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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당신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82/155)


81화. 당신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2023.05.24.


내 질문에 그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짧은 순간 그에게 스친 동요를 보자 이제 그가 할 대답을 믿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그는 뻔뻔하고 재수 없었다. 자신감이 과도하여 거짓말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런 인물 말이다.

그런 그가 저렇게 말을 아낄 때는,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맞잖아요. 공자님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걸요.”

카이델 공자는 내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각각의 단어가 마치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 같은 나직한 말투였다.

“당신은 황궁으로 돌아올 거예요. 이 로카르드가 약속하죠.”

나는 얼어 눈만 깜빡였다.

그의 허황한 약속 때문이 아니라, 그의 손이 내 뺨을 덮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귓가로 넘겨 주는 손길 때문이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잘 알아요. 그러니 날 믿어 줘요.”

“공…….”

입을 열었지만 내 대답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대답도, 말도.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몸을 뒤로 물렸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늠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곱씹었다.

믿어 달라니. 나는 아무도 안 믿는걸.

엄마한테 약속했어. 이젠 아무도 안 믿기로.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델 공자는, 그가 평소에 갑옷처럼 걸치고 다니는 그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당신이 금방 알아낼 줄 알았어요.”

이제는 내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이해 못 하겠어요. 저는 이제 경연에서 손도 까딱 안 할 거예요. 그러니 저를 함정에 빠트릴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그의 대답은 냉랭했다.

“두 황자 전하의 눈에는 당신 존재 자체가 경연의 변수예요. 그리고 그들은 그걸 용납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를 그냥 쫓아내시면 되잖아요! 어째서 저를 추문으로 황녀 전하 곁에서 떼어 내려고 하시는 거냐고요.”

“추문이라니, 불쾌하군요. 로아르 양.”

그가 무심결에 내 성을 부른 건 내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냈다.

“그럼 이게 추문이 아닌가요? 우리는 경쟁 중인 관계예요. 거기에 첫 번째 사자님의 후계자와 사생아 계집애의 스캔들이라니, 공자님의 고결함을 더럽혔다는 비난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 같으세요? 공자님이 먼저 저를 유혹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

카이델 공자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는 비난의 화살이 나를 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제 보니 저 인간은 전쟁에는 능해도 남녀 문제에서는 젬병이었다.

그는 몹시 심각해졌고,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괴로워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공자님!”

“제가 먼저 움직이고, 제가 책임질 겁니다. 당신이 말하는 상황은 아직은 두려움에 찬 가정일 뿐이에요. 이제 알았으니 그런 상황은 피하게 하겠어요.”

나는 이마를 짚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 일의 결과가 당신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해요. 로아르 양. 그러니 제 연인이 되어 줘요.”

나는 이 상황과 털끝만치도 어울리지 않는 그의 결연함과 단호함에 허탈하게 되물었다.

“가짜 연인이요?”

“네. 가짜 연인이요.”

“지금 본인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고 계신 건가요?”

“당신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어요. 로아르 양에게는 기왕에 나쁜 놈이 된 것, 계속 나쁘게 굴겠습니다.”

그의 단언에 나는 눈앞이 다 어찔했다.

“그냥 쫓아내지, 뭘 이렇게 복잡하게 해요!”

“상황이 복잡해요.”

이 빌어먹을 귀족 놈!

나는 그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간절한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앉았다.

“그러지 말고 이유를 말씀해 보세요. 공자님은 지금까지 제가 알아 온 중에 가장 고귀한 사람이에요. 물론 저희 백작님 빼고요. 저는 그래서 공자님을 한 번도 진짜로 미워한 적이 없…… 었는데…….”

악. 그리고 악.

내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그런 소리를 입 밖에 냈을 리가 없다.

나는 입을 딱 벌린 채 굳고 말았고, 그도 얼굴을 붉히며 눈길을 피했다.

그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시녀, 시녀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요. 나머지는 제가 해결할 테니까, 제가 양보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예요.”

“못 해요.”

“로아르 양!”

“저는 황녀 전하의 곁을 지킬 거예요.”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울적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그러니 저도 당신을 유혹할 겁니다.”

“공자님, 정말……!”

“당신이 원하는 노후는 내가 책임지고 실현해 주겠습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공자님이 왜요? 제가 어째서 제 인생과 미래를 공자님 손에 맡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카이델 공자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말했다.

“또 찾아오겠어요. 나는 아무래도 당신을 정말로 원하는 것 같으니까.”

그가 돌아간 후, 나는 얼얼한 기분으로 이불을 당겨 덮었다.

조금 전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데 방 안은 너무 고요해서, 방금 일이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도 오해도 아니었다. 카이델 공자는 나와의 스캔들로 내 신뢰도를 추락시키려 하고 있었다.

내가 카이델 공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나면 황녀 전하는 나를 믿지 못할 것이다. 만에 하나 믿는다고 해도 체면 때문에 나를 곁에 둘 수 없을 터였다.

그러면 나를 황궁에서 쫓아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손까지 더럽힐 필요가 없었다.

내심 동경했던 카이델 공자가 이토록 멍청하고 끔찍한 계획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 * *

로카르드는 2황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으나, 곧 길을 잘못 든 자신을 발견했다. 정신을 잠깐 놓은 사이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는 옅은 당혹 속에 가까이 보이는 제3황궁으로 향했다.

휘니드는 로카르드가 갑자기 찾아오자 긴장했다. 그러나 로카르드가 자신의 간이침대에 벌렁 드러눕자 하던 일을 계속했다.

“로아르 양은 어때요?”

“회복 중이에요. 여전히 날카롭고.”

“저런. 그럴 만도 하지요.”

로카르드는 그녀의 판단력이 날카롭다고 말했지만, 휘니드는 로리샤의 기분에 관한 말로 이해했다.

휘니드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불의의 사고로 그 자리에 이틀이나 누워 있었잖아요. 경연이란 참…….”

그 말을 들은 로카르드는 즉시 벌떡 일어나 의자로 갔다.

‘젊음이란…….’

휘니드는 로카르드가 무심결에 한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워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녀의 체온이 밴 곳에 앉아 있기 부끄러워서 그런다고 말이다.

하지만 로카르드는 로리샤를 생각하느라 신경이 팔려 휘니드의 망상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고집과 의지. 그리고 조금 전 확인해야 했던 그들의 입장 차도.

그는 자신이 그녀를 미래의 조력자로 간주하는 태도가 자신의 일방적인 입장이었음을 천천히 깨달았다.

그의 주변에는 그의 눈에 들려 노력하는 사람들뿐이었으니 거절을 가정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전 로리샤의 반응에 그는 뺨을 한 대 맞은 기분이 되었다.

‘공자님이 왜요? 제가 어째서 제 인생과 미래를 공자님 손에 맡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는 점점 더 가라앉는 기분으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는 자신이 믿어 달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눈빛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그녀는 마치 ‘감히, 네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제길. 어째서 날 믿어 주지 않는 거야.’

로카르드는 아까 로리샤의 방에서 자신이 엉망진창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승부였다면 그런 참패가 없었다.

그는 거기서 그럴듯한 바람둥이도 되지 못했고, 그녀를 설득하지도 못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는 그의 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이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남자’인 척을 해 본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는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자신에게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과 전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로카르드의 부족함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제국 사교계 영애 대부분은 이미 그에게 반해 있었고, 반하지 않은 나머지도 그를 거절할 리 없었다.

그의 외모와 능력 때문이건 카이델가의 후계자라는 배경 때문이건, 결론은 같았다.

그런데 로리샤의 안중에는 그 둘 모두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갈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로리샤 로아르는 그가 처음 보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 낯섦은 매혹적이었고, 이제 로카르드는 그녀가 만드는 결말을 곁에서 직접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 강렬한 욕구가 호기심인지 수집욕인지, 그는 결론 내리기를 유보했다.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유일하게 고귀하게 여긴다고 말해 놓고서는!’

로카르드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기묘한 열패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 말을 할 때 부친인 로아르 백작과 그를 비교했다. 세 번째 사자와 나란히 놓이는 것은 한편으로는 듣는 사람을 우쭐하게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어쩌면 그녀가 그를 전혀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 좋게 포장한 것뿐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세 번째 사자는 그녀의 부친이 아닌가.

“내가 도대체 몇 살로 보이는 거야!”

로카르드가 울컥 중얼거리며 주먹을 쥐자, 휘니드가 불안한 시선을 굴렸다.

하지만 그는 일단 더 지켜보기로 했다. 최근 며칠, 카이델 공자는 분명 평소와 상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로카르드는 이제 로리샤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이렇게 휘두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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