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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신혼생활 수칙(3) (121/155)


119화. 신혼생활 수칙(3)
2023.07.01.


그는 멈칫하면서도 크게 대답했다.

나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으니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다고 생각하는 태도였다.

마치 담벼락을 발로 찬다고 나쁜 짓이 아닌 것처럼.

“그렇다면 어쩔 겁니까?”

“지금 그 말,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듣자 하니 공자께서 합방도 하지 않으신다는데, 우리가 그런 여자를 안주인으로 대우할 이유가 없소.”

합…… 방?

나는 순간 머리를 맞은 듯했다. 하지만 얼른 정신을 차렸다.

데릭슨이 이렇게 쉽게 선을 넘어 주다니.

“뭐라?”

그때 카이델 공자가 이를 빠드득 가는 소리가 났다. 흠칫 놀라 돌아보았을 때, 그의 눈빛은 내가 처음 보는 위험한 빛을 뿜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데릭슨 저 인간은 오늘 이 방에 들어올 때와 같은 몸으로 이 방을 나가지 못한다!

내가 왜 저 인간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하는지, 나는 짜증을 섞어 버럭 고함쳤다.

“경이 우리 침실 사정을 어찌 알고!”

나는 씩씩거리며 데릭슨의 코앞으로 가서 양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 턱을 쳐들었다.

그의 큰 체구 앞에서 내 작은 몸집은 우스울 정도였지만, 나도 마음먹으면 어디서 기세로 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카이델 공자에게 멋대로 하라고 허락도 받았겠다, 나는 그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밀릴 수 없었다.

싸움은 기세다.

데릭슨은 내 얼굴에다 보란 듯 코웃음을 쳤고, 카이델 공자는 화를 참느라 어금니를 살짝 악문 채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게 말했다.

“묻죠. 카이델가의 가신들은 원래 이렇게 주인의 침실 사정을 염탐하고 조롱하나요? 그걸 이렇게 모여 이야기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나요?”

“하.”

“기사의 몸으로 비무장의 여자를 위협하는 데 거리낌이 없나요?”

“염탐이라니! 조롱이라니! 내게 그런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씌우다니, 입조심 해야 할 겁니다.”

데릭슨은 아차 싶은지 카이델 공자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금방까지 나를 비웃듯 바라보던 방 안의 기사들도 차츰 얼굴이 굳어갔다.

그들은 합방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면 내가 부끄러워할 줄 안 모양인데, 어림도 없었다.

나는 크게 코웃음을 치고 사납게 반말했다.

“주인의 아내를 몰래 겁박하는 자가 명예를 말해? 나는 세 번째 사자의 사생아로 태어나 많은 멸시를 받았지만, 경과 같은 수치스러운 짓을 한 적은 없어!”

“가, 감히!”

“감히? 마저 뱉어 봐. 감히 계집이? 감히 사생아가?”

“이……!”

“내 질문에 단 하나도 대답하지 못하겠으면 이거라도 대답해 봐. 카이델가에서는 작은 안주인을 능멸한 기사에게 어떤 죄를 물리지, 데릭슨 경?”

그는 하! 하고 헛웃음을 쳤지만 나는 엄한 표정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몰아붙였다. 말투만 다시 바꾸었다.

“당신은 내 결혼식에 참석해 카이델 공작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광경을 보았으면서도 나를 부정하는군요. 내가 당신의 눈에 차지 않기 때문에? 공작님이 하신 결정의 권위도 당신에게는 그 정도인 거예요. 안 그런가요?”

“그것과 그것은 별개요!”

그는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한발 물러나 만면에 비웃음을 띠고 말했다.

“데릭슨 경, 당신은 자기 입맛에 맞는 주인을 원하는 모양이네요. 그것이 당신이 카이델가에 바치는 충성심인가요?”

“그……!”

‘그것이 아니라!’

달싹거리는 데릭슨의 입 모양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소리는 미처 다 흘러나오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기사들이 내 시선을 일제히 피했다.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 기사들의 첫 번째 규율을 깬 자들이 할 말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그때 스르륵, 카이델 공자의 팔이 내 허리를 감더니 그의 가슴으로 당겼다.

“내 아내의 말에 그른 데가 있나?”

“……!”

“그래도 억울하다면 내 기꺼이 상대해 주지. 내 아내의 명예는 내 책임이니까. 데릭슨.”

나는 지금 카이델 공자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오만했고, 내 등이 기댄 그의 가슴은 성벽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저런 치졸한 자가 그에게 맞설 수 없으리라는 건 하늘에 뜬 태양처럼 분명한 일이었다.

데릭슨은 결국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침통하게 말했다.

“제, 제가 실수를 한 듯합니다…….”

“내가 그것을 몰랐을까?”

“……공자님.”

“내 아내에게 빌어야지.”

데릭슨은 이를 악물고 내게 머리를 숙였다.

나는 주변 기사들이 경악한 시선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차가운 시선을 고정했다.

“제가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작은, 마님.”

나는 그를 빤히 쏘아보다가, 실내의 기사들을 죽 둘러본 다음 크게 말했다.

“앞으로 조심해요.”

그러자 카이델 공자가 내게 팔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부인, 갈까요?”

“네. 공자님.”

우리는 나란히 그 방을 떠났다.

* * *

우리 침실에 들자마자, 나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갑자기 팔다리가 모두 후들거려 서 있기도 힘들었다.

나는 반쯤 훌쩍거리며 말했다.

“흐흑! 난 몰라, 어떡해! 공자님이 대놓고 제 편을 들어서 가신들이 공자님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예요!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떡……. 읍!”

카이델 공자는 나를 벽으로 밀어붙이더니 마구…… 그랬다. 키스 솜씨가 매번 비약적으로 느니까 가뜩이나 없는 정신이 희게 달아났다.

나는 그의 품에서 한참을 버둥거리다가 결국 그의 등을 힘없이 때렸다.

“지금, 지금이 이럴 때예요? 지금 집안 분위기가 난장판이 되었다고요!”

“하아. 왜요? 좋은데! 안 좋아요?”

“좋죠! 좋은데……. 아아, 난 몰라!”

나는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혀를 차더니 내 몸을 번쩍 들어 소파에 앉혔다.

나는 그가 미워 훌쩍거리면서도 또 그것도 그것대로 고마웠다.

“왜 울어요? 키스 때문에 울어요?”

“아니요! 그것 때문에 왜 울어요?”

“너무 잘하면 운다던데?”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교관 얼굴 좀 보자고요!”

“기억 못 하는 거군요. 결혼식 날 인사했는데.”

아차.

카이델 공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기분 좋은 얼굴로 셔츠 목덜미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 몸을 늘어뜨린 채 나를 돌아보았다.

그 나른하고 흐뭇한 시선이라니.

“나는 내 아내가 용맹해서 좋아요. 방 안을 꽉 채운 내 기사들 속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다니……. 사자의 피를 타고나서 그런가. 당신이 그러면 흥분된다고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눈물도 멈추었다.

“이제 가신들이 공자님을 제대로 멸시할 거예요. 여자에게 홀려서 제정신이 아니라고요.”

나는 빼먹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공자님은 완전히 변태예요!”

“아니.”

카이델 공자가 하도 단호해서, 나는 눈물을 쓱 닦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저들에게 처음부터 공자님 취급을 받았을 것 같습니까?”

“……?”

그도 가신들과 기 싸움을 했으리라는 건 완전히 상상 밖의 일이었다.

“검을 쥔 자들은 상대의 실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대를 깔보고 짓뭉개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당신이 얌전한 방식으로 그걸 극복하려면 못해도 오 년은 걸렸을 거예요.”

“…….”

“우리에겐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고, 당신은 기꺼이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어요. 다시 한번.”

“…….”

그게 그렇게 되나?

하지만 그가 내 행동을 미화해 준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론드 경이 말한 ‘짐승의 무리’라는 말은 내내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나는 조금 전 분노한 기사들 앞에서 어떻게든 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중을 얻어 내야 했고, 검을 잡을 줄 모르는 내게 남은 무기는 막말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툰바르산에 사는 욕쟁이 꼬마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의 가신에게 욕을 퍼붓고 대놓고 말싸움을 하는 걸로 카이델저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말았다.

내가 미샤처럼 모두에게 존중받는 영애였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 기분은 무겁게 처져 갔다. 그런데 그가 눈치도 없이 달콤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부인.”

“몰라요!”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뒷머리를 소파 등받이에 쿵쿵 찧었다.

“당신은 오늘 그들에게 당신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걸 보여 줬어요. 안주인으로서 전통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공작님이 들으면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겠어요!”

“괜찮아요. 손주만 하나 안겨 드리면 당신이 저택에 불을 질러도 용서하실 테니까.”

“공자님!”

지금 그런 농담이나 할 때인지 울컥하는데, 그의 눈빛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이 변태 새끼가!’

나는 저도 모르게 침대로 뛰어 들어갔다. 그가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물어본다는 걸 매번 잊었는데, 저게 뭡니까?”

그가 장식장 위에 놓인 자물쇠가 달린 상자를 보고 물었다. 하녀가 내게 장난질을 한 찻잔이 담긴 상자였다.

“안 가르쳐 줘요!”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카이델 공자는 겉옷을 벗더니 침대 옆자리로 올라와 누웠다.

“그래서 하녀들이 떠드는 거예요.”

“…….”

“우리 침대에 아무 흔적이 없으니까 이놈 저놈 멋대로 떠드는 거예요.”

……무슨 흔적!

나는 거대한 두더지처럼 이불을 똘똘 감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렸다.

나는 울고 싶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는 갈 데가 없었다. 백작님은 아마 나를 받아 주지 않을 거다. 더 울고 싶었다.

그런데 카이델 공자가 내가 쓴 이불을 더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착각이려니 했는데, 그의 손끝이 내 팔 부위를 돌아다니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 하녀들 보라고 진짜로 그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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