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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수중 재활 훈련(2) (10/65)


#10화 수중 재활 훈련(2)
2023.06.10.



“너도 참, 힘을 빼면 춤을 어떻게 춰?”

리즈가 민망함을 감추고자 애써 명랑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자 케인이 말했다.

“처음엔 그냥 제가 이끄는 대로만 오세요. 그냥 느끼시면 됩니다.”

교묘하게 주어를 빼고 말하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눈을 감고 오로지 귀로만 들으면 더없이 야릇하게 들리는 건 자신만의 착각일까?

착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케인이 그런 남자였다면 자신이 유혹했을 때 진작에 넘어왔을 테니까.

‘나 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리즈는 이 상황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네가 다 알아서 한댔으니까.”

“네, 대신.”

케인이 말했다.

“제 허리에 다리 감으세요.”

“…….”

이번에야말로 리즈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뭐, 뭘로 뭘 감으라고?”

“일단 리듬을 알아야죠.”

그걸 꼭 그런 식으로…… 알아야 하는 겁니까? 전하?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기도 전에 케인은 리즈를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 물 밖에서도 가뿐하게 들던 몸인데, 하물며 중력의 힘이 약해진 물속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리즈의 몸은 그에게 있어 깃털 하나만큼의 무게도 나가지 않았다.

번쩍 들어 올려진 리즈는 저도 모르게 다리로 케인의 허리를 휘감게 되었다.

그녀는 당혹스러워 죽을 맛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누군가와 살을 맞대고 접촉한 적이 있었던가?

장담컨대 유년기 이후엔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유년기에도 없었을지 모른다.

육아는 전적으로 유모의 담당이었는데, 전해 들은 얘기론 유모가 결벽증이 있어서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론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니까.

아무튼 그런 자신이 처음으로 타인과, 그것도 남자와 거의 맨몸으로 찰싹 달라붙어 있다니.

콩닥콩닥.

리즈는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흉벽을 뚫고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폭발적인 두근거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케인에게 가슴이 닿지 않도록 상체를 뒤로 물렸다. 혹시나 이 두근거림이 케인에게 전해질까 봐.

그러곤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리 훈련이 목적이라곤 하지만, 케인은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이렇게 맨살을 맞대고 있는데도?

“자…… 음악은 왈츠 음악으로 하죠. 베른의 왈츠 3번 기억하시죠? 일전에 제가 아가씨의 연습 파트너가 되어 드렸던 그 음악이요.”

아…… 아무 생각 없는 것 같다. 저렇게 태연하게 리드하는 걸 보니.

‘역시 나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였군.’

혼자만의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리즈의 머릿속에 들끓던 열기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래, 이건 수중 훈련이야. 무도회를 성공적으로 장식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리즈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감아 봐요. 그럼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케인의 말대로 리즈는 눈을 감았다. 과연 그 말대로였다. 빙글빙글 돌 때마다 몸이 물결을 가르는 느낌이 찰랑이는 소리와 함께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수중 훈련을 한 적이 있어서일까, 정말 잘하는구나. 편안했다. 몸을 스쳤다가 파도처럼 돌아오는 물살이 아니었다면 물속에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로.

***

리즈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케인은 리즈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의 눈은 절반쯤 풀려 있었다. 살짝 충혈도 되어 있었다. 몸속엔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것 같았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불길. 그는 그 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사실 그걸 들킬까 봐 눈을 감으라 했다. 눈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장담할 수 없어서.

눈을 감고 춤의 리듬을 느끼는 리즈의 얼굴은 정말로 매혹적이었다. 이마를 덮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흉터도 신의 표식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거기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매 순간 느낄 정도로.

‘미쳤군.’

케인은 생각했다. 자신이 미쳤다고.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미라벨이 그녀가 윌렌과 이렇게 몸을 맞댈 것이라 말했을 때,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그렇게 놔둘 수 없었다.

그래서 막 욕장으로 들어서려는 윌렌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벽에 밀어붙이고선 위협했다.

“네가 우리 아가씨의 연인이라고 밖에서 떠들어 댄다지?”

“제, 제가 언제…….”

남다른 위엄을 느낀 탓인지 윌렌은 케인이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걸 알면서도 감히 말을 낮출 수가 없었다.

“이미 다 알아봤고 증거도 있으니 잡아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제,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님께 내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당장 이 집에서 꺼지도록.”

윌렌은 군말 없이 지시에 따랐다. 마님에게 달려가 아무래도 자신보단 이 집안사람 중 힘을 잘 쓸 수 있는 젊은 남자가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곤 부리나케 사라졌다.

그걸로 한숨 돌렸다고 여겼는데…….

전혀 다행스럽지 않은 상황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리즈의 몸이야 몇 번 봐서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다.

속에 뭔가 덧대어진 바지를 입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아니었다면 꽤 위험했을 테니까.

리즈는 춤에 열중하느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기분이 묘했다.

은밀하고 야릇한 기류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리즈를 보니 조금 아쉬웠다.

자신은 지금 이렇게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끓어오르고 있는데, 그녀는 어째서 이렇게 평온할 수 있지?

정말로 이제 나한테 더는 마음이 없는 걸까?

“케인.”

갑자기 리즈가 불러서 케인은 흠칫 놀랐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지?”

“조금만 더요.”

아까부터 계속 같은 자릴 도는 걸 느꼈는지 리즈가 물었다.

하지만 케인은 조금 더 이렇게 있고 싶었다. 조금만 더 이 얼굴을 아무 방해 없이 바라보고 있고 싶었다.

동그란 눈두덩이 아래로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속눈썹과 매끈한 콧날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박자를 세느라 달싹이는 입술은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끌고,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치아는 잘 세공된 보석처럼 매끈해 보였다.

목덜미는 뭔가 흔적을 새겨 넣어 주고 싶도록 새하얗고.

그리고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접촉하고 있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케인은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더 가면 진짜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

“어떠셨어요?”

처소에서 쉬고 있으니 미라벨이 찾아와서 물었다.

“어떻긴 뭘? 훈련이 훈련이지.”

“정말 훈련만 하셨어요?”

미라벨이 이상한 질문을 했다.

하긴, 미라벨이라면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 왔는지 다 아니까.

“그럼 훈련만 하지. 뭐가 있었겠어?”

“그럼 다행이고요.”

“앞으로도 줄곧 다행일 테니 안심해. 이미 잘 알고 있잖아? 그쪽은 내가 흔든다고 흔들릴 상대가 아니라는 걸.”

“…….”

“게다가 이제 나도 그런 생각이 싹 없어졌으니까,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어.”

미라벨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제 마음 정리가 다 된 아가씨를 괜한 말로 흔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드레스 맞추는 날이 내일이던가?”

리즈가 손가락을 꼽아 보더니 물었다.

그러자 미라벨이 대답했다.

“네, 내일 낮 두 시예요. 점심 식사하시고 바로 출발하시면 될 것 같아요.”

“낮 두 시라…….”

수중 훈련 끝나고 가겠군.

그나저나 그것 잠깐 했다고 몸이 이렇게 가뿐한 걸까?

리즈는 동작이 한결 수월해진 것을 느끼곤 감탄했다. 힘들게 물살을 가르며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리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사뿐사뿐 걸어 보았다. 그러면서 미라벨에게 물었다.

“어때? 나 좀 가벼워진 거 같지 않아?”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미라벨은 조금 전부터 아가씨의 움직임이 상당히 가벼워졌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확실히 도움이 되긴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생각을 접었다. 마님께 아가씨를 위해선 당장 케인을 내보내야 한다고 말하려던 것을.

두 시간 전.

미라벨은 잠깐 아가씨가 필요한 게 없을까 해서 욕장으로 발걸음 했다. 그러곤 막 문을 열려 하는데…… 대화가 하도 이상야릇해서 차마 문고리를 돌릴 수 없었다.

‘힘을 빼야 해요. 그래야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제 허리에 다리 감으세요.’

미라벨은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역시 케인 저놈, 자신이 아가씨의 훈련을 맡겠다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훈련을 핑계로 아가씨를 어떻게 해 보려고……!

미라벨은 아가씨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컥 열고 들어가면 소중한 아가씨가 놀랄 수도 있으니 일단 살짝만 열어 동태를 살피자. 그러고 나서 쳐들어가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문을 빼꼼히 열었는데…….

미라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케인에게 올라탄 채 눈을 감고 있는 아가씨, 그리고 그런 아가씨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케인이었다.

그 순간 미라벨은 직감했다.

케인이 아가씨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확실하다.

저렇게 갈망하는 눈길 속에 담긴 감정이 사랑이 아닐 리가 없다.

한데 아가씨는 모르고 있다.

만약 안다면? 그럼 아가씨는 어떻게 나올까.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걸까?

“안 돼. 그렇게 둘 순 없어.”

신분 차이는 둘째 치고, 이제 막 정신 차리기 시작한 아가씨를 또다시 집착에 허덕이게 놔둘 순 없었다. 그런 일은 한 번으로 족했다.

미라벨은 결심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저놈을 보내 버려야겠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도 그 결심은 확고했다.

하지만 지금, 리즈가 빙글빙글 돌며 이전과 같이 생기발랄하고 가뿐한 움직임으로 걸어 다니는 것을 보자 미라벨은 마음이 바뀌었다.

결심을 잠시 보류하기로.

‘그래, 조금 시기를 늦춰도 상관없겠지. 일단은 아가씨의 몸이 우선이야.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그때 보내 버려도 늦지 않아.’

***

수중 훈련 2회차.

케인은 어제보다 조금은 사무적인 태도였다.

“자세는 곧게 펴시고요. 몸을 움츠리면 힘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손을 붙잡는 거 외엔 몸도 접촉하지 않으려 했다.

마치 원래의 케인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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