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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엄마의 비밀 (7/155)


7화. 엄마의 비밀
2023.03.11.


이년이 진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얌전히 지 시험이나 챙길 것이지, 나를 왜 쳐다보고 난리야!

“너……, 백지 냈지?”

나는 멈추었던 숨을 겨우 내뱉었다.

내가 시선을 피하자 미샤는 아예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아주 이제 내가 자기 친구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달래듯 말했다.

“미샤, 이런 얘긴 아무한테도 안 하는 게 좋겠어.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뻔뻔해도 0점은 부끄러워서 말이…….”

“엄마 때문이었어? 엄마 때문이었지? 아니라고 안 해도 돼. 난 다 아니까. 엄마가 널 그냥 두셨을 리가 없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미샤 너라도 붙으라고 응원했던 내 입을 다시 쥐어 패고 싶었다.

미샤는 내 표정으로 대답은 충분하다는 듯이 몸을 물렸다.

이 모지리 입을 어떻게 막지, 생각하는데 미샤가 조곤조곤 말했다.

“네가 아카데미에 얼마나 들어가고 싶어 했는지 나도 알아. 기숙사에 가서 이 집에서 나가고 싶어서 그랬지?”

“…….”

미샤의 해맑은 눈빛을 보니 어쩐지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내가 하는 고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깨끗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렇다, 이년아. 알면 좀 보내 주지 그랬냐.

“엄마가 한 일에 나는 아무 책임 없어.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나는 알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미안하니까 선물을 하나 줄게.”

야, 이……. 나도 미안하니까 네 머리채를 좀 잡으면 싶은데, 미샤.

나는 속에서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무엇을 삼키느라 입을 꾹 다물었지만, 미샤는 지금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내게 몸을 기울여 귓가에 속삭였다.

“너희 엄마가 매년 여기로 편지를 보냈어.”

“……!”

아마 그 순간 내 눈동자는 잘게 부서지듯 흔들렸을 것이다. 엄마. 편지. 내 마음 귀퉁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샤는 문을 흘끔거리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네가 이 집에 오기 몇 년 전부터 너희 엄마가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걸 우리 엄마가 다 태워 버렸어.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몰라.”

내 심장은 나무에서 떨어진 새처럼 발딱대고 있었다.

미샤는 말했다.

“아버지가 너희 엄마 찾으려고 고용한 사람들도 엄마가 웃돈을 주고 찾는 데 실패했다고 거짓말하게 시켰어. 알겠지만 우리 외가가 상업 쪽으로 연줄이 다 뻗쳐 있잖아? 용병단이나 그런 데도 다.”

“…….”

“그런데도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찾아내셨는지 신기하단 말이야? 내가 이 말을 해 주는 이유는, 아버지가 너를 일부러 모르는 척했던 게 아니었다고 알려 주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너 아버지한테 데면데면하게 구는 거, 아버지도 은근히 속상해하시는 것 같고……. 이거 비밀인 것 알지?”

미샤는 발딱 일어나 이렇게 말하고 나갔다.

“이제 나는 제국 아카데미 학생이야. 앞으로 너와 마주칠 일은 없을 테니……. 우리 지긋지긋한 인연이 드디어 끝났다는 기념으로 알려 주는 거야.”

나는 천천히 소파로 늘어져 천장을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저 재수탱이가 아주 끝까지…….”

백작님이 툰바르산에 살던 나에게 뒤늦게 찾아온 이유가 머릿속에 한꺼번에 그려졌다.

엄마는 나를 계속 그런 환경에서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마 내가 맞아서 피를 흘리며 돌아오고 욕쟁이가 되어 갈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자신이 언제 나만 남겨 놓고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도 두려웠겠지. 툰바르산은 사람을 싫어하기로 유명했다. 곧잘 사람을 잡아먹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위험을 감수하고 백작님에게 연락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엄마는 몇 년을 그렇게 하다가 포기했다.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이제는 더 찾지 않겠노라고, 절연의 표시로 꽃과 리본을 보냈다.

메모 한 장 없이, 지니고 있던 백작님의 유일한 선물만을.

이별의 꽃다발은 발신인이 적힌 편지가 아니었기에 백작 부인을 무사히 통과해 백작님의 손에 들어갔다. 백작님은 십 년이나 지난 그 선물을 바로 알아보았고.

하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너무 늦은 후였다.

엄마는 백작님에게 매해 다시 버림받으며 얼마나 서러웠을까.

백작님이 편지를 한 통이라도 받았다면, 우리 엄마는 지금도 살아 있었을까……?

나는 7년 만에 엉엉 울었다.

모두 내가 시험에 떨어져서 그런다고 생각할 테니, 내 서러움을 변명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 * *

제국 아카데미 입학시험 결과 통보서는 카이델 공작저에도 도착했다. 그곳에만큼은 배달부가 아니라 아카데미 직원이 직접 가져왔다.

로카르드 카이델은 소파에서 결과 통보서를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수석이라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최고점은 다른 학생입니다. 그 학생이 미응시한 음악 실기 점수를 포함하더라도요.”

“그게 누군데요?”

“라보리 시하입니다.”

“이상한 이름이군요.”

곁에 선 카이델 공작이 물었다.

“귀족 명부에 ‘시하’라는 가문은 없는데, 평민인가?”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직원은 공작에게 민망한 듯 말했다.

“그 문제로 내부에서 논의가 있었습니다. 라보리 시하가 나타나더라도 응시자 명단에 없는 것을 근거로 성적을 불인정하기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수석은 카이델 공자님으로 발표될 겁니다.”

“그렇군. 고맙소.”

직원이 돌아가자, 로카르드는 찜찜한 얼굴로 결과 통보서를 펄럭거렸다.

“제가 수석 할 줄 알았거든요. 문제가 쉬워서.”

“미응시 과목을 포함해도 네가 졌다는데?”

“저도 바이올린 켜다가 줄이 끊어졌어요. 그동안 검만 잡느라 힘 조절이 안 되어서요.”

드러내지는 않지만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듯한 아들의 모습에, 공작은 낮게 웃었다.

“아카데미 측에서 후환이 없게 입장을 정리했으니 되었다. 저쪽에서도 만약을 생각해 선의로 알려 주는 거니 마음에 두지 말거라.”

“네, 아버님. 그런데, 아카데미가 제게 유용할까요? 순서가 좀 안 맞잖아요.”

명문가 자제들은 아카데미를 거쳐 자신의 명운을 걸 주인이나 파벌을 결정짓는 일이 많다.

곧, 로카르드 카이델이 했던 것처럼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는 것은 졸업 후에나 거치는 엘리트 경로였다.

그런데 로카르드는 과정을 이미 뛰어넘어 참전부터 해 버렸으니, 오히려 아카데미가 시간 낭비처럼 여겨지는 것도 당연했다.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카데미에서는 네 입학을 고대하고 있다. 너처럼 어린 나이에 전공을 세운 생도를 받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로카르드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카데미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잘 살펴서 그 열매를 거둬 들여라. 아비의 첫 번째 사자의 이름을 이어받도록.”

“그건 이미 한걸요.”

“로카르드!”

공작은 엄한 얼굴로 아들을 나무랐다. 그러나 로카르드는 헤쭉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

하지만 공작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선택을 이미 알았고, 지지했기 때문이다.

혈기 방장하여 자신감에 넘치는 아들이 입조심만 좀 더 한다면.

하기는 2황자 그레이언이 전장에서 로카르드를 ‘타가르의 새끼 사자’라고 부른 일화는 이미 세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2황자 그레이언 타가르. 그는 얼마 전 제국의 승리로 끝난 아마타전에서 로카르드에게 목숨을 빚졌다.

강력한 가문의 차기 수장이 될 자라면 황제에게 선택받는 것으로 가문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가문의 운명을 걸 황제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은 더 신뢰할 만한 생존 방법이었다.

* * *

미샤는 아카데미 기숙사에 입소할 때 입을 옷과 신발 등을 완전히 새것으로만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영애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요!’라는 말은 마법처럼 백작 부인을 움직여 상인들을 저택에 불러들이게 했다. 그들로 인해 백작저는 꽤 어수선했다.

나는 그 소음을 별생각 없이 듣고 있었다. 시내에서 사 온 연애 소설을 읽고 뒹굴거리거나 군것질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갔다.

먹고 자고 하니까 세상 편하고 즐겁긴 한데, 한편으로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그러지 말자고 해도 자꾸만 말이다. 젠장.

“로리샤. 내가 방해했니?”

“백작님!”

방에 불쑥 찾아온 백작님은 내 뺨에 묻힌 과자 가루를 못 본 척해 주었다.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동행하자꾸나.”

“…….”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백작님은 굳이 ‘여행’이라고 불렀지만 그가 백작저를 비우는 것은 거의 황명으로 인한 출장이었다. 그러니 미샤도 아니고 사생아 딸을 데리고 갈 만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백작님과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가는 내 양심이 찌부러져 터져 버릴지도 몰랐다.

내가 망설이자 백작님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사생아라는 사실이 너에게 강력한 추진력을 준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와 있을 땐 그걸 좀 내려놓으려무나. 그럴 줄도 알아야 해.”

“…….”

내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어디로 가시느냐고 어색하게 묻고는 준비하겠다고 했다.

목적지가 남부 끝의 아름다운 바닷가라고 하는 걸 보니 백작님이 나를 기만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위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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