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운하풍운(1)
잠시 겉에만 붙어 있던 불길은 사람 신체의 기름을 먹기 시작하는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불길만 거세질 뿐 시체는 꼼짝하지 않았다.
어느새 갑판 위는 긴장감이 사라지고 서백을 비웃는 분위기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화광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꼬마야, 망자에 대해 제법 아는 척을 하더니 허탕이구나?”
“그럴까요?”
“그래도 허세를 못 버리는군, 하하하!”
채주가 채도들에게 명령했다.
“불을 끄고 물에 던져라.”
“존명.”
채도 둘이 천을 덮어서 불길을 대충 제압한 뒤 양쪽에서 시체의 손과 발을 잡았다.
그때였다. 시체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홱 돌려서 채도의 손을 물어뜯었다.
콰득.
계속해서 망자가 채도의 손에 이빡을 박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자 살점이 후두둑 뜯겨나갔다.
“아아악!”
시체는 망자였던 것이다.
“감히 나를 불태워… 감히 네놈들이… 피가 필요하다… 피가 필요해…….”
망자가 이번에는 발을 잡으려던 채도에게 달려들었다. 채도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허리춤에서 환도를 뽑아 내리쳤다.
“살(殺)!”
콱. 환도가 망자의 어깻죽지를 가르며 박혔다.
그러나 성정은 용감했지만 망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 채도의 목숨을 앗아갔다. 망자는 어깨뼈가 절단 났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어서 채도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던 것이다.
콰지직.
“아아아악…….”
망자가 살점을 크게 한 입 물어뜯자 채도의 목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갑판에 쏟아졌다.
솨아아아.
“망자는 목을 베어야 합니다!”
서백이 손을 등 뒤로 돌려 검잡이를 잡으며 외쳤다.
그러나 무림인들과 채도들을 합해서 백여 명이 넘는 인파가 갑판에 모여 있는 바람에 검을 휘두를 공간이 없었다.
그대로 베었다간 멀쩡한 사람의 손발이 잘려나갈 터.
서백의 대검은 닥치는 대로 망자를 벨 때는 최상의 병기다. 그러나 사람들 속에 망자가 숨어 있는 셈이 되자 손쓰기가 애매했다.
게다가 망자가 생전에 무림인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공을 수련한 자가 망자가 되었으니 채도들이 환도를 들고 공격했지만 몸에 익힌 경신법이 저절로 발휘되어 좀처럼 쓰러뜨릴 수 없었다.
오히려 망자는 피 맛을 보자 광기가 사라지고 냉정을 되찾고는 쌍장을 휘두르며 채도들을 밀어붙였다.
“밥상 한 번…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구나…….”
서백이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송현이 서백의 어깨를 짚으며 스윽 앞으로 나섰다.
“내게 맡겨라.”
그때였다. 몰려 있는 채도 사이를 뚫고 인영 하나가 바람처럼 망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영은 몸을 날리는 중에 손바닥을 뒤집어서 옆에 있던 채도의 환도를 낚아챘다.
채도는 멀뚱한 눈을 한 채 환도를 빼앗겼는데, 인영의 수법이 어찌나 절묘한지 마치 채도가 일부러 그에게 환도를 건네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싱싱한… 고기 반찬이군…….”
망자가 인영을 발견하고 쌍장을 뻗었다.
쉬쉬익.
쌍장이 변화무쌍하게 흔들리면서 각각 인영의 가슴팍과 옆구리를 노렸다.
어느 한 쪽을 피해도 다른 쪽이 중상을 입는 것을 면치 못할 수법.
순간 인영의 발이 삼절곤처럼 늘어나더니 쌍장 사이를 파고들어서 망자의 배를 차 버렸다.
퍽.
“크억…….”
망자는 허리가 서책처럼 접히며 갑판 너머로 날아갔다.
계속해서 인영은 갑판에 늘어져 있던 밧줄을 잡더니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아직 물에 떨어지지 않은 망자의 목을 수면 위에서 환도로 베어 버렸다.
촥. 꾸웨에엑!
풍더엉.
망자의 잘린 목과 몸뚱이가 그제야 물에 빠졌다.
이어서 인영은 손을 튕겨서 밧줄을 팽팽하게 만들었고 그 반탄력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방주 위로 돌아온 뒤 깃털처럼 사뿐하게 갑판에 착지했다.
탁.
인영이 보인 엄청난 무공에 무림인들의 눈빛이 번쩍 안광을 뿜어냈다.
망자를 찬 각법.
깨끗하게 목을 베어 버린 도법.
마지막으로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반탄력을 이용해서 방주로 돌아오는 경신법까지.
무림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고수다!
그런데 갑판 위에 선 인영을 보고 무림인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인영은 방주가 출발할 때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서 간신히 방주를 탔던 백면서생이 아닌가?
-그 서생 놈이 망자를 단숨에 해치웠다고?
-무공을 일부러 숨기고 있었군.
-강호에서는 세 살배기 어린애도 믿지 말라더니…….
모두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지만 서생은 태연하게 척척 걸어가 채도에게 환도를 돌려주며 말했다.
“빌려 줘서 감사합니다.”
“…….”
채도는 멍청히 있다가 흠칫 놀라서 환도를 받았다.
사실 빼앗아 간 거지만 서생이 깍듯이 예의를 차리니 채도는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망자를 죽여 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 해야 될 판.
갑판 위가 쥐 죽은 듯이 적막하자 서생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채주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니오. 오히려 수로채가 감사하오. 감사의 뜻에서 무엇을…….”
그러자 서생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망자가 창궐한 세상인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 다음 서생은 좌우를 돌아보며 포권지례를 올리며 인사했다.
“그럼 다른 일이 없다면 저는 방으로 가서 쉬겠습니다.”
서생이 척척 걸어가자 무림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옆으로 비켜서 길을 내줬다.
갑자기 서생이 무언가 잊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망자한테 물린 채도들은 감염됐을 테니 안타깝지만…….”
슥. 그가 엄지로 목에 금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망자에게 물리면 감염돼서 망자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즉 망자에게 물린 채도 둘은 가망이 없으니 처리하라는 뜻!
채주가 고개짓으로 명령하자 채도들이 어두운 눈빛으로 망자에게 물린 동료들을 끌고 갔다.
곧이어 채도들의 비명소리가 들린 뒤 갑판 위는 싸늘한 적막에 휩싸였다.
“수로채는 아무 규칙도 두지 않으나 망자가 나왔으니 예외로 한 가지 규칙을 두겠소. 술(戌)시가 지나면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마시오.”
술시(戌時). 대략 해가 지는 시간.
즉 채주는 해가 떨어져서 어두워진 뒤에는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이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
서백 일행도 돌아와서 왕이삼의 방에 모였다.
“방주에서 망자가 나오다니 등골이 오싹하구만.”
왕이삼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쨌든 망자도 죽이고 사건도 끝났으니 다행이군.”
그런데 서백이 고개를 저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망자한테 물린 채도 둘은 죽였… 뭐 어떻게든 처리했으니까 끝난 거 아니냐?”
“아닙니다. 시체는 어떻게 할 겁니까?”
“시체? 설마 물속에 떨어진 망자가 되살아날 거란 말이냐? 장강삼협보단 물살이 약하지만 헤엄쳐서 방주에 올라오진 못할 텐데.”
“그 말이 아닙니다. 그 시체가 망자라면, 목을 베고 혈선충을 넣은 자는 누구란 말입니까?”
“그럼…….”
“처음 방주에 탄 무림인들 중에 망자가 숨어 있었던 겁니다.”
“……!”
왕이삼은 그제야 서백의 말을 깨닫고 경악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몰라서 물으십니까?”
서백이 예의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망자를 색출해서 목을 벤 다음 태워 버려야죠.”
“에이, 아니겠지. 방주에 타기 전에 망자한테 물렸던 거 아닐까?”
“방주에 탄지 이미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멀쩡하다가 지금 망자로 변한다는 건 이상하죠.”
“끄응…….”
서백의 말이 수긍이 가자 왕이삼은 신음을 흘렸다.
송현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 시체, 처음에 방주를 탔을 때는 목에 검흔이 없었소.”
“정말이오? 방주에 탄 다음 목에 베인 거라고?”
“그렇소.”
“근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소?”
“한 번 본 건 잊지 않소.”
“…….”
왕이삼은 놀랍고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었다.
서백과 송현.
기이한 사제 같은 이인(二人).
왕이삼은 평생 중원 무림의 기인이사(奇人異士)를 수없이 봐 왔다.
하지만 송현은 기이함을 넘어서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저놈은 위험하다. 저놈과 함께 다니다간 제 명에 못 죽겠군.’
왕이삼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망자가 방주에 탔는데 왜 채주한테 알리지 않은 거냐?”
“믿지 않을 겁니다.”
“왜?”
“뱃사람들은 직접 눈으로 본 일이 아니면 믿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왕이삼은 서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뱃사람뿐 아니라 무림인도 마찬가지였다. 중원은 넓지만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본 게 아니면 믿지 않았다.
“게다가 술시가 지나면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채주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도 방에서 나오지 않을 테니 시체가 나올 일도, 망자가 생길 일도 없을 거라고 말이죠.”
“그렇군.”
왕이삼은 서백의 설명에 재차 수긍했다.
누군가 방에서 나오다가 채도들에게 들키는 순간 그자가 망자라는 셈이니 말이다.
“아니면 채주는 방주가 낙양에 도착할 때까지 사건을 뭉개고 있을 생각인지도 모르죠.”
듣고 보니 오히려 그게 정답 같았다.
수로채도 엄연한 무림인.
무림인들은 서로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니까.
얘기가 끝나자 송현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푹 자 두시오.”
“아직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인데 자라고?”
“오늘 밤은 잠을 못 잘 테니 미리 자 두란 소리요.”
송현이 나가자 왕이삼은 어리둥절해서 서백에게 물었다.
“오늘 밤이라니 무슨 소리냐?”
“망자를 찾으러 가야죠.”
“밤에? 채주가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망자도 그 틈을 노려서 밤에 밖으로 나올 겁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
왕이삼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망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돌아다니자고? 후배, 제발 부탁인데 위험한 짓은 하지 말자.”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누구인지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럼 왜 말하지 않은 거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채주는 믿지 않을 거라고요.”
“…….”
“망자는 밤에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망자를 죽여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
왕이삼은 다 포기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왕이삼은 송현은 물론이고 정든 후배 서백과도 거리를 두어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어느덧 해가 지고 운하에 밤이 찾아왔다.
수로채의 채주는 술시가 지나면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했다.
하지만 서백 일행의 생각은 달랐다. 일행은 경고를 무시하고 망자로 여겨지는 서생을 찾으러 방에서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백 일행 외에도 채주의 경고를 무시하는 자가 있었다.
복도에서 슬그머니 문이 열리더니 무림인 하나가 틈새로 기척을 살폈다.
‘병신 같은 수로채 놈들.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누가 그 경고를 지키냐?’
그는 좌우를 살핀 다음 아무도 보이지 않자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
‘고작 백 명쯤 되는 채도들로 이 넓은 방주를 무슨 수로 감시할 건데?’
눈가에 진하게 연분홍색 화장을 한 무림인.
바로 도화광이었다.