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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라일리 경매(2) (52/155)


52화. 라일리 경매(2)
2023.04.25.


붉은 눈물.

그 대형 적색 다이아몬드는 오래전 바다 건너 골드란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막 떨어진 선혈처럼 맑고 영롱한 붉은빛은 지금까지의 어떤 보석에 견주어도 독보적이었다.

유일한 흠결이라면 한쪽 모서리에 투명한 내포물이 들어 있다는 점이었는데, 하필 그것은 사람의 심장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골드란 왕은 그것을 눈물과 같은 모양으로 가공하여 목걸이로 만든 다음 어느 여인에게 바쳤다.

‘내 붉은 심장을 줄 테니 나의 후궁이 되어 주시오.’

그녀는 왕의 구애를 받아들였으나 결말은 비극적이었다. 왕비가 그녀를 독살했기 때문이다.

그 후 ‘붉은 눈물’은 골드란 왕비의 손에 들어갔다가 왕이 반역으로 참수되고 왕궁이 불타며 사라졌다. 그것이 사십여 년 전이었다.

이후에 그것은 공해 해적들의 손에 들어가서 주인이 몇 번인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 전에는 제국 본토로 흘러들어 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붉은 눈물’의 모습을 확인한 자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라일리 경매장 단상에 장식되어 있었다.

지금 ‘붉은 눈물’에는 금속 장식 부분에 칼자국과 같은 큰 흠집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 흠집은 보석의 가치를 떨어트리기는커녕, 그것이 세월을 거치며 험난한 운명의 주인공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레이언은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치 작은 태양 같군. 새빨간 태양.”

“네.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황자녀들은 의례적으로 ‘타가르의 작은 태양’이라고 불린다. 로카르드가 그것을 빗대 농담을 하자 그레이언이 코웃음을 쳤다.

경매사가 말했다.

“오늘의 첫 번째 물건 대형 적색 다이아몬드, 전설의 ‘붉은 눈물’의 경매를 시작합니다! 진품 여부는 라일리 경매사에서 보증합니다.”

로카르드가 웃었다.

“저걸 보증하다니, 정말 확신하는 모양인데요.”

“저놈들이 해적들과 거래하는 건 아닌지 추궁해 볼 일이야.”

“어쩌죠? 곧 소용없어질 텐데.”

그레이언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로카르드를 돌아보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붉은 눈물’은 오백만 골드에서 시작해 십만 골드씩 호가합니다. 오백만 골드, 31번. 오백십만 골드, 6번.”

호가는 빠르게 올라갔다. 시작가가 의외로 낮은 것은 금속 장식에 난 치명적인 흠집 때문인 것 같았다.

“오백칠십만 골드, 17번.”

그때 어떤 여자가 말했다.

“칠백만 골드.”

“29번 숙녀께서 칠백만 골드를 부르셨습니다. 그럼 오십만 골드씩 호가합니다. 칠백오십만 골드, 17번. 팔백만 골드, 29번. 팔백오십만 골드 17번…….”

로카르드는 29번 여자를 알아보고 미간을 바짝 좁혔다.

그레이언은 오만상을 쓰며 속삭였다.

“젠장. 내 예산은 천이백만까지야.”

“칼린 앙카르트입니다. 전에 말씀하셨던 아카데미 차석이요.”

“앙카르트가가?”

“천만 골드, 17번 참여하십니까?”

하지만 그레이언은 경매사를 쏘아볼 뿐 번호판을 들지 않았다.

로카르드가 낮게 지껄였다.

“추가 금액은 제가 내겠습니다. 뭐 하세요!”

그러나 그레이언은 번호판을 무릎에 꾹 눌러 놓고 있었다.

로카르드는 그레이언에게서 번호판을 빼앗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닌데!

“지금 실수하시는 겁니다. 전하.”

“29번, ‘붉은 눈물’ 천만 골드 하나, 천만 골드 둘, 천만 골드 셋! 라일리 경매의 첫 번째 물건, 전설의 적다이아몬드 ‘붉은 눈물’은 29번 숙녀께 낙찰되었습니다!”

경매장에는 웅성거림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칼린 앙카르트는 자신이 ‘붉은 눈물’의 주인이 된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우아한 자태로 일어나 손님들을 향해 가볍게 묵례했다.

17번 일행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 그럼 두 번째 경매를 시작합니다. 두 번째 물건은…….”

한편 두 사람은 경매사의 열띤 목소리를 뒤로하고 입찰석을 빠져나왔다.

로카르드는 구석진 곳에서 사납게 속삭였다.

“왜 그러신 겁니까? 그게 없으면 폐하의 탄신일 선물도 없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레이언의 시선은 대금을 치르러 가는 칼린의 뒷모습에 박혀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돈이 없으면 매력으로 메꿔야지.”

“…….”

로카르드는 그레이언의 계획이 제발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미 ‘붉은 눈물’을 인수한 칼린이 호위 기사를 대동하여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로카르드는 굳은 얼굴로 한 발 앞으로 나섰고, 칼린은 호위 기사를 멀찍이 남겨 두고 다가와 웃었다.

“카이델 공자님이신 줄 알아뵈었어요. 방학인데 이런 데서 만나 뵙게 될 줄 몰랐어요.”

“앙카르트 양.”

“죄송하게도 ‘붉은 눈물’은 제가 낙찰받았어요. 마음 상하지 않으셨기를 바라요.”

“상했습니다. 마음.”

칼린은 뜻밖의 대답에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매우 고상한 자태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런 것에라도 공자님을 이겨 보아서 기쁜 것도 사실이에요.”

그때 그레이언이 앞으로 나아왔다.

“앙카르트.”

로카르드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으나,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나직이 소개했다.

“그레이언 2황자 전하십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예는 생략하시죠.”

“그레이언 황자 전하!”

칼린은 놀라 속삭이며 머리만 숙였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던 로카르드는 그녀가 처음부터 그레이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레이언은 유쾌하게 말했다.

“‘붉은 눈물’은 내가 입찰한 것이었어.”

“부디 칼린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전하, 용서하세요. 그런 것도 모르고…….”

“나인 줄 알았다면 입찰을 포기했을까?”

“…….”

칼린은 당혹하여 발그레해진 얼굴로 후드 속 그레이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꼭 남자에게 반한 여자 같았다.

그러나 대답은 단호했다.

“아닙니다.”

“호오.”

“송구하오나 저는 저희 앙카르트가에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를 만들어 두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명성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앙카르트 자작이 상업으로 일가를 이루어 ‘붉은 눈물’마저 소유했다는?”

그것은 야망과 욕망이 공존하는 이야기였다. 앙카르트가의 부가 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이라고 하나, 한미한 지방 자작가라는 한계는 명확했다.

그러나 앙카르트 자작은, 혹은 칼린 앙카르트는 그 한계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정확하십니다.”

“천백만 골드를 줄 테니 그것을 내게 넘기는 것은 어떤가.”

로카르드는 칼린의 눈이 보석처럼 빛을 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언젠가는 그녀와 황궁에서 마주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실력이면 장차 아카데미 우수 졸업생 자격으로 황족의 시종이나 학술원 연구관 자리를 노리는 데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까지 오래 기다릴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일전에 도서관에서 그레이언에게 관심을 나타냈을 때 그것을 눈치챘지만, 하필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그래서 그녀에게 깃든 빛은 그를 몹시 거슬리게 했다.

칼린은 대답했다.

“전하께서 거래를 제안하셨으니 저 또한 조건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황족의 요구에 거래라니.

그녀의 과단성 혹은 무모함은 그레이언의 입가를 살짝 굳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말해 봐.”

“카이델 공자님께서는 아카데미 학업 중에 계심에도 황족의 시종 역할을 훌륭히 하고 계십니다. 그에 힘입어 저도 감히 거기 도전해 볼까 합니다.”

그녀는 그레이언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저를 황자 전하의 시녀로 삼아 주시겠습니까?”

로카르드는 후드 아래로 보이는 그레이언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이 도발적인 여인을 지금 받아들일 것인가?

그레이언이 말했다.

“지금은 경연 중이라 새 시종은 들일 수 없어. 거절할 수밖에 없으니 돈으로 지불하지, 앙카르트.”

“죄송합니다. 전하.”

칼린의 차분한 대답에 두 사람은 귀를 의심했다.

“그것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서 거래에 응할 수 없겠습니다. ‘붉은 눈물’은 앙카르트가에서 보유하겠습니다.”

“……!”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황자 전하. 타가르에 영원한 광영을.”

칼린이 호위 기사와 함께 사라질 때까지, 두 남자는 침묵 속에 서 있었다.

그레이언이 헛기침을 하고 중얼거렸다.

“전에 널 의심한 걸 사과하겠다. 로카르드.”

로카르드가 칼린의 접근을 거절했다고 했을 때, 그레이언은 그의 충성심을 의심했었다.

제가 이겨 먹을 만만한 자들만 그의 앞에 데려오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로카르드는 지금 다른 이유로 화가 나 있었다.

“왜 거절하셨습니까! 이번 일에는 그 보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약점이 생기는 걸 꺼리시는 것은 알지만, 이번만은…….”

“아마타 족장의 집.”

그것은 로카르드가 툰바르산맥에서 했던 일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축에 드는 기억이었다.

그레이언이 그것을 원하다니.

로카르드는 침음을 흘리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전하아!”

그러나 그레이언은 빙긋 웃었다.

“돌아가자. 로카르드.”

* * *

나는 며칠간 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보육원에서 보육원으로 돌아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밤이 되어 론드 경과 여관에 들어가면 시끄럽게 떠들던 손님들이 그의 덩치를 보고 조용해졌는데, 그럴 때마다 꽤 그럴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삼십여 개의 보육원을 돌며 황녀 전하의 반지 대금을 기부했다. 금액 일부로는 음식과 옷을 직접 보육원에 배달시켰다.

모름지기 선물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손으로 쥐어 보아야 배가 더 부른 법이기 때문이다.

수도 시내에 있는 보육원 몇 개에 기부금을 몰아주면 편했겠지만, 그러면 일을 편하게 처리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목적과도 맞지 않았다.

론드 경은 나를 묵묵히 따라 주었다. 별말도, 행동도 없는데 곁에 있는 것만도 보호받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그 긴 여정 끝에 황궁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우리는 바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황녀 전하의 응접실에 나갔을 땐 타르간지를 함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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