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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첫 번째 경연의 결과 (59/155)


59화. 첫 번째 경연의 결과
2023.05.02.


나는 카이델 공자가 가르쳐 준 변명을 한 호흡에 뱉었다. 기부금 문제로 급히 보육원에 갔다가 자고 왔다고 말이다.

“보육원 어디?”

“수도 인근의 예텔이라고, 심부름꾼을 사서 제 상황을 황궁에 전해 달라고 했는데, 그자가 돈만 떼어먹은 모양이에요. 죄송해요, 전하. 저도 시녀 일이 처음이다 보니…….”

나는 잔뜩 울상을 하고 불쌍한 척을 했다.

그녀는 나를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보육원에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볼게.”

“그러세요. 전하. 하지만 꼭 말을 타고 가라고 하세요. 말씀드렸다시피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니까요.”

내가 워낙 뻔뻔하게 대답한 탓에 황녀 전하는 넘어가기로 한 것 같았다. 지난 자선 기사 덕에 기분이 좋아진 탓도 컸다.

“앞으론 이런 일 없게 해.”

“당연하죠, 전하! 오늘은 티 파티를 안 여시나요?”

그녀는 망설이는 척 반색을 숨기며 말했다.

“그럴까?”

나는 얼른 영애들에게 연락을 넣고 주방에 음식을 주문했다.

오늘 티 파티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도 도난당한 ‘붉은 눈물’에 대한 것이었다.

라일리 경매에 참석했던 두 영애는 경매에 대해 아는 척을 하느라 입이 쉬지 않았다.

그것은 비공개 경매라 그 안의 상황은 참석한 사람밖에 몰랐으니 모두가 집중했다.

그들은 ‘붉은 눈물’에 대해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나는 본경매가 시작되기 직전에 돌아와서 몰랐지만, 해적선에서 ‘붉은 눈물’ 실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묘사에 다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대단한 목걸이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너무 목걸이 이야기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영애 중 하나가 황녀 전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열띤 걸로 치면 황녀 전하의 자선 경매였죠.”

“그럼요, 전하의 반지는 날개 돋친 듯 팔렸으니까요!”

나는 다른 영애 하나가 황녀 전하의 반지를 낙찰받은 걸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걸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수줍어서 숨기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아마 그녀가 주변에 그걸 황녀 전하에게 선물 받았다고 거짓말하려고 산 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황궁 하녀들이 그 비슷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죠. 저는 황녀 전하의 고운 마음에 감동해서 울 뻔했다니까요!”

케릴이 없어도 낯부끄러운 아부는 계속되고 있었다.

황녀 전하는 그녀들의 말을 듣는 도중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영애들의 말이 사실인지, 내 반응으로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정색을 하고 성실한 시녀의 표정을 지었다.

금세 집중력을 잃은 영애 하나가 말했다.

“그나저나 황제 폐하의 탄신일 파티에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는 정하셨나요? 저는 아직도 고민 중이랍니다.”

“어머, 저도 그래요! 도무지 정할 수가 없네요.”

다시 대화에 불이 붙는 가운데, 황녀 전하가 내 눈치를 흘끔 보고 눈을 피하는 게 느껴졌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녀는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탄신일 파티가 언급되었음에도, 티 파티 멤버 중 아무도 자신의 경연에 관해 걱정해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8. 두 번째 경연

첫 번째 경연의 종료일.

우리는 시종 임명식 때처럼 성장을 하고 정무 홀로 향했다.

황제 폐하 부부 앞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경연 과제인 탄신일 선물이 바쳐질 자리였다.

“황자녀 전하들께서는 순서대로 황제 폐하의 탄신일 선물을 바치십시오.”

시종의 말에 오를 전하가 앞으로 나가자, 르네 자작이 두꺼운 책 크기의 나무 함을 들고 뒤따랐다.

그는 그것을 테이블에 놓고 말했다.

“제국의 작은 태양 오를 1황자 전하께서는 카탈리나 산맥 너머에서 구한 불로초를 바치셨습니다. 전설 속에 떠돌던 약초를 구하는 난관을 오직 폐하의 영광과 건강이 영원하시기를 바라는 충심으로 이겨 냈사옵니다.”

나는 적잖이 당혹했다. 사실은 겁에 질렸다.

내가 선물을 바치고 설명까지 해야 하는 모양인데, 나는 저렇게 길고 낯간지러운 소리를 할 자신이 없었다!

황후 폐하가 탄성을 냈다.

“오오, 세상에. 카탈리나의 불로초라니요! 오를, 이렇게 귀한 걸 절대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이런 일을 해냈니!”

오를 전하는 겸양을 드러내듯 머리를 살짝 숙여 보였다.

카탈리나의 불로초라니, 그게 실제로 있었던 거냐고.

나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황후 폐하의 과장된 칭찬에서는 편애라는 티가 팍팍 났다.

이런 식이면 황후 폐하는 내 차례에서 나를 깎아내리고 비웃으실지도 몰랐다.

황제 폐하는 황후 폐하의 호들갑에 동조하지는 않았으나 기분 좋게 대답했다.

“오를의 뜻이 대견하구나.”

오를 전하가 뒤로 물러나자 그레이언 전하와 카이델 공자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카이델 공자는 빈손이었다.

나는 긴장하여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카이델 공자 자신이 말했듯, 그 사건은 엄밀히는 불법 군사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보고할지…….

카이델 공자는 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시종은 그것을 황제 폐하에게 건넸고, 그것을 연 폐하는 그레이언 전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이델 공자가 설명했다.

“그레이언 2황자 전하의 탄신인 선물은 제브론 호텔 이용권입니다. 폐하.”

그는 그렇게 간단한 설명을 끝으로 뒤로 물러났다.

황제 폐하의 입을 바라보자니 내 손바닥에 땀이 축축해졌다.

폐하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셨다.

“선물은 받았다. 그레이언.”

한쪽에서 그걸 바라보는 오를 전하의 기색이 예민해졌다. 나는 심호흡하며 긴장을 조절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였다.

나는 밀리오라 전하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품에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으니 걸음걸이가 더 조심스러웠다.

나는 상자를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놓은 다음 뚜껑을 열었다.

시종은 그 안에 수북한 편지와 쪽지들을 보더니 당황하여 나를 바라보았다.

‘나더러 이걸 어쩌란 말이오?’

나는 아이들이 삐뚤빼뚤 쓴 편지를 하나씩 꺼내 읽었다.

내가 보육원마다 다니며 그 편지를 얻어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황제 폐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황제 폐하는 최고세요! ’, ‘황제님이 최고예요. 오래오래 사세요.’, ‘빵이 맛있어요. 황제 폐하.’, ‘저도 얼른 어른이 되어서 황궁에서 일할래요.’”

나는 눈치를 보며 다 읽은 편지를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내게 집중된 시선이 부담스러워 살짝 헛기침이 나올 정도였다.

살짝 곁눈질하니 황녀 전하도 얼굴이 긴장으로 발그레해져 있었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밀리오라 황녀 전하께서는 장신구를 경매에 부쳐 전액을 보육원에 기부하였습니다. 밀리오라 전하는 그곳 아이들이 쓴 축하 편지를 바칩니다. 밀리오라 전하만이 아니라 제국의 가장 먼 곳에 있는 아이들 수백 명의 목소리를 더하여, 황제 폐하의 탄신일을 축하드립니다.”

부자들은 이익을 위해 알아서 충성한다. 백성들은 힘 있는 자들이 두려워 충성하지만 속으로는 그들을 증오하곤 한다.

사람의 진심 어린 호의를 얻는 것은 쉬운 듯하면서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황녀 전하가 이 경연에서 승리를 거머쥐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고 싶어도 황자 전하들과 같은 선물을 구하는 건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나는 반지 사건으로 실추된 그녀의 불명예를 회복하면서, 그녀가 적으나마 민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어엿한 황족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제 그 판단이 내려질 시간이었다.

황후 폐하는 굳은 얼굴로 나직이 말했다.

“편지라니…….”

그때 황제 폐하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손을 내밀자 시종이 상자째로 가져갔고, 폐하는 손을 쑥 집어넣어 편지를 하나 꺼냈다.

“이 꼬마는 나더러 백 살까지 살라는군. 손주를 보면 이런 기분이려나?”

황제 폐하의 웃음에 황후 폐하도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다.

“어머, 폐하. 급하신 말씀이세요. 하지만 저도 기대가 되네요. 아이들의 말이 하나하나 예쁘기 짝이 없어요.”

“그러게 말이오.”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면서야 내가 지금까지 숨을 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밀리오라 전하도 긴장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자리로 돌아가자 황제 폐하는 웃으며 말했다.

“황자녀들의 선물이 모두 훌륭하다. 그러나 내 생일 선물로 가장 어울리는 것은 밀리오라의 것이다.”

시종이 다시 앞으로 나아와 스크롤을 펼쳤다.

“다음 경연의 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두 번째 경연 과제는 ‘새로이 복속한 아마타의 철광석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할 방안을 마련하라.’입니다.”

황제 폐하 부부가 일어나 나가자 밀리오라 전하가 흥분을 감추느라 입을 막았다.

“끄흡!”

나는 얼얼한 채로 서 있었다.

‘승리라고?’

하지만 폐하께서 밀리오라 전하의 승리를 선언할 때, 나는 그의 시선이 누구를 향했는지 보았다.

그것은 마치 실내를 죽 둘러보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처럼 보였다.

그러나 폐하는 분명 승자라고 말할 때 그레이언 전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카이델 공자를 향해서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듯도 했다.

이 경연의 진짜 승자는 그레이언 전하였다.

“빨리 가자, 뭐 해!”

밀리오라 전하는 내 팔을 잡아끌어 복도로 나가더니 반쯤 방방 뛰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론드 경은 그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덩치를 활용했다.

그가 망토를 잡고 팔을 벌리자 마치 우리 뒤에 장막이 쳐진 것 같았다.

시녀로서는 그녀에게 품위를 지키시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모습이 한편 애잔해 보여서 말을 못 했다.

‘전하. 오늘 진짜 승자는 우리가 아니라고요.’

잠시 후, 밀리오라 전하는 이제는 체통을 지켜야겠다 싶은지 나에게 새침하게 말했다.

“너, 내가 반지 함을 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니? 가자. 애들한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겠어. 오늘 티 파티는 크게 열어야지!”

아, 네, 네.

우리 황족께서는 잘한 것은 다 제 덕분이라고 주장하셨다. 그 기쁨은 티 파티 친구들과 나누시고.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첫 번째 경연에서 승리했는데. 끝이 좋으면 좋은 거다.

나는 중간에 죽을 뻔했지만.

나는 긴장이 풀려 허탈한 기분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론드 경이 괜찮느냐고 묻듯 나를 흘끔 뒤돌아보기에, 나는 그를 향해서 씩 웃어 주었다.

‘뭐, 이쯤 어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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