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카이델 공자를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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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카이델 공자를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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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카이델 공자를 데려와
2023.04.21.
영애들의 합창 후에 한 영애가 신나게 대답했다.
“선물은 곧 보석이죠! 전하의 내탕금으로 가능한 한 가장 큰 보석을 구매하는 거예요. 곧 라일리 경매가 열린대요!”
“그 라일리 경매가요?”
“하지만 폐하께서는 이미 좋은 보석을 많이 갖고 계실 텐데…….”
“그러니 특별한 걸로 골라야죠!”
밀리오라 전하는 티 파티 멤버들과 경연 문제를 논의하는 중이었다. 바로 시녀인 나와 해야 할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바보 같아서 내가 오히려 걱정해 주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라일리 경매는 초대받은 귀족들만 참가하는 비밀 경매였다.
희소성 높은 특별한 물건이 있을 때만 비정기적으로 열리다 보니 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거래도 이뤄졌다.
하지만 중년 남성인 폐하의 탄신일 선물로 보석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황녀 전하도 그렇게 생각하는 새침하게 말했다.
“폐하께 청혼이라도 하게?”
그 한마디로 분위기는 싸해졌다.
케릴은 황녀 전하의 눈치를 보며 영애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맞아요. 폐하께는 황후 폐하라는 보석이 이미 있으시니까요. 그렇죠?”
“그럼요. 케릴 양의 말이 옳아요.”
영애들은 한껏 호응했다. 나는 그 모습이 측은하지도 않았다.
이 영애들은 밀리오라 전하와 황후 폐하 사이를 알고 저러는지 모르고 저러는지.
그래도 황녀 전하는 용케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더 생각해 봐. 폐하께서 물질이 부족해서 그런 문제를 내지는 않으셨을 거 아니겠어?”
“그럼요. 당연해요!”
케릴이 대꾸하자 다른 영애가 말했다.
“그런데 라일리 경매에 ‘붉은 눈물’이 나온다면서요?”
“그 유명한 붉은 다이아몬드 말씀이세요? 그건 수십 년 전 해적들 손에 들어간 이후 사라진 게 아니었나요?”
“네! 그거요. 저도 전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번 경매에 나온다지 뭐예요.”
“정말 구경하고 싶네요.”
“카탈로그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야겠어요. 저희 어머님이 라일리 경매 회원이시거든요.”
“어머, 부러워라! 그런데 그게 낙찰이 될까요? 가격이 엄청날 텐데. 저희 어머님께도 경매에 참여하자고 졸라 봐야겠어요.”
“저도 그래 볼까요?”
“거기서도 마카롱이 나오면 좋겠네요. 경매 전 다과회는 당연히 열리겠죠?”
“당연하죠! 라일리 경매잖아요.”
나는 영애들의 신난 모습이 괜히 민망해서 황녀 전하의 눈치를 보았는데, 마침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도 이 대화가 민망해 내 눈치를 본 것이다.
나는 얼른 눈을 피했다.
이들은 늘 즐겁고 유쾌한 티 파티 멤버들이었고, 황녀 전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경연이라는 중대사의 논의를 맡기기에 이들은 지나치게 산만했고, 자신의 흥미에만 관심이 있었다.
황녀 전하도 그걸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자신의 미래를 이들에게 맡길 정도로 내가 싫다니.
황녀 전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눈치였음에도 차근차근 말했다.
“폐하께서는 부족하신 게 없어. 그러니 더 어려운 문제인 거야. 오늘 돌아가서 각자 생각해 보고 내일 이어서 얘기하자. 어때?”
“네, 황녀 전하. 좋은 생각이세요!”
“오늘 밤을 꼬박 새워 생각해 볼게요! 잠 깨는 차를 마시면서요.”
그들의 대답은 기운찼고, 내일도 별 묘안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런데 밀리오라 전하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들이 좋은 생각을 해내면 내가 여기 특별한 손님을 데려올지도 몰라. 로카르드 공자가 아카데미 방학을 맞아 황궁에 머무르고 있잖아?”
나는 순간 머리털이 서는 것 같았다.
‘……전하?’
“꺄악! 카이델 공자님을 초대하시게요?”
영애들이 비명을 지르자 밀리오라 전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의 일정은 아직 확인하지 않았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이건 그대들이 좋은 답안을 가져왔을 때의 이야기야.”
“그럼요! 오늘은 한잠도 자지 않을 거예요!”
“꺄아, 역시 밀리오라 황녀 전하가 최고셔!”
영애들은 즐겁게 물러갔다. 카이델 공자라는 말에 흥분한 그녀들은 마치 봄날의 소란스러운 병아리 떼 같았다.
그들이 나가는 동안 밀리오라 전하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할 수 있지?”
“…….”
나는 밀리오라 전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눈만 깜빡거렸다.
‘뭐를요?’
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로카르드 공자와 꽤 친근한 사이잖아. 그러니 그를 내 티 파티에 데려오는 정도는 문제없겠지?”
나는 놀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삐죽 커졌다.
“제가요?”
“주군이 하사한 시종의 메달을 네게 양보할 정도면, 친근하다는 말도 과소평가지. 안 그래?”
그거구나.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시종 임명식의 일로 나와 그의 친분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속으로는 나를 그레이언 전하의 첩자 내지는 배신자로 여기는지도 몰랐다!
돌아 버릴 것 같은 기분인데 카이델 공자를 욕할 수도 없었다.
얼른 그에게 은혜를 갚은 다음, 다시 예전의 부담 없는 관계로 돌아가 쌍욕을 퍼붓고 싶었다.
‘카이델 공자님. 나는 그쪽에게 할 말이 참 많아!’
밀리오라 전하는 확인 사살을 하듯 물었다.
“대답 안 해, 시녀?”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대답했다.
“황녀 전하.”
“말해.”
울분이 담긴 내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다 못해 근엄할 정도였다.
“저는 카이델 공자님과 친근하지 않습니다.”
황녀 전하의 고운 눈썹이 살짝 삐뚤어졌다.
그녀는 자기 생각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내가 워낙 강경하게 말하자 확신이 흔들리는 표정이었다.
“원하신다면 2황자궁에 요청을 넣어 보겠습니다만, 2황자 전하의 시종인 카이델 공자님 입장에서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그걸 누가 몰라? 그러니까 친분 있는 네게 명령하는 거잖니?”
“말씀드렸지만 거기에 제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그런데도 너는 가슴에 그의 메달을 달고 있고?”
나는 로카르드 카이델 공자와 밀리오라 황녀 전하, 두 사람의 협공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전하께서 제 메달을 주셨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에요.”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황녀 전하는 발끈하여 의자 손잡이를 붙잡으며 상체를 폈다.
하지만 카이델 공자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라니, 나도 지금은 물러서기 곤란했다.
“제 메달을 주시면 이 메달을 카이델 공자님께 돌려주고 오겠습니다, 전하. 그럼 문제가 깨끗이 해결돼요. 앞으로 그분과 엮이는 일은 없을 거예요.”
“돌려주러 간 김에 그를 내 티 파티에 데려오겠다는 뜻이니? 내 문제는 그건데.”
어쩌지. 황녀 전하를 한 대 때려 주고 싶다.
나는 최대한 숨을 참아 흥분을 억눌렀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밀리오라 전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어나더니 책상 서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테이블 끝으로 밀었다.
나는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 열었다.
거기에는 황녀 전하가 내게 달아 주었어야 할 시종의 메달이 들어 있었다.
하아…….
밀리오라 전하는 샐쭉 웃더니 나를 외면했다.
나는 상자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이제부터 메달을 카이델 공자에게 돌려주러 가야 했다.
말이 쉽지.
오늘따라 하늘이 너무 높았다.
* * *
밀리오라의 오만한 비웃음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시녀가 나가자, 밀리오라 타가르는 소파에서 힘겨운 듯 몸을 돌려 옆머리를 등받이에 기댔다.
울적함과 외로움, 그리고 열패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아까 저 오만방자한 사생아가 나를 얼마나 멸시했을까…….’
경연이라니, 미친 짓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황후의 강력한 비호를 받는 장남의 위치도, 새끼 사자를 얻어 날개를 단 것 같은 차남의 용기도, 그녀에게는 남의 이야기였다.
긴 대륙의 역사에서 제국이 툰바르산맥에서 승전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제국이 아마타전을 결정했을 때, 그 지휘관은 전사자 아니면 패전 장수로 운명 지어진 터였다.
그러나 그레이언은 오를 대신 전쟁에 나가라는 명령에 단 한마디도 불평을 뱉지 않았다.
그는 다만 부황 앞에 나아가 광기가 맴도는 눈으로 요구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황태자를 결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그가 군대를 이끌고 툰바르산맥으로 떠나기 전 걸었던 유일한 조건이었다.
이제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장남의 그늘에서 조용히 생존을 도모하던 2황자가 아니었다. 어엿한 제국의 수호자였다.
제 모든 것을 걸고 형과 황태자 위를 경쟁할 자격을 쟁취한 것이다.
황제가 일찍이 황태자를 결정하지 않은 이유는 황제 자신의 과거사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그가 황태자였던 어린 시절, 힘 있는 귀족들은 어린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물밑에서 끔찍한 경쟁을 벌였다.
그 경쟁에서 밀려난 자들은 다른 황자녀의 곁으로 흩어져 각기 세력을 도모했다.
노회한 귀족들의 영향력 속에서 황자녀들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제가 귀족들의 체스 말 노릇을 하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팽팽한 경쟁 구도는 거대한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것이 선대 황가의 역사였다.
황제는 제 자식들이 오롯이 제힘으로 경쟁하기를 바랐으며, 과거 그가 일으킨 잔인한 숙청을 지켜본 귀족들은 함부로 황자녀의 곁에 접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황제는 그가 인위적으로 유지하던 황가의 평화를 단번에 깨트려 버렸다. 경연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들은 이제 원형 경기장에 몰아넣어졌다.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그레이언과 언제나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었던 오를. 그 둘이 모든 걸 건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제가 그 사이에 끼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