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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신혼생활 수칙(2) (120/155)


118화. 신혼생활 수칙(2)
2023.06.30.


“어째서…….”

나는 불쑥 되물은 내 입을 때리고 싶었다. 황족이 까라면 까는 거지 무슨.

하지만 이유 모를 명령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시녀도 아닌데 어째서 오라 가라 하는지!

그레이언 전하는 짜증이 난 건지 살짝 딱딱한 말투로 대꾸했다.

“밀리오라와 노닥거리는 것 말고 무엇을 하려고?”

그게 그렇게 된다고?

“네 입으로 나를 모시겠다고 하지 않았어.”

대답을 궁리하는 내 머리가 터져 나가기 전에, 카이델 공자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말했다.

“제가 바쁠 때 부인이 대신 입궁하면 되겠군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그가 나를 향해 살짝 윙크했다. 그는 절대 나를 자기 대신 입궁시킬 생각이 없었다.

예쁜 자식!

나는 안도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할게요. 제 평판이 적잖이 험하니 황궁에 함부로 드나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레이언 전하도 내 말에 아차 싶은 듯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가 아무리 나를 괴롭히고 싶더라도 그 탕녀가 이번에는 2황자를 유혹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언 전하는 그 뒤로 별말이 없었다. 카이델 공자가 몇 마디 잡담을 이어 간 후 말했다.

“전하, 그러면 결혼 휴가를 끝내고 뵙겠습니다.”

그레이언 전하는 분명히 못마땅한 기색이었지만 우리를 놓아 주었다.

응접실에서 나오자 카이델 공자가 물었다.

“지금까지 전하를 뵐 때마다 그렇게 긴장했어요?”

그러고 보니 나는 그가 없을 때만 그레이언 전하를 만난 것 같았다.

“그랬나 봐요.”

그는 더 질문하지 않았고, 우리는 나란히 2황자궁을 빠져나갔다.

“공자님, 로이만 실장님을 뵙고 가고 싶어요.”

“같이 가요.”

그는 태연하게 내 팔을 가져가 나를 에스코트했다.

문득 고개를 돌려 그의 완벽한 턱선을 올려다보노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그는 나와의 결혼을 고민해 본 적도 없고, 첫날밤에 달아날 만큼 나를 꺼렸다. 그런 사람이 남들 앞에서 이렇게 태연하게 남편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적잖이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내게 불만을 가지고 원망하는 것보다 백만 배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자신을 가만히 타일러 보았다.

‘너 참 욕심도 많다.’

내가 그의 팔을 살짝 당기며 걸음을 멈추자 그가 돌아보았다. 그의 미소는 참 부드러웠다.

“그레이언 전하는 저에게 뭘 바라시는 거죠?”

“…….”

“그분이 저를 궁에 불러들이실 이유가 없잖아요.”

“그분은 당신을 두려워한다니까요.”

“농담 마시고요.”

“타가르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한 것을 자기가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그의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너무 불편했다.

“그냥 말해 주시면 안 되나요? ‘부부’ 사이에.”

그가 네가 그 농담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웃었다.

“그레이언 전하가 제브론 해변에서 당신을 버린 건 당신이 사생아였기 때문입니다.”

“버려요?”

듣고 보니 웃긴 이야기였다. 누가 주워 달랬나!

“하지만 지금 당신은 카이델 부인이죠. 이제는 능력을 검증받은. ……그분은 당신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공자님.”

“전하는 제게 맡겨 두세요. 당신이 입궁할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한숨이 나왔다.

“아카데미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공자님은 이제부터 정신없이 바쁘실 거고, 타가르는 원하는 걸 포기하는 법이 없다면서요.”

카이델 공자는 내 뺨을 아주 느슨하게 꼬집으며 웃었다.

“내 부인은 걱정이 많군요. 날 좀 더 믿어 봐요.”

나는 그가 언젠가부터 스스럼없이 나를 만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의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기에 나는 재빨리 말했다.

“믿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황궁으로 출발하기 전에 카이델저 복도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가신이 내 어깨를 치며 막말을 했고, 나는 욕을 퍼부어 주었다고.

내가 말하는 동안 그의 입가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에는 살기 같은 게 맴돌았다. 론드 경이 그를 두고 ‘짐승 무리’의 우두머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저으며 무겁게 말했다.

“공자님 말씀을 듣고 지면 안 되겠다고 그런 건데, 저질러 놓고 보니 후회가 커요. 어떻게 생각해도 그것이 ‘카이델 부인’다운 행동거지는 아니잖아요.”

“주인의 아내를 모욕한 것은 부하다운 행동거지입니까?”

“……공자님. 저는 지금보다 더 공자님의 말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공자님은 그럴 만한 잘못을 저지르신 적이 없다고요.”

이렇게 진지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내 귀로 들리는 내 목소리는 거의 침통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앞으로 이끌 뿐이었다.

“가요. 실장님이 당신을 반가워할 겁니다.”

‘그는 화가 많이 난 걸까?’

나는 그의 눈치를 흘끔 보았지만, 그가 나를 팔로 감싸 안다시피 걷고 있으니 그의 표정을 살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연구실에 도착하자 로이만 실장님은 호들갑을 떨었다. 실장님의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마치 십 대 소녀와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결혼 생활은 어떤가요, 꿈꾸던 대로인가요?”

나는 내가 불행한 표정을 지을까 봐 일부러 눈을 접어 웃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네.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실장님에게도 다과 상자를 전달하고 그곳을 떠났다.

마차에 오르자마자 침울해지는 나를 보면서 카이델 공자도 말이 없었다.

* * *

우리가 카이델저에 도착하자마자, 하인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 나왔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공자님! 지금 공작님을 뵙겠다며 가신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하인이 내 눈치를 보자 카이델 공자가 날카롭게 말했다.

“있는 사실대로 말해.”

“작은 마님께서 가신을 모욕하셨다 하여, 항의하려…….”

“앞장서라.”

나는 재빨리 카이델 공자 앞을 막아섰다.

“어쩌시려고요?”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나는 그렇게 소름 끼치게 방긋 웃는 얼굴을 평생 처음 보았다.

“로리샤. 우리는 바빠요. 이런 일에 낭비할 시간 없단 말입니다.”

그는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의 큰 보폭을 뒤따랐다.

카이델 공작님의 대기실은 집무실 복도 끝에 있었다. 그 안에는 검을 찬 남자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 가운데 흥분한 얼굴로 서 있는 남자를 바로 알아보았다. 오늘 아침 나를 욕한 자였다.

누가 보아도 그가 이들을 선동하여 데려온 것이 분명했다.

나처럼 작은 여자한테 당하고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나는 부아가 치밀어 입을 앙다물었다.

카이델 공자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 머리를 살짝 기울여 내게 속삭였다.

“지금 그 기분, 잘 기억하고 있어요.”

카이델 공자는 대기실 중간에 서서 나를 욕한 남자를 불렀다.

“데릭슨. 이게 무슨 일이지?”

데릭슨은 마침 잘 만났다는 듯 커다란 목청으로 말했다.

“공자님! 그러잖아도 저희는 공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그분께 들으십시오. 우리 고귀한 카이델가에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입니다!”

카이델 공자가 그를 쏘아보기만 하자, 데릭슨은 다른 기사들을 향해 웅변하듯 말했다.

“생전의 공작 부인께서는 우리 기사단을 자식처럼 손수 챙기셨습니다. 추잡한 소문 따위는커녕 제국에서 가상 고상하고 품위 있는 분이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내 아내를 어깨로 치고 폭언을 퍼부었다?”

데릭슨은 움찔하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폭언은 작은 마님이 제게 퍼부은 겁니다! 작은 마님의 입에는 악마가 깃든 것이 분명합니다!”

실내 공기는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졌다. 카이델 공자를 향해 항의하는 기사들은 마치 한 무리의 짐승들 같았다.

론드 경의 말이 내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았다.

‘검 잡는 사내들은 짐승의 무리와도 같소. 더구나 카이델가 권속들은 자존심이 하늘을 찔러 시녀님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요.’

그러나 카이델 공자는 대꾸하는 대신 팔짱을 낀 채 삐뚜름한 미소를 띨 뿐이었다.

데릭슨은 감히 그에게 대들지는 못하고, 자기가 몰고 온 동료들의 화를 돋웠다.

그때 카이델 공자가 몸을 돌려 내게 시선을 맞춰왔다. 그는 내게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해 볼래요?’

그가 내게 멋대로 날뛰어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그에게 눈빛으로 되물었다.

‘지금 제정신이세요?’

그가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이 말했다.

‘우리가 함께 미쳐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그것은 내가 이 집안의 진짜 며느리였다면 꿈도 못 꿀이 일이었다.

하지만 가신의 부인, 하녀, 가신인 이 기사까지. 이런 일을 줄줄이 벌이게 둘 수는 없었다.

외부의 강력한 적을 두고 카이델가 내부에서조차 금이 가게 두어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어차피 지킬 체면도 없었다.

빌어먹을.

“데릭슨. 데릭슨 경이라 했나요?”

내가 크게 말하자 실내가 고요해졌다.

그자는 내가 감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를 향해 두꺼운 가슴을 내밀고 섰다.

“그렇소만.”

“당신은 오늘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나를 모욕했어요. 혼자 있는 나를 몸으로 밀어붙이면, 내가 겁먹어서 어쩔 줄 모를 거라 생각했겠죠. 인정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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