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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로카르드의 행운의 여신 (24/155)


24화. 로카르드의 행운의 여신
2023.03.28.


“윽!”

카이델 공자가 나를 흘끔 보기에, 나도 그를 흘끔 째려보았다.

‘사람 납치해서 이런 거나 보게 하고!’

그러자 그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동안 실장님은 유리 단지를 살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꿈틀거리던 기생충은 곧 움직임을 멈추고 아래로 가라앉았다.

“……된 겁니까?”

카이델 공자의 물음에 실장님이 미소를 지었다.

“툰바르에는 안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탈수증에 좋은 오향초를 넣으면 어떨까요? 설사는 몸에 무리를 많이 주잖아요.”

“오! 좋은 생각이에요.”

실장님은 내 제안이 반가운 듯 오향초를 찾아 선반을 뒤졌다.

그런데 카이델 공자가 내 앞에 섰다. 마치 실장님을 가리는 듯한 몸짓이었다.

“……가라고요?”

그는 천천히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딱 재미있을 순간에 내쫓으니 은근히 부아가 났다.

하지만 카이델 공자의 판단이 옳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가 딱 적당했다.

나는 기록도 남기지 않고 그림자처럼 입궁한 주제에 황가 서고까지 뒤졌다. 오늘 밤 내 존재가 2황자 전하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졸리고 피곤하긴 했지만, 하룻밤의 모험으로는 퍽 즐거웠던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보람도 있었고.

카이델 공자는 황궁의 사용인 출입구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나는 헤어지기 전에 그를 한 번 더 괴롭혀 주기로 했다.

“이 사생아는 이만 물러갑니다. 이제 그분을 구한 공로는 공자님 혼자 꿀꺽하실 수 있겠네요?”

“…….”

키득 웃으며 뻐근한 목을 펴자 뿌옇게 밝아 오는 새벽하늘이 보였다.

대답이 없어 돌아보니 카이델 공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방법이니, 만약 잘못되면 당신 목이라도 붙여 놓으려고요. 원하는 대로 가련하게 여기는 중인데, 불만 있습니까?”

이 인간, 잠투정이 있는 것 같았다. 하룻밤 새웠다고 까칠해져서는…….

그가 정색을 하는 바람에 나는 입을 다물고 후드를 깊이 당겨 썼다. 아마 그는 자신의 도덕성은 농담의 소재로 삼지 않는 인간인 모양이었다.

“이걸로 마차 꺼내 주신 빚은 갚은 거예요?”

그가 끄덕였다.

“다른 걱정은 마시고요.”

나는 내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시늉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침 새벽 거리를 지나는 첫 번째 대여 마차가 있었다.

* * *

해가 졌을 때쯤, 2황자궁 침소의 두 남자는 기진맥진하여 늘어져 있었다.

2황자 그레이언은 종일 계속된 구토와 설사로 탈진하여, 로카르드 카이델은 그의 등을 두들기며 욕설과 저주를 들어 내느라.

그들에게 정복당한 아마타족의 옛날 저주처럼 그를 괴롭히던 기생충 감염증은 그렇게 비천한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그것은 둘이 죽을 때까지 입 밖에 내지 않을 비밀이었다. 그 끔찍한 냄새와 토사물 속 벌레의 시체는 말이다.

그들이 아마타족의 땅을 외부 세력으로부터 오랫동안 보호했던 괴질의 정체와 대응책을 알게 된 것은 소득이라면 소득이었지만.

다음 날 정신을 차린 그레이언은, 남은 흙물을 가리키며 로카르드에게 물었다.

“저런 걸 어디서 가져온 거야?”

“로이만 실장이 조제했고……, 행운의 여신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입이 몹시 더러운 여신의 도움이.

그레이언은 힘겨운 가운데 눈살을 더 찌푸렸다.

“행운의 여신?”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병자만큼 지친 로카르드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아카데미요.”

로카르드는 다시 한번 주군을 위기에서 구해 낸 흥분감과 밤을 새운 피로 속에 묘한 열감을 느끼며 걸었다.

저절로 로리샤가 떠올랐다. 그는 그녀가 말끝마다 사생아라고 지껄이는 게 싫었다. 어떨 땐 그 말이 마치 자신의 반응을 시험하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제브론 해변에서 그레이언의 반응을 떠올리고서, 그는 로리샤의 태도를 일면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마 평생 그러한 배제와 차별을 겪으며 그런 식의 자기방어가 몸에 밴 것이다.

그는 아까 지금 전하가 멀쩡하신 것이 그 사생아 로리샤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은 아껴 두기로 했다.

언젠가 그녀를 그의 앞에 드러내고 싶을 때가 오면, 오늘의 공적으로 그녀를 장식해 주는 편이 나았다.

그레이언은 며칠간 수분을 공급하고 영양을 보충한 다음 기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사냥회에 나가 여우 세 마리를 잡아 황제에게 바쳤다.

1황자 오를은 하인들이 그의 앞으로 몰아준 것 한 마리였다.

* * *

백작저의 모든 것은 예전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미샤도 즐겁게 아카데미로 돌아갔지만, 백작 부인은 웃음을 잃었다.

미샤의 파티에서, 그녀는 미샤가 축사를 하는 동안 근처에 선 생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어머. 저거 유명한 연설문 아니야? 지금 저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러겠죠……? 성적 봤잖아요. 미응시랑 별로 차이도 없는 꼴찌.’

‘저는 정말 속이 상한다고요. 지금까지 세 번째 사자님을 동경해 왔는데 따님이 저래서야……. 성적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출교는 면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

충격을 받은 백작 부인은 그길로 내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급한 일이 있는 척 하인을 보내 미샤의 축사를 끊자, 백작이 이어서 손님들을 위해 환영사를 했다.

백작의 환영사는 제국 아카데미 생도들이 꿈꾸던 세 번째 사자의 모습대로였고, 미샤의 실패는 그렇게 잊혔다.

그러나 백작 부인은 며칠을 앓아누웠다.

그녀는 몸과 정신을 회복한 다음, 아카데미로 찾아가 학사 실장을 만났다.

학사 실장은 미샤가 그동안 치른 시험지를 그녀 앞에 죽 나열한 다음 설명했다.

“첫 번째 시험 후에 백작님께 연락을 드려 로아르 양의 성적에 대해 상의하였습니다. 혹시나 저희 학사 정책에 오해를 갖지나 않으실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백작은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니, 백작 부인은 남편에게 격렬한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표정을 훌륭하게 유지했다.

“그러나 백작님께서는 너그럽게 양해하시고 로아르 양의 교육을 저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녀는 학사 실장의 속뜻을 이해했다.

‘백작님도 수긍하신 일이니 더 이상 당신 딸의 성적으로 따지지 마시오.’

그녀는 그래서 더욱 분노했다. 아버지로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알았다면 격하게 항의했었어야지,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었는지!

자기 친딸의 일인데, 미샤는 로아르가의 적녀인데!

학사 실장은 백작 부인의 노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로아르 양의 성적이 지난 시험에서 다소 올랐습니다만, 마지막 시험에서 중상위권으로 올라서지 못하면…….”

“못 하면요?”

“출교 조치 됩니다. 퇴학과는 다르며, 향후 입학시험 재응시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조치입니다, 백작 부인.”

“……하!”

“제국 아카데미는 황제 폐하를 보좌하여 제국의 미래를 이끌 정예 인재를 위한 교육 기관입니다. 아카데미 학사 규율의 엄격함은 유구한 전통임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게 해 주실 말이 그것뿐인가요?”

그것뿐이었다.

“부디 마지막 시험에서 로아르 양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학사 실장은 미샤 로아르에 대해 아무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

1학기 성적으로 출교 조치하는 규정이 생긴 것은 정확히 미샤 로아르 같은 생도들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출신 가정 교사나 유능한 가정 교사들의 도움으로 기출문제 모범 답안을 달달 외워 입학한 생도 가운데는 입학 후 아카데미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오직 졸업장만을 원하여 대충 생활하며 분위기를 흐리는 생도도 드물지 않았다. 생도들이 유력 귀족의 자제들이라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을 시작 단계에서 걸러 낼 수 있도록 제도가 개편된 것이 수년 전이었다. 제국 아카데미는 오직 최고를 배출하는 교육기관이어야 했다.

학사 실장은 그 체계를 꾸린 장본인이 바로 로아르 백작임을 백작 부인이 모르고 있거나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당혹스러운 학부모를 상대하는 것이 그의 직무였기에, 그는 백작 부인을 최대한 진지하게 대하려 애썼다.

백작 부인은 끈질기게 말했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예요. 방법은 늘 있으니까요.”

학사 실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방법은 명확합니다. 미샤 양이 기말고사에서 성적을 세 배 올리는 겁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내 딸이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백작 부인은 울컥 화를 내려는 자신을 꾹 억눌렀다. 자식의 일에서 약자가 되는 것은 그녀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그녀는 무릎에 놓아둔 백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책상 위로 밀었다. 귀부인들이 백에 넣은 담배를 꺼내는 것과 같은 동작이었다.

백작 부인이 태연한 얼굴을 하는 동안, 학사 실장은 그 안에 든 작은 금괴를 확인했다.

학사 실장은 상자를 그대로 닫아 다시 그녀 앞으로 밀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백작 부인. 제가 돌아왔을 땐 먼저 귀가하셨기를 바랍니다. 잊으신 물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학사 실장이 자신의 방을 비운 후, 백작 부인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모욕감과 처참한 기분을 감당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식을 저당 잡힌 탓에 이런 취급을 씹어 삼켜야 한다는 사실에 참기 힘든 분노가 치솟았다.

백작 부인은 곧장 금괴를 챙겨 마차에 올랐다.

백작 부인이 아카데미를 방문했다는 소리에 학사 사무실로 향하던 미샤는 그녀를 놓치고 마차로 달려갔다.

“엄마! 나도 안 보고 가려고 그랬어요?”

“타거라.”

백작 부인의 싸늘한 명령에도, 미샤는 웃으며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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