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운하풍운(3)
송현은 침상 밑, 서백은 구석을 조사했다.
왕이삼은 탁자의 서랍과 옷장을 열어 보기로 했다.
왕이삼이 서랍을 하나씩 빼 봤지만 이상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딱히 이상한 건 안 보이는데?”
왕이삼이 옷장을 막 열려고 할 때 송현이 무슨 이유인지 앞을 막았다.
“잠깐.”
“왜 그러시오?”
“우두머리 망자는 다른 망자의 목을 베어서 옷장 속에 넣어 두기도 하오.”
“뭐라고? 왜?”
“망자가 되어도 말을 안 듣는 자, 또는 철저히 명령에 따르는 부하로 만들고 싶은 자가 있을 때 비좁고 어두운 곳에 가둬 두고 정신을 압박하기 위해서요.”
“……!”
목만 잘라서 옷장에 처박아 둔다?
감히 생각지도 못할 끔찍하고 놀라운 고문!
방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옷장.
왕이삼은 저 속에 망자들의 머리가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송현이 다시 검기를 띄운 뒤 왕이삼의 뒤로 가서 섰다.
만에 하나 옷장 속에 망자들의 목이 들어 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
“여시오.”
왕이삼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옷장을 열었다.
* * *
이미 세 명의 경쟁자를 제거한 도화광은 네 번째 희생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복도 경비는 여전히 허술했다. 기분 탓인지 복도를 오가며 경비 서던 채도들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들킬 리도 없었지만 도화광은 어둠에 숨어서 은밀히 복도를 이동했다.
그는 방금 전 살수를 죽이기 전에 혹시 다른 정보를 얻을지 몰라서 고문을 했다.
하지만 살수는 다른 자들과 같은 말을 했고, 더 알고 있는 정보는 없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도화광이 죽인 살수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한 말.
-소림사행 인물을 생포해서 숙주(宿州)의 용정객잔으로 끌고 가면 큰 포상금을 얻을 수 있다.
숙주는 안휘성의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도시다.
그리고 안휘성은 남궁세가의 본거지였다.
‘남궁세가가 일을 꾸미고 있군.’
도화광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남궁세가 가주의 무남독녀가 무림맹의 일을 맡았다가 실종된 채 시신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루아침에 무남독녀를 잃은 남궁세가의 가주는 무림맹에 지독한 증오를 품고 있을 터.
즉 남궁세가는 소림사행 인물을 가로채서 무림맹에게 복수하려는 계획이리라.
처음에 도화광은 남궁세가에 인질을 넘기고 포상금을 받을 생각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일에 무림맹이 원하는 정보가 얽혀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 꼬마가 대체 무슨 정보를 알고 있는 거지?’
만약 그 정보를 알 수 있다면 단순히 남궁세가에 인질을 넘기는 것보다 더 큰 돈벌이가 될 것이다!
‘남궁세가와 무림맹의 뒤통수를 동시에 칠 수 있다고? 꿩도 잡고 알도 먹는 격이군, 하하하!’
도화광이 숨죽여 웃을 때였다.
방금 지나친 뒤쪽 방에서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복도로 나왔다.
‘……!’
도화광은 순간 움찔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올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고? 알아차리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목이 베이고도 남았을 실수!
도화광은 몸을 돌리며 뒤를 향해 소매의 비수를 휘둘렀다.
촤악. 일검에 목이 떨어졌다.
‘이런!’
도화광은 눈썹을 찡그리며 재빨리 인영의 몸을 점혈했다. 파파팟. 피가 흐르는 것을 막는 수법.
이어서 바닥에 떨어지는 인영의 목을 허공에서 머리채를 잡아 낚아챘다.
인영은 도화광이 죽이고 다니던 살수들과 같은 부류였다. 어차피 죽일 놈 하나 더 죽인 셈이니 신경 쓸 것은 없었다.
문제는 피.
재빨리 몸을 점혈했기 때문에 복도에 피분수가 쏟아지는 것은 다행이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은 자는 혈맥의 흐름이 끊어진다. 혈맥이 흐르지 않으니 점혈의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당연한 일.
피분수는 막았지만 목과 몸의 절단된 곳에서 어느 정도 핏물이 흘러서 벽과 바닥에 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도화광은 몸뚱이의 멱살을 잡고 발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몸뚱이를 끌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일단 들키진 않았다.
그러나 복도의 피 흔적을 지울 순 없었다. 지운다고 해도 냄새가 날 게 뻔했다.
만약 채도들이 앞을 지나간다면 방 안의 시체는 금세 발각이 되리라.
도화광은 몸뚱이를 쥔 멱살을 놓고 잘린 목은 침상에 집어던졌다. 어차피 냄새 막는 건 포기했으니까.
“이 정도 했으니 살수 놈들은 나중에 죽이고 꼬마부터 잡아볼까?”
그런데 얼굴에 축축한 느낌이 들어서 만져보니 핏물이 묻어 있는 게 아닌가?
“이런 망할!”
도화광은 욕설을 뱉으며 방에 있는 짐꾸러미를 뒤졌다.
예상했던 대로 거울은 나오지 않았다. 방주에도 거울은 없었다.
그는 화장을 하고 다니느라 거울이 필수품이었다.
반면 씻지도 않는 무림인, 그것도 흑도의 살수들이 거울을 갖고 다닐 리 없었다.
“싸구려 흑도 놈들. 어떻게 된 게 거울 가지고 다니는 놈이 나 하나밖에 없냐?”
그는 혹시 싶어서 방구석에 있는 옷장을 열어 봤다.
“에라이, 봇짐에도 없는데 잘도 여기 있겠다…….”
그런데 옷장 맨 위의 칸에 무언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마치 수박을 쌓아 놓은 것처럼 둥글고 시커먼 것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옷장 속의 물건을 살피던 도화광은 입을 살짝 벌리며 경악했다.
“이게 뭐야?”
옷장 칸에 있는 것은 사람의 잘린 목들이었다.
순간 목들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몇 차례 눈알을 뒹굴거리던 목들이 일제히 앞에 있는 도화광을 노려봤다.
“……!”
사람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는 도화광마저 등골이 오싹하는 장면. 그는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방에는 자신 외에 아무도 없었다.
침상 밑? 굳이 살피진 않았지만 방에 들어 올 때 누구의 기척도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박수를 치고 있다니…….
도화광의 이마에서 순식간에 식은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누구냐?”
몸을 돌린 그는 아연실색했다.
복도에서 목을 벤 다음 끌고 들어온 몸뚱이가 목이 없는 채로 꼿꼿이 서서 두 손을 움직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가 방심했다곤 하지만 일검에 목을 베다니 제법 쓸 만한 무공이군.”
침상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린 도화광은 다시 한번 경악하고 말았다.
잘린 목이 도화광을 똑바로 보면서 히죽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네놈은…….”
“그래. 중원 사람들은 나 같은 걸 두고 망자라고 부르지.”
“소문은 들은 적 있다. 하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서 놀랐다는 거냐? 천하의 살인마 도화광이 놀라는 꼴을 다 보다니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걸, 후후후.”
“…….”
잠시 잘린 목을 노려보던 도화광은 곧 여유를 되찾고 말했다.
“혈귀는 많이 봤는데 진짜 망자를 다 보다니 좋은 구경했군.”
“역시 도화광답군. 네놈 같은 살수가 망자 하나 봤다고 쫄아 있는 꼴은 영 보기 싫거든.”
“근데 어쩌나? 만나자마자 이런 말 해서 아쉽지만 이 방에서 나가기 전에 네놈을 완전히 죽여야겠다. 아니, 망자는 벌써 죽은 건가?”
도화광이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딱 튕기면서 말을 이었다.
“오호라, 그래! 그 꼬마 놈이 망자 확인을 한다며 불을 붙였지? 네놈도 태워 버리면 되겠군.”
그 말에 잘린 목이 얼굴에서 미소를 싹 지웠다.
“왜 말이 없지? 망자도 불은 무서운가?”
“…….”
“정말인가 보군! 망자는 목 베이는 건 신경 안 쓰지만 불타는 건 무서워한다. 이거 뜻밖에 좋은 정보를 얻었는걸, 하하하!”
잠자코 있던 잘린 목이 입을 열어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할 순 없지!”
목이 없는 몸뚱이가 도화광을 향해 돌진했다.
스슥. 도화광의 양쪽 소매에서 비수가 튀어나왔다.
“꼴에 그걸 급습이라고…….”
그런데 자신만만하던 도화광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도화광의 등 뒤에서 망자들의 목이 찢어져라 입을 벌렸다. 그러자 입속에서 혈선충 촉수들이 문어발처럼 뻗어나와 도화광에게 쏟아졌다.
쐐애애액.
수백여 다발의 혈선충 촉수가 도화광의 목과 사지에 칭칭 감겼다.
도화광은 등 뒤에서, 그것도 잘린 목들이 공격을 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이런 제길!”
도화광은 혈선충 촉수들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가 양팔을 뒤로 돌려서 휘젓자 혈선충 촉수가 뭉텅뭉텅 잘려서 바닥에 떨어졌다.
후두두둑.
그때 몸뚱이가 달려와 도화광의 요혈을 점혈했다.
파파팟. 점혈당한 도화광은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
도화광이 생전 처음 당한 점혈이었다. 이전에 점혈 당한 일이 있었다면 그때 죽었을 테니까.
목이 없거나 목만 남아 있는 망자들이 앞뒤에서 동시에 협공을 펼칠 거라곤 상상조차 못해서 벌어진 참사였다.
목 없는 몸뚱이가 침상에서 목을 들고 도화광의 앞으로 걸어왔다.
두 손에 들린 목이 말했다.
“너무 걱정 마라. 망자가 된 기분은 생각보다 근사할 거야.”
“……!”
“목을 베고 혈선충을 집어넣는 게 가장 확실하지만 그 방법은 피해야겠군. 그 꼬마 놈이 목에 난 검흔을 발견하면 곤란할 테니까.”
팟. 몸뚱이가 재차 점혈하자 도화광의 얼굴이 저절로 움직이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이어서 몸뚱이가 손에 든 목을 도화광의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걸로 한 놈 더.”
잘린 목의 입에서 혈선충 촉수가 뿜어져 나와 도화광의 목구멍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쐐애애애액!
* * *
한편, 긴장한 손으로 옷장을 연 왕이삼은 안을 확인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아무것도 없구만.”
그 말대로였다. 왕이삼이 옷장을 열었지만 안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방 어디에서도 서생이 망자라는 물증은 찾을 수 없었다.
“서생이 망자일지 모른다는 가정을 재고해야겠군요.”
“그럼 서생이 망자의 목은 왜 벤 거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릅니다.”
“쳇, 헛고생만 했군.”
서생이 방에 없고 물증도 나오지 않는 이상 더는 할 게 없었다.
“그만하고 철수하자고.”
그런데 송현이 밑으로 내려가려는 왕이삼을 막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았소.”
“뭐가 또 남았다는 거요?”
“채도들의 경비가 소홀하니 서생을 찾아볼 여유가 있소.”
“헹, 이 넓은 방주에서 어디로 간 줄 알고?”
왕이삼은 설마 뭐가 있으려고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송현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는 듯 막힘없이 대답했다.
“서생이 갈 곳은 세 군데요.”
“세 군데?”
“그렇소. 측간, 선창, 채주실이오.”
“측간? 밖에 나오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는데 잠도 안 자고 측간에 갈 놈이 누가 있소?”
왕이삼은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지만 본전도 찾지 못했다.
“측간 가는 걸 참지 못해서 한밤중에 꼭 일어나는 자를 한 명 알고 있소.”
“…….”
왕이삼은 입을 다물었다. 송현이 말한 자가 누구인지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선창도 마찬가지요. 식탐이 심해서 밤에 야식을 끊지 못하는 자는 벽곡단으로 배를 채우지 못하니 선창에서 음식을 훔칠지 모르오.”
그나마 왕이삼은 두 번째에 자신이 속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음식보다 술을 더 탐하는 바람에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식탐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방금 우리가 선창에서 올라왔지 않소?”
“선창은 넓소.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오.”
“쩝.”
“마지막으로 채주실. 서생이 망자라면 밤에는 기회를 노려서 채주실을 암습할 것이오.”
“그건 또 왜 그렇소?”
“어떤 집단을 손아귀에 넣으려면 두목부터 잡으라는 말이 있소. 채주를 망자로 만들면 채도들을 망자로 만드는 것은 수월하지 않겠소?”
“……!”
왕이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송현의 말이 맞았다.
망자가 채주를 망자로 만든다면 방주를 손아귀에 넣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