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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아카데미 입학 시험 (6/155)


6화. 아카데미 입학 시험
2023.03.10.


제국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수도 시내의 아카데미 별관에서 치러졌다. 아카데미 본 건물은 황족들이 등교하기 편하도록 황궁 근처에 있었고, 별관은 주로 공개적인 행사가 있을 때 사용되었다.

백작님은 나와 미샤를 마차로 그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씻어도 짚단처럼 푸석한 얼굴이었는데, 미샤의 피부는 반대로 빛나고 있었다.

설마 어제도 마사지를 받았나 생각했다가, 어제니까 마사지를 받았어야지 싶었다. 시험장 앞에 줄지어 선 고급 마차들을 보니 말이다.

나는 나쁜 짓을 하려니 말수가 저절로 없어졌다. 굳은 얼굴로 마차에서 내려, 미샤가 백작님에게 ‘꼭 1등하고 올게요’ 따위의 애교를 떠는 동안 옆에 서 있기만 했다.

응시생들의 풍경은 비슷비슷했다. 어떤 가문 사람들은 비장했고, 어떤 가문 사람들은 응원으로 떠들썩했다.

나는 개중 특히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검을 찬 남자들이 많아서 저절로 눈길이 갔다.

불을 뿜는 독수리 문장을 단 고급 마차는 카이델 공작가의 것이었다. 오늘 카이델 공작가의 누군가도 응시하는 거다. 나는 귀족들의 얼굴은 몰라도 제국 주요 가문의 문장은 다 외우고 있었다.

그 마차 앞에 선 사람이 제국의 첫 번째 사자 카이델 공작님이 분명했다.

강건한 체구에 검은 머리카락, 턱선을 따라 기른 얕은 수염. 미중년이라는 단어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응시자로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돌려 아카데미 별관 건물을 한눈에 담아 보았다. 밋밋한 연갈색 담이 드높아 얼핏 요새를 떠올리게 했다.

외부는 높다란 벽으로 단단하게 둘러싸고, 내부 공간을 세밀하고 복잡하게 구성하는 초기 제국 양식의 건물이었다.

나도 모르게 백작님의 눈을 피해 몰래 빠져나갈 동선을 그려 보고 있는데 소집 종이 울렸다. 그러자 미샤가 얼른 따라오지 않고 뭘 하느냐는 듯이 나를 흘겨보았다.

저택 밖에서 자기에게 아는 척하지 말라고 못을 박은 건 저이면서. 물론 나도 그편이 편했다.

나는 미샤가 백작 부인이 내게 한 요구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백작 부인이 미샤를 맹렬하게 보호하는 건 흐뭇한 모습이었다.

우리 엄마도 나한테 저렇게 해 줬는데. 나는 그래서 행복했고.

내가 불행하다고 남의 행복을 까 내려서는 안 된다. 내가 사생아인 것이 내 죄가 아닌 것처럼, 미샤가 소화도 못 할 만큼 많은 걸 가진 건 그녀의 죄가 아니니까.

인생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니까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넓어졌다.

나는 무지하며 행복한 미샤의 뒤를 멀찍이 따라 입구로 향했다. 마침 백작님의 시야를 가리는 딱 좋은 위치에 마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저기서 방향을 틀면…….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돌아보니 백작님이었다.

백작님은 아무 말도 없이 설핏 웃기만 했다. 시험 잘 봐라, 꼭 붙어라, 그런 말도 없이.

그런데도 나는 무슨 대답이라도 하듯이 저절로 그를 향해 끄덕인 다음 묵직한 느낌의 문주 아래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뚝 멈추었다.

짙은 갈색 벽돌담 내부는 커다란 중앙 홀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조밀한 공간들이 휘감듯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곳은 드높은 울타리 안에서야 전체 조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핏 보면 복잡하고 빽빽한 듯하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세세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사람을 내부로 빨아들이는 듯했다.

외부 행사용이라는 이 건물이 이렇듯 개방감을 포기한 것에는 오만한 의도가 깃들어 있었다. 이 건물에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한다는 전제가 말이다.

나는 내가 이 예스러운 건물의 정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을 알았다. 이곳은 이 사생아 로리샤가 태어나서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영광이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보니 저쪽에서 미샤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도도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태어나서부터 훈련받은 것이었다. 그 애가 새삼 낯설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몇 걸음 뒤로 움직여 다른 응시자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응시자들 틈에서 걸으며, 나는 다시 몇 개의 얼굴을 떠올렸다. 엄마, 백작님, 백작 부인…….

문은 아직 입장하는 응시자들을 위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지금 나가야 했다.

* * *

나는 약재상에서 오후를 보냈다. 약재상 할아버지는 내가 앞으로 자주 오겠다고 하자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좋아했다.

나는 점원들이 잘못 보관하고 있는 약초를 발견하고 지적질도 좀 하고, 손님들을 구슬려 살 계획이 없던 약초를 더 얹어서 팔기도 했다.

내내 줄리아 선생님처럼 가정 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여기서 정식으로 일을 배워서 나이가 들면 내 가게를 차리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약재상 할아버지 아들이 돈만 갖다 쓸 줄 알지 변변찮다니까, 내가 잘만 하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늦은 오후가 되니 거리를 지나는 마차가 한꺼번에 늘어났다. 제국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른 응시생들이 일제히 귀가하는 중이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가슴이 팍팍해졌다.

내 원래 계획은 정오 즈음 시험장을 몰래 빠져나왔다가 시험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시험장 앞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그런데 시간을 때우려 약재상에 오고 나니 죽어도 돌아가기 싫었다. 시험장에도, 백작저에도.

“나 같으면 나 같은 애한테 밥 안 줘.”

내가 중얼거리자 약재상 할아버지가 ‘뭐라고?’하고 소리쳤다.

“아니에요. 저 인제 가 봐야 할까 봐요.”

“그래, 그래. 내일 또 와.”

“또 올게요. 내일인지는 모르겠고요.”

나는 터덜터덜 걸어 백작저로 돌아갔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가 가출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면 백작 부인이 예민하게 반응할지도 몰랐다.

이제 내 희망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터덜터덜 걷다가 힘주어 중얼거렸다.

“미샤. 너라도 붙어라.”

내가 해가 진 후 백작저로 돌아갔을 때, 백작님은 내 방에 찾아왔지만 내 표정을 보고는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질문했다.

“미샤는 잘 봤대요?”

“가정 교사들이 알려 준 기출문제가 많이 나왔다더구나.”

“다행이네요. 축하드려요, 백작님.”

제국에서는 귀족이라고 다 같은 귀족이 아니었다. 귀족들끼리도 아카데미와 비아카데미 출신으로 급을 나누었다.

아카데미는 명예와 인맥을 동시에 제공했고, 그곳에서 황족과 연을 맺어 평생 주종의 관계를 맺는 일도 허다했다. 혼맥은 말할 것도 없다.

백작님의 체면이 서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니 축하할 일이 맞았다.

“……쉬거라.”

백작님은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갔다. 대신 테리아가 나에게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내 식욕이 돌 리가 없었다. 나는 빵 한 쪽과 물만 마시고 잠이 들었다.

* * *

아카데미 입학시험 결과는 일주일 후에 발표되었다. 제국 최고급 교육 기관답게, 결과 통보서는 응시생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백작 부인이 봉투를 여는 동안 미샤는 얼굴이 거의 새파래져 있었다. 하지만 내용물을 본 백작 부인이 좋아라 비명을 지르자 미샤도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나는 백작 부인이 그런 우아하지 못한 소리를 내는 걸 처음 들었다. 백작님도 너털웃음으로 즐거워했다.

나는 가족들끼리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도록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내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백작님은 한참 후에 내 방으로 찾아왔다. 불합격 통보를 확인한 후였다.

“내년에는 저택이 조용할 테니 너도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거다. 올해 미샤를 돌봐 준 가정 교사들에게 수업을 예약해야겠어.”

“아니, 줄리아 선생님의 실력은 전혀…….”

나는 말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 백작님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로리샤, 우리는 느리게 갈 때도 빠르게 갈 때도 있다. 느린 걸 실패로 착각할 필요는 없어.”

나는 백작님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기……. 저한테 유산 주실 건가요?”

“뭐?”

“그게, 제가 장사 밑천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 미리 알아야…….”

백작님은 그 말에 확실히 당황하고 있었다. 나도 생각해 보니 못 할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 입술을 때리고 싶었다.

“죄송해요.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쉬거라.”

백작님은 당혹스러운 듯 잠시 벽을 바라보다가 돌아갔다.

“휴우……. 네가 아주 뱅뱅 돌았구나, 로리샤.”

나는 스스로를 욕하며 의자에 축 늘어졌다.

그때 미샤가 활짝 웃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런 썅.

나는 이를 꽉 물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 축하해 주자. 축하, 축하!

“미샤, 합격 축하해!”

미샤는 너무 웃어서 입가가 경련이 나는지, 볼을 문지르며 내 앞에 앉았다.

“뭐, 별거 아니었어. 로아르 가문은 대대로 머리가 좋거든. 할아버지 때 위기에 몰린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아버지의 지적 능력 덕분이라고 그러잖아?”

익히 아는 이야기였다. 선대 로아르 백작이 황제 폐하의 미움을 사 영지에서 유폐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시기.

백작님이 엄마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황제 폐하의 호의를 산 대부호 딸과의 정략결혼은 바로 그 정치적 고립의 탈출구였다.

“그렇구나.”

나는 미샤가 나를 향해 진심으로 따뜻하게 미소 짓는 걸 처음으로 보았다. 세상을 다 얻은 자에게서 저절로 우러나는 관용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다.

심지어는 내 쪽으로 친밀하게 몸을 숙여 오기까지 했다.

이러지 마, 무서워!

“네 결과 통보서, 내가 봤거든?”

“그…… 래?”

“0점이던데?”

“아……. 알잖아. 내가 거의 내 마음대로 공부하다 보니까 엉뚱한 책만 봤나 봐.”

식은땀이 났다. 합격, 불합격만 알려 주는 줄 알았지, 성적까지 보낼 줄이야.

미샤는 눈을 반짝이며 속삭였다.

“시험을 보긴 한 거야?”

“으응……?”

“네 공책 보고 선생님들이 얼마나 놀랐는데. 그런데 네가 0점이라고? 나는 네가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도 봤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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