요?]

[이름을 말할 때조차 힘겨워하던데, 거짓이라 그런 것 아니었습니까?]

내가 ‘로리샤 카이델’이라고 말하다 더듬은 걸 두고 하는 소리였다.

‘어쭈, 이 자식 봐라……?’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녀 전하가 자리를 뜨자마자 사람을 궁지에 몰다니, 지금 보니 이 남자도 질이 좋다고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는 황녀 전하를 스마일란으로 데려갈 사람이었다. 어찌 되었든 잘 보여야 하는 쪽은 나였다.

나는 차를 마시며 민망하게 웃었다. 쪽팔린 것도 사실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낯선 것이 많습니다. 심지어 이름도 입에 붙지 않았답니다.]

[소문과 달라 놀랐소. 카이델 부인.]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소문이라니.

이자는 제국의 사정을 다 꿰고서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다.

돌연 식은땀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황녀 전하의 처지도 알고 있을지 몰랐다. 황녀 전하가 집안에서 핍박받는 딸이라고 스마일란 왕자도 업신여긴다면…….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세 바다를 다스리는 스마일란의 왕께서 제국의 사정에 어두운 분을 사신으로 보내지는 않으셨을 테지요. 네. 저는 온 제국을 떠들썩하게 한 소문 속에서 급히 결혼했답니다.]

류엘은 내가 붙이는 스마일란식 수사가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한 대답에 감사하오. 카이델 부인.]

하지만 지금은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류엘 님께서 제국의 소문 속에서 밀리오라 전하에 대한 편견을 가지실까 우려스럽습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우려되는 점이 있으시다면 부디 이 기회에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렇다면 말해 보시오, 황녀 전하의 덕성은 무엇이오?]

이것은 의외로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나는 밀리오라 전하가 좋다. 그녀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녀의 장점을 목록으로 만들어 정리해서 행복을 기원해본 적은 없었단 말이다.

류엘은 마치 내가 대답을 주춤한 순간을 노리듯 웃었다.

[충성스러운 전 시녀시로군.]

[충성이 아니라 애정이랍니다.]

이걸 이렇게 고백하게 되다니.

나는 말을 이었다.

[네. 밀리오라 전하는 그분의 곁을 떠난 사람도 계속 사랑하게 만드는 분이에요. 어떤 사람은 가까이서 직접 보지 않으면 그 미덕을 알아볼 수 없어요. 부디 페일란 왕자께서도 제가 그분에게서 발견했던 다정함과 사랑스러움을 함께 발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현 시녀는 그렇지 않은 듯하던데?]

나는 헉 소리를 겨우 참았다.

남자가 쪼잔하기도 하지, 그걸 꼭 꼬집고!

[스마일란에도 열의가 과한 사람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네요.]

[대개는 없소.]

그는 참으로 간결하게 말했다.

[윗사람에게 방자하게 구는 자는 선원이든 왕의 시종이든 손을 뒤로 묶어 바다에 던집니다.]

……그것보단 연속 따귀가 훨씬 나은 것 같았다.

나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가, 류엘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황녀 전하는 냇가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것이 혼담 당사자들의 모임이었다면 둘이 함께 산책했을지도 모르지만, 류엘은 단지 대리인이었다.

[내가 돌아가면 황녀 전하의 미모에 대해서는 확실히 할 말이 많을 거요.]

[그분의 웃음소리를 들어 보셔야 해요. 음색이 높은데도 곱고 청아해요. 꼭 음악 같답니다.]

내가 이때다 싶어 황녀 전하를 칭찬했을 때, 밀리오라 전하의 새된 비명이 들렸다.

“아악! 론드 경 나 놓치면 죽여 버릴 거야! 아아, 무섭다고!”

“헉!”

나는 곧 보이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황녀 전하는 론드 경의 품에 안겨 바위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도로나 다름없는 그것이 건너기 뭐 어렵다고, 그녀는 론드 경을 꼭 안고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고는 싶은데 겁이 나고 자신이 없으니 론드 경에게 조른 것이다.

그녀를 안고 가는 론드 경이 불쌍한지, 저 광경을 설명해야 하는 내가 더 불쌍한지 가르기 어려울 정도였다.

류엘은 웃음을 꾹 참고 물었다.

[더 기다려 보겠소. 전하가 웃으실 때까지.]

[원래, 원래 저러시는 건 아니고……. 겁이 많은 건 죄가 아니잖아요.]

내가 거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항의하자, 류엘이 나를 향해 눈을 크게 뜨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황녀 전하의 꺄르르 웃음소리가 들렸다. 징검다리를 다 건너 론드 경이 그녀를 내려놓자, 좋아서 박수를 치며 웃는 것이었다.

“론드 경, 내가 징검다리를 건넜어! 정말 기뻐!”

그러자 론드 경의 무심한 대답이 들렸다.

“예. 전하. 징검다리를 다 건너셨습니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달아오른 내 얼굴의 열기를 느끼며 태연한 척하는 건 적잖이 고역이었다.

통역사가 밀리오라 전하와 론드 경의 대화를 통역하는 낮고 빠른 목소리를 듣는 것은 더, 더 그랬다.

류엘이 말했다.

[카이델 부인이 말하던 웃음소리가 저거였군. 과연 아름다우시오. 내, 왕자님께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내가 넋을 놓듯 제국어로 말하자 통역사가 다시 스마일란어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명이 닳는 기분이었다.

나는 애초에 낙관적인 사람이 못 되었으니, 황녀 전하가 지금 바다 건너에 있을 스마일란 왕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는 글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자기를 살피러 온 사신 앞에서 호위 기사랑 저렇게 시시덕거리는 걸 다 보였…….

‘……세상에!’

나는 놀라 두 사람을 다시 눈에 담았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을 보니 전율이 일었다.

황녀 전하의 편안하기 짝이 없는 웃음, 새끼가 자기 털을 뜯는 걸 내버려 두는 어미 같은 론드 경의 무심함.

그동안의 작은 시선, 대화, 얼굴 붉힘이 한꺼번에 납득되고 말았다. 저 모습을 연인이라고 안 부르면 뭘 그렇게 부른단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류엘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깨웠다. 나는 직감했다.

이 자식은 진작에 눈치챘다! 처음부터, 오히려 나보다 먼저 알고서 나를 놀리려고 묻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건 보고하실 필요 없지 않나요?]

[뭘 말입니까?]

[류엘 님도 왕족을 곁에서 지켜보았다면 아실 거예요. 전하는 외로운 분이세요. 친구는 적으시고요. 사소한 오해를 만드시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나는 사소하다는 단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손을 흔들다가 말했다.

[황녀 전하께서 스마일란에 가셔서 왕자님의 진심 어린 애정을 받으신다면, 황녀 전하는 그분을 가장 사랑하시게 될 거예요. 전하는 그런 분이시니까요.]

[경험해 보니 그랬습니까? 갑자기 한 결혼의 선배이니.]

나는 더 이상 억지로 호의를 짜내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꽤 차가워져 있었다.

[저는 여기 관련 없어요.]

그러나 류엘은 나를 몰아붙이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럽니다. 낯모르는 상대와 결혼하는 기분에 대해 말이오.]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황녀 전하의 결혼생활의 행복도가 내게 달렸다는 생각에, 나는 손으로 치마 속 허벅지를 쥐어뜯으며 인내심을 짜냈다.

[저는 낯모르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그분을 알았고, 존경했어요.]

[내가 들은 것과 다르군요.]

[그런 걸 남 앞에서 티를 낼 이유가 없잖아요!]

내 음성이 울컥 올라가는 바람에,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셔 진정한 다음 말을 이었다.

[제 결혼이 어떤 배경으로 진행되었든, 제 남편인 카이델 공자님과 저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로 했어요. 결혼이란 힘을 합치기에 생각보다 좋은 조건이거든요.]

[힘을 합친다?]

[예를 들면 이 옷이요. 저는 어제 갑자기 궁에 머무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 남편은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집으로 사람을 보내 제게 필요한 걸 보내게 했어요.]

[스마일란 사내들은 그리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소. 카이델 부인.]

[제 옷을 챙겨 준 세심함과 저를 번번이 위기에서 구해 준 그의 희생은 똑같은 관심의 시선으로부터 나왔어요. 그러니 저는 그를 깎아내리는 말씀에 조금이라도 동의할 수 없어요.]

내가 내 입으로 카이델 공자를 극찬하게 되다니!

나는 단전부터 배배 꼬이는 기분을 참으려 애쓰며 억지로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로카르드 카이델이라는 남자가 재수 없는 건 바로 이런 부분이란 말이다. 아아.

류엘은 그런 나를 눈을 가늘게 뜨고서 주시하고 있었다.

[질투 나는군. 당신 그 신뢰 말이오. 사내들이 여자의 두려움을 얻는 것은 몹시 간단한 일이오. 여자의 사랑을 얻는 것은 쉬운 편이지. 하지만 여자의 믿음을 얻는 것은 참사내만 가능한 것이라 했소. 내 아버님은 그리 말씀하셨소.]

[현명한 아버님이시군요. 류엘 님도 그러시리라 믿어요.]

[아무튼 당신이 내 질문에 답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소.]

[무슨 말씀이신가요?]

[당신 말대로면 천생연분이 만난 것뿐 아니오. 나는 낯선 자들 간의 결혼에 관해 물으려는 것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되냐!

이 자식은 정말 고단수였다. 하지만 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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